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빈_슈즈트리, 못생긴 게 문제가 아니다

작년 11월 8일 교육문화체육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이하 예결소위)에서 28억 남짓한 작은 사업하나가 도마 위에 올랐다. 문화역 서울284의 미디어파사드, 썸머 파빌리온 사업안이었다. 사업의 배경은 ‘서울로 7017(이하 서울로)’의 개통이었다. 예결소위에 출석한 우상일 예술정책관은 “서울역 광장을 활성화 시켜서 서울로와의 시너지 효과를 낼 필요가 있다”고 해당 사업의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여야를 뛰어넘는 반대 분위기에 밀려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그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사업주체인 문화역 서울284의 졸속운영, 2) 공유지에 35억이라는 거액이 투입되면서 연구용역 등 아무런 사전 공론화 없이 사업추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3) 문화역 서울284, 썸머 파빌리온, 구 서울역사 미디어 파사드, 이 세 사업의 연계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 특히 이미 서울역 바로 맞은 편 대우빌딩에 대형 미디어 파사드가 설치되었고, 3개월만 설치 운영될 임시 시설물을 서울역사 건물을 가려가며 굳이 설치될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사업안 유지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이었다. 대표적인 옹호자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이종배 의원이었는데, 그는 사업 유지를 주장하면서 서울역 광장의 이미지를 쇄신할 필요도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종배 의원의 주장은 서울역 광장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음을 전제로 한다. 그가 서울역 광장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고 주장한 근거는 서울역 광장의 노숙인이었다. 노숙인들이 오고 광장이 지저분하게 관리되니 이런 사업을 통해 이미지 개선을 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종배 의원의 주장은 다소 노골적이지만, 이 기획을 입안하는 정부의 의도와도 일치한다. 문화역 서울284가 자리한 서울역 광장은 구 서울역이 역사의 기능을 잃어버리면서 유동인구가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바로 옆의 새 역사와 비교했을 때 옛 역사 앞 광장은 다소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격동의 시대에는 수많은 집회가 열렸던 장소였지만 이제 그 기능은 세종대로 선상에 함께 놓인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광장으로 옮겨갔다. 한국은 빈 공간을 참지 못한다. 항상 무엇인가로 채워야 하고, 때마침 서울역 고가가 산책로로 새 단장을 하니 고가에서 내려다보는 광장의 풍경이 보기 좋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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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링크

미디어 파사드와 썸머 파빌리온이 무산된 자리에 ‘신발폭포’1)가 들어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신발폭포’의 설치기간과 썸머 파빌리온의 설치기간은 거의 비슷하다. 만약 문화역 서울284의 썸머 파빌리온이 설치되었다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 신발폭포는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들어선 썸머 파빌리온이 신발폭포보다 나은 공공미술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공개되지 않고 사장된 계획이라 알 길이 없으니까. 국회에서조차, 여야가릴 것 없이 맹비난을 받고 사라진 사업이니,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인다.

신발폭포가 논란의 중심이 된 상황 속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구 서울역 광장을 꼭 무엇인가로 채울 필요가 있었냐는 점이다. 굳이 무엇인가로 채워야 한다면 왜 채우고 싶은지 그 의도를 짚어 봐야 하며,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은 무엇인지도 살펴야 했다. 어차피 광장은 늘어난 유동인구로 생기가 돌 것이다. 경관을 위한 선택이라고 하기엔 근현대의 기억을 간직한 옛 서울역사로도 충분했다.2) 굳이 광장을 채워야 한다면 그 광장은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으로도 채워나갈 수 있었다.

설치과정 전반에 깔려있는 행정기관의 ‘의도’는 신발폭포를 긍정적으로 볼 수 없게 만든다. 공사판이 열리고, 신발폭포가 광장을 점령하는 동안 자연스레 그 광장에서는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긴다. 광장에서 할 수 있는 수많은 활동을 떠올려 볼 때, 그 모든 활동을 덜어내고 신발폭포가 그 자리에 들어서야 할 이유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것은 공공미술의 탈을 쓴 토건일 뿐이다.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4대강 사업과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정크아트라고 이름 붙였지만, 신발폭포를 철거하면 수많은 신발들과 그것을 예술로 포장하기 위해 동원된 부자재들은 도로 쓰레기가 될 운명이다. 쓰레기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 쓰레기를 더하는 것을 생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공미술은 그것이 계획된 의도와 설치되기까지의 모든 과정, 그리고 완성된 이후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느냐를 놓고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그 모든 과정을 살펴볼 때, 신발폭포는 흉물스러운 외관만큼이나 흉물스러운 의미를 가지는 공공미술의 한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환경미화가 아니”라고 일갈한 진중권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신발폭포가 단순히 못생겨서 인기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나이브한 현실인식이다. ‘이뻐야만 예술이냐’고 항변하는 것은 신발폭포에도, 미술에도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논리는 미술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보다 미술을 성역으로 끌어올리고, 비판자들의 입을 닫게 만들 뿐이다.

 

본문과 엮인글

홍태림_서울로 7017에 등장한 흉물?


1)  서울시에서는 ‘슈즈트리’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크리스마스 트리가 떠오르는 조명 빼고는 어딜 보아서 트리인지 알 수 없다.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는 신발폭포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설치물이니, 이 글에서는 신발폭포라고 이름 붙이려고 한다.

2) 이는 더불어민주당의 손혜원 의원도 지적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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