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크리틱-칼에 대한 기록

크리틱-칼1)에 대한 기록

홍태림(미술비평, 크리틱-칼 발행인)

크리틱-칼(http://www.critic-al.org)은 2013년 2월에 문을 연 이후로 지금까지 다섯 개의 인터뷰에 참여했다. 첫 번째 인터뷰는 2015년 3월에 미술생산자모임2)이 교역소3)에서 열었던 두 번째 공개토론회에서 미술소비자모임4)이 발표한 <시각예술 관련 신생 독립플랫폼 인터뷰>에 실렸다. 이어서 두 번째 인터뷰는 2015년 12월 2일에 문혜진이 「동시대 한국미술에서 비평은 왜 부재할 수밖에 없는가」5) 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진행되었다. 이후 3~5번째 인터뷰는 월간 『미술세계』 12월호6)와 웹진 <미술과 담론> 42호7), <문화뉴스>8)에 실렸다. 그동안의 인터뷰들은 크리틱-칼에 대한 개괄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으며 서로 중복되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크리틱-칼이 앞으로 이전과 큰 차이가 없는 성격의 인터뷰에 또 참여한다면 인터뷰어, 인터뷰이 모두 소모적인 결과에 빠져버릴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제 크리틱-칼은 개괄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객관적인 분석과 비판이 필요한 시점에 다가서고 있다. 물론, 인터넷의 변방을 항해하는 웹진에 분석과 비판의 틀을 들이대는 것은 과도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누군가는 크리틱-칼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위해 팔을 걷어붙일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이러한 가능성이 0%가 아니라면 이 글은 후에 크리틱-칼을 더듬게 될 누군가를 위해서 도움이 될 정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담아야 할 것이다.

크리틱-칼-직사각로고(배경날림)
크리틱-칼 로고는 2013년에 김이박 작가가 디자인 했다.

1. 크리틱-칼의 시작점

크리틱-칼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크리틱-칼을 만들고 운영해온 홍태림을 출발점 삼아 이야기를 풀어낼 수밖에 없다. 홍태림이 크리틱-칼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그가 다양한 이들과 삶과 예술, 사회와 예술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장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갈망은 웹진을 만드는 일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홍태림은 여러 현실적인 문제9)를 고려하여 웹진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바람에 다가가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크리틱-칼이 구상되기 시작한 2012년 말은 홍태림이 아트 스페이스 풀(이하 풀)을 퇴사하고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재학 중이던 때다. 홍태림에게 풀은 삶과 예술, 사회와 예술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구체화할 수 있는 생생한 배움의 장이었다. 그런 탓에 그는 풀에서 퇴사한 이후에 미술대학이 대학 밖의 현실과 동떨어진 채로 등록금 착취와 권위주의만이 팽배한 곳이라는 사실을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교육이 붕괴한 대학 안에서 무기력하게 졸업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홍태림은 자신의 갈망을 해소해 나갈 방법을 여러모로 고민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자연스레 웹진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까지 가닿게 되었다.

이처럼 크리틱-칼은 홍태림의 개인적인 갈망에서부터 시작된 곳이다. 그러나 그러한 갈망이 삶과 예술, 사회와 예술의 관계에 대한 문제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크리틱-칼을 구상하는 과정에는 공공성에 대한 고민이 어렴풋하게나마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크리틱-칼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공공의 범위를 제한한 적이 없다. 이러한 포괄성은 크리틱-칼이 글의 주제와 필자의 투고 자격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방침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포괄성은 크리틱-칼이 가닿을 수 있는 공공의 범위를 최대한 크게 보았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웹진 운영자인 홍태림의 활동 분야나 초창기에 섭외된 필자들의 경향을 고려하면 크리틱-칼은 태생적으로 문화예술을 중심축으로 삼는 곳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화예술 영역 중에서도 시각예술이 크리틱-칼 안에서 많을 비중을 차지한다. 후에 더 이야기하겠지만, 이런 경향이 계속 강화된 것은 그동안 크리틱-칼에 시각예술 분야와 관련하여 논쟁적인 글이 자주 게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크리틱-칼의 공공성은 주로 시각예술 분야와 관련하여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라는 측면으로부터 발현된다.

2. 크리틱-칼의 구조

크리틱-칼을 구상하던 단계에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은 사례는 흩어지는 전술 홈페이지와(이하 흩어지는 전술) 제너럴 매거진(General Magazine)이다. 흩어지는 전술은 박재용과 장혜진이 기획한 프로젝트의 이름이자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가 담긴 홈페이지의 이름이다. 흩어지는 전술의 동인10)들은 개인 혹은 팀 단위의 작업을 서울 시내 곳곳에서 전개했는데, 이에 대한 정보가 흩어지는 전술에 과정, 사진, 영상, 소리 같은 항목을 통해서 매개되거나 기록되었다. 그래서 크리틱-칼은 웹진에 어떤 항목들이 존재할 수 있으며 각 항목 안의 정보들이 어떻게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에 유통되는가를 흩어지는 전술을 통해서 참고할 수 있었다. 또한 흩어지는 전술 메인 페이지 한편에 서울문화재단과 개인 후원자 쿠키 몬스터의 로고가 위치한 것을 보면서 웹진에 개인후원자 혹은 공공기금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전술 홈피
흩어지는 전술 홈페이지 메인화면

현재 흩어지는 전술에는 서울문화재단 기금을 받은 해로 추정되는 2011년 활동에 대한 내용이 전부이지만, 여전히 당시 활동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반면 2012년 7월에 공개된 제너럴 매거진은 같은 해 9월에 갑자기 증발했다. 제너럴 매거진은 반년도 되지 않아 갑자기 사라져 버린 탓에 풀이나 포럼a11)에 관련된 미술인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젊은 미술인이 함께 글을 썼던 웹진이라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를 떠올리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나 최근 「동시대 한국미술에서 비평은 왜 부재할 수밖에 없는가」12)가 발표된 덕분에 제너럴 매거진을 잘 모르던 이들은 부족했던 정보를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었다. 문혜진의 글을 살펴보면 제너럴 매거진은 고료 없는 자발적 미술비평 웹진을 지향했으며 발기인은 박찬경, 황세준이고 실무 운영자는 김영글, 이지원이었다. 더불어 제너럴 매거진에서 활동했던 필진들이 주로 포럼a와 관련된 장년 및 소장파와 한예종 출신의 젊은 작가들이었음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13) 제너럴 매거진은 흩어지는 전술과 달리 명확하게 미술비평 웹진을 지향한 곳이기에 크리틱-칼을 기획할 때 구조면에서 참고할 점이 더 많았다. 가령 한 달에 한 번 필자 중에 한 명이 주제를 던지면 그 주제를 가지고 나머지 필자들이 글을 쓰는 방식이나 SNS를 통해서 글이 전파되는 구조, 고료 없는 자발적인 미술비평 웹진이라는 지향점, 100일도 채우지 못하고 폐간을 맞이한 상황 같은 것들이 모두 크리틱-칼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참고할 점이었다. 특히 제너럴 매거진이 3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폐간된 상황은 크리틱-칼이 가장 주의 깊게 살펴봐야할 점이었다. 만약 크리틱-칼이 제너럴 매거진처럼 갑자기 사라진다면 그것은 매체의 공공성과 맞물린 필자, 독자, 후원자의 관계를 무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크리틱-칼을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웹진의 허무한 증발을 방지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탓에 홍태림은 장기적으로 웹진의 안정성을 저해한다고 판단되는 공공기금과 많은 노동과 예산이 필요한 출판을 가장 먼저 크리틱-칼 밖으로 덜어낼 수밖에 없었다. 홍태림은 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공기금에 대한 의존이 장기적으로 크리틱-칼의 독립성과 자생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홍태림이 속해 있었던 2011년 풀 기획사무국은 공공기금에 맞춰진 일정에 쫓겨서 전시의 전후를 차분히 정리하며 담론을 축적할 시간이 없는 상황과 공공기금이 기관의 생존과 직결되는 상황에 대해서 일면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후자와 관련하여 풀은 건전 우파세력 육성이나 좌파 문화예술인 척결을 추구하는 반헌법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오를만한 관계자가 더러 있기 때문에 정당한 이유 없이 공공기금이 크게 삭감될 여지가 많은 곳이다. 예를 들어 풀은 2015년에 갑자기 50%나 삭감되었던 문예위 기금을 재벌,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연이어 터지고 나서야 회복할 수 있었다.14) 그래서 홍태림은 풀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양날의 검인 공공기금보다는 어렵더라도 독자의 자발적인 후원을 통해서 웹진이 운영되는 것이 크리틱-칼의 독립성과 자생력을 기르기에 더 좋다고 보았다. 그러나 공공기금에 대한 가능성을 접고 후원계좌를 열었다고 해서 당장 크리틱-칼에 후원금이 들어올 리 없었다. 그래서 크리틱-칼은 2013년에 운영비 마련을 위해서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소액닷컴과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에 지원해보기도 했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업에 연이어 선정되지 못한 덕에 공공기금에 대한 기대를 접고 독자의 자발적인 후원으로만 웹진을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확실히 굳힐 수 있었다. 실제로 크리틱-칼은 2014년에 공장미술제 논쟁15)을 촉발시킨 것을 기점으로 독자, 후원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국면에 접어들게 되어 후원금만으로 웹진을 운영하는 방침을 실현해 나갈 수 있었다.16)

한 달에 한 번씩 하나의 주제로 필자들이 글을 쓰는 제너럴 매거진의 운영방식도 크리틱-칼이 주목했던 부분이다. 크리틱-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너럴 매거진처럼 미술만을 다루는 곳도 아닐뿐더러 특정 주제를 몇 주간 끌고 나갈 만큼 통일성 있는 필자층도 형성되어있지 않다. 그럼에도 제너럴 매거진의 정기적인 구조는 초창기 크리틱-칼의 구조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2013년 즈음에 크리틱-칼은 제너럴 매거진과 유사하게 정기적인 구조를 작동시켜본 적이 있다. 구 크리틱-칼17)에 있는 짧은 글 항목과 긴 글18) 항목이 바로 그것이다. 짧은 글 항목은 3명의 필자로 묶인 세 조가 각각 20일 간격으로 호흡이 짧은 글을 올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조 단위로 필자를 묶었다고 해서 하나의 조가 매번 특정한 주제를 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 개의 조로 묶인 필자들은 조 단위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원하는 주제의 글을 20일이라는 정해진 기간 안에 투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글 항목과 비슷하게 긴 글 항목은 한 필자가 일 년에 한 번 정해진 달에 원하는 주제로 호흡이 긴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긴 글 항목에는 1년에 12개의 글이 올라올 수 있었다. 이처럼 초창기 크리틱-칼이 나름대로 정기적인 구조를 만들어 본 이유는 어느 정도 일정한 간격으로 게시물이 올라와야 웹진의 운영에 안정감이 조금씩 붙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전후로는 자발적으로 크리틱-칼에 투고를 원하는 필자의 규모가 늘어나서 정기적인 구조가 없더라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충분한 고료를 확보할 수 없는 웹진이 필자에게 강제성이 있는 구조를 계속 요구하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크리틱-칼은 운영에 안정감이 조금 생긴 2015년 이후로 정기적인 구조를 폐기하고 필자들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주제로 기고하는 구조로 전환되었다.

흩어지는 전술과 제너럴 매거진의 SNS 활용도 크리틱-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문혜진의 말대로 SNS는 좋아요 버튼이나 리트윗, 댓글 등을 통해서 즉각적으로 독자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19) 또한 SNS는 점진적으로 독자, 필자, 후원자와의 접촉면적을 넓혀가기에도 용이하다. 만약 SNS가 없었다면 크리틱-칼의 독자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하나의 글을 크리틱-칼 안에만 둔다면 한 달이 지나도 100명도 읽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글의 링크가 SNS를 통해서 확산될 경우에는 적어도 몇 백에서 많게는 만 명 이상의 독자가 글을 읽을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현재 크리틱-칼 페이스북 페이지20)의 독자는 4,400여명이고 크리틱-칼 트위터 계정21)을 구독하는 독자는 1,370여명이다. SNS를 통한 크리틱-칼 구독자의 규모는 대중적인 매체들에 비하면 매우 적지만 글의 주제나 시의성에 따라서 몇 천에서 만 명이 넘는 조회수를 만드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도 SNS를 통해서 크리틱-칼에 접근하는 구독자의 규모는 천천히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크리틱-칼은 대중적인 게시물보다는 시각예술에 관련된 글이 주를 이루는 곳이기 때문에 SNS를 통해서 크리틱-칼에 접근하는 독자의 규모는 어느 국면에 이르면 정체기를 맞이할 것이다.

3. 논쟁

크리틱-칼은 시각예술과 관련한 논쟁적인 글이 유독 도드라지는 곳이다. 물론, 논쟁의 강도는 사안에 따라서 다 다르다. 예를 들어 4회 공장미술제, 예술노동, 《열사에서 친구로》(2014), 《뉴스킨》(2015)의 경우처럼 크리틱-칼의 내외에서 논쟁이 몇 차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시각예술 표준계약서 및 아티스트 피, 청년관, 신생공간, 《굿-즈》(2015), 강남역 살인사건, 임근준의 좀비-모던 및 전업 작가 2000점 생산라인, 이광석의『뉴아트 행동주의』, 소녀상, 미술품 유통법 및 미술품 양도소득세, 서울로 <슈즈트리>, 경기창작센터 졸속운영, 촛불집회 등을 다룬 글들의 경우처럼 논쟁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논쟁의 연속성 문제를 떠나서 논쟁적인 글은 기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글보다 독자의 주목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가령 2017년 10월 기준으로 정강산의 ‘페미니즘의 반(反) 페미니즘-강남역 살인사건을 둘러싼 논쟁에 부쳐’22) 는 조회수가 1만 6천 회를 넘겼고 차지량의 ‘벌레 같은 마음의 한계’23)는 시각예술 분야에 대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조회수가 1만 회를 넘겼다.  크리틱-칼에 올라오는 논쟁적인 글에 대한 독자의 주목도가 특히 높은 것은 그러한 글들이 공공성과 맞물리는 면적이 더 넓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탓에 논쟁적인 글들은 크리틱-칼의 독자, 필자, 후원자가 조금씩 늘어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25)

논쟁적인 글의 조회수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도 살펴볼 점이 있다. 왜냐하면 조회수의 범위에 따라서 논쟁의 범위가 시각예술 분야에 국한되는지 혹은 시각예술 분야 내외를 모두 포괄하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1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벌레 같은 마음의 한계’는 예외지만, 보통 시각예술 분야에 관련된 논쟁적인 글의 조회수는 대략 천 단위 내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반(反) 페미니즘-강남역 살인사건을 둘러싼 논쟁에 부쳐’나 약 1만 8천의 조회수를 기록한 이정민26)의 ‘어떤 폭로’ 27)같은 글은 시의성이나 주제의 포괄성이 다른 논쟁적인 글보다 컸기 때문에 1만 단위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크리틱-칼에서 시각예술에 관련된 논쟁적인 글은 아직까지 ‘벌레 같은 마음의 한계’를 제외하고 1만 단위를 넘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1만 단위를 넘는 조회수는 크리틱-칼의 SNS 독자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글은 크리틱-칼의 SNS 계정에 올라온 게시물 링크가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로 퍼져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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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시각예술 독립 웹진들

우리는 시각예술계 안에서 크리틱-칼 외에도 다양한 시각예술 독립 웹진(이하 독립 웹진)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90년대생 시각예술 작가들을 소개하는 90APT(2017.4~)28), 김뺘뺘, 루크, 총총 3인이 시각예술에 대한 글을 올리는 Yellow Pen Club(2016.9~)29), 누구나 간단한 전시 감상문을 올릴 수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 미주알 고주알 (2017.5)30), 다수의 인원을 포괄하는 동인 체제로 출발했으나 근래에는 주로 신생공간에 관련된 1980-90년대생 작가들에 대한 글이 올라오는 집단오찬(2014.8~)32), 11명의 동인이 동시대 미술에 대한 글을 쓰는 WOWSAN TYPING CLUB(2017.10~)33) 등이 근래에 시각예술계 안에서 살펴볼 수 있는 독립 웹진들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앞서 열거된 독립 웹진들 간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가령 SNS를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각 독립 웹진들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다. 미주알 고주알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글이 게시되는 거점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나머지 독립 웹진들은 별도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올라간 글의 링크를 SNS에 게시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크리틱-칼의 경우는 원하는 구조를 구현하기에 용이하다는 점과 SNS보다 가독성 좋다는 점 때문에 따로 홈페이지를 제작한 경우다. 사실 SNS를 거점으로 삼지 않는 이유는 구조의 자유도와 가독성 외에 딱히 더 나올 것이 없다. 그래서 미주알 고주알을 제외한 다른 독립 웹진들이 별도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거점으로 삼는 이유는 크리틱-칼의 경우와 아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SNS뿐 아니라 필자와 각 독립 웹진이 연결되는 방식이 개방형인지 혹은 폐쇄형인지에 따라서도 상이한 점을 찾을 수 있다. 각 독립 웹진들은 크리틱-칼처럼 투고 자격을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방형, 폐쇄형이라는 기준으로 분류되기에 모호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웹진에서 활동하는 필자층을 헤아려보면 어떤 곳이 개방형에 가깝고 어떤 곳이 폐쇄형에 가까운지 대략 가늠해 볼 수 있다. 투고 자격을 제한하지 않는 크리틱-칼과 누구든 전시 후기를 게시할 수 있는 미주알 고주알은 개방형 웹진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반면 김뺘뺘, 루크, 총총의 글만이 게시되는 Yellow Pen Club과 운영자의 원고청탁이 있을 때만 투고가 가능한 두쪽은 폐쇄형 웹진에 가깝다. 집단오찬은 2015년 중반부터 운영자인 권시우의 글이 8할 이상을 차지했던 곳이다. 그러나 권시우가 2017년 7월 이후로 새로운 필자의 참여를 모색하고 있어서 집단오찬이 특정인의 페이지로 굳어지던 경향은 제동이 걸리고 있다. 하지만 집단오찬은 여전히 크리틱-칼이나 미주알 고주알처럼 투고 자격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명시하지 않기 때문에 폐쇄형 웹진에 가깝다. 90APT는 지금까지 1990년대생 시각예술 작가들의 인터뷰만이 올라왔기 때문에 폐쇄형, 개방형이라는 기준을 들이대기에 난처한 점이 있다. 또한 2017년 10월 27일에 공개된 WOWSAN TYPING CLUB은 Yellow Pen Club과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게시된 글이 2018년 1월 기준으로 19개34)뿐이기 때문에 아직 폐쇄형 웹진인지 개방형 웹진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WOWSAN TYPING CLUB은 시작부터 11명의 동인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차후에 Yellow Pen Club보다 개방형 웹진이 될 여지가 더 많다. 이처럼 우리는 폐쇄형, 개방형이라는 기준에 따라서도 각 독립 웹진의 성격을 비교해볼 볼 수 있다. 그러나 웹진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투고 방침이 바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앞선 구분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한편 크리틱-칼이 다른 독립 웹진들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양분해서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이렇게 양분했을 경우에는 총 4가지의 차이점을 열거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웹진 안에서 논쟁적인 글이 다뤄지는 빈도다. 크리틱-칼을 포함한 여러 웹진은 각자의 방향성에 입각한 글들이 기록되고 소통되는 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공통점은 Yellow Pen Club의 소개문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확신하는 것은 이제는 뭉게뭉게 떠도는 생각의 덩어리들을 글로 지어낼 때라는 점입니다. 그로써 작은 영역에서만 소통 가능하였던 생각이 더 많은 곳에서 소통되고, 더 많은 이들의 의견을 만나게 되고, 더 새로운 생각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이 글들이 많은 생각들과 소통하기를 바라고 기대합니다.”35)

앞서 열거한 독립 웹진들은 모두 기록과 소통의 장을 추구하지만 크리틱-칼의 경우처럼 기록과 소통을 넘어선 논쟁이 드러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물론, 현재 운영중단 상태인 두쪽처럼 몇 가지 논쟁적인 글들이 드러났던 곳도 있다. 그러나 두쪽을 제외하면 나머지 독립 웹진에서는 논쟁적인 글이 올라오는 경우가 없다고 봐야 한다.

두 번째는 각 독립 웹진에서 활동하는 필자들의 연령과 시각예술에 대한 주제의 편중성이다. 앞서 열거한 웹진에서 활동하는 필자들은 대부분 1980~90년대생이다. 그렇다보니 각 독립 웹진에 올라오는 글의 주제는 1980~90년대생 작가의 전시 및 프로젝트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90apt가 주최 및 주관한 《Hovering》36)의 부속 행사 ‘신생공간 이후 플랫폼을 가설하기 위해선 무엇을/어떻게 해야 될까?’에 집단오찬, 와우산 타이핑 클럽, 옐로우 펜클럽이 참여하여 전선을 펼친 것을 통해서도 근래의 독립웹진들이 1980~90년대생 시각예술에 지대한 관심이 있음을 잘 드러낸다. 사실 크리틱-칼도 초창기에는 다른 독립 웹진과 마찬가지로 필자층과 글들의 주제가 매우 세대 특정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세대 특정성은 여전히 크리틱-칼 안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크리틱-칼 페이스북 페이지의 통계항목을 통해서 연령 분포도를 살펴보면 1980~90년대생 독자가 전체 독자 중 절반을 차지한다. 문혜진은 크리틱-칼의 세대 특정적 리뷰 편중에 대해 언급하며 공적기금 없이 후원금만으로는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30대 중반 이상의 필자를 수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37) 사실 문혜진의 지적은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연령의 필자와 모든 독립 웹진에 해당되는 문제다. 크리틱-칼은 공공기금을 사용하지 않으며 후원금의 규모도 여전히 많이 증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크리틱-칼의 필자들은 평소에 운영자인 홍태림과 충분히 소통했던 분이거나 혹은 평소에 SNS를 통해서 크리틱-칼을 꾸준히 지켜봤다가 먼저 투고를 문의한 분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기업보고서: 대우》에 대한 성상민의 리뷰38)나 최범의 ‘소녀상과 미술 담론-‘소녀상의 예술학’ 토론회를 통해 본 한국 진보 미술계의 의식’39)의 경우처럼 특정 주제를 위해서 필자를 섭외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측면이 많다. 그렇지만 크리틱-칼은 초창기부터 필자의 연령대를 넓히는 것을 계속 추구해왔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필자의 연령대도 소폭 늘어났다.40) 덕분에 시각예술에 대한 주제의 편중성도 필자의 연령대가 소폭 늘어나는 것과 발을 맞춰서 완화되고 있다.

세 번째로 필자와 주제에 대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미술에 관련된 이야기 외의 주제를 다룰 여지가 많은 것도 크리틱-칼이 다른 독립 웹진과 다른 점이다. 예를 들어 크리틱-칼에는 ‘조국 교수의 혁신안은 새정치민주연합을 살릴 최후의 처방전’41), ‘일베를 보며 노무현을 생각하다’42), 최순실 게이트 시국을 다룬 ‘사실, 진실-이데올로기, 진리: 진리의 텅 빈 공백을 진실로 메운다는 것’43)처럼 시각예술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글도 올라올 수 있다. 이처럼 크리틱-칼이 주제를 열어놓는 것은 사회 속에서 스스로 자립할 능력도 없는 시각예술이 무한경쟁과 인정투쟁에만 매몰되어 스스로 고립의 길로 빠지며 사회의 기생수가 되어가는 상황에 대한 경계심을 서투르게나마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녀상 현상에 대한 글과 베니스 비엔날레, 더불어민주당의 혁신안, 현대예술의 숭고함, 각 대선 후보 캠프의 문화예술 정책, 독일 미술대학에 대한 글 등이 크리틱-칼 안에서 나란히 있는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상이한 점은 자발적인 후원금의 유무다. 현재 크리틱-칼은 후원금을 도메인, 호스팅 요금과 필진에게 1년에 한 번 4만원 내외로 원하는 책을 선물44)로 보내드리는 일에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독립 웹진들은 크리틱-칼처럼 후원금을 통한 독자, 필자, 후원자 간의 순환관계가 없다. 이러한 순환 관계가 발현될 수 있었던 것은 크리틱-칼에서 활동하는 필자들의 글들이 모종의 공공성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논쟁적인 글들은 크리틱-칼의 공공성을 구체화하는 과정에 많은 역할을 했다. 물론, 논쟁의 사례가 없는 독립 웹진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고유한 공공성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협소한 시각예술계 안에서 각 독립 웹진이 고유한 공공성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후원을 통한 독자, 필자, 후원자 간의 순환 관계로 이어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혹여 순환 관계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 규모는 매우 작을 수밖에 없다. 크리틱-칼도 몇 년의 시간을 거쳐서 약 270여 개의 게시물이 게시되며 나름의 공공성을 조금씩 형성해 왔지만, 후원금의 규모는 1년에 50~100만 원이다.

5. 전망과 대안

크리틱-칼은 투고 자격과 주제의 제한이 없는 독립 웹진이라는 방향성을 갖고 운영되어온 곳이지만, 다양한 필자의 글들이 누적되는 과정에서 사실상 시각예술 비평 웹진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크리틱-칼은 여전히 시각예술 외의 주제를 다루는 글이 종종 올라오는 곳이기 때문에 시각예술 비평 웹진으로만 한정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고 더 많은 글이 크리틱-칼에 누적된다면 시각예술 비평 웹진이라는 성격은 지금보다 더 도드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크리틱-칼은 투고 자격이나 주제를 제한하지 않는 곳으로 계속 남을 것이다.

2017년 9월 기준으로 크리틱-칼을 거쳤거나 여전히 활동 중인 필자를 합하면 60명이 넘고 누적된 글은 270개가 넘는다. 하지만 필자의 규모와 글의 개수는 무한정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크리틱-칼은 독자의 후원금 총액이 몇 개월간 0원이 되는 시점이 오면 운영을 종료하고45) 그동안 게시된 글들을 열람만 할 수 있는 곳으로 전환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노동과 상징적인 고료인 책 선물만으로 작동하는 웹진의 후원금이 고갈된다는 것은 독자와 후원자가 더 이상 크리틱-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46) 독자, 후원자, 필자간의 순환 관계가 끊어진 상황에서 억지로 웹진을 더 운영해 나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사실 후원금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크리틱-칼의 데이터를 어떻게 계속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가이다. 최근 크리틱-칼은 데이터 보안 문제로 큰 홍역을 치른 바 있다. 2017년 6월 10일에 크리틱-칼의 호스팅 업체인 인터넷 나야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커의 랜섬웨어(Ransomware) 공격을 받아 웹 서버 및 백업 서버 150여대를 봉쇄당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구 크리틱-칼47)과 신 크리틱-칼48)은 2017년 6월 10일부터 2017년 7월 1일까지 접속불가 상태에 빠졌다. 결국 인터넷 나야나가 해커에게 380비트코인(한화 12억 7천만 원)을 지급하여 구, 신 크리틱-칼의 데이터가 무사히 복구될 수 있었다. 평소 홍태림은 크리틱-칼의 데이터를 조금씩 백업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모든 데이터를 백업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만약 인터넷 나야나의 협상과 협상체결 후 서버 복구 과정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구, 신 크리틱-칼의 일부 데이터는 영원히 증발할 수도 있었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사고가 또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따라서 크리틱-칼은 인터넷 나야나의 데이터 백업 외에도 다른 방안을 통해 데이터 백업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가장 좋은 대처방안은 출판이겠지만, 출판은 많은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다. 또한, 출판은 출판 이후로 크리틱-칼에 게시될 글들에 대한 대응력도 전혀 없다. 그래서 출판은 후에 크리틱-칼의 후원금이 0원이 되어 아카이브 사이트로 전환되는 시기에 예산과 인력이 밑바탕 된다는 전제아래에서만 고려될 수 있다. 출판을 제외한 새로운 백업 방법을 고민하다가 궁여지책으로 도출한 방안은 크리틱-칼 미러 블로그49)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 미러 블로그는 크리틱-칼의 모든 글을 그대로 옮겨 온 곳이다. 따라서 인터넷 나야나가 또다시 해커에게 공격을 당하여 회생불가능한 상태가 되더라도 크리틱-칼은 미러 블로그를 통해서 대처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50)

안개가 자욱한 인터넷의 변방을 떠도는 유령선 같은 크리틱-칼은 언젠가 운영을 종료하고 아카이브 사이트나 종이에 기록되는 방식을 통해서 유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유물이 되기 전후에 크리틱-칼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 수 있을까. 예들 들어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필자51)들의 생각이 소리가 되어 퍼져나갈 수 있는 곳으로써 역할을 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양헌은 크리틱-칼이 몇 년간 운영되는 동안 글을 쓰는 청년층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고 말한 바 있다.52) 분명 크리틱-칼은 투고의 자격과 주제의 제한이 없다는 점에서 특히 시각예술 분야에 관련된 청년층 필자들에게 미약하게나마53)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크리틱-칼 같은 웹진을 통해서 새로운 비평가가 등장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활동을 이어나갈 미술시장, 미술교육, 미술정책, 미술언론 같은 터전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다면 결국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나 새로운 비평가가 발굴되고 그들이 함께 성장하는 과정에서 최소한 이러한 문제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논의하고 반성할 여지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54) 이처럼 크리틱-칼은 당장 거창하게 내놓을 구체적인 전망이 없다. 그럼에도 크리틱-칼은 왜 ‘2017 SeMA-하나 평론상 집담회: 대안 비평 공간들을 위한 대화’에 호출된 것일까. 단지 고전적인 비평 매체인 미술잡지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대안이라는 글자가 크리틱-칼에 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안은 현실에 대한 체념을 넘어선 변화를 위한 주장과 운동이 결합하는 지난한 과정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크리틱-칼에 대안이라는 글자가 붙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냈던 필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현실에 대한 체념을 넘어선 변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크리틱-칼에서 활동했던 필자들이 그러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크리틱-칼에는 대안이라는 글자를 굳이 붙여야 하는가에 대한 고려는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가능하다.

*이 글은 2017 SeMA-하나평론상과 관련하여 진행된 <2017 한국 현대미술 비평 집담회: 대안 ‘비평’ 공간들을 위한 대화>와 관련하여 쓴 글입니다.


1) 비평가, 치명적, 칼이라는 의미가 중첩된 이름이다.

2) 미술생산자모임은 2012년 5.1 총파업 퍼레이드에 미술가-디자이너 그룹으로 참여했던 것을 계기로 결성되었다. 미술을 하면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문제, 미술제도 내의 불합리한 구조에 부딪히는 문제, 국가예술정책의 비정상성 등을 함께 얘기하고 활동하면서 미술환경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했다. http://artworkersgathering.wix.com/arts#!about/c240r

3) 김영수, 정시우, 황아람이 2014년 10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서울시 중랑구 상봉동 지역에서 운영한 곳이다. 릴레이 퍼포먼스, 스크리닝 이벤트 등을 열었다.

4) 미술소비자모임의 동인은 권기예, 조혜진, 박지혜, 이세준이다. 미술소비자모임은 미술 소비자가 생산자고 생산자가 곧 소비자인 미술계의 상황에 주목하며 2014년에 결성되었다. 미술소비자모임은 동세대 미술을 소개하고 미술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 및 제안하는 일들이 미술 생태계의 저변을 넓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이 2015년 미술생산자모임 2차 공개 토론회를 통해서 「시각예술 관련 신생독립플랫폼 인터뷰」를 발표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그러나 이들은 미술생산자모임 2차 공개 토론회 후에 활동이 없는 상황이다.

5) 이 글은 2015 SeMa-하나 평론상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자료집에 실렸다.

6) 편집부, 「interview 신생공간에 묻다」, 『미술세계』, 2016.12, p.86

7) 이주희, 그 사람에게 미술 플랫폼을 묻다: 홍태림(크리틱-칼 디렉터)’ 2016.12.30, http://blog.naver.com/artndiscourse/220898471609

8)  김민경, ‘[문화 人] 홍태림, 웹진 ‘크리틱-칼’…모든 생각을 환영한다.①’, <문화뉴스>, 2017.8.11, http://www.munh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1543

김민경, ‘[문화 人] 홍태림, “문재인 정부, 시각예술표준계약서·작가보수제도 공약”②’, <문화뉴스>, 2017.8.11, http://www.munh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1554

9) 현실적인 문제는 부족한 예산과 홍태림의 내성적인 성격과 관련 있다.

10)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김영글, 박길종, 박다함, 박보나, 박재용, 신동혁, 아담 톰슨, 임민욱, 장혜진, 정윤석, 플라잉 프린트

11) 아트 스페이스 풀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포럼a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작가, 이론가/평론가, 큐레이터들이 편집진으로 활동하며 예술작품과 예술실천에 대한 일상적인 비평, 토론, 발언과 미술제도에 대한 대담하고 적절한 비판과 대안제시를 위해 만들어졌던 대안미술저널이었다고 소개되어있다. http://www.altpool.org/_v3/board/view.asp?pageNo=1&b_type=11&board_id=84&time_type=&year=

12) 문혜진, 「동시대 한국미술에서 비평은 왜 부재할 수밖에 없는가」, 『2015 SeMa-하나 평론상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서울시립미술관, 2015, pp.198-213

13) 앞의 책, pp. 211-212 참고

14) 김정아, 「대안공간 디렉터로 살아보니: 이성희 아트 스페이스 풀 디렉터」,『미술세계』, 2017.4, p.78

15) 홍태림, ‘제4회 공장미술제의 심각한 문제점에 대하여’, <크리틱-칼>, 2014.1.14, http://mylab.nayana.kr/s1/mainissue/4063

16) 2014년 4월부터 1년에 1번 3만 원 내외로 필자가 원하는 책을 선물로 보낼 수 있는 상황을 겨우 만들 수 있었다. 2016년부터는 후원금의 규모가 소폭 늘어나서 책 선물 금액이 4만 원 내외로 늘었으며 기고를 자주하는 필자에게는 추가로 책 선물을 보내고 있다.

17) 구 크리틱-칼의 주소는 2016년 9월에 다음과 같이 변경되었다. http://mylab.nayana.kr/s1/

18) 짧은 글 항목은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를 기고하는 곳이며 긴 글 항목은 200자 원고지 40매 내외를 기고하는 곳임을 의미했다.

19) 문혜진, 「동시대 한국미술에서 비평은 왜 부재할 수밖에 없는가」, 『2015 SeMa-하나 평론상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서울시립미술관, 2015, p. 208 참고.

20) 크리틱-칼 페이스북 페이지 주소: https://www.facebook.com/Critic-al-551284311579052/

21) 크리틱-칼 트위터 주소: https://twitter.com/Critic__Al

22) 정강산, ‘페미니즘의 반(反) 페미니즘- 강남역 살인사건을 둘러싼 논쟁에 부쳐’, <크리틱-칼>, 2016.5.21. http://mylab.nayana.kr/s1/mainissue/13617

23) 차지량, ‘벌레 같은 마음의 한계’, <크리틱-칼>, 2016.5.14, http://mylab.nayana.kr/s1/mainissue/13426s1/mainissue/13617

24) 삭제

25)  물론, 오직 논쟁적인 글 덕분에 크리틱-칼의 독자, 필자, 후원자가 꾸준히 늘어난 것은 아니다. 논쟁적인 글이 아닌 글들도 저마다 나름대로 공공성과 맞물리는 면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논쟁적인 글이 다른 종류의 글보다 상대적으로 공공성과 맞물리는 면적이 더 넓을 뿐이다.

26)  옥인콜렉티브의 이정민 작가가 아니라 비교문화협동과정 박사 이정민이다.

27) 이정민, ‘어떤 폭로’, <크리틱-칼>, 2016.6.13, http://mylab.nayana.kr/s1/mainissue/14478

28) 90APT 홈페이지: http://www.90apt.com/index.html

29) 옐로우 펜클럽 홈페이지: http://yellowpenclub.com/

30) 미주알 고주알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pg/zooeggs/about/?ref=page_internal

31) 삭제

32) 집단오찬 홈페이지: http://jipdanochan.com/

33) WOWSAN TYPING CLUB 홈페이지: http://t-504.tistory.com/

34) 2017년 10월 28일 기준.

35) 옐로우 펜클럽의 소개글: http://yellowpenclub.com/about/

36) 90APT, 2/W가 주최 및 주관이며 권시우와 윤태웅이 기획한 전시다. 전시 기간은 2018.1.6~2018.3.18이며 전시 장소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 823-2, 2/W이다.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김동용, 김효재, 류수연, 서민우, 오연진, 전예진, 정완호, 지호인이다.

37) 문혜진, 「동시대 한국미술에서 비평은 왜 부재할 수밖에 없는가」, 『2015 SeMa-하나 평론상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서울시립미술관, 2015, pp.210 참고.

38) 성상민, ‘기업보고서: 대우 1967-1999에 대한 보고서’, <크리틱-칼>, 2017.4.4, http://www.critic-al.org/2017/04/04/daewoo/

39) 최범, ‘소녀상과 미술 담론-‘소녀상의 예술학’ 토론회를 통해 본 한국 진보 미술계의 의식’, <크리틱-칼>, 2017.8.15, http://www.critic-al.org/2017/08/15/enforced-sex-slaves/

40) 가령 최수환, 신용철, 김용익, 최범 정도의 연령대가 투고를 하기도 한다.

41) 홍태림, ‘조국 교수의 혁신안은 새정치민주연합을 살릴 최후의 처방전’, <크리틱-칼>, 2015.5.24, http://mylab.nayana.kr/s1/index.php?mid=frecri&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C%A1%B0%EA%B5%AD&document_srl=10246

42) 윤율리, ‘일베를 보며 노무현을 생각하다’, <크리틱-칼>, 2013.7.18, http://mylab.nayana.kr/s1/mainissue/2660

43) 정강산, ‘사실, 진실-이데올로기, 진리: 진리의 텅 빈 공백을 진실로 메운다는 것’, <크리틱-칼>, 2016.11.11, ’http://www.critic-al.org/2016/11/11/zinli/

44)  글을 자주 기고해주시는 필자에게는 원하시는 책을 더 보내드리기도 한다.

45) 더 이상 투고를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46) 물론, 이렇게 독자와 후원자가 등을 돌리더라도 여전히 필자들은 크리틱-칼에 투고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후원금이 없어 필자에게 책 선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투고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47) 기존에 사용하던 주소인 http://www.critic-al.org은 신 크리틱-칼로 이전되었기 때문에 따로 도메인 설정을 하지 않는 상태다 .그래서 현재 구 크리틱-칼의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mylab.nayana.kr/s1/

48) 2013년 2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사용한 구 크리틱-칼은 제로보드 엔진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제로보드 엔진이 구형이어서 크리틱-칼의 가독성은 좋지 않았다. 또한 항목들 간의 성격이 중복되는 측면도 문제였다. 그래서 2016년 9월에 김현진 작가를 통해서 워드프레스 엔진을 기반으로 새 크리틱-칼을 제작했다. 새 크리틱-칼 홈페이지는 중복되는 항목들을 합친 크리틱 항목과 구 크리틱-칼을 갈수 있는 항목 그리고 후원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항목만을 남겨 놨다. 또한 검색 기능이 생겨서 게시물을 찾기도 쉬워졌고 가독성도 개선되었다. 그러나 제작비와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구 크리틱-칼의 있는 게시물을 새 크리틱-칼로 옮겨올 수 없었다. 그래서 현재 크리틱-칼 홈페이지는 구 크리틱-칼과 새 크리틱-칼이 동시에 존재한다.

49) 2017년 11월에 공개했으며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blog.naver.com/redzzongr

50) 이 외에도 크리틱-칼 미러 블로그는 필자별로 폴더가 구분되어 있어서 독자가 특정 필자의 모든 글을 쉽게 열람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51) 크리틱-칼은 주로 시각예술과 관련된 필자가 많이 활동하는 곳이므로 아무래도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필자를 의미할 수밖에 없다.

52) 안국 153에서 진행된 주현욱, 정강산, 이양헌, 이용준, 홍태림 대담, 2017년 8월 30일 16시 40분-17시 8분

53) 크리틱-칼이 청년 필자 발굴이라는 역할을 수행할 여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여지는 객관적으로 그리 크다고 할 수 없기에 미약하게나마라는 말을 덧붙였다.

54) 맹목적인 자기개발과 무한경쟁, 인정투쟁만이 가득 찬 미술계에서 종합적인 논의와 반성이 작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논의와 반성을 통한 실천과 변화는 미술계에서 전설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크리틱-칼 후원금은 서버 운영비와 필진들에게 책 선물을 드리기 위한 비용으로 사용합니다. 자세한 크리틱-칼 후원 방법과 후원 현황은 “여기” 를 클릭 해주세요. 우리은행 1002-948-262845 예금주 홍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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