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_흑표범 개인전 ‘선영, 미영, 미영’ 비평┃괴물들, 물어 뜯지 않는

installation view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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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닮은 얼굴을 한 이들이 그림 앞을 서성인다. 그러나 닮은 것은 얼굴뿐이다. 그림 속 존재들의 목 아래로는 털 달린 네 발 짐승의 몸이, 혹은 비늘이나 깃털이 돋은 몸이 이어져 있다. 짐승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므로, 때로는 여러 개의 머리와 여러 개의 꼬리를 갖고 있으므로, ‘괴물’이라 불리는 존재들이다. 언젠가 어디에선가는 신으로 모셔졌을 존재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신화 속 싸움에서 패배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존재들이다.

저들 중에 있을 것이다. 선영과 미영과 미영이. 흔한 이름들이다. 너무 흔해서 잊어버린, 그러나 너무 흔해서 곧 다시 마주치고 마는 이름들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름이 있고 자신만의 삶이 있다지만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출석을 부르면 종종 두 명이 함께 대답하게 되는 이름, 누구에게나 두세 명쯤 같은 이름의 친구가 있는 이름, 그런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어쩌면 언제나 타인과 연결된 삶을 산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들을 기억했다. 동년배들이 모이면 언제나 있었던 그런 이름을 가진 이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삶을 엿보고 꿈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태어났다, 이 괴물들은 말이다. 맥없이 살았던 이들에게 주어진 괴물의 몸, 지워진 괴물에게 주어진 사람의 얼굴, 서로에게 그것은 자그마한 선물이었을 것이다. 괴물들의 초상이, 여성들의 초상이 모인 이곳에서 두 존재는 서로를 만나 새로운 존재를 얻는다.

성주, 정화, 지영, 문화, 은혜, 은정, 수연, 지현, 민선 한지에 혼합재료, 400x260cm, 2017
흑표범, <성주, 정화, 지영, 문화, 은혜, 은정, 수연, 지현, 민선>, 한지에 혼합재료, 400x260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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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해 전, 그러니까 2013년에 작가는 낡은 시계들에 얼굴을 그려 넣고 있었다. 80년 5월 광주에서 총칼에 맞아 뭉개진 얼굴들, 더 이상 알아볼 수 없게 된 얼굴들의 상처를 물감이며 보석이며로 채워 넣었다. 그는 그리웠다고 했다. 면식이 없었으므로 원래의 모습을 알 수조차 없었던 얼굴들, 그 얼굴의 주인들이 그리웠다고 했다.

바로 전작인 ‘타인의 세계’ 연작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같은 화풍을 가진, 마찬가지로 여성들을 그린 이 작업들을 두고 여러 해 전의, 그것도 광주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말이다. 그때부터이지 않았을까, 하고 느낀다. 작가가 사람들에게 얼굴을 선물하고자 했던 것이, 자신의 붓을 통해 그들의 잃어버린 삶을 되찾아 주고자 했던 것이 그때부터이지 않았을까, 하고 느낀다.

5월 광주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렸던 ‘Who All Are Coming’부터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을 만났던 ― 그리고 그 기록을 자신 또한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보았던 ― ‘Vega’를 거쳐, 주변의 여성들에게 잘 맞는 옷을, 아니면 아예 괴물의 몸을 선물한 ‘타인의 세계’와 ‘선영, 미영, 미영’까지, 조금씩 다른 길을 거치며 작가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것이 좋은 선물일까? 세이렌도, 히드라도, 심지어는 구미호나 케르베로스마저도, 이미 힘을 잃은 괴물들이 아닌가. 이 오래된, 낡은 괴물-이미지들을 지금 되살리는 것에 어떤 힘이 있을까. 이미 죽은 괴물들의 몸을 입는 것이, 선영과 미영과 미영에게 어떤 힘을 줄 수 있을까. 가부장 사회의 영웅들이 이미 물리친 이 괴물들이 지금 살아 돌아온들, 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이 이미지들이 직접 대답할 수는 없는 문제일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아마도 그림 밖에, 전시장 밖에, 선영과 미영과 미영의 삶에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인간들의 ― 정확히는 남자들의 땅이 되어 버린 이 세계에서 다시 괴물이, 다시 여신이 되어 시계를 되돌리고 새 세계를 열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남긴다는 점에서 이 이미지들은 어쩌면 관객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선영과 미영과 미영을 위한, 그리고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작가 자신을 위한, 선물들이다.

수연 은정 선영 민선 은경 - 한지에혼합재료 280x210cm 2017
흑표범, <수연, 은정, 선영, 민선, 은경>, 한지에 혼합재료, 280x210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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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얼굴에 짐승의 몸을 한 이 이미지들은 그러니까, 어떤 암호 같은 것이다. 작가와 선영과 미영과 미영이 어디선가 마주했다는, 털 속, 비늘 속, 제 속을 내어 보이고 친구가 되기로 했다는, 그리하여 괴물 같은 제 몸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기로 했다는 ― 죽어도 죽지 않은, 죽여도 죽지 않는 존재가 되기로 했다는 약속을 몰래 알려주는 그런 암호 말이다.

이 비밀스런 약속에 관객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작은 통로가 있다.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 사이로 난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금색 술이 둘러진 방, 이 방에서는 작가와 선영과 미영과 미영이 만나 나눈 꿈 이야기들이 나직이 울려 퍼진다. 괴물 이미지들에 직접적으로 영감을 준 듯한 괴물이 나온 꿈 이야기에서부터 조금은 더 일상적인 이야기까지, 선영과 미영과 미영이 어떤 꿈들로 어떤 삶을 소화하며 꾸려가는지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수영, 수연, 선영 한지에 혼합재료 147x103cm 2017
흑표범, <수영, 수연, 선영>, 한지에 혼합재료, 147x103cm, 2017
선영, 미영, 미영 한지에 혼합재료 131x103cm 2017
흑표범, <선영, 미영, 미영>, 한지에 혼합재료, 131x103cm, 2017

이십 분쯤 앉아 영상을 다 보고 나오면, 그제야 보이는 어떤 것들이 있다. 암호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북실한 털, 단단한 비늘, 변함 없는 짐승의 몸들 위로 이제야 달리 보이는 것은 얼굴들의 표정이다. 뒤늦게 깨닫는다. 그들은 괴물의 표정을 하고 있지 않음을, 무언가를 집어삼키려는, 물어뜯으려는, 하다못해 불이라도 뿜어 보려는 표정을 하고 있지 않음을 말이다.

배 한 척을 금방이라도 침몰시킬 듯 둘러싸고서도 그들은 악에 받친 표정을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어딘가를 바라보거나, 숫제 씩 웃고 있을 뿐이다. 기껏 선물 받은 괴물의 몸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들은 온화하다. 칼에는 칼로, 불에는 불로 맞서리라는 투지가 담긴 표정이 아니다. 이것이 두 번째 암호쯤 될 것이다. 그들의 방식으로 맞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방식으로 살아가리라는, 그럼으로써 이겨내리라는 약속을 담은 두 번째 암호 말이다.

은경 한지에 혼합재료 75x144cm 2017
흑표범, <은경>, 한지에 혼합재료, 75x144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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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얼굴들을 닮지 않은, 내가 전시장을 서성거린다. 그림 속에 있는 것은 강해 보이는, 그러나 나를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괴물들이다. 아니, 내게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이는 괴물들이다. 그런 괴물들이 모인 이 전시장에서 나는 무엇일까? 관객? 내게 자신을 보아달라고 말하지 않는 저 괴물들 앞에서, 내가 관객일 수 있을까? 오히려 쓸모없는 불청객이지는 않은가.

내 곁을 지나며 서성이고 있을 선영과 미영과 미영, 그들일 것이다. 그림 속 괴물들이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그림 속 괴물들이 마주 보고자 하는 이들은, 그리고 그림 속 괴물들을 마주 보고자 하는 이들은, 바로 그들일 것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그들이야말로 이 전시의 적절한 관객일지도 모른다. 전시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자신을 그린 이미지들을 모두 보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인터넷을 통해 이 이미지들을 선영, 미영, 미영과 먼저 공유했다.)

물어 뜯지 않는 괴물들, 집어삼키지 않는 괴물들, 그러나 고대의 전설로부터 살아 돌아와 색색의 비늘과 털로 자신의 존재를 뽐내는 괴물들을 생각한다. 오직 선영과 미영과 미영에게 주어진 선물들을 생각한다. 당신의 이름에도 이들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면,당신의 삶에, 당신의 꿈에 이들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면, 어쩌면 당신도 기쁘게 받아 안을 수 있을까, 이 선물들을. 이 괴물들을.

“글쓴이 안팎은 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하고 있다. 연구자, 혹은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 예술 혹은 정치에 관한 글들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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