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제현_서울올림픽 개막식과 코스모폴리탄②

글: 엄제현 이후 성화 점화가 메인인 공식행사를 지나 삼부, <뒷풀이>가 시작된다. 아나운서 이창호는 첫 순서인 <좋은 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처음 세상이 열리고, 모든 인류가 평화롭게 지내던 좋은 날의 광경이 펼쳐집니다. 하늘에 신비스런 기운 받은 땅의 기쁨을 기리고 하늘의 복을 비는 춤입니다.” 고대 부족들의 제의는 자신이 속한 부족의 종말에 »

조재연_폭력이 어쨌다구

조재연(미학) 1 오랜 동안 윤리는 현자의 돌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냈으니 그것은 바로 폭력이다. 윤리는 이제 어느 사태에서든 어떤 대상에서든 또 어떤 시간에서건 폭력을 증류해낼 수만 있다면 그것을 ‘악’이라 부를 수 있다고 자신 있고 대담하게 소리친다. 범죄, 테러 행위, 사회 폭동, 전쟁 그리고 그로부터 비명을 지르고 눈물짓고, 피를 흘리는 인간의 »

엄제현_서울올림픽 개막식과 코스모폴리탄①

글: 엄제현 들어가기에 앞서 인용문의 분량이 제법 많아 강조표기를 하여 식별이 용이하게 하였습니다. 미주도 본지에 비견되는 중요함이 있어 참고문헌은 모두 본문에 병기하였습니다. 미주까지 읽어주시면 모쪼록 감사하겠습니다. 들어가며 프로이트의 주장대로 노출증이 타인의 시선을 경유하여 자기-보기를 상상하는 유희라면 올림픽도 그와 유사한 보기를 수행하지 않을까? 지구 전체로 뻗어 나가며 세계인을 축제의 참여자로 포획하는 »

이문석_몇 번 쓰고 버려지는 새벽과 대충 쓰여지는 환청

이문석 여섯 해 동안 물류센터 상하차 알바, 일명 ‘까대기’를 하던 이종철씨는 자신의 경험을 그린 만화, 『까대기』를 출간한다. 이 중 한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이바다’는 작업을 하다가 목장갑이 더러워져 지점장에게 새것을 요청한다. 컴퓨터 사무업무에만 몰두하고 있는 지점장은 새 목장갑 대신 쓰다 남은 목장갑이 담긴 박스를 내어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차피 몇 번 »

계원예술대학교 블랙리스트 총장 비상대책위원회 연대발언문: 홍익대학교 ‘미대의 외침’의 “예술인 선언”을 지지하며

「홍익대학교 ‘미대의 외침’의 “예술인 선언”을 지지하며_계원예술대학교 블랙리스트 총장 비상대책위원회 연대발언문」 (2019년 10월 6일)   정강산(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안녕하세요, 계원예술대학교 블랙리스트 총장 비상대책위원회입니다. 8월 28일 결성된 이후 저희는 ‘블랙리스트 공모자 송수근 총장 퇴진’이라는 구호를 중심으로, 기자회견, 성명 발표, 연대서명, 교내 프로그램 조직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블랙리스트 총장 »

이여로_아무것도 할 수 있는 정영문: 강물을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정영문[1]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작품론 00.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2]를 읽다 그만둔 지점은 우주선에 탑승한 고양이를 기념한다기보다 회상하는 일련의 문단이다. 그 이후로 대중없이 펼쳐보고 있다. 그러다 문득 그의 전작인 <오리무중에 이르다>나 <어떤 작위의 세계>를 함께 펼쳐보기도 한다. 어떤 장면은 붙기도 하고 어떤 장면은 붙지 않기도 »

홍태림_VR과 AR의 현재와 미래

홍태림(미술비평가, 크리틱-칼 발행인) 되뇌어보면《GDF2019: Tech & Art Festival》은 VR(Virtual reality)과 AR(Augmented Reality)을 동시에 다뤘지만, 전반적으로 AR작업보다는 VR작업이 더 많은 전시였다. 아무래도 이러한 현상은 여전히 1인용 HMD(Head Mounted Display)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는 VR작업이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감상자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서 »

한재섭_광주시립미술관의 정유승 작가 검열 의혹에 부쳐

한재섭(미술사) 2019년 8월 26일(월) 저녁 8시에 광주 동명동 I-플렉스에서 광주시립미술관의 정유승 작가 전시배제 사건 집담회가 열렸다. 이 집담회는 8월 20일 작가가 사건의 공론화를 바라며 개인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과정이 공유되고 더불어 참석자들의 자유로운 발언 속에 향후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집담회에 온 광주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이제야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

조재연_아니라고 하는데 괜찮다고 말하네 : 자크 랑시에르, ‘아이스테시스’의 민중 그리고 심미화 의혹

조재연(미학) 0 교만하고 어리석게 말하자면, 민중은 변혁에 있어서 최초심最初審이 아니다. 예심 내지 최초심에서 늘 먼저 등장한 것은 지식인, 엘리트와 같은 몫 있는 자들이었다. 로베스피에르가 그랬고, 마르크스가 그랬고, 레닌과 마오가 그랬다. 최초심에서 가장 먼저 세계를 고발하고 소장을 전달하는 것은, 민중의 몫은 아니었다. 그러나 반대로, 송사가 진행되고 비로소 그것의 효력을 확정시킬 최종심을 »

이용준_미세먼지에 관한 짧은 투정

“자연성분의 흡착거품이 미세먼지를 팝팝!” 지난 3월 아모레퍼시픽의 프레시팝은 그린허브레시피의 광고를 선보인다. 모델 이소라는 미세먼지로 가득한 서울의 전경을 뒤로한 채 자신의 두피를 쥐어 잡는다. 대열을 갖춘 댄서들은 “문제 있어?”란 표정으로 자신있게 머리칼을 흔들어 대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정신없이 화려한 영상은 미세먼지의 그것보다 더 희미하게 재난의 기억을 지워버리는듯 하다. 맥주 브랜드 테라는 »

Bennett Foddy, 절망감의 11가지 맛

글: 베넷 포디(Bennett Foddy) 번역: 이여로 게임 디자이너들이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생각이 있는데, 플레이어가 절망감을 느낀다면 그 게임은 어딘가 잘못 디자인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게임 디자인들은 대개(어쩌면 모두?) 절망감을 본질적인 요소로 갖고 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Space Invader>에서 플레이어가 죽었을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땠겠는가? <미스트 Myst>에서 »

조태위_‘디아스포라 기행: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평

조태위 재일조선인의 자살률은 평범한 일본 국민의 자살률에 비해 더 높다고 한다. 아니, 더 높을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국민’은 자살을 결심했다가도 “뒷머리를 잡아채 이편으로 끌어당기는 힘”의 작용을 받아 마음을 고쳐먹기도 하는 반면, ‘디아스포라’는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편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무엇인지 간단히 정의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그것을 구성하는 몇 가지 요소를 »

전민지_아카이브/앤솔러지/트리엔날레/도큐멘테이션? ‘롯본기 크로싱 2019’

전민지 전시를 아우르는 키워드가 분명히 존재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을 전시의 전면에 세워두더라도 한 기관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그룹전은 하나의 주제나 서사로 쉬이 정리되지 않는다. 그 개최 목적은 “최근 몇 년 간 일본 동시대미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향후 국제무대에서 성장 가능성이 돋보이는 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인다”와 같이 붕 뜬 문장으로만 요약되곤 한다. 심지어 두 »

홍태림_아이치 트리엔날레 ‘평화의 소녀상’ 검열사태 이후 남겨진 과제

홍태림(미술비평가, 크리틱-칼 발행인) 1. 언론을 통해서 잘 알려졌다시피 카와무라 타카시 나고야 시장은 2019년 8월 2일에 아이치 트리엔날레 특별전에 방문하여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된 《표현의 자유, 그 후》의 즉각적인 중지를 주장했다. 나고야 시장이 이처럼 황당한 주장을 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인의 마음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

조재연_세계여, 이것은 당신을 위한 종말_이윤희, 손배영, 최은: 골목유랑기

  “모든 이들이 깊은 마음 속에선 세상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1Q84」 1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을 잡으며 물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그리고 과거에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결점들 그리고 오점들을, 인정하고 삼킬 것을 각오하고 선언했다. “내가 잘할게.” 당신의 오래고 먼 연락을 기다릴 수 있는 것, 이해할 수 없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