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_독일 미대생 인터뷰: 정여원

독일 미대생 인터뷰
06. 정여원(Burg Giebichenstein Kunsthochschule Halle)

짧은 기간을 두고 자주 바뀌는 한국의 입시제도. 특히나 학교 공부와 실기를 병행해야 하는 미술 계열 학생은 매번 달라지는 입시 방향을 쫓아가기 배로 바쁘다. 힘든 입시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고 바라던 학교, 학과에 입학했다는 성취감도 잠시. 매 학기 버겁기만 한 학비와 재료비는 학생들이 창작활동과 배움에 온전히 시간을 쓸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예술대학을 통폐합시키는 대학의 방침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인간의 창의성을 다루는 예술 교육을 자본주의적 사고로만 입각해서 바라보는 오늘날의 교육 방침과 정책은 예술가의 삶을 꿈꾸는 학생들의 장래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에 반해 단기간의 성과가 없더라도 꾸준히 지켜봐 주며 창작과 예술 교육의 가치를 높이 여기는 독일.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미술 대학의 교육 덕분에, 독일은 미술계가 주목하는 작가를 꾸준히 배출하고, 나아가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필자는 오늘날 독일이 현대 미술계에서 가지는 위상의 원천으로 독일의 미술 대학(Kunsthochschule, Kunstakademie)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주목하며,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을 만나 독일의 미술대학에서 경험한 입학·교육 과정에 관해서 이야기 나눈다. 또한, 지속적인 인터뷰를 통해서 한국의 미술 대학 입시 및 교육 과정의 전반적인 문제점도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연재 인터뷰의 여섯 번째로 할레 미술대학교(Burg Giebichenstein Kunsthochschule Halle)에서 금속 조각(Bildhauerei Metall)을 전공 중인 정여원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할레 미술대학교(Burg Giebichenstein Kunsthochschule Halle)에서 공부 중인 정여원 작가 (사진제공: 정여원)

이정훈(이하 ,,이’’): 안녕하세요.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인터뷰는 교육 시스템에 관한 무거운 주제를 전면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할레 미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독자분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할레(Halle)라는 대학도시를 소개하고, 이곳에서의 생활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정여원(이하 ,,정’’): 안녕하세요. 베를린에서 할레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워낙 작은 도시이고, 학생이 대부분인 도시인데, 지금은 방학 중이라서 도시가 더욱 썰렁하네요.

이: 베를린에서 버스로 두 시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운데, 그동안 좀처럼 올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와보는데 얼핏 프라하(Prague)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거리의 분위기가 닮았습니다. 그럼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곳에서 공부하기까지의 과정을 연대기 순으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우선은 미술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정: 엄마가 아동 미술교육을 전공하시고, 선생님으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셨어요. 그래서 저도 어릴 적에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면 엄마가 계시는 곳에 가서 친구들 옆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공부나 학습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놀이였죠. 그리고 주변에 미술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친구분 집에 놀러 가면 시계를 하나 주시면서 ‘너희 마음대로 그리면서 놀아’라고 하시기도 했어요. 이런 일이 어릴 적부터 계속 반복되면서 미술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미술 말고 음악도 오래 했거든요. 10년 넘게 했어요. 사실 엄마랑 아빠 모두 미술보다는 음악을 시키고 싶어 하셨는데, 제가 중학교 때 미술을 하겠다고 했죠. 그리고선 예술 고등학교(이하 ,,예고’’) 입시를 준비했는데, 결과적으로 예고로 진학하지 않았고, 일반 사립고등학교에서 일본 미술 대학교 진학을 준비했어요.

이: 저의 편협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어머니께서 아동 미술교육을 전공하시고 그 방면으로 아시는 분도 많으셨을 텐데, 음악을 시키고 싶어 하신 이유가 궁금하네요.

정: 글쎄요. 사실은 저도 왜 음악을 시키고 싶어 하셨는지 궁금해요. 저희 오빠도 어릴 적부터 음악을 계속했었어요.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자식들 전부 음악을 시키는 게 부모님의 바람이자 꿈이었던 것 같아요.

이: 앞서 중학생 때 미술을 하겠다고 진로를 정하셨는데, 그전까지는 놀이로서 미술을 접하다가 본격적으로 미술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정: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당시에 하던 음악이 너무 지겨웠어요. 어릴 적부터 플루트, 바이올린, 합창단 등 다양하게 오랜 시간 음악을 했어요. 그만큼 부모님이 지원을 아끼시지 않으셨지만, 정작 저는 하기 싫었어요.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니까 그만 지겨워져 버린 것 같아요. 그렇게 음악을 그만뒀어요. 그 이후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해야 할지를 많이 고민했어요. 음악 말고는 해왔던 게 미술밖에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미술을 선택하게 됐어요. 저는 기억이 희미한데,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제가 예고에 진학하겠다고 말했을 때 굉장히 반대하셨다고 해요. 끈질긴 성격이 아니라서 부모님께서는 제가 한다고 했다가 그만둘까 봐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예상외로 지금까지 계속 미술을 하고 있죠. 이제 어쩔 수 없어요. 돌이킬 수가 없어요. (웃음)

이: 결과적으로 예고에 진학하지 않으셨지만, 짧게나마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궁금해요. 

정: 그때 계원예고를 목표로 했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짧게 준비했어요. 석고 그리기나 수채화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만 미술학원에서 했어요. 그리고 제가 살던 동네가 워낙 작아서 예고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도 거의 없었고,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진학을 목표로 삼기에는 환경이 조금 아쉬웠죠. 그러다가 포기해버렸어요.

이: 한 가지 궁금한 점은 꼭 예고를 가지 않더라도, 일반 고등학교에서 미술 대학을 진학하고 작업 활동을 할 수 있지 않나요? 꼭 예고를 가야 했던 이유가 있었는지?

정: 음.. 글쎄요. 사실 그냥 뭔가 로망 같은 거였죠. 어릴 때 그런 생각 많이 하잖아요. 제 미래를 상상했을 때, 어떤 모습일지를 그려보면 예고를 다니면서 그림 그리는 게 가장 좋아 보였어요. 그래서 예고를 가야겠다고 무턱대고 덤볐는데,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고, 현실적으로 돈도 너무 많이 들고, 그리고 예고에 진학하는 친구들을 보면 주로 어릴 때부터 그림을 제대로 배워서 기술적으로 정말 잘 그리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에 비하면 저는 그냥 놀이로서 미술을 해왔고, 기술도 없고, 입학시험의 방향성도 전혀 파악 못 했죠. 예고 진학을 포기하고 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일반 고등학교에 가서 계속 미술을 하다 보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 독특하게도 일본 미술 대학교 진학을 준비하셨는데, 일본 미술 대학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정: 일본에 친척분들도 계시고, 친구도 있어서 어릴 적부터 자주 일본을 오갔어요. 그리고 철이 없는 소리일 수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앞으로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무조건 우리나라에서 살기 싫다기보다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죠. 게다가 저희 오빠도 미국에 있었기도 했고, 가까운 사람들이 주로 외국에서 생활하니까 그런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이: 지금까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일본 미술 대학교 입시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어떻게 준비를 하셨는지 궁금해요. 

정: 제가 일본 미술 대학교 입시를 준비할 당시만 하더라도 정보가 많이 없었어요. 다행히 입시 학원이 하나 있어서 학원에 다니면서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일본 미대에 관심 있는 학생도 많이 없었고, 정보도 없어서 당시에 같이 준비하던 친구들이랑 우리끼리 정보를 찾고, 번역하고 모든 걸 학생이 해야 하는(?) 조금 웃긴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과정을 직접 조사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입시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어떤 부분이 다르다고 생각하셨나요? 

정: 당시에 일본 입시는 답이 정해져 있는 한국과는 다르게 본인의 작업 스타일을 중요시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신선하다는 느낌도 받았고, 마음에 들었죠. 그리고 이건 이후의 이야기이지만, 독일에서 미술 대학교 입학을 준비해보니까 한국과 일본은 사실상 차이가 별로 없다는 걸 느꼈어요.

이: 그렇군요. 혹시 경험하신 일본 미술 대학교 입시 과정을 조금 자세하게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정: 저는 고등학교 1, 2학년 그리고 3학년 초반까지 디자인 학과를 준비하다가, 3학년 여름에 조소과로 바꿨어요. 디자인과를 준비할 때는 정물 소묘를 정말 많이 했고, 포스터 만들기, 색 조합을 통한 디자인을 주로 연습했어요. 그러다가 조소과로 방향을 바꾸고 시험을 쳤어요. 1차는 실기시험 그리고 2차는 인터뷰였어요. 실기시험에서는 정물 소묘, 흙으로 인체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실기시험 결과에 상관없이 인터뷰를 같이 봤어요. 어떤 학교는 그 이후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기도 하는데, 제가 시험을 쳤던 세 곳의 학교는 같았어요. 대부분은 비슷한 거로 알고 있어요. 기술적인 측면보다 학생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시험 과정에서 보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독일에서 입시를 경험하고선, 한국과 일본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단지 소묘 스타일이 조금 달랐을 뿐, 전체적인 틀과 채점 기준은 다르지 않았던 거죠.

이: 그렇군요. 독일 미술 대학교 (이하 ,,미대‘‘) 입학 준비에 관한 부분은 잠시 뒤에 이야기를 이어 가보겠습니다. 일본 미술 대학교의 입시 관련 정보를 찾고 번역해서, 필요한 정보를 취득하는 것부터 실기 시험의 유의사항 그리고 인터뷰까지. 기본적으로 일본어가 능통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오래전부터 일본어를 공부하신 건가요?

정: 당시에는 일본어를 꽤 했었어요. 저는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내신이랑 수능은 하지 않았고, 3년 내내 원어민 선생님이랑 일본어 수업을 하면서 외국인이 치는 일본 대학 시험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죠. (웃음) 영화나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기는 하는데, 독일에서 산지도 꽤 됐고 해서 지금은 독일어보다 더 못하는 것 같아요.

이: 일본어가 유창하더라도, 일본 미술 대학교에 관한 정보를 찾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잖아요. 관련 내용은 어떻게 찾으셨어요? 

정: 독일에서 일 년마다 작업실을 개방하고, 학생들의 작업을 전시하는 룬트강(Rundgang)과 같은 행사를 일본에서도 해요. ‘오픈 캠퍼스(open campus)’라고 여름에 큰 축제처럼 행사를 진행하는데, 그 시기에 맞춰서 일본에 매년 갔어요. 학과 교수님과 재학생을 만나서 학교 분위기, 입학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보를 모으고 정리했어요. 당시에 다니던 일본 미대 입시 학원이 엄청 작았는데, 지금은 정말 커졌더라고요. 반도 많이 생기고, 수강생도 많고.

타마 미술 대학교(Tama Art University)의 OPEN CAMPUS 모습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1T1AfmQcwgY&feature=youtu.be)

이: 여원 씨랑 친구분들이 모은 정보 덕분에 그 학원이 성공한 것 같은데요. 

정: 그렇죠. 전부 다 저희가 했죠. (웃음)

이: 앞서 고등학교 다니면서 내신과 수능을 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그게 가능한 일인지 문득 궁금하네요.

정: 학교 시험을 치기는 하는데, 일본 입시에는 점수가 반영되지 않아요.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고, 그림을 잘 그리고, 일본어를 잘하면 일본 미술 대학교 입시에 도전해볼 수 있는 요건이 마련돼요. 오히려 한국에서 수시, 정시를 통해서 학교에 가는 과정보다 단출한 것 같아요. 그리고 다니던 학교가 자사고 전환을 목표하던 사립 고등학교였고,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어학 중심의 반을 꽤 만들어서 운영했어요. 덕분에 3년 동안 원어민 선생님의 지도 아래에서 일본어 공부를 할 수 있었죠.

이: 개인적으로 이런 경우를 못 봐와서 그런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럼 일본 미술 대학교 진학에 관해서 부모님은 어떤 반응이셨어요? 더욱이 줄곧 음악을 시키고 싶어 하셨었는데, 한국도 아닌 일본이라는 다른 나라에서 미술을 공부하겠다는 여원 씨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을지 궁금해요. 

정: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일본 미술 대학을 생각하고 있고, 일본어를 집중으로 공부하고 입시를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학교에 가겠다고 말했죠. 저희 집에서 학교에 가려면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될 정도로 거리가 꽤 있었어요. 그런데도 그 학교에 가서 일본 미술 대학교 준비를 하겠다고 했죠. 그리고 워낙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말해와서, 부모님께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어요. 물론. 처음에는 반대하셨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어요.

이: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웃음)

정: 제가 워낙 끈질기게 고집을 피웠던 것도 한몫했죠.

이: 그렇게 일본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하셨는데, 중간에 그만두시고 독일로 오셨어요. 

정: 네. 합격했었죠. 그런데 제가 입학하던 해에 일본에 지진이 났어요. 2011년 대지진이 있기 전에 지진이 났었는데, 그때 그걸 직접 경험하고 나서는 도저히 못 있겠더라고요. 바로 한국에 돌아왔어요. 그리고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겠더라고요. 결국에 그만두고, 한국에서 일 년 정도 추스르면서 고민을 하다가 독일로 왔어요.

이: 제가 감히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저 역시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기 힘들 것 같아요. 돌아오시고서 한국에서 계속 지내는 건 고려하지 않으셨나요?

정: 한국에서 대학교에 가는 것에 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도 했고, 수능과 내신을 하지 않았으니까 지금 와서 다시 공부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었어요. 부모님도 걱정이 많으셨죠. 특히 아빠가 다시 일본으로 보내고 싶어 하지 않으셨어요. 그때 저희 오빠가 체육 재활 전공으로 독일 유학을 준비 중이었는데, 그래서 부모님께서도 독일로 가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저 역시 한국에서 공부하기는 힘들다고 판단을 했고, 유럽에 우선 가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왔어요. 그래서 사실 제가 독일에 오고 싶어서 왔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한국으로 돌아오고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던 상황 속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독일에 왔죠.

이: 독일로 오시는 걸 결정하고 나서, 언어나 생활을 조사(?)하는 등의 유학 준비는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 독일 미술 대학교 진학을 위한 유학원이 꽤 있더라고요. 그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곳에서 한두 달 가량 준비했어요. 그런데 제대로 된 준비는 하지 않았다고 보시면 돼요. 일본에서 돌아오고 나서 약간의 방황(?)을 했거든요. 더욱이 갑작스럽게 외부의 환경에 휩쓸려버려서 중심을 못 잡겠더라고요. 쉽게 말해서 많이 놀았어요. 독일에 와서도 마패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가, 비자 기간 막바지에 들어서야 부랴부랴 했었죠. 다행히 마패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입학에 필요한 어학 성적을 증명하기 너무 어렵더라고요. 고생 끝에 합격은 했지만, 많이 힘들었어요.

이: 갑작스러운 독일행에, 전에는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언어를 새로이 배우는 일이 쉽지는 않죠. 지금 할레에서 학교에 다니고 계시는데, 독일에 처음 오셨을 때도 할레에 계셨나요? 

정: 아니요. 베를린에서 계속 살다가 학교에 합격하고선 이사 왔어요. 유학 상담을 하면서 어느 도시로 가는 게 좋을지 물어보니까, 베를린에 어학원도 많고, 물가도 괜찮아서 많이들 선호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베를린으로 왔어요.

할레 미술대학교(Burg Giebichenstein Kunsthochschule Halle) 전경 (사진: 이정훈)

이: 앞선 이야기만으로는 할레라는 도시와 여원 씨의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것 같기도 한데, 할레로 오신 계기가 있었나요? 

정: 특별히 어떤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어요. 독일에 오기 전에 베를린, 뒤셀도르프 등의 큰 도시의 학교만 알고 있다가, 독일에 와서 알아보니까 학교가 많더라고요. 여러 곳 중에서 할레랑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에서 합격증을 받았어요. 원래는 사실 브라운슈바이크 미술 대학교에 가려고 했었어요. 학생 지원도 좋고, 작업 공간이랑 시설이 좋다고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합격에 필요한 어학을 증명하지 못했어요. DSH(Deutsche Sprachprüfung für den Hochschulzugang)라는 독일어 시험에서 점수 2를 받아야 하는데, 점수가 안 나오더라고요. 그러면서 비자에도 문제가 생기고, 일이 복잡해졌어요. 그 와중에 합격한 할레 미술 대학교의 서류 등록 기간이 지나서, 그 학기에 등록을 못 했어요. 다행인 건 할레의 경우에는 합격증을 받으면 어학 증명을 할 수 있는 2년의 유예 시간을 줘요. 그래서 입학을 일 년 미루고, 비자 문제로 한국에 잠시 갔다가 돌아와서 어학 문제를 해결하고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이: 어학 증명이 큰 걸림돌이었네요. 

정: 네 진짜 어학 때문에 고생이 많았어요. 아마 독일의 미술 대학교를 준비하시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실 거예요.

이: 학교 입학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정: 우선 인터넷으로 등록한 이후에 마패를 제출해요. 마패가 통과되면 실기 시험과 인터뷰를 3일 동안 보게 돼요. 저희 학교가 독일에 있는 미술 대학교 중에서 실기시험 일정이 가장 길고, 강도가 높은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하루에 두 개씩 실기시험을 삼일에 걸쳐서 진행해요. 인터뷰까지 포함하면 총 일곱 개네요. 제가 시험 칠 때는 판타지 소묘, 주어진 시를 보고 자유 작업, 흙을 사용하여 입체 작업, 포스터 만들기, 구도 감각 시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음…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그리고 마지막 날에 실기 시험 도중에 인터뷰하고선 전체 일정을 마무리해요.

이: 앞서 한국과 일본의 입시가 결국에 똑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실기시험의 구성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으니까 먼저 언급하신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정: 네. 독일 미술 대학교의 시험에서도 학생이 지닌 기술 능력을 살펴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개인이 지닌 예술적 잠재력을 최대한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기 위해서 노력해요. 그 점이 인상적이에요.

이: 실기시험 일정이 길기도 하고, 해야 하는 것이 꽤 많은데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정: 저는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베를린 예술대학교, 브라운슈바이크 미대 그리고 할레 미대 이렇게 세 곳을 지원했었는데, 베를린을 제외하고 합격했어요. 베를린에서 실기시험을 치면서는 개인적으로 지루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거든요. 그게 딱 보였나 봐요. 그래서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웃음)

할레에서는 시험 준비를 크게 하지 않았지만, 시험을 치면서 재밌고, 신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회화, 설치, 비디오에 비하면 금속 조각(Bildhauerei Metall)이라는 전공은 다소 생소한데, 이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정: 음.. 기술을 배우고 싶었어요. 일본 미술 대학교 진학을 준비하면서 미대를 졸업하면 밥 벌어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일본 유학을 하러 갈 때 조소과를 지원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저희 학교 조소과 안에 금속(Metall)과 인체(Figur) 두 개가 있는데, 홈페이지나 학생 작업을 봤을 때 인체(Figur)는 저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금속 조각(Bildhauerei Metall)과의 작업실 모습 (사진: 이정훈)

이: 기술을 배우기 위한 목적이 물론 전부는 아니시겠지만, 독특한 목적인 것 같습니다. 같은 학과 안에서 다른 학생들도 여원 씨와 비슷한 이유로 선택한 것인지도 궁금하네요. 

정: 제가 한 명씩 붙잡고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이유로 온 친구들이 꽤 있어요. 아무래도 독일에서는 기술을 하나 익혀서, 오랜 기간 내공을 쌓으면 마이스터(Meister)로서 사회에서 존중받으면서 경제적으로 충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저희 학과는 연령대가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으로 조금 높은 편이에요. 이미 직업 교육(Ausbildung)이나 다른 학교에서 공부(Studium)를 마친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그런지 꼭 예술가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겠다기보다 기술을 배우고 싶고, 그걸 예술 분야에서 발휘하고 싶은 이유로 많이 오는 것 같아요. 그냥 무턱대고 들어오는 건 확실히 아니에요.

이: 학교의 전체적인 커리큘럼도 이런 목적을 잘 받쳐주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어떻게 구성되어있나요? 

정: 저희 학교가 아카데미(Akademie)가 아닌, 호크 슐레(Hochschule)이다 보니까 기초수업(Grundlagen)을 듣고서 학점을 채워야 해요. 그래야지 졸업을 할 수 있어요. 2년 과정이고,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포함되어있어요. 대부분 실기 수업이에요. 입체, 콜라주, 인체 소묘, 비디오, 사진 등 다양해요. 이렇게 2년간 기초수업에 집중하고, 3학년부터는 기초 수업을 안 들어도 되기 때문에 개인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요.

이: 금속을 다루는 실기 수업은 없나요?

정: 기초 수업 이외에 입학 후에 1~2주 정도 작업장(Werkstatt)에 가서 전문적으로 금속을 다루시는 분한테서 용접이나 철을 녹여서 담금질하는 법을 배워요. 학과마다 재료에 맞춰서 작업장 수업을 진행해요. 저희는 쇠나 철을 다루는 수업이고, 도예과는 흙을 다루는 법, 유리공예는 유리를 다루는 수업을 받죠. 물론, 본인이 원한다면 다른 학과에서 진행하는 작업장 수업도 참여할 수 있어요.

금속을 다루는 작업장(Werkstatt) 모습 (사진: 이정훈)

이: 앞서 개인 작업을 3학년 이후부터 시작한다고 하셨는데, 1·2학년이더라도 본인 작업이 중요한 건 아닌가요?

정: 매우 중요하죠. 그렇지만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이 꽉 차 있다 보니까, 현실적으로 개인 작업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요. 이 부분에서 학생들의 불만이 계속 쌓여있었어요. 게다가 교수님들도 기초 수업의 필요성은 인정하시지만,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본인의 작업을 못 하니까 불만이 많으셨고요. 그래서 학교 커리큘럼을 다루는 입학처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자체적으로 투표도 했었는데 해결이 안 됐어요.

이: 세부적인 일정을 조절하면 기초수업과 개인 작업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조금 아쉬운 점이네요. 개인 작업을 시작하면서는 들어야 하는 수업은 없는 건가요? 

정: 1·2학년 때 기초 수업을 전부 못 들은 상태라면, 3학년에 올라가서도 계속 들어야 해요. 저 같은 경우도 5학기를 마쳤지만, 기초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게 남아있어요. 그래서 개인 작업과 같이하고 있죠. 게다가 세미나(Seminar)와 강의(Vorlesung)도 들어야 해요. 이 수업은 개인 작업을 시작하는 3학년에 올라가서도 계속해야 해요.

이: 졸업하기 쉽지가 않네요. 

정: 네. 그러게요. 쉽지 않네요. 게다가 3학년에 올라가서도 세미나(Seminar)와 강의(Vorlesung)가 계속 있어서 공부에 끝이 없다는 걸 실감하고 있죠.

이: 세미나와 강의는 어떤 수업인가요? 주제가 정해져 있나요?

정: 세미나는 토론식 수업이고, 강의는 교수님이 앞에서 진행하시는 수업이에요. 주로 미학, 철학, 미술사, 심리학을 다루는데, 미술사는 필수로 들어야 하고 미학·철학·심리학 강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들어요. 그리고 학기 수업을 끝내면, 마지막에 소논문(Hausarbeit)을 하나씩 써서 제출해야 해요.

이: 학기가 시작되면 눈 뜰 새가 없겠어요. 

정: 네. 지금은 방학이라서 좀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학기 시작하면 엄청 바쁘죠. 더욱이 외국인 학생으로서 세미나랑 강의를 듣고 이해하기 너무 어렵더라고요. 특히 철학이나 미학 수업은 이론이나 용어가 너무 어려워서 엄두가 안 나요.

이: 독일에서는 클라쎄(Klasse)라고 해서 학과 안에서 교수님에 따라서 반이 나뉜다고 들었는데, 여원 씨가 속한 학과는 어떤가요? 

정: 저희는 학교에 지원하고, 입학할 때부터 학과가 세분되어있어요. 학교마다 다른 거로 알고 있어요. 아카데미랑 다른 학교에서 공부 중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학년 때는 해당 학기에 입학한 학생들 모두 같이 수업을 듣고, 2학년에 올라갈 때 클라쎄(Klasse)를 정한다고 하더라고요. 디자인 캠퍼스는 잘 모르겠지만, 순수예술 캠퍼스는 전공 당 교수님이 한 분씩 계셔서 클라쎄(Klasse)가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이: 전공 담당 교수님과 개인 작업에 관한 의견을 주고 받는 수업은 없나요?

정: 교수님께 개인적으로 상담 혹은 면담을 신청해서 작업을 보여드리고 의견을 나누기도 하지만, 주로 플래눔(Plenum)이라 불리는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과 교수님이 함께 작업에 관한 생각과 의견을 주고받아요. 막 입학해서 기초수업을 듣는 1학년부터 10학기 졸업 예정 학생까지 참여하는 수업이에요.

이: 수업은 어떻게 진행이 되나요? 

정: 발표 형식으로 진행돼요. 본인이 진행하고 있는 작업을 보여주면서 어떤 걸 하고 있고, 진행 과정이 어떻고, 앞으로 발전시킬 방향은 이렇다 등을 이야기하고, 질문을 받고, 대답해주고.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가 수업이죠. 그리고 이 발표는 학기 초에 교수님이 목록을 보내주세요. 그러면 목록에 적힌 날짜에 발표하는 거죠. 그때까지 꼭 작업을 완성할 필요는 없고, 진행 중인 작업을 보여주면서 이야기 나누는 게 일반적이에요.

이: 모든 학생이 한 학기에 한 번씩 발표를 하는 건가요?

정: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플래눔은 3주에 한 번씩 있고, 학생은 많다 보니 결국에는 한 학기에 한 사람당 한 번씩 밖에 발표를 못 해요. 그 외에는 교수님께 따로 신청을 해서 일 대 일로 크리틱을 받거나, 아니면 학생들끼리 하는 방법도 있죠. 다들 개인 일정이 있다 보니까 한 번에 모이기 힘들더라고요.

할레 미술 대학교(Burg Giebichenstein Kunsthochschule Halle)의 디자인 캠퍼스 모습 (사진: Adrian Parvulescu)

이: 플래눔(Plenum)이 3주에 한 번씩 있다는 말이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 우선 저희 학교는 크게 캠퍼스가 두 개로 나눠요. 하나는 순수 미술(Freie Kunst), 다른 하나는 디자인(Design) 캠퍼스로 나뉘는데, 플래눔(Plenum) 일정은 순수 미술(Freie Kunst) 캠퍼스에만 해당해요. 한 달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전체 일정은 일반 주간(Normalwoche)과 아틀리에 주간(Atelierwoche)으로 나눠요. 2주는 일반 주간으로서 기초 수업, 세미나, 강의를 듣는 기간이고, 아틀리에 주간은 본인 작업을 하는 기간이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그리고 대부분 학과가 아틀리에 주간 중 하루에 플래눔을 가져요. 이때 발표가 진행되는 거죠. 적게는 네 명, 많게는 여섯 명까지 발표해요.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늦게는 저녁 11시까지 플래눔이 이어져요. 발표는 보통 네 시나 다섯 시에 끝나고, 저녁 휴식을 가진 뒤에 모여서 또 이야기를 나눠요. 대게 워크숍을 다녀왔거나, 봤던 전시 그리고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나누는데, 잡담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서 나름대로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

이: 그렇게 하루 동안 학과의 모든 학생이 같이 수업을 들으면 다들 꽤 친하겠어요. 

정: 친하기도 친한데, 단합력(?)이 좋은 것 같아요. 더욱이 저희는 힘쓰는 학과라서 무거운 재료 옮기는 걸 도와주거나, 재료 주문할 때도 공동 구매를 많이 하는 편이죠.

이: 플래눔(Plenum)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질문이나 작업에 관한 서로 간의 크리틱이 활발한지 궁금합니다.

정: 글쎄요..플래눔을 할 때 서로의 작업에 대한 질문이나 크리틱이 생각보다 활발하지 않아요.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제가 너무 기대를 했던 건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의아했어요. 그런데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다른 친구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부분이어서, 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눴고 그 이후에는 전보다는 나아진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독일어를 거의 못 알아듣고, 말도 잘 못 해서 다른 친구들이 제 작업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안 하더라고요. 시간이 조금 지나서 학교에 적응도 하고, 독일어 실력도 그만큼 올라간 이후에는 작업에 관해서 이야기를 꽤 하는 편이에요.

이: 플래눔(Plenum)에는 교수님도 참여하시는 거죠? 학생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것 같은데, 그 안에서 교수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하네요. 

정: 아무래도 가장 큰 역할은 크리틱을 하는 거죠. 그런데 학생들과 큰 차이가 없어요. 그러니까 크리틱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본인 생각과 달라서 교수님이랑 말다툼하는 일도 더러 있어요. 교수는 학생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중재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앞서 종종 재료를 공동 구매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재료비는 개인 부담인가요? 학교에서 지원은 없는 건지?

정: 보통 재료비는 개인이 부담해요. 저희 학과의 경우에는 철이나 쇠를 다루다 보니까 용접을 많이 해요. 산소용접과 기계 용접이 있는데, 산소용접에서 사용하는 작은 금속은 학교에서 지원해줘요. 주재료는 본인이 사야 하지만, 용접에 쓰이는 금속은 제공해주는 거죠. 개인적으로 장학금을 받으면 재료비를 충당할 수 있긴 하지만, 그것도 학과에서 한두 명만 가능한 일이다 보니 힘들죠. 한 가지 재료로 계속 작업하는 친구는 알아서 후원 업체를 찾더라고요.

이: 그러면 주재료는 보통 어디서 구매하나요? 

정: 학과 안에서 누가 재료를 사고 싶다고 전체 메일을 보내면, 학생들끼리 모여서 금속이나 목재를 판매하는 곳에 공동으로 주문해요. 아니면 한 번씩 차를 빌려서 고물상에서 많은 양을 싸게 사요. 그리고 정말로 돈이 없으면 길거리에 버려진 걸 주워서 쓰는 경우도 많아요. 그리고 졸업한 학생들이 놔두고 간 걸 녹여서도 쓰는데, 그래서 한 번 대청소하고선 그런 건 나중에 쓰려고 모아놔요.

이: 재료비 부족으로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사용하지 못하면 작업도 많이 달라질 것 같은데, 학교의 지원이 아쉬운 부분이네요. 학생들이 받는 지원은 거의 없는 건가요? 

정: 학과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크게 지원받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나마 학비가 많이 안 들어서 다행이죠. 전에는 학기당 70유로씩 냈었는데, 올해부터는 할레 – 라이프치히(Leipzig)를 왕복할 수 있는 교통권이 포함돼서 190유로를 냈어요.

할레(Halle)의 한적한 거리 모습 (사진: 이정훈)

이: 그나마 위로가 되겠어요. 학비 이야기에 이어서 할레(Halle)의 전반적인 물가가 궁금합니다.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 특히 집세가 얼마나 드는지 궁금합니다. 괜찮으시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정: 지역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제가 사는 곳을 예로 말씀드리면 공동 주거(WG; Wohngemeinschaft) 형태의 집에서 살고 있고, 11크바미터 크기의 방에서 지내고 있어요. 한 달에 집세로 130유로 정도를 내고 있고, 부대 비용(Nebenkosten)을 포함해도 160유로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런데 학교 근처에 사는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랑 같은 크기의 방이지만 250유로 안쪽으로 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비싼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집세 그리고 식비와 같은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시고 계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정: 부모님으로부터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 지출 부분은 아직 지원을 받고 있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아르바이트해서 채워요. 주로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번역이나 통역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집세가 저렴하고 도시 안에서 교통비가 안 드니까, 재료비나 돈을 많이 쓰는 상황이 아니라면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할레(Halle)라는 도시에 관해서 조금 더 질문을 드리자면, 도시 안에서 전시를 보거나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는 편인지 궁금해요. 예술 분야의 인프라는 어떤가요?

정: 공간은 꽤 있지만, 대부분은 학교와 관련된 갤러리예요. 그래서 전시도 주로 학생이나 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 위주로 열려요. 새로운 작가의 작업을 보고, 자극도 받고, 영감도 받고 싶은데 환경적으로 아쉽죠. 그래도 학기 중에는 너무 바빠서 그런 아쉬움을 느낄 틈도 없어요. 가끔 답답하긴 하죠. 속에서 ‘아 전시 봐야 해. 너무 갇혀있어.’ 이런 느낌이 한 번씩 와요. 예전에 주말마다 라이프치히(Leipzig)에서 아르바이트했었는데, 일을 마치고 근처의 갤러리에 가서 새로운 작가와 그 작업을 보면서 생각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지금은 라이프치히에서 일하지는 않지만, 가끔 날 잡고 베를린이나 라이프치히에 가서 전시만 보고 오기도 해요. 그리고 할레에 큰 규모의 화방이 없어요. 작게 운영되는 화방이 있지만, 너무 비싸요. 그래서 주로 인터넷으로 주문하거나, 라이프치히까지 나가서 재료를 사 오는데, 매번 가기에는 교통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부담이었어요. 다행히 올해부터는 큰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인프라는 부족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학교 소유의 갤러리인 Burg Galerie im Volkspark 의 모습 (사진: Matthias Ritzmann)

이: 그렇다면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룬트강(Rundgang)이 꽤 중요한 행사가 될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정: 중요하죠. 그만큼 교수님과 학생들 모두 긴장하는 것 같아요. 각 학과에서 작업실을 전시 공간으로 바꾸고 작업을 보여주는 방식이에요. 저희는 작업의 부피가 크다 보니 자리 배치가 꽤 중요해요. 그래서 교수님이 그 부분에 있어서 많이 개입하시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할레 미대에 진학하고 싶어서 분위기와 작업을 보러 오는 예비학생들이 많아서 예민하신 것 같아요. 자리 배치는 우선은 학생들이 원하는 곳에 원작의 십 분의 일 비율 모델을 세워보고서 정해요. 그리고 일주일 전에 실제 작업을 세우고 다시 한번 위치를 조정해요. 전시 직전까지 작업 위치는 계속 바뀌어요. 그래서 간혹 교수님과 학생 사이에서 마찰이 생기기도 하는데, 잘 조율해서 준비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룬트강이 길지는 않지만, 그 기간은 동네 축제와 같은 분위기예요. 주로 지역 주민 혹은 학생들의 지인이 많이 오는데, 작업에 관해서는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학생들의 작업이 많이 팔리더라고요. 신기했어요.

룬트강(Rundgang)에서 작업을 살펴보는 관객 (사진: Mendez Klehm)

이: 작업은 주로 누가 사는 거죠? 

정: 딱 봐도 살 것 같은 사람이 있어요. 대부분은 갤러리스트나 개인 콜렉터인데, 룬트강 기간에 맞춰서 방문해서 작업을 사가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 학과에서도 꾸준히 작업을 파는 친구도 있고, 이번 룬트강에서 연락처를 받은 친구들도 꽤 있더라고요.

이: 주로 외부에서 작업을 사 가는 구조인 것 같네요. 졸업 이후에도 할레에서 작업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가요? 

정: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그래도 최근 디플롬을 졸업한 같은 과 독일 친구들은 전부 할레에 남아있고, 공동 아틀리에를 만들어서 작업하더라고요. 그리고 베를린처럼 큰 도시로 옮겨가는 모습도 많이 보여요. 요즘은 베를린에서 생활하기가 워낙 비싸서, 라이프치히로 많이 가더라고요. 베를린과 할레의 딱 중간이라서 생활비 부담이 적으면서, 작업을 보여줄 기회가 많아서 괜찮은 곳이라는 평이 많아요.

이: 이전에 동독에 속했던 도시로 알고 있는데, 특유의 분위기가 있나요? 전에 드레스덴에 계셨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외국인이고 특히 동양인이라서 빤히 쳐다보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시선이 불편해서 베를린으로 오시기도 하던데, 할레는 그런 면에서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정: 그런데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 동독이라서 외국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느 도시나 나라를 가든 그런 사람들은 다 있어요. 사실 여기서 지내면서 인종차별 발언도 듣는 일도 꽤 있지만, 할레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도시가 워낙 작아서 어디를 가든 전부 학교 친구들이고, 아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쳐서 오히려 편하기도 해요.

이: 그렇군요. 지역 혹은 장소의 문제라기보다는 결국은 사람이 문제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어느덧 인터뷰의 마지막 부분에 다다랐는데요. 개인 작업이 궁금합니다.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가 있는지? 

정: 저는 지금까지 의도적인 것과 의도적이지 않은 것에 관해서 작업을 해왔어요. 사실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아직 제 머릿속에서도 뒤죽박죽이라 짧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학교에 들어와서 ‘무너진 건물이 왜 서 있는 건가’에 관한 의문을 작업에서 다루고 있어요. 한국에는 방치되어있는 건물이 많이 없잖아요. 있더라도 대부분은 재개발 계획이 잡혀있어서 마냥 방치된 건 아니죠. 이에 반해 독일에는, 특히 할레에 오니까 방치된 혹은 버려진 건물이 너무 많았어요. 저는 그게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왜 저 건물은 버려진 채로 혹은 무너져있는 형태 그대로 아직 서 있지? 그대로 있지? 그런 걸 보면 방치된 순간의 시간과 그 속의 공허함이 느껴져요. 그러면서 그 속에서 어떤 부분이 의도되었고, 어디가 의도되지 않은 것인지를 계속 파헤치게 돼요. 그래서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작업해야겠다고 생각은 있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정여원 작가의 드로잉 작업 <Things we’re missing at the moment>, 2015 (사진제공: 정여원)

우선은 드로잉을 막 했어요. 그 건물을 보면서 느끼는 것을 담아내면서 고민의 지점을 어떻게 뻗쳐 나가야 할지 생각했는데,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뻗쳐나가기보다 근본적인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됐어요. 건물을 이루는 기본적인 것들로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나무토막과 철사를 계속 쌓고, 다시 부숴버리는 작업을 했어요. 쌓았다가 부쉈다가를 반복하고 그걸 영상으로 찍었어요. 그러면서 그 과정 자체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작업을 해나가야 하는지 방향성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느낌이 좀 들었죠. 사실 지금은 약간 작업의 진행이 고착 상태인데, 드로잉을 하고, 그걸 입체로 구현하는 과정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입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금속 용접까지 가미해서 재료 범위도 확장하고, 이에 비례해서 작업 내용도 조금 더 선명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정여원 작가의 작업 <the fairbadluck para todo>, 2017 (사진제공: 정여원)

이: 저는 쇠나 철을 다루는 전공을 하시길래 작업 역시 그런 재료만 다루시나 싶었는데, 제 생각이 짧았네요. 드로잉, 영상, 설치, 용접 등. 혼합해서 작업을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앞으로의 작업 모습도 기대됩니다.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정: 일단은 졸업하는 것이 중요한 계획이죠. 그리고 아마 디플롬을 마치고, 마이스터슐레(Meisterschule)까지 할 것 같아요. 학생 신분으로 가능하면 오래 있고 싶어요. 그리고 전부 마치고서 저도 라이프치히로 갈까 생각 중이에요.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 안 할 수가 없는데, 할레에서는 작가로서 살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도 라이프치히에 가지 않을까 싶네요. 거기서 뭐가 됐건 해보려고요. 그리고 기회가 되면 스페인이나 헝가리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참여해보고 싶어요. 계획은 항상 많죠.

이: 졸업까지 무사히 잘 마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작업 역시 많은 기대를 하고 있겠습니다. 오늘 긴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 수고 많으셨어요. 할레까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인터뷰의 원문은 필자의 개인 홈페이지(www.derjeonghun.com) 혹은 브런치(https://brunch.co.kr/@kunstjeonghun/38)에서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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