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지_그녀는 왜 그랬을까?

 

아베사다

예술이냐 외설이냐 논란이 많은 영화 <감각의 제국>을 보다 광적인 성욕을 가진 아베 사다는 ‘왜 그렇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그녀의 정체성을 실제 사건이 일어났던 1930년대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며 연관지어보았다. 그녀의 강렬한 움직임과 물리적인 접촉은 공허와 결핍으로부터 발생했다는 점을 추측을 하게 되었다. 또한, 일본의 패전 후 나타났던 구타이 미술 그룹의 움직임은 아베 사다와 연결점이 있지 않을까 고민해보았다. 이미지를 시작으로 그들의 움직임과 역사적 배경, 심리 상태를 풀어보았다.

ㅇㅇ

일본의 다다미방 안이 보인다. 금방 정사를 끝낸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과 여성이 뒤엉켜 있다. 살펴보니 여성은 끈으로 남성의 목을 조르고 있다. 왼쪽 아래의 식칼을 보면 평소 가학적인 행위를 해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왼쪽 위편에 아무렇게나 쌓인 옷더미들은 이 두 남녀가 이전부터 성관계를 즐기는 사이임을 암시한다. 그녀는 한 발로 몸을 지탱해 언제든 힘주어 목을 조를 준비가 되어있다. 곧 그는 죽을 것이다. 그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는 합의된 행동으로 보인다. 그녀는 그를 애틋하게 쳐다보며 기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영화 <감각의 제국>의 주인공인 아베 사다는 게이샤도 되지 못한 집창부였다. 무능한 남편은 사다를 요정에다 팔아버렸고, 그녀는 거친 성격 탓에 동료 게이샤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 요정 주인의 남편이 그녀의 해방구가 된다. 둘은 요정 주인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긴다. 두 남녀는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고 정사를 벌인다. 서로의 몸을 사정없이 탐닉하는 과정은 서로를 사랑하고 원한다기보다 그저 허무를 채우기 위한 반복적 행위로 보인다. 하지만 저 남자는 완전한 사다의 것이 될 수 없었고, 자신의 것이 하나도 없는 데서 오는 공허와 분노로 치달은 아베 사다는 결국 남성을 죽임으로써 완전한 소유에 이른다.

감각의 제국

아베 사다는 왜

성욕에 집착했을까 ?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까 ?

미쳤을까 ?

공허한가 ?

아베 사다를 보는 내내 그녀는 단순히 성욕과 소유욕에 미친 여자가 아닌 어떤 공허함에서 오는 병적인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일본의 특수한 시대 상황과 아베 사다의 정신적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영화의 실제 사건이 일어났던 1936년 주변을 살펴보았다. 일본은 근대화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아시아를 거점으로 세계 제패의 꿈을 가지고 전쟁을 일으킨다. 하지만 1933년 국제 연맹을 탈퇴하고 무차별 학살, 강간, 약탈, 방화 등의 잔학행위로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다. 동시에 국내에선 군인과 우익에 의한 국가개조 운동(파시즘운동)이 고조되며 1936년 수상을 암살하고 쿠데타가 발생한다. 당시 일본은 ‘섬’이라는 지역성, 국제 사회의 비난, 내부의 혼란으로 인해 국가 내외적으로 고립상태에 빠진다. 군국주의 아래 결집한 국민은 그 정체성이 흔들리려는 기미가 보이니 불안함과 공허함에 빠졌다. 이는 당시 생존했던 아베 사다의 정체성과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베 사다를 향한 위의 질문들은 일본을 향한 질문이 된다.

그녀의 성적 욕망은 공허함으로부터 발현되었다. 물리적 접촉만이 그녀를 채워줄 탈출구였다. 그 채워지지 않는 욕구는 폭탄이 되어 최후에 이르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종전을 맞이한다. 가미카제에 지원할 정도로 숭배하던 천황과 신념은 모두 허상이었다. 팔굉일우, 만세일계, 성전의 가치는 추락하고 꺼풀이 벗겨진 속살이 드러난다. 그들은 살아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근대의 세계관에서 강제로 탈피 당해 벌거벗은 공간으로 내팽개쳐졌다. 그들은 집단 공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심연에서 구타이 미술 그룹은 물질에 자신을 내던지는 격렬한 행위로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다. 가치는 정신이 아닌 살아있는 몸의 감각으로 이동한다.

시라가 가츠오, , 1955.10
시라가 가츠오, 진흙에 도전하다, 1955.10

질펀한 진흙과 살이 맞닿는다. 방해되는 옷을 벗고 진흙 속에서 몸을 부비며 헤엄친다. 이 행위는 어떤 목적도 의미도 없다. 그저 살과 진흙이 맞닿는 생생한 물리적 촉감에 집중한다. 그 순간 정신을 옥죄던 모든 신념과 가치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낀다.

구타이의 멤버들은 진흙에 덤벼들고, 통나무를 패고, 몸을 던져 종이를 찢고, 물감이 든 병을 돌을 향해 내던진다. 1955년 제1회 구타이 미술전의 입구를 종이로 만들어 들어오려면 종이를 찢고 들어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더욱더 격렬하게 세상의 물질과 자신의 몸을 대치시킨다. 그 선명한 감각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듯이 말이다.

시마모토 쇼조, , 1956.10
시마모토 쇼조, 행위, 1956.10
무라카미 시부로, , 1955.10
무라카미 시부로, 종이 찢기, 1955.10

아베 사다와 구타이의 공허함은 전쟁 트라우마다. 개인들은 광기와 불안, 패전 후 갑작스러운 정체성 공황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들은 각자 저마다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사다는 성적인 물리적 접촉으로 표출되었고, 구타이는 세계의 물질에 자신들의 몸을 내던진다. 정신적 가치가 몰락한 이후 물질성으로 돌아가고 집중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 심리적 트라우마로부터의 해방이자 자신이 살아있음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현대 일본이 가지는 정체성은 이중적으로 느껴진다. 국가적으로 명백한 가해자이며 개인들은 폭력의 시대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2013년 개봉한 <진격의 거인>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에는 일본 우익 심리가 만연하게 깔려있다. 살펴보자면, 인간들이 사는 도시의 외곽에는 50M 높이의 장벽이 세워져 있고, 그 밖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다. 그 거인과 인간의 싸움을 그리는데 벽 안의 인류는 고립된 일본의 섬을 말하고, 그 바깥의 거인은 위협을 하는 자를 대변한다. 거인과 싸우면서 자신들은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계속해서 세뇌한다. 또한, 거인을 지배하는 것을 ‘구축한다’라고 표현한다. 현재 일본에 군국주의의 야망, 지배에 대한 열망이 잔존함을 알려주는 것 같다. 제국주의를 어떻게 합리화하는지도 추측할 수 있다.

한국에 일본은 가해자라는 생각과 무례한 태도에 무의식적으로 일본 문화에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 일본의 문화를 접하고 이미지를 중심으로 그들의 심리 상태를 역사와 관련지어 추측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이번에는 아베 사다와 구타이를 중심으로 정신의 붕괴와 물질로의 해방을 살펴보았다. 앞으로는 정신에서 물질로 이동하는 자세한 과정과 다른 나라의 사례를 알아보고 싶고, 일본의 전후 시각예술과 현재 나타나는 트라우마, 우익 등 여러 방면으로 조사해보고 싶다.


참고 문헌

사와라기 노이, 「일본.현대.미술」, 두성북스, 2012

지그문트 프로이트, 「집단심리학과 자아분석」, 이책, 2015

참고 논문

구나연, 「구타이 미술과 일본 전후 모더니티의 경험」,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과정 학위 논문, 2007

김민정, 「I am Still Alive: 의식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 온 카와라(On Kawara)의 1965년 이후 작업을 중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과정 학위 논문, 2009

웹 사이트

김미경, 전설이 되어버린 전시-구타이,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upinakmk&logNo=140101965858&parentCategoryNo=&categoryNo=40&viewDate=&isShowPopularPosts=true&from=search, 월간미술,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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