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_웹툰 2.0 : 플랫폼 가속주의

김선호(만화평론가)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웹툰 업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에 대해 논평을 하는 일의 어려움 말이다. 먼저 한국에서 웹툰이 본격적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자면, 아무래도 스마트폰이 보급된 2010년 무렵으로 정의를 내리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게 본다면 2020년을 기준으로 웹툰의 역사는 고작 10여 년에 불과한 »

이용준_제주 개발 논쟁에 대한 생각

이용준 최근 제주는 관광객 수용문제, 환경파괴, 제2공항 건설사업 등, 개발을 둘러싼 논쟁으로 뜨겁다. 이 글은 제주 개발담론을 생산하는 자본과 싱크탱크, 그에 저항하는 시민사회의 논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개발 논쟁은 주민들의 토지수호와 보상금 문제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개발은 단순히 제주를 파괴하는 데 멈추지 않고, 제주를 파괴할 주체를 재생산한다. 따라서 개발 논쟁은 »

박동수_세계를 응시하는 복수의 눈,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박동수 *<그라이아이:주둔하는 신>은 서울독립영화제(11/26~12/4)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그라이아이(Γραῖαι)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데니오, 에니오, 펨프레도 세 노파의 이름이다. 메두사의 언니이기도 한 이들의 이름은 각각 ‘무서운’, ‘호전적인’, ‘놀래키는’이라는 뜻을 지닌다. 신화 속 영웅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찾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은 하나의 눈을 돌려 끼우며 살아간다. 정여름의 <그라이아이:주둔하는 신>(이하 <그라이아이>)은 행군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

임현영_ ‘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기까지’ -이정식 개인전 ‘이정식’ 관람기-

임현영 이정식의 세 번째 개인전 ‘이정식’. 작가의 이름을 딴 제목처럼 ‘이정식’전은 이정식이라는 사람에 관한 전시다. 2013년 HIV/AIDS 감염 사실을 공표한 이후로, 그는 세 번의 개인전을 통해 HIV 감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첫 번째 개인전 ≪nothing≫에서 작가는 감염인으로서 자기 몸이 자각하는 변화를 시각화-캔버스에 약가루 안료를 덧씌운다거나, 엽서 가득 복약 시간을 »

이여로_I will have a glory about joke┃전보배, 송명진 2인전에 부쳐

이여로 1. 내가 거부하지 않은 이 물질 앞에서, 나는 상상과 기억을 구분하지 못한다. 우리가 기억이라 부르는 말속에서, 나는 방향을 구분하지 못한다. 방향 감각의 상실을 선언하면서, 우리는 구분의 한 가지 방식을 포기한다. ‘못함’, ‘상실’, ‘포기’의 이어지는 선언들 다음에 나타난 것들은 덜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있다. 권리상으로만 존재하던 것들. <I had »

FLORENCE SMITH NICHOLLS_글리치를 불태워라? : 디지털 퀴어에 대한 고고학

BURN THE GLITCH? AN ARCHAEOLOGY OF DIGITAL QUEERS 글: FLORENCE SMITH NICHOLLS 번역: 나원영 도입 글리치는 디지털 해충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그들의 아날로그적 등가물처럼, 글리치는 살짝 불편한 정도부터 피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범위지어질 수 있다. 로딩 에러, 벽 뚫기1), 그리고 플레이를 완전히 종료시키는 결과를 낼 정도로까지 게임을 파괴하는 글리치가 그러한 »

조재연_미적 유기체로 아버지┃안부: 잘-못-하다

1 그저, 집에만 가져가면 사랑하던 것들은 모두 녹아내렸다. 그것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웠는지에 관한 확신은 과거보다 낡은 것으로, 미신보다 수상한 것으로 이다지도 변천을 벗지 못했다. 아름다워요. 산만한 것이지. 의미가 있는 것이에요. 쓰임새는 없는 것이지. 돈보다 더 좋은 것이에요. 꼭 그래야겠니. 집이라는 영토에서 길러졌지만, 고작 밤이 깊어서야 그 영토 안을 쭈뼛거리며 입장할 »

조재연_폐허의 연인┃허단비: 영혼의 발돋움

1 희망은 절망에 비해서 아름답지 않다. 차라리 나는, 연락한다는 말보다 다시 볼 일 없을 것이라는 말을 더 기대했었고, 고민한다는 이야기보다 거절이 이미 도착했으면 했었고, 그러다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북돋움 대신 남은 것은 불행뿐이라는 선고를 기다렸을 처지였다. 그저 버티지 않고 기대기만 하면, 중력이 이끄는 대로 편히 침잠할 수 있는 그런 평화와 안온이 »

유미주_젊음을 포르노그라피화 하는 트로트 예능

유미주 근래의 트로트 예능들의 역함이 도를 지나쳐서 견딜 수가 없다. 이 유행의 시작이었던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은 나았다. 이 기획의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기에, 기존에 유명세를 얻지 못했던 트로트 가수들이 참여했고 그 결과로 실제로 빛을 보지 못했던 가수들이 대거 미디어의 조명을 받을 수 있었다. 대우 받기 마땅한 이들이 대우 받게 되었다. 문제는 »

강미정_서평: 『존재의 지도: 기계와 매체의 존재론』

강미정 21세기에 접어든 후 서구 철학계 일각에서 ‘비인간 전회’(the nonhuman turn)의 물결이 형성되었다. 비인간이라는 화두는, 인간너머의 존재에 관한 포스트휴머니즘 및 트랜스휴머니즘의 사유뿐만 아니라 현재의 지질시대를 인류세라고 명명한 생태학적 위기감과 더불어 부상했다. 현재 진행 중인 비인간주의로 향한 흐름 가운데는 ‘사변적 실재론’ 또는 ‘객체지향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 OOO)을 표방하며 철학의 물줄기를 인식론으로부터 존재론으로 바꿔 »

서운_어둠 속의 대화 관람기 : 당신의 감각에 질문을 던지는 하루

서운 비가 끝도 없이 내리는 하루를 50일 동안 당연하게 살았다. 비가 오는 풍경을 일상적으로 바라보며 흘려보냈는데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자 빗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빗물이 창을 통과해 내 얼굴에 뿌려졌으며 비릿한 냄새를 동반했다. 비는 눈을 지나쳐 느낌으로 왔으며 귀와 코에 스며들어 몸의 감각을 자극했다. 바이러스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거나 혹은 우리와 함께 »

윤태균: 포스트모더니즘의 잔해들┃조형성과 텍스트

윤태균 1. 조형성(formativeness)과 텍스트(text)는 발생론적 측면에서 불가분한 관계를 갖는다. 2. 조형성과 텍스트의 관계를 설명하는 과거의 미학적 도식들 중 단계적 논의를 위해 살펴볼 만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질료(matter)와 형상(form) 개념이다. 예를 들어 책상이라는 실체(substance)는 책상이라는 개념적 형태, 즉 형상과 나무라는 질료로 구성된다. 이때 형상은 유비적 본질로서 질료가 최종적으로 환원되고자 하는 지점이다. 환원의 »

조재연_생쥐와 인간은 뾰족한 수가 없다┃유태영: 그날, 문을 열다

1 몇 번이나 몽상을 했다. 가장 괴로웠던 순간에는 늘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에 그때 내가 그 연락을 받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그때 훼방을 놓았던 그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혹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이렇게 했거나 하지 않았더라면. 이쪽을 선택하는 대신에 저쪽을 선택했더라면. 그리고 그 시점에서 물러났더라면. ‘만약’의 층위는 나를 꼴사납도록 만드는 »

정강산_상관주의와 그에 대한 불만들에 대한 주해와 사변적 실재론에 대한 비판적 시론

“상관주의와 그에 대한 불만들”에 대한 주해와 사변적 실재론에 대한 비판적 시론1) 정강산 *직접인용문 내부의 ‘[]’는 모두 인용자의 주이다. 1. 퀑탱 메이야수는 『유한성 이후』에서 그가 “선조성”이라 부르는 것, 즉 칸트적 상관주의2)의 한계를 넘어 ‘존재’하거나 상관주의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사유 발생 이전의 과학적 사실로서의 실재를 사유할 필요를 역설하며, 칸트의 이성비판으로 열린 공간을 »

오정은_미술비평,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ㅠㅠ

오정은 비 오는 어느 날, 나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좌석에 앉아 ‘미술비평’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예술인이 된 이후, 비평은 이제 생계를 위한 거의 절대적인 도구가 되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미술비평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줄 수는 없지만, 글을 씀으로 인해서 이따금 돈을 벌고 드물지만 가끔 문화예술계에 소개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