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준_마이크로시티랩 리뷰 : 무엇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2016년 10월 25일 발행

기획자 심소미의 전시 <마이크로 시티랩>은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체로 전락해버린 마이크로 포인트에 미술의 직접적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전시에 참여한 17팀의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도시에 “개입”할 것을 주문받는데, 이 “개입”의 목적을 기획자는 메가 시티 속에 함몰된 미시적 존재들을 조명하기 위함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때 미술은 수단이 되며 전통적 미학의 역할은 희미해진다. 이들에게 미학은 더 이상 조형적 실험도, 실체하는 생산물도 아닐 것이다. 미학의 지각 대상이 예술품과 기성품을 넘어, 어떠한 “상황”을 포함시키기 시작한 이후, 미학은 사회적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회화, 조각, 건축, 무용 등 작품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관조하던 수동적 태도가 전통적 미학이라 한다면, “사회적 전환” 후, 미술은 자신이 속한 사회를 미학적 지각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묘한 일을 꾸미고 있다. 마이크로 시티랩 전시 또한, 각 작가들의 도시 개입을 통한 소수의 언어를 해방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 도시의 관찰자로 유효할 수 있을까?

<무엇에 개입할 것인가?>

 “개입”은 분명한 타자를 동반해야만 성립 가능한 행위이다.  타자라는 명확한 객체 없이, 표리일체의 형태에서 침투와 개입이란 행위는 불가능한 일이다. 마이크로 시티랩은 사회에 개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사회란 분명한 객체이자, 관찰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사회”라는 것은 손가락으로 지목할 수 있는 물리적 대상이 아닌, 실체 없는 공동체를 상정하는 것이다. 때문에, 특정 공간의 침투와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는 행위만으로 사회 개입을 선언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사회는 수치적 평균치와 논리적 분석으로 자신의 존재를 일시적 가시화한다. 예컨대, 취업률과 이혼율, 노동, 주택, 교통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해, 계량과 객관적 근거치를 통해 사회는 어떠한 공간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를 대상하고 지각하려고 할 때, 먼저 “물리적 해석”보다  “감수(感受)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회는 관념적 상상체가 아닌, 우리의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운동 감각 등을 통해서 지각 가능한 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시티랩 전시전경, 사진제공 : 서예원

마이크로시티랩 전시전경, 사진제공 : 서예원여기서 젯사다 땅뜨라쿤웡의 개입을 보도록 하자. 그의 개입은 건물과 외벽 디자인, 일시적 이벤트, 특정 관계와의 구조적 변이 등, 다양한 의례와 자신의 감각을 통해 사회를 지각하려는 시도였다. 이 과정에서 이와 같은 생활상의 디테일로 구성된 “사회 미학”은 구성원(原)의 정치적, 사회적 신념이나 이데올로기, 암묵적 기호와 상징적 의미의 시스템, 그리고 작은 사회를 둘러싼 거대 구조로 환원할 수 없는 작가 독자적인 사실성을 가지고 있다. 젯사다 땅뜨라쿤웡의 작업은 도시를 구성하는 재료의 물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물리적 해석과 이론으로 분석되거나 상정되는 도시가 아닌, 개인의 미학적 지각이 사회를 가시화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이미 계량된 사회를 계량된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은 문제의 공회전을 초래할 것이다. 예술의 개입은 일시적 사회 사건의 조명이 아닌, 미학적 감수를 통한 새로운 사회 지각 방식을 고안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Jedsada Tangtrakulwong, 아르코 미술관 벽면 개입, 2016 사진출처 : 마이크로시티랩 페이스북

<어떻게 개입하는가?>

작가들의 사회적 개입에 있어, 우리는 그들의 행위가 타 행위에 미치는 결과를 예민하게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이미 현대 사회는 행위에 의한 파생 행위를 상상하기 힘들어졌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발현 전, 그러니까 공동체가 소멸되기 전의 우리는 하나의 행위가 타 행위에 미치는 결과를 감각하는 일이 가능했다.

존 듀이식으로 대면적 연대 사회에서는 인간의 활동이 모두 지리적, 사회적으로 제한된 지역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위가 환경 전체 속에서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관찰하고, 수정하는 일이 용이했다. 이 사회의 사람들은 복수의 역할을 부여받고, 전체 속의 자신의 행위를 주시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우리의 주의는 사물 자체가 아닌, 사물과의 관계를 향할 수 있으며, 오직 대면적 연대 사회 내부에서만 우리는 유의미한 관계성을 유대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소멸은 개인과 상호 관계의 지각을 희미하게 하고, 공동체 감각을 붕괴시켰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행위가 무수한 사회적, 기술적 행위에 미치는 효과를 직접 관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시대는 사회를 재단하는 일정 영역 안에서 이것을 해석하려 한다. 따라서, 이론 체계나 추상 개념으로의 의존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해석은 인간의 경험의 기술이 평판화, 획일화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곧 우리는 이론의 영역 안에서 모두 우울한 슬랙티비스트가 되지 않을까? 전시가 지향하는 미술의 사회적 “개입”은 해석의 폭력에서 일상생활의 경험을 신중히 건져내는 일을 사회 기술과 함께 고안해야 할 것이다.

이번 전시는 마이크로 개입(Micro Intervention)이라는 이름 아래, 미술의 소규모 사회 참여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작가의 개입은 도시의 거대 자본 속 그늘에 매몰된 작은 발언을 가시화하고자 하지만, 엉뚱하게 미술의 무력함을 시사하는 결과로 오독될 여지도 분명해 보인다. <마이크로 시티랩>은 전시장 내의 디스플레이가 마감된 상태의 “완료형 전시”가 아닌, 참여 작가들의 ” 사회적 개입”을 행위하는 동시에 전시장 내에 그 결과물을 겹겹이 쌓아가는 “현재 진행형 전시”이다. 폐막일인 오는 10월 30일, 전시는 어떤 변주의 형태로 남은 과업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긍정적인 기대와 함께, 근사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