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현_아트 바젤이 보여준 것

48년 전통의 세계 최대 규모 아트 페어. 라는 말로 시작하는 아트 바젤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다. 바젤이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 아트 바젤이 올해에도 얼마나 성대하게 치러졌는지를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기획 기사로, 블로그나 소셜미디어 포스팅으로 이미 널려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 여름이 다 가고 있다. 올여름, 미술과 관련된 국내의 거의 모든 매체에서 ‘그랜드 아트 투어’라는 말을 쏟아냈다. 어떤 잡지는 ‘그랜드 아트 투어’ 특집 기사 앞에 “이번 기회를 놓치시면 10년을 기다리셔야 합니다!”라며 열흘에 645만 원짜리 여행 상품을 광고하기도 했다.

타임 라인 가득한 유럽 미술제들의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을 (그리고 나를) 유럽으로 추동한 힘에 대해 먼저 생각했다. 한국의 문화가 세계 3대 아트 페어, 세계 3대 비엔날레. 이런 것들을 강박적으로 쫓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예전에 들었던 한 수업에서는 그것들을 외우게 하기도 했었다. 이런 한국의 조금은 특수한 문화 자본 형성 구조에서 ‘그랜드 아트 투어’라는 말에 힘이 생긴다. 부정하고 싶지만 나를 유럽으로 가도록 만든 힘의 밑바닥에도 그게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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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그리고 아트 바젤까지. 그렇게 ‘그랜드 아트 투어’를 떠나 여행자와 순례자의 중간 어디쯤의 모습으로 유럽을 돌아다녔다. 그중 여기에서 이야기할 아트 바젤은 나머지와 나란히 놓기에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 아테네로부터 배우자거나, 예술 만세를 외친다거나 하는 거창한 뜻을 품은 기획의 대규모 전시가 아니라 그곳은 ‘시장’이다. 물론 아트 바젤 정도 되면 국제 미술제와 아트 페어는 그 모습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해지지만, 그럼에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배울 점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시장은 전시보다 노골적으로 우리에게 뭔가 보여준다.

Chris Burden, Ode to Santos Dumont
Chris Burden, Ode to Santos Dumont

바젤에 도착하자마자 아트 바젤이 열리는 컴플렉스로 향했다. 가장 먼저 들어간 《Unlimited》 전시장은 들어서자마자 입이 벌어진다. 전시장 이름으로 붙은 그 ‘제한 없음’은 미적 경계의 제한 없음 같은 것보다는, 물리적 규모의 제한 없음으로 보인다. 입구에서부터 커다란 키네틱(Jenny Holder, Statement: Redacted)이 불빛을 뿜으며 위잉위잉 움직이고, 조금 더 안쪽엔 거대한 파란 말미잘 같은 것(Otto Piene, Blue Star Linz)이 보인다. 사람들이 모여 뭔가 구경하길래 봤더니, 크리스 버든의 비행선(Chris Burden, Ode to Santos Dumont)이 날아다닌다. 말 그대로 스펙터클이다. 전시는 비엔날레의 기획 전시장처럼 예술 감독도 있고,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업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이 전시는 어떤 기획적 의도의 시각화라기보다 대형 갤러리의 대표 선수들이 거대한 화신이 되어 제각각 분투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바닥에 넓게 깔린 칼 앙드레(Carl Andre)를 지나 그 바로 앞에 있는 블랙박스로 들어가면 뜬금없이 박찬경이 튀어나오는 식이다.

Song Dong, Through the Wall 부스 앞에 줄을 선 사람들
Song Dong, Through the Wall 부스 앞에 줄을 선 사람들

전시장에 곳곳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수보드 굽타가 냄비로 만든 공간에선 음식을 먹는 퍼포먼스(Subodh Gupta, Cooking the World)가 계속되었고, 관객들은 긴 줄을 서서라도 그 안에 들어가 보고 싶어 했다. 중국 작가 송동의 거울방, (Song Dong, Through the Wall) 도나 후안카의 퍼포먼스, (Donna Huanca, Bliss: Reality Check) 그리고 존 발데사리가 내보인 살아있는 여성과 강아지가 있는 조각 (John Baldessari, Ear Sofa: Nose Sconces with Flowers)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런 전시장의 분위기는 미술 전문 매체가 재빠르게 옮겨 적는다. Artsy나 Artnet, Artforum 등의 매체들은 전형적인 소셜 미디어 저널리즘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와 ‘The 10 Best Artworks at Art Basel 2017’ 같은 기사를 계속해서 내보낸다. 나아가 거기에 적혀있는 천문학적 숫자의 작품 가격들은 현장에서 다시 대중들의 관심으로 이어져, 아트 페어를 통해 문화 자본이 형성되는 작은 순환이 만들어진다.

John Baldessari, Ear Sofa: Nose Sconces with Flowers
John Baldessari, Ear Sofa: Nose Sconces with Flowers

건너편 홀에는 35개국 291개 갤러리들이 부스를 차려놓은 본격적인 페어의 현장이 펼쳐진다. 300개에 가까운 갤러리들이 자리를 펼치고 있으니 모든 부스를 다 찾아보기는 힘들다. 미술계와 주변부의 순례자들은 손에 지도를 쥐고, 유명 갤러리들을 표시해가며 찾아다닌다. 하지만 세계적인 탑 갤러리의 이름을 잘 모르는 관광객들에게도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부스마다 달린 간판에 단서가 있다. 거기에 적혀있는 도시의 개수가 글로벌한 미술 시장에서 그 갤러리가 가지는 영향력의 간단한 척도가 된다. 뉴욕의 대형 갤러리 가고시안(Gagosian)은 간판에 무려 9개의 도시 이름을 적어 놓았다.

가고시안 갤러리 부스의 간판
가고시안(Gagosian) 갤러리 부스의 간판

구체적인 작업들을 들여다보면, 방금 이야기한 가고시안 부스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 우르스 피셔(Urs Fischer)부터 눈에 들어온다. 그는 〈Bruno & Yoyo〉라는 작업으로 미국 전후 미술을 유럽으로 유입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스위스인 딜러 브루노와 그의 부인을 알록달록한 색의 실물 크기 왁스 조각으로 만들었다. 녹아버리는 재료이지만, 페어가 시작하자마자 2개의 에디션이 팔려나갔다. 런던의 사디 콜스 HQ (Sadie Coles HQ) 갤러리에서는 피셔가 만든 일종의 참여적 조각을 한 부스 통째로 전시했다. 로댕(Auguste Rodin)의 〈The Kiss〉를 하얀 점토로 다시 만들어, 그것을 만질 수 있음은 물론 점토를 뜯어내 관객들 마음대로 다른 곳에 붙일 수도 있는 작업이었다. 문화 산업으로서의 아트 페어에서 ‘참여’는 이런 식으로 전유 되어 버린다. 최근 시장의 가장 큰 이슈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에 쏠리는 관심도 당연했다. 지난 5월 미국 미술 역대 최고가를 갱신한 바스키아는 세계 미술 시장 전반에 큰 활력으로 작동했다. 아트 바젤의 부스 곳곳에서 소더비에서 팔린 것과 같은 바스키아의 1982년 작들이 보였다. 볼프강 틸먼스(Wolfgang Tillmans)도 아트 바젤 기간에 바이엘러 파운데이션 미술관(Fondation Beyeler)에서 진행 중인 대형 개인전의 영향인지 선전하는 모습이었다. 세계 최대 갤러리 데이비드 즈비르너(David Zwirner)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다.

Urs Fischer, The Kiss
Urs Fischer, The Kiss

동아시아에서 어떤 작품을 걸었는지도 흥미로운 포인트이다. 한국의 갤러리들1)은 역시나 단색화 중심이긴 했으나, 약간의 변주가 눈에 들어온다. 국제에서는 박찬경을 《Unlimited》 전시장에 내보냈고, 갤러리 부스에서도 김환기, 이우환 그리고 대표적인 단색화 작가들과 더불어 김용익을 내세웠다. PKM도 물론 윤형근을 중심으로 하는 단색화가 강하지만, 계속해서 내보이던 코디 최를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의 영향인지 더 전면에 걸었다. 다만, 아트 바젤이 열리고 있던 때에 서울 국제 갤러리에서 신생 공간을 주류 갤러리로 옮겨 놓은 《A Snowflake》 전이 한창이었던 것과 겹쳐 보여서인지, 국제 미술시장에서 의미를 가지는 한국 작가들의 나이가 너무 많아 보인다는 인상이 남기도 했다.2) 일본의 경우, 무라카미 다카시를 대표로 하는 도쿄 팝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서양의 갤러리에서 취급하는 일본 미술은 오히려 구타이(具体)가 인기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세계 미술계의 페미니즘 담론 재부상에 대한 미술 시장의 화답도 주목할 만하다. 캐롤리 슈니먼(Carolee Schneemann)의 베네치아 황금사자상 수상의 영향으로 그녀의 컬렉션을 여러 곳의 갤러리에서 선보였다. 그런 과거의 역사화 된 페미니즘 미술뿐 아니라, 동시대의 페미니스트 작가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도 한 부스를 거의 통째로 점령했고, 《Unlimited》 전시장에는 안드레아 바워스(Andrea Bowers)의 〈A Call to Arms: Building a Fem Army〉라는 제목부터 급진적인 대작 그림이 걸렸다. 3명의 과거 여성 혁명 전사들을 거대한 평면에 소환해내는 이 그림은 70-80년대 선동 포스터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다. 존 발데사리가 살아있는 여성을 전시한 작업 앞에서 언론과 관객들이 모터쇼의 여성 모델을 촬영하듯 연신 셔터를 눌러대던 모습을 지나 이 그림을 만나니 더 통쾌하게 느껴졌다.

Andrea Bowers, A Call to Arms: Building a Fem Army
Andrea Bowers, A Call to Arms: Building a Fem Army

아트 바젤의 운영은 철저히 미술품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프레스 오프닝보다 훨씬 전에 세계 미술계 큰손들이 먼저 전시장과 부스를 돌며 손에 넣을 작품들을 고른다. 바젤 시내 곳곳에서는 갤러리스트들과 작가, 컬렉터들이 파티를 연다. 그리고 미술계 언저리의 대중들은 그것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관음한다. 관련된 소식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VIP 오프닝 때 어떤 작업들이 팔렸는지도 알 수 있다. 작품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이미 팔렸다는 작업에 더 큰 관심을 준다. 흥미롭게도 그런 대중의 관심은 미술품의 가치를, 나아가 미술품을 사는 행위로부터 오는 부가 가치, 즉 문화 자본을 풍성하게 만든다. 아트 바젤과 같은 글로벌 페어는 그러한 구조를 축소판으로 보여준다.

아트 바젤이 보여준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사실 그곳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이미지는 그 어떤 예술 작업도 아닌, 아트 바젤의 스폰서인 스위스 기반 글로벌 금융 자본 UBS의 상징물들이다. 한국 돈 10만 원에 육박하는 아트 바젤의 도록은 앞에 몇 장을 넘겨도 UBS의 광고가 계속 이어져 돈 주고 산 것이 맞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미술 시장은 금융 자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금융 자본이 미술을 지원함으로 좋은 이미지를 얻는 것은 물론, 미술 시장을 둘러싼 제도들은 미술품 자체를 금융 자산으로 만들고 있기도 하다. 미술 투자 펀드가 만들어지고, 은행들은 미술 투자 상담 서비스를 한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미술품을 문화 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사기도 하지만, 경제적 자본을 불릴 투자 목적으로 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특히, 아트 페어는 그 역사가 60년대부터 시작하지만, 90년대 중반을 넘어서야 비로소 본격화되는데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팽창, 그리고 금융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와 맞물려있다.

Google Ngram Viewer에 'Art Basel'을 검색한 결과
Google Ngram Viewer에 ‘Art Basel’을 검색한 결과

미술 시장은 미술계라는 구조에서 하나의 ‘장치’로 작동한다. 그 장치에는 작가들과 갤러리들 그리고 미술품을 구입하는 콜렉터들 말고도, 페어를 구경하는 관객들이나 미술 시장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모두가 개입되어 있다. 심지어 미술 학계도 마찬가지이다. 아직까지도 한국 미술 시장을 대표하는 ‘단색화’ 열풍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미술사학자 조앤 기(Joan Kee)의 2008년 박사 논문3)과 후속 연구들을 바탕으로 한다. 학문적 논의가 먼저 존재하였지만, 그것에 실체를 부여하고 작동시킨 것은 국제 갤러리를 필두로 하는 미술 시장이었다. 나아가 위에서 보았듯 미술 시장은 혁명적 담론,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같은 것들까지 포섭해버린다. 이러한 장치적 속성이 아트 페어를, 미술 시장을 더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이다.

미술 시장의 최전선, 아트 바젤은 세계화된 미술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그곳에는 문화 산업 이벤트로서의 현대 미술과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가의 미술품을 살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명확한 분화로 미술 시장을 통해 문화 자본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가시화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트 바젤 같은 글로벌 아트 페어는 스펙터클에 너무 취해버리지만 않는다면 미술 시장의 민낯을 볼 기회가 된다. 어찌 보면 도큐멘타나 비엔날레보다 아트 바젤은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1)  한국의 갤러리는 국제/티나 킴 갤러리와 PKM 갤러리 2곳뿐이다. 다른 국내의 대형 갤러리들은 옥션하우스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어 아트 바젤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한다.

2) 물론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트 바젤에서 청년 작가들의 모습은 전반적으로 소수였고, 아트 바젤 기간에 맞추어 신진 갤러리와 작가들의 페어인 ‘LISTE’가 따로 열린다.

3)  Joan Kee, Points, Lines, Encounters, Worlds: Tansaekhwa and the Formation of Contemporary Korean Art, Institute of Fine Arts, New York University, Ph.D. Dissertation, September 2008. (Advisor: Jonathan H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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