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_어떤 폭로

* 이는 아래 언급될 작가 A의 요청에 의해 쓰였으며, 내용의 감수와 허락을 받았음을 알려드립니다.

어느 여성 작가가 있었다편의상 그의 이름을 A라고 해 둔다늦게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일러스트레이터 활동을 해오던 그는 작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모두들 알고 있듯이학적인적 친분관계와 금전적 배경이 없는 상태에서 작품활동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그래서 그는 오랜 기간 전전긍긍해 와야만 했다그러던 중 나름의 유명세를 가지고 있던 팝아트 작가 B가 연락해 왔다내용인 즉슨 인터넷에서 A의 그림을 봤으며자신이 주최하는 단체전에 참가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작가 A에게 이것이 얼마나 큰 기회로 느껴졌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뿐만 아니었다작가 B는 여러 차례 친분이 있는 유명무명작가들과 단체전을 해 왔는데거기에도 작가A를 참여시켜 주겠다고 했던 것이다그리고 작가 B는 작가 A에게 성관계를 요구했고작가 A는 모처럼 잡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이에 응했다

작가 A에게 약혼자가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작가 B의 성관계 요구는 집요했으며, 특히 음란 메시지를 연달아 보냈다. 평소에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고 공언하며 가면을 쓰고 다니던 작가 B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언어적, 성적 폭력이었지만, 작가 A는 이 모든 것을 말하지 못하고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A의 약혼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약혼자는 한 번의 실수라고 했고 넘어가자고 했기 때문에 A는 안도했다. 그러나 작가 B는 연락망을 바꾸어 계속하여 성관계를 요구했다. 물론 이번에는 앞서처럼 직접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전시에 참여시켜 주겠으며 만나자는 말을 계속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미루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다시 발각되었으며, 약혼자의 추궁이 이어지자 작가 A는 ‘예술계에서 내쳐질 것 같아 어쩔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기반이 없는 여성 작가가 유명세 있는 남성 작가의 요구에 불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는 어떤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신문의 가십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데뷔를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것들 말이다. 가수를 꿈꾸는 연습생이, 영화 출연을 하고자 하는 연기자가 그 씬 안에서 조금이나마 힘이 있다고 여겨지는 자의 요구에 불응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노력을 완전히 접어야 하는 것이 될 수 있기에, 당사자로서 이러한 요구를 받는 것는 자유 의지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이를 공론화하는 것은 자신의 작업뿐만 아니라 생업마저 위협받게 될 수 있는 일이며, 이에 더해 공론화의 과정에서 수치심을 극한까지 느끼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이런 류의 성적 약탈에 있어 종종 피해자인 여성이 거꾸로 험담을 듣게 되는 한국의 상황에서 이를 공공의 차원에서 발언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단 한 건에 지나지 않지만, 어찌 되었든 미술계의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요구가 암암리에 이루어졌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모르긴 해도 유명 작가가 주최하는 전시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성 작가를 유인하여 성적 만족을 취하려 하는 일은 이번 일 뿐이 아닐 것이다. 단지 이를 직간접적으로 말하지 못하게 막는 권력관계,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약탈자의 공범들이 존재했기에, 이런 일은 마치 애초부터 없었던 일처럼 취급받아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을 말해도 처벌받는 명예훼손의 빌미를 삼지 않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 A를 보호하기 위해 당사자의 이름과 신상정보를 모두 가린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 하지만 위의 사실에 거짓이나 과장은 하나도 없다. 이 폭로 아닌 폭로를 계기로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제 글 쓰는 능력이 부족해 사건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아무런 경각심 없이 쓴 듯한 느낌을 받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저 또한 사건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절대 마음대로 상황을 왜곡하여 적지 않았음을 밝혀드립니다. 작가 A만큼은 아니겠지만, 저 또한 한 줄 한 줄 쓰는 것이 매우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지적해주신 대로 과격한 표현은 삭제하였습니다.

공론화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에게 돌려주십시오. 질책의 말씀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법적 책임도 지겠습니다. 다만 여기서 언급된 이들의 신상을 유출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