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진_미로를 빠져나가면 죽는 쥐: 들뢰즈와 울리포(OuLiPo), 그리고 만남-기계

  안세진 나는 미술이나 영화를 보러 가는 걸 내가 하는 투자라고 이해해, 신중하게… 나는 교양이라는 걸 믿지 않아, 하지만 만남을 믿지.  만남은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야. 만남은 사물들 간에 발생하지.  나는 나가고, 주의를 기울여. 만남을 위한 재료가 있을지. 영화 속에서, 회화 속에서… 들어봐, 누군가가 무엇을 한다고 치면 그건 그곳으로부터 떠나는 »

안준형_게임 세계의 유물론적 유령들과 폐쇄성: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안 무너진대요

안준형 선택받은 아이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지켜라! 게임 <디지몬>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는 게임적 체험으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묘사되는 디지털 월드를 배경으로 한다. 작중 선택받은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주인공 일행들은 수학여행 도중 갑자기 기묘한 빛줄기의 포탈에 빨려 들어가 어느 외딴 섬에 떨어져 버린다. 거기서 그들은 디지몬이라고 하는 이상한 괴물들과 마주친다. 그 »

오혁진_리처드 펠튼 아웃코트: 옐로우저널리즘 무대에 쏘아올린 풍선

오혁진(만화 평론가) 1996년 만화의 기원에 대한 논쟁이 발생한다. 만화계는 <Yellow kid> 탄생 100주년과 로돌프 퇴퍼 사후 150주년을 기념하는 과정에서, 만화의 진정한 기원이 유럽인지 아니면 미국인지에 관해 논쟁한 것이다. <Yellow Kid>가 만화의 기원이라는 주장은 물론 부당하다. 그것은 차라리 만화 역사에 대한 무지 혹은 편향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우린 이 주장을 »

홍용상_이미지에 가미된 깔짝거림에 관하여: 전적으로 이미지를 다루는 회화의 소환, 안지산 작가를 기점으로

홍용상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회화라는 장르가 다소 난처한 처지에 놓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회화의 입장에서 모더니즘의 공세는 분명 치명적 상흔을 남겼다. 미국의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가 회화에 대해 환원적 단언을 내리고 말았으니 회화는 공간을 암시하는 건축성, 서사를 드러내는 문학성 등 모든 환영적 재현요소를 상실하게 되었다. 결국 남은 것이라곤 2차원이라는 »

김선호_진격의 거인: 폐허와 테러리즘

김선호(만화평론가) 먼 훗날 2020년이 어떤 해로 기억될지는 모르겠지만, 단언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사실이 우리에겐 있다. 2020년이 폐허에 지배되었다는 점이다. 2001년이 테러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었다면, 2020년은 무너져야 할 것과 버텨내는 것들이 한 자리에 공존하는 해였다. 2001년 테러리즘이 무너지는 것들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치환하였다면, 2020년의 폐허는 무너져야 할 것과 버텨내야 할 것을 »

유미주_클럽하우스라는 기획과 그 기획의 함의들: 상품화된 분리불안과 유명세가 흩뿌리는 정보들을 중심으로

유미주 * 본 고는 2월 18일에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00최근 한국에서는 클럽하우스에 대한 아티클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클럽하우스의 초대 제도와 발언권 부여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클럽하우스를 직접 사용해보면 누구나 그러한 비판들이 상당히 피상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본 고는 클럽하우스 국내 초기 사용자로서의 경험을 직접 분석하여 이 »

박시내_비엔날레에 대한 짧은 에세이 : 타이베이 비엔날레를 바라보는 여행자의 관점

박시내 * 나는 작년에 한 비엔날레 사무실에서 일했다. 비엔날레는 코로나의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고, 일찌감치 모든 행사를 1년 뒤로 미루었다.(그러면 그것을 정말로 “비엔날레”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록 다운된 영국에서 일하는 감독을 단 한 차례도 대면으로 만나지 못했다. 그의 한국 항공편은 여러 번 취소되고 다시 예약되었으나 그는 결국 입국하지 못했다. »

이현수_미완결의 기호학: <언컷 젬스>를 중심으로

이현수 l 이 혼란스럽고 요란하며 포악한 사건사고의 연속은 매우 단순하게도 주인공이 제정신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보로 우리를 공격해온다. 관객은 주인공인 하워드가 정신 차라기만을 바란다. 만약 우리의 바람이 없다면 <언컷 젬스>는 성립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것은 침투해 올 병균의 위협보다는 이미 감염된 무언가에 대한 불안인 것이다. 단지 하워드가 직면한 역경을 회피했으면 하는 바람이 »

윤형신_‘로팅(盧亭, Lo Ting)’ : 홍콩인의 정체성 표상

2019년 홍콩 항쟁 2년 후 서로 다른 시공에 떠오른 반인반어(半人半漁)의 이미지 0000영국으로부터 중국으로의 반환을 한달 앞둔 1997년 6월, 홍콩의 한 전시장에는 두 발로 걷는 물고기 형상의 생명체가 등장했다. 이집트의 석상과 같이 정면을 향한 채 한 발을 앞으로 내민 괴생명체는 금방이라도 전시장 밖으로 걸어나갈 듯한 모습이었다(도판 1). 푸른 빛이 감도는 그는 »

Jessie Yoon_안전한 선 안에서 선 넘기

안전한 선 안에서 선 넘기 카운터테너 최성훈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통해 드러나는 이성애중심주의적 남성성의 규범 Jessie Yoon(젠더연구자) 최성훈은 카운터테너이자 JTBC 팬텀싱어 3의 우승팀인 라포엠의 멤버이다. 프랑스와 스위스를 거쳐 평생 클래식을 공부했고, 카운터테너라는 생소한 성부에 대해 설명을 요청하면 그는 “가성대를 기반으로 비강과 몸의 다양한 공명을 활용해서 여성 음역대의 소리를 내는 남성 »

가쇼이_전우진 개인전 <듀얼채널 왁싱숍>(2020) 리뷰: 입던 팬티 팔아요…

가쇼이(작가) * 이 글은 전시에 비평적으로 응답하는 소설입니다. 전시를 관람하며 습득한 인상과 정보를 바탕으로 자료를 모아 가상의 팬티팔이 A를 만들었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화자가 그의 일상을 카메라로 포착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캠코더를 들었다. 거실 유리창 너머로 눈이 내린다. 주차장과 놀이터를 조용히 뒤덮는다. 아이들이 입김 내뿜으며 눈덩이를 굴린다. 따라 나온 어른은 »

조영찬_이환희 그림 비평 : 그림자, 암(暗), 암흑물질, 선긋기

조영찬 이환희‧박미선 공동 전시에 출품된 이환희 작가의 그림에 대한 비평입니다. ‘이환희 작가의 그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기쁨’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였습니다. 이기쁨 씨가 하는 말은 모두 조영찬 씨의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이기쁨은 이환희 작가의 이름과 최대한 비슷하게 지었습니다.   (기침 소리) 나: 이환희 씨의 그림에는 관람자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말씀인데요. 이기쁨 »

한혜인_무심코에 대하여

한혜인 훗날 우리는 온 국가가 공통적으로 처하게 된 위기상황과 그에 따라 새로 성립된 생활양식을 떠올릴 것이다. 사재기, 휴지 대란, 기름값의 급락, 마스크 착용의 의무화와 그 효용에 대한 엇갈린 논의 등 전에 없던 해프닝들이 표지가 되어 후에 동세대 간의 유대를 부흥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아직도 ‘예외적’으로 여겨지는 이 상황이 종식된다면 말이다. »

오혁진_로돌프 퇴퍼: 낭만주의의 명령, 만화를 융합하라

오혁진(만화 평론가) 19세기 스위스 태생의 로돌프 퇴퍼(1799~1846)는 현대 만화의 아버지 또는 최초의 만화가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스콧 맥클라우드는 그를 카툰 화법과 칸 경계선을 도입했고, 글과 그림의 상호작용 조합을 선보였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퇴퍼가 만화적 요소를 새롭게 발명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화의 기원은 이보다 더 먼 과거로 소급될 수 있으며, 비록 만화로 »

조남혁_구조로서의 기호

조남혁 싫어함의 욕구는 자유에 대한 지향이다. 좋아함의 욕구는 내가 좋아하는 대상 역시 나를 좋아하길 바라는 욕구를 수반한다. 즉 상호적으로 귀결되고 해소된다. 반면 싫어함의 욕구는 대상에게 해를 끼치는 나의 주체적 행위로 해소된다. 그 틈에 대상의 의지는 배제되어 있다. 싫어하다는 대개 나와 타자를 구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타자가 가진 나와의 차이점을 검토해 증오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