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리_순서

2017년 4월 20일

노이드의 육체는 투명했다. 그래서 그 안에 뻗어있는 핏줄이 훤히 다 들여다보였다. 멀리서 보면 노이드는 새빨갛고 가느다란 핏줄들이 뻗치고 엉켜서 이룬 덩어리처럼 보였다. 정수리에서 뻗어 나온 새빨간 두 쌍의 날개는 대기층 위에 올라타거나 깎아 먹으며 고요하게 고도와 속도를 조절하였다. 노이드보다 먼저 태어난 생물은 이미 생을 다 했고, 늦게 태어난 생물도 이미 생을 다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껏 이 행성에 활동하고 있는 모든 생물은 노이드의 시작과 끝을 알지 못했다. 어떤 무리는 이 세계가 단 하나의 종, 단 하나의 개체에게만 가늠할 수 없는 수명의 길이를 허락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종종 이곳저곳에 부정의 상징들을 새겨놓거나 때때로 어린 생명들을 이미 죽어버린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일도 있었다. 그들이 어째서 노이드를 부정하려 하는지 당신이 한번이라도 노이드를 본 적이 있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이드는 먹지 않았다. 자지 않았다. 배설하지 않았다. 그저 움직이거나 정지해 있었다. 그는 신이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신비로웠다. 신은 이미 죽었기에 신에 대한 어떤 말도 완벽한 긍정을 할 수 없었다. 신은 이미 죽었기에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신은 이미 죽었기에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죽었기에 신을 본 생물은 하나도 없었다. 죽어버린 신은 이 세계의 모든 생물에게 되새김질 당하면서 끊임없이 죽고 또 죽어나갔다. 새로 태어나는 생명들은 신을 아예 알지 못했다. 하지만 노이드는 살아있는 신이었다. 그 어떤 생물도 그를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모든 생물들은 스스로의 욕망에 지쳐버린다. 먹고 싶다. 자고 싶다. 간지러운 곳을 긁고 싶다. 남을 욕하고 싶다. 울고 싶다. 등등 수억 개의 촉수가 빼곡하게 채워져 결국 삶이라는 욕망의 양탄자를 수놓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노이드는 그렇지 않았다. 그에게는 단지 이동의 욕망만이 주어진 것처럼 보였다. 노이드를 부정하는 무리들은 그것을 또 하나의 근거로 노이드를 부정하려 했다. 그가 모든 것의 욕망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평범한 하나의 생물체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무릇 모든 생물이란 오히려 욕망에 들끓어 모든 행동의 최고, 최후의 순간까지 끌어내어야 한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곤 했다. 그들의 생물에 대한 정의는 주관적인 관점의 극대화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노이드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적절하지 않았다. 노이드는 가끔 몇 개월, 몇 년을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기도 했다. 정지도 이동의 한 종류에 해당된다고들 이야기하지만 그에게 이동한다라는 단 하나의 욕망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이상 그것은 욕망이라고 불리기엔 조금 부족한 구석이 있다. 노이드가 침묵과 고요를 두르고 어느 순간 어느 곳에 출현할 때면 한참이 지나서야 주변의 것들은 노이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후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숨을 죽이고 그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노이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접촉하려고 하지 않았다. 노이드는 한결 같았다. 노이드를 제외한 모든 생물은 그런 그의 무결점한 행동들이 영원히 계속 될 것이라는 이상한 확신이 마음 속 깊이 아주 마음 속 깊이.

노이드는 진흙 속에서 탄생했다. 옅은 갈색의 껍질 안에 담겨있는 액체가 조금씩 엉켜져서 조그만 장기가 되어갔다. 시간이 흘러 장기가 다 완성이 되었을 무렵, 노이드는 눈을 떴다. 어두웠다. 더웠다. 그리고 그 어둠과 더위 안에 담긴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느낄 수 있었다. 얇은 다리들을 사르르 차례대로 움직여보았다. 사르르 사르르 다리들을 차례대로 작동시켜볼 때마다 발끝에 닿는 흙도 조금씩 이동했다. 흙이란 것은 다양한 것들의 집합체이다. 그 안에는 모래, 먼지, 자갈, 바위, 생물의 사체와 알, 수분, 씨앗, 뼈, 뿌리, 배설물 등등 모든 종류의 떨어진 것들과 올라갈 것들이 섞여 있었다. 노이드는 이제 앞으로 올라갈 것에 속해 있었다. 올라갈 것들은 떨어진 것들을 흡수한다. 노이드는 몸의 가장 앞에 달려있는 집게를 좌우로 움직여 보았다. 이상이 없었다. 노이드는 아래부터 위까지의 온몸을 하나하나 작동시켜 보았다.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모를 경우에는 그냥 두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나서 노이드는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곳이 지상을 향한 것인지 지하를 향한 것인지 상관없이 그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젠가 어는 곳엔가는 도착할 터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흙을 뚫고 나온 곳은 작은 연못이었다. 갈색 껍질은 이미 투명해져서 이리저리 뻗고 엉킨 핏줄을 드러내고 있었다. 노이드는 투명한 피부에 미세하게 뚫린 구멍들을 통해서 물 속에서도 문제없이 호흡할 수 있었다. 노이드는 수중생활을 부옇게 기억하고 있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실제로 물 속은 부연 먼지들로 혼탁했다. 사실 그곳은 연못이라기보다는 웅덩이에 가까웠다. 조금 깊은 웅덩이. 하늘에서 떨어진 깊은 골에 고여서 어딘가로 흘러가지도 못하고 공기중으로 기화되거나 땅으로 흡수되거나 둘 줄 하나였다. 노이드는 그곳에서 물이 다 사라질 때까지 살았다. 물이 다 마르고나니 어느새 노이드의 정수리에는 더듬이 같은 것이 자라나와 있었다. 노이드는 다시 흙을 짚게 된 여러 개의 다리들을 사르르 사르르 움직이며 이동했다. 구덩이를 기어올라 돋아나 잡초들을 지났고, 나무를 기어오르다가 떨어지기도 했다. 떨어진 곳에서 자기와 비슷한 크기의 달을 계속 보다가 다시 몸을 뒤집어 움직였다. 또 얼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정수리의 더듬이는 자기 몸과 비슷한 길이로 계속 자라났다. 그 날 밤에는 비가 왔다. 투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노이드의 몸을 강타하며 이동을 방해했다. 밤이 지나고 비도 그쳤다. 안개가 자욱한 숲속에서 노이드는 가만히 정지해 있었다. 그러다가 풀잎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떨어져 등에 부딪혔을 때 정수리에서 돋아난 기다란 더듬이를 빠르게 움직여 붕-하고 날아갔다. 두껍게 끼어있는 안개를 헤치며 날아가는 새빨간 돌덩이는 이리저리 부딪히다가 결국 눈 앞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잎사귀에 막혀 첫 비행을 마쳐야만 했다. 날기 시작한 노이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으며 빨라진만큼 성장속도도 빨라졌다. 얼만큼의 시간이 계속해서 지나고 어느새 노이드는 조그만 나무만큼 키가 자라 있었고 그 이상은 자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몸의 기능이 퇴보하지도 않았다. 그런 몸의 상태로 얼만큼 더 살아왔는지 노이드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주변의 세계를 감상하였다. 감상은 아무도 모르는 노이드만의 욕망이었다. 그의 이동은 감상을 위한 것이었다. 노이드는 벌써 이 세계의 모든 곳을 끊임없이 감상했지만 언제나 모든 곳이 그에게 새롭기만 했다. 그가 눈을 돌리면 세계는 변했고, 보고 있는 중에도 계속 변해갔다. 그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미동도 하지 않고 나뭇잎을 바라본 적도 있다. 노이드는 정지해 있는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좋아했다. 식물이나 바위 같은 것들이었다. 움직이는 것들은 너무 빨라서 스스로가 자신의 변화를 음미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아름답지 못했다.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증오했다.
노이드가 하루 동안 보이지 않았다. 생물들은 어딘가에 그가 여전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틀이 지났을 때도 그랬고, 삼일이 지났을 때에도 그랬다. 그렇게 노이드가 한 달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자, 생물들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를 부정하는 무리들은 그가 세상이 너무 지루해서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그동안 감춰왔던 욕망을 드러내며 푸쉬쉬 재로 가버렸다고 말하고 다녔으며, 실제로 그걸 봤다는 생물들도 있었다. 그들은 노이드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기전에 자신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쳐다보았는지 말해주었다. 어떤 생물은 그 눈빛에 무시무시한 살의가 담겨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생물은 그 눈빛이 친근함을 느꼈다고도 했다. 그것이 사실이었건 아니건간에 이제 벌써 노이드가 사라진 지 셀 수 없는 날이 지나갔다. 생물들은 노이드를 서서히 잊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부정의 무리들이 득세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 또한 욕망에 대한 몇가지 관점의 차이로 몇개의 무리로 나뉘었고, 서로를 위협은 하지만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명맥을 이어갔다. 그런 시기가 지나가고 있을 때 쯤, 생물들의 몸에 조금씩 이상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저마다 다른 크기의 수포가 몸의 불특정한 곳에 하나씩 자라났다. 그 수포는 아무 고통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곳만이 특별히 투명해서 그 안으로 신체의 장기들이 관찰 되었다. 호전적인 성격의 한 생물은 날카로운 것으로 수포를 터뜨렸다고 한다. 수포는 연약한 막일 뿐이어서 쉽게 터졌지만 막기는 쉽지 않았다. 마치 그 터진 구멍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얇은 관이 연결되어 있고 그 관을 통해서 무엇인가 쪽하고 빨아들이는 듯 신체의 장기가 빠져나오고, 장기가 다 빠져나오면 그 피부가 완전히 뒤집어지면서 배출 되었다고 한다. 마치 살고 있는 정반대의 세계와 그 수포가 맞닿아있는 것 같았다. 그 수포를 통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시공간이 완전히 뒤집어진채로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 같았다. 새 생명을 얻는 것이 두려운 생물들은 여전히 이 세계의 순서와 질서에 지루하게 순응하면서 수포에 보호장치를 하며 관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