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준_ 코레아 우라!

2017년 1월 2일 발행

통일은 타자와 주체 간의 합일이 아닌 새로운 분단의 형태로 도래하지 않을까? 모든 헤게모니의 작동은 항상 타자의 존재를 원칙으로 한다. 이는 지배 논리에 있어 동형적인 것이다. 외부없는 내부 없고, 식민 없는 식민 지배는 불가능하다. 남북의 헤게모니 쟁투는 어떠한가? 통일 대박이라는 말은 이미 북한을 경제논리적 가치로 상정하고 있다. 북한의 지하자원과 제조, 생산직 위주의 노동력을 효율있게 확보하기 위해 남한은 북한에 대한 헤게모니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4차 산업의 전환기를 맞은 남한은 통일을 희망하지만 북한의 흡수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선례를 보여준다. 통일 후, 독일에서 ‘성공한 사람’의 연고지가 동독이라면 그들에게는 항상 “동독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동독 출신 교수, 동독 출신 의사, 동독 출신 대통령 등). 북한 이주민은 한국 국민은 될 수 있어도, 한국인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11월 19일 4차 촛불 집회가 있던 날. UN에서는 북한의 돈줄을 압박하기 위한 추가 제재안을 발표한다. 그 내역이 굉장히 의미심장한데, UN은 기존의 물리적 제재 수단을 넘어 북한의 문화 홍보와 시각 조형물 수출에 제한을 두겠다고 한다. 다시 말해, 만수대에서 생산되는 여러 거대 창작물과 북한에서 생산되는 이미지 수출물에 대대적인 제한을 걸겠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의 주체들은 자기 자신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자체적 이미지 생산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미, 전 세계를 표류하는 수많은 북한의 이미지를 비롯하여, 남한으로 공급되는(혹은 남한에서 생산되는) 그들의 이미지 대부분의 생산지는 북한이 아니다.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지는 통일 후의 북한의 운명을 결정짓는 예민한 일기도 하다.

북한은 남한의 정치적 콤플렉스에 의해 무력하게 재현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을 대표할 수 없는 고립된 곳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 열등한 타자로 고착되었고, 대중에겐 연민과 분노의 대상이었다. 통일은 그들을 다시 역사의 패자로 기억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삭제된 북한의 이미지 다시 소환하려 한다. <남남 북녀>, <이제 만나러 갑니다>와 같은 남한의 감성 버라이어티는 탈북자의 삶을 조명한다. 이 프로그램들의 대부분 은 지옥 같은 북한에서의 탈출과 남한 정착기를 대중에게 소개하며, 북한 이주민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치환하기 바쁘다. 또한, 북한이 가진 스테레오타입의 이미지가 전복되는 순간 우리는 알 수 없는 묘한 쾌감을 체험하게 된다. 북한을 긍정적인 이미지로만 재현하는 것은 어떤 정치적 행위로 해석될 수 있을까? 서벌턴의 작동 원리를 해석하지 않는다면 열등 주체로 고착화된 북한을 신세계에서 답습하는 것일 뿐이다. 때문에, 통일은 사전에 기억된 과거를 해체하고 전략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과거의 시간을 전략적으로 이행한다는 것은 동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강신대의 <본격 시대정신 밴드 컨템포러리-인터내셔널가>는 전제 없는 미래를 상정하는 시간성에 대한 오류에 집중한다. 그에게 해방 없는 통일은 현재주의에 함몰된 암울한 시간상이다. 우리는 원근법적 시간을 상실한 동시대를 살아가며 압축된 현재만을 맞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가치 체계에 함몰된 해방과 혁명이란 미래적 상상물은 시대를 심미하는 일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며, 그의 ‘인터내셔널가’가 더 구슬프게 들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삭제된 패자의 역사를 상상한다는 것이 동시대에 소비되는 레트로 따위의 심미적 시간성과 동형적인 것일까?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본격 시대정신 밴드 컨템포러리 – 인터내셔널가, Sound, Single Channel, Kang Sindae, 2016 – 격변! 미지로부터 코레아
반면, 차지량은 미래를 기념하고자 한다. <정전 100주년 기념 사랑과 평화 페스티벌>은 정전을 상정하고 통일을 유보시킨다. 작가는 휴전 상태가 100년이 지속된 미래를 직사하며, 이념과 분단, 그리고 국가와 정치적 대립각이 존속하는 미래를 기념하고자 한다. 기념은 과거와의 매개가 필연적이다. 즉, 연대기적 역사주의 내부에서 시간을 기억하기 위한 수단인 ‘기념’이란 행위는 과거 없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전 100년 후를 기념한다는 것은 자기모순이지 않을까? 연대기를 폐기하고 시간을 압축하여 재배치하는 방식은 오히려 현재의 시간상을 선명히 보여준다. 원근적 시간 없음은 역설적으로 시간의 이행을 가능하게 한다. 시간의 이행성은 남북 헤게모니 장악의 수단이자 패자의 역사를 복구하고 해방시키기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는 양가적인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함몰된 통일이란 역사는 폐기물처럼 북한을 삭제할 것이다. (역사의 조립과 폐기에 냉소할 수 있는 이보다 더 좋은 시대가 있을까?) 그러나, 북한의 영혼은 한반도의 구천을 헤매다 정치적 이미지로 소환되어 언제나처럼 무력하게 소비될 것이다. 북한은 복고 스타일과 같은 시대의 심미적 대상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시비를 따지기 힘든 일이다.
정전 100주년 기념 사랑과 평화 페스티벌 Installation, 3Channel Video, Cha Jiryang, 2013
북한은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고 정형화되는가? 첫째, 이미지 권력에 의해, 정형화된 북한의 이미지는 대부분 때로는 악의 의미로, 때로는 민족이라는 공동체로 묘사된다. 어느 쪽이든 그들의 진실은 타자에 의해 결정되고, 매체가 제공하는 북한의 긍정적 이미지 또한, 정치의 덫을 은폐하고 있다. 통일은 북의 소멸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적기 적시에 북한이란 유령을 소환하여 그들에 대한 지배 구조를 유지할 것이다. 폭력과 약탈이란 제국주의식 착취 방식은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가치체계이지만,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이미지 재현 방식은 현대와 동형적이다. 권력의 획득과 피식민의 효율적 지배에는 구분과 호명의 방식이 적용되는데, 주체를 대표할 수 없는 무력한 타자인 북한은 그 이미지를 생산하는 권력 아래에서 ‘열등 주체’로 구분, 정형화되어, 레드 콤플렉스라는 이름과 함께 정치적 목적으로 작동되어 왔다. 둘째, 그 기저에는 ‘언어’가 있다. ‘글쓰기’에 대한 권력 작동은 살만 루시디에 의해 일찍이 다뤄진 바 있다. 글쓰기는 권력 구동의 진지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북한은 공중의 담론의 현장에 초대될 수 있을까?

콘크리트 프레스와 김포도는 이러한 언어의 헤게모니를 희미하게 시사하고 있다. 먼저, 콘크리트 프레스는 제17회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한 조해진의 <산책자의 행복>, 김사과의 <카레가 있는 책상>, 김숨의 <선량한 어머니의 아들들은 어떻게 자라나>를 북한의 언어로 번역한다. 번역에 사용된 어플인 ‘글동무’는 지속된 한반도 대립 관계가 야기한 독해할 수 없는 문화의 위치를 극복하려는 기술이다. 어플은 꽤 신뢰 있는 문장을 제공한다. 남북한 언어의 문법적 재배열과 적절한 단어의 선택도 그럴싸하다. 그러나 어플이 제공하는 문법적 이해도가 시대 반영적인 문화의 공감까지 연결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김포도는 언어의 부재에 따른 정치의 가변성에 집중한다. 언어는 주체를 호명하고 정체성을 담보하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소수 단어 수집>이란 아카이빙 수첩을 제작하여 남한에는 있지만 북한에는 없는 단어를 수집한다. 지난날, 다원주의의 유입과 자유주의식 이데올로기는 정체성에 관한 신조어를 다량 생산하게 하였다. 또한, 냉전의 붕괴와 개인의 회복이라는 새로운 시대상을 맞이한 다양한 주체들은 정체의 호명이 필요했고 그들에겐 언어와 담론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진정한 주체를 회복할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자유는 제 기능을 하고 있을까?

문화적 공감으로써의 언어의 역할과 정치의 언어는 둘 다 헤게모니 장악의 큰 관계를 가지고 있다. 글쓰기라는 것은 정치적 행위로써 세상을 재묘사 하는 것이고, 담론은 세상의 표상을 발굴하는 가치 체계인데, 지적 훈련이 불가능한 하위 주체들이 엮어낼 수 없는 언어가 엘리트에 의한 담론인 이상, 북한의 실제는 표상될 수 없다. 담론을 중심으로 하는 기호적 세계를 관통하는 타자(북한)는 제국을 관념으로 그 자체가 되는 피지배자의 형태와 동형적이다.

통일은 적대가 가진 상징자본을 붕괴시킬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은 더 이상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다. 헤게모니의 중심에서 북한은 소멸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문화와 함께 통일 한국과의 동일화를 지향해야 할 것이고, 이는 통일 한국이 세계를 인식하는 기준점이 됨과 동시에 담론 변동의 요점에 북한이 참여할 수 없음을 시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