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내_조각이 자라나는 시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내가 현대 정치의 극단에 서 있는 도큐멘타에 심한 염증을 느끼고 들어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난 뮌스터는 카셀보다 좀 더 작고 친근한 도시였다. 뮌스터 프로젝트 개최의 목적부터가 뮌스터의 시민들에게 조각의 즐거움을 알려주겠다는 상냥한 이유였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서 진수 선배를 만났다. 뮌스터에 가게 되었고 선배가 그곳에서 공부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선배를 보고 싶었다. 모든 것이 명백하게 변해감을 몸소 증명해 보이는 도시에서 3년만에 만난 선배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내가 만난, 너무도 상냥했던 사람과 다르지 않아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사실 나는 아직 너무 빨리 변해버리는 것이 무섭다.

On Water AyşeErkmen
On Water Ayşe Erkmen
Cosmic GeneratorMika Rottenberg
Cosmic Generator Mika Rottenberg
Bye Bye Deutschland! EineLebensmelodie [Bye Bye Germany! A Life Melody]Wagner / De Burca
Bye Bye Deutschland! EineLebensmelodie [Bye Bye Germany! A Life Melody]Wagner / De Burca

올해의 유럽행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까마득하고 엄청난 상징처럼 느껴진다. 카셀 도큐멘타와 베니스 비엔날레, 아트 바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함께 열리는 그랜드 투어는 1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데, 그것은 10년의 주기를 두고 개최되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때문이다. 올해 총 5회째로 50년의 시간을 담아낸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조각의 역사를 설명하는 장이 되었고 10년의 가치를 역설하는 공간이 되었다.

10년이란 어떤 시간인가? 10년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글쎄, 10년 전의 나를 감히 인간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냥 아무 생각이나 하고 아무 말이나 하는 작은 고깃덩어리였을 것이다. 10년 후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 이 질문 앞에 서서 상상하는 것은 내게 너무도 두렵고 막막한 일이라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스스로 외면해버린다. 그 시간은 나에게 너무 가혹하다.

뮌스터는 이 묘한, 짧다면 순식간이고 길다면 무척 긴 시간 자체를 예술 주제로 데려온다. 뮌스터의 총감독 카스퍼 쾨니히는 조각 프로젝트에 있어서 10년이란 주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조각이 자라나는데 제일 적절한 시간이라고 했다.

After ALifeAheadPierreHuyghe
After ALife Ahead Pierre Huyghe
Laboratory Life AdreasBunte
Laboratory Life Adreas Bunte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일 년이 어제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10년이라는 호흡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뮌스터는 그 10년을 온전히 체화하면서 성장한다. 조각은 미니멀리즘과 제도비평을 통하여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되었고 장소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기존의 의미에서 벗어나, 조각 자체보다 그것이 어디에 언제 놓여 있느냐에 대한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러 가지 디지털 미디어가 등장하게 되면서 이제 예술작품의 현전성과 유일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가장 오래 온전히 예술 자체로 남을 수 있었던 조각이라는 장르에까지 미디어가 출현하고 퍼포먼스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더 이상 조각이 아닌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자체가 이미 모두 분열되며 존재를 의심받는 있는 현실에서 어째서 조각만 그렇지 않겠는가? 조각프로젝트는 이러한 숙명을 조각의 역사로 펼쳐 보이며 제시하는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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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의 조각들은 시간과 공간이 함께 맞물려 자라난다. 원래는 조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뮌스터의 일부가 된 토마스 슈테(Thomas Schütte)의 체리 기둥<Cherry Pillar>이 그렇다. 체리 기둥은 원래 주차장에 일시적으로 설치된 작업이었지만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뮌스터의 영구 소장품이 되었다. 그리고 주차장은 체리 기둥을 전시하기 위한 작은 공원으로 바뀌었다. 내가 그곳을 지날 때는 아이들이 그 기둥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조각은 몇 년에 걸쳐 도시를 천천히 변화시킨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그 시간을 먹고 뮌스터-고가 되었다. 지도, 자전거를 타면서 간단한 간식거리 그리고 핸드폰 보조배터리를 든 채로 우리는 조각을 찾기 위해 떠난다. 우리가 지도를 손에 쥐고 낯선 도시를 헤매는 이유는 웃기게도 사람들이 움직이는 포켓몬 이미지를 얻기 위해 온 도시를 정처 없이 걸어 다녔던 이유와 완벽히 같다.

사람들은 뮌스터 프로젝트의 앱을 깐다. 조각이 표시되어 있는 지도 그림이 등장하고 지도에 표시된 조각 아이콘을 누르면 작가와 작품 설명이 나온다. 그런데 그 어플은 조각의 위치를 계속해서 다르게 표시하고 페이지가 반복적으로 초기화되는 등 사소한 오류가 계속 발생한다. 결국 이 게임의 트레이너들은 버그에 항복하고 3유로짜리 종이 지도를 사고만다. 물론 이 커다란 지도 또한 뭔가 허술하고 크기가 크기 때문에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끊임없어 걸어 다니며 헤매야 하는 여정에서 우리는 결국 조각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어플과 지도를 계속 번갈아 가면서 조각이 있는 곳을 어림잡아 유추하여 유랑할 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자전거의 행렬 사이로 조각 프로젝트 맵을 가진 사람들에겐 무언가 비장함이 감돈다. 우리는 불명확한 정보만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가는 곳에 조각이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어플과 디지털카메라, 그리고 자전거와 종이지도, 이 엄청난 괴리의 여러 포맷들을 한꺼번에 만나며 뮌스터를 정신없이 헤매는 이 경험도 올해가 마지막일 것이다. 10년 뒤 전시 관람 방식은 바뀐다. 바뀔 수밖에 없다. 10년 전에는 아파트 벽에 그려진 큐알코드를 찍어 나오는 페이지 영상을 보며 뻘하게 서서 주민들과 어색하게 마주하는 그 순간이 작업이 될 줄은 정말 아무도 몰랐다. 세상에, 봉이 있는 오래된 나이트 클럽에서 한낮에 대중가요를 들으며 팝콘을 먹는 경험이 조각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다음 10년의 뮌스터 프로젝트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뮌스터에서 공부하고 있는 진수 선배는 조각 프로젝트 지킴이를 하고 있었다. 각 조각들마다 한 명이나 두 명이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아 있다가 비가 오면 비닐 따위를 가져다가 조각을 덮어두기도 하고 관람객이 질문하면 간단히 대답해주는 일이다.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뮌스터를 빙빙 돌면서 전체적으로 순찰?을 하기도 한다. 나와 점심을 먹던 날, 선배는 원래 뮌스터 공원에 있는 설치 작품 옆의 지킴이였는데, 전체 순찰 지킴이 친구가 몸이 아프다고 자신과 바꿔줄 수 있냐는 연락이 왔었다. 어플 몇 개로 그 모든 변동은 아주 빠르게 이루어졌고 선배는 바로 자전거를 가지고 나섰다. 10년은 정말 거의 모든 것이 변하는 시간이다. 불과 10년 전의 4회 조각 프로젝트에서는 모든 관계자들이 큰 카페에 모여서 구두로 일정을 확인하고 타임테이블을 손으로 직접 그려 스케줄을 짰다고 한다.

뮌스터의 10년이라는 시간을 가장 감성적으로 활용한 작품은 제레미 델러의 것이다.

사실 나는 자전거를 한강 공원에서만 탈 수 있는 사람이라 자전거 도시로 악명높은 뮌스터에서 감히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여기서 잘 못 탔다가는 9시 뉴스에 나올 것 같았다. 정말 사명감을 가지고 하루종일 쉬지 않고 걸었던 것 같다. 계속해서 작업의 위치가 바뀌는 망할 어플과 부실한 지도를 가지고 나는 어떠한 확신도 갖지 못하고 계속 걸으며 부지런히 주위를 돌았다. 같이 방을 썼던 핀란드의 친구가 너무 좋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것을 기억하며 그의 작업이 어떤 작업인지도 잘 모른 채, 나는 그저 지도가 여기쯤을 표시하는구나 싶은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순간 아기자기하게 여러 식물들을 가꾸어 놓은 녹색의 공간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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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델러(Jeremy Deller, b.1966)는 정원 가꾸기라는 지극히 유럽적인 취미를 미술로 가져온다. 본디 정부에서 퇴역군인이나 소외층을 위해 장려되었던 이 취미는 시간이 지나며 도시 발전 계획의 일부가 되었다. 제레미 델러는 이젠, 도시의 일부가 되어버린 미니 농장에서 그곳의 주인들과 함께 자신의 작업을 만들어 나간다.  <Speak to the Earth and It Will Tell You>, 대지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그들도 당신에게 이야기할 거에요. 제목부터 아주 근사하고 다정한 그 작업은 지구와 나와의 존재 그리고 우리가 함께 있는 그 시간을 온전히 관객에게 선사한다. 각각의 주인의 개성이 보이는 듯한 정원을 따뜻한 날씨와 함께 거닐다 보면, 관람객은 어느새 작은 오두막이 딸린 정원에 도착하게 된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 정원에는 정원의 주인과 조각 프로젝트 지킴이가 함께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 광경은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너무 평화로워서 극도로 초현실적이었다. 벽이 모두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는 오두막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두꺼운 책들이 잔뜩 꽂혀 있는 책꽂이를 마주하게 된다. 짙은 초록색의 두꺼운 책에는 이름들이 하나씩 써 있다. 제레미델러는 2007년부터 정원을 가꾸는 뮌스터의 주민들에게 그에 대한 일기를 매일 쓰게 했다.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고 정원을 만드는 작업은 하루 이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건 몇 년의 온전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 일기는 10년 동안 쌓여 옆면이 부풀어 오를 정도의 두꺼운 책이 되었다. 모두 독일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꼭꼭 눌러쓴 글씨와 온 가족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만으로 나는 그들을 읽을 수 있다. 거기에는 오늘 핀 꽃 얘기, 키운 채소로 해 먹은 요리 얘기, 그 요리를 먹은 사랑하는 가족 이야기까지 소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차있다. 그 사소한 모든 경험이 모여 예술이 되고 역사가 되며 세계가 된다. 책의 무게와 종이의 촉감으로 10년이라는 시간이 마침내 물성을 얻게 되었을 때, 코가 시큰해지고 눈물이 찔끔 났다.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내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며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한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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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를 종일  걸어 다니는 경험은 그곳에서의 모든 사소한 순간들을 온전히 그 자체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순간은 멈춰 있는 순간이 아니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역동적인 순간이다. 비록 우리가 인지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작업과 만나는 순간 자체를 고대하며 정신없이 모르는 도시를 쏘다니는 경험은 극적인 감정을 느끼는 데에 아주 안성맞춤이다. 거기서 나는 두렵지만 지난 10년이 어떠했으며 앞으로의 10년은 또 어떻게 변화할지 계속 상상한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계속 변할 테니까. 우리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은 고통스러운 인생을 바꾼 커다란 사건들이 아니다.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은 우리가 매 순간을 살아가면서 얻는 사소한 경험이다. 그리고 뮌스터는 그 사실을 아주 효과적으로 또 감상적으로 제시하는 아주 다정한 이야기였다. 내게 남은 건, 뮌스터에서 본 작업과 작가, 조각의 현전 이런 것들보다, 긴 치마를 힘겹게 말아쥐고 뮌스터의 강을 맨발로 횡단했던 경험, 올덴버그의 동그란 구조물 옆 잔디밭에 앉아 진수 선배를 기다리며 맞던 바람, 낯선 도시를 타박타박 걸어 다니며 느낀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순간들, 그리고 무심코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아 저게 작업이었구나 하고 웃음이 터지는 어이없는 즐거움에서 왔던 그런 순간들이다.

SPECIAL THANKS TO JI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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