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국_중력과 은총, 테러와 예술

2016.03.09 발행

중력과 은총*, 테러와 예술

    『카라마조프의 형제The Brothers Karamazov (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1879-1880)에서 이반Ivan은 이런 말을 한다. “이 거대한 건축이 그 아무리 멋지다 해도, 만일 그 대가로 어린아이의 눈물 한 방울이라도 치러야 한다면, 나는 거부한다.” 인간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지 않는 행위가 그 어떤 것에 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강력한 발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 세계 도처에서 고통과 아픔의 무거운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폭력과 전쟁, 테러가 인간을 끌어당겨 무릎 꿇게한다. 주저 앉게 만든다. 인간의 악행, 그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어찌할까? 우리는 그 순간, 위에서 내리는 은총을 기다리게 된다. 무릎을 펴고 곧게 일으켜 세우는 은총을 기다리게 된다.

‘13일의 금요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날이 13일의 금요일로 알려져서 서양에서는 불길하게 여기는 그날. 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밤, 그 불길함이 무거운 고통과 아픔의 신음 소리가 되어 프랑스를 뒤덮었다. 파리의 공연장, 경기장, 식당, 카페 등 최소 7곳에서 연쇄 테러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망자 130여명, 부상자 350여명. CNN은 이 충격적인 테러를 두고 “세계 2차대전 이후 프랑스 최악의 테러”라고 보도했다. 우리를 절망의 깊은 땅 속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에, 그 잔인한 사건에 우리는 허탈하게 무릎을 꿇는다. 암흑이 우리를 집어 삼킬 듯이 끌어당긴다. 하지만 머리 위로 은총이 내린다. 우리는 조금씩 무릎을 펴며 다시 하늘을 향해 일어난다.

곤궁한 상황의 반 고흐를 지탱해줬던 것이 예술이었듯이, 힘든 상황에서 예술은 은총처럼 내려온다. 충격적인 ‘11·13 파리 테러’ 이후 프랑스인은 예술의 은총에 힘입어 일어서기 시작했다. 테러 직후 프랑스에서는 50년 전에 출간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veable feast (Paris est une fete)』(1964)가 3주 만에 12만 부나 팔렸다. 판매량이 50배나 급등한 것이다. 프랑스인은 ‘테러’를 문학으로 저항했다. 아니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고 했으니 ‘테러’를 ‘축제’로 저항하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테러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목격한 시민들에게 좌절과 공포를 주어 일상 생활을 어렵게 만든다. 테러의 가해자들이 바라는 것이 바로 일상의 훼손이리라. 하지만 프랑스는 테러 이후 3일만 인, 11월 16일 루브르 박물관과 에펠탑을 다시 개방했다. 한때 취소까지 논의됐던 잉글랜드-프랑스, 독일-네덜란드 축구 경기 역시 예정대로 11월 17일 진행되었다. 디즈니랜드는 18일부터 개장했으며, 20일에는 제 20회 ‘2015 칸 댄스 페스티벌’이 열렸다.

테러라는 힘든 상황에서 생기를 불어넣어 줄 축제는 더욱 큰 가치를 가진다. 마른 뼈 사이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을 연상해보라.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는가. ‘루시Lucy’, 340~290만 년 전의 초기 인류가 직립보행을 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 해 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보다는 ‘루시’로 더 잘 알려진 여성 유인원. 처음 이 유인원의 유골이 발견되었을 때 고생물학자들의 캠프에서는 비틀스의 ‘다이아몬드가 뿌려진 하늘 위의 루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말라 붙은 유인원의 유골 위로 비틀스 노래의 생기가 내려 앉았다. 그리고 그 유인원은 ‘루시’가 되었다. 성경의 표현처럼 ‘마른 뼈를 생기로 살아나게 하듯이(에스겔 37:5~6)’, 비틀즈 노래는 이 유인원을 박제된 명칭에서 끌어내어 친근한 여성으로 바꿔놓았다. 은총이 내려 앉자, 중력은 무력해졌다.

의도한 것은 아니였지만 테러 이후, 한국의 예술 행사가 프랑스인을 위로하는 축제의 역할을 한 것은 대단히 기쁜 일이다. 올해(2016년)는 우리나라가 프랑스와 1886년 부터 수교한 이래 1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와 프랑스는 작년과 올해를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l’Annee France-Coree 2015-2016’로 지정하고 여러 다채로운 문화 예술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먼저 2015년 9월 18일부터 파리에서 ‘프랑스 내 한국의 해’ 행사를 시작하여 올해 8월까지 진행할 예정이고, 올해 3월부터는 ‘한국 내 프랑스의 해’ 행사가 국내에서 시작되어 연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한-불 상호교류의 해’라는 명명이 무색할 정도로 프랑스의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다. 그저 프랑스하면 파리 테러만 떠올릴 뿐이다. 아마도 작년이 ‘프랑스 내 한국의 해’여서 국내에서 별다른 행사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프랑스는 달랐다. 프랑스 곳곳에서 한국의 문화 예술 공연이 열리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한 해였다. 테러가 있던 그 날에도 파리의 국립 기메동양박물관Musee National des Arts Asiatique Guimet에서는 한국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 중인 작가 이배의 개인전 《이배에게 백지위임Carte blanche a Lee Bae》(2015.9.18.~2016.1.25.)과, 14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조선 시대의 독창적인 한국화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전시 《화집 위의 호랑이, 한국화의 다섯 세기Tigres de papier, cinq siecles de peinture en Coree》  (2015.10.21.~2016.2.22.), 자수(刺繡)의 미학을 보여준 손인숙의 개인전Insook Son embroidery Exhibition(2015.9.18.~2016.3.14.)이 열리고 있었다. 팔레 드 도교Musee Palais de Tokyo의 ‘명예의 계단PALIER D’HONNEUR’에서는 이불의 <새벽의 노래 IIIAUBADE III> (2015.10.21.~2016.1.10.)가 전시되고 있었으며, 파리 장식미술관Les Arts Decoratifs에서는 한국공예전 《KOREA NOW!》가 열리고 있었다. 파리 이외 지역에서는, 프랑스 주요 유적지, 샹보르 성Chateau de Chambord에서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의 사진전 《숲속으로D’une foret l’autre》(2015.9.26.~2016.4.10.)가, 릴Lille의 트라이포스탈Tripostal에서 ‘서울’을 주제로 한국 현대미술과 예술가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전시 《서울, 빨리 빨리!SEOUL, Vite, Vite!》(2015.9.26.~2016.1.17.)가, 메츠Metz의 퐁피두-메츠 센터Centre Pompidou-Metz에서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김수자의 개인전 《To Breathe》(2015.10.26.~2016.1.4.)가, 디종Dijon에 위치한 르 콩소르시움Le consortium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이끈 제1세대 화가들이자 파리에 뿌리를 두고 예술활동을 펼친 이응노와 한묵의 전시 《이응노, 한묵 : 파리의 한국 현대작가HAN MOOK & LEE UNGNO Deux peintres modernistes coreens a Paris》(2015.10.30.~2016.1.24.)가 진행되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게 한국의 예술은 테러의 암울한 시기에 고요히 프랑스인들을 위로해주고 있었다.

    테러의 아픔을 뜨겁게 감싸안기도 했다. 한국의 몸짓은 프랑스인에게 큰 위로를 안겨주었다. 공연장은 파리 테러 중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곳이다. 파리 11구 볼테르 가의 유서 깊은 공연장 바타클랑Bataclan 극장에서 미국 록밴드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Eagles of Death Metal’의 공연 중 테러가 자행되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 시민들이 공연장에 대한 공포가 생길 법한 일이었다. 하지만 테러 1주일 후인 2015년 11월 20일 프랑스 칸의 루이 뤼미에르 극장Le cinema Louis Lumiere에서는 9일간의 ‘2015 칸 댄스 페스티벌’을 시작하였다. 개막식날, 테러의 공포가 생생한 시점이었지만 1층의 1200석이 부족해서 2층까지 열어야 할 정도로 관객들은 객석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최초로 이 축제에 초청된 한국의 국립무용단은 개막작으로 <회오리VORTEX> 공연을 선보이며 축제의 빗장을 열었다. 예술감독인 브리짓 르페브르Brigitte Lefevre가 이 공연에 대해 “우아하고 시적이면서 뭔가 더 나은 세상으로 우리를 끌어내는 것 같았다”라고 소회(所懷)를 밝혔듯이, 공연은 프랑스 시민이 갖고 있는 테러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하였다. 한국의 국립무용단이 꿈을 선사했다면, 현대무용가 안은미는 열정을 심어주었다. 그녀의 무용단은 2015년 파리가을축제Festival Paris quartier d’ete에 초청되어 9월부터 파리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더니 12월까지 〈사심없는 땐스Dancing Teen Teen〉 3회,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Dancing Grand-mother〉 3회,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Dancing Middle-aged Man〉 2회 등 ‘땐스 3부작’을 8회나 공연하며 삶의 에너지를 프랑스인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녀의 ‘땐스 3부작’은 프랑스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받아, 파리 외에도 릴Lille 등 프랑스 북부 3개 도시에서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를 7회나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2016년 1~4월까지 클레몽Clermont 등 프랑스 남부 7개 도시에서 11회 공연이 예정되어 있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테러 이후, 한국의 몸짓은 테러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삶에 대한 열정, 뜨거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예술은 우리에게 공감할 만한 한 순간의 기쁨, 혹은 슬픔 등의 감정을 건드리며 내면을 정화시켜준다. 예술은 자신도 모르게 쌓여 있는 감정,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 억압되어 있던 욕구, 소망 등을 순화시킨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하며,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응시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 갖는 치유의 기능이며, 정신을 고양시키는 은총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예술(특히 미술)의 중심이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 그에 따라 현대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동하였다. 그럼에도 명작의 고향으로 불리는 파리는 19세기부터 전세계의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미술사조를 탄생시킨 도시이고, 프랑스는 여전히 문화와 예술의 나라이다. 한국의 예술이 문화와 예술을 대표하는 프랑스에서 아픔을 예술로 치유되도록 이끈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전혀 어색하지는 않는 상황일 줄도 모른다. 한국도 ‘세월호’ 사건으로 전 국민이 큰 아픔을 겪고 있기에 어쩌면 프랑스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를 돕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한-불 상호교류의 해’가 좌절과 공포로 끌어당기는 중력 속에서 위로와 치유로 끌어올리는 도르래 역할을 하고 있다.

구석기 예술은 매우 엄혹한 환경이었던 마지막 빙하기에 대부분 창작되었다. 어려운 조건에 대한 반응이 예술로 나타난 것이다. 테러의 일상성(日常性)이라는 ‘대괴물’과 마주하는 세상 속에서 겁에 질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게 하는 것, 그 좌절과 공포를 예술로 치유하고 승화시키는 것, 이것이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유익이 아닐까. 프랑스를 위해서도, 테러나 재난의 곁에 서 있는 우리를 위해서도, 예술은 끊임없이 우리 속에서 치유와 정화 작용을 하면서 움직이게 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2016년에도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기념해 1월 11일 마술가 이은결과 개념 설계자 에릭 디미슨Eric Dimitson의 《Here is 〈direction〉》(2016.1.11.~1.15.) 공연을 시작으로 다양한 공연과 전시, 영화제가 진행될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2016년 3월 넷째 주를 개막주간으로 지정하고, 한국과 프랑스가 합작으로 제작한 국립무용단의 공연,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 특별전(2016.3.26~6.30., DDP) 등 다채로운 행사를 선보일 예정이다. 과거와 미래는 인간의 유일한 재산이다. 문화와 예술을 대표하는 프랑스가 고통의 중력에 무릎 꿇지 않고 미래를 향해 일어설 수 있도록 한국의 문화 예술계가 그들을 보듬을 수 있어서 기쁘다. 올해에는 ‘한국 내 프랑스의 해’ 행사를 통해 고통의 중력 속에서도 예술을 꽃피우는 프랑스를 응원하고 그 저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자.
중력은 은총에 무력하다. 은총이 프랑스에 가득 내리길 기도한다.

* ‘중력과 은총’은 1947년 출간된 시몬드 베이유Simone Weil의 『중력과 은총 La Pesanteur et la grace』에 흐르는 중심 개념과 맥을 같이 한다. 본인은 1999년 ‘사회평론’에서 출판한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이유의 사색 1 : 중력과 은총』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