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연구 공동체 반짝_하상현의 ‘아이소메트릭’ : 멈춘 몸, 움직이는 사물

이미지 연구 공동체 반짝(권태현, 박시내, 이민주)

하상현, 〈아이소메트릭〉, 퍼포먼스, 50분, 2018

인간의 몸은 움직이고, 사물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인간의 몸을 멈추기 위해서는 뜻밖에 많은 힘이 필요하고, 사물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른 힘을 주어야 한다. 너무도 자명한 법칙을 상기하며 하상현의 작업 〈아이소메트릭〉을 살펴본다. 그의 작업이 퍼포먼스와 오브제의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법칙들을 뒤섞어 놓기 때문이다. 흔히 플랭크라 불리는 자세로 알려진 ‘아이소메트릭(Isometric)’ 운동은 신체를 멈추고 버텨내는 운동 방법이다. 하상현의 〈아이소메트릭〉은 일시적으로 멈춘 몸과 오브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병치한다. 그것은 퍼포먼스와 조각이라는 미디엄을 교차시키는 차원에서도 흥미롭고, 한편으론 미니멀리즘과 이미지라는 문제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이소메트릭〉은 오브제, 퍼포머, 그리고 관객이 각각 서로 교차하며 유기적 경험을 구축한다. 퍼포먼스는 오브제에서 시작된다. 관객은 퍼포먼스가 펼쳐질 공간에 들어서며 신체의 움직임을 기대하지만, 스태프의 안내를 따라 들어선 공간은 전통적인 화이트큐브를 연상시킨다. 그곳에는 몇몇 오브제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하얀 공간에 놓인 파이프, 고무 소재의 파이프 보온재, 거울 등의 ‘즉물적 사물(Literal Objet)’들, 다시 말해 미니멀리즘 전통과 연결되는 오브제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것을 둘러보는 관람 경험은 퍼포먼스보다는 조각 전시를 상기시킨다. 그곳에서 움직임을 수행할 신체는 찾을 수 없다. 다만, 보는 이를 포함한 다른 관객들이 있을 뿐이다. 이내 공간은 암전되고 관객은 빛과 소리를 따라, 들어온 통로로 다시 이동하게 된다. 지나올 때 커튼으로 가려져 있던 통로는 암막이 거두어지자 아래층의 넓은 공간이 내려다보이는 구조를 드러낸다. 밑으로 스크린과 그 앞에 작은 오브제가 놓여있다.

스크린은 이어지는 듯 끊어진 파편적 텍스트로 관객에게 이야기한다. 쿠키, 욕망, 접시, 룰리라는 고릴라 등으로 마구 전치되는 기표들 사이를 오가는 텍스트는 음산한 사운드와 함께 스크리닝 된다. 그것은 룰리가 쓰러지고 죽어가는 과정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끝이 나고, 관객들은 다시 빛을 따라 처음의 하얀 공간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공간은 이전의 구성과 차이를 보인다. 검은 옷을 입은 여성 퍼포머가 숨을 죽이고 인체 스케일의 검은 거울 옆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그것은 얼핏 텍스트와 연동되며 일종의 선형적인 서사를 암시하는 듯하지만, 퍼포먼스가 진행되며 서사의 가능성은 금방 깨져버린다. 오브제에서 시작한 관람 경험은 이제 인간의 몸과 그 움직임 속에서 뒤엉키며 재편되기 시작한다. 신체가 즉물적 오브제 옆에 사물처럼 놓인다. 검은 거울과 연동되며 누워있는 인간의 몸은 능동태 ‘눕다’에서 피동적인 ‘놓여있다’로 그 양상을 달리한다.

하상현이 구축하려는 이러한 오브제와 신체의 관계는 미술사를 딛고 논쟁적인 ‘인간형태론(anthropomorphism)’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서로 적대하였지만, 모더니스트들과 미니멀리스트들은 모두 전통적인 환영주의를 배척하였다. 그러한 맥락에서 미니멀리즘의 비판자들은 그것이 가지는 추상의 형태가 오히려 인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논란을 제기한다. 그것의 인체 스케일과 미니멀한 오브제의 볼 것 없음이 오히려 어떠한 형태를 찾으려는 추동으로 수렴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미니멀리즘은 “네가 보는 것이 네가 보는 것이다(What you see is What you see)”라고 단언했지만, 선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추상의 형태에 투사하려는 태도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미니멀리즘 당시의 논의들을 넘어 90년대 이후에도 다시 설정되는 인간형태론은 순수한 시각적 지각의 불가능성이라는 논점으로 계속 이야기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즉물적 오브제와 함께 놓인 인간의 몸을 물화하려고 했을 때, 발생하는 효과에 대한 질문이 이 작업의 한 축에 자리한다. 멈추려고 하지만, 멈추어지지 않는 몸, 멈출수록 더 생동하는 몸, 무엇보다 눈이 달린 대상으로서의 몸을 관객들은 보고 있다.

나아가 오브제와 퍼포먼스-연극과의 관계 설정은 마이클 프리드의 미니멀리즘론을 뒤집는 형세이다. 미니멀리즘은 조각이 놓인 공간을 작업에 포함시켰다는 것, 나아가 그것을 관람하는 관객이 외려 작업의 핵심적인 주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그 오브제들은 더 이상 물리적 형태에 국한되지 않고, 그것을 보는 사람의 감각에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니멀리즘 오브제가 놓인 공간은 무대가 되고 그 위에서 의미를 생산하는 배우는 바로 관객이 된다. 마이클 프리드는 그것을 ‘연극성’이라며 모더니스트 형식주의의 입장에서 비판한다. 그러나 하상현은 미술에 대한 부정으로 비판받았던 연극성을 전면화한다. 미니멀리즘의 연극성이 신체가 오브제에 개입하면서 생기는 상황에 관심을 뒀다면, 그는 더 나아가 인간의 몸을 공간에 배치된 오브제들과 등치시키며 신체를 물화시키는 지경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하상현은 조각적 전통을 퍼포먼스로 전유하려 한다.

〈아이소메트릭〉에서 연출되는 장면들을 살펴보자. 퍼포머는 몸을 오브제와 겹쳐놓으려 하는 반면, 오브제는 가만히 멈춰있기를 거부한다. 한 퍼포머가 물구나무를 서고, 옆의 또 다른 퍼포머는 쉽게 세워지지 않는 얇은 쇠기둥을 꼿꼿이 세우려 시도한다. 몸을 거꾸로 세워 버티는 것보다 일련의 오브제를 고정하는 일이 더 힘들어 보인다. 또한 오브제를 세우는 시간이 몸을 세우는 시간보다 길어지고, 그것을 고정하려는 시도에서 사물의 미세한 움직임은 오히려 강하게 감각된다. 한편, 또 다른 장면에서 벽에 기대어진 고무 파이프는 조금씩 미끄러지며 스스로 움직인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오브제와 몸은 교차되며 세워지고 움직이기를 반복한다. 조각과 신체의 형상은 잠시 병렬적으로 겹쳐지다가도 이내 위태로워진다. 문제는 몸과 오브제가 모두 정지하기를 시도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실패한다는 것이다.

퍼포머는 본격적으로 아이소메트릭의 루틴을 수행하며 공간을 타이머의 시간과 정해진 걸음으로 마치 그리드를 그리듯 단위화한다. 이때 균질하게 나누어진 공간 속에 배치되는 몸은 순간 물화되고, 멈추는 것에 성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지하듯 아이소메트릭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거스르는 운동이기 때문에 정지의 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금세 타이머가 울리고 몸은 다시 움직인다. 동시에 같은 공간에 개입되어 있는 관객들은 퍼포머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으려 지속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공간을 가로지른다. 달리 말해 관객들의 불규칙한 움직임과 그들의 부피는 균질화된 공간과 오브제들의 배치를 흩트려놓는다. 더불어 퍼포머는 멈추어 있는 오브제의 위치를 바꾸거나, 밖으로 가지고 나가며 공간 속에서 관객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점점 늘려나간다. 다른 한편, 퍼포머에 의해 하나씩 지워지는 조각들은 공간에 처음 자리했던 순간부터 온전히 정지한 적이 없었다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하상현이 구축한 상황 속에서 조각은 고정되는 과정에서 움직이기를 시도하고, 퍼포머의 몸은 움직이는 과정에서 고정되길 도전한다. 그 역설과 교차가 〈아이소메트릭〉의 수행성의 한가운데에 있다.

공연의 후반부, 흑경을 쌓아 만들어진 검은 직육면체의 형태와 인간의 몸이 함께 놓인다. 여기에서 인간 스케일의 오브제와 인간의 육체가 연동되며 하상현의 퍼포먼스가 결정적으로 특정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몸을 멈추는 운동을 반복할수록 신체는 계속 소진된다. 하지만 정지의 수행 속에서 역설적으로 인체는 더욱 생동한다. 힘을 잃어가는 신체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커져가는 들숨과 날숨의 격이기 때문이다. 조각과 퍼포먼스의 사이에서 멈춘 몸과 움직이는 사물, 움직일 몸과 멈출 사물의 형세가 뒤섞이며 육체와 물체, 삶과 죽음, 운동과 정지의 관계를 재고하는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소메트릭〉이 열어낸 시공간에서만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이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일상의 법칙이 명료하게 작동하는 세계로 돌아가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오브제들은 멈춰 설 것이고 멈췄던 몸들은 금방 살아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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