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민_‘기업보고서: 대우 1967-1999’에 대한 보고서

2017년 4월 4일 발행

성상민(만화-문화평론가, 미디액트 ACT! 편집위원, 만화평론웹진 YOUR-MANA 필진)

1. 서론

<기업보고서: 대우 1967-1999>라는 제목은 너무나도 간명하다. 제목 그대로 1967년부터 1999년까지 존속했던 재벌 ‘대우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동시에 ‘보고서’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전시는 최대한 중립적인 자세에서 ‘대우’라는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물론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은 순진하다. 마치 한국에서 ‘중도’라는 말이 정말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이 전시가 그저 순수한 마음에서 대우를 다시 회고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맥락을 고민하는 이라면 누구나 알 수밖에 없다.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이 전시가 열리는 공간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짚고 넘어갈 수밖엔 없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가 작성한 소개 문구에는 아트선재센터가 생긴 해에 대한 이야기나 아트선재센터의 활동 방향, 건물의 건축적인 양식미를 소개하지만 정작 이 공간이 직접적으로 탄생하게 된 사회적인 배경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없다. 물론 포털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는 다양한 백과사전에도 아트선재센터가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이 없다.

그나마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집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정도만 이 공간이 ‘대우재단’을 통해서 설립되었다고 매우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간이 탄생한 여정을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창구는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위키피디아 한국판’과 약간의 수고를 더 들여야지만 접근 가능한 네이버의 과거 신문 아티클 검색 서비스 ‘뉴스 라이브러리’ 정도이다. 위키피디아 한국판의 ‘아트선재센터’ 문서는 무척이나 짧은 ‘토막글’이지만, 이 짧은 문장에는 아트선재센터가 직접 내건 소개 문구는 물론 다른 백과사전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정보가 함축되어 있다.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의 장남 김선재가 1990년 젊은 나이로 죽자 모친 정희자가 설립했다.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과거 기사에는 좀 더 자세한 개관 당시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대통령부인 이희호 여사는 (1998년 7월) 9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개관 기념식에 참석,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중략) 이날 행사에는 신낙균 문화관광부장관, 배순훈 정보통신부 장관, 노재봉 전 국무총리, 노무현 국민회의 부총재, 김덕룡 한나라당 부총재와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 부부 등 각계인사 4백여명이 참석했다. 이 여사는 연설에서 “기업 스스로가 문화활동의 중심에 서서 나라의 문화수준 향상에 일익을 담당하고 나아가 문화를 매개로 새로운 경영가치를 창출하는 경영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1998년 7월 10일, <동아일보>.

장차 그룹의 대를 이어야 했으나 요절하고 만 장남의 이름에서 미술관의 호칭을 정했다. 그리고 마치 그렇게도 자랑하던 ‘탱크주의’라는 말처럼 강철처럼 굳건히 오래갈 줄 알았지만 IMF 경제 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난 그룹이 이곳에서 사라진 과거의 모습을 추억하는 전시를 연다. 기이하다면 기이한 평행 이론이다.

이쯤에서 무척이나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를 왜 이리 길게 푸냐고 생각할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국공립 미술관도 기업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자기들이 세운 전시장에서 자기네들의 역사를 추억하는 것이 뭐가 그리도 이상할 거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나도 이렇게 쓰는 게 솔직히 지친다.) 하지만 애초에 ‘보고서’라는 것이 다 그렇지 않나. 누구나 다 알 것이라고 생각되는 내용이더라도, 최대한 밑바닥까지 훑어내며 진득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결국 ‘보고서’다. <기업보고서: 대우> 역시 마찬가지의 형식이다. 무척이나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는 말을 다양한 자료들을 활용하며 아트선재센터 3층 전시장에 나열한다. 대체 이 ‘보고서’의 서론은 무엇이고, 어떤 본론을 거쳐 결론에 다다르고 있는가.

2. 본론
1) 전시의 목적과 형식, 구성
전시장에 비치되어 있는 6장의 A4 용지에 인쇄된 전시 리플렛에서 해당 전시를 기획한 한금현은 다음과 같이 전시의 목적을 밝힌다. (참고로 한금현은 상지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이다. 그는 2016년 7월 3일, ‘상지정신실천교수협의회’라는 이름 아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도종환, 안민석 등을 비롯한 야당 국회의원에게 보내는 질의서를 다른 교수들과 공동으로 보낸 적이 있다. 그 질의서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교육부 감사에 대비하기 위해 학교 방문을 늦출 것을 요구했는데, 강행한 것은 물론 학생에게 편향된 교육을 제공하는 反김문기 단체인  ‘교수협의회’ 사람만 만나 편파적인 자세를 취했느냐. 2. 학교가 학생들에게 상지대 설립자 김문기의 자서전 <상지정신>을 배포한 것은 단지 기증받은 책을 배포한 것일 뿐이다. 3. 교육부가 김문기 당시 총장의 해임을 권고한 것은 부당하다. <상지정신>의 저자이자 상지대 전 이사장인 김문기는 이미 1994년 횡령, 입시 부정 등의 사학비리를 저질러 물러난 전적이 있는 인물이다.)

1967년 3월 창립한 대우는 1999년 8월 그룹 워크아웃으로 해체되기까지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주도하였을 뿐 아니라 사회, 정치 그리고 일상 등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 관계하였다. 수출과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세계경영의 꿈을 실현한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창업주의 성공신화는 동시대 일반인들의 사고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중략) <기업보고서: 대우 1967-1999>는 한국경제사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한 기업이 경제 분야 이외에 그 시대의 사회문화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인식하고, 신화화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며,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 위상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중략) 대우의 역사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역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전시를 통해 대우는 우리 안에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가 생각해보고 이를 통해 우리의 과거를 뒤돌아보고 현재를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금현의 글에서도 언급되듯, 분명 대우그룹은 20세기 한국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친 기업이다. 그런 기업에 대해서 <기업보고서: 대우>는 대우라는 기업이 경제는 물론 사회문화사적으로 영향을 미친 점을 분석하며, ‘신화화’도 하지 않지만 ‘비판’도 하지 않으며 ‘객관적’으로 접근하겠다고 선언한다. 기획자의 변에 의거하면 이 전시는 어디까지나 과거 대우의 모습을 돌이켜보며 현재 한국을 되돌아보는 ‘온고지신’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기업보고서: 대우>는 어떤 형식과 구성을 통해 이러한 목적을 실현시키려고 하고 있는가? 이 전시는 대우그룹에서 제작했던 각종 상품들과 광고, 대우그룹이 기록된 각종 사진과 기사 자료 등을 모은 ‘아카이브’를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장에 아직 들어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관람객은 독일에서 제작되어 대우의 브랜드를 홍보하는 33초 광고 영상 <대우 심벌>을 보게 된다. (또한 이 영상이 상영되는 기기는 대우전자에서 제작된 브라운관 TV이다.) 하지만 이 광고 폭격은 사소하다. 전시장에 본격적으로 입장하는 순간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수많은 대우 광고들이 사방에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생산이 사실상 중단된 대우전자의 브라운관 TV는 끊임없이 대우그룹이 생산한 물품을 홍보하는 광고를 무한 반복하며 재생한다. 전시장의 한가운데에는 결재서류나 사진첩을 비롯해 대우그룹 내부 구성원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벽면에는 다양한 연대 속에서 활약한 대우그룹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걸려있다. 사진을 소개하는 문구는 기획자 한금현의 언급대로 ‘객관적’으로 작성되어 있다.

 

이제는 사라진 대우그룹의 영광을 다 보고 나면 곧바로 대우그룹의 ‘성과’를 말하는 인포그래픽 전시로 이어진다. 기계를 비평하는 계원예술대학교 이영준 교수가 기획하고, 권영찬이 디자인한 <대우조선 30년의 성과>는 대우그룹의 계열사였으나 그룹이 해체한 이후 현재는 산업은행에서 관리하는, 공기업도 아니고 민간기업은 더더욱 아닌 (그리고 최근엔 비리마저 얽힌) ‘대우조선’(해양)이 1973년부터 2002년까지 생산한 선박 종류를 이미지로 나열한다. 각각 역할이 다른 수십 척의 배를 생산한 기록에서 이영준은 대우조선이 다양한 배들을 건조하며 ‘풍부한’ 해양 생태계를 만들었다고 대우조선의 일대기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뒤이어 이어지는 인포그래픽은 각각 <대우가 상상하고 실현한 1990년대 디자인문화>와 <대한민국 산업기술사 안에서 보는 대우 산업기술 연대표>이다. (두 인포그래픽 역시 모두 권영찬이 디자인하였다.) 건축, 디자인을 주로 연구하는 동양대학교 박해천 교수가 담당한 <대우가 상상하고 실현한 1990년대 디자인문화>는 베스트셀러가 된 당시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의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비롯해 대우가 제작한 다양한 소비재 상품을 언급한 당시 신문-잡지의 기사를 발췌한 전시물이다. 과학기술사를 연구하는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담당한 <대한민국 산업기술사 안에서 보는 대우 산업기술 연대표>는 대우그룹의 기술적 성과를 기계, 철도, 자동차, 조선, 항공우주, 그리고 전기전자까지 총 6개 부문으로 나눠 연대별로 정리한 표이다.

 

박해천은 1990년대 대우의 행보를 발췌한 기사들을 통해 대우가 ‘젊은 중산층으로 급부상하던 베이비붐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하면서 1990년대 소비문화의 잠재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했다고 평가한다. 최형섭은 대우의 기술 연대표를 통해 한국의 산업기술 발전사에서 대우가 그 안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운송 및 전기전자 부문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어 대중들의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친숙한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성장’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렇게 대우가 남긴 디자인적, 기술적 성과를 확인한 뒤 관람객은 대우가 남긴 인문학적 성취를 ‘여유 있게’ 읽게 된다. 전시장의 한구석에는 매우 편안하게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소파나 탁자가 여럿 놓여 있다. 그곳에는 대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수많은 출판물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대우그룹에서 발간하던 사보 <대우가족>의 영인본을 비롯해, 앞서 언급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부터 최근 발간된 김우중의 최신 자서전 <김우중 어록 : 나의 시대 나의 삶 나의 생각>도 볼 수 있다. 여기에 대우재단에서 후원한 결과로 출간된 학술서인 ‘대우학술총서’와 ‘대우고전총서’를 비롯한 다양한 인문학 서적도 서가를 빼곡이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러한 발간물들은 관람객이면 누구든지 자유로이 소파에 착석하여 볼 수 있다. 서가 바로 옆 창가에 놓인 10억불, 20억불 수출의 탑을 보면서 말이다.

물론 전시에 대우그룹이 이룩한 과거의 영광만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뒤돌아보고 현재를 바라보는 계기’를 위한 전시답게, 전시장 한쪽에는 한때 한국에서 잘 나갔던 재벌그룹인 대우가 어떻게 위기를 맞이하고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이는 ‘복코'(박은지, 이지원)의 영상 작업물이 상영되고 있다. 워낙 빠른 속도로 흐르는 짧은 영상은 대우의 과거와 현재 로고, 대우 안에서 제작한 각종 상품들, 대우를 언급한 기사들의 큼지막한 제목을 빼면 잘 보이지 않지만 이 영상은 <기업보고서: 대우>에서 유일하게 대우가 IMF 시기 맞이한 다양한 위기를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2) 질문 1 :  ‘아카이브’는 ‘객관적’인가
이제 다시 한금현이 제시한 전시의 목적을 되새겨보자. <기업보고서: 대우>는 대우를 ‘신화화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며,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철저히 ‘아카이브’로써 대우의 과거와 현재를 나열하고 있다. 중요한 건 ‘나열’이다. 각각의 개별적인 전시물이나 이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 리플렛의 아티클은 부분적으로 대우의 과거를 평가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우가 거둔 디자인적-기술적-기계적인 비평일 뿐 ‘대우’라는 거대한 그룹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평가를 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그저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서 관람객에게 보여주고만 있을 뿐, 전시는 대우에 대해서 깊숙한 언급은 회피하고 있다. 신화화하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구체적인 평가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시는 최대한 ‘객관적’이려 노력하지만, 도리어 대우라는 기업에 대한 평가를 최대한 우회하는 순간에서부터 이미 전시는 ‘객관적’이지 않고 ‘주관적’으로 변모한다. 대우에 대한 평가를 미시적인 단위로만 이야기하고 싶어할 뿐,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결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느껴지고 만다. 물론 전시에 참여한 이들은 대우라는 기업은 쉽게 무자르듯이 단정지을 수 있지 않으며, 관람객들에게 대우에 대한 평가를 맡기기 위하여 이러한 기계적인 중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 대우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가득 모아 제시하는 ‘아카이브’라는 형식을 택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카이브’를 통한 전시는 최근 한국 미술 전시에서 무척이나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구성이 된 지 오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을 개관하며 새로운 공간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들어 매년 정기적으로 한두  명의 작가를 선정해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내건 아카이브 전시를 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은 2016년 연말부터 2017년 초까지 1층부터 3층까지 열리는 거의 모든 전시를 사실상 아카이브 전시로 구성하기도 했다. 1층에서는 1990년대 미술 작업을 아카이빙하고, 이를 재해석한 시도와 함께 맞붙인 ‘SeMA Gold <X: 1990년대 한국미술>을, 2층에는 상설전이자 아카이브적 성격을 함께 지닌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와 민중미술 컬렉션인 <가나아트 컬렉션 앤솔로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3층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을 거친 역대 관장과 관련된 자료를 제시하는 <SeMA 전시 아카이브 1988-2016: 읽기 쓰기>가 열렸다. 어떤 의미로는 <기업보고서: 대우> 역시 현재 한국 미술 전시의 트렌드를 충실하게 따랐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분명 전시 기획자나 참여자의 주관적인 평가를 직간접적으로 내리는 대신, 관련된 자료들을 제시해 관람객들에게 평가를 ‘위임’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무척이나 상대적이며 공정해 보인다. 그러나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하나의 전제가 필요하다. 전시가 보여주는 자료들 자체가 얼마나 공정하게 구성되어 있느냐다. <기업보고서: 대우>는 각종 상품과 성과를 기록한 자료들을 통해 한국의 디자인사-기술사-기계사에서 대우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말하려 애쓴다. 한편으로는 여러 발간물을 통해 대우와 관련된 구성원들의 모습과 대우가 남긴 인문학적인 성취를 말하려 한다. 하지만 대우가 당대 한국 사회에 놓여있는 사회사-정치경제사적 위치는 철저하게 제거되어 있다.

사회를 말하고, 정치경제학적인 위치에서 대우를 말하는 순간 대우가 ‘신화화’되거나, 또는 ‘비판적’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제거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러나 이렇게만 이해하기엔 <기업보고서: 대우>의 아카이브는 객관적인 ‘척’하려고 노력하는 주관적인 수집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우가 IMF 때 위기에 놓였음을 말하지만, 그 위기의 근본에는 사주 김우중의 탐욕과 회사의 경영적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대마불사’에 입각해 무조건적으로 재벌을 돕던 정경유착이 놓여 있음은 말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대우가 망한 것이 IMF 경제위기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사주가 기업을 버리고 해외로 도피한 것에 대해서는 김우중의 언급을 기록한 자서전을 제외하면 사실상 없다. 회사가 부도 위기에 직면해 임금 삭감은 물론 실직 위기에 몰린 구성원의 이야기도 없다. 사보 <대우가족>이나 사진작가 김태동이 촬영한 사진 등에서 드러나는 ‘근로자’의 모습은 있어도, 노조 운동이나 파업 같은 ‘노동자’의 모습은 없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인문학 지원에 대해서는 말해도, 그 지원이 어떠한 부작용을 동시에 낳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계속 끊임없이 전시는 자기 자신이 결코 대우를 신화화하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며 강변하지만, 정작 전시된 아카이브에서 느껴지는 것은 대우 ‘경영진’을 중심으로 작성된 반쪽의 역사이다.

3) 질문 2 : ‘아트선재센터’와 ‘대우’의 관계는 객관적인가
전시 내적으로 이 아카이브가 객관적이지 않다면, 전시 외적으로 <기업보고서: 대우> 전시가 열리고 있는 아트선재센터라는 공간은 객관적인지도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아트선재센터가 대우에 의해 세워진 공간이며, 여전히 대우의 영향이 미치고 있다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좀 더 적극적으로 ‘왜’ 2017년 현시점에, ‘왜’ 대우의 자장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공간에서, ‘왜’ 대우라는 망한 그룹을 다시 되새기는 전시가 있는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전시에 참여한 연구자 최형섭의 언급대로, “대우 기술에 대한 본격적인 역사 연구를 본 적이 없어서” 이를 조금이라도 채우기 위해 이런 전시를 만든 것일 수도 있다. 1950-60년대는커녕 아직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 연구도 일천한 상황에서 1960년대부터 1990년 말까지를 관통한 거대 재벌 그룹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어떤 의미로 <기업보고서: 대우> 전시는 비록 한금현이 내건 것처럼 ‘객관적’이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한 시대를 풍미한 기업의 역사를 반추하는 작업으로써 의미를 가진다고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왜’ 이를 회고하는 공간이 회고하는 대상과 너무나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간이어야만 하는 것인가? <기업보고서: 대우>를 말하는 한금현-최형섭-박해천-이영준의 글은 아트선재센터라는 공간의 역사성과 같은 특성은 하나도 말하지 않는다. 한 기업이 거쳐 온 역사를 다루지만, 정작 왜 이 역사를 지금 이 시기에 아트선재센터라는 공간에서 다뤄야 하는 건지는 묻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기업보고서: 대우>는 시대를 거스르고 있다. 재벌 그룹이 달성한 여러 갈래의 성과들만 주목하기엔, 이미 한국 사회는 그 재벌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가며 부와 기득권을 쌓아온 ‘역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 정변 이후 약 3개월 만에 ‘자발적’으로 결성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모습과 전경련이 세운 ‘자유경제원’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신들을 위한 이데올로기를 양산하는 모습을 들춰냈다. 또한 공공연히 이야기되어온 정부와 기업 간의 끈끈한 유착 관계가 여전히 유지 중이라는 사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만들었다. 이런 시기상에서 정 대우의 역사를 말하고 싶다면, 대우가 만든 찬란한 영광뿐만 아니라 추악한 오욕의 역사도 함께 말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아트선재센터는 너무나도 자유롭다는 듯이 (하지만 공개적으로 크게 알리고 싶지는 않았던지 홍보 및 보도자료 배포를 자제하면서) <기업보고서: 대우>를 대중들에게 공개했다. 이미 아카이브의 구성에서도 전시는 객관적이진 않았지만, 전시물 그 자체에 있어서도 직접적으로 대우가 이룩한 성과 기록의 일부로 아트선재센터의 전경이 제시되는 등 전시는 너무나도 끈끈하게 대우와 아트선재센터 사이의 밀착을 말하고 있다. 그저 전시 설명이나 리플렛으로 대놓고 말하지 않을 따름이다.

대우에서 일했던 노동자의 이야기도, 대우라는 재벌 그룹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도 사라진 채 다양한 방면으로 대우가 남긴 성과와 이미지만을 논한다 . 겉으로는 ‘신화화’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시기적으로는 물론 내용적으로도 반동적인 전시를 개최한 연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 정확한 해답은 아트선재센터와 전시를 기획한 한금현만이 알겠지만, 유추할 수 있는 지점은 너무나도 많다. 대놓고 밝히지 않을 뿐 전시는 대우를 ‘신화화하여’ 전달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대우의 과거 모습을 촬영해 전시 중인 사진들은 일정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대우가 건설한 공장 안에서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기계과 ‘근로자’의 모습들, 대우가 제작한 거대하고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는 설비/상품의 모습들. 사진들은 대우가 구축한 틀에 맞춰 모든 요소들이 움직이는 하나의 ‘사회’를 내비춘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대우’라는 이름이 붙은 대형 구조물들은 자랑스럽게 대우를 한국은 물론 세계만방에 홍보할 ‘모뉴먼트’(기념비)가 된다. 대우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들의 모습과 아트선재센터의 전경이 이러한 욕망에서 그나마 예외이지만, 사진 속 여성 ‘근로자’들은 모두들 같은 머리 스타일에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다. 전시되는 사진 대부분이 사람의 존재는 삭제되어 있고, 설사 나오더라도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지 않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정면으로 사람의 얼굴을 비추는 여성 ‘근로자’들의 사진 역시 대우가 만들어 놓은 질서 밑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한 거대한 질서들 속에서 한편에 놓인 아트선재센터의 모습은 이런 질서를 통해서 미술과 같은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결과물들이 탄생할 수 있음을 강변한다. 마치 대우의 후원으로 출간될 수 있던 학술서적이 가지런히 꽂힌 서가 바로 옆에 대우가 기록한 억대의 수출액을 기념하는, 수직으로 우뚝 솟아오른 탑 모양의 기념 트로피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직접적으로 신화화를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자신들의 ‘노력’으로 탄생되었다고 주장하는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는 끊임없이 이미지를 통해 비록 지금은 물거품이 되었어도 여전히 대우가 만든 질서는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 중임을 말한다. ‘객관’이라는 가면을 쓰고서 말이다.

 

3.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기업보고서: 대우>의 특징은 사실 이 전시만이 지닌 고유한 것은 아니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미술계에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지난 뉴스들을 여전히 기억한다면) 이미 미술은 기업과 끈끈한 위치를 점하게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아트선재센터를 비롯하여 대림미술관-디뮤지엄, 금호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처럼 직접적으로 공간을 만들고 기획-운영하는 재벌 그룹의 이름을 붙인 전시장은 물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과 같은 공공적인 미술관들조차도 이미 전시나 다양한 부대사업들을 통해 기업들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단지 <기업보고서: 대우>는 매우 직설적으로 자신들이 만든 공간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시’라는 이름으로 전달했을 따름이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과 재반론 역시 신물이 날 정도로 반복되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서미갤러리와 삼성그룹- 그리고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서로 얽힌 비자금 스캔들에서, 그 밖에도 수도 없이 제기된 미술품-화랑과 재벌이 얽힌 의혹들 속에서 자본과 독립된 미술을 해야 한다는 말이 계속 나왔다. 이에 대해서 이탈리아 피렌체 가문을 예시로 들며 미술은 후원자의 안정적인 지지 아래에서야 부침 없이 발전할 수 있었으며, 오히려 기업들은 물론 중산층 역시 미술에 많은 투자를 해야지만 작가들이 더욱 독립적으로 미술 작업을 할 수 있다는 반론 역시 줄기차게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비판-재반론은 그저 형식적으로만 이뤄질 뿐, 한국 미술계가 놓여 있는 구조적 상황을 언급하지 않으며 ‘아무말 대잔치’에 그친지 오래가 되었다. 몇 년 전 미술계에서 화제가 되었던 CJ E&M 산하 케이블 채널 StoryOn(현, OtvN)의 미술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트 스타 코리아>가 진행될 때에도 의례적인 비판이 있을 뿐 프로그램은 전반적으로 낮은 시청률 속에서 안정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과 방송을 모두 마쳤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 전시될 때에도 다시 의례적인 비판이 반복되었을 뿐 그 이상은 없었다. 그리고 마치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일상은 반복되었다.

말과 글을 내뱉는 이상으로 성찰하거나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제 기업과 자본은 보다 직접적으로 미술을 자신들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마치 아트선재센터가 <기업보고서: 대우> 전시 바로 직전에 삼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비디오아트로 한 때 주목받았던 장영혜중공업의 전시 <장영혜중공업: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을 통해 삼성에 종속되어 있는 한국인의 삶을 냉소하는 전시를 했다가, 전시가 종료되고 나서 한두달도 지나지 않아 <기업보고서: 대우>를 통해 한국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대우의 족적을 ‘객관’과 ‘아카이브’라는 미명 아래 다뤘듯이. (물론 장영혜중공업이 2004년 9월 삼성이 운영한 또 하나의 미술 전시장 ‘로댕갤러리’에서 <장영혜중공업이 소개하는 문을 부숴!> 전시를 진행했다는 것도 빼먹지 않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로댕갤러리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그룹 비자금 스캔들 폭로 이후, 2008년 5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장기 휴관에 들어가다 ‘플라토’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하였으나 이후 2016년 8월 최종적으로 폐관하게 되었다.)

해당 이미지는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김영글, 오늘보다 25호)에서 발췌하였음.

물론 <장영혜중공업: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에서 장영혜중공업이 맡은 역할은 <기업보고서: 대우> 전시에도 고스란히 살아있다. 건축과 공간,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을 끊임없이 말했던 박해천, 현대 사회에서 기계의 움직임과 역할에 대해 미학적-인문학적인 접근을 시도하며 기계비평가로 자기를 포지셔닝했던 이영준, 그리고 기술의 동학과 역사를 동시에 접근하는 연구를 행했던 최형섭이 바로 이 전시의 ‘장영혜중공업’이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이 세 명은 아트선재센터와 대우, 그리고 한금현이 기획한 전시에 참여하며 ‘객관적인 보고서’가 되기를 원했던 전시의 의도에 매우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장영혜중공업이 2004년 로댕갤러리에서, 바로 몇 달 전 아트선재센터에서 보였던 모습들처럼 말이다.

자신들이 공개적으로 내건 목표는 물론 시기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모두 정합적이지 않은 전시는 이 전시의 진정한 목적이 한 기업에 대한 ‘보고’가 아니라 한 기업의 후신들이 막전막후에서 작성한 ‘자기주장’임을 깨닫게 만들었다. 오히려 대우라는 기업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는 ‘기업보고서’라는 말이 붙은 전시가 아니라 그 외부를 통해서 진정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트선재센터가 공개적으로 내걸고 싶지 않은 자신의 탄생 배경까지도 말이다. 진정으로 ‘보고서’라는 이름의 전시를 만들고 싶거든, 얼핏 보기엔 중립적이며 객관적으로 느껴지는 ‘정보’들이 어떻게 탄생되고 다시 직조되는지를 살펴야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백과사전보고서: 나무위키> <팩트보고서: 일베> 같은 이름으로 기획되는 전시가 조금이나마 ‘보고서’라는 이름에 더 어울릴 전시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상으로 <기업보고서: 대우>에 대한 보고를 마침.
2017년 4월 4일
보고자 성상민 (인)


4. 참고 문헌
<기업보고서: 대우 1967-1999> 전시 리플렛, 아트선재센터
<아트선재센터 소개>, 김영나, 아트선재센터 공식 홈페이지
http://artsonje.org/introduction/
<아트선재센터>, 한국학중앙연구원 집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456720&cid=46660&categoryId=46660
<아트선재센터>, 위키백과 한국판, 2016년 12월 1일 최종 갱신본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D%8A%B8%EC%84%A0%EC%9E%AC%EC%84%BC%ED%84%B0
<상지대 상지정신실천교수협의회, 야당국회의원에 공개 질의>, 김현구 기자, 교육연합신문, 2016년 7월 3일
http://www.eduyonhap.com/news/view.html?section=2&category=77&no=27497
<쉬쉬하며 여는 ‘대우 회고전’>, 노형석 기자, 한겨레, 2017년 3월 15일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786611.html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김영글, 오늘보다 25호(2017년 2월)
http://todayboda.net/article/7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