조재연_아니라고 하는데 괜찮다고 말하네 : 자크 랑시에르, ‘아이스테시스’의 민중 그리고 심미화 의혹

조 재 연 0 교만하고 어리석게 말하자면, 민중은 변혁에 있어서 최초심最初審이 아니다. 예심 내지 최초심에서 늘 먼저 등장한 것은 지식인, 엘리트와 같은 몫 있는 자들이었다. 로베스피에르가 그랬고, 마르크스가 그랬고, 레닌과 마오가 그랬다. 최초심에서 가장 먼저 세계를 고발하고 소장을 전달하는 것은, 민중의 몫은 아니었다. 그러나 반대로, 송사가 진행되고 비로소 그것의 효력을 »

홍태림_ 예술대학 강사 감축, 또다시 학생들의 교육권을 좀 먹는다

*본 글은 2019년 7월 8일에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는 ‘예술대학 교육여건 실태와 지원정책 방향’ 토론회 발제문입니다. 홍태림(미술비평,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 소위 민간위원) 대학 운영에 필요한 시설과 교원 그리고 수익용 기본재산 등에 대하여 규정한 ‘대학설립ㆍ운영규정’에서 교원산출 기준을 살펴보면 예체능 계열은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20명이다. 그러나 대학알리미에서 2017년 기준 전국 141개 예술관련 학과 보유대학(이하 »

이용준_미세먼지에 관한 짧은 투정

“자연성분의 흡착거품이 미세먼지를 팝팝!” 지난 3월 아모레퍼시픽의 프레시팝은 그린허브레시피의 광고를 선보인다. 모델 이소라는 미세먼지로 가득한 서울의 전경을 뒤로한 채 자신의 두피를 쥐어 잡는다. 대열을 갖춘 댄서들은 “문제 있어?”란 표정으로 자신있게 머리칼을 흔들어 대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정신없이 화려한 영상은 미세먼지의 그것보다 더 희미하게 재난의 기억을 지워버리는듯 하다. 맥주 브랜드 테라는 »

Bennett Foddy, 절망감의 11가지 맛

글: 베넷 포디(Bennett Foddy) 번역: 이여로 게임 디자이너들이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생각이 있는데, 플레이어가 절망감을 느낀다면 그 게임은 어딘가 잘못 디자인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게임 디자인들은 대개(어쩌면 모두?) 절망감을 본질적인 요소로 갖고 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Space Invader>에서 플레이어가 죽었을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땠겠는가? <미스트 Myst>에서 »

조태위_‘디아스포라 기행: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평

조태위 재일조선인의 자살률은 평범한 일본 국민의 자살률에 비해 더 높다고 한다. 아니, 더 높을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국민’은 자살을 결심했다가도 “뒷머리를 잡아채 이편으로 끌어당기는 힘”의 작용을 받아 마음을 고쳐먹기도 하는 반면, ‘디아스포라’는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편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무엇인지 간단히 정의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그것을 구성하는 몇 가지 요소를 »

전민지_아카이브/앤솔러지/트리엔날레/도큐멘테이션? ‘롯본기 크로싱 2019’

전민지 전시를 아우르는 키워드가 분명히 존재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을 전시의 전면에 세워두더라도 한 기관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그룹전은 하나의 주제나 서사로 쉬이 정리되지 않는다. 그 개최 목적은 “최근 몇 년 간 일본 동시대미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향후 국제무대에서 성장 가능성이 돋보이는 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인다”와 같이 붕 뜬 문장으로만 요약되곤 한다. 심지어 두 »

조재연_세계여, 이것은 당신을 위한 종말_이윤희, 손배영, 최은: 골목유랑기

  “모든 이들이 깊은 마음 속에선 세상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1Q84」 1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을 잡으며 물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그리고 과거에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결점들 그리고 오점들을, 인정하고 삼킬 것을 각오하고 선언했다. “내가 잘할게.” 당신의 오래고 먼 연락을 기다릴 수 있는 것, 이해할 수 없는 »

정강산_기억의 과잉, 역사의 과소, 아디오스 프루스트: 프루스트적 시간론에 대한 비판적 시좌

“우리는 기억 속에서 무엇이건 다 찾아내게 마련이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 화학 실험실 같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어떤 때는 위험한 독약이 잡힌다.”1) 1. 들어가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루스트의 자전적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소설의 화자 마르셀이 불현듯 찾아온 과거를 대면하게 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은, 냄새를 통해 »

홍태림_예술가는 도시재생을 치장하는 장신구가 아니다

홍태림(미술비평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 민간위원)   *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현장소통 및 공론화 소위원회가 기획한 ‘도시재생 관련 예술가 레지던시 실태 토론회'(2019.5.23)에서 발표될 기조발제문 입니다. 2002년, 서울시는 강남과 강북의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하여 강북의 재개발구역 여러 개를 묶어서 정비하는 뉴타운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뉴타운 사업은 2005년에 국회를 통과한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

오정은_지박령과 싸우는 예술가의 감각

* 대학원생이던 몇해 전 나는 ‘복도갤러리’에서 나를 포함 몇 명의 작가를 모아 전시를 기획하고 있었다. 복도갤러리는 공모를 통해 기획전시를 실현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문자 그대로 건물 복도를 전시 갤러리처럼 만든 장소였다. 강의실과 학과 사무실, 교수연구실을 연결하고있는 대학건물의 여느 흔한 복도지만, 천장에 할로겐 조명 레일이 있고 흰 가벽이 본벽에 덧대어 있으며, »

전민지_치환과 전환 : ‘미국적 영웅’의 시간은 어디로 흐르는가-‘스타워즈 4’와 ‘엔더스 게임’

전민지   굳이 수치화하지 않더라도 <스타워즈(Star Wars)> 시리즈와 <인디애나 존스(Indiana Jones)> 시리즈는 역사상 최대의 수익을 기록했던 영화계의 양대 산맥이다. 동시대에 활동한 여타 배우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두 시리즈의 주인공이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위의 대표작 외에도 다양한 액션 영화의 영웅으로서 일찍이 상업적 능력, 또는 매력을 증명한 영화배우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 »

이용준_4.3 어제 오늘 그리고..

오늘은 아침부터 서둘렀다. 4.3 추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지난날 4.3의 위상은 폭동에서 국가의 위령제로 격상되었다. 위령제란 무엇일까? 위령제는 어제의 시간을 현재로 소환시키기는 매개체이며, 일종의 현대적 제사이다. 제사에는 여러 주술적 행위가 동원되는데, 먼저 참여자들의 정서적 각성을 위한 다양한 수단이 이용된다. 먼저 제사장은 비극의 기억을 소환한 후, 참여자의 정서적 각성을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

엄제현_공공근로?

엄제현 <공공근로>가 작가 자신이 몸담았던 공공근로사업의 대상을 담아냈다고 해서 이를 성급하게 ‘가난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라거나 ‘예술과 노동의 등치’같은 횡행했던 주장들 틈바구니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를 한다면 사유의 태만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인식을 유행하는 몇 가지의 언어나 사변으로 대체해 일관되게 서술하려는 노력은 지리한 관념론으로 빠지기 쉽다. 세계의 모순을 »

김윤익_빌닷Bildad

김윤익(작가, 기획자) ​기획전 <빌닷 Bildad>은 힙합뮤지션 이매릭 Imae Rick이 발표한 두개의 믹스테잎  [1.The Geat Adventures of Imae Rick(2015)]과 [2. The miseducation of Imae Rick(2017)]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이매릭은 현재의 어딘가에 거주하고 있을 법한 가상 인물의 시점을 서사적으로 풀어내 한국말의 발음과 어조가 강조되는 특유의 ‘랩핑‘ 위에 올려놓는다. 주로 실패한, 외로운, 분노하는, 고립된, »

이양헌_등대 위에서

이양헌 / 미술비평 ​그 오래된 건물의 문을 열고 처음 들어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아주 희고 넓은 회랑을 기억하고 있다. 19세기 살롱전이 성대하게 치러지던 궁전의 안뜰 혹은 순례자들이 잠시 머무는 수도원의 대합실을 떠올리게 하는 긴 복도형의 공간은 실내 장식이 거의 없고, 열주(列柱)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어쩌면 이곳이 예전에는 갤러리(gallery)였을지도 모르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