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한석경이 열어젖힌 분단의 시간

홍태림(미술비평가, 크리틱-칼 발행인)

식민지, 전쟁, 분단을 관통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는 한석경의 <진지하다>(2018)는 박 씨 할아버지, 박 씨의 외아들 박만수 그리고 박만수의 외아들 박형민이라는 가상의 인물들이 뒤얽히며 만들어내는 서사를 중심축으로 삼는다. <진지하다>의 이러한 서사구조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를 배경으로 조씨(趙氏) 집안의 삼대가 겪는 갈등을 통해서 억압받는 여성, 대지주, 기독교인, 사회주의자 등의 생태를 복합적으로 그려낸 염상섭의 장편소설 『삼대』와 유사하다. 그리고 이러한 유사성 측면에서 할아버지, 아들, 손자가 뒤얽히며 만들어내는 <진지하다>의 서사도 당대의 현실을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구조적 이점을 갖고 있다. <진지하다>의 서사구조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짚고 갈 점은 두 개의 동영상과 인터뷰 음성이 연결되며 감상자에게 전달되는 이야기들이 작가의 체험에 약간의 허구가 가미되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가령 <진지하다>에서 작가의 체험은 한국전쟁 중에 북한의 공산화를 피해1) 월남한 후 남한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했음에도 언제나 북쪽의 고향을 사무치게 그리워하신 작가의 외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그러한 향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했던 큰외삼촌의 존재다.2)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은 <진지하다>와 이어지면서 약간의 허구를 통해 재편된다. 가령 이번 작업에서 작가의 큰외삼촌이 외할아버지의 외동아들로 설정된 것이 그러한 예 중 하나다. 한편 박 씨의 외손자 박형민3)은 처지가 살짝 다르다. 그는 1988년생으로 사춘기 내내 조부의 고향이 북한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으며 그로 인하여 서둘러 입대한 군에서는 대전차 방호벽을 폭파하는 공병으로 활동하기도한 인물이다. 그런데 박형민은 박 씨와 박만수의 경우처럼 작가의 친족을 원형으로 삼은 인물이 아니고 실제로 대전차 방호벽 파괴에 대한 경험이 있는 공병이었던 작가의 지인을 바탕으로 설정된 인물이다.4) 이처럼 <진지하다>는 작가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뼈대로 삼아 사실과 허구의 묘한 공명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러한 공명은 우리에게 어떠한 지평을 열어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분단 문제에 대한 각 세대의 보편적인 인식을 되뇌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박형민이 대표하는 3세대는 한국전쟁이나 군사독재,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나 부채감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단이나 통일에 대한 문제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혹은 이러한 문제를 이질적이고 불가해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한편 박 씨가 대표하는 전후 1세대에게 분단은 대부분 되돌릴 수 없고 되돌려서는 안 되는 금단의 대상인 경우가 많다.5) 박만수가 대표하는 전후 2세대의 사정은 조금 더 복합적인데, 그 이유는 이 세대가 유년기와 청년기에 병영국가와 민족-민주화 운동을 연이어 겪었다는 점에서 분단의 너머를 상상하더라도 이내 자신의 상상을 불신하거나 평가절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비율이 차이가 있을 뿐이지 전후 1세대에게도 일부 내재되어 있다. 이처럼 한반도의 기저에는 민족의 자력으로 국민국가를 세우지 못했다는 역사적 부채감이 짙게 깔려있다.6)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 부채감의 반대편에는 민족의 동질성을 갉아먹으며 쌓아온 이질성과 적대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분단에 대한 전후 1, 2세대의 분열적 태도는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확실히 전후 1, 2세대와 달리 87년 체제 이후 가장 극적인 변화를 야기한 IMF 체제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같은 사회경제적 재난만을 겪어온 박형민 같은 3세대는 앞선 세대와 꽤나 다른 질감의 태도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전후 1, 2세대와 같은 이중구속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3세대도 없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민족통일과 이념적 적대보다는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압박에 큰 영향을 받은 3세대는 한반도의 분단을 양국체제로 보거나 자신의 삶과 깊이 연관된 것으로 보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더 많다. 왜냐하면 앞선 세대의 시대적 소원은 멸공, 근대화, 통일, 민주화, 부자 등이었다면 3세대의 시대적 소원은 ‘취직’으로 급격히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에 대한 미묘한 세대별 인식 차이는 우리가 남북문제를 다양한 차원으로 재맥락화하는 시도 자체를 어렵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이 이러한 난제에 조금이라도 틈을 만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현실의 난맥을 살짝 비틀어낸 허구를 창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석경의 작업에서 사실과 허구가 공명하며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이 바로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따라서 <진지하다>는 감상자에게 남북문제를 이념이나 정치경제와 관련된 차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선입견을 잠시 내려놓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 선입견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7)

한편 <진지하다>의 서사는 3개의 재현된 대전차 방호벽(이하 방벽)에 스며들며 물질화된다. 즉, 우리는 이러한 서사의 물질화를 통해서 <진지하다>에 내재된 사실과 허구의 공명이 더욱 증폭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공명은 각 방벽이 세 인물과 관련된 서사와 적절히 짝을 이루며 공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가령 박 씨 할아버지에 대한 동영상이 투사된 첫 번째 방벽이 박 씨의 세대를 반영하기 위해서 실제로 1950~1960년대에 축조된 방벽을 재현하고 있으며 작가의 외할아버지가 1950년대부터 소장했던 녹슨 철사를 이용해 만든 인조 덩굴식물을 상단에 걸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마찬가지로 두 번째 방벽과 세 번째 방벽도 박 씨의 아들 세대 및 손자 세대와 연결성을 갖기 위해서 각 세대에 맞는 방벽 축조법이 고려된 것이 그러한 예인 것이다. 물론, 이 방벽들은 단순히 한석경이 창안한 서사와 호응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진지하다>의 방벽들은 마치 소극장의 배경 장치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즉, 멀리서 보면 그럴듯한 모습이지만 조금만 가까이 가보면 특정한 대상을 재현하고 상징하기 위한 구조물일 뿐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폭약을 설치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녹슨 철제 다리의 프레임은 사실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며 멀리서 보았을 때 그럴듯해 보이는 덩굴식물과 잔디는 모조품이다. 또한 첫 번째 방벽과 세 번째 방벽의 뒷면은 목조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각 방벽 하단에 있는 벙커 탁본들은 라이트 박스로 밝혀져 있기 때문에 방벽을 떠받치는 하단을 마치 신기루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방벽 끝에서 센서로 동작하는 신호등과 그 아래에 달린 ‘STOP’ 표지판도 연극적 배치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은 감상자에게 이념, 전쟁, 분단, 통일에 대한 관심이나 무관심이 뒤얽히는 우리의 사회가 가진 경직성과 대비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극무대 같은 방벽들을 거닐면서 <진지하다>의 맥락과 접속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맥락의 너머에 있는 나와 우리의 삶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사유할 여지에도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진지하다>는 분단의 흐름 위에 있는 우리의 삶과 현실을 낯선 질문들 앞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석경이 분단의 밀도와 복잡성을 계속 신중히 마주했기에 가능했다. 최근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난 2018년 9월 18일에 북한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평양시민들이 ‘자주 통일’과 ‘평화 번영’을 일사불란하게 외쳤다. 한편 그 당시에 일산 도심에 걸린 여당의 현수막에는 통일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여기저기 달렸다. 사실 ‘자주 통일’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문구는 70년간 분단된 남한과 북한에게 민족적 클리셰(cliché)가 되어버린 측면이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한반도의 분단 문제는 경제적 합리성 외의 출구를 찾기 어려운 상태에 봉착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석경은 자신의 가족사로부터 이번 작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미궁에 빠진 남북문제의 밀도와 복잡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진지하다>가 우리를 남북문제에 대한 선입견이나 분단이라는 현실을 경유한 삶의 문제들을 사유할 장으로 이끌었을 때, 그 사유의 장은 결코 분단이 만든 상흔을 얼버무리며 봉합하기 위한 곳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진지하다>는 쉽게 봉합될 수 없는 남북문제를 통째로 인정한 후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미래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장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경기문화재단의 유망 신진작가 지원 프로젝트인 ‘생생화화’의 비평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작성된 것입니다.


1)  여기서 박 씨가 월남한 이유는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인데, 북한의 개신교인, 기업가, 수공업자, 지주 등이 1946년 3월에 북조선 임시인민회의의 급진적인 토지 무상몰수 및 무상분배 조치를 겪은 이후 대거 월남하게 된 것과 연관 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박 씨는 북한의 유산계급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볼 수도 있으며 혹은 폭력적이고 급진적인 공산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끔찍한 경험을 했던 무산계급을 대표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57쪽과 박권일, 김민하, 김진호, 남상욱, 문순표, 이택광이 공저한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106-107쪽을 참고해 볼 수 있다.

2) <진지하다>에서 작가의 외할아버지는 박 씨로, 큰외삼촌은 박만수로 등장한다.

3) 박 씨의 외손자로 등장하는 이 인물의 이름은 군대에서 공병으로 활동한 작가의 지인 이름과 박 씨의 성을 따서 만들었다.

4) 그런데 박 씨와 박만수의 경우와 달리 박형민과 관련된 서사는 차후에 출간될 도록에 실릴 글로써 드러날 것이기에 <진지하다>에서는 앞서 언급한 공병과 한석경의 대화가 담긴 음성파일만이 활용되었다. 이는 아마도 박형민에 대한 내용 대신에 실제 대전차 방호벽을 폭파해봤던 지인의 음성을 넣음으로써 사실적 허구에 바탕을 둔 박 씨, 박만수에 대한 동영상과 다른 질감의 궤적을 <진지하다>에 삽입하기 위함일 것이다.

5) 예를 들어, <진지하다>에서는 이런 측면을 반영하기 위해서 박 씨가 군에서 노후화된 대전차 방호벽을 폭파하는 임무를 수행한 박형민에게 크게 분노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6) 일제의 식민지 체제도 결과적으로 외세의 개입으로 청산했을 뿐 아니라 남북의 분단과 전쟁도 미국과 소련의 대결구도 속에서 필연적이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7) 물론, 허구의 근간이 작가의 체험이라는 측면 때문인지 분단과 통일에 대한 시야를 가족사와 한반도를 넘어 국제적인 이해관계 안에서 조망할 측면을 거의 만들지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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