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호정_광주,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들

허호정(이미지 연구 공동체 반짝)

《상상된 경계들》은 뿔뿔이 흩어진 전시들을 느슨하게 묶는다. 큰 제목 아래 각 전시는 ‘경계’라는 어휘의 정치적 함의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와 입장을 선보였다. 이를테면, 일종의 위기 국면을 맞은 인류/애, 사회-역사적 트라우마에 반응하는/반응하지 못하는 결과물로서 증상들과 그 수집, 이 모든 위기에 대한 안일한 대처를 제공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보여주는 등.

그러나 기대 이상으로 비대한 전시는, 미술과 경계를 넘는 모든 종류의 혁명 가능성을 희미하게 만든다. 어느 소설가가, 대략 ‘예술이란 혁명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키지만 그것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보증한다’고 쓴 말을 확인하듯 말이다. 이 같은 시니시즘과 더불어 비엔날레의 비효율성 · 비가시성을 인지한 관객이라면, 《상상된 경계들》에 대한 평은 더욱 아쉬웠을 것이라 본다. 그럼에도 하루 이틀을 꼬박 들여 본 전시에서 남는 것이 고작 몇 개의 ‘인상’ 뿐이라면, 씁쓸하다 못해 슬픈 기분마저 들지 않을까.

2년마다 걸리는 열병의 도시에서, 우리가 여전히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이어지는 글은 두 차례 비엔날레 전시관과 옛 국군광주병원에 방문한 후의 감상이다. 그 중에서도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관찰한 한 작가의 작품을 깊이 들여다본다.

<이동하는 경계들>(Mixed media installation; chairs form the Armed Forces Gwangju Hospital, vintage prosthesis and vintage shoes, Film installation on screens, 2018)(비엔날레 제 2전시관)
<영원한 지금>(Installation; wooden beams from traditional Korean houses, metal staples and metal plinths, 2018)(구 국군병원)

카데르 아티아(Kader Attia: 1970-)는 광주 비엔날레 커미션 작업으로 <이동하는 경계들(shifting borders)>과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을 제작했다. <이동하는 경계들>은 비엔날레 전시 본관 두 번째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작업이다. 작업은 의자에 앉은 의족과 마네킹 하체로 이루어진 오브제 다수와, 스크린이 바닥에 놓인 다채널 영상으로 구성된다. 영상은 <근대성의 역설>, <식민주의의 재활용>, <카타르시스: 산 자와 죽은 자가 육신을 찾다>라는 이름의 셋으로 구성된다. 각각은 한국의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베트남 전을 둘러싼 논의와 현상들을 조명한다. 그리고 오브제는 구 국군병원에서 가져온 의자를 활용해 그 위에 앉은 신체의 형상을 취한다.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차로 20 분 거리에 있는 구 국군병원의 폐허 건물에는 역시 아티아의 <영원한 지금>이 설치된다. 같은 장소에 아핏차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의 신작도 함께 배치된다.1) 구 국군병원은 2010년 이후로 폐쇄, 국군 통합병원으로 흡수되었고, 1980년 5.18 당시에는 다친 시민군을 이송해 치료했던 곳이다. 이 같은 이유로 폐쇄 이후의 건물은 현재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서 작가는 징이 박힌 나무 기둥을 이전의 정신과병동 자리, 병실 각 셀에 하나 혹은 다수를 세우고 앉히고 눕혀 놓았다. 공간이 낙후되어 여러 오염과 위험이 우려되는 바, 관객은 이동 가능한 경로를 제시해주는 가이드를 따라 약 30분 동안만 작품과 그것이 놓인 공간을 들여다볼 수 있다.

 

1. 증언: 이야기의 가시성

일견, 카데르 아티아는 각 40여 분이 소요되는 세 개의 영상2)에서 모두 증언의 수집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증언’이라는 것이 해당 사태에 가담한/참여했던/한 때 속했던 사람의 진술을 목표한다고 하면, 카데르 아티아의 <이동하는 경계들>의 ‘말’들은 다른 위상을 점한다. 물론 영상에는 5.18 시민군 희생자의 유족과, 시민군 참가자, 그리고 이들을 진압하는 임무를 가졌으나 시민군을 도운 죄목으로 고문을 당해야 했던 국군 소속 직원의 이야기가 포함된다. 한편, 상당수의 인터뷰이는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많은 경우 연구자이고, 사건 당사자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투입된 정신과 의사이고, 샤먼(들)이며, 샤먼을 도와 굿을 꾸리는 제례음악사이다.

작업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사건을 겨냥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우회한다. 가령 사회학자, 문화학자, 미술사가, 심리학자와 같은 전문가의 언술이 영상에 포함될 때, 담기는 말들은 그 자체로 ‘순수한 (혹은 순진한) 증언’이기를 포기한다. 말해진 사건은 전문가의 말, 그러니까 해석과 진단의 형식을 통과하며 지나간 시간의 더께를 입기 때문이다. 작가는 5.18 시민군과, 희생자 유족, 진압군 측 유족과 이들 전문가들을 따로 인터뷰에 담아 같은 영상에 뒤섞는다.

하지만 전문가의 소견을 담았다 하더라도 영상이 문제시하는 것은 목소리/이름의 권위에 있지 않다. 권위를 빌려서 객관을 마련하지 않을 뿐 아니라, 권위를 억지로 부수지도 않는다. 화면엔 말하는 사람의 이름, 직업, 사건과의 관계 –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과 아닌 사람의 구분이 드러난다. 카메라는 거의 모든 이를 같은 구도의 건조한 인터뷰 형식으로 비추고, 질문자는 애매한 문장의 상술을 요구할 때를 빼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에 관객이 보는 것은, 개별 이야기들의 힘 자체이다. 화면 안 사람들은 반복해서 베트남 전 당시 죽은 군인들, 5.18 당시 죽은 친구들, 사건 후 고통을 겪던 자신과 아내가 제때 돌보지 못해 죽은 갓난 딸에 대해 말한다. 제례음악사 박필수 씨는 현장으로 돌아가 주운 물건들이 “영의 집(house of spirit)”이 된다고 이야기하고, 시민군이었던 박천만 씨는 딸아이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송산교 근처에 묻혔다 들은 것을 다시 전한다. 그리고 눈물을 훔친다.

베트남의 국립인문사회대 교수 응웬 티 히엔(Nguyen Thi Hien)교수는 형제의 결혼식에서 시누이에게 오빠의 전우가 빙의되는 것을 본 경험을 말한다. 이때 세 개의 영상은 여러 사람의 입을 빌어 전후 트라우마의 문제를 제기하며,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치하에 있을 당시 조상을 기리기 위한 제의가 탄압 받았던 것을 상기한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머니즘과 기독교 및 이데올로기가 한 데 뭉쳐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다시 응웬 티 히엔 교수의 말로 돌아가자면, 이야기는 제의 및 비과학적인 현상들이 치유의 기능으로 드러나는 사태를 예시한다고 할 수 있다.

광주 트라우마 센터의 정혜신 정신과 교수는 세월호 사건 유족이 배에서 건져 올린 아들의 물건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 놓였던 것을 회상한다. 유품을 처리해야 하지만 집에 들고 들어오는 순간, 아들의 죽음이 너무 선명해질 까봐 펄에 젖은 가방을 온종일 차 조수석에 싣고 다닌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면서 교수는 이 가족이 여행용 가방을 씻고 바로 마주 대할 수 있도록, 아이 어머니와 함께 수녀들이 머무는 수도원 욕실을 방문했던 일을 떠올린다. 기도하는 손 옆에서 펄을 씻겨내고 울음을 토해낸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이 말들은 사건의 존재와 사실 정황을 알고자/알리고자 하지 않는다. 영상은 ‘어떻게든’ 전달되는 이야기를, 사건과 말의 다양한 만남 자체를 집중하도록 한다. 말과 이야기는 때로 샤머니즘을 경유하고, 말의 몫을 죽은 자 ∙ 보이지 않는 자 ∙ 유령이라는 실체 없는 실체에게 돌린다. 화면에서 여인들은 ‘아버지’의 영(令)이 되어 말하는 영매의 품에 안기어 통곡하고, 베트남의 어떤 영매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적군-미군을 달래고 돌려보낸 것을 “영광”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야기 사이로는 종종 광주 시내에 널브러진 죽은 자들, 그들의 으깨진 얼굴과 수의에 감싸인 사체가 기록 화면으로 몽타주 된다. 이윽고 관객은 진짜 굿을 하고 노래를 하고 음악을 만드는 샤먼을 마주하며, 산 자의 신체 ∙ 죽은 자의 영혼 ∙ 죽은 자가 남긴 물건이 사건 당시의 기록물들과 포개어 지는 장면 앞에 선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이야기의 “매개”를 본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끔찍한 일에 대해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증언을 먼저 구한다. 당신이 겪었던 무시무시한 일에 대해, 그 정황에 대해 사실대로 말해 달라고 요구한다. 알다시피 이러한 요구는 상당한 폭력성을 갖는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 증언을 시도할 때, 우리는 그에게 증언(또는 폭로)을 멈추라는 식으로 말할 수 없다. 역시, 잇따르는 증거/자료를 요청하는 일도 그치라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 모두를 소위 말하는 ‘팩트 체크’에 동원해서는 안 된다. ‘사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실은 기억과 역사를 보증했던 적 있는가?

증언이 단지 사실의 증명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테다. 5.18 시민군이었던 남승우 씨는 민주 항쟁이 ‘북한에서 온 스파이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증거를 가져오라”고 말한다. 증거가 취해져야 할 것은 이쪽이 아니라 저편이다. 요컨대, <이동하는 경계들>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증언은 사실의 증명을 좇지 않는다. 증언과 기록이 뒤섞이는 이미지의 충돌 앞에서 우리는 다른 요청에 놓인다. 도대체, 어떻게 볼 것인가?

 

2. 장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갤러리의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이동하는 경계들>은 바닥에 놓인 4채널 영상 뒤편으로 여러 개의 오브제를 설치했다. 이는 구 국군병원에서 가져온 의자들을 재배치한 것이다. 이를 매개로 장소특정적 설치인 국군병원 내 작품 <영원한 현재>는 비엔날레 관의 <이동하는 경계들>과 명백히 짝을 이룬다. 이제 이야기는 구 국군병원이라는 장소 자체로 옮겨간다.

구 국군병원에 들어가 보면 눈에 띄는 지점들이 있다. 곳곳에 ‘군인 신분이 아닌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는 “출입제한” 경고문구가 보인다. 이는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의 병원 부지 교회 건물 안, 마이크 넬슨(Mike Nelson)의 작품3)에서 확인할 수 있듯 까까머리 군인들의 두상 이미지들을 대번 떠올리게 한다. 중앙 집중 식의 건물 양 갈래로 긴 복도에 병실이 늘어서면, 진압군이었을 젊은 “국군”들과 동시에 그들에게 구제되거나 혹은 희생당한 ‘시민군’이 피를 흘리며 실려 오던 날의 정황이 희미하게 상상된다. 그 주위엔 널브러진 깨진 유리조각들, 찢기고 버려진 군복, 판이 떼어진 채 태엽만 남은 시계, 펄럭이는 커튼, 다 벗겨진 페인트 칠, 무성히 자란 풀.

경사면을 따라 올라간 2층의 정신과 병동은, 5.18 사적지로서 일정한 내러티브와 엮여 도시 곳곳에 서린 트라우마적 기억을 환기한다. 선명한 역사를 품은 장소가 그 특유의 힘을 십분 발휘할 때, 장소특정적으로 설치된 작업의 효과는 공간에 흡수되고 마는 수가 있다. 같은 이유에서 해당 작업을 비판적으로 대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하지만 내가 <영원한 현재>와 구 국군병원에 커미션 작업을 설치한 기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 역시, 바로 그 ‘장소’의 문제이다.

끔찍한 사건과 관련하여 “재현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논의를 오래 이끌어 온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은 란츠만(Claude Lanzmann)의 유명한 <쇼아Shoah>4)를 논한다. 그는 알려진 것처럼 비판만으로 일관하지는 않고, 상당한 지지를 덧붙이며 이야기를 전개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소Le lieu malgré tout」라는 짧은 글5)에서 그는 유독 그 영화가 비추는 장소들에 주목한다. 단적으로 말해 디디-위베르만은 이 영화, <쇼아>에 등장하는 것이 다름 아닌 ‘현재’의 장소라고 본다.

장장 아홉 시간 반에 달하는 이 영화의 처음을 여는 것은 그 영화가 거의 내내 비추는 상당히 평온한 정경이다. 쇼아의 생존자는 자신이 이곳에 있었던 것이 믿기지 않는다 말하며, 동시에 이렇듯 평화로운 모습이 지금도 그리고 그때에도 – 2000명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묻히던 때에도 – 여전했음을 토로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디디-위베르만이 말하는 대로 현재의 장소다. 디디-위베르만은 이 영화가 일체의 기록 영상을 쓰지 않고 현재의 장소만을 비추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의 장소에서, 지금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저 과거의 어떤 상황 속으로 (그 힘겨운 상상으로) 이끌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평화로울지라도 ‘폐허’인 현재의 장소를 보는 이유인 까닭이다.

클로드 란츠만, 쇼아

그러나 사실 디디-위베르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소”를 주목하는 것은 “장소“가 ‘현재’라는 시간을 획득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특유의 어법을 반복하며, 그곳에 남은 것 – ‘아무것도’ 아니지는/없지는 않은 것들을 우리로 하여금 보기를 바란다. 만약 잔재 · 흔적의 시간성에 대해 논하자면, 그것은 현재에도 과거에도 귀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카데르 아티아의 <영원한 현재>는 그 제목을 스스로 역설적이게 만든다. 이 작업이 놓인 장소는 병원이었던 곳에서 지금은 전시장으로, 현재의 폐허로 제시된다. 누군가 “귀신이 옆에 있는 것 같은 경험은 처음”이라고 장난 섞여 회고한 이 장소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무언가 있음 – 유령? – 에 틀림없는 무거운 침묵을 가시화한다. 이에 <영원한 현재>는 주변 곳곳의 낡은 가옥에서 가져온 나무 기둥으로 조각을 세우고, 이전에 정신과 병실에 해당했을 방을 차지함으로써 죽은/다친/살아남은 신체를 대신하고 형상화한다. 따라서 <영원한 현재>는 란츠만의 <쇼아>와 달리 직접적으로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기록을 꿰어냄으로써만 ‘지금(now)’을 낳는다.

비엔날레 관에서 <이동하는 경계들>의 영상을 유심히 본 관객이라면 눈치 챘을 일이지만, 아티아는 이미 구 국군병원을 촬영한 영상을 여러 차례 몽타주했다. 이는 5.18 시민군 묘역과 세월호 희생자 묘(거의 정지된 장면이지만 분명 사진이 아니라 영상이다), 5.18 아카이브 기록 영상, 굿 실연 장면, 인터뷰 장면 등과 만난다. 디디-위베르만은 상기(上記)한 글에서 영화가 필연적으로 딛게 되는 ‘배경으로서’ 장소에 대해 지적했다. 그러나 곧 그것이 더 이상 후경의 것이 아닌 지점, 전경으로 전환되는 지점에 집중했다. 배경이던 것이 화면의 주인이 될 때, 우리가 보는 것은 한 겹의 베일 그 이상이 된다.

침묵과 죽음을 그 자체로 가시화하는 전경, 그 장소. <영원한 현재>가 장소 특정적인 맥락을 본격화하는 작품이라 평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결코 틀린 지적일수도 폄하하는 말일수도 없다. 덧붙여 강조하자면, 그 장소는 현재의 고요한 폐허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을 불러들이는 매체에 묶여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한다는 것이다.

 

3. 오브제: 복구repair

아티아, 반사하는 기억, 2016

작가는 줄곧 서구 중심의 미술사 서술 및 전시 방식과 다르게 작동하는 민족지적 ∙ 인류학적 시각 자료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 와중에 도입하는 ‘복구(repair)‘라는 개념은 완벽하고 흠이 없는 미의 규준에 대한 반대항으로 설정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개념은 미술품이나 문화재의 관리 측면에서는 원본의 온전한 모습을 되찾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흔히 훼손된 것은 오롯한 모양으로 채워 넣어야 마땅하고, 이미 부서졌던 흔적과 취소와 회복의 흔적은 모두 지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카데르 아티아가 비서구권, 아시아 ∙ 아프리카 등지에서 직접 찾아낸 두상 조각들은 흠이나 고쳐진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서 ‘복구’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로부터 촉발된 덧댐과 흔적의 ‘복구’ 개념은 카데르 아티아의 기본적인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나아가 이 문제는 미술사를 넘어서 정치 ∙ 사회 ∙ 정신분석적 정황에 적용되게 된다.6)

내가 카데르 아티아의 작업을 처음 본 것은 2017년 1월 파리 퐁피두 센터의 2016 뒤샹 프라이즈 전시7)에서였다. 말하자면 올해의 작가 격으로 호명된 그의 작업을 본 것인데, <반사하는 기억(Reflecting Memory)>(Video, HD, colour, sound, 45:56 min. 2016)은 영상 작업과 몇몇 설치 오브제를 아울렀다. 영상은 전쟁이나 사고 등으로 신체의 일부가 잘린 사람들이 신경-정신적인 이유로 이제는 없는 신체의 감각을 여전히 느끼는 경우를 다루었다. 이따금 인터뷰이로 등장했던 인물을 화면에 다시 세울 때에는 그의 몸 가운데에 잘 조정된 거울을 두어 오롯이 양팔과 두 다리가 있는 듯 보이도록 하는 장면을 놓기도 했다. 이 장면에서 ‘복구’된 몸은 작업의 제목이 시사하듯 ‘반사된’ 상(像)이며 가상이다. 말하자면, 완벽한 복원 대신 상상적이고 위태로운 기억에 가까운 이미지.

<이동하는 경계들>과 <영원한 현재>가 구축하는 오브제도 위와 같은 그의 ‘복구repair’ 개념에 기댄다. 카데르 아티아는 기원을 갖는 완벽한 형상이 재림하기를 기대하고 그리는 작가가 아니다. 특히 “재현할 수 없”으며 “상상할 수(도) 없”는 역사의 끔찍한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를 건드리는 대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는 끔찍한 사건의 존재를 둘러싸고 그 문화적 현상들을 마치 꿰매고 덧붙이고 떼어 내거나 문지른 티를 남긴 조각처럼 다룬다. 그것은 그리하여 잘린 팔 다리의 자리를 대신한 거울상이 되기도 하며, 이제는 죽은 신체를 대신하는 짚으로 된 인형8)이나 나무기둥이 되는 것이다.

 

맺으며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최정기 씨는 영상에서 위안부 여성, 6.25 전쟁 당시 학살 피해 유족, 베트남 전 참전자들을 만나고 연구한 자신의 경험을 언급한다. 그리고 5.18 광주 희생자들이 겪는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조심스럽게 말한다. 고통의 경중은 물론이고,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사태들을 서로 견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5.18 광주의 희생자와 그 유족들이 겪은 트라우마의 층위가 다음과 같은 충격에 뿌리 박혀 있다고 말한다. 전쟁에서는 적군이 상정되고 나의 죽음이 어느 정도 예견되는 것과 달리, 광주 시민들은 어느 것도 예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전후 트라우마의 문제보다 5.18 트라우마가 더 문제적일 수 있다는 극도의 조심스러운 가설이 화면에 스친다.

“어떻게 국군이 우리에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가 인민(people)에게 이럴 수 있지?”

최정기 씨가 가정하고 있는 5.18 희생자들의 충격은 “’인간’과 ‘하부-인간’의 근본적인 상이성 -사형 집행자들에게 모든 유죄혐의를 벗겨주는 바로 그 상이성”의 문제로 풀어볼 수 있다.9) 누가, 왜,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가? 그러한 특권은 인(간 동)류의 동일성을, 가능성의 조건을 와해하고 극도로 인위적이며 악의적인 상이성을 발명함으로써 발휘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광주시민들의 외상은 우리의 동일성을 ‘그들이’ 완전히 무시하는 순간을 눈앞에서 목도함으로써 발생했을 것이다. 관객으로서, 관광객으로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역시 이것 아닌가. 나와 그들을 끝없이 갈라놓고 그 눈물과 웃음에 일치를 보{이}지 못하는 것.

알제리 출신 부모 밑에서 자란 프랑스 태생 중견 작가 카데르 아티아가 한국의 1980년 5.18 항쟁과 한국이 미군 용병으로 참전한 베트남 전쟁을 다루는 데에는 특수한 관점이 작용했을 수 있다. 그러나 여하한 관점을 의식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증언을 수집하고 배치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현재의 우리 신체가 위치하는 장소를 가시화하고, 또한 과거에서 온 것 – 기억, 상처, 죽음 등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오브제를 통해 제시한다. 이로써 우리가 보는 것은 오롯한 폐허로서의 현재가 아니며, 기꺼이 기록과 해석을 경유하는 온갖 흔적의 매개 그 자체이다. 이때 증언은 하나의/하나로 수렴하는 사실로서가 아니라, 셈해지지 않는 이미지’들’과의 관계 속에서 적극적으로 상상되어야 한다. 이미지 앞에서 우리는 ‘그들의’ 아픔과 “감정의 스펙트럼(spectrum of emotions)”10)을 내 것에 가깝게, 나와 닮은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

 

*  <이동하는 경계들>(2018) 비엔날레 관 촬영 본인,

*  <영원한 현재>(2018) 구 국군병원 설치 및, <반사하는 기억>(2016) 의 사진은 http://kaderattia.de/eternal-now-2018/

 


1) 상당한 시일동안 위라세타쿤의 작업은 관람 가능 여부가 불투명했고, 나 역시 방문 당시엔 보지 못했다. 지금은 정상 작동하여 관람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전시 초반 기사에서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옛 국군광주병원이라는 장소적 특이성으로 주목을 받았던 GB 커미션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신작은 볼 수 없을” 것이라 전망되었다. : <다수 큐레이터제 도입한 광주비엔날레 뚜껑 열어보니>, News1, 남성진 기자, 2018. 9.7.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001&oid=421&aid=0003578380

2) 비엔날레 전 전시관에서 드러나는 문제다. 캡션에 정보가 불충분하여 러닝타임을 알 방법이 없다. 전시장에는 네 개의 스크린이 설치 돼 있으며, 하나의 영상이 두 개의 스크린에서 출력되고 있다. 작업을 구성하는 영상은 셋.

3) 마이크 넬슨, <거울의 울림(장소의 맹점, 다른 이를 위한 표식>, 장소특정적 설치, 2018

4) Lanzmann, <Shoah>, 9h 16min, 1985, France

5)  Georges didi-Huberman, “Le lieu malgré tout”, in : Vintième Siècle, revue d’histoire, n°46, avril-juin 1995. Cinéma, le temps l’histoire, pp.36-44

6) Jacinto Lageira, “Repairing, resisting”, in: Kader Attia: The Repair from Occident to Extra-Occidental Cultures (works of dOCUMENTA (13) in Kassel). The Green Box, Berlin, 2004. : http://kaderattia.de/jacinto-lageira-reparer-resiter/

7) 《Prix Marcel Duchamp 2016》, 12.10.2016.-30.1.2017, Centre Pompidou, Paris : https://www.centrepompidou.fr/cpv/resource/c586Eyq/r956Kea

8)  <이동하는 경계들>의 영상에서 샤먼은 “직립할 수 없는” 존재에게 “오늘 하루만큼은 몸을 세우”도록 인형을 만든다. 이를 거치는 의례는 시체는 못 건져도 영혼을 건지는 굿이며, 잠시 영이 다녀갈 수 있는 자리를 이 세상에 마련한다. 한 씻김굿에서 중천맥은 중천의 세계에서 온 물건, 즉 죽은 이가 남긴 물건을 경유하여 같은 식으로 영의 자리를 확보한다. 같은 작품에서 의자 위에 앉은 하체조각이나, <영원한 현재>를 샤머니즘적 매체로 간주할 수 있겠으나, 그 자체로 지나간 시간과 현재, 그리고 수많은 의미의 두께를 복기하고 있음에 주목할 만하다.

9)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오윤성 옮김,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 – 아우슈비츠에서 온 네 장의 사진』, 레베카, 2017. p.248

10)  <이동하는 경계들> 에서 정혜신 교수의 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