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_M실업 무역3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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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O가 일했던 M실업은 국내 동종업계 1, 2순위를 다투는 의류수출 무역회사로 미국 본사의 OEM(주문자 상표부착 생산) 의뢰를 받아 견본을 만들고,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공장에 생산 하청을 맡기는 중견기업이었다. O의 업무는 무역3팀원의 잔업을 돕는 것으로, 티셔츠에 들어갈 디자인 파일을 페덱스에 가져가서 출력해오고, 옆 건물에 있는 캐드실이나 또 다른 건물에 있는 봉제부서에서 각각 패턴과 의상 샘플을 받아 무역3팀에 전달해주는 것 등이었다. 세탁기에 들어간 옷에 섬유유연제를 이만큼 넣었다가 저만큼 넣었다가 하는 테스트를 해본 뒤, 건조대에 돌리고 다림질을 한 다음, 이름을 알 수 없는 굉음의 기계를 작동해 실밥을 제거하는 것도 O의 역할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동남아로 오가는 패션산업처럼 부서와 건물 사이를 오르내리는 O였지만 M실업에 그가 앉을 자리는 없었다. 토막 같은 휴식시간이 오더라도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 회사 복도나 인근 거리를 배회할 따름이었다.
일 잘하면 하반기 공채 때 힘 써줄게.
공실인 바이어 접견실 앞에 간이 테이블을 놓고 샘플 옷의 실오라기를 정리하던 O는 좀 아까 부장이 들릴 듯 말 듯 하게 하고 지나간 말을 되새겼다. M실업에는 O외에도 인턴과 알바생이 많은데 임직원은 그들의 욕망과 공포의 빛깔을 모르지 않았다. 공채 때 권력을 발휘해줄 거란 부장의 장담도 그 증거였다. 힘이란 게 정확히 무엇인지, 인사팀도 아닌 무역팀이나 영업팀 직원이 채용에 어떻게 영향을 발휘하는지는 전대미문일진대, 구직자로서 쉽게 흘려보낼 사측의 말은 없을 것이었다.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이 사회의 정언명령이 매양 높은 데시벨로 그들을 흔들기 때문에.
O는 한 손으로 그의 하얀 셔츠 목깃을 매만지며 다른 손의 엄지와 중지로 파란 샘플 셔츠에 붙은 실밥을 가볍게 퉁 쳐 날렸다. 조금 전 부장이 자신 앞에서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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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의 단막극 같던 장맛비가 지나간 여름날의 아침, 경기도 일산의 한 버스정류장. 그곳에는 별다른 표지판은 없지만 두 종류로 구분해 줄을 선 사람들이 있다. 서울방면으로 앞쪽에 늘어진 줄은 버스 승차를 기다리는 여느 사람들로, 출근시간 붐비는 모습을 제외하면 특이할 사항이 없다. 그러나 그 뒤편에 뱀처럼 이어진 줄은 좀 이색적이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몇 해 전 이곳 지역구 의원 발의에 따라 생긴 출근형 좌석버스를 기다리는 샐러리맨의 줄로, 기점을 조정해 빈 좌석으로 온 버스가 이들 무리를 싣고 달리게 되어있다. 나는 이 버스를 타고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내린 다음, 일민미술관 방면으로 400미터쯤 걸어 SK서린빌딩 앞 정류장에서 파란버스로 환승해 이화동 방송통신대 뒤편에 있는 회사로 출근을 한다.
일련의 약속된 시간, 구획된 전용차로와 노선에 맞춰 움직이는 차량에 몸을 맡긴 이상, 나는 도심을 수놓은 화이트 컬러 노동자 무리의 일원이 되어 고향을 등지고 일터로 나아간다. 여기서 고향이란 거주하고 있는 일산 아파트촌이나 내가 태어난 강북의 주택가가 아니라 종로구 광화문 일대를 일컬음이다. 요즘에 내 고향은 광화문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아득한 기억의 골목길이나 잠만 자고 나올 뿐인 신도시보다는 광화문이 더 친근하다는 새삼스런 사색이 스쳐갔기 때문일 게다.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등하교나 출퇴근, 지인과의 만남이나 여가생활을 위한 대부분의 경로에 광화문이 있었다. 따라서 내 삶에 빈번한 이벤트가 생겨나는 장소성을 찾자면 광화문의 현재진행형 정취가 부상하는 것이다.
고향길의 보도블록 걸음걸음마다 심어진 플라타너스 나무는 기하학의 등껍질을 바닥에 떨구고 연한 청동빛 속살을 빌딩 틈으로 든 햇볕에 말리고 있다.

파란버스에서 내려 방통대 교정을 가로질러 저층빌라와 고택이 있는 골목 끝에 다다르면 진초록 유리 외관을 한 단층 빌딩이 보인다. 밝은 노랑 외벽과 H재단의 현판이 아니라면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건물인데, 그곳 내부에 내가 앉을 자리가 있다. 연회색 책상과 가림막, 검정색 씨디즈 의자가 놓인 이곳, H재단 직원인 나의 사무공간이자 미술을 하는 나의 작업공간이다. 나름 정원도 있다고 자부하는데 -제주 출장 갔다가 일탈하여 주워온- 이름 모를 조개껍데기와 -옥션에서 배송료 포함 이천구백 원에 구매한- 개운죽이 놓인 책꽂이 선반이 그것이다. 훗날 작업에 쓰려고 모아둔 레디메이드 용품을 담은 밀크 복사용지함의 다른 이름은 수장고가 될까.
공간에 대한 나의 궤변이 유효하다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예술인 실태조사 조사』의 질문에 답을 할 수도 있겠다.

Q. 예술활동을 위한 개인 창작공간을 보유하고 계십니까?
① 있음 집안(거주공간)에 별도 공간
② 있음 집 밖(거주공간과 분리된)에 별도공간 √
③ 없음

Q. 개인 창작공간의 소유 형태는 어떻게 됩니까?
① 자가
② 임대-전세
③ 임대-월세
④무상임대 √ *제공자 기관: H재단 (무허가)

정식 채용심사를 통해 H재단에 입사하기는 했지만, 사무공간을 작업실로 사용하기는 무단이다. 다행히 남의 일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현대인은 내가 SPACE_0스티커를 파티션과 비품에 붙이고 책상 밑에 빈 담뱃갑 같은 오브제를 한가득 모아놔도 깊은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창작의 용기를 북돋는 직장 내 무관심은 인터넷에서도 이어진다. H재단의 이야기를 블로그랑 웹진에 쓰고 있다니까 너 그러다 짤리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던 혹자들의 존재 무색하게 나의 글은 본체에서 떨어진 나무의 수피처럼 대중과 호사가의 시선을 피해 지면에 안착하듯 놓여왔다(조회수가 낮다는 말이다). 웹진에 글을 게시한 직후 해당 사이트가 랜섬웨어 공격을 당해 한동안 모든 콘텐츠를 잃고 접속불가의 상태가 된 것도 이에 일조했을 테고.
지난주 대학로에 폭우가 퍼붓던 날, 해커 공격으로부터 기사회생한 크리틱칼 운영자 T를 만나 정돈이라는 식당에서 돈까스를 먹었다. 나는 그가 누구에게든 진입장벽이 없는 오픈 웹진을 지향한다는 것을 재확인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공간의 특성이 자정작용처럼 드러날 거라는 믿음을 보았다. 그렇다면 <또 다른 잉여전을 마무리하며>를 시작으로 벌써 여섯 번째인 내 글은 크리틱칼에 오염물인가 청수인가.
실은 -웹진에 글을 게시한 초반 의도와 다르게- 언젠가부터는 공간에 침투하는 실험에 흥미가 생겼다. 크리틱의 이름을 갖고 미술계에 알려진 이 웹진에는 이브 알랭브아나 존 버거 같은 석학의 이름을 참조한 비평이라든가 정부부처나 문화기관의 정책을 문책하는 이슈를 전면화한 논평이 그럴싸하게 어울린다고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텍스트를 매체로 하되 형태로 치면 무정형의 창작물이 게시됨으로써 오는 교란과 그로 하여금 풍부해질 기호에 대한 탐색이 호기심 욕구를 발동시킨다. 빈 담뱃갑에 드로잉한 내 작업을 관람객이 즐비한 국립현대미술관이나 한가람미술관에 무단으로 놓아두고 상황을 관망했을 때처럼.
한편, 사진작가 D가 운영하는 VR기반의 웹 전시공간 아카이빙바벨은 텍스트에 기반한 크리틱칼과는 반대로 이미지 중심의 정보를 제공한다. 나는 지난 연말 D에게 아카이빙바벨에 장문의 텍스트가 삽입된 기록 작업물을 게시하고 싶다고 의뢰했다. 그는 다행히도 기존 진행되던 매체 특성을 벗어난 작업에 관심을 가져주었고, 경과된 프로젝트 과정을 정리한 텍스트가 가상의 전시장 벽면을 통해 현존하는 작업으로 발현될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D를 만나 동원집에서 감자국을 먹으며 그의 새 작업실이 있는 을지로의 애호를 들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을지로라는 할아버지 공간에 이런저런 필적으로 서간을 보내보는 젊은 작가의 진득한 행위를 엿보았달까. 마침내 그에게 을지로가 창작의 고향이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D와 헤어지고 나서 땅거미가 내린 철공소 골목과 세상 활기가 응집한 노가리 골목을 탐방하다가 광화문을 지나 집에 갔다.

20170713_1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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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장마가 예보된 여름날 아침, O는 버스 뒤 창가에 앉아 타이핑을 치고 있다. <M실업>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대량생산을 앞둔 샘플을 검수하며 앉을 자리도 없이 흘러갔던 옛 시공간과 그 안에서 소실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감각을 회상하는 사이, 광화문 사거리 신호에 걸린 버스가 멈춰섰다.
차창에 비친 O의 분절된 신체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전신에 겹쳐 보였다. 수피를 벗은 가로수는 말간 속살을 내보이며 저 안에 나이테를 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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