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국_서양미술사를 관통하는 새로운 시선 :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안진국(미술비평가) 먼지 쌓인 문서를 다시 펼쳐보는 것은 과거에 대한 존중이며, 현재에 대한 반성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하는 것은 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미술사 연구소에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원고가 놓여 있다. 1905년 세상을 떠난 학자가 남긴 미완의 원고다. 집필자 알로이스 리글(Alois Riegl)은 »

엄제현_회화를 둘러싼 질문들

엄제현 본고는 집단오찬에서 황재민이 제기한 회화에 대한 논의의 끌개이다. 그가 진지하게 펼친 회화에 대한 질문은 동시대의 중요한 사유 중 하나다. 《Vera Verto: Why are Digital Kids Painting Again? Because They Think It’s a Good Idea》라는 다소 긴 이름의 전시는 (거진)파산한 회화에 대한 현재적 지위를 물으며 작금의 시공간 내부에서 회화가 어떤 »

엄제현_가치라는 환상

엄제현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의 극단적인 평가절하는 때때로 정치에 관한 냉소를 가볍게 넘어서는 듯하다. 왜일까? 언뜻 보기엔 아직도 ‘미’라는 개념이 직관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미몽적인 사유 체계에 기인하는 듯도 하고, 소정의 작품들이 소더비나 크리스티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형성하는 데 대한 아연함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작품이 부자들의 탈세에 악용되고 있다는 (제네바를 시초로 생긴 프리포드나 »

박미란_공회전: 맴도는 도상들

박미란(전시기획자) 스산한 풍경이 펼쳐진다. 공간이 인물을 잠식한다. 인체의 형상은 사물과 뒤엉키거나 배경 속에 흩어진다. 낮은 채도로 조밀하게 묘사한 화면 위, 상징적 도상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현실의 풍경을 분해한 조각이다. 이동혁은 장면을 재구성하며 사유를 정제해 나간다. 관념이 형상화한다.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믿음에 대한 의구심이다. 종교적 맹신, 집단의 관습에 관한 이야기다. 새로운 관점을 »

박규남_비장소의 상상속에서 유희하기 – 청주 퀴어 에세이

박규남 ‘비장소’라는 말은 서로 구분되지만 보완적인 두 가지 실재를 가리킨다. 어떤 목적(교통, 통과, 상거래, 여가)과의 관련 속에서 구성된 공간, 그리고 개인이 이 공간들과 맺는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층위의 관계가 어쨋거나 공식적으로는 상당히 겹치지만(개인은 여행하고 구매하고 휴식한다), 그렇게까지 혼동될 정도는 아니다. 비장소들은 자기와 타자에 대한 관계의 총체를 매개하는데, 그 »

윤태균_디지털 나르코시스-미디어 묵시록

윤태균 1. 이것은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에 대한 재독해로 시작된다. 그는 「미디어의 이해」(1964)를 통해 전기 매체 시대의 감각을 탐험으로서, 또 계시로서 제시한다. 이제는 일반명제와 같이 여겨지듯이, 미디어는 단순한 의미 전달 수단이 아니다. 미디어의 형식은 곧 내용이다. 매체 자체의 특성, 매개성에서 그 의미가 도출되는 것이다. 즉 “미디어는 메세지다”[1]. 미디어는 인간이 세계를 수용하고, »

조재연_쥐면 부서질까 불면 날아갈까┃정원석: 할아버지 시계

조재연(미학) 1 천진하게와 물끄러미가 어긋나고서야 비로소,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준비가 되었다. 열지 않는 서랍 속의 드물게 남는 사진처럼 사랑도 무수히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한심한 반복들을 고작 잊고선 지나간 사람이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 병을 앓을 때면 더욱 그랬다. 그러나 영원을 부정할 그 말이 준비된 것이 »

홍태림_현 미술창작대가 제도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

홍태림(미술비평가, 크리틱-칼 발행인) 2014년 전후로 한국 미술계에서는 예술노동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 되면서 아티스트 피, 작가비, 사례비, 보수지급제도, 대가제도라는 용어가 현신한 유령들처럼 떠돌았다. 사실 이러한 논의와 그에 따른 제도화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지 않은 이라면 도대체 저 용어들이 어디서부터 튀어나와서 어떻게 정리되어가는 상황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이러한 용어들이 혼란 속에서 »

윤태균_혼종적 공동체와 타인의 얼굴 – 조은지 개인전: 두 지구 사이에서 춤추기

윤태균 타자와 공동체 타자성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타자성은 절대적인 특성이 아니다. 라캉의 편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상징계로의 진입과 동시에 그에 대한 반정립으로 발생한다. 비-자아로서의 타자성인 것이다. 이때 주체가 자기-타자, 나-너를 구분짓는 기준은 자아와 함께 형성된 상상적-상징적 두 세계의 실금일 뿐이다. 하지만 상상계적 타자가 아닌 존재하는 ‘타자‘는 우리의 외부에 명료하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

조재연_김학량 개인전 ‘바다와 나비’ 리뷰: 바다 알러지 잠수함

조재연(미학) 1 엄마는 기다리라는 말을 많이 했다. 세상의 어른들이 그렇듯이, 그녀도 ‘다음에’라는 말을 좋아했다. 그럼 나는 시계 앞으로 가, 시곗바늘만 빤하게 쳐다보았다. 째깍째깍 뚝뚝 끊어지며 가는 초침보다는 친구 집에서 본 부드럽게 움직이는 초침의 시계가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집에는 그런 시계가 없었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시계를 »

이민주_‘먹방(Mukbang)’에서 충동과 욕망의 문제

이민주 먹을 것은 늘 가장 큰 화두다. ‘맛집’따라 정해지는 행선지와 요리법, 먹는 방법 등 식사에 관한 예절로 인간의 행동양식이 규격화되는 정황을 보면, 인간에게 음식은 단지 영양 공급의 수단이 아닌 사회·문화적인 가치, 혹은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 굶주리고 있다는 건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며, 인간의 경제적 지표가 »

김은호_영화 기생충 리뷰: 침팬지를 그린거죠? 아뇨 자화상이에요.

김은호 이제 와서 다시 영화 기생충에 대해 글을 쓰려는 이유는 오히려 필자가 이 영화를 관람했던 때보다 지금 더 이 영화에 대한 말들이 많은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다시 비평하기에 앞서 참고해야 할 여러 요소들이 있다. 이 영화가 최근에 각종 영화제에서 이룬 쾌거와 국내 코로나 사태를 비유적으로 풍자하는 »

조재연_주신 게 허무라니요┃서찬석 개인전 ‘오류를 지나’

조재연(미학) 1 몸을 기울이다 결국 불에 닿은 것처럼 혹은 누가 모르게 얼음을 등 뒤에 넣은 것처럼 느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따위의 말을 들을 때면. 당신은 나에게 그렇게 의미에 관해 묻곤 했다. 그것은 얼마만큼의 화폐를 벌 수 있는지와 어느 정도의 쓸모를 가질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아주 상냥한 물음에 속한 것이었고, 좁은 »

홍승택_라캉 돌려 말하기

홍승택 “분석 경험에 관한 보고서에 합당한 문체가 이론의 모든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문체가 언표들-분석 경험은 이에 따라 운용된다-이 은유 효과와 환유 효과, 즉 우리 주장에 따르면 프로이트에 의해 무의식의 메커니즘으로 기술된 메커니즘이 실현되도록 해주는 언표 행위의 뒷걸음을 자기 안에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증한다.”1) 돌려 말하기란 무엇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숨기고, »

전대한_그럼 저는 갓난아이인가요?

전대한(대중음악비평) 재미공작소에서 펴낸 책 『씬의 아이들』의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홍대-인디-씬’을 보고 꿈을 키웠고, ‘씬’ 안에서 성장했으며,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5명의 이야기를 에세이와 인터뷰로 엮은 책”이다. 나는 이러한 『씬의 아이들』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 음악가(몬구, 연진, 전자양)와의 인터뷰나 한 비평가(김윤하)와 한 기획자(하박국)의 에세이는 아마 누군가에게는 이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