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_수원시립미술관 설립 관련 문제에 부쳐

 2015.05.03 발행

시민 없는 시립미술관

행궁 앞에 칼바람이 불고 거대한 트리가 세워져 있던 어느 날, 난 문제의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과 조우했다. 2013년12월쯤인 걸로 기억한다. 수원시는 행궁 앞뜰 왼편에 터를 닦고 한창 기공식을 준비중에 있었다.

2012년 수원시와 현대산업개발이 미술관 설립과 관련하여 MOU를 체결했다. 수원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현대산업개발에서 미술관 건축물을 기부채납하기로 한 것이다. 행궁을 병풍삼아 자리하게 된 미술관 기공식에서 사용되었던 (가칭)수원아이파크미술관이라는 명칭이 꺼림칙하긴 했지만 기부에 대한 답례 혹은 지자체와 기업 간의 주고받는 의례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였다. 안일했던 나와는 달리 착공되어 공사부지에 현판이 내걸리면서 미술관 명칭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는 여론이 나타났다.

2014년7월 양훈도 한벗연구소 소장의 대안미디어 너머 기고문을 시작으로 이 문제는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부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행궁 앞에 현대적인 건물이 들어선다는 이유만으로 시민들의 반대가 꽤나 있었던 모양이다. 행궁 앞에 자리한 신풍초등학교(1896년 개교)를 문화유산복원의 이유로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수원시가 갑자기 현대적인 건물을 행궁 앞뜰에 들이기로 한 것은 시민들로 하여금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다.

어쨌든 착공된 건물은 거침없이 지어졌고 이후 미술관 명칭변경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시민들은 자체적으로 미술관 명칭에 관한 공모전도 열었으며, 관련 토론회를 진행하고 수원시장의 면담까지 제안하고 나섰다. 하지만 시민들은 시장의 일정관계상 면담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아야했고, 이후 어렵사리 성사된 면담에서 수원시장은 ‘현대산업개발과의 구두계약 또한 이행의 책임이 있어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 하였다.

이에 시민들은 (가칭)수원아이파크미술관과 관련하여 수원시에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이후 계속하여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졌지만 수원시는 더욱더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2015년3월16일에는 미술관 공사장의 현판을 ‘(가칭)수원아이파크미술관’에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으로 변경하였으며, 계속되는 반발에도 불구하고 2015년4월6일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관리 및 운영 조례안」의 입법을 예고했다.


기부 아니 거래

이 사안에 대한 대강의 팩트는 이렇다. 지금 수원시는 구두계약에 의한 이행의 책임을 앞세워 시립미술관의 설립과 관련한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 수원은 인구 118만의 대도시다. 또한 수원에는 정조시대 정약용이 설계하여 건설한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수원화성과 행궁이 자리하고 있다. 탄탄한 역사적 기반을 토대로 한 수원의 시립미술관 설립은 시민들과 지역 예술인들의 오랜 바람이기도 했다. 이런 수원시립미술관 건립에 있어서 수원시가 공공성을 훼손하고 나선 데에 필자는 수원시민의 한사람으로써 심히 유감스럽다.

현대산업개발은 기부채납을 빌미로 미술관 설립에 관한 협상 초창기, 기업 창업자 이름을 딴 수원포니정미술관을 제안했었다고 한다. 또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내부에는 포니정과 관련된 홍보전시실이 구성될 예정이다. 이것만 하더라도 현대산업개발의 건축물이 기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기부란 공공사업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는 것이다. 미술관이 기업의 기부로 건설되었다면 미술관 측은 기부처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경우 기업이 기부의 대가를 스스로 제안한 점과 수원시에서 내놓은 비전문적이고 공공성을 무시한 ‘대가성 처사’로 인하여 이 거래는 정당한 기부로 보기 힘들어졌다.

수원화성을 찾는 관광객들의 재방문 의사는 83.4%에 달한다.1 화성 행궁 앞 6,400㎡에 달하는 부지에 아이파크라는 브랜드 명칭을 단 공공의 건축물이 생긴다면 현대산업개발의 홍보효과는 막대할 것이다. 대가가 명확하니 이것은 기부라고 볼 수 없다. 기부가 아닌 부지와 건축물을 건 지자체와 기업 간의 ‘거래’이다. 정정당당한 기부라면 수원시는 어떤 이유에서 미술관 관련 정보공개에 적극적이지 못한 것인가. 현대산업개발은 수원에서 권선동 택지개발 등의 건설사업으로 큰 수익을 얻어왔다. 이런 사업들과 관련하여 시정과 기업의 긴밀한 관계가 유지 되어온 사실을 시민들은 알고 있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거하여 박물관과 미술관을 분리하여 가리키는데, 분명히 하자면 미술관은 전문박물관에 속한다. 박물관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비영리의 항구적인 기구이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첫머리에서 규정하고 있는 박물관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2

박물관과 미술관의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여 박물관과 미술관을 건전하게 육성함으로써 문화예술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공립박물관이 지녀야 할 공공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박물관의 소장품은 해당 소장품이 유래한 지역사회의 문화 및 자연유산을 반영하는 자산이다. 이는 일반적인 특성을 넘어서 국가·지역·지방·민족·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박물관은 지역사회를 존중하고 지역사회와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3 하지만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불투명한 설립과정으로 지역사회와 갈등을 겪고 있으며 그 명칭 또한 시민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설립과정을 두고 어떻게 유·무형의 유산을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향유할 것인지 또 어떻게 시민정신을 반영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박물관은 인류의 유산을 다루는 공적인 기관으로서 공인된 규범과 법령을 준수해야 한다. 또한 해당 직업의 품격과 명예를 유지해야 하고 불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업무행위로부터 일반대중을 보호해야 한다. 이러한 기구가 자본의 힘에 휘둘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미술인들은 왜?

원론적인 부분에서 벗어나 미술관은 전문박물관으로서의 특이점을 갖는다. 수원아이파크시립미술관 명칭을 찬성하는 이들이 타당성의 근거로 선경도서관이나 수원SK아트리움, 수원KT위즈파크 등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 음악이나 스포츠와는 달리 미술이라 명명되는 시각예술은 장르의 특성상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미술관이라는 기구는 작품을 허용하거나 박탈하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작가와 작품은 그런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허나 일부 수원지역의 미술가들이 자본의 횡포를 옹호하고 나섰다. 처음에는 수원지역의 문화예술 인프라 확대의 차원에서 찬성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시민들이 운영비를 문제시하자 운영비만 현대산업개발 측에서 후원해 준다면 문제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실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예술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두드리며 고루한 논쟁을 이어가야할 판이다. 빛 좋은 개살구는 예술로 인정받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개인의 철학과 사회적 역량은 예술가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이 공짜 건축물에 현혹되어 시정의 간섭과 자본을 내세운 기업의 횡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은 예술가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과 진배없다. 만약 옹호의 이유가 그간 받아온 수원시 문화예술 지원 사업의 수혜나 시장과의 밀접한 관계 때문이라면 어서 청산하고 예술가로서의 양심과 정신을 되찾기 바란다.

운영비 대책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비단 명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술관은 그 설립 초기 단계부터 설립목적을 기반으로 그 기구의 성격과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소장품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과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4 하지만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경우 소장품 구매비용과 관련되어 알려진 계획이 없으며 심지어는 운영예산에 관해서도 전혀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경인일보는 2015년4월22일자 기사에서 경기도미술관과 비교하여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운영예산의 규모를 가늠해 보여주었다.5 경기도미술관과 비교했을 때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부지는 그보다 작으나 지하 1층으로 확장 건설되어 연면적이 400평가량 더 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미술관은 작품 482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연평균 운영예산이 40억에 달한다. 반면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소장품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며, 2015년10월 개관 후 해당년도의 운영예산으로 9억5천만 원을 책정한 상태이다.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의 예산이 9억5천만 원으로 책정되었다면 이 미술관의 연간 운영예산은 30억 가량이 된다. 이것은 경기도미술관 개관 해 운영예산의 절반에 미치는 규모인데 현 수원시장은 모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2015년11월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유치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Museo Guggenheim Bilbao)과 파리의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의 방문 경험을 예로 들며 새로 짓는 미술관에 세계적이고 전문적인 위상을 갖추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예시이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경우 구겐하임 재단이 설립하였으며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경우는 기관의 명칭이 설립과정을 말해주고 있다. 이 두 기관은 공립미술관이 아닌 운영예산과 소장품에 관한 대책이 명확하게 계획되어 설립된 사립미술관이기 때문이다.

4호선 초지역에 위치한 경기도미술관에 비해 지리적 접근성이 용이하고 주변 문화예술 인프라가 풍부하며 400평가량의 더 넓은 공간을 보유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경기도미술관의 반쪽 예산을 가지고 어떻게 세계적인 전시를 유치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문화교육국에 전문가로 구성된 미술관운영추진단을 꾸려 운영에 관한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운영예산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미술관 설립을 추진하고, 심지어 개관을 염두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정부의 방침에 의해 문화예술 관련 예산이 삭감되고 있어 올해 초 경기문화재단에서는 산하 4개의 박물관 및 미술관을 통폐합하겠다는 설도 제기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헌데 운영예산 계획이 전무한 미술관 짓기라니. 심지어 행궁 앞에 말이다.

‘아이파크라는 이름을 달아줬으니 그들이 책임을 통감할 것이다.’ 아무래도 수원시는 이와 같은 가설을 세워두고 현대산업개발에 운영비 후원을 협상 중인 듯하다. 하지만 기업이 아무 소득이 없는 투자를 그것도 연간 수십억씩 하겠느냐는 말이다. 경인일보가 현대산업개발의 담당자와 통화해본 바로는 운영비에 관한 현대산업개발의 후원 계획은 일체 없다고 한다. 일부 미술인들이 현대산업개발 측에서 운영비를 후원하면 아무 문제없다 하였지만, 공립기구가 운영비의 큰 비중을 후원금으로 계획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공립미술관이 재정 자립에 관한 고민이나 예산 확충에 대한 대안 없이 운영예산의 거의 전체를 후원기업 쪽에 의지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닌가. 그럼 시립이라는 공립 배지는 왜 달아 두었는가?

앞으로의 미술관

미술관은 변화하고 있다. 오직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화이트큐브, 미디어아트의 강세에 등장한 블랙큐브, 자연과 어우러지는 오픈에어 등으로 형태가 다양해졌다. 일부 미술관들은 권위적이고 정형화된 형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안적인 공간은 부설로 개관하기도 하고,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미술이 전복의 역사를 거듭하며 철학의 시각화를 표방하여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의 진화를 거듭해 왔다면 미술관은 어떻게 변모하였을까. 시대별, 사조별로 상이한 미술 감상의 맥락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불러 일으켰다. 위대한 작품들은 미술관에서 가장 좋은 벽에 걸렸으며 사람들은 그 작품 앞에 몰려 그 위대함의 가치를 논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미술관은?

이전까지 미술관의 최대 관심사가 작품이었다면 이제는 관객이 그 대상이 되었다. 미술사가 피터 버고Peter Vergo는 그의 저서 《신박물관학The New Museology》에서 앞으로의 미술관은 숭배와 경외의 대상이 아닌 비평과 논쟁이 오가는 장소로 변해야 한다고 했다.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더 이상 미술을 감상의 대상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작품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메시지를 하나의 맥락으로 잡아 놓고 더 많은 이야기가 펼쳐지게 하는 공간이 되었다. 개별 작품에 대한 경외가 아닌 공간 자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경험적 의식(Ritual)이 중요해진 것이다. 이 경험적 의식은 마치 종교적 경험과 비슷한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듯하다. 장엄한 종교건축물에 발을 들였을 때 느끼게 되는, 형언할 수 없이 밀려드는 어떠한 숭고처럼 미술관 또한 강력한 의식의 전달의 역할이 대두된 것이다. 이런 정신적인 기관을 설립하는데 있어 그 어떠한 자본적, 물리적 간섭이 통용되어선 안 된다.

세계적으로 박물관들은 이제 ‘설립보다 경영이다’라는 사고의 전환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 이후 집계된 공립미술관 수 만 해도 300개를 육박하고 있다. 이 중 재정자립도와 관람객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기관이 몇 개나 될까. 수원시립미술관은 이런 공급 과잉의 시대에 시작을 알리고,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땅에 자리를 잡았으니 바람직하게 운영되어야 하지 않겠나. 지역 예술인들의 모태가 되고, 지역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증진에 이바지하며, 공공재로써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기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소중한 문화유산인 수원화성과 행궁에 티가 되면 안 될 일이 아닌가. 필자는 수원시립미술관이 반드시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개관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 수원시는 원점으로 돌아가 시민들의 목소리를 바로 듣고 잘못을 시정할 때이다.


수원문화재단이 리서치 전문 업체 파워리서치에 의뢰하여, 2013년 10월부터 약 한 달간 15세 이상 수원시민을 제외한 국내 관광객 520명을 대상으로 수원역 및 수원화성 일대에서 1:1 면접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표본오차95%, 신뢰수준±4.3%p)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1장 제1
3 최병식 《뉴 뮤지엄의 탄생》 동문선. 2010
4 최병식 《박물관 경영과 전략》 동문선. 2010
5 유은총 외1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무엇이 문제인가·3·막대한 운영비… 대책은?> 경인일보. 201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