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_원죄

2013.04.26 발행

‘원죄’라는 것이 신학의 용어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어떤 면에서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트라우마’와 유사성이 엿보인다. 물론 이는 신학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 지식의 한계 때문에, 둘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나에게 있어서 순전히 상상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사례연구들을 찾아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지만, 즉석에서 글 한 편을 써보는 것도 나름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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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숨을 가쁘게 쉬었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네>

죽어가는 자에 대한 예의로 나는 그의 팔에 주사를 놓는 것을 잠시 미루고 그에게 귀기울였다.

<어느 집에 연쇄살인자가 들어왔었네. 그는 칼을 들고 제물을 찾아 헤맸지. 저항할 능력이 없는 여자는 갓난아기를 안고 침대 밑으로 숨었어. 그건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네. 연쇄살인자는 허탕쳤다고 생각하고 집에서 나가려고 했었으니까. 그런데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네. 갓난아기가 울기 시작한 거야. 그는 침대를 뒤집고 그 밑에 숨어있는 여자를 발견하고는 칼로 난도질을 했지. 여자는 칼에 난자당하면서도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네. 이윽고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그는 사살되었지만 여자는 죽고 말았어>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곧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어두웠다.

<그 아이의 인생은 곧 죄로 얼룩진 것이었다네. 그가 기억하지도 못할만큼 어린 시절의 잘못으로 인해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 살게 되었지. 단순히 타인이 그에게 손가락질 하는것 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 어머니를 죽이는데 일조했다는 것이 언제까지나 그의 목을 조르고 있었던 셈이야>

그는 눈을 감고 마른 침을 삼키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곧 죽게 되었네. 그 아이의 죽음은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죽은 어머니는 그가 어떻게 해서든 살길 바랬고, 그의 아버지와 친척 그리고 주변 사람은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혐오스러워 했네. 과연 그 아이가 죽는것에 대해 슬퍼해야 할까 아니면 기뻐해야 할까?>

나는 무언가 대답을 했으나 그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외로웠다. 말년을 암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위에는 돌봐줄 이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의 동공과 맥박 상태를 확인한 후 사망했음을 기록하였다. 시체 인수인이 없기 때문에 그는 시립 공동묘지에 안장될 것이다. 그의 팔에 남아있는 -지금은 희미해진- 수많은 자상 흉터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