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_W웨딩사진

2017년 4월 9일 발행

사진 찍어도 돼? 너무 예뻐서 그래.
네?! 아니…
당황하며 몸을 빼는 O의 동작은 휴대폰 카메라의 버튼을 누르는 아저씨 움직임보다 느렸다. 중년의 아저씨는 함께 온 다른 아저씨에게 아가씨랑 사진 찍었다 자랑조로 말하며 멀어져갔다. O는 모르는 사람에게 사진이 찍힌 것이나 싫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 여러모로 불편했지만, 벌써 한 시간째 힐을 신고 부동자세로 서 있던 다리가 ‘흔한 일 가지고 뭘 그래. 그보다 네 종아리 근육이랑 발 좀 어떻게 해봐’ 하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결국 십오분쯤 더 서서 안내를 하다가 앞에서부터 교대가 밀려서 제대로 못 쉬었다며 투덜대는 M이 오고 나서야 휴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으으… 이제야 발 좀 뻗네.
너두 교대 늦었지? 뭐야? 앞에서 누가 20분 넘게 쉰 거 아니야? 15분씩만 쉬고 서로 교대해야 하는데!
휴게실에서 만난 동료 L이 O에게 말을 건넨다. 휴게실이라 봤자 연회장 주방 뒷켠 탈의를 위한 사물함 앞 바닥에 은박돗자리를 깔아놓은 수준이지만, 종일 서서 일하는 도우미에게는 그 곳이 낙원이다.
오죽했으면 신부대기실 가서 몰래 누워 있었다니까! 이거봐.
립스틱을 바르던 O가 L이 보여준 신부대기실에서의 코믹 셀카에 까르르 웃는다. 대학생인 O가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마포구 W웨딩홀에서 주말알바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일을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평일에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주말알바를 구하기 위해 매일같이 알바몬 검색을 해왔는데 비로소 적합한 일을 구한 것이다. ‘키 165cm 이상의 20대 여성’ 같은 자격 요건에도 부합했기에.
W웨딩홀은 다이아몬드홀, 에메랄드홀, 리셉션홀로 불리우는 세 곳의 홀과 뷔페가 있는 한 개의 연회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인근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마트시설로 이어지는 긴 복도를 갖고있어 공간크기로 치면 초대형에 속했다. 그만큼 오가는 사람도 많았고 직원 모두가 바쁘게 일했다. 예약실 사무직원과 주방 직원 여럿에 연회장에서 식기를 나르고 치우는 아르바이트, 결혼식 예도와 안내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 돌잔치 사회자 등 여러 직업군이 각자의 업무 속에 분투하는 현장이 이곳, W웨딩홀이다.
O가 립스틱을 고쳐 바르는 것도 그 같은 분투의 연장이었다. 항공사 승무원을 연상시키는 스커트 유니폼을 입고 하나로 묶어 올린 머리 위에 모자를 써 실핀으로 고정하고, 살색 스타킹에 검정색 하이힐, 빨간 립스틱에 미소띤 얼굴을 유지하는 것 말이다.
나 이제 교대가야 돼.
L이 벌떡 일어나 힐을 신으며 말한다.
벌써? 아직 15분 안  지났어.
나 아래층 복도 안내야. 가는 데만 5분 걸려.
아, 그렇지? 수고해.
응. O 너두 수고해. 이따 보자.
십분 안팎의 짧은 휴식이지만 이조차 얼마 전에야 시작된 휴식제도였다. 걷고 움직이는 예도야 그렇다 치더라도 한 자리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손짓과 음성으로 위치를 안내하는 일은 체력적으로 고역이라 순환근무와 휴식이 필요하다는 하소연이 팀장 언니에게 참작된 것이었다. 팀장 언니는 O나 M, L과 같이 예도와 안내 도우미 일을 겸하면서 스케줄과 일급을 관리하며 웨딩홀 실장님(갑)과 아르바이트생을 관리하는 외부업체 실장님(을) 사이에서 예도, 안내 아르바이트생(여자, 병, 정)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했다. 스무살부터 스물셋이 대부분인 도우미들 사이에서 스물아홉살의 팀장언니는 병아리를 통솔하는 어미닭 같았다. 어미닭은 일을 마치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병아리들을 다이아몬드홀이나 에메랄드홀로 불러 모아 일당을 배분해주었다. 봉투에는 현금 3만 5천원이나 4만원 가량이 들어있었고, 이는 보통의 결혼식이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3시 내에 이루어지는 것을 고려하면 앞뒤 준비 시간을 더하고서도 하루 8시간이 넘지 않게 일한 대가로 받는 것이었다. 최저시급이 3000원대인 것을 생각하면 적지않은 돈이다. 저녁에 돌잔치나 회갑연 같은 행사가 잡힌 날은 이따금씩 추가근무를 했고 그러면 봉투에 든 돈이 5~6만원으로 뛰었다.
억. 죄송합니다. 이제 확인해서 지금 수정해놨습니다.
H재단 사업에 선정된 참여자 대상 워크숍에서 행사 안내를 하고 있을 때 크리틱-칼 운영자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온라인 웹진 크리틱-칼에 엊그제 게시한 글 ‘H고시텔 243호’에 줄 간격이 잘못되어있어서 수정 요청을 드린 후 하루 뒤 답장이었다.
아니에요. 제가 감사하죠. 글 실을 수 있게 기회 주시고 도와주셔서^^
크리틱-칼에서 가장 낮은 조회수를 자랑하는 글의 필자임에도 불구하고 염치없는 톡을 보낸 뒤 다시 일에 집중한다.
계단을 따라 다목적홀로 내려간 다음 좌측 엘레베이터를 타시면 됩니다! 곧 교육이 시작됩니다.
건물에서 길을 잃은 참여자에게 위치를 안내하고 복도에 놓아둔 간이의자에 앉는다. 옆에 있는 참여자용 다과에서 곡물 비스킷 하나를 집어 먹는다. 협력업체가 구입한 다과라서 왠지 눈치가 보이지만 배가 고파서 못 참겠다. 웃음과 친절이 별개일 수 없을까라는 난제를 생각하는 동안 비스킷에 든 김 맛이 입안에 돈다.
이거 먹고 해.
휴게실을 지나는 O의 손에 주방 이모님이 김초밥 하나를 쥐여준다. 잡채, 김밥, 육회, 궁중떡볶이, 등갈비, 꼬치요리 등 각종의 뷔페음식이 있는 연회장이지만 식이 끝날 때까지는 직원에게 그림의 떡이다. 단 하나의 예외음식, 김초밥을 빼고는 말이다. 소위 즉석주문 음식인 김초밥을 마는 주방은 마침 휴게실 길목 앞에 있어서 주방 이모님의 협력 아래 도우미들은 은박돗자리에 둘러앉아 김초밥 다과를 즐기곤 했다. 입에 김이 묻은 줄도 모르고.
이 친구는 잘 웃어서 보면 기분이 좋단 말이야.
H재단에서 일하는 시간 동안 익히 들어온 말 중의 하나다. 내가 그렇게 잘 웃나? 하긴 입사 초창기에는 그랬던 것 같다. 각종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로 생긴 직업병에 웃음이 곧 친절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부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는 말이다.
워크숍 마지막에 팀장님은 나를 포함한 전 팀원을 무대에 오르게 해 백팔십명의 참여자 앞에 인사시켰다.
안녕하세요. O입니다.
나는 짤막한 인사말에 이어 미소 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단상을 내려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가로 데뷔한 O가 다시 W웨딩홀을 찾아간 것은 그로부터 몇 겹의 해가 지나 예술인 사업 오리엔테이션에 참여자로 참석했을 때였다. O가 예도 칼을 들고 신부, 신랑의 입장을 밝혔던 다이아몬드홀, 하객 의자의 오열을 맞추느라 고생했던 에메랄드홀 모두 그대로였지만. H재단 사업 행사가 한창인 아래층 컨벤션홀만큼은 좀 다른 풍경이었다. 멘토라 불리우는 열댓명의 아저씨 아니, 전문가가 무대 위에 있었고 한 분은 결혼식 사회자 위치에서 식순을 소개하고 있었다. O는 객석의 빈 좌석 하나에 앉아 멘토의 프로필 소개를 들었다. 그들은 어미닭처럼 사업 참여가 처음인 병아리 예술가에게 도움을 주고 사회와 예술의 간극을 중재해줄 것이었다.

O는 가끔 차가워 보여.
네.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반대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편하고 좋은 사람 앞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거뿐이에요. 아, 선생님! 저 사진 찍어도 돼요?
응? 나를?
네. 찍고 싶어요. 저 H재단에서 앞으로 8개월 시한부잖아요. 사진이 남는 거고.
계약 연장 안 되면? 다음에는 뭐할 거야?
모르겠어요! 뭔가 하고 있겠죠? 그때를 대비해서 주말알바라도 할까 하는데 이제는 나이 제한도 걸리고 시급이 6470원이라… 아무튼 남은 시간 동안은 제 이력을 살린 작업을 계속하려고 해요. 지난 번에 크리틱-칼에 올린 글도 그 일환이고요.
그래. 꾸준히 하다 보면 될 거야.
그러기를 바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