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한_그럼 저는 갓난아이인가요?

전대한(대중음악비평) 재미공작소에서 펴낸 책 『씬의 아이들』의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홍대-인디-씬’을 보고 꿈을 키웠고, ‘씬’ 안에서 성장했으며,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5명의 이야기를 에세이와 인터뷰로 엮은 책”이다. 나는 이러한 『씬의 아이들』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 음악가(몬구, 연진, 전자양)와의 인터뷰나 한 비평가(김윤하)와 한 기획자(하박국)의 에세이는 아마 누군가에게는 이미 »

Mark Fisher_뱀파이어 성에서 탈출하기

글: 마크 피셔(Mark Fisher) 번역: 이여로 올여름,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하나 진지하게 생각했다. 과로에서 오는 탈진으로 생산적 활동이 불가능했던 나는, 늘어나는 피로와 우울 속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표류하고 있었다. ‘좌익(Left-wing)’ 트위터는 종종 비참하고 낙심한 지역(zone)일 수 있다. 올해 초 트위터에서는 몇 가지 이슈가 큰 화제였는데, 좌파(left)로 인식되는 사람들 몇몇이 ‘호명’ »

박시내_광장에 대한 단상: 뒷면에 대해 이야기하기

글: 박시내     조슈아 웡은 홍콩의 민주화에 대한 한국인과 한국정부의 무관심과 무지에 호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따금 1980년의 광주와 1987년의 민주화 운동을 언급하곤 한다. (가끔 그 레파토리는 16년도 겨울의 촛불시위까지 나아간다) 더 구체적으로 그가 언급하는 것은 <1987>영화이다. 1987년의 6월 항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홍콩 사람들이 이번 시위를 준비하는 데 있어 큰 »

김동균_배너(banner), 복수의 화신

작가 이현호에 대한 비평과 그의 2019년 개인전에 부치는 글 B 글: 김동균(작가) 도로를 내달리는 자동차들, 그 옆을 일렬로 메운 가로수, 전봇대 따위에 버젓이 걸려 있는 현수막들이 보인다. 선착순 특별분양, 명품아파트, 350세대, 프리미엄을 누려라…같은 무미한 문구들. 불법이기 때문에 적발되거나 신고가 접수되는 대로 잘려 없어지는 출력물의 무기력한 말로는 어쩌면 우리의 삶과도 닮아있다. »

김동균_이지부스트(easy-boost)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화가

작가 이현호에 대한 비평과 그의 2019년 개인전에 부치는 글 글: 김동균(작가)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별명인 ‘yeezy’. 이 별칭에 예수를 뜻하는 ‘jesus’를 섞어 ‘yeezus’라는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던 칸예 웨스트(kanye west)는 전세계 문화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뮤지션이자 셀러브리티이다. 2009년, 그는 나이키(nike)와 협업해 만든 이지 에어(yeezy air)라는 스니커즈 시리즈를 출시한다. 이 이름 »

안준형_게임의 정치성을 생각하기: 미술 이야기도 함

글: 안준형 키워드: 게임, 재현, 가상,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 GTA, 콜 오브 듀티, 사이버펑크2077, 강정석, 김희천, 정여름, 블리자드 홍콩사태, 몰입, 능동성 게임 디자이너 ‘로버트 쿠르비츠’는 소설이 더이상 청년을 반항적이게 만들 힘이 없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청년을 반항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게임을 만든다고까지 주장한다.1) 그의 말처럼 요즘은 더이상 청년을 반항적이게 만들고, 독자의 의식을 »

권태현_양윤화 ‘두 개의 터널을 지나서 본 태양 그 옆에 쌍무지개’ 리뷰: 움직임의 영도

글: 권태현(미술비평) 양윤화가 이번에 엮어낸 작업들은 하나의 시도에서 출발한다. ‘엄마’라는 낱말의 뜻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읽어보는 것이다. 그는 ‘엄마’라는 글자를 내려놓고 “제로 직진 아니면 좌회전 가로로 긴 창문 세로로 긴 창문 다시 직진 아니면 우회전”이라고 읽는다. 아니, 본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나도 그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먼저 ‘엄마’라고 써놓고 »

강보원·이여로_긴 끈을 위한 주석

최대한 익명의 움직임에 의한 책 강보원 (문학평론가) 오규원은 『현대시작법』의 초반부에서 “시는 공적 언술이다”라고 쓴다. 그 책에는 시에 대해 또 다른 많은 말들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문장이 그 책을 요약하는 하나의 문장이며, 또 시의 조건과 한계와 가능성 전체를 요약하는 바로 그 문장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시가 공적 언술이라는 말 자체는 »

이종찬_ 바른쪽 가슴에 평화의 조각을: 신동엽 文人史 기획전 ‘때는 와요’

이종찬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목소리를 높인 신동엽이 있다.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그것은 바깥으로 향한 외향성의 목소리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다. 다른 한편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때는 와요”라며 목소리를 낮춘 또 하나의 신동엽이 있다. 유작 「좋은 언어」의 신동엽, 그것은 안으로 향한 내향성의 목소리였다. 우리에게는 낯선 »

이성민_양방향 길, 가지 않은 길

1.    「양방향」은 김유림의 첫 개인 시집 표제시다.1) 그것만 읽어도 좋고, 다른 것과 같이 읽어도 좋은. 실은 같이 읽으면 참 좋은 시가 마침 하나 있다. 그 다른 시는 곧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알다시피 이 유명한 시는 시의 화자가 먼 훗날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할 거라고 하는 곳에서 끝이 난다. 숲속에서 »

홍승택_베케트와 계단

베케트의 소설에는 약간의 산수가, 혹은 약간의 수학이 필요한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내가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부분은 단편 「추방자」에 나오는 계단 수 부분이다. “현관 앞 계단은 높지 않았다. 예전에 그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계단 수가 얼마나 되는지 수없이 세어보았는데도 지금은 그 계단이 총 몇 개였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인도를 »

정강산_사라지지 않는 지표로서의 생산양식: 동시대 예술의 작업 경향의 조건에 관하여 ③

정강산(독립연구자)   4. 세계가 되고자하는 재현/기계/객체: 한국 동시대 미술의 경향들  (1)  ‘납작함(flatness)’의 속도와 즉자적 디지타리아트(digitariat)54) 이런 조건이 가진 규정성의 자장 내에서 예술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혹은 어떤 제약 속에 놓이는가? 어떤 형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 이 질문들과 함께, 이하의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몇몇 한국 작가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우선 2010년대 중후반기에 지속적으로 »

홍태림_한 발씩 명료하게 나아가는 미술창작 대가 제도를 기대하며

홍태림(미술비평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 민간위원) “노순택 작가: 예술도 당대의 반영이자 표현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산이라는 측면에서 생산자의 노동 가치를 취미나 자발성, 선의 따위의 개인적 차원으로 묶어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미쳐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좋아서 하는 것만도 아니니까요. (…) 명색이 국공립미술관이란 곳마저 작가를 초대하면서 제작지원은 커녕 작가료(Artist fee) 한 푼 »

백두산_겨울, 다큐멘터리 극장

백두산(연극평론가) 겨울 속의 극장: 한국 다큐멘터리/극장과 겨울 DMZ다큐멘터리영화제의 부대행사로 기획된 <겨울에는 왕을 죽여야 한다>(DMZ Docs, 2019.9.21.-27)는 2010년대 한국사회의 모순을 다룬 다섯 편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분할, 재구성, 배치하고, 영상의 전후로 퍼포먼스를 병행하여, 오늘 다큐멘터리 극장의 정신과 존재양식을 묻는 도전적인 전시이다. ‘도전적이다’는 말은 대체로 외연이 넓은 것인데, 이 전시기획의 의도에 담겨 있는 »

정강산_사라지지 않는 지표로서의 생산양식: 동시대 예술의 작업 경향의 조건에 관하여 ②

정강산(독립연구자) 그러나 보편으로서의 생산양식이 특수로서의 부문적 현상들을 통해 개별로서 나타나는 위와 같은 사례들은 당연하게도 비단 예술의 범주에 국한된 진술이 아니라, 철학을 비롯한 제 분과 영역들에서까지 관측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18세기의 칸트에게 주체와 객체, 존재와 인식, 지성과 감성의 분리는 이미 하나의 대답으로서 제시되었는데, 여기서 각 영역은 마치 “순수 이성”과 “실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