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호정_주현욱의 ‘메모리 네크로맨싱’ – 이중구조를 둘러싼 질문들: 동상, 세기,그리고 얼룩

허호정

1.메모리 네크로맨싱

2017년 겨울과 2018년 봄, 주현욱은 특정한 물리적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5km 내에 위치하는 동상들을 추적하여, 그중 20세기에 제작된 것을 골라 부분을 스캔하고 3D 프린트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촬영, 편집하여 전시장 한쪽에 1채널로 설치하였다.

주현욱, 메모리 네크로맨싱 (N37.5° E127.0°), 2017, Installation, 1ch video, 5min, 출처 http://joo-hyunwook.tistory.com/2?category=982325
주현욱, 메모리 네크로맨싱 (N35.1° E126.9°), 2018, Installation, 1ch video, 5min, 출처 http://joo-hyunwook.tistory.com/22?category=982325

돌아가는 원판 위, 색색의 조각. 혹은 투명한 좌대 위에 규칙적으로 나열된 백색의 조각. 그것은 인체의 어떤 부분을 닮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날 선 깎인 면들을 여실히 드러내는 뭉그러진 오브제. <메모리 네크로맨싱>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들 오브제는 그 형상이 파편적일지라도 때로 어떤 대상을 환기시키는 면이 있다. 그리하여 관객은 전통적이고 관념적인 관습에 따라 지시체를 찾으려 한다. 이때, 전시장 한편에서 출력되는 영상은 바로 관객이 찾는 대상물에 관한 힌트를 제공한다. 이윽고 관객은 ‘안중근의 사상’, ‘고당 조만식 선생상’과 같은 지시어와 마주하고, 또 모자이크로 가려진 어떤 동상으로부터 이들 색색의(백색의) 오브제가 차용된 정황을 짐작하게 된다.

2. 이중 구조의(비)관계

형식적으로 <메모리 네크로맨싱>은 오브제와 영상이라는 이원적 구성을 보인다. 하지만, 이때의 이원성이 논점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이원성은오브제와 영상이라는 형식적 구분을 바탕으로 작동하되, 더 근본적으로 구조적 성찰을 끌어내는 지점에 있다. 바로 전시장에 놓인 <메모리 네크로맨싱>과, 여기서 참조된 대상인 전시장 밖 동상들의 관계가 그것이다.

전시장 내부의(한편에 오브제와 한편에 영상 모두에서 나타난) 조각과 외부의 조각을 나누고, 그 사이에 형성되는 이분법이 있다. 그런데 본디 이분법이란 둘을 구분하자는 의미에서 설정되지만, 그 전에 이 둘을 나누는 근거를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메모리 네크로맨싱>을 둘러싸고 검토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전시장 외부의 조각과 그것을 차용하거나 재현하여 세운 이미지는 구분되는가? 결국, 던지려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두 개의 완전한 분리는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이것과 저것의 이원적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일정한 (비)관계를 검토하려 한다.

우선, 둘을 만나게 하는 관계의 지점이 있다. 둘 사이에는 ‘현재’라는 시간의 우연이 공유된다. 물론, 작업 외부에서 동상들은 작가가 선별 과정에서 설정한 바에 따라 20세기에 제작된 것이라는 역사적 조건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현재의 공간을 점유한다는 의미에서 <메모리 네크로맨싱>과 시간적 우연성을 나눠 갖는다. 이것과 저것의 동상 이미지는 작가가 전제한 바와 같이 역사적 20세기와, 그에 대조적인 21세기라는 시간성에 따로 고립되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를 관통하는 항상적인 현재성을 공유하며, 나는 이것을 이미지의 어떤 속성으로 생각하고 있다.

더하여, 이 둘을 구분하게 만드는 충돌의 지점이 있다. 이것과 저것은 갤러리라는 특수한 문화적 전시 공간과 일상생활 속 공간 안에서 전혀 상이한 시각장에 놓여있기에 충돌한다. 이때 둘은 재현 혹은 차용의 원리에서 맺어진 관계를 묘하게 비틀고 선다. 이 글에서 이분법은 전제된 만남, 관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한편, 그것을 다시 부정하고, 어긋나게 한다는 의미에서 비-관계라 불린다. 재현의 원리로 보자면, <메모리 네크로맨싱>은 동상(銅像statue)의 재현, 즉재현물의 재현을 따르고 있다. 그런 한편, 스캔의 물리적 한계에서 비롯하여 그 원본 대상을 왜곡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물과 여기에 사용된 매우 이질적인 색채는 이것과 저것의 단순한 등치를 어렵게 만든다.(2017년 작에서 다색이 두드러지지만, 2018년의 백색 역시 전시장 바깥의 ‘동상’과 상이하기는 매한가지.)

3. 상: statue: 銅像

상(statue)의 제작은 고대 그리스-로마 이래 유럽에서 19세기에 가장 성행했다. 이 시기상의 제작은 소위 ‘근대국가’라는 모델이 특수한 상상적 차원을 동원하고 의존하면서 각광받았다. 이후 각 지형에서 정치가 구체적인 기반을 다져가며 20세기가 구성되자, 근대(modern)라는 미명 아래 그 전체적인 작동을 유효하게 하는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고려되었다. 다시 말해, 유럽 문명에서 19세기부터 20세기 내내 유행했던 동상 조각은 전쟁, 법률, 도덕 등 근대국가 체제에 상상된 통합성을 표상할 대상 -특히 인물- 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유명한 공산권의 지도자상은 이러한 유래를 공유하며, 이외에도 공화체제의 승리와 민주적 대의제에 합의를 도모하기 위해 문화 예술계 인사상이 유행한 것도 지적할 만하다.

동상 일반을 둘러싼 담론은 위의 단락과 같은 서술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이로써,  유럽 문명의 근대화와 그 상상적-상징적 모델에 부합하는 이미지의 구축을 가히 상(statue)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으리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한국 역시 근대 담론을 도입하는 일제 치하의 시기와 이승만, 박정희 정권기에 동상 제작을 둘러싼 유사한 시도가 있었으리라 유추할 수 있다. 두 가설 아래에서, 위대한 충무공 상의 건립과, 여기에 모금 운동을 도입하고 성공하기까지 한 정부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동상 세우기에 발 벗고 나선 가난한 국민들의 거대한 기대와 관심을 조명해본다면, 상은 과연 국민적 합의라는 가상을 업은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인 이데올로기 기제라 할만하다 하겠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가설에서 문제는, 넓은 시간적 스펙트럼을 갖는 유럽의 세기(世紀)와 그보다는 짧은 한국의 세기 사이에 동일한 열망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동상만 놓고 보자면 후자의경우,세기는 일제 치하의 문화 통치로부터 박정희 정부의 “애국선열 조상 건립운동”에 이르기까지 50여년 남짓한 시기 동안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해당 시점의 전체주의적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동상들은 특수한 열망을 이미지의 표피에 덧씌우게 된다. 요컨대 그것은 유럽 사회의 상(statue)이 이룩했다 여겨지는 상상-상징을 기대하는 마음이며, 나아가 그러한 욕망을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작지만 단적인 예로 한국어에서 ‘동상’이라는 어휘의 유통을 생각해보자. 이는 서양 어권의‘statue’가 특정 질료 – 금속재,석재,목재 – 를 지시하는 어휘와 결합되는 일이 드문 것과 대조적으로,흔히 ‘동(銅)-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것은 특정 장소에, 특정 인물을 재현하여 세우는 조각 형식 일체가 굳이 동-이라는 질료와 닮은 (혹은 그보다 더 반짝이는)색채를 입고 등장하는 이유를 대충 설명해준다. (이를테면, 2018년 4월, 종각역에 세워진 전봉준 상. 그것의 새 것으로 빛나는 황동색을 확인해보라.*)

이때 ‘동상’은(소위) “역사적” 인물의 실재나 그것의 재현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더욱이 동상의 이미지는, 재현 대상과의 닮음이나 혹은 재현 결과물의 조형성 같은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차라리 동상은 어떤 형식적 차용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커다란 좌대와, 거의 무용한 지시적 기표, 아무도 읽지 않거나 읽히지 않는 (한자로 쓰인) 이름 등의 느슨한 양식이 동상을 재단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반짝이는 금속재의 황동색이 강조되며, 이는 어떤 이미지의 국면을 극화하면서 현재에도 재생산되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사회에서 ‘동상’의 통용은 여전히 황동색의 모호한 이미지에 대한 열망으로 점철된다고 할 것이다.

이같은 주장을 그대로 가져간다면, 우리 사회에서 동상 일반은 20세기라 상정된 어떤 역사적 시기-특정한 전체주의와 국가주의-의 이데올로기 도구적 효용만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동상은 그 자체로 덧씌워진 이미지이며, 다름 아닌 실체 없는 얼룩을 반복하는 형식으로 현재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동상에게 있어 세기는, 20세기라 상정된 짧은 근대 담론의 시기로 국한할 수 없으며 같은 이유로 21세기와도 완전히 단절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메모리 네크로맨싱>이 20세기에 제작된 동상들을 따로 추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의 동상은 시기를 막론하고 어느 정도 유사한 의미를 공유했을 것이다.

4. 모자이크, 얼룩

결국 동상이 세우는 것은, 순진한 이데올로기일 수가 없다. 동상은 이미 과장된 빛깔과, 대상 이미지의 터무니없는 고증과, 이미지의 이미지로서 재현이라는 상상적 층위를 겹겹이 껴입고 있다. 때문에 ‘동상’은 이데올로기와 그 상징으로 작동한다 하더라도, 곧바로 하나의 이름에 수렴되지 못한다. 다만, 덧입힌 이미지일 뿐인 욕망으로서 실체는 이데올로기적 효력이 기대를 거두는 순간 드러날 것이다. 마침, <메모리 네크로맨싱>은 정확히 그 지점을 포착한다.

즉, <메모리 네크로맨싱>은 그저 물리적 얼룩으로 욕망 되는 한국 사회의 ‘동상’ 일반에 대해 사유한다. 작업은 특정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5km 내에서 많은 양의 동상 조각을 발견하면서 그것이 실제 세워질 때의 (000열사, 000선생이라는)이름과는 다르게 아주 모호하게 뭉쳐진 물리적 반점으로 치환되는 모습을 확인했다.영상에서 주현욱이 3D 스캐너를 들이미는 대상들은 거대한 좌대와 이름은 가졌지만, 그 모습을 모자이크에 숨겨버린다. 모자이크는 동상의 이미지를 완전히 비구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았던들 그것이 기표로 기능했을 것인지를 의문에 부친다. 그것은 결코 봉합되지 않는 이미지의 덧씌움, 그 물리적 얼룩일 뿐 아닌가?

더하여, <메모리 네크로맨싱>은 전시장 밖의 동상들이 빛나는 황동색을 잃어갈 때(20세기의 동상을 따로 모으는 일은 이러한 물리적정황을 확보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캐스트하고 더욱 인위적으로 채도 높은 색을 입힌다. 애초에 오롯한 상징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열망인, 따라서 단지 텅 빈 실재에의 열망인 이미지를 강조하듯 말이다. 이 경우에도 동상은 왜곡되거나 변형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러니까 20세기 제작 당시부터–그 속성이었던 이미지의 물리성을 되찾는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박정희 동상을 세우는 일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충무공상과 세종대왕상이 있는 거리에서 월드컵 관람 행사가 벌어지며, 역시 같은 곳에서 누군가는 초를 들고 누군가는 태극기를 드는 즈음에. 여전히 동상은 어떤 상징성의 내관으로 가져다 놓으려는 시도로 읽혀야 하는가? 아니, 그것은 더욱 모호하고 얼룩덜룩한 채로 사회의 어떤 부분을 덧칠하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덧칠, 이미지를 만들려는 의지와 반복을 파악하는 일만이 <메모리 네크로맨싱>연작과 전시장 밖 동상들의 (비)관계를 수립한다.

결국, <메모리 네크로맨싱>은 동상을 둘러싼 역학에 대해 일종의 이미지적 승화로, 봉합되지 않는 열망의 표상을 그 자체의 어법으로 가져간다. 이로써 작업은 ‘동상’이 한국 사회 내에 마련한 이상한 여백을 한 번 더 비틀어 가시화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전시장 내부의 조각과 그 외부의 조각 사이에는 모종의 관계가 성립한다. 하지만 둘은 어떤 재현을 둘러싼 관계 맺기에는 실패한다. 대신, 둘은 뭉뚱그려진, 이미지의 덩어리, 얼룩일 뿐인 것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나 상징의 질서로 봉합되지 않는 지점을 물리적인 반점으로 장소화 한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동상 일반이 견지하는 이러한 열망을, <메모리 네크로맨싱>은 이것과 저것의 상이한 시각장 속 비-관계로 열어젖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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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기,「박정희 시대의 ‘동상건립운동’과 애국주의 –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의 활동을 중심으로」,『정신문화연구』30권, 2007.

-조은정,「한국 동상조각의 근대이미지」,『한국근현대미술사학』9권, 2001.

-조은정,「근대 조선의 동상」,『내일을 여는 역사』, 36권, 2009.

-민유기,「파리의 문화예술인 동상건립과 도시정체성 만들기, 1880-1914」,『프랑스사연구』23권, 2010.

-박계리,「충무공동상과 국가이데올로기」,『한국근현대미술사학』, 12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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