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한_취향입니다, 담론해주시죠.

전대한(대중음악비평)│jeondaehan@naver.com

몇 번이고 스스로와 주위 동료들에게 물었던 질문을, 지겹지만 또다시 묻는다. 대중음악비평이라는 씬scene은 이제 정말로 폐허인가? 가시적인 지점을 놓고 보자면, 그렇다. 이곳은 폐허이고,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무너진 곳이다. 비평은 아주 조금씩만 생산되며, 그나마 그것을 생산해내는 이들은 비평만으로는 생계를 오롯이 유지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비평은 갈수록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되고, 이를 수행하려는 사람도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을 지탱하는 매체나 학계는 물론이고, 비평을 지원하는 제도마저 사실상 전무하다. 정답이 너무 뻔한 질문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면서도, 계속해서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도저히 답을 내릴 수가 없는 어떤 질문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비평가인가, 아닌가. 나는 분명 싱글과 앨범에 대한 리뷰를 쓰며, 가끔은 음악을 상업적으로 소개하는 일도 하며, 작가론에 가까운 긴 호흡의 글도 쓴다. 그런데도 내 이름 옆에 붙는 수식어는 “필자”나 “에디터”일 뿐, “비평가”가 아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내 능력과 노력의 부재로 인한 것이겠지만, 훌륭한 비평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적지 않은 나의 동료들까지도 “에디터”나 “뫄뫄 편집장” 정도로 호명되는 것은 이곳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우리는/나는 회색 배경 위에 올려져 있는 흰색 실루엣을 표상으로 갖는 가계정 마냥, 유령이 되어 네트워크를 부유하고 있는 것만 같다. 혹은 어쩌면 나는/우리는 한적한 블로그나 카페의 좌측 하단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는 가가라이브 채팅방의 손님_9d6, 손님_i8m 따위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떠돌고 있는 이 서버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처럼 핫한 곳이 아니라, 폐쇄조차 귀찮은 운영자가 그만 잊어버리고 방치해둔 유령-게시판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평은 존재한다. 나는 분명히 비평을 하고 있고, 내 주변의 동료들은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렇다면 여기에 없는 것은, 비평이 아니라 비평가이고, 더욱더 구체적으로는 비평가가 실제로 없다기보다는 ‘비평가’라는 정체성이 부재한다는 것이 보다 적절한 진술일 것이다. 비평가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정체성이 아니며, 특히 대중음악이라는 장에서 비평가라는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비평은 분명 존재하는데 비평가는 부재한 이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나는/우리는 미궁에 빠지고 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는 탄식만이 나를 에워싼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이 씬에서 대중음악 비평가라는 정체성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사람이 과연 있었는가? 너무 극단적인 질문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그 누구도 이 질문에 쉽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서는 잠시 비평가의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엘 캐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보기에 비평가란 예술 작품을 합리적인 이유에 근거하여 평가the reasoned evaluation하는 사람이다.”[1] 비평의 수많은 구성 요소 중에서 평가만을 언급한 것은 다소 아쉬운 지점일 수 있겠으나, 그의 정의는 비교적 단순하고 균형 잡힌 정의이다. 이 정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합리적인 이유에 근거하여”라는 구절이다. 객관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합리적 근거에 기반을 둔 비평을 위해 대중음악 비평가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의 비평가가 엄청난 노력을 해왔다.

그 노력의 대표적인 방식이 담론의 도입이었다. 많은 비평가가 해당 영역의 산물을 보다 더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논하기 위해, 철학이나 사회학 등에서 이론과 논의를 빌려왔다. 90년대의 문학/미술/영화 비평가들이 흔히 “-주의”로 호명되는 수많은 사유 체계를 경유하며 비평을 수행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중음악 비평에서는 이런 식의 접근이 거의 없었다. 과거 대중음악 비평가로 호명되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음악을 소개하는 일에 집중했거나, 음악을 평가하더라도 담론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이나 취향을 옹호하며 평가에 임했다. 즉, 이는 비평가에게 핵심적인 요소인 객관성을 위한 노력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평과 비평가 자체에 대한 담론 또한 부재했다. 다시 말해, 메타-비평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자기 성찰적 담론이 유독 대중음악 비평에서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스스로가 수행하고 있는 행위와 역할 등에 대한 체계적인 고민과 성찰이 거의 없다시피 하였기에, 과거의 대중음악 비평가들은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끝내 직전 세대 비평가들은 자신의 정체성에서 ‘비평가’를 지워버리려는 결단을 내린다.

우선, 지금부터는 국내 대중음악 비평의 역사를 살펴보며, 언급한 두 의미의 담론, 즉 음악 자체에 대한 담론과 비평(가)에 관한 메타 담론이 어떻게 부재해왔는지를 논할 것이고, 이 논의에 기반을 두어 직전 세대 비평가들의 ‘비평가’ 지우기가 어떤 배경에서 등장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꽤 오래전으로 시계를 되감아 보자. 80년대 이전까지의 대중음악 비평은 (당신도 노엘 캐럴의 정의에 동의한다면) 비평이 아닌 다른 것에 가까웠다. 이들은 비평가라기보다는 음악을 소개하는 사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작곡가/작사가 등의 창작자가 음악을 해설하거나, 라디오 PD 또는 신문 기자 같은 매체 종사자가 음악을 소개하고 그 음악의 장단점을 논하는 것이 비평으로 호명되는 산물의 대다수를 이루었다. 60년대 중반의 “한국 경음악 평론 동우회”, 70년대의 “목요회”와 같은 동인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들은 평론가 혹은 비평가라는 직함을 적극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비평가라는 정체성을 긍정했던 것도 아니었다. 즉 비평가라는 존재(노골적으로 말하면, 직함)만 있을 뿐 비평 자체의 존재는 모호했기에, 대중음악 자체에 관한 담론은 당연히 부재했고 메타적인 담론 또한 그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 음악을 소개하는 일과 비평을 분리하려는 시도가 발생한다. 서병후가 대표적이다. 그는 영미권의 팝 음악 가사를 번역하여 소개하는 일에 집중하며 인기를 얻는다. 많은 사람은 그를 “경음악 평론가”로 불렀으나, 그는 자신이 평론가가 아닌 팝 칼럼니스트로 불리기를 원했다.[2] 실제로 서병후가 수행했던 역할은 앞서 언급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비평가보다는 칼럼니스트에 더 부합했기에, 그가 자신을 칼럼니스트로 규정했던 것은 오히려 직전 세대 비평가보다 훨씬 진솔하고 적절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서병후의 시도가 전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찌 됐건 대중음악 비평의 초창기는, 자신을 칼럼니스트로 소개하거나 명확하게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쓰지는 않더라도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음악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해설에 집중했기에, 객관성을 띠기 어려웠다는 것이다.[3] 이는 담론의 부재와 연관된다. 해설 위주의 글쓰기가 이루어졌기에 음악을 분석하려는 시도는 있었을지라도 음악을 다루는 담론적 시도는 물론이고, 비평가로서의 자기성찰적 메타-담론 또한 부재했다.

팝 음악 위주의 『월간 팝송』과 같은 잡지나, 라디오나 언론사 등에서 DJ의 이름을 빌려 발행하던 무크지를 기반으로 칼럼니스트에 가까운 비평가들이 등장했던 70년대[4]를 지나, 조금 시간을 건너뛰어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 시기에 등장하는 대중음악 비평가는 크게 두 조류로 나뉘는 듯하다. 먼저 한 쪽에는 김창남, 이영미,신현준과  같이 문화연구에 기반을 두어 대중음악을 다루었던 이들이 있다. 그들은 사회학이나 문화 이론 등의 학문적 토대를 바탕으로 동시대 대중음악을 텍스트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오롯이 비평가라기보다는 연구자-비평가에 가까웠다. 자신이 집중하던 연구 영역이 있던 사람들이었기에, 당연히 그들의 정체성에서 방점은 후자보다는 전자인 연구자에 찍혔다. 대중음악에 관한 담론적 접근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던 이들이지만, 연구자-비평가라는 정체성을 고려했을 때 그들의 담론적 토대가 온전히 비평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는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연구자에 가까웠던 그들이기에 비평가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메타-담론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다른 한편에는 임진모, 성우진, 박은석과 같은 현장 중심의 대중음악 비평가가 있다. 그들은 앞서 언급한 문화연구 기반의 비평가보다 훨씬 더 이전 세대들의 자장 아래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라디오나 TV, 잡지와 같은 대중 매체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음악을 소개하고 음악이 소비되도록 하는 역할에 주력했다. 즉, 그들 또한 비평가보다는 음악 칼럼니스트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그들에게도 대중음악 자체를 비평적으로 보려는 시도 자체가 부재하다시피 했고, 비평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메타-담론의 자리는 당연히 찾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대략 90년대 초까지의 한국 대중음악 비평의 역사에서, 두 가지 의미의 담론 모두 거의 부재했다는 것이다. 아주 초창기의 비평가들은 라디오나 TV, 신문, 잡지 등과 같은 매체를 기반으로 음악을 소개하는 일에 집중했기에 음악을 다루는 담론(적 접근)을 마련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비평가’보다는 ‘칼럼니스트’에 가까운 정체성을 유지하여 스스로에 대한 메타-담론 또한 형성하지 못했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비평가로 호명되었음에도 자신을 칼럼니스트로 규정하기를 원하는 시도(서병후)까지 발생할 만큼, 대중음악 ‘비평가’라는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그러다가 이른바 대중음악 비평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시기가 시작되는,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사이에 두 조류가 등장했다. 연구자-비평가로 부를 수 있을 문화연구 기반의 비평가들과, 음악 칼럼니스트에 가까운 현장 중심의 비평가들이다. 전자의 경우, 음악 자체에 대한 담론적 배경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으나 연구자에 가까웠기에 메타-담론이 쉽사리 제시되지 않았다. 후자의 경우, 그 이전까지의 비평가와 유사하게 두 가지 의미의 담론 모두 부재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90년대 중반의, 우리(2018년의 신진 비평가)의 직전 세대가 대중음악 비평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75년전후로 출생하여, 2018년 현재 40대 언저리의, 흔히 X세대로 호명되는 이들이다. 김학선, 김작가, 배순탁, 서정민갑, 최민우, 차우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그 직전 세대인 문화연구 기반의 비평가와 현장비평 중심의 비평가 모두의 영향을 받았다. 직접적으로, 많은 이들이 그 직전 세대가 마련한 비평 플랫폼([weiv], izm, 가슴네트워크 등)을 통해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대중음악학회나 한국대중음악상 등을 통해 지속해서 교류했다. 그렇게 X세대 비평가들[5]은 선배-후배, 스승-제자, 동료, 혹은 어떤 관계가 되었건 그 직전 세대와 함께 활동하면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X세대 비평가들 또한 앞서 언급한 두 조류와 유사한 형태로 분화된다. 배순탁이나 김작가와 같이 현장 중심의(더 나아가, 칼럼니스트에 가까운) 비평가가 있는 한편, 차우진이나 최민우처럼 현장에 기반을 두었음에도 산업적인 측면이나 문화 이론적인 측면도 함께 다루면서 비평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그 직전 세대와는 달리) 정체성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웠다. 직전 세대의 문화연구 기반의 담론적 접근과 현장 비평 중심의 접근을 모두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통해, X세대 비평가들에게는 동시대 다른 영역의 비평만큼 체계적이진 않아도 그 이전 세대의 영향을 받아, 어느 정도 대중음악에 대한 담론적 접근이 시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전 세대의 문화연구 기반의 비평가들과 달리, 연구자로서의 배경이나 학문적 근간이 두텁지 않았고, 이로 인해 담론에 대한 갈증은 있으나 이를 쉽게 해결하지 못했다.

X세대 비평가들은 직전 세대의 비평을 직접 옆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그들의 방법론을 체화했지만, 비평가로서(특히 전업 비평가로서)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들로부터 차별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대중음악 비평 장에서 상징자본을 쟁취하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래서 이들은 꽤 적극적으로 ‘비평가’라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대중음악 ‘비평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메타-담론의 성립 가능성이 기대되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들 또한 메타-담론의 부재를 해결하지 못했다.

X세대 비평가들은 담론의 부재의 대안으로 ‘취향’을 제시한다. 개인의 취향, 주관, 선택 등을 비평의 최우선 기준이자 가치로 내세우며, 담론이 부재한 비평을 정면에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취향’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상황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물론 이런 식의 입장이 맹렬하게 비판받을 지점은 아니다. 실제로 캐럴의 정의에 대해서, 평가라는 행위 자체가 어떤 작품이나 대상에 대한 선택을 선제하기에 ‘취향’이 평가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며 반박하는 입장이 존재한다. 다만, 이 반박은 담론이 요구되는 근원적인 이유인 합리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약한 반박이 된다. 그럼에도, 국내 대중음악비평의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한다면, ‘취향’에 근거한 비평을 선호했다는 이유만으로 강하게 비판할 수는 없을 것만 같다.

문제는 이러한 입장이 ‘비평가’라는 정체성을 지우려는 시도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서정민갑은 비평가 대신 자신을 “대중음악의견가”로 칭한다. 그는 스스로가 수행하고 있는 일이 “딱히 하는 일에 있어서 차이는 없”[6]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평론이라는 것은 자기 주관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7]이고 “누구도 완벽한 답을 내릴 순 없다는 생각”[8]에서 비평가라는 정체성을 의견가로 대체해버린다. 김학선 또한 자신에게 딱 맞는 포지션은 비평가라기보다는 “음반소개사”[9]인 것 같다고 말하며, 칼럼니스트에 가까운 작업을 선호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차우진의 경우,  “비평이라는 것은 미학적인 분석을 하고 효과를 따지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10]하지만 자신은 “해설에 더 관심이 많다”[11]라고 말한다. 그는 거기에 덧붙여 “미학적인 분석은 별로 재미가 없”[12]고 “확실하게 답을 주는 것도 흥미”[13]가 없으며, 그 대신 자신이 “경험적으로 이걸 들었을 때 어떤 일이 있었고 느낀 게 무엇이고”[14]와 같은 지점을 이야기하는 게 더 좋아서 자신에게 “평론가라는 타이틀이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다”[15]고 생각한다고 고백한다. 김작가는 음악 애호가에서 출발한 자신의 배경을 은연중에 강조하며, 배순탁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를 비롯하여 대중 매체에서 음악을 소개하는 일을 주요한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세운다.

X세대 비평가들이 ‘비평가’라는 정체성을 지우려는 시도를 했다는 사실 이전적으로 의도적인 실행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이들은 실제로는 자신을 비평가로 인지하고 소개했으며, 또한 비평가로서 작업을 수행해왔다. 오히려 이는 X세대 비평가들의 무의식적인 발화에 가깝거나, 이들 나름대로 담론의 부재에 대처할 방법을 찾다가 발생한 실수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사태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기가 어렵고, 비판을 제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왜냐하면, 이들은 담론의 부재를 해결하지 못한 채 ‘취향’이라는 말로 정당화하며 문제의 본질을 회피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는 아주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X세대 비평가들에게는 ‘비평가’라는 정체성이 지워졌더라도 각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축적된 동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문제는 시간이 흐른 후에 가시화되는 법이다. 이들이 ‘취향’으로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려고 했던 담론의 부재는, 결국 지금-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전가되었다. 내가 이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나도 알고 있다. 사실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은, 앞서 살펴보았듯, 직전 세대인 X세대만이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 비평 전체에 돌려져야 적절할 것이다. 담론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늘 부재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비판은 X세대 비평가라고 호명했던 우리의 직전 세대 비평가들에게 폐허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한 징징거림처럼 보일 뿐이다. 게다가 나의 문제 제기가 징징거림 이상의 생산적인 비판이 되기 위해서는, 사태에 대한 대안이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하는데, 나는 이 지점에서 끝내 실패한다. (나를 포함하여) 지금-여기의 새로운 사람들 또한 담론의 부재를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안적인 비평을 수행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여기의 신진 비평가들도 결국에는 폐허를 재건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여기의 대중음악 비평 씬에 서 있는 이들은, 특히 새로이 비평을 수행하려는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최소한의 이름조차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그렇게 회색 배경과 흰 실루엣의 가계정처럼, 가가라이브 채팅방의 손님_i8m처럼, ‘비평가’가 아닌 비평을 수행하는 그저 익명의 ‘무언가’로 전락한다. 자신들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폐허를 부유하는 유령에게는 실체가 없기에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고 사라져만 간다. 이런 우리가, 고작 단 한 번의 리서치로, 더 나아가단 한 번의 기획으로, 스스로의 이름과 실존을 되찾을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건 정말 지겨울 정도로 긴 시간과 토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할 테니까. 그럼에도 이 글을 꿋꿋이 써내려가는 이유는 적어도 우리가 이제 문제를 직시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라는 상투적인 말 대신, “취향입니다, 담론해주시죠.”라고 외치면서.

 


[1] 노엘 캐럴.이해완 역.『비평철학On Criticism』. 북코리아. 2015. 22쪽.

[2] 황문평.『야화 가요 60년사』.전곡사. 1983. 396쪽

[3] 김두완.「한국 대중음악 평론계의 역사적 형성과 변화 : 198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대중음악.대중음악학회. 2012. 16쪽.

[4] 송명하. 「한국 음악지35년사를 점검해 본다」. 64~68쪽.

[5] 이들은 자신들이 “X세대”로 호명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듯 하지만,마땅한 분류가 없어 우선은 “X세대 비평가”로 통칭하기로 한다.그러나,분명 이는 만족스러운 호명은 아니기에 이들을 어떤 식으로 호명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6] 전대한.『크리틱스 레코드 2 :우리 시대의 중견 비평가』.아카이뷰. 2016. 15쪽.

[7] 6과 동일

[8] 6과 동일

[9] 전대한.『크리틱스 레코드 2 :우리 시대의 중견 비평가』.아카이뷰. 2016. 66쪽.

[10 ]전대한.『크리틱스 레코드 2 :우리 시대의 중견 비평가』.아카이뷰. 2016. 114쪽.

[11] 10과 동일

[12] 전대한.『크리틱스 레코드 2 :우리 시대의 중견 비평가』.아카이뷰. 2016. 118쪽.

[13]  12와 동일

[14]  12와 동일

[15] 1 2와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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