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_그럼에도 예술은 계속되어야 한다.

2014.04.28 발행

바로 얼마 전 일어났던결코 간단히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을 모두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그 사건에서 우리는 모종의 한계를 보았다그것은 국가의 문제이기도 했으며경제적 문제이기도 했고정치적 문제이기도 했으며 심지어 과학적 문제이기도 했다나는 이런 다양한 문제들 가운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어떤 것이 다른 것의 위에 오는 순간다양한 문제들은 하나의 궤도 속에 함몰되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따라서 우리는 이 일을 진정한 사건으로 만들기 위해 위의 범주 모두를 동등한 차원에서 속속들이 파헤치고부수고재건하고또 다시 부수어 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 범주 속에 예술은 들어갈 자리를 찾고 있지 못한 듯하다위에서 말한 범주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나름의 분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고 있는데어쩐 일인지 예술의 범주만은 마치 원래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자리가 말끔히 비워내져 있다그러나 이 글은 그곳에 예술의 범주를 도입하고자 하는 소박한그러나 어떻게 보자면 매우 망칙한 목적을 가지고작금의 상황에서 예술의 필요성을 짧게나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예술이 최근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근래에 발행된 정책연구서나 신문기사의 댓글을 보는 것이다전자는 공식적인 차원에서 예술이 어떻게 전유되는지를 드러내 주며후자는 그것이 비공식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소화되고 있는가를 설명해 준다그러나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어쨌든 이들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예술향유는 여가활동이라고여기서 여가餘暇라는 말을 잠깐 뜯어보자면남는 겨를 또는 여유로운 때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것이 활동이라는 말과 만남으로써 예술향유는 여유가 있을 때 하는 활동즉 짬 내서 무언가 즐기는 것이 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의미 부여가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한다왜냐하면예술작품은 여유가 났을 때 단순히 시간을 때우라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비유적인 표현을 쓰자면예술 작품과 조우함으로써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격전지로 뛰어든다그 격전지에서 전리품으로 얻는 것이 미적 쾌이든뭔가를 배운 것이든자기 자신을 비추는 것이든그를 얻기 위해서 예술 작품 앞에 선 이는 어떤 식으로든 투쟁한다그건 말 그대로 굉장히 머리가 아픈 일이며 또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왜냐하면작품에서 미적 쾌를 느끼는 이는 작품 -가상- 만도 못한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으며또한 뭔가 배우고자 하는 이는 예술의 가르침을 통해 현실을 바꾸려 하고또한 자기 자신을 비추려 하는 이는 현실 속의 자기 자신이 얼마나 추한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이 셋이 한꺼번에 닥쳐올 수 있다는 점에서예술은 더더욱 위험해 진다요컨대예술 작품과의 만남은 오히려 현실 자체를 더욱 문제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작품의 의미를 이렇게 두고 볼 때작금의 상황에서 왜 예술이라는 범주가 빠져버린 것일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죽어나간 지금 상황에서예술을 접하는 것이 죄악감으로 다가올 수는 있다왜냐하면이 사회에서 예술향유는 아직까지도 여가활동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모두들 슬퍼하고 있는데 나 혼자 짬을 내서 즐긴다는 것은 결국 사회적 사형선고를 요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하지만 만약 예술향유가 여가활동이 아니라면 어떨까예술을 적당히 여가활동의 일환으로 만들려 하는 이들의 말을 듣지 않고자신의 끓어오르는 분노의 대상이 무엇인지 현실화해주는 하나의 계기로써 받아들이면 어떨까.만약 그렇다고 한다면이런 때야 말로 더욱 더 예술을 접해야만 한다.

앞에서 잠시 이야기했지만이럴 때 요구되는 자세는 현실을 잊지 않고 예술작품을 접하는 것이다우리는 이미 백 명이 훨씬 넘는그리고 지금도 속속 늘어나고 있는 시신들을 뒤로 하고 있다거기서 오는 죄악감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는 예술작품을 접해야만 한다예술작품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온전히 남아서 누군가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그리고 과거의 잘못과 부조리를 잊지 않기 위해서그리고 그렇게 많이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무력함을 직시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더 이상 이대로 머물러 있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