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산_러시아 혁명 100주년에 바치는 오마주: 굿-즈, 관계미학, 포스트모더니티 너머 모순의 미학을 복원하기

2017년 4월 19일 발행

“최상의 혁명적 활동은 향수(nostalgia)의 감각에서부터, 곧 잊혀진 텍스트로의 회귀 또는 이상으로의 회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종교개혁(reformation), 공화국(republic), 또는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 또한 예행연습(rehearsing), 재개(recommencing), 재독(rereading)이라는 단어-에 붙어있는 접두사 ‘다시’(re-)의 이면에는, 책장을 끝에서부터 처음으로 거꾸로 넘겨가는 손이 존재한다.” *0 (본문에서 인용된 구절의 모든 강조는 필자에 의한 것입니다)

미적인 것의 딜레마
미적 판단(‘취미판단’)이 감성과 이성,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조화시킨다는 칸트의 논리에 따르면, 실재가 기호가 되고 기호가 실재가 되는 세계를 가리키는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시뮬라시옹simulation과, 이를 전유한 할 포스터Hal Foster의 진단(“문화적인 것의 “상품화”와 경제적인 것의 “상징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문화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구조적 대립이 붕괴”되었다는)*1과, 문화 자체가 주요한 산업으로 변모 했다는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를 비롯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역설, 경제의 미학화와 미적인 것의 경제화를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야기한 주체성의 전환의 계기로 사고하는 서동진의 주장*2 그리고 최근 논의되고 있는 경험경제를 구성하는 담론 등은 어쩌면 애초에 “미적 판단” 자체에 내재적으로 잠재되어 있던 결과일지도 모른다. 객관의 발생이 곧 주관의 발생과 일치한다면, 미적인 ‘판단’은 미적인 것의 발생을 전제하는 관념이기 때문이다. 상품의 내적 모순이 그것을 마치 예술작품처럼 보이게 하듯, “미적인 것”의 내적 모순은 그 자체 모든 대상을 낭만적으로 합일시키며 그 자신이 상품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애초부터 예고하고 있었다면 어떤가. 그렇다면 우리는 칸트의 테제를 다음과 같이 재정식화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미적인 것은 감성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을 조화시킨다”. 이는 미적인 것이, 즉 예술활동 일반과 그 결과물의 생산, 작품에 대한 판단이 실제와 윤리, 사실과 가치-나아가 현실과 환상, ‘주관’과 ‘객관’을 끊임없이 조화시키고 종합하며 동질화시키려 한다는 점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시도들을 시사한다. 랑시에르는 이를 파악하고 다음과 같이 쓴다: “어떻게 특수한 경험으로서의 ‘미감’이라는 통념이 순수한 예술 세계라는 관념과 동시에 삶 속에서 예술의 자기 지양이라는 관념으로, 아방가르드의 급진주의 전통과 동시에 일상경험의 심미화로 인도 할 수 있을까?(…)어떤 의미에서 문제 전체는 아주 작은 한 접속사에 놓여있다. 실러는 심미적 경험은 아름다운 것의 기예의 건축물, 그리고 삶의 기예의 건축물 전체를 지탱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학의 정치’- 다른 말로하면 예술의 미학적 체제-의 문제 전체는 이 짧은 접속사에 달려 있다”*0.5 물론 이는 사실 최종적으로 상품세계의 내적 모순과 생산양식을 비껴갈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전 근대를 규정하는 봉건적인 유기체적 모델에선 결코 찾을 수 없는 근대적 주체의 탄생은 곧 경제적 주체의 등장과 동일한 것이었으며, 그와 동시에 그 주체의 대상으로서 발생한 객체는 경제적 객체(시장 혹은 수탈과 개발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기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다시피 하였다. 말하자면 ‘근대화’는 곧 ‘자본화’의 과정과 다르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논하는 주관과 객관은 근대라는 특수한 역사적 기간과 매개된 것인 만큼 자본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3(한국의 근대화를 서구에 의해 강제로 주입된 역사로 간주하고 이에 포스트 콜로니얼리즘과 오리엔탈리즘 담론으로 맞서는 류의 시도들은 이 지점에서 전치된 대상을 상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박찬경이 기획한 2014년 서울시립미술관의 <귀신, 간첩, 할머니>전展은 상기한 궤적을 따라 소실된 동양의 근대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경향을 징후적으로 드러낸다).

나아가 특정 목적에 이성의 운용을 복종시킴으로써 세계를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 탈 주술화와 동시에 진행되는 합리화로서의 자본주의적 정신의 촉매 계기로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를 지목하고 그로부터 도구화된 이성과 기술합리성의 징후를 식별하는 베버Max Weber의 작업, 자연의 힘과 사회적 지배 앞에서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기만적인 자기동일성의 공고화 원인을 자본주의적 교환원리와 계몽의 도구적 이성으로부터 발견하며, 그 과정에서의 주관적 개념형성(자기동일성)은 어떤 방식으로든 객관적 개념형성(사회적 관계)과 매개되어 있다는 점을 서구 문명의 변증법 속에서 감지하고 이를 자본주의 내부의 저항의 아포리아와 관련지어 사유하는 아도르노의 시선, 총체성이 소실된 자리를 대체한 “사물화(우리는 이것을 상품이 매개된 ‘객체화’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를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간주하고 총체성의 회복 수단으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에 특권을 부여했던 루카치의 작업, 의미(주관과 관계하는 책임이 부여된 생生과 현실)와 의의(객관과 관계하는 책임이 부재하는 공허한 관념)가 분리된 채 의의, 즉 순수하게 대상화된 이론을 다루는 것으로 전락한 철학과 분할된 삶과 문화를 재전유하여 양자를 매개할 수 있는 책임있는 생의 통일*4을 사유하는 행위의 철학을 구축하려 했던 바흐찐Mikhail Bakhtin의 논리- 이 모든 계기가, 주관과 객관의 동시대적 조건이 자본주의의 출현에 의해 발생되었고, 자본주의에 의해 규정되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열거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바로 ‘미적인 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문제가 그것이다. 칸트를 따라, 사실과 가치, 현실과 환상, 주관과 객관을 조화시키는 것으로서의 미적인 것은 자본주의의 주/객 분리에 대항할 수 있는 상징적 약호들이 생산되는 장인 동시에, 경제라는 객체에 관해, “상부구조”(마르크스) 혹은 “대륙”으로서(알튀세르), 또는 또 다른 토대로서(발리바르) 주관과 객관을 반동적으로 조화시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메시스를 간직한 예술 혹은 미적인 것은 자본주의의 분할 양상을 완화시키고 상징적으로 해소하는 것이자, 그러한 자본주의적 분할 자체의 산물이기도 하다.*5 근대 이후의 예술의 궤적이란 바로 이러한 모순적 조건 속에서 전개되어왔던 역사라 해도 좋다.

실로, 오늘날 미적인 것(문화적인 것)은 수많은 지식인들이 증언하듯 완벽히 상품과 동질화되었고, 양자의 이런 결탁은 경제(서동진의 표현을 빌자면 “시장이라는 주관성이자 객관성”으로서의 경제*6가 매개하는 강도만큼이나 미적인 것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는 예술의 급진성을 사유하고자 하는 이들이 유예시킬 수 없는, 미적인 것의 딜레마이자, 정치적 미술에 관한 담론의 생산에 있어 모순적인 긴장을 내포하고 있는 문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주-객 분할에 맞선 미적인 것의 모순은, 루카치와 아도르노의 아방가르드와 리얼리즘을 둘러싼 ‘총체화/ 단편화 논쟁’ 또는 루카치와 브레히트의 논쟁에서,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초기 구축주의의 분화에서, 액자형 무대와 프로시니엄 무대 혹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분을 강조하는 모더니즘 연극- 포스트 드라마 연극의 파열음에서, ‘시 문학파’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이후 이어령과 김수영으로 표상된 한국 근대 문학의 ‘순수-참여’ 사이의 대결에서, 화성악적 음악과 구체음악으로 촉발된 사운드 아트의 대치에서, 다양한 형태로 재현되어 왔으며, 이는 미적인 것과 자본주의와의 긴장이 지양되기 전까지 끊임없이 또 다른 모습으로 귀환할 것이다.

미적자율성에서 경제적자율성으로
그렇다면 예술의 상수constant는 미적인 것이 주관과 객관을 종합하려하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자본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모순적 긴장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미주의와 모더니즘의 형식주의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듯 정치의 과소보다는 외려 충분히 당파적인 특정한 문화정치와 관련이 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본주의적 파편화를 전유하고 그것을 교정할 잠재력을 미적인 것으로부터 발견하려 했기 때문이다. <행복한 왕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살로메>등으로 잘 알려진 철저한 유미주의적 모더니스트였던 오스카와일드Oscar Wilde가 또한 완고한 사회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이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편 페터 뷔르거Peter Burger는 일찍이 예술이 시민사회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그 형식과 내용이 자기 참조적으로 일치하게 된 순간은 유미주의에 이르러서라고 주장한다. 그는 유미주의로부터 ‘사회적 이용요구로부터의 유리’로서의 예술의 자율성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실제적 개입능력의 결여’로서의 예술의 사회적 무효과성에 대한 인식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이러한 인식의 발생은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자기비판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 된다. 즉, 유미주의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출현의 토대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7자크 랑시에르는 최근의 한 에세이에서 말라르메의 시를 탈정치적으로 독해하는 이들을 비판하며 그로부터 정치적인 것의 흔적을 발견한다. “낭만주의 시학은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신성화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생각되곤 하지만, 이는 일면적인 관점이다. ‘낭만주의’의 원리는 오히려 예술 자신의 경계선들을 침투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예술의 시간성의 복수화에서 발견해야 한다. 예술의 시간성을 복수화한다는 것은 삶이 되는 예술 내지 예술이 되는 삶, 예술의 ‘종말’같은 직선적인 시나리오들을 복잡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폐기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것들을 잠복성(latency)과 재현회화의 시나리오들로 대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8 랑시에르는 여기서 예술은 예술이 아닌 것(이념)을 담지하는 한에서 예술이 된다는 헤겔식의 ‘삶이되는 예술의 모델’과, 예술에 대한 역사화로 축약되는 ‘예술이 되는 삶(예술의 삶)의 모델’ 양자에 포섭되지 않은 채 예술의 존재론을 확장시키고 그것을 항상적으로 존재하게끔 하는 인식론으로서 낭만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는 낭만주의를 “민주주의의 장자長子”로서 파악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낭만주의의 난입으로 인용되는 예는 잘못된 관례다. 그것은 심리적인 현상으로서, 예술이 지금 제공하는 예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는 아주 빠르게 대중을 정복했다. 이전의 오래된 고전적 예술은 대중에게 소화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낭만주의가 맞서 싸웠던 적은 바로 예술적 구체제의 구태의연한 형식에 교착되어 있던 소수의 특권계층이었다.” 이러한 가세트의 평가는 봉건적이고 귀족적이었던 18~19세기의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들었던 낭만주의의 정치성에 대한 정당한 진단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역사적 낭만주의의 대표주자인 고야Francisco Goya의 <옷을 벗은 마하>,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키오스 섬의 학살>, <사르다나 팔루스의 죽음> 등으로부터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이기도 하다. 이들 역사적 유미주의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유미주의적인 것(혹은 모더니즘적인 것)’과 그 하위 범주로서 낭만주의적인 것, 상징주의적인 것, 형식주의적인 것’은 역사적 유미주의 이래로 지속적으로 귀환하며 예술의 장에서 지속적으로 재구성되어왔다.

상품화와 전통적 규범들에 대한 낭만주의와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뚜렷한 거부에서 감지되는 일련의 연속성을 인정한다면, 이들은 아도르노가 문예론적 계보 속에서의 모더니즘을 구제하고 아방가르드에 특권을 부여하려 했던 이유를 증거한다. 낭만주의, 상징주의, 형식주의를 아우르는 유미주의적 계보와 모더니즘 양식의 전개, 즉 유미주의적인 것의 원형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자족적이고 충만한 예술의 자율성의 모델이다. 예술의 자율성의 모델은 예술이 그 형식자체로 정치와 완전한 합일을 이루고 있음을 전제한다. 이로부터, 적어도 이 미적인 것과 경제가 충분히 결탁하기 이전의 시기까진, 유미주의는 나름의 미적 실천으로서 유효한 급진성을 간취할 수 있었으리란 점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허나 후기 자본주의 혹은 소비산업사회로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이 이행한 이 시점에서 그러한 전통에 비非의식적으로 편승하는 것은 악취미에 가깝다. 서동진의 표현대로, “오늘날 상품과 텔레비전 화면의 광고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굿-즈 홍페이지: http://goods2015.com/main.html
이러한 맥락에서 201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여러 독립 큐레이터들과 신생 대안공간등이 주최한 <굿-즈 2015>는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한 칼럼에서 임근준은 이를 두고 “기념품처럼 현대미술을 유통하는 일종의 예술 생산자 페어”이며 “화상들이 주도하는 대형아트 페어와 달리 작가들이 직접 부스를 차리고 앉아서 소비자-관객을 만난다”는 수식으로 굿즈를 설명한 뒤 흥미롭게도 뒤샹의 작업들을 굿즈의 원류로 파악한다. 이어 그는 “(…)이 시대 청년들의 새로운 ‘굿즈’예술이, 현대미술의 조상님쯤 되는 뒤샹의 그것과 어떻게 어떻게/얼마나 같고 또 다른지, 쇼핑하듯 찬찬히 비교해보면 어떨까*9라며 글을 마무리하는데 이는 <굿-즈 2015>의 다음과 같은 기획의도 만큼이나 징후적이다. “장소특정적 설치나 퍼포먼스와 같이 형태가 없는 작품, 기존의 아트페어에서 판매하지 않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가까이서 보고 직접 구매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미술관객 여러분들은 작품 감상과 더불어 작품을 구매하는 경험을 통해 소비자로서 작가들의 예술활동을 지지하는 기회를 얻기 바랍니다.

이들은 사실상 시장의 법칙을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대신, 시장 내부에서의 주변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작업적 결과물들을 상품과 재매개시키고 있으며, 교환의 투명성과 직접성을 높이는 일에 윤리적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것이 유달리 기만적인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겠으나, 이러한 실천의 이면엔 오늘날 미적 실천의 지속은 언제나 상품(혹은 시장)을 경유할 수밖에 없다는 음울한 패배주의적 전제와, 일찍이 자웅동체가 되어버린 미적인 것과 자본주의의 합체가 도사리고 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총괄적인 구성collective element에서, 어느 한 시대의 예술적 상태와 재료적 상태가 서로 결합을 하게 된다. 즉 객관적으로 그때그때 앞서 고안된predesigned 처리 방식들과 재료들 사이의 관계에서 예술적 상태와 재료적 상태가 결합되는communicate 것”이라는 아도르노의 주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10 예술은 정확히 오늘날의 심미화 된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절대적으로 자본의 외부에 위치 할 수 있는 선험적인 미적 형식을 전제한 비판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시장경제 속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작업적 실천의 과정에서 세계에 관해 가능한 최대한의 인식론적 거리를 유지한 채 상품과 시장을 적대하려 했던 유토피아적 거부 이후-말소된 예술에 대한 객관적 서술이다. 비록 일종의 관습화된 형식으로 전락한 측면도 없지 않으나, 1900년대의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실천 이후로 급진적 예술가들의 에토스가 되어온 반미학적 전통- 비판과 위반, 거부를 통한 해방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전략은 이를 기점으로 완벽히 소멸되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오늘날 예술가들의 정치적 상상력은 무기력해진 셈이다. 그들이 더 이상 2회차의 <굿-즈>를 기획할 마음이 없음을 밝히고 그에 대한 결산을 마무리 지었음에도 부러 그것을 도마에 올리는 이유는, 2016년의 유니온 아트페어가 증거하듯, <굿-즈>와 같은 시도들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금 귀환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정치적 상상력의 부재는 표준계약서, 아티스트 피를 둘러싼 담론에서도 감지되는 징후인데, 이들 논의는 예술작품의 제작과정에서 발생한 금전적 소요와 신체적 소요를 공정거래 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친 규격화 된 계약서를 통해 표준화 하고, 법제화시킴으로써 일정한 화폐를 지급하라는 요구로 수렴한다. 헌데 제도화된 작업장 내에 고용된 채 시간단위의 신체적 소요에 따른 임금을 지급받는 행위를 우리는 노동이라 부른다. 그렇게 마치 예술을 노동으로서 간주하는 듯한, 혹은 적어도 노동을 환대하는 그러한 논의에서는 “시민사회 내에서 예술의 자율성 상태는 전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전체 사회적 발전 과정의 한 불안정한 산물이라는 점”*11은 숙고되지 않는 것 같다. 예술이 여타 사회의 이용요구에서 일정한 거리를 취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최근의 일이며, 보다 정확히는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발전에 따른, 제의의 용도로부터의 해방이 가져다 준 위상변화와 관련이 있다. 역사시대 이전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종교적 제의에 복속되었던 예술은 사회와 완전한 합일을 이루고 있었고, 왕; 영주; 귀족 등 소수의 후견인들의 전적인 지원에 동반된 명령에 의해 작동했다. 허나 근대의 총체적인 부르주아 혁명 이후 그러한 직접적인 사회적 사용의 요구로부터 상대적으로 예술이 벗어나기 시작하며 예술가들의 존재론적 경향은 “피와 인종의 유전, 또는 경제적, 계급적 결정에 의해서보다는 무엇보다 소명의식과 선택과 같은 심리적 상태가 지배적으로 되”어왔고, 이는 “초계급자”*12로서의 예술가들의 주체성을 형성하며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비판적 잠재력을 해방시켰다. 이는 벤야민이 언급한 ‘제의가치로부터 전시가치로의 예술의 이행’이 마련한 가능성으로서, 자본주의적 합법칙성의 외부에 존재할 수 있는(또는 그 외부를 지향하는) 활동양식을 토대로 행위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조건으로부터 가능하다. 그렇다면, “예술이 도구로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자마자 예술의 자율성 상태는 전적으로(더 자세히 말하자면 지배자들에 의해) 의문의 대상이 될 수 있다”*13는 결론은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과 노동을 종합하려는 최근의 시도들이 10월 혁명 이후 변화된 사회에서의 미술을 기성의 부르주아사회로부터 철저히 분리시키고자 했던, 그리하여 철저히 사회적 이용 요구로 침투하고자 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 구축주의의 허무맹랑한 낙관주의와도 구분되는 이유는, 오늘날 예술과 노동을 종합하려는 그 시도들이 생존을 위협하는 기제로부터 비롯된 예술의 비판적 기능에 대한 냉소를 머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작품창작의 유지가능한 대자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꺼이 그 자신의 행위를 노동이라는 즉자성으로 편입시키며 발생하는 아이러니한 이율배반에 거리낌이 없다. 헌데 실로 많은 예술가들이 담지 하려하는 노동자라는 정체성과 노동이라는 개념은 무엇인가? 노동자는 조직적인 저항의 역사적인 상징이기 이전에 그 자체 자본주의가 산출하고, 그 자신이 자본주의를 재생산하는 핵심적인 기제로서 기능하는 행위자다. 우리가 <독일 이데올로기>이전의 마르크스를 본질주의적이고 소외론적인 문제설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숙한 상태로 규정했던 알튀세르의 작업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부터 <자본>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비판에 대한 대목에서 이를 확인 할 수 있다.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소외된 노동을 통해 인간은 낯설고 적대적인 힘으로서 생산대상과 생산행위에 대한 자신의 관계만을 낳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생산과 생산물에 대해 갖는 관계도, 그리고 그 자신이 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갖는 관계도 낳는다. 그가 자신의 생산을 자신의 현실성 박탈로, 자신의 형벌로, 자신의 생산물의 상실로,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생산물로 만들 듯, 그는 생산하지 않는 자의 생산 및 생산물에 대한 지배를 낳는다.(…)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관계는 자본가의 노동에 대한 관계를 낳는다.

노동이 (사후적으로)산출하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언급이 암시하는 것은, ‘노동자’는 곧 자본가를 전제로 하는 동시에 그 자신의 노동력을 구매하여 이윤을 산출할 고용주와 노동 사이의 관계를 발생시키며, 노동이란 언제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매개된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즉, 노동은 정확히 상품을 만드는 활동인 한에서 노동이 된다. 달리말해, 노동이 가치로 표현되는 까닭, 즉 노동을 노동시간 길이를 통해 측정하는 것이 노동생산물의 가치크기로 표현되는 이유는, 그것이 상품을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상품이 시장에서 교환되기 위해 노동은 비교 가능한 것으로 현상할 필요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익명의 노동, 죽은 노동을 통해 교환 가능한 것이 되는 상품- 시장에서 추상화되고 그 가치를 승인받는 상품- 즉 인간이 재화, 사물을 취하는 방식을 절대적으로 규정하는 유도형식으로서의 상품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와 동시에 사라지는 것은 노동과 화폐, 자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노동과 자본이라는 두 계기를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실체로서 파악해서는 안 되며, 양자의 매개됨을 사유해야 함을 가리킨다.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쓴다.

“따라서 상품형태의 신비성은 단지 다음과 같은 점에 있다. 즉 상품형태는 인간들에게 인간 자신의 노동이 갖는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 그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 양 또는 이 물적 존재들의 천부적인 사회적 속성인 양 보이게 만들며, 따라서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도 생산자들 외부에 존재하는 갖가지 대상의 사회적 관계인 양 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착시현상을 통하여 노동생산물은 상품, 즉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초감각적이기도 한 물적 존재 또는 사회적인 물적 존재가 된다. 이는 마치 어떤 사물이 시신경에 주는 빛의 인상을 시신경 자체의 주관적인 자극으로서가 아니라 눈의 외부에 있는 사물의 대상적 형태로서 느끼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볼 때 그것은 실제로 빛이 하나의 물체인 외적 대상으로부터 다른 하나의 물체인 눈에 투여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물리적인 물체들 사이의 물리적 관계이다. 반면 상품형태나 이 상품형태가 나타내는 노동생산물간의 가치관계는 노동 생산물의 물리적인 성질이나 거기에서 생겨나는 물적 관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것은 인간 자신들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일 뿐이며 여기에서 그 관계가 사람들 눈에는 물체와 물체 사이의 관계라는 환상적인 형태를 취하게 된다. 따라서 그와 유사한 예를 찾으려면 종교적인 세계의 신비경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여기에서는 인간 두뇌의 산물이, 독자적인 생명을 부여받고 그들간에 또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관계를 맺는 자립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상품세계에서는 인간의 손의 산물이 그렇게 나타난다. 이것을 나는 물신숭배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는 순간 이들에게 달라붙는 것으로서 상품생산과는 불가분의 것이다.”*14

요컨대 마르크스가 그의 작업 전반에 걸친 정치경제학(경철수고의 마르크스에겐 “국민경제학”) 비판을 통해 규명한 것 중 하나는 노동이라는 “주관적 본질”은 화폐와 자본이라는 “객관적 형상”과 언제나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 있다.*15 마르크스는 “주관적 본질”인 노동의 표현으로서의 가치의 규정으로부터 형성되는 “객관적 형상”으로서의 화폐와 자본 사이의 관계, 이행- 또는 전화轉化를 사고하지 못하는 것, 또는 주관적 본질을 말소하고 객관적 형상들 자체의 순수한 자기 운동을 설명하는 모든 시도들을 “일상의 종교” 혹은 “물신Fetisch”이라 불렀으며, 이러한 전도를 자본주의적 생활세계와 당대의 정치경제학, 중농주의의 담론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도르노에 따르면 이 주관적 본질과 객관적 형상 양자를 매개하며 개별적인 것들을 동일화시키는 동일화사고에 박차를 가해온 교환원리가 사회전체를 매개하는 일반성으로 전화되는 과정을 통해 작동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일차적인 것은 이윤에 대한 관심이다. 고객이 되는 것으로 등급이 올려진, 욕구를 찾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이러한 순진무구한 표상을 넘어서서 제대로 따지고 보면, 그러나 사회적으로 사전에 이미 규정되어 있으며, 교환원리가 강요하는 틀에 얽매여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생산력이 기술적으로 도달한 정도뿐만 아니라, 경제적 관계들에-그것이 경험적으로는 통제되기 힘든 것이라 할지라도-의하여 그렇게 규정되어 있고 얽매여 있는 것이다.(…)인간을 상품교환의 대리인이나, 그 교환을 떠맡는 자로 환원시키는 곳에서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가 은폐되어 있다.(…)교환 원리에 의하여 그 토대가 이루어지는 총체적인 연관관계는, 모든 인간들이,-그들이 주체적으로 ‘이윤 추구의 동기’에 이끌려졌든, 또는 그렇지 않든, 그것은 상관이 없는 일이며, 어떻든 그들이 사회에서 도태되려고 하지 않는 바에는-, 교환법칙에 자기 자신들을 종속시키도록 하는 형체를 가지고 있다.*16

아도르노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화폐가 객체화되어 그 자신이 스스로 하나의 체계로서 작동하며 주체가 되고, 그 내부의 주체들을 산출해내는 동시에 그 과정에 연루된 주체들을 객체화 시킬 때- 상품과 화폐를 매개로한 교환원리는 일반성, 즉 소여의 총체를 산출하며 이내 일반성 그 자체가 된다. 사회는 교환원리에 의해 절대적으로 매개되고, 객체는 주체가 되며, 주체는 객체가 되는 이러한 전도는 마르크스가 바라본 물신의 원형을 형성하며, 교환 원리를 조직하는 교환 대상으로서의 상품을 만드는 행위인 노동은 이러한 맥락에서 정확히 지배와 일반성을 산출하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주관적 본질이 객관적 형상과 매개되어 있음을 모른 체 하거나, 그것을 사고하지 못하는, 즉 비 노동을 노동으로 변용시키고 범주화하는 것이 연루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을 모른 체 하는 예술가들의 노동에 대한 동일시 또한 마찬가지의 의미에서 자본주의적 주관과 객관의 분할의 산물로서, 물신으로 규정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여기서 물신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소여의 이데올로기에 공모할 수밖에 없는 분할된 의식형태에 갇힌 상태- 그리하여 그 속에서의 어떤 시도도 다시금 기존의 질서의 재생산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는, 파편화되고 왜곡된(그러나 그 자체 현실의 일부인) 전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분할과 물신의 외부- 즉 아도르노가 언급한 ‘교환원칙으로 조직된 자본주의적 총체성의 규정 속에서 나타나는 동일화 사고’의 외부란 여전히 “초계급자”로서의 예술가들의 존재론과 맞닿아 있다. 그런 맥락에서 사실 문제는 정확히 교환 불가능한 것을 ‘교환가능성’의 범주로 밀어넣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술의 ‘교환 불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예술적 실천을 재생산할 방법을 모색하는 일일 것이다. 허나 근대 이후 모든 관습과 합리성을 의문에 부치고, 거역하고, 위반하고, 노래했던 예술가들은 이제 노동을 통해 조직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하는 대신, 그들의 상상력을 노동에 이양함으로써 그 자신의 존재론을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이들의 호소는 굿-즈를 통해 나타나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한 아티스트피의 시범추진과 예술인 복지법 개정안의 ‘서면계약 의무화’ 조항으로 실현되었지만 그것은 예술가들의 열악한 삶의 제 문제에 대한 해소라기보다는 외려 인식론적 수준에서마저 계약된 예속을 향한 폭풍전야의 고요함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한 완벽한 예속이 완수되는 순간- 그와 동시에 사라지는 것은 예술일반과, 아도르노가 말한 ‘예술적 부정성’을 담지한 작품들이며,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기예의 제공에 따른 보수를 받는- 철저히 객체화 된 테크니션과, 노동의 산물로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객체가 되는, 노동의 산물로서의 상품이다.

한편 미술의 영역에서 경제를 간취하려는 와중에 경제는 예술에 손을 뻗는다.*17 상품미학은 그 전형적인 예로서, 상품광고로부터 감지되는 형이상학적인 가치들에 대한 역설들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을 만큼 편재한다. 스프라이트와 맥주, 아웃도어 브랜드, 신차, 휴대폰과 게임, 신도시의 아파트, 상조와 보험, 대출을 비롯한 수많은 상품들의 선전에 동원되는 젊음과 기쁨, 영원성, 차이, 안락, 윤리, 행복 등의 표상들은 더 이상 문제적 개인이 그의 앞에 놓인 모순을 해소시킴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소유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게 된 소비산업사회- 후기자본주의를 구성하고, 재생산하는 기제 자체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의 경영담론과 경제담론은 전통적으로 예술의 역할에 속했던 유일한 경험의 생성을 이미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효과적으로 다루며 그것을 시장의 내부로 포섭한다. 서동진이 말하는 “노동의 심미화 경향”은 이러한 현상을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카페 종업원을 “바리스타”로, 마름을 “매니저”로, 배달부를 “라이더”로, 재빵사를 “파티쉐”로, 잡역부를 “아키택쳐”로, 중매상을 “헤드헌터; 브로커”로, 백수를 “프리랜서”로 호명해내는 현대의 자본주의는 이윤의 축적을 위해 구매되는 집단적인 노동력- 추상적 노동을 말소하고 그것이 마치 중세의 길드에서 유일한 사물; 작품을 만드는 장인의 구체적인 행위인양 드러낸다.

이 또한 마르크스적 견지에서 마찬가지로 물신이라 규정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노동의 심미화 경향은 노동을 통해 개인의 자아를 투명하게, 미적으로 완성시킬 수 있음을 전제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은 객관적 형상인 화폐와 교환질서로부터 독립된, 자족적인 실체로서 꾸며지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착취적인 사회적 관계와 “봉건적 예속과 생산수단으로부터 이중으로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취를 감추고, 유일한 것을 창조하는 예술가(인 체 하는 노동자)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 노동이 말소됨에 따라 상품교환의 필요충분조건인 가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자본의 순수한 운동만으로 경제를 설명하는 것이 유행이 된다. 이런 점에서 광의의 문화자본에 대한 논의는 많은 좌파들의 경멸과 달리 외려 유익한 것이지만, 그것은 문화 또한 자본에 매개됨을 사유하는 한에서 유익한 것이지, 문화적 차이의 기호- 보드리야르가 주장하는 “상징가치”가 독자적으로 상품교환의 조건을 규정하고 가치를 생산하는 것으로 여기는 논의로 흐르는 순간 그것이 노동이라는 “주관적 본질”과 관계함을 무시하게 된다는 점에서 정확히 ‘물신’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초국적 자본주의의 시간성은 생산을 점점 익명화 시키고 불투명하게 만들며, 문화, 정동, 비물질적 생산, 금융 등의 객관적인 이데올로기소로 덮어 가림으로써 더 이상 노동이라는 주관적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제시한다. 그 결과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마르크스가 말한 의미에서의 물신의 망령에 강하게 사로잡혀있다. 이는 물신주의 비판과 이데올로기 비판이 어려워졌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물신주의 비판과 이데올로기 비판의 현전을 요청한다. 그렇다면 예술이 그러한 비판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개별적인 것이 일반적인 것에, 특수한 것이 보편적인 것에, 즉 주관성이 객관성에 매개되어 있음을 밝힘으로써 대상의 필연성과 모순-적대-변화 가능성을 사고하는, 마르크스적 의미에서의 비판을 예술은 어떻게 전유할 수 있는가? 여러 층위에서의 개입이 가능할 테지만, 근본적인 층위에서의 예술의 저항은 기호와 시장의 상품화 요구에 의식적으로 대항함으로써 여전히 노동의 외부가 존재함을 증언하는 등대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며, 현실에 기반하나 현실을 초과하는 세계의 상을 그려내는 예술적 진리를 옹호하는 일이다. 즉, “교환되어질 수 없는 것을 위하여 예술은, 그 상을 통해서, 교환될 수 있는 것이 비판적인 자의식의 관계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행동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18

가능한 미학의 조건들
결국 우리는 미적 실천을 저버리지 않되, 칸트적 모델의 유효성은 오래전에 소진되었음을 인정 하는 수밖에 없다.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를 비롯한 일군의 모더니즘 비평가들이 일찍이 주장했던 미적자율성에 대한 강조는 오늘날 반전된 모습으로, 자율을 가장한 완벽한 타율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예술적 본질에 대한 그들의 호명은 본질이라 할 법한 것이 상품과 동일화된 상황에서는 무용할 뿐이다. 허나 이는 바로 그런 이유에서 다시금 예술이 자율성을 전유할 충분한 이유를 마련하므로, 예술과 경제의 합일의 징후들이 곧바로 예술의 자율성의 모델이 완전히 폐기되었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이제 가능한 재호명의 기회는 리얼리즘과 아방가르드에게 주어진다. 나는 고전주의적인 아카데미즘에서 보이는 구상적 이미지와 쿠르베 이후의 리얼리즘을 구분하기 위해 루카치로부터 빌린 ‘비판적 리얼리즘’이란 용어를 사용할 텐데, 이는 리얼리즘을 기법상의 소묘양식으로 간주하는 현대의 비당파적인 범주로부터 떼어내어 사회의 제문제에 대한 사실적 표현을 지향하는 초기 리얼리즘이 가진 에토스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런 견지에서는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바르비종Barbizon파에서부터 자연주의 또는 표현주의로 분류되었던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 막스 베크만Max Beckmann 등의 경향과,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이동파, 표현주의를 부르주아 주체의 자폐적인 내면의 표현으로 간주하고 그에 대한 반발로서 개진된 20세기 초 독일의 신즉물주의(마술적 사실주의)에서부터, 멕시코 벽화운동의 흐름과 1930년대 중국에서 루쉰魯迅이 주창한 목각운동(창작판화운동)의 흐름, 한국의 민중미술, 포스트 민중미술까지 비판적 리얼리즘의 계보로 포괄할 수 있다. 이 비판적 리얼리즘은 쿠르베의 작업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듯 전통적으로 엘리트와 권력자들에게 속해 있던 재현 대상으로서의 자격과 관람의 자격을 민주화 시키며 등장한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유미주의와 예술의 고립을 경멸하고, 부르주아 문화를 혐오하며, 이를 구체적인 방식으로 작품에 투사한다. 즉, 실생활-(노동의)일상으로 예술을 되돌려 보내려 하거나(이점에서 비판적 리얼리즘은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강하게 공명한다), 예술의 대상을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 일반 혹은 그들의 문화적 식견으로 설정하고 그것들을 가능한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때 ‘사실적’이라는 기표가 의미하는 것은 실제적인 묘사양식이라기보다는 현실적 식별가능성(천사를 눈앞에 데려오지 않는 한 그것을 그려줄 수 없다고 말한 쿠르베의 일화가 암시하듯)과 계급의식의 표현으로서(이것은 초기 표현주의와 리얼리즘의 공명을 설명해준다), ‘현실적 식별 가능성’으로서의 사실성은 탈주술화된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으로부터의 영향과 귀족적인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을, ‘계급의식의 (올바른)표현’으로서의 사실성은 자족적인 유미주의적 미적 형식들과 부르주아 문화 일반에 대한 비판을 함축한다.

여기서 보다 핵심적인 것은 현재까지 그 전통이 ‘리얼리즘적인 것’으로서 계승되어오고 있는 후자의 맥락인데, 이는 루카치를 경유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리얼리즘에 대한 루카치의 작업은 재현의 주체를 계급적으로 평준화시킨 초기 리얼리즘으로부터 보다 급진화하여 ‘당파성을 통해 주어진 사회적 관계의 가상을 벗겨냄으로써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리얼리즘의 소명으로 제시했다. 이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을 통해 자본주의의 파편화와 물화를 지양하고 총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간주한 루카치의 지론과 일관된 것인데, <문제는 리얼리즘이다>에서 언급된 그의 호명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을 수놓은 리얼리스트의 인식론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 리얼리즘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자명한 이야기지만 추상이 없다면 예술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달리 어떻게 전형적인 것이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나 추상은-모든 운동이 다 그렇듯이-어떤 방향을 지닌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방향이다. 중요한 리얼리스트는 누구나 다 객관적 현실의 합법칙성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리고 깊숙이 감추어진 채 매개되어 있어 직접적으로 지각할 수 없는 사회현실의 제반 연관관계에 도달하기 위하여 추상기법을 써서까지도 자신의 체험내용을 가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관관계는 직접적으로 표면에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그와 같은 합법칙성도 매우 복잡하고 고르지 못하며 단지 어떤 경향으로서만 나타난다. 이로 인해 중요한 리얼리스트는 예술적으로, 세계관적으로 이중의 엄청난 과제를 떠맡게 된다. 첫째는 그러한 연관관계를 사상적으로 발견하고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여 보여주는 일이다. 그리고 둘째는 그와 분리될 수 없지만, 추상작업을 통해 가공된 연관관계들을 예술적으로 가리는 일, 즉 추상을 지양하는 일이다. 이러한 이중의 작업을 통해, 형상화 작업에 의해 매개된 새로운 직접성, 형상화된 삶의 표면구조가 나타난다. 이 표면구조는 언제나 본질을 명백히 드러내준다(생활 자체의 직접적인 상태에서는 그렇지 못하다).”*19

루카치의 이론적 작업에 힘입은 예술적 실천의 병행은 마르크스주의의 자장 속에서 세계의 비판적 리얼리즘의 알리바이로 끊임없이 되돌아오게 되는데, 이는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부터 노동문학, 노동시학, 노동극단, 민중미술 등 노동자 계급의 문예론이라 할 법한 경향들의 이름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증명될 것이다. 허나 인정하건대, 비판적 리얼리즘의 방법론은 그 재현의 방식이 관념적이고 윤리적이라, 재현 가능한 정치적 주체가 존재하는 예외상태*20를 제외하면 많은 경우 도덕적 파토스와 연결되어 비정세적인 성상icon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 비판적 리얼리즘의 제문제로서, 포스트구조주의의 구제 가능한 유산- ‘작품’에서 ‘텍스트’로의 이행(단일하고 초월적인 의미의 담지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의미는 권력; 대타자 등의 규칙에 의해 사후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므로- 각각의 대상은 해석을 기다리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이는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에 의해 맹아를 드러냈고, 데리다에 의해 발전되고 ‘저자의 죽음’으로 요약되는 롤랑 바르트의 작업에 의해 정리되었으며, 동시대 미술의 에토스로 자리하게 되었다*21을 하나의 변화된 기호의 조건이라 본다면, 미적행위의 결과물 또한 하나의 텍스트 이며, 따라서 정치적 동기에서 선정된 재현의 대상과 재현의 형식은 갱신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는 굳이 텍스트성을 논하지 않더라도, 예컨대 브레히트의 예술론에서 이미 비판되어 왔던 것이기도 하다. 정치성을 의식적으로 고찰하는 미술과, 종교적 성상화를 구분시켜 주는 표지는 사실상 선험적인 재현대상과 재현의 형식을 의문시 하며 그것을 정세적으로 취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험적인 아이콘의 형상과 초월적 기표를 양산하는 많은 비판적 리얼리즘의 실천들은 외려 종교적 기표의 생산으로 귀결되는 때가 잦다. 마르크스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여기서 종교적 기표라는 것은 정확히 앞서 언급한 바 있는 “물신”의 의미를 지닌다.

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사각형, 1915년, 79.5 × 79.6cm
물론 그 해독가능성의 파급에 있어, 리얼리즘은 여느 미적조류 이상의 잠재력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다수 대중에게 그 독해의 여지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일찍이 프랑크푸르트학파와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주목했듯, 대중문화-영화, 비디오, 텔레비전 쇼, 콘서트, 오늘날엔 컴퓨터와 스마트폰 스크린이 전달하는 콘텐츠들 까지-이상의 파급효과를 예술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외려 그것은 어떤 측면에서 소여의 이데올로기와 공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독의 다수성은 단지,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유명한 표현대로, 자본주의적 계급분할에 따른 “구분짓기”와 “하비투스habitus”를 반영할 뿐, 다시 말해 부르주아 계급의 반대항으로서의 노동자계급의 분할된 취향과 기호를 재현할 뿐, 자본주의적 분할과 분업에 내재한 도덕적 파토스 자체를 거부하지 못한 채 여전히 그러한 분할을 자신의 조건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형식의 측면에선 구분이 불가할만큼 비판적 리얼리즘과 유사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계보를 참조하는 것은 이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인 유물론을 단일한 인식론적 체계로 환원시킨 소련공산당의 지적헤게모니 구축은, 미학적 영역에선 (현실)사회주의적 이성의 희망찬 가능성과 그 속에서의 인민의 삶을 구상적으로 묘사하는 작품 이외의 미적 조류를 ‘부르주아적’이라 매도하는 방식으로 나타났으며, 자본주의의 사물화를 넘어설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을 물화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로 귀결 되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한축-절대주의-을 대표했던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의 작업 양식이 1930년대 스탈린의 집권 이후로 점차 구상적 묘사로 선회했던 사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스탈린의 집권과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쇠퇴를 분리시키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을 테지만, 그런 모델은 1920년대 말부터 시작된 러시아 아방가르디스트들의 잇따른 망명과 구축주의의 분화, 1932년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작가 연맹(RAPP)’에 대한 소련공산당 중앙위의 해체 명령에 뒤이은 ‘소비에트 미술가 동맹(FOSKh)’의 결성, 1934년의 즈다노프 선언, 1938년 포토몽타주 프로파간다의 선구자 구스타브 클루치스Gustav Klutsis의 죽음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적절한 반성에 무익하다.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부르주아 문화와 노동자계급의 문화를 이제는 더 이상 분리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1950년대 말까지는 이러한 분할을 인정하는 것이 나름대로 유효한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음을 인정해야 할 테지만,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중매체의 보급이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오늘날의 문화형식들은 정확히 인간 일반을 소비주체로서, 대중으로서 완벽히 호명해낸다. 이는 모더니즘으로부터 부르주아적 퇴폐Décadence의 흔적을 발견하려 했던 루카치 식의 시도들은 이제 어떤 위력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22 오늘날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부르주아적 문화 외부에 존재하는 이들은 없기 때문이다(이는 부르주아 계급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점은 1920년대 말,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파사주)>를, 1960년대에 기 드보르가 <스펙터클의 사회>를 집필할 무렵의 유럽과 영미권에서 연속적으로 시사되어왔던 사실이다. 노동자 계급 고유의 문화가 존재했던 시기엔 하비투스의 재생산이 되고, 문화가 수평적으로 편재하는 것이 된 오늘날엔 재현의 불가능성에 직면하는 것. 이것이 민중미술이 처했었고, 마찬가지로 동시대의 비판적 리얼리즘이 처한 난관이다. 이제 리얼리즘은 무엇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는가? 동시대 비판적 리얼리즘은 좋았던 그 시절에 향수를 느끼며, 알레고리적 구성을 통해 자신이 직면한 위기를 돌파하려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보다 중의적으로, 보다 모호하게, 보다 관조적으로 사회의 상을 그려냄으로써. 한국의 맥락에 한정하여 생각해보자면, 이는 포스트 민중미술이라 지칭되는 민중미술 이후의 조류들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징후다. 이런 상황 속에서 리얼리즘은 여타의 미술 사조들처럼 점차 제도친화적인 경향을 띠는데, 이는 실상 제도의 외부라 할 법한 것이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난 2014년의 광주 비엔날레의 <터전을 불태우라> 전展 과 2016년의 가나아트센터의 <민중미술의 복권>,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한 민중미술 상설전시관 개설과 민중미술 기획전을 통해서, 스스로를 비판적 리얼리즘의 기치를 계승한 액티비스트라 칭하는 이들 대부분이 전문화된 미술 교육을 받고 해외 유학을 다녀온 문화적 엘리트라는 점에서, 그리고 개별 작품들 속에서 계급적 문제의식이 점차 소멸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확증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오늘날의 비판적 리얼리즘은 제도 속에서 희미해져가는 사회의 상을 관조적인 방식으로 간취하려는 데에 집중하며, 전문화 된 예술가의 위상을 지양하거나, 현장성을 담지하려(예컨대 시위 피켓과 현수막, 걸개, 대자보를 장식했던 방식으로)는 시도를 할 수 없게 되었다.*23 이제 그들은 계급이 아니라, 한 명의 시민으로서 말을 거는 데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들은 세계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위해 추동되는 것처럼 보인다. 민중미술 이후 그 문제의식적 지향을 계승한다고 논의되는 ‘공공미술public art’ 혹은 ‘커뮤니티 아트community art’에서 감지되는 의미심장함은 예술이 상대해야 할 대상을 ‘공중’으로 설정하는 것에서 기인하며, 이는 사실 87년 민주화 이후 지배적인 정치주체로 자리매김한 ‘시민’이란 이름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민중 혹은 인민에서 공중과 시민으로- 미적인 것의 이러한 이행은 정치의 장에서 87년 체제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지니는 아포리아와 동일한 아포리아를 설정한다. 예컨대 87년 이후 수립된 민주화체제를 완결된 정치형태로 볼 것인지, 민주화를 넘어서는 정치적 기획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여길 것인지의 대립은, 예술이 정치를 상대하는 데에 있어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충분한지, 그 너머의 미적 형식을 갈구할 것인지의 대립과 일치한다. 상기한 변화는 사회가 더 이상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음을, 그리고 정치가 소멸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징표이거나, 변화된 정치적 예술의 조건을 가리키는 표지 둘 중 하나를 가리킬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을 택하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비판적 리얼리즘의 난관은 제임슨이 언급한 ‘히스테리적 숭고’의 국면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허나 우리는 이미 수많은 평가와 낙인이 찍힌 비판적 리얼리즘에 내재한 함의를 유행과도 같은 방식으로 손쉽게 처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위의 변화들에 관한 책임을 예술에 전가하며 주의주의主意主義를 설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단히 미끄러지는 와중에도, 표상하고 재현하고자 하는 대상과, 지양의 대상의 선정에 있어 비판적 리얼리즘은 오늘날의 미술엔 매우 희귀한 유산-내재적인 대자성-을 계승하고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이성에 대한 확신으로 점철된 모더니티의 이상을 계승한 20세기의 유산이다. 이러한 대자성은 곧 여타의 관람자들에게 오해의 여지를 이양하지 않으려 시도하는 비타협성에서 드러나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리얼리즘을 배격했던 아도르노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특히 부각된다. “예술작품의 진리 내용은 그들이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그 자체로 참인지 거짓인지를 결정하는 것이고, 오직 이 작품 자체의 진리만이 철학적 해석에 맞춰질 수 있는commensurable 것이며,- 어떤 경우든 그 생각에 대한 염두와- 철학적 진리의 이념과 부합한다…미학적 경험은 그것이 철학이 되기 전까지는 진실한 경험이 아니다.”*24 여기서 아도르노는 헤겔의 예술론을 따라, 인식과 무관한, 비인식적 인식-감성적 인식으로서 이념과 개념을 매개하지 않는 칸트식의 순수한 미적 판단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도르노에게 개념과 논리에 기반 하는 철학은 동일화 사고의 공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인간의 이성을 본질적으로 규정해온 틀로서, 예술의 진리계기-대체 불가능성, 유일성, 우연성, 직관, 미메시스적 요인-등을 인식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인정된다.

자본주의적 체계 속에서 개념과 논리적 인식에 매개되지 않은 채 감각적인 것만으로 남아있는 예술작품은 사실상 “총체적 매개의 체계”-교환원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체 진리요인을 품지 못한 채 효과적으로 도구화 되며, 따라서 상품과 지배적 코드에 쉽게 포획된다. 수백억 대의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경매되고 낙찰되는 예술작품들의 사례들이 드러내는 것은, 기업의 비자금 조성과 사내유보금 해소를 위한 투자 수단으로서- 철저히 도구화된 예술의 판본이며, 창작과 동시에 획득된 유일성이 반납되는 과정인, 교환원리에 의한 포섭인 것이다. 이에 비판적 리얼리즘의 방법론은 감각적인 모호성과 해석의 다의성을 의도적으로 지양하며 명확한 관람자의 층위를 선정하고(예컨대 부르주아들이 문화적 식견을 과시하기 위해 오윤과 이윤엽의 판화를 감상하러 오거나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는 일은 드물다), 이러한 당파성 속에서 정확히 그 자신들의 철학을 실행시키는 장으로 예술을 사용한다. 미적 창조물을 철학-추상을 거친 특정한 당파적 세계관-과 매개하는 과정이 아도르노가 제시한 예술의 존재론을 구성하는 하나의 조건이었다면, 미술의 역사 속에서 가장 (일반적인 용법에서)주체적으로 양자를 종합하며, 창작과 비평/ 소비의 분할을 효과적으로 거부했던 이들은 역사적 아방가르드이기 이전에 비판적 리얼리즘작가들이다. 이런 점에서 개별작품들이 역사적인 포스트 모더니즘의 전략-“혼성모방”(제임슨)-을 취하는 사례는 경향적으로 감소했으나, 포스트 모더니즘의 에토스, 포스트 모더니즘의 윤리, 정확히는 포스트모더니티라 할 법한 경향이 여전히 지배적인 동시대 미술의 조건 속에서, 마르쿠제Herbert Marcuse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양성이라는 전체주의”가 잔존하는 조건들 속에서(이는 유행과도 같은 장소특정적 미술과 관계미학, 참여미술의 아성을 통해 증명된다) 비판적 리얼리즘의 존재론은 다양성과 다원성, 차이, 개별성 등의 개념에 대한 특권으로 점철된 동시대적 에토스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될 예정이었던 홍성담의 작품<세월 오월>이 수많은 린치에 의해 전시를 거부당했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거대서사는 여전히 일종의 시대정신으로 건재하며, 다원주의는 그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건을 배제하는 한에서의 관용이다. 이들 리얼리즘적인 것의 계보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예술이 상대해야 할 문제가 여전히 세계 자체임을 의식적인 견지에서 증언한다. 유미주의가 예술의 자율성 모델의 전형을 제시한다면, 비판적 리얼리즘은 예술을 진정한 변화가 발생하는 사회, 세계에 의해 규정되는 범주라 간주하는, 예술의 타율성에 조응하는 예술의 모델(리얼리즘 이후 제도비판, 구축주의와 상황주의를 비롯한 일부의 아방가르드, 민중미술, 공공미술, 관계미학까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는)을 증거 하는 프로토 타입을 제시한다. 예술의 타율성의 모델은 예술이 정치와 대면할 수 있는 조건을 예술 아닌 것- 예술의 외부로부터 발견한다. 그러나 칸트의 명제처럼, 내용 없는 형식이 공허한 것과 마찬가지로 형식 없는 내용 역시 예술 고유의 존재론을 구축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판적 리얼리즘은 이러한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다. 결국 이 지점에서 리얼리즘과 유미주의는 어떤 의미로 긴밀하게 내통한다. 양자는 내용(이념)의 극단 혹은 형식의 극단을 이분법적 개념 속에서 택일 하며 미적인 대상의 부분들을 각자의 처리과정 속에서 대상화하고 고정시킨다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용과 형식이 서로를 잠식하지 않는 변증법적 균형을 사유할 수 있는 미적 형식의 발굴- 보다 정확히는 양자를 동시에 사고할 수 있는 모델을 발견하는 일이다.

물구나무선 새로움의 미학
이는 예술이 내용의 면에서나, 형식의 면에서나 동시에 역사성; 당대성을 획득해야하며, 이 과정에서 모종의 형식적 갱신을 완수해야함을 가리킨다. 허나 예술의 대상은 언제나 역사history가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탈락시킨 채 순수한 형식의 갱신운동을 외려 예술의 대상으로 사고하는- 형식 속으로의 추상화로 인한 전도된 인과율은 여전히 많은 비평가들의 수사학과 예술가들의 시도에서 관측되는 특징이다(역설적인 것은 새로운 것에 집착하는 그들의 에토스 또한 이미 오래전에 굳어진 모더니즘의 클리셰라는 점이다). 그들의 정언명령은 목적 없는 “새로운 시각성”에의 요구로 집약된다. 이는 ‘예술은 새로워야 한다’는 아방가르드의 테제로부터 ‘당대성과 역사성을 간취하기 위하여’라는 당위를 축출한, 기의가 소거된 기표이자 미적 물신이라 여겨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이를 유사 아방가르드라 칭하고 싶은데, 이러한 경향은 일견 유미주의적 전통으로부터 기인하는 듯 보이나, 상품세계에 대한 비판적 고려가 부재한다는 점에서, 상품화와 교환질서로부터 예술의 자율성을 보호하려 했던 유미주의적 조류와는 실로 상이한 결을 지닌다. 그렇다면 대관절 새로운 시각성이란 무엇인가? 예컨대 젊은 작가들 또는 영미권의 논의들, 뉴미디어를 통해 구성된 작업들, 미술계 내외부의 크고 작은 사건들, 그리고 sns에서 전파되는 정보들 따위를 통해 다양한 루트로 호명되는 ‘새로운 시각성’은 어떤 기제의 작용과 공모하고 있는가? 이러한 집착을 선뜻 인정해주기 어려운 까닭은, 그것이 새로운 수요를 찾는- 그리하여 문화적 영역에서 유행을 발생시키는 자본의 순환구조와 많은 경우 닮아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적 형식에 대한 발굴은 언제나, 당대성과 정세를 간취하기 위한 모더니티의 급진적 이데올로기와 매개되어야만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신상(품)’에 대한 즉자적인 욕구 이상의 것을 표현하지 못한다.

자본주의적 문화형식 속에서 신상(품)에 관한 점유가 대중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새로운 것(정보;뉴미디어;사건;가십)에 대한 집중이 문화적 영역의 축적체계의 정언명령 혹은 대타자가 되듯, 새로운 시각적 경험과 형식에 대한 선호와 예술의 장 내외부의 이런저런 사건들에 대한 점유는 자본주의의 소비이데올로기의 미술적 버전인 셈이며, 유행의 이데올로기가 제공하는 헤게모니적 특권을 구성한다. 할 포스터를 따라 “비판적 주변부성이 하나의 신화, 자유주의적 낭만주의의 가면아래 진짜 차이가 근절되고 인조차이가 소비를 위해 창조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지배공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25을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실로 문화적 대상물들에 대한 순수한 향유(예컨대 들뢰즈를 비롯한 일단의 스피노자주의자들이 주장하는)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언제나 매개된 상태로- 소비로서 현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가능한 예술자체의 존재론은 상품화와 맹목적인 변화를 거부하는 에토스의 실제적 차원에서 발견되는 것이다(허나 이것은 예술에게만 국한되는 상황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새로움을 둘러싼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재고가 없이 새로운 시각성을 구현한다고 여겨지는 새로운 요소들에 특권을 부여하는 모든 시도들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관념적이고 물신적이다. 문제는 그러한 ‘새로움’을 둘러싼 물질적이고 관념적인 맥락과 기제들이며, 그에 대한 유물론적 해명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비판이란 바로 이러한 해명을 의미한다. 아도르노는 이러한 종류의 미적 조류- 유사 아방가르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미적으로 아방가르드적인 사건들의 아방가르드적 소요들은 그것들이 혁명적이라는 믿음, 그리고 혁명은 하나의 미적 형식이라는 믿음과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다. 즉 예술에 대한 둔감함이 문화의 위가 아닌 아래에 있으며, [미적으로 아방가르드적인 것; 새로운 것에 대한]헌신 그 자체는 많은 경우 아무것도 아니고, 단지 역량 혹은 집중력의 부족이며, 기력의 감퇴다.”*26 그는 여기서, 새로운 것 자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가깝다는 사실, 즉 그에 대한 집착은 부과된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아도르노에게 언어의 과다배설, 끊임없는 표상, 기호, 언어의 갱신에 대한 요구는 사실 많은 경우 주체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외려 강제된 것으로서, 자기보존 욕구로부터 비롯된 자연지배와 사회지배 속에서, 무수한 기회주의적 타협을 거쳐 형성된 자기동일성을 외부세계의 힘으로부터 기만적으로 지켜내기 위해 자동기계처럼 작동하는 객체화된 현상이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그(와 호르크하이머)는 다음과 같이 쓴다.

“눈 하나만을 가진 거대한 괴물의 위력으로부터 영리하게 빠져나온 오디세우스에게는 그의 행동의 결과로 나타난 불안이 그의 다음 행동에 객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왜냐하면 오디세우스가 사용하는 단어는, 그것이 기만한 자연의 힘보다는 자신이 더 무력 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폭력과 불의가 그것의 고유한 원리라는 것을 내비치게 하며, 자신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자로 하여금, 바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취하게 되는 행동을 유발하게 된다.”*27

새로운 언어로 표상되는 새로운 것의 생산이 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단언을 경유하여, 요컨대 언어 자체가 지닌 한계를 거쳐, 우리는 최근의 “새로운 시각성(혹은 새로운 담론)”에 대한 맹목적인 강조의 기저에는 사실 변화하는 현실을 정교하게 파악하기 위해 발현된 자유의지 보다는 근원적인 불안으로부터 비롯된- 변화, 새로운 것, 새로운 언어자체에 대한 물신적인 숭배의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두려운 것으로서- 쉽사리 파악되지 않는 세계에 대한 공포를 손쉬운 방법으로 유예시키는 방책이 그것을 재빨리 상징화, 언어화시키는 것이라는 라캉의 지적과도 통하는 것으로,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것은 사실 소여의 동일성; 이데올로기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일 경우가 허다하기에, 우리는 진정으로 새로운 것, 진실로 소여의 체계로부터 완전히 탈주하는 몸짓을 취하는 것을 식별하기 위해 최소한의 단서를 세울 필요가 있다(나는 이후 그것을 부정성을 실현하는 비판과 운동에 매개된 한에서의 ‘새로운 것’이라는 규준을 제시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미술이 새로워야 한다는 클리셰를 본질적으로 재고하지 않으면 안 되며, 어째서 미술은 새로워야 하는지, 새로워야 한다면 그때의 새로움이란 어떤 기의를 갖는지 등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건들에 대한 집중과 관심은 상기한 예술의 존재론을 비호하는 축軸-또는 보루-의 작동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 예술 고유의 존재론이란 결국 다음의 문장으로 집약될 것이다. ‘그 자체 상품화에 저항하는 동시에 체계 내부의 법칙들을 재고하며 소여의 기호의 배치들을 공격하는 물질적 지표의 현현’으로서의 예술- 실로 예술이 지닐 수 있는 유일한 진리의 계기가 바로 이것이다.

결국 이 시점에서 예술의 고유한 역할은 미학과 자본주의와의 결탁과, 소여의 생산양식과 연루된 초월적 기표의 재생산을 비틀고, 전유하고, 위반하는 것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대두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실마리는 여전히 아방가르드를 관통한다. 아방가르드에 관해 논하기에 앞서, 아방가르드를 규정하는 개념을 확실히 구분할 필요가 있을 텐데, 왜냐하면 이 개념은 유통되는 맥락에 따라 그 의미의 스펙트럼이 매우 상이한 것을 지칭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를 동일한 것으로 범주화하는 이들도 있고) 이는 부분적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후반의 시기를 아우르는 문제의 각 미적 조류들이 양식이라 할 법한 것을 갖지 않으며 예술에 지극히 정세적으로 개입하며 매체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선정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실로 그들의 매체는 비정기 간행물, 팸플릿, 선언문, 스코어, 몽타주, 회화, 퍼포먼스, 조각, 레디메이드 오브제, 사진, 영화 등의 광범한 형식적 구성을 아우른다). 역사적 아방가르드는 뷔르거의 작업을 통해 그 명칭을 부여 받은, 180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까지의 미적실천들-큐비즘, 미래파, 절대주의, 구축주의, 초현실주의, 다다이즘까지의-을 가리킨다(나는 여기에 상황주의와 플럭서스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본다). 아방가르드적인 것은 당대의 이미 존재하는 예술적 경향으로부터 구별되는, 새롭고 전례없는 형식들을 의미한다. 허나 여전히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 이 개념-아방가르드적인 것-을 적어도 예술사적 용어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형식적 진취성 이외에도 만족시켜야 할 항목-이 항목을 거치지 않으면 결코 진취성을 획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새 포장지로 싸인 소여의 내용과 이데올로기들을 재생산함으로써 무의미하게 실패하는-도 있는데, 차후에 상술하겠지만, 그것은 운동과 비판이라는 특수한 모더니티이다. 아방가르드적인 것은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범주에는 들지 않는- 낭만주의에서부터 리얼리즘에 이르는 고전주의 이후의 예술적 사조들을 포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아방가르드적인 것은 개별 사조와 양식들의 상위범주이다.

리얼리즘적인 것이 실제적인 세계에 내재한 권력의 배치를 노골적으로 상대하는 일에 집중하며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미적인 것을 부차적인 것으로 주변화 시키는 경향이 있었다면, 아방가르드적인 것은 세계에 대한 표상의 체계를 알레고리적으로 상대하며 미적인 것을 거부해 왔(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아방가르드의 출신성분을 거론하며 그들이 부르주아 문화의 수혜자이자 공모자로서 부르주아 문화를 비판하는 모순적인 위치에 있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참인 진술이나, 의미가 없는 진술이다. 부르주아 문화로부터 거리를 둔 채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1차적으로 그 행위자의 객관적인 물적 조건과 관계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주체의 의식적인 선언을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즉자적으로 주어지는 선험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구축되는 대자성에 근거한다. 이런 견지에서, 아방가르드가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낙오자들을 생산체계로 복귀시켜 재활용하는 일을 돕고, 사회적 통제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상품생산을 위해서도(새로운 미술, 유행, 스펙터클을 창조하여) 프롤레타리아의 형식들과 하위문화의 양식들을 매개하는 일을 돕는”*28역할을 수행하며 부르주아적 문화의 순환에 하나의 새로운 수요를 개척함으로써, 즉 소외된 하위문화의 1차적 기호를 재구성하여 그것을 신화로 가공하는 과정에 동참함으로써 그 갱신을 수월하게 했다는 식의 주장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큐비즘의 콜라주는 초기 팝아트의 주된 방법론을 뒷받침했고,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은 모더니즘 회화 전반(특히 추상 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에 전사를 제공했으며, 다다이즘은 예술이 허용할 수 있는 형식의 외연을 폭발적으로 확장시켰고, 에이젠슈타인의 영화적 몽타주는 헐리우드 영화의 형식적 발전에 기여했다.

허나 그로부터 공모의 여지를 발견하는 것은 근대이후의 예술 자체가 부르주아 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무시하게 될 수 있으며, 아방가르드의 성취들이 없었다면 부르주아 문화가 고사되었을 것이라 가정하는 순진함을 품고 있다. 문제는 외려 다음과 같은 것이다. 어떻게 지속적으로 포섭하는 상품화 요구와 (기예가 아닌, 표현으로서의)예술이라는 범주 자체의 모체인 부르주아 문화로부터 탈주하는 제스처와 형식을 끊임없이 재고안할 것인가? 이 질문을 가장 충실히 따랐던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내놓은 해답은 뷔르거가 지적한 바 있는 비유기적 구성이었다. 채집된 실재의 대상물을 작품의 파편화 된 부분들로 구성하는 몽타주와, 단일한 의미의 체계 속으로 소급되지 않는 알레고리적 생산/ 독해로부터 식별되는 비유기성은 관람자와 작품의 손쉬운 화해를 거부하며, 동시에 작품 제작의 진입장벽을 평준화시켰다. 이는 사실 양가적인 태도로 해석 될 수 있는데, 예컨대 우리는 이러한 방법론을 기존의 유기적인 예술이 가졌던 세계와의 합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실행된 비대중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예술의 자율성을 옹호하는 제스처로 독해할 수도 있고, 분업화되고 전문화됨으로써 독립적인 실체로서 제도화 된 예술의 위상을 다시금 삶-사회로 지양해내려는, 계몽적이지만 반 엘리트주의적인- 예술의 타율성을 옹호하는 제스처로 독해할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방식의 상반된 독해를 뒷받침하는 알리바이는 각 모델에 충분히 주어져 있고, 뷔르거가 그 중 하나를 강조함으로써 놓치게 된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또 다른 특징은 전자의 모델이며, 이러한 자율성과 타율성에 동시에 가담하는 양가성, 모순이야말로 아방가르드적인 것을 규정하는 본질적인 특징이라 볼 수 있다.*29 아방가르드에 대한 뷔르거의 범주에서 드러나듯, 아방가르드는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여러 미적 경향들을 아우르며, 아방가르드는 예술을 삶으로 되돌려 보내려는 기획인 동시에 낭만주의와의 공명에서 드러나듯 기성의 제도와 전통, 부르주아 세계로부터 예술의 자율성을 획득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아방가르드는 아도르노가 지적했듯, 시민사회의 토양 위에서 기만적으로 실체화된 예술적 가상을 비판하는 장소가 됨과 동시에, 예술적 가상을 옹호하고 규제하려 했던 모순적인 예술적 경향의 원형을 가리킨다.

따라서 삶으로 예술을 되돌려 보내려했던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실천이,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듯 상품 미학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적 실천을 통해 이율배반적으로 실현된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네오neo 다다를 비롯한 범 네오아방가르드의 실천들은 그 형식 실험들에서 드러나듯 예술의 자율성 모델의 보다 급진적인 판본을 제공하면서도 아방가르드를 부분적으로 계승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기획, 보다 정확히는 유미주의, 비판적 리얼리즘에서부터 그 전사前史를 확인할 수 있는 아방가르드적인 것의 계보로부터 규명되어온 모더니티의 비판적이고 계몽적인 기획을 지탱했던 미적실천의 조건들이다. 나의 테제는, 이후의 가능한 예술의 전략은 이들 조건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경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1.예술은 독립적 실재가 아닌 사회적 실재로서, 그것이 처한 당대의 제도적 배치에 의해 그 효과를 사후적으로 부여받는다.
2.미적 경험과 작품의 수용은 사회적 보편성과 언어를 매개하지 않으면 의미 없는 것이 된다.
3.작품이 갖는 진리의 계기는 세 번 발생한다. 첫 번째는 그것이 특정한 역사적 모순의 억압에 대한 징후학symptomatology적 표현이라는 사실에서, 두 번째는 특유의 무용성을 통한 반기능의 기능을 통해서. 세 번째는 수용과정에서 관객의 삶에 ‘사건’으로서 개입하며 세계를 확장시킴으로써.
4.예술은 그 자신을 지양함으로써 비예술로 향하는 것을 그 주요 원리로 삼는 동시에 세계로부터 가능한 거리를 확보한 채 예술을 옹호하는 것을 제 1의 테제로 내세우기도 하는 모순을 내포한다.
5.해석의 다원성은 예술작품의 ‘열린 상태’를 암시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갖지 않는다.
6.작품은 여타의 행위, 사물과 구별되는 질적 차이를 가져야 하며, 이는 바로 그것의 무용성에서 기인한다.
7.예술은 미적 관조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비판적 이성을 추동하는 하나의 사건이 되어야 한다.
8.예술은 새로운 내용에 걸맞는 새로운 형식을 필요로 한다.
9.작품의 생산미학과 수용미학의 양자에서 클리셰는 지양된다

이들 각각은 비판적 리얼리즘, 큐비즘, 절대주의, 생산주의, 구축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미래파, 상황주의, 플럭서스를 거쳐 사후적으로 정리된, 아방가르드 전반의 계기들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최근 제임슨이 다시금 짚은 앤디 워홀과 데미안 허스트 이후의 예술들, 즉 역사와 시간의 범주에서 규정되는 체계, 스타일의 상실에 따라 나타나는- 휘발적이고 요소중첩적인 “공간 자체의 구축”으로서의 “분류불가능한 조합물combinations”들과 존재론적으로 상이하며, 그와 조응하는 일종의 브랜드 상품 기획으로서의 전시공정*30과도 거리를 취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이제 더 이상 이러한 요인들(아방가르드적 작인과 진의들)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예술의 현상형태를 규정하는 전체,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생산양식의 변화에 있으리란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최소한의 주체적 계기들을 갈음하는 일로서, 말하자면 최종심급의 판결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아방가르드적인 것의 이념은 이미 19세기 초반부터 싹을 틔우고 있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생시몽Saint Simon과 푸리에Charles Fourier로부터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알다시피 생시몽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로서, 과학자와 산업기술자에게 부여된 소명과 예술가에게 부여된 역할을 동등한 위상에서 사고하며 예술가의 역할을 일종의 ‘선지자’로서 규정했다. 생시몽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올린드 로드리그Olinde Rodrigues는 1825년의 한 에세이에서 보병의 전위부대를 지칭하는 의미 이상을 포괄하는 용어로서 아방가르드를 사용하고 있다.

“당신들의 전위avant-garde로서 봉사할 자들은 바로 우리, 예술가들이다. 예술의 힘은 실로 가장 즉각적이고 가장 신속하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무기를 가졌다. 즉,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생각을 확산시키고 싶어 할 때, 우리는 그들을 대리석에 새기거나 캔버스에 그들을 칠한다. 우리는 시와 음악으로 그들을 퍼뜨리며, 서정시 혹은 플루트, 송가 혹은 노래, 역사 혹은 소설에 번갈아 의지한다. 연극의 무대는 우리에게 열려있고, 그것은 대게 우리의 영향이 그 자체 전기적으로, 의기양양하게 발휘되는 것으로부터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자신을 사람들의 상상과 감정으로 보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생생하고 결정적인 종류의 행위를 성취할 것으로 여겨진다. 만약 오늘날 우리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거나 매우 부차적인 것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같다면, 그것은 예술엔 흔한 흐름과 일반적인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이는 그들의 동력과 성공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다.”*31

가브리엘 데시레 라베르당Gabriel-Desire Laverdant이라는 한 푸리에주의자는 1845년, <예술의 사명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하여>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사회의 표현인 예술은 그 가장 높은 정점에서 가장 앞선 사회적 경향들을 표명한다. 예술은 선구자요 계시자다. 지금 예술이 계시자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잘해내는지 알기 위해서, 또 예술가가 진정 아방가르드로 무장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인류가 어디로 가는지, 인류의 운명이 어떠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행복의 송가 곁에 고통스럽고 좌절된 노래를…우리 사회의 바닥에 있는 모든 불결함, 모든 추함을 냉혹한 붓으로 만천하에 드러내라.”

여기서 우리는 리얼리즘에 앞서 예술과 정치를 의식적으로 조우시키려했던 최초의 근대적 충동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러한 모더니티와 (역사적)아방가르드의 관계는 실로 아방가르드적인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레나토 포지올리Renato Poggiloi는 이에 흥미로운 통찰을 제시한 바 있다.

“(…)낭만주의가 그 자체 외에는 이제까지 아무것도 감히 학파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최초의 예술적, 문화적 선언이라는 것은 커다란 의미와 중요성을 갖는다.(…)사실주의나 자연주의처럼 직접 그 뒤를 잇는 상대적으로 왜소한 선언들에 대해서는 학파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는 그런 선언들 각각이 그것을 행하는 주역이나 관객들 편에서 볼 때 하나의 학파가 아니라 운동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러하다.”*32

그의 말대로, 우리는 한 범주 속에 포괄 할 수 있는 예술 형식들을 지칭할 때, 예컨대 19세기 초까지의 낭만주의에 선행했던 형식들에 관해 ‘학파’라는 이름을 붙이지, ‘운동’이라 얘기하진 않는다. 즉 ‘플랑드르’라는 기표에 후행하는 단어는 ‘학파’가 어울리고, ‘운동’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초현실주의는 하나의 운동이지, 초현실주의 학파가 아닌데, 이러한 ‘학파’와 ‘운동’의 개념 사이의 단절은 아방가르드의 중요한 측면을 암시한다. 운동- 이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이 가져다준 모더니티의 한 부분으로서 독립적인 학문 분과로서의 고립된 지위와 역할을 거부하고, 그 자신의 규범과 이념을 전 방위로 확산시키거나, 소멸시킴으로써 역사의 특정한 벡터를 절개하고 절단하겠다는 정치적 의지의 출현을 시사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낭만주의 이후 리얼리즘과 인상주의, 상징주의, 그리고 특히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이르기까지, ‘운동’으로서 호명되는 예술형식들의 발생은, 자본주의의 전문화와 분업화가 심화되는 때에 이르러 비로소 그 자신의 자율성의 조건을 깨닫게 된 문화의 대자적인 표현이라 볼 수 있다. 1820년대의 생시몽주의자들과 푸리에주의자들에서부터 이미 감지되는 것은, 무언가 이전과는 다른 것에 대한 요구- 다른 삶의 형식들과, 다른 세계, 그로부터 발생하는 단절된 미적 현실에 대한 요구가,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집단화”(포지올리)라는 점이다(이후 생시몽주의 미학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생산주의’를 통해 보다 급진적으로 형식화 된 모습으로 귀환하게 된다). 운동의 출현은 그에 조응하는 비판의 출현을 의미하며(이는 작품에서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제작한 수많은 선전물과 팸플릿, 선언 등을 통해 증명된다) 실로 이들은 아방가르드적인 것의 토대가 된다. 이는 20세기의 아방가르드가 모더니티로부터 무엇을 간취했었는지를 가리킨다. 역사적 아방가르드, 더 포괄적으로는 아방가르드적인 것을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것은 특정한 양식, 혹은 표현기법이 아니라, 운동이라는 하나의 에토스다. 실로, 운동- 그것은 역사를 상대하는 이성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성의 궤도에 진입한 모든 시도들은 그 어떤 윤리적 책임도 지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견지에서, 현재의 미적 형식들이 현상하는 양태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세계적으로는 플럭서스, 한국의 경우엔 민중미술 이후로 운동이라는 수식을 가진 미적 형식들이 있었는가? 장소특정적 미술 운동,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운동, 관계미학 운동, 좀비-모던 회화 운동 따위는 없다. 예술은 더 이상 운동의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제 예술은 세계를 인식하길 포기한 채, 무미건조한 현상학적 반응을 재생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운동의 상실은 곧 푸코가 말한 의미에서의 비판-“자발적인 불복종이자 성찰적인 비순종의 기예”*33의 예술적 판본의 소멸을 암시한다. 그들은 대부분 고립된 모습으로, 서동진의 표현대로라면 “독창성과 재기를 지닌 명사화된 아티스트”로서 나타나며, 혹은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산개하며 의미 있는 흐름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또 한번의 단절(‘운동’에서 ‘산개’로의)은 포스트모던의 무수히 원자화 된 주체성과, 그에 따른 다원주의, 자본주의 생산력의 향상국면에 따른 미술대학 개설 및 그 졸업생들의 무수한 배출, 세계 전반에 걸친 탈정치화 등으로부터 과잉결정 된 결과이자 그러한 상태를 예술의 장에서 재생산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한편 이는 비평가들과 큐레이터들의 호명에 예술가들과 그 작품들이 그야말로 무방비상태에 놓여있음을 뜻한다(90년대 이후 관계미학의 부흥은 이러한 상황의 수혜에서 기인한다).

허나 비평 또한 일찍이 죽어버렸음을 감안 할 때, 이러한 조건은 유사비평(눈 앞에 제시되는 작품의 현상학적 차원을 무미건조하게 서술하는 인상비평, 혹은 가십과도 같은 명사비평 따위의)이 남발되는 문화적 토대이상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누군가 이로부터 퇴행의 징후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에릭 홉스봄이 묘사하는 ‘앤디 워홀’이라는 고유명은 이제 거의 예술가의 지배적인 유형으로 자리 매김 했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파괴하거나 개혁하고자 하지 않았으므로 어떤 세계든 그대로 내버려 두”며, “매체에 흠뻑 빠져들어 경험한 세계에 대하여 스스로 수동적이고 수용적인 도관conduit;pipe이 되고자 했을 뿐 다른 어떠한 것도 거부한”*34 워홀 식 예술가들의 주체성이 편재하는 시대에 관해 말하고 있다. 행동주의와 극도의 수동성- 일전에 내가 좀비-모던 따위의 신조어(그들의 표현으로는 ‘새로운 시각성의 표현’과 동일한)로부터 발견했던 경향은 바로 이런 측면이었다. 이렇게 역사와 세계, 일련의 호명들에 대한 수동적인 주체성의 반대편엔, 다른 한편으로 자발적인 주체성의 경향이 나란히 병존한다. 서동진이 푸코를 경유하여 강조해왔듯, 자기서사를 만들 것을 강요하는 입사지원서와도 같은 포트폴리오를 통해 드러나는 ‘기업가적 예술가’의 주체성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그를 따라, 예술가들의 작품 카탈로그를 지칭하는 포트폴리오portfollio와, 금융기관 및 개인이 보유하는 금융자산과 그 운용을 가리키는 포트폴리오는 사실상 70년대부터 가속화 된 금융화(혹은 신자유주의적 이념의 확산)와 맞물린 경제와 미술의 또 다른 접속의 측면에서 사실상 동일한 징후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35 강요된 자발성으로서의 자기 서사화와, 전문가들에게 대리되지 않는 이념의 담지를 스스로 승인하고 구현하는 자발성을 억압하는 신비주의적 수동성- 이러한 수동성과 능동성의 양극을 극복하는 주체성 양자를 거부하는 새로운 주체성을 발굴하는 일은 오늘날 아방가르드적인 것에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현재화시키는 작업과 직결된다.

대형화의 타자로서의 소형화?: 은폐된 포스트모더니티
임근준은 최근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의 미술형식의 양태를 작품의 대형화로 규정하며 미술제도 비판의 장에 기웃거리는 중이다.*36 허나 이러한 규정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닌데, 이유인즉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에 잇단 신자유주의적 전환에서 작품의 대형화 경향을 포착한 사람은 알다시피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임근준이 말하는 작품의 대형화 경향은 비숍의 논의*37를 무비판 적으로 수용한데에서 나온 결과로 여겨진다. 실제로 한국 미술이 제도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미적 형식의 지표를 대표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은 연이은 대형작업들의 전시와 함께 현대카드의 지원을 받은 팀버튼 전展과 드림웍스 전 등 노골적인 스펙터클로서의 키치까지도 아우른다. 전시 내용에 한하지 않더라도 이는 분명한데, 주지하다시피 지난 20, 30년 전부터 성행해온 국제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박람회 등의 대형 전시들은 전 지구적 자본의 금융적 연결에 잇따른 폭발적인 인구의 유동성을 표현하고 있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가 세대론적 구분을 중시하며 기성작가와 신세대작가를 구분하는데 열을 올리고, 신세대의 모든 집단적 제스쳐를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까닭도 이러한 작업적 조건의 변화에서 관측되는 대형화 경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신자유주의적 미술생산양식이 대형화로 규정된다는 주장은 실로 절반만 옳다. 이유인즉 외려 대형화의 거울상으로서의 소형화를 통해서 마찬가지로 작동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상품이자 미술품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주류 시장으로부터의 주변성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오늘날의 미적 실천은 아주 잘 작동한다. 대형작업들을 실제적으로 지탱하던 금융적 거품의 2008년의 붕괴가 세계미술시장의 헤게모니를 영미권의 대형작업들로부터 중국과 아시아 시장의 상대적으로 소형화된 작품을 중심으로 재편시켜왔다는 사실은 이제 익숙한 것이 된지 오래다.*38 한편 서동진은 소형화 된 작업의 기표로서의 ‘굿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뮤지션의 콘서트나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상품들을 가리키는 굿즈는 팬덤이라는 문화현상의 일부에서 이제 상품 그 자체가 되었다. 물론 경영학자들은 이미 이를 여러 가지 버전의 이야기로 풀이하여 수다스럽게 떠들어댄다.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과 매력, 스토리텔링, 로고를 판매한다든가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비물질적, 인지적, 정동적(affective), 감정 노동 운운의 용어들이 진부한 사회학적 사고로 노동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대신한다면, 사물, 상품, 미적 대상을 모두 하나로 꿰는 사변적인 담론 역시 우리 주변을 항상 배회하여 왔다.”*39 그의 주장대로, 굿즈는 정확히 상품이며, 상품은 상품인 한에서 그 스케일의 차이에 무감각한, 무차별적인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상품의 크기에 따른 윤리적 규준을 세운 후 소형화 된- 구체적인 것에 대한 강조로 귀결되는 <굿-즈 2015>를 지탱한 알리바이는 희극적이다. 그것은 나쁜 소비 대 윤리적 소비, 나쁜 기업 대 사회적 기업이라는 식의 이데올로기적 구분을 미술의 맥락에서 군더더기 없이 재현한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작품을 판매하며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주로 출품되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이러한 시장화 된 주변성의 제도화된 버전이라면 <굿-즈 2015>는 정확히 KIAF의 아류에 가까운 시도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소형화는 곧 대형화의 거울상일 뿐임에도, 나쁜 주류 대형화에 맞선 착한 비주류적 소형화라는 도식은 그러한 분할 자체가 자본주의적 이념(상품의 생산과 소비에 윤리적 차등을 설정하는) 속에서 기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형화된 작업 혹은 작업의 파생물을 직접적으로 판매하는 행위에 여타의 진보적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넌센스일 것이다.

반대로, 소형화에 특권을 부여할 수 없듯 대형화에 과도한 면역학적 거부를 보일 필요도 없는데, 이에 대한 서동진의 주장은 옳다. “동시대의 미술이 미술 없이 미술가만 있는, 즉 평판의 경제라 부를 만한 것에 좌우되는 스타 미술가를 통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뻔한 사실이다.(…)평판을 좌우하는 신뢰 혹은 신용은 어떻게 셈해질 수 있을까. 당연히 그것은 거대미술관들로부터 나온다. 대안공간과 갤러리들이 코스닥에서 거래되는 벤처주식과 닮았다면 아마 대기업 미술관들은 FTSE100이나 코스피 200과 같은 우량주를 거래하는 거래소와 같을 것이다.(…)대기업 미술관은 대기업이 운영하기에 문제라고 보는 것은 결벽에서 비롯된 반발심일 뿐이다.(…)외려 정색하고 유의 할 일은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스타미술가의 전시를 조직하고 이벤트를 후원함으로써 세계 미술시장의 가치평가의 논리를 이식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된 미술시장의 중계기관으로서 대기업은 글로벌 미술 시장의 가치평가 기준을 휘두른다”. 그의 말처럼, 문제는 대형화와 스펙터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조직하는 기제를 파악하고 그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일이다. *40

헌데 동시대의 미적 헤게모니에서도 위와 같은 구체성과 주변성에 관한 특권은 여과 없이 장소 특정적 미술*41의 계보(미니멀리즘과 대지미술로부터 내려오는)와 관계의 미학을 통해 동일하게 입증된다. 알다시피 양자는 후기 자본주의의 시장과 제도 권력(국가적 제도이든, 화이트 큐브 제도이든)의 보편성에 대한 대항으로서 현존과 일시성, 관계성, 구체성, 특수성 등의 개념에 관해 특권을 부여한다는 특징을 공유한다. 이 지점에서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마이클 애셔Michael Asher, 월터 드 마리아 Walter De Maria 등으로 대표되는 장소 특정적 미술의 선구자들과 리암 길릭Liam Gillick,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Dominique Gonzalez-Foerster,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 필립 파레노Phillipe Parreno, 더글러스 고든Douglas Gordon, 카르스텐 횔러Carsten Holler, 피에르 위그Pierre hughe등이 이끄는 관계미학- 실상 양자는 동일하게 추상의 차원에서 특정한 포스트모던의 조건과 공명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공명은 그들의 작업에서 보다는 그들을 뒷받침하는 담론들에서 더 자주 식별된다. 예컨대 우리는 50년대말, 60년대 초반 즈음에 미국적 자본의 축적체제의 변화(후기 자본주의 혹은 다국적 자본주의 또는 그 체제의 급진화 된 에토스라 할 법한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특정한 문화적 경향*42-포스트모더니티의 공고한 지속을, 60, 70년대의 장소특정적 미술과 9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는 관계미학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보편성에 대한 거부와 일종의 인간주의적 감수성, 미시 서사적 경향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들의 긍정적 측면을, 정치와 예술을 비롯한 상부구조의 여러 분과 체계 속에서 전통적으로 배제되어 왔던 여성, 성소수자, 소수인종, 지역주민으로 표상되는 ‘타자’의 자기조직화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그것은 여기서 다룰 주제는 아니다.

나는 여기서 관계미학과 포스트모더니티의 관계를 중심으로 기술할 텐데, 그 이유는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의 거듭된 이론적 작업으로 인해 장소 특정적 미술을 둘러싼 담론에 견주어 관계미학이 (일찍이 할 포스터와 클레어 비숍 등의 비판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보다 견고한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며, 많은 이들이 관계미학을 논할 때 놓쳐왔던 그것의 에토스적 측면은, 포스트모더니티와의 내밀한 공모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기 드보르 등으로부터 ‘사물(상품)들 사이의 관계로 현상하는 인간 자신들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 혹은 “사회적 관계의 사물화”, “사회적 틈”, “스펙터클의 사회” 등의 일부 개념을 차용하여 모종의 시대인식을 도출한 뒤 니콜라 부리오가 내리는 결론은 사실상 다음의 문장에 집약되어 있다. “오늘날 유토피아는 구체적이고 고의적으로 파편적인 실험들이 진행되는 실시간 안에서, 즉 주체적인 일상 속에서 보여진다. 예술작품은 그것의 경험인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가능한 것으로 드러나는 작품의 내부에서 사회적 틈으로서 나타난다. 현재의 이웃과 가능한 관계들을 창안하는 것이 행복한 미래를 찬양하게 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43 이때 “현재의 이웃과 가능한 관계들을 창안하는 것이 행복한 미래를 찬양하게 하는 것보다 더 시급할 것”이라는 부리오의 단언은 관계성을 사유하며 관계와 참여를 대상으로 하는 미술 형식에 대한 그의 호명을 지탱하는 윤리적 선언이다. 이 부차적인 것으로 보이는 문장은 실로 부리오의 작업 전반을 관류하는 하나의 전제다. 헌데 이는 일련의 균일한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없게 된 상황- 즉 역사 감각의 소멸이 편재하는 상황에서 “다국적 자본주의” 내부의 주체들이 “영원한 공간적인 현재”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제임슨의 진단을 상기하면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제임슨은 후기 자본주의가 유발한 다국적성multinationality에서 배태된 초-공간hyperspace이 주체 스스로에 대한 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이로부터 발생한 정신분열증은 영속적인 현재에 대한 집착을 낳게 된다는 점과, 자율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부문체계들이 어떻게 물적인 생산양식에 의해 규정되어 왔는지를 집요하게 설명한 바 있다.*44

이러한 제임슨의 작업을 경유하면, 우리는 행복한 미래를 찬양하길 포기 한 채 ‘현재의 이웃과의 가능한 관계’를 창안하는 관계미학의 알리바이에서,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간의 연속성을 감지할 수 없기에 무한한 현재 속에서 파편화 된 당장의 실천들에 골몰하며 총체적인 미래에 관한 청사진을 그리길 포기한 정신분열증의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미적 실천들은 많은 경우 비관적 현실주의 또는 우울증과 공모한다. 언어-상징체계가 주체의 존재와 그의 세계가 갖는 의미를 설명해낼 수 없을 만큼 와해되었을 때, 즉 의미가 소멸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은 우울증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미의 소멸은 곧 기의의 소멸이자, 보편성의 소멸을 뜻하는 동시에 해방에의 믿음의 소멸을 뜻한다. 그런 측면에서 “환상을 횡단하기”라는 라캉의 테제는 역사의 측면에서 정확히 부정적으로 실현된 것처럼 보인다. 현재의 우울증은 승화되며 미증유의 것, 유토피아적 충동, 바디우의 표현을 빌자면 “실재를 향한 열정”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미학이 그 자체로 증언하듯, 외려 유토피아의 불가능성을 시인하며 내부로 침잠하고 가시적인 것과 실증적인 것을 유토피아-실재-진리의 조건으로 호도하며 텅빈 항아리를 채워나가기 때문이다.*45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간취하려 시도할 바엔 가능한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유토피아에 가깝다고 주장하며, 그렇게 가능한 것(만)을 취하는 선의 에토스가 그 내용인 것이다. 허나 ‘가능한 관계, 가능한 유토피아’는 정확히 유토피아의 소멸을 증언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리처드 로티Richard McKay Rorty와 같은 실증주의 철학의 대두와 89년과 91년 이후 눈에 띄게 급증한 행정담론의 부흥과도 맥을 함께한다. 비관적 현실주의와 분열증, 우울증 사이에서 소멸하는 것은 모더니티의 계기들로서, 인간 이성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과 보편적인 해방의 서사, 유토피아적 열망의 집단적 분출에 대한 거부는 포스트모더니즘 정치학의 특징이기도 하다. 샹탈 무페Chantal Mouffe의 작업은 이러한 정치학이 적용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의 전형을 제시한다.

“만일 급진적 민주주의의 임무가 민주주의 혁명을 심화시키고 다양한 민주주의적 투쟁들을 상호연결 짓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임무는 反인종주의, 反성차별주의, 反자본주의와 같은 일상적 접합을 허용하는 새로운 주체-위치들의 창조를 요구한다.(…)노동자들의 이익수호가 여성, 이민자, 소비자들의 희생 속에서 추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상이한 투쟁들 간의 등가성이 확립될 필요가 있다. 오직 이러한 조건하에서만 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이 민주주의적으로 될 수 있다.(…)자유민주주의 전통은 다양한 해석들에 개방되어 있고, 급진 민주주의의 정치학은 여타 것들 중에 하나의 전략일 뿐이다.(…)그러나 이 전략은 모더니티의 민주주의적 전략은 심화시키고 추구하는 데에 착수해왔다. 그러한 전략은 계몽주의의 추상적 보편주의, 사회적 총체성에 대한 본질주의적 개념 그리고 단일의 주체라는 신화를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급진 민주주의는 포스트모던 철학의 발전을 결코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데 있어서의 필수 불가결한 도구로서 환영하는 것이다.”*46

무페는 여기서 포스트모던의 긍정성을 급진 민주주의의 조건으로서 발견하는 작업을 “계몽주의의 추상적 보편주의”와 “사회적 총체성에 대한 본질주의적 개념”, “단일의 주체라는 신화”를 포기함으로써 수행하고 있다. 무페의 작업과 관계미학의 일련의 연속성에서 감지되는 바, 보편적 서사에 대한 반대항은 미학과 철학, 정치학, 사회학, 역사학 등에서 공통적으로, 구체적이고 다양한 모든 사건들과 주체들, 그들에 의한 당장 가능한 일시적인 관계로의 접속으로 귀결되며 바로 그것이 ‘가능한 유토피아’로 압축되는 관계 미학적 실천의 특징을 대변한다. 이런 견지에서. 부리요의 제 문제들은 그의 이론적 작업들에서 개진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 예컨대 <포스트 프로덕션Post Production>(2002)에서 전개하는 혼성모방에 대한 비판으로 도출된 작업적 경향으로서 전용appropriation의 예술을 지양하고 공유를 지향하는 재활용recycling의 방법론에 주목하거나*47 <레디컨트The Radicant>(2009)에서 제시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체성 2009년 을 기획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죽음을 선언했던 사실들을 상쇄할 만큼 명백한 포스트모던의 미학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문제적인 것은 재현해야할 주체의 측면에서든, 정치적 기획의 측면에서든, 보편성에 대한 과감한 포기가 결국은, 하이데거 식으로 표현하자면, 세계의 “세계의-빈약함”으로의 동물적인 후퇴를 표현하거나, 더 나아가 하이데거를 전유한 바디우적 견지에서의 “세계-없음”의 상태를 공고히 하며 “사회 없는 개인들의 연대”*48를 방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현을 기다리는 보편적인 주체와 단일한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상이한 삶의 습성들과 욕망을 가진 원자화된 비-주체이며, 이들에게 공통적인 것의 지평으로서의 세계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실재하는 것은 개체이고 보편성은 그로부터 추상된 허구라 간주하는 식의 명목론을 논파하고 지양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는 사라지고, 사실상 다양한 개체를 선험으로 전제한 채- 그들의 총합을 수치화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상을 재현하는 일을 기만적으로 도구화하며 닫힌 비세계를 세계와 동일시하는 기술적인 정치가 그 자리에 들어선다. 그런 상황 속에선, 관계미학이 피해갈 수 없었던 것처럼- 예술은 취향, 기호, 차이로 소급되는 상품 이상의 것이 되기 힘들다. 우리는 여러 상이한 주체들의 노선을 일시적으로 접합하는 것이 과연 그들을 단일한 주체로 재현하는 것, 그들을 단일한 구조 속으로 투사하는 것보다 더 옳고 가능한 것인지 되물을 수 있어야 하며, 사회주의의 패배를 반성하는 일이 어째서 모더니티의 계몽적 보편주의와 총체성을 폐기하는 것으로 귀결되는지 숙고하고, 전위와 매개된 집단성의 구축으로부터 반사적으로 전체주의의 망령을 발견하는 일이 무엇과 공모하는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라캉적 맥락에서, 여성은(남성의 욕망으로 그 자신을 투사하고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남성이고, 남성(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이름” 내부로 호명되며 공모적 피해자가 된다는 의미에서) 또한 남성이듯, 혹은 부르주아 백인 남성은 인간이지만 그 이외의 존재는 ‘n인종’인 것처럼, 서구는 세계이지만 비서구는 지역local인 것처럼- 근본적인 힘의 비대칭성 속에서의 비존재들은 스스로를 타자로서 재현해야하고, 또 그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타자는 세계 일반에 대해 말할 수 없으며 정체성 이외의 것에 대해선 함구해야 한다”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이의 정치, 욕망의 정치, 정체성의 정치 등의 부정적인 테제를 정당화시키는 기제가 되는 순간 소여의 이데올로기와 공모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정치는 사실 정확히 보편성을 간취하고 일반성을 상대하며- 개별적인 사실들과 구체적인 낯들, 구성원들의 의견의 총합을 초과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세계에는 무수한 물질적이고 관념적인 힘의 차이들이 기원적으로 편재한다. 타자가 근거하는 차이란 상이한 힘의 발현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무한한 폐쇄회로처럼, 존재 일반에 내재적으로 주어지는 선험이다. 관계란 본질적으로 그런 존재들의 상호적인 접속상태를 일컫는다. 그런 점에서 관계일반은 많은 경우 사랑이 그러하듯, 비윤리적이다. 선험적인 힘의 다양함 앞에서 윤리가 가정하는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법칙으로의 소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속에서 보다 강한 존재는 적극적으로 힘을 발휘한다. 반면 약한 존재는 강한 존재에 의한 힘의 발휘에 제압당하거나, 강한 존재에 대한 (니체적 의미에서의)“원한”을 품게 된다. 마치 사랑이, 매료와 멸시의 경계에 있는 불안정한 행위인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니체가 말한 약자의 도덕률은 전적으로 경험세계의 논리를 따르며, 바로 이러한 힘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힘을 동경하거나 능동적인 행위자의 힘에 억눌린 상태의 약자의 의식형태의 표현이다. 이러한 약자의 도덕, 타자의 도덕, 니체식으로 표현하자면 노예의 도덕내부에 정치가 발생할 공간은 없다. 그들은 파편화 된 채 강자를 비난하고, 성토하고, 고백하고, 폭로하며, 그들의 흠을 찾아내려 눈에 불을 켜지만 역설적으로 강자의 선의와 강자로부터 제정되는 윤리에 기댄다. 그 속에서 노동자는 ‘악덕’ 자본가를 고발하고, 여성은 ‘폭력적인’ 남성을 규탄하고, 흑인은 ‘차별적인’ 백인을 공격하고, 성소수자는 ‘편협한’ 이성애자를 조소하고, 지역주민은 ‘독단적인’ 국가를 비난하며, 청년은 ‘권위적인’ 중장년을 멸시한다. 여기서 약자들이 바라는 것은 지극히 이율배반적인 것- 윤리적인 자본가이고 윤리적인 남성이며 윤리적인 백인, 윤리적인 이성애자, 윤리적인 정부, 윤리적인 중장년이다. 허나 윤리적인 강자를 산출하는 일반성의 정수는 지배의 기원적인 심급이다. 사실 그들- 일반성의 정상화된 모습들이야말로,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최대한의 적수라는 진실은 약자의 미덕, 타자의 도덕 속에서 망각되고 만다. 실행의 차원에서 줄리안 어산지Julian Assange와 같은 내부고발자들의 개인적인 기량과 결단에 기대고, 수렴의 차원에서 강자와 일반성의 윤리적 호혜에 기댈 수밖에 없는 폭로, 고백의 방법론과, 보편자에 관한 특권에 대한 염증으로 특징지어지는 접합의 방법론은 본질적으로 약자의 미덕이자 타자의 미덕이다.

정치란, 그러한 소여의 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며 일시적인 것으로 가정함으로써 그 발생의 조건을 마련한다. 주어진 힘들의 다양한 위계를 거부하고, 그 어떤 힘의 선험도 인정하지 않은 채, 스스로 기꺼이 강자와 동일함을 선포할 때, 관계와 사랑의 불안정한 본질은 승인되며, 원한은 사라지고, 소여의 지배는 무너진다. 그 과정은 본질적으로 경험세계가 아닌, 경험세계를 조직하는 원인에 대한 발견이 전제되는 과정이며, 이는 힘의 발현으로서의 폭력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러한 폭력의 실행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며 그것을 긍정하고 끌어안을 때 발생하는 결의적인 수행에 의해 획득된다. 정치란 이러한 과정을 가리키는 이름에 다름 아니며, 따라서 정치란 개별적인 사실, 경험, 차이, 정체성 등을 그 시작에서부터 초과하는 초윤리적인 행위이다. 즉- 타자가 타자로서 머무는 한, 그들은 주어진 일반성과의 관계 속에서 일반성의 욕망, 일반성의 시선을 통해 재현된 모습(약자)에 갇힘으로써 이것을 윤리적으로 공격하는데 그치고 말며, 부과된 구조와 체계를 재생산할 뿐이다. 타자가 타자를 생산하는 보편적인 심급과 최종적인 기제를 파악할 때, 타자의 인식론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발생하고, 그리하여 타자가 스스로 타자이기를 멈출 때, 말하자면 타자로서의 정체성을 타자화시키고 소외를 소외시키며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때- 그들은 단독자이자 보편자가 된다. 이런 전환의 순간은 필연적으로- 개개의 다중들이 접합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단일하고도 보편적인 주체로 스스로를 기꺼이 재현해내는 때에 발생한다. 그때 구성된 보편성은 구성하는 보편자에 의해 침투되고, 대체된다. 많은 이들이 목적론적 의미로 독해하고 폐기하는 ‘역사의 진보’라는 테제는 여전히 구제가능한데, 그것은 이런 보편자가 그 자신의 법령을 공표하고 생산을 조직하며, 마치 예술이 그러하듯- 이념에 형식을 부여하는 지점들에서 그러하며, 나는 이것을 헤겔이 말한 시대정신의 출현 조건이라 생각한다.

그 순간은 소여의 차이와 정체성이 한 차원에서 제거됨과 동시에, 단절된 차원에서 새로운 차이와 정체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현전하는 순간이다. 세계를 완전히 뒤바꿀 정치의 현시와 차이의 보편화는 역설적으로 차이와 정체성이 제거되고 그들이 보편자로서 소여의 보편성, 일반성을 모순 속에서 지양해낼 때 개시되는 것이다. 비대칭성의 소멸은 그렇게 정확히 모순이 지양되는 순간 이뤄지며, 차이는 그 자체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49 그렇게 세계 전체를 상대하는 보편자는 여전히 적대를 짊어지는 (노동자라는 사회학적 계층이 아닌)프롤레타리아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테제에 대한 성공적인 형식화의 여부는 관계미학 이후의 비판적 미학을 구축하는 문제와 직결 될 것이다. 한편 관계미학을 두고 ‘미술에서의 도덕적 부흥’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한 랑시에르의 공격을 다루는 에세이에서 부리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미학의 불확실한 체제는 속도, 간헐성, 불분명함, 그리고 연약함에 기반하여 발전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일회성과 지속성 사이에서 반대적 태도를 고수하거나, 지속성을 진정한 미술의 기준으로, 혹은 일회성을 야만주의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대신에, 일회적 무상함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에 기반하여 문화 (그리고 윤리)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어떤 대상이 결정적이지 못한 상태에 있거나, 불확실한 미래를 갖는다던가, 혹은 명확한 방향이 없을 때, 그것은 precarious(불확실한)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우유부단함에 둘러싸여, 정지 상태인 것이다. 이 불확실함은 일시적인 영역을 점령한다. 일반적으로, 현대미술 작업들은 그 개념적 위상에 대해 절대적 권리가 없다고 할 수 있다.(…)그러므로 현대미술은 다양한 ‘매체들’의 사용을 통하여 일률적으로, 범경계성과 불확실성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그러므로 현대 미술의 정치적인 토대는 현실성에 내재한 ‘정치적’ 환경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제스처들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확실함을 거의 모든 곳에 퍼뜨리는 제스처, 전략적 아이디어를 살아 있는, 생산적인 것으로 만드는 제스처, 그리고 우리의 양식을 구성하는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모든 체계를 무너뜨리는 제스처.*50

그는 자신의 미학적 기획 이면의 시대인식을 ‘불확실성’과 ‘일회성’에 기반한 미적 체제의 도래로 고정시키는데, 여기서 그가 겨냥하는 것은 확실성과 영속성에 기반 했던 모더니즘적 이성으로부터의 단절이다. 관계의 미학을 자신의 예술론으로 전유한 홍성민이 부리요의 작업에 대해 내리는 정의는 이를 보다 간결하게 표현한다: “관계의 미학에서의 수행성이란 이미 전제된 공고한 하이에라키hierarchy의 관계들, 즉, 수신자와 발신자, 공간과 의미론으로부터 해방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그것들은 바로 즉흥처럼 ‘스스로가 씌어진 각본 없이 참여’해야 하는 전략을 필요로 한다.(…)관계미학의 수행성이란 이처럼 직접적 경험, 순간, 오감적, 총체적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번역, 영속성, 분석과는 반대의 개념이다.”*51

관계의 미학은 원자화된 개별적인 정치론적 주체의 투명한 현전과 미시적 수준의 구체적인 당장의 실천들 그리고 계급 혹은 생산양식에 대한 정치가 아닌 생활 세계를 대상으로 한 (민주주의적)정치,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에 관한 특권으로 점철된 포스트모던의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포용하고 있다. 철학적 수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을 전개한 대표적인 학자인 리오타르를 경유하면, 이는 보다 확실해진다.

“우리는 전체와 하나, 개념과 감각간의 유화, 투명한 경험과 소통적 경험의 유화 등에 대해 향수를 가져왔는데, 대단히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우리는 평정과 고요를 일반적으로 요청하는 가운데, 현실을 장악할 환상을 현실화하고 테러를 복구시키려는 욕망이 슬그머니 일어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응답은 다음이다. 우리가 총체성과 전쟁을 선포하고, 현시할 수 없는 것을 위한 증인으로 우리 스스로 나서며, 차이성을 활성화시키고 명명의 명예를 구원하자는 것이다.”*52

알다시피 포스트 모더니티를 의식적으로 체현했던 초기 리오타르의 다수진리론은 상이한 언어게임의 규칙으로 인한 보편적 합의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며, 거대서사meta-discourse와 총체성을 폐기할 것과,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소서사론을 제시했다. 이는 여전히 우리시대의 수많은 탈 중심적 실천들에 뿌리내린 아프리오리a priori이자, 사실상 관계미학의 인식론의 기저를 메우는, 무의식적인 테제가 된다.

허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거대서사와 보편성의 반 테제로서 제시된 소서사의 헤게모니에 기대고 있는 구체성과 개별성은 제임슨의 표현대로, 결과적으로 “기호의 물신화” 과정과 관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제임슨에 따르면, 기호의 물신화는 자본주의의 추상화 과정의 결과로서, 상품의 사용가치를 말소하고 가치의 표지로서의 교환가치가 사용가치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가치를 생산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그의 표현대로라면 “후기자본주의”)에 대한 언어학적 반응이다.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기표의 무한한 연쇄는 최종적으로 기의-의미-보편성을 거부하는 구체적이고 특정적인 것들의 향연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는 미술의 장에서 장소특정성과 관계미학의 향연으로 현상한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가 파시즘을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전화된 필연적 결과로서 규명했듯, 포스트모더니즘의 내적 논리의 필연적 결과는 관계미학과 굿즈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하고 싶지 않다면 관계미학과 굿즈에 대해서도 침묵해야 할지도 모른다. 양자 모두 주관적인 것이 객관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 체 한다는 점*53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유토피아적 열망의 분출의 집단성과 모더니티의 계몽적 보편성을 억압하기 위해 제시된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이 객관적인 자본주의의 보편성과 공모한다는 사실을 말소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후기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동일하게 체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가능한 유토피아에 대한 집착과 보편성에 대한 회의는 명백히 사회주의의 실패에서 과잉결정된, 이데올로기의 전 분과에서 관측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는 급진성을 간취한 집단적인 정치적 기획으로부터 전체주의를 읽어내는 동시대의 지적 유행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대 시위의 주창자들이 내부의 운동권을 사전검열하고 그를 자신들의 시위로부터 적극적으로 배제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언하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는 20세기에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양할 유일한 수단으로 여겨졌던 생산양식에 관한 전유가 기요틴에 오르고 그 빈자리를 대체할 수많은 담론들이 재조명되고 재구성되어 왔음을 알고 있다.

네그리의 다중, 들뢰즈의 노마디즘, 공동체주의, 직접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윤리적 소비, 북유럽식 복지, 기본소득, 다문화주의, 정체성의 정치, 욕망의 정치, 적녹보라 패러다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그리고 포스트모더니티. 이러한 변화들은 각자 나름의 진리의 계기를 담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역사적 단절의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몸짓을 취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징후를 가리킨다. 유토피아적 열망에 대한 억압과 검열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보기에 관계미학은 정확히 상기한 계보의 포스트 사회주의의 인식론과 공명하며 이는, 랑시에르Jacques Ranciere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외려 아르케 정치의 치안 질서로서 몫들의 분배에 조작과 수정을 가하며 작동하는 행정에 가까운 시도로 여겨진다. 물론 그는 모더니티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에 그다지 호의를 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그에 따르면 계쟁이 출현하는 고유한 공간으로서의 정치, 특정한 방식의 감각의 분할 형식으로서의 미학이 발휘되는 순간은 언제나 계쟁disagreement, 이의dissensus, 잘못tort의 셈법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랑시에르에게 정치란 전면적인 (넓은 의미의)봉기의 가능성을 부인하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쓴다.

“정치는 정확히 말해 사람들이 이윤과 손실을 맞추는 일을 중단할 때, 공동의 것의 몫들을 분배하고, 기하학적 비율에 따라 공동체의 몫들과 이러한 몫들을 얻을만한 자격들, 공동체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가치들(axial)을 조화시키는데 몰두하는 경우에 시작된다.”
“빈민들을 인민으로서 셈하는 것에 대한, 인민을 공동체로 셈하는 것에 대한 계쟁은 정치의 존재를 둘러싼 계쟁이며, 이를 통해 정치가 존재하게 된다.
“정치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감성화[미학화]되거나 스펙터클화 되는 불운을 겪게 된 것이 아니다. 말하는 존재자들의 말이 기입되는 감각적 짜임은 항상, 정치가 치안 질서 속에 기입한 계쟁의 쟁점 자체였다. 이것은 곧 ‘감성학’[미학]을, 대화의 논리를 일탈시키는 ‘자기준거성’의 영역과 동일시하는 것은 지극히 그릇된 것이라는 뜻이다.(…)이렇게 해서 자율화된 감성학[미학]은 첫째, 표상[재현]의 규범들로부터의 해방이며, 둘째, 추정의 세계에서 기능하는 감각적인 것의 공동체 유형의 구성이고, 부분들과 몫들의 분배에서 벗어나는 감각적인 것의 존재양식을 보도록 만듦으로써, 포함되지 않는 이들을 포함하는 마치~처럼의 공동체 유형의 구성이다.”*54

이렇게 명확한 그의 단언에서 드러나듯, 랑시에르의 정치론과 미학은 관계가 아닌 비 관계non-relation, 관계 자체의 배치와 규칙, 관계인 것과 관계 아닌 것을 분할하는 질서의 제정에 가깝다(한편 여기서 랑시에르는 대중매체를 전유한 정치기술의 양태를 두고 ‘정치의 미학화’를 주장했던 벤야민적 전통과, 논리를 매개하지 않는 ‘무관심성’과 ‘자유로운 유희freies Spiel’-‘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으로서의 칸트식 모델로부터 거리를 두며 자신의 정치론과 미학을 전개하고 있다). 이때 비관계란 라캉이 성관계는 없다고 주장했을 때의 바로 그 맥락에서의 비 관계와 관련하여 생각 해 볼 수 있다. 라캉에게 타자의 욕망으로 이루어진 소여의 자아 모델과의 거짓된 화해가 텅빈 주체와 실재-진리 간의 대면을 방해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자아와 자아의 접속으로서의 ‘관계’라는 환상 속에서 사고하도록 유도하는 기제인 것처럼, 랑시에르에게 관계란 셈해지지 않는 이들을 셈하지 않은, 이미 결정된 소여의 사회적 역할의 배치 속에서만 파악될 수 있는 “아르케 정치”의 산물이다. 달리 말해, 라캉에게 비자아로서의 비관계가 실재와의 대면 가능성을 개방시키는 진리의 조건이 되듯, 랑시에르에게 “몫 없는 자들, 셈해지지 않는 이들”로서의 비관계는 정치의 현전을 열어놓는 진리의 조건인 것이다. ‘관계 아닌 것’-‘비대칭적인 것’-‘적대적인 것’ 즉 비존재의 현존재를 셈하지 않는 모든 관계에 대한 논의가 기만으로 얼룩지게 되는 까닭이 여기 있다.

다시 말해, 부리오의 관계 미학에 비관계를 사유할 공간은 부재하며, 그가 설정하는 “관계”의 실질적 수혜자는 전적으로 부르주아 주체에 한정된다. 랑시에르를 둘러싼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랑시에르에게 ‘공동체’라는 개념은 공동체주의자들이 말하는 낭만적이고 평등하며 수평적인 관계로서의 공동체라기보다, 분할의 형식과 구성원의 배치를 결정하는 중립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논의하고 있는 ‘감성학’[미학] 역시 그 작동의 측면에서 정치의 출현 순간과, 정치의 쟁점-감각의 분할체계라는 성질-과 관계하는 것이지, ‘가능한 일시적 유토피아’를 추구하며 정치를 축소하고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실로 랑시에르의 정치론과 예술론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한다면, 외려 특정한 관계 유형을 산출하는 공동체의 외부, 즉 공동체의 여집합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 이를 미학의 경우에 대입한다면, 그것은 조건 지어진 미적 규범의 외부를 가리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논자들이 관계미학의 알리바이로서 랑시에르를 전유하는 이유를 나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이쯤에서 나는 관계 미학의 개념들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이데올로기로서의 ‘사랑’에 대해 언급할 필요를 느낀다. 나의 가까운 이웃들에 대한 관심, 그들과의 소통, 그들을 동원한 참여, 그로부터 형성되는 일시적 관계형성에 관한 요구의 기저에는 (부리오가 명시한 바는 없으나)결국 타인을 향한 연민, 정, 공감이라는 사랑의 에토스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사랑이 그 자체 관계미학이 전제하는 관계적 합리성이 아닌, 비관계적 비합리성에 가까우며, 그런 점에서 철저히 비민주적이고(합의와 규칙의 제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의미에서), 그러면서도 관계 아닌 것- 적대를 상정하는 정치와는 구별 된다는 데에 있다. 바디우는 이를 간결하게 설명한다.

“정치에서 적과 맞선 싸움은 행동을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적은 정치의 본질에 속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정치라면 모두 확실한 적을 구별해냅니다. 이와 반대로 경쟁자(연적)는 완전히 외부에 있으며, 사랑을 규정하는 일에는 조금도 개입하지 않습니다.
“(…)브르통은, 사랑은 예컨대 한 사건이 존재에 스며들어 도래하는 순간이기 때문에, 관계가 사랑과 매우 밀접하다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미친사랑”[1937년에 발표된 앙드레 브르통의 시집 제목: 인용자 주]은 바로 이것을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법으로는 전혀 환원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법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예술은 사랑의 비사회적인 특성을 빈번히 대변해왔습니다. 대중적인 격언이 말하는 것처럼,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홀로”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세상을 경험하는 순간부터 바로 차이를 홀로 위탁받은 자들입니다.”*55

관계와 사랑에 대한 바디우의 작업을 거쳐, 관계미학에 내기를 걸었던 많은 예술가, 비평가들의 바람과 달리 관계(그리고 사랑)란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 폭력을 배태하는 것이며, 정치와는 구별 된다는 점에서 모더니티의 기치를 계승하는 미술의 정치성을 사유할 수도 없는 항목이라는 것이 예증 된다. 이제 우리는 현대미술의 방법론적 헤게모니가 관계와 소통으로 이행되어 온 과정의 이면에는 해소할 수 없는 적대가 누락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명백히 적대-이것은 앞서 언급했던 예술의 대상으로서의 역사성; 역사적 모순과 일치하는 것이다-를 상대하는 미적 형식의 존재를 호출하며, 유토피아를 향한 열정에 윤리적 단서(예컨대 ‘가능한’, ‘수평적인’, ‘참여의’ 따위의)를 붙이는 시도들을 경계할 것을 주문한다. 한편 관계의 특수성이 문제적인 것은 그것이 유토피아에의 갈망을 억제하는 기제가 된다는 점 이외에도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상품과 화폐 형식을 통해 조직된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보편적인 것이자, 편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非상품으로서의 예술의 존재론을 옹호하면서 부과된, 소여의 전체성을 지양하는 일은 최소한의 특수성과 최대한의 적대(주어진 것을 모순으로서 사고 할 수 있는)를 필요로 한다.*56

“우리는 공격하고, 그 다음에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Re-Avantgarde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때로는 역사적 격변의 시기에 오염되길 주저하지 않았던 비판적 리얼리즘의 이념과, 자본주의적 발전의 과정에서 분업화, 전문화, 그리하여 자율화된 예술(가)의 역사적 지위를 고찰하며 세계로 지양되고자 했던 아방가르드의 이념, 바디우 식으로 표현하자면 주체와 실재의 대면을 긍정하고 그 대면을 새로이 형식화 시킬 수 있는-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강렬히 희구했던 적대의 인식론과 저항적인 무쓸모-무용성을 다시금 사유하고 새로운 세계가 완전히 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예술의 존재론을 구축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관계미학이 간취하려했으나 실패한 대상- 모더니티의 비판적 이성이다. 물론 아방가르드의 방법론을 여과 없이 현재의 미술적 지평에서 재현하기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명백히 아방가르드의 기치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를 느낀다.

이에 앞서 브레히트의 서사극에 대한 정의를 조명하는 것은 유용한 참조점을 제공한다. 알다시피 브레히트는 관객의 감성에 호소하는 카타르시스 효과를 연극의 본질로 제시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연극론에 맞서 비판적 이성을 고취시키는 것을 서사극의 테제로 내세운다. 그의 모델은 스펙터클을 관조하며 상품과 이미지를 소비하는 대중이 상품세계의 이데올로기를 객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갖은 형태의 국가장치와 대중매체, 인간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배치를 통해 재생산되는, 소여의 이데올로기의 폐쇄회로는 사유와 비판을 통해 지양할 수 있으며, 이는 예술형식의 구성과 배치를 통해 촉발될 수 있는 예술에 내재적인 효과이기 때문이다. 그의 “소격효과 Alienation Effect”가 온전히 발휘되는 순간은 관객이 사유에 동참하는 계기와, 세계의 확장이 실행되는 장소다. 그의 모델이 오늘날 시사하는 것은 참여와 소통을 실증적으로 매개하는 교두보로서의 위상에 대한 강박을, 예술이 가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브레히트의 서사론은 도덕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으며 관계 맺기를 강요하지도 않지만 의식의 지평에서 세계로의 참여를 매개하고 예술과 인간이 맺는 관계에 대한 명백한 윤리를 제공하고 있다. 브레히트의 예술론과 관계미학 사이의 심연은 60년대의 제도비판과 70년대 이후 ‘특수한 것’들을 알리바이로 삼는 작업양식 사이의 화해 불가능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양자의 차이는 추상의 차원에서, 예술의 가능성을 이성으로부터 규정할 것인지, 경험(체험)으로부터 규정할 것인지의 문제이자, 예술이 상대할 대상을 구조와 체계로 선정할 것인지, 표면과 형태(양식)로 선정할 것인지의 대립이기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논의는 전자에 손을 들어 줄 텐데, 이는 경험이 시장의 대상-상품이 되었다는 사실과, 이를 지양해낼 계기는 여전히 비판이 매개된 이성에 있음을 우리가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의 태도는, 한편으로 자율주의자들과도 대척점에 서 있음을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정환은 최근 그의 저서에서 벤야민의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아케이드프로젝트>를 끌어들여 이를 “주체성의 계보학이라는 관점에서 예술인간의 탄생 경향을 분석한 시도”*57라 규정하고, 이를 논거로 삼아 이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예술생산자”의 위상을 조명한다. 여기서 그의 관심은 예술가와 예술인간에 대한 구분인데, 전자가 제도적 질서에 진입한 전문가로서의 예술가라면, 후자는 신체에 내재한 역능이 발현된 고유의 능력을 지닌 행위자로서의 예술가를 뜻한다. 알다시피 스피노자로부터 들뢰즈, 네그리 등의 자율주의자들로 계승되는 정동의 유물론은 인간의 신체와 욕망자체에 공통성을 구성할 능력과 이성이 주어져 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도식은 ‘예술인간’이라는 테제에까지 전용되는 스피노자의 다중을 전유하여 그에 특권적인 정치적 주체의 위상을 부여한 네그리식 다중의 특징이다. 이는 일견 삶과 예술을 통합하고자 했던 아방가르드의 이념에 대한 철학적 표현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모든 것이 예술이라면, 인간 존재에 예술이 선험적으로 기입되어 있다면, 예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여기서 문제적인 것은, 예술의 위상을 세속화 시키고 민주화 시키겠다는 자율주의자들의 기획 자체라기보다, 변화시키고자 하는 대상의 현재적 조건을 무시하는 그들의 경향이다. 편재하는 대중문화 일반과 달리, 삶 속에서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해독할 수 있는 교육과, 각 예술 부문들에서 통용되는 규칙과 코드의 질서들을 파악할 수 있는 감식안이 요구됨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이렇게 부를 수 있다면, ‘계몽’)을 거치지 않으면 균일한 경제적 생산의 체계 내부의 여느 부문들과 그 존재론을 달리하는 예술의 특성을 논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작품을, 역사에 대해 대자적인- 이념과 형식의 모순적인 통일체로서 규정할 수 없게 됨을 뜻한다. 덧붙여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예술의 장 내부에서 제도와 비 제도의 구분은 그 문제의식이 소진된 것이다. 요컨대 제도와 비 제도의 분할을 반동적으로 무너뜨린 이들은 이미 엄격하고 진지한 모더니즘적인 예술가에 대해 경멸을 표하고,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며 예술을 공산품과 동일하게 취급해 온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다.*58 그렇게 외려 우리는 예술에 적당한 정도의 특권을 부여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최종적으로, 은밀한 차원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분할(부르주아지 대 프롤레타리아트의 변용태로서의 ‘주주 대 프레카리아트’, ‘채권자 대 채무자’ 혹은 어떤 방식으로든)이 예술에 관한 접근 가능성을 여전히 과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조건 지울진대, 이미 충만한 삶 속에 예술이 발생할 조건이 잠재되어 있다는 그의 단언은 지나친 낭만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한다. 브레히트의 모델은 그러한 공통성을 형성할 구성능력과 이성은 선험적으로 주어져있지는 않으며, 외부로부터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누군가는 그 소격효과라는 것 역시 이미 세련된 광고의 표현기법으로 자리한 사태가 오늘날의 아방가르드적 실천이 처한 난관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허나 내가 호명하고 싶은 소격효과란, 기법상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에토스에 가깝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주어진 것- 소여의 것들을 사고함에 있어 그것으로부터 모종의 긴장을 발견하는 과정이 전제되며, 그렇게 발견된 불완전성을 통해 새로운 행위의 지평을 개척할 사유체제를 현실 속으로 등록시키고 접속시키는 일. 이것이 에토스로서의 소격효과가 의미하는 바인 것이다. 문제는 다시 오늘날 자본주의의 조건으로 되돌아온다. 가능한 최소한의 공모를 통해 상기한 테제에 부합하는 미적 실천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가?

아방가르드의 전략을 계승했던 네오 아방가르드의 실천들이 외려 예술이 허용할 수 있는 외연을 확장시키며 관철 되었고, 이제는 그러한 네오 아방가르드의 시도 또한 역사적인 것이 되었다는 점과, 예술 일반을 지양하며 삶으로 예술을 되돌려 보내려 했던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기획이 오늘날 상품 미학을 통해 완벽히 실현되었다는 점, 대량 복제된 이미지들을 통해 역사적 양식들로부터 의미를 소거하고 순수한 이미지-기표의 향연을 재생시키며 키치를 재생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격이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시퀀스 이후 가해져왔다는 점, 그 에토스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아방가르드적인 것에 대한 호명은 이전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예컨대 우리는 이데올로기, 합목적성으로부터 탈주하며 우연성을 간취하려는 초현실주의의 전략, 저자성과 작품카테고리를 파괴하며 예술제도를 공박했던 다다이즘의 전략, 구제도와의 단절과 동시에 미래의 진보를 약속하는 것처럼 여겨졌던 기계와 문명을 찬양했던(그러나-이탈리아 미래파에 한해- 사회적 진보와 기술의 진보를 동일시함으로써 파시즘에 공모하는 과오를 범한) 미래파의 전략, 중앙원근법적 투시도법을 의문에 부치며 서구의 시각적 합리성과 재현체계를 재고시켰던 큐비즘의 전략, 기성 예술의 완벽한 제거를 목적에 둔 채 철저히 새로운 사회의 작동 체계 내부로 침투했던 초기 구축주의의 전략, 도시의 규칙들에 해프닝을 발생시키며 도시적 코드를 위반하고 전유했던 상황주의의 전략 중 지금 가능한 방법론을 취하거나, 이 모든 역사적 아방가르드들이 지향했던 예술에 관한 해체의 전략을 재현하는 방식으로는 현재의 전위를 작동시킬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외려 이 시점에서 가능한 아방가르드의 복권을 논하기 위한 방법은 아마도 다시 예술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예술의 해체가 아닌 예술의 존재론적 구축으로 나아감으로써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는 상징이나 유미주의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에 대한 숭배로 점철된 포스트모던의 에토스마저 초월할 ‘구축’을 의미한다. 그것은 예술의 이념으로의 복귀- 예술의 이념을 구축하는 일이 될 것이다. 랑시에르의 표현대로, “미학적 체제에서 예술의 삶은 정확히 말하자면 왕복운동하는 것, 곧 타율성에 맞서 자율성을 실행하고, 자율성에 맞서 타율성을 실행하고,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한 가지 연결에 맞서 다른 연결방식을 수행하는 것”*59이기 때문이다. 현재적 아방가르드는 이러한 맥락을 심급으로 담지한 채,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의해 수행된 예술 일반에 대한 비판과 예술과 세계; 예술과 역사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토대 위에서, 다시금 예술에 대한 세계와 역사의 상호규정성에 관한 사유 속에서, 상품미학으로부터 다시금 예술을 분리시키는 것으로부터 규정될 수 있다. 이때 상품미학으로부터 거리를 취하는 일은, 시장의 실제적인 상품화 요구에 거리를 취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후기 자본주의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작업들이 시사하듯, 기호-상징-이미지로서 소비될 가능성 또한 차단하는 것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물론 아직 미증유로 남아있다. 허나 이는 현실 속에서 형식화되기 이전에 예술가들의 인식론으로서 관철될 필요가 있는데,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이자, 토지-지대, 노동-임금”의 자본의 삼위일체가 언제나 그 모습을 빌어 나타나는 ‘상품’이라는 형식이 제거되기 이전까지, 자본에 매개된 초월적 기호-이미지들과 자본주의 자체의 내적 모순은 실제적인 차원에서 총체적인 지양을 맞이하지 않고, 그 형태를 달리하여 귀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품화에 저항하는 가능한 예술의 전략은 하나의 기표에 대응하는 기의를 최대한으로 다수화, 복수화시킴으로써 그것을 소비로부터 이탈시켜 사유로 매개하는 것(이는 상품을 사물로 전유해내기 위한 실마리가 여전히 사용가치에 존재한다는 사실과 맞닿는다), 이데올로기에 갇힐 위험을 무릅쓰고 대항기표를 생산시킴으로써 그것을 주인기표의 자리에 등극시키는 것, 때로는 기표와 기의 양자를 완전히 말소함으로써, 즉 예술을 포기함으로써 기호로 환원되지 않는 실재의 흐름(나는 이것을 혁명이라고 말하고 싶다)에 완벽히 동화되는 것- 다시 말해, 변증법적 대응으로서, 정세에 따라 예술의 자율성과 타율성을 유연하게 가동시키는 것. 예술을 옹호하되 동시에 예술을 폐기하는 제스처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을 담지하는 일. 이는 현대적 아방가르드가 상품미학과 거리를 유지할 유일한 방법일 것이고, ‘아방가르드적인 것’의 원형을 구성한다.

아방가르드의 방법론과 그들의 인식론을 해명하는 작업 속에서 뷔르거가 규명해낸 것은, 아방가르드에 의한 예술의 자기비판이 그 이전의 예술사조들을 객관적으로 분리해냄으로써 그들을 역사화 하고, 각 사조에서 사용되던 예술수단들과 기법들을 과거로부터 해방시켰으며, 이에 따라 어떤 예술사조도 미술의 장에서 특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을 재확인 시켰다는 점에 있다. 이런 상황에선 아방가르드와 비판적 리얼리즘은 나란히 병존할 수 있게 되는데, 나는 이러한 객관화 된 예술사조들의 병존을 인정하는 견지에서, 예컨대 예술은 형식 자체로 정치와 조우할 수 있다는 아도르노와 랑시에르의 모델과, 예술은 사회를 의식적으로 간취함으로써만 정치와 마주할 수 있다는 루카치와 벤야민의 모델은 더 이상 택일을 강요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견지에서 남은 논의를 전개하려 한다. 실로, ‘개혁이냐 혁명이냐(혹은 자유냐 평등이냐)’라는 질문이 발리바르의 작업을 통해 개혁과 혁명이 변증법적 전개의 두 항이며 양자를 동시에 사고해야 한다는 점이 입증되었듯*60, 그와 유사한 반향을 일으키며 수많은 형태로 변주되어온 ‘리얼리즘이냐, 아방가르드냐’라는 질문은, 예술의 자기비판 이후, 모더니티의 유산-비판적 이성을 계승한 미적형식- 즉 아방가르드적인 것이라는 측면에서 동시에 사고될 필요가 있다.
이는 곧 우리가 예술의 자율성과 예술의 타율성을 함께 고찰해야할 국면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유비하자면, 카뮈의 뫼르소의 위대한 거부는 고리키의 빠벨의 의식적 저항을 필요로 하며, 그 역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때 작품을 이념과 형식의 모순적 통일체로서 규정하는 헤겔의 예술론은 예술의 자율성과 타율성 양자를 사고할 수 있는 모델의 원형을 제공한다.*61 “본질성, 보편성, 그리고 특수성 및 그들의 화해된 통일”로서의 구체성을 획득해야하는 작품의 ‘내용’에 대한 요구는 예술이 추상성을 지양하고 현실로부터, 사회로부터 그 내용을 얻어야함을 가리키는 타율성의 모델을 제공하는 동시에, 작품은 예술가의 의식적이고도 무의식적인 방식을 통해 구성된 이념의 표현이라는 의미에서 그 자체 ‘이념과 형식’이라는 모순을 항시 가질 수밖에 없으므로 예술은 사회를 경유하지 않은 채 그 자체 이데올로기와 진리요인을 동시에 내포하는 대상으로서 정치적인 것이라는- 자율성의 모델을 제공한다. 모순을 사유하는 헤겔의 예술론은 그 수용까지도 모순적으로 구성되며, 이는 곧 모순적 관계, 적대를 사유할 공간이 이 곳에 주어져있음을 가리킨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예술론은 자기전개적 이념의 보편적 형태로서의 미적인 것이, 개별 작품들을 통해 실현되는 과정을 사유한다. 이 과정은 보편적인 것이며, 역사의 전개에 따라 지양되며 점차 변화하고 단절하며 새로이 거듭나는, 예술의 자기실현이라는 서사를 암시한다. 이는 숱한 비난을 받아온 그의 철학 일반이 갖는 모더니티의 특성이자, 다원주의에 대항하며 구축과 해방에의 믿음을 담지 할 미학의 모델로 전이되는 테제다. 아방가르드와 리얼리즘 혹은 비유기적 작품과 유기적 작품, 자율적 예술과 타율적 예술을 동시에 사고하며 적대와 구축, 유토피아적 열망을 긍정하고 이후 도래할 아방가르드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이념과 형식’의 모순적 시나리오를 견지에 둔 채, 그것을 집단성과 매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나는 이 에세이에서 제안한 모든 요구들이 어쩌면 무리한 것이라는 사실을, 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는 시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현실은 지리멸렬하고 사회와 당대성을 간취한 운동으로서의 예술은 사라졌지만, “진리의 텅빈 자리는 주체가 그곳에 도달하여 자신만의 의미를 창조해 낼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62 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면, 이는 새로운 모습의 사회와 선언, 운동과 예술이 출현할 수 있는 조건일지도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17년, 제국주의 열강 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러시아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0)레지 드브레Regis Debray, “매체론으로 본 사회주의의 역사” <뉴레프트리뷰>, 패리앤더슨 외 저, 김정한 외 역, 길, 2009, 381p.
*0.5)자크 랑시에르, “미학혁명과 그 결과” <뉴레프트리뷰>, 패리앤더슨 외 저, 김정한 외 역, 길, 2009, 467-468p.
*1)할 포스터, “동시대 미술에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위하여”, <미술 스펙터클 문화정치>, 조주연 역, 경성대학교 출판부, 2012, 261p.
*2)서동진, <손의 귀환 혹은 유령화된 손: 경제의 탈물질화, 노동의 심미화>, 2013. http://www.homopop.org/log/?p=322 이 글은 2013년 ‘일상 미학 연구소’의 주최로 열린 <손의 문화: 호모 파베르의 귀환-(현대예술에서의 손 작업: 손의 정신화/ 비물질화와 창조성의 신화)> 강연을 위해 노트로 작성 된 것이다. 알다시피 서동진은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정치경제학 비판의 관점-을 고수하며 문화와 자본주의의 관계와 그 전개에 가장 명민하게 대응해 온 학자 중 한명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의 주저를 참고하라.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돌베개, 2009.;<변증법의 낮잠>, 꾸리에, 2014. 다음의 에세이와 논문들도 참고. 서동진, “감성팔이 혹은 물화된 정동: 감정과 체험의 유물론을 위하여”, 2016. /“역사유물론과 문화연구: ‘시대구분’이라는 방법”, 2015./“우울한 가족: 금융화된 세계에서의 가족과 정동”, 2015. /“세대론의 시좌”, 2015. / “을질하는 자들의 이데올로기적인 미망(迷妄): 문화비평의 윤리를 생각하며”, 말과 활, 2015. /”착취의 회계학: 금융화와 일상생활 속의 신용물신주의”, 맑스코뮤날레 자료집, 2015.
*3)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알프레드 존-레텔Alfred Sohn-Rethel,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황태연, 윤길순 역, 학민사, 1986.
*4)미하일 바흐찐, <예술과 책임>, 최건영 역, 뿔, 2011, 118p. 의미와 의의의 분리, 삶의 세계와 문화의 세계의 분리, 예술과 생활의 분리에 맞서, 바흐찐은 집요할만큼 이러한 분할을 상쇄할 철학을 구축한다. 흥미롭게도 이 책에서의 바흐찐은 그러한 작업을 수행하며, 오늘날 바디우나 지젝과 같은 이들에 의해서 재호명 되고 있는 레닌주의의 특징을 공유한다. 예컨대 본문 20페이지에서 바흐찐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 두 개의 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실현 과정 속의 존재라고 하는 유일의 사건뿐이므로, 이론적인 것과 미적인 것은 모두 이 사건을 구성하는 요인으로 정의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더 이상 이론적 용어나 혹은 미적인 용어가 아닌 상태로 정의 되어야 한다…행동은 단독의 지평을 찾아내야 한다.” 사건으로서의 “행위”를 “단독의 지평을 찾아내야 하는 것”으로서 정의하는 그의 시도는 <레닌 재장전: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에서 바디우가 레닌주의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특수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국면을 매개하는 것으로서의 “이론”과 거울상을 이룬다. 예술과 생활을 “책임의 통일 속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제시한 테제 또한 삶과 예술을 통합하려했던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테제와 공명한다. <예술과 책임>이 1919년에 러시아에서 발표되었음을 감안한다면, 레닌주의와 아방가르드의 특징에 대한 이러한 바흐찐의 사후적인 공명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외 저, <레닌 재장전: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 이현우, 이재연 외 역, 2010.
*5)이때의 ‘미적인 것’이란 고대 그리스 조각상에서 느껴지는 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근대의 여명기에 자본주의적 변화를 징후적으로 체현하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일종으로서 제시된 칸트적 의미의 미를 가리킨다. 할 포스터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가장 광범위한 사례로 계몽의 프로그램을 꼽아보자. 이 프로그램은 인간의 자연권, 국민주권에 관한 것이었고, 공화국에 관한 것이었으며, 모든 이해관계에 “열려 있는” 공론장과 모든 갈등 “위에 있는” 국가에 관한 것이었다. 보편적 대변이라는 이 프로젝트는 귀족정치, 군주제, 교회의 특수한 이해관계에 대한 저항으로 구상되었다…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대화적인, 표리부동한 본성은 “공론장”의 운명에서 가장 명백하다. 공론장도 앙샹 레짐*의 밀실 정책들에 반대하면서 자유 발언과 공개 논쟁의 영역으로 구상된 것이다. 이 자유 교제의 영역은 대체로 “자유 기업”의 이데올로기적 표지였다…(이와 연관된 방식으로, 미적 판단은 주관적이지만 보편적으로 타당하다는 부르주아적 정의도 역시 객관적인 규칙들과 규범들에 바탕을 둔 앙샹 레짐 시대 문화의 엘리트주의적 표명에 반대해서 제기되었던 것이다…)“ 할포스터(2012), 같은 책. 290~291p.
*[l’ancien régime: 불어로 구제도; 구체제를 뜻하나, 인용문에선 1789년 프랑스 혁명이전의 구체제를 뜻함: 인용자 주]
*6)서동진, “물신주의와 그 이후”, 말과활 기획 세미나, 2015.
*7)페터 뷔르거, <아방가르드의 이론(Theorie der Avantgarde)>,(Frankfurt a. M.,1974), 최성만 역, 지만지, 2013. 119-126p.
*8)자크 랑시에르, “미학혁명과 그 결과”, 2009, 481-482p.
*9)월간 <문화공간> 09월호, 2015.
*10)Theodor W. Adorno , translated by E.B.Ashton, The seabury press, New york, 1976. 여기서 아도르노는 특정한 시기의 예술적 상태와 당대의 재료적 상태를 종합하는 ‘기술’은 의식의 변화양상에 따라 그 양태를 마찬가지로 변화시키며, 기술을 통해 완성된 예술작품은 매 시각 변화하는 “재료적 상태”와 “예술적 상태”의 모순적인 통일체라는 주장을 펼친다. 헤겔을 전유한 마르크스에게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특정한 사회형태를 결정짓고, 특정한 사회적 조건에서의 주체의 발생적 계기를 규정하는 것이었다면, 아도르노는 마르크스의 논의를 전유하여 구성으로서의 모순을 예술작품의 양태에도 마찬가지로 대입하여 사고하며 생산력에 조응하는 예술적 처리방식들과 생산관계에 조응하는 재료 사이의 관계가 기술을 통해 종합되어 작품이 도달하는 새로운 재료의 상태를 산출하기에, 예술은 근본적으로 세계의 경험적 요인들과 역사를 연속적으로 취해온 것이라 간주하는 셈이다. 한편 벤야민은 헤겔을 전유한 마르크스의 모델-“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예술의 전개과정에 접목시켜 아도르노와는 또 다른 유물론적 예술론의 모델을 구상한다. 그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복제기술의 출현이 야기한 아우라의 파괴 이후 예술의 존재론적 단절을 “예술의 정치화”(반면 그는 “정치의 예술화”를 주장하기도 한다)로 파악하며 기술의 발전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에 특권을 부여한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페터 뷔르거(2013), 같은 책. 70-72p. 아도르노의 위와 같은 구상은 예술적 합리성의 토대가 되는 예술적 가상의 조건이 되는 미메시스(경험적 현실의 요소들을 모사하는 동시에 경험적 현실을 넘어서는 요인이 되는)에 대한 인과를 구성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지만(문병호, <아도르노의 사회이론과 예술이론>, 문학과 지성사, 1993, 132-135p 참조.), 현재의 변화된 생산양식의 양태-상품의 미학화, 미학의 상품화-를 그 자신들의 예술적 실천의 조건으로 간주하는 예술가들을 통해 다소 섬뜩하게 확증된다. 한편 이러한 생산양식의 조건변화가 예술의 양태를 규정하는 명백한 역사적 사례로는 전후 대량생산 문화에 조응하는 60년대의 미니멀리즘과 팝아트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1)페터 뷔르거, 같은책, 56p.
*12)레나토 포지올리, <아방가르드 예술론>, 문예출판사, 1996. 61p.
*13)페터 뷔르거, 같은 곳.
*14)칼 마르크스, <자본1-1> 강신준 역, 길, 2008, 134-135p.
*15)주정립,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있어 물신주의 비판”, 철학사상 45호, 2011.
*16)T.아도르노, <사회학 논문집>, 13-14p. 문병호, <아도르노의 사회이론과 예술이론>, 문학과지성사, 1993. 104p에서 재인용.
*17)이러한 도식은 전적으로 다음의 서동진의 논의에 빚지고 있다. 서동진, “노동하는 예술, 투쟁하는 예술”, 2014.
*18)Theodor W. Adorno, , Newly translated, edited, and with a translator’s introduction by Robert Hullot-Kentor, 2013, 128p. 정치경제학 비판의 견지에서 예술노동에 관한 담론을 비판할 때, 이는 인간의 삶을 재생산하고 물질대사를 갱신시켜내는 활동 일반으로서의 노동을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적이고 낭만적인 주장이 아니라, 노동을 급진화하는 것과 예술을 급진화하는 것은 그 방식자체가 상이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작업에 가까울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실업에 관한 논의로서 규정하며 노동이 그 자신을 대표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경유해야할 소급점을 사회학적 노동의 외부에 놓인 실업 자체에서 발견하고 노동의 정치를 복원, 갱신 시킬 것을 주장하는 일과, 예술은 노동이 아니라는 점을 강변하는 일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며, 외려 사회주의적 기획으로서 교차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서동진, <변증법의 낮잠: 적대와 정치>, 꾸리에, 2014, 116-141p.
*19)게오르그 루카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홍승용 역, 실천문학사, 85-86p.
*20)나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특이점을 가리키기 위해, 본래는 국가론적 의미에서 사용되었던 이 개념을 칼 슈미트Carl Schmitt에게서 빌려왔다.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는 슈미트의 테제를 예술의 맥락에 전용하면, “정치란 (예술의)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로 재정식화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미술의 흐름에 한하면, 80년대의 민중미술이 그 드문 예외상태의 사례가 될 것이다.
*21)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Jacques Derrida, <Structure, Sign and Play in the Discourse of the Human Sciences>, 1966, as printed/translated by Macksey & Donato (1970). /Roland Barthes, <S/Z>, translated by Richard Miller, New York: Hill and Wang , 1974. 물론 우리는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성을 역설한 최초의 징후를 벤야민의 알레고리Allegory로부터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벤야민의 알레고리가 상징에 대비되어 맥락적인 것, 즉 일시적인 “성좌”-해석을 기다리는 대상으로서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면, 포스트 구조주의의 텍스트성은 데리다의 표현대로 “기표의 무한한 연쇄작용”에서 연원한 것으로서, 끝내 의미 자체의 지양과 기호의 불안정성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양자는 엄연히 구별된다. 달리말해 알레고리는 상징의 균열을 통해 의미를 재구축하는 데에 집중한다면, 포스트 구조주의의 텍스트성은 해체와 기표의 물신화로 이어진다. 전자가 모더니즘적이라면, 후자는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것의 조건이 된다. 어떤 측면에서 포스트 구조주의의 언어론은 벤야민의 알레고리 도식을 단순히 극단화한 결과로 여겨지나, 그보단 이러한 “새로운 종류의 텍스트성”의 발생을 후기 자본주의의 추상화 과정의 필연적 결과로 사고하는 제임슨의 작업을 참조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논문을 참고하라. Fredric Jameson, “Periodizing the 60s,” in , ed. S. Sayres, A. Stephanson,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4)
*22)이는 국산품사용 장려운동이 더 이상 내수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수단으로서 제안될 수 없게 된 배경과도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서양의 상품으로부터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단면과 부르주아의 향락을 발견하고 국산 담배를 피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되었는데, 까닭인즉 국내 상장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주식점유율은 90년대 이후로 산업 각 부문에서 대부분 60%를 웃도는 수준에서 증가하는 중이며,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와 노동력 또한 제 3세계에서 공수하는 것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 영향과 시사점”, Hana Issue & Focus, 2006.
*23)이윤엽, 나규환, 전미영 등을 비롯한 ‘파견미술팀’을 비롯한 일부 예외적인 사례는 논외로 한다.
*24)Theodor W. Adorno, 2013, 179p. 물론 아도르노가 작품의 요소 내지 부분들이 전체로 소급되지 않으며 단일한 의미-이데올로기-로 환원되지 않는 형식적 구성으로서의 아방가르드 예술으로부터 자본주의적 전체성을 온전히 인식할 계기를 발견했다는 사실과, 예술작품을 본질적으로 형식의 측면에서 정의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가 리얼리즘에서 진리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정론이나, 어떤 측면에선 오늘날 리얼리즘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데에 유용한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알다시피 페터 뷔르거Peter Bürger는 <아방가르드의 이론>에서 리얼리즘과 아방가르드, 즉 “유기적 예술작품”과 “비유기적 예술작품”의 형식 각각에 특권을 부여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루카치와 아도르노를 꼽고 있으며, 양자의 한계를 ‘형식적 측면에서 각 사조가 지니는 특징에 집중하는’ 이론적 경향으로 인해 예술제도의 역할을 등한시 한다는 점에서 찾는다. 뷔르거의 작업은 여전히 아방가르드의 비판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탁월하다.
*25)할 포스터, “문화적 저항으로서의 독해”, 2012, 310p.
*26)Theodor W. Adorno, , 2013, 340p.
*27)T.아도르노|M.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문학과 지성사, 2001, 84p.
*28)할 포스터, “모더니즘과 미디어 사이”, 2012, 80p.
*29)한편 뷔르거와는 달리 포지올리와 홉스봄은 아방가르드의 특징으로 자율성의 모델을 강조함으로써 타율성의 모델을 놓치는 경향이 있다. 양자를 절충하며 모더니티 자체로부터 이러한 아방가르드의 양가성의 기원을 탐구하는 작업으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마테이 칼리니쿠스, <모더니티의 다섯 얼굴>, 이영욱 외 역, 시각과 언어, 1998.
*30)프레드릭 제임슨, “단독성의 미학”, 박진철 역, 문학과 사회 117호, 2017.
*31)Olinde Rodrigues, “L’artiste, le, savant et l’industriel: Dialogue”(1825), Matei Calinescu Five Faces of Modernity: Modernism, Avant-Garde, Decadence, Kitsch, Postmodernism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987), 103p.에서 재인용.
*32)레나토 포지올리, <아방가르드 예술론>, 문예출판사, 1996. 41-42p.
*33)“Entretien avec D. Trombadori”, in Dits et écrits, vol. II, Gallimard, 2001(“Quarto”); <푸코의 맑스>, 이승철 옮김, 갈무리, 2000. 진태원, “정치적 주체화란 무엇인가?” <진보평론>제 63호, 2015.에서 재인용.
*34)에릭 홉스봄, <아방가르드의 쇠퇴와 몰락>, 양승희 역, 조형교육, 2001.
*35)서동진, “신자유주의와 미술의 검은 무도회에서 퇴장하기 위한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2008.
_“미술이거나 금융이거나: 미술의 금융화와 그것의 미학적 논리”, 2013.
_”포스트-스펙터클 시대의 미술의 문화적 논리: 금융자본주의 혹은 미술의 금융화”, 진보평론 42호, 2009.
*36)임근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청년관’을 요구한다: 좀비-모던의 위기 상황과 인식, 그리고 해법>, 2015.
http://pds27.egloos.com/pds/201501/26/85/SAVE_THE_MUSEUM_FOR_YOUNG_GENERATION.pdf 그는 여기서 ‘청년관’을 신설할 것을 주장하며 그 알리바이로서 다음의 근거를 제시한 바 있다. “…오늘의 현대미술관 제도엔 복잡한 문제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미술관의 난립과 초대형화 현상이 그것이다…게다가 작품 가격이 황당한 수준으로 올랐기 때문에, 자력으로 소신껏 작품을 선별 구매할 수 있는 미술관은 존재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는 다음의 글을 참고하라. 정강산, <예술가들이여, 추상에서 규정으로 전화하라- 핌피현상으로서의 청년관을 비판하며>, 집단오찬, 2015. 다음의 칼럼도 참고. 임근준, “오늘의 미술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시민과 세계 23호> 2013. 임근준은 여기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1990년대 이후 미술 창작이 대형 프로젝트화되고 담론적 장소성을 탐구하게 되면서, ‘뉴 프로덕션’을 주도하는 미술관의 기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1990년대 중반 이래 현대미술관은 신축과 증축을 통해 초대형으로 진화했는데, 또 (그 자체로 브랜드 이미지가 되는) 괴상한 모양의 최첨단 건축 디자인을 추구하는 게 유행이었으므로 전시 공간은 거대한 백색의 미궁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그의 사고방식은 많은 경우 징후적이며 우리 시대의 미적 정치의 난관 혹은 아포리아를 체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별할 필요가 있다.
*37)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Claire Bishop, , Walther Konig, Cologne, 2014. 비숍이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전시공간의 존재론을 본격적으로 성찰한 것은 이 저서를 통해서이지만, 그는 이 책을 발표하기 전부터 다양한 지면을 통해 작품과 전시공간의 대형화 경향을 지적해왔다.
*38)이는 객관적인 미술 시장의 양태를 떠올려 봐도 명백하다. 일전에 나는 한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미술시장은 2008년의 여파가 무색할 정도로 그 크기가 비대해지고 있으며, 전체적인 시장의 거래양태는 고가의 작품유통에서 중저가 작품들의 유통으로 대체되는 과정에 있다. 2008년 이후 붕괴되었다고 가정된 미술시장은 외려 전략을 바꿔 다시금 효과적인 상품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작품의 스케일이 동시대 미술의 아포리아에 대한 문제설정을 적절히 구성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반례일 것이다. 상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하라. 정강산, <예술가들이여, 미적형식에 관한 물신을 거부하라- “좀비-모던”담론을 비판하며>, 크리틱칼, 2015. http://www.critic-al.org/
*39)서동진, “사물의 유물론: 모리스의 공장” 역사유물론 오디세이 강연노트 3, 2016.

사물의 유물론: 모리스의 공장(역사유물론 오디세이 강의노트 3)


*40)서동진, “자본의 전당, 미술의 전당,” 2012.
*41)사실 대지미술Land Art과 장소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을 명쾌하게 구분짓기란 까다롭다. 양자의 차이는 각 개념의 발단이 다소의 시간차를 두고, 각기 다른 인물들과 작업들을 통해서 나타났다는 점과 미적 지향의 맥락에서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 이외에는 없을 정도로 경미하다. 로버트 스미스슨을 비롯한 일군의 작가들이 1968년 뉴욕의 한 화랑에서 기획한 “Earth Works”라는 전시에서 대지 미술이라는 용어가 파생되었고, 로이드 함롤Lloyd Hamrol과 아테나 타차Athena Tacha에 의해 장소특정적 미술이라는 용법이 70년대 중반부터 사용되었으며 이후 여러 비평가들과 예술가들에 의해 정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적 경향의 차이를 언급하자면, 대지미술은 문자 그대로 거대한 스케일의 ‘자연적 풍경’에서 이뤄지는 배경적인 작업이며, 그 자체 장소 특정성을 내포하고 있는 반면, 장소특정적 미술은 자연공간에 국한 되지 않는- 작업이 공간 자체와 맺는 관계에 대한 관심과 탐구에 집중하며 도시적 공간 혹은 갤러리 내부의 공간에서까지도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다시말해, 전자의 미적 귀결이 대게 숭고미를 지향하는 반 화이트큐브적 맥락이 강하다면, 후자는 대지미술이 가졌던 제도적 측면에 대한 인식에 애매한 태도를 보이며 순수한 공간적 맥락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본문에서 장소특정적 미술에 대한 언급은 작품이 갖는 실제적인 효과의 측면이 아닌 추상의 차원에 집중하여 이뤄지고 있다.
*42)포스트모더니즘의 기원을 헤게모니국가로서의 미국의 자본축적의 변화와 관련하여 파악하는 이러한 도식은 제임슨의 논의에 빚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Anders Stephanson and Fredric Jameson, in Social Text, No21, Universal Abandon? The Politics of Postmodernism, 1989, 3-30p.
*43)니꼴라 부리요, <관계의 미학>, 현지연 역, 미진사, 2011, 79-80p.
*44)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and Consumer Society”, The Anti- Aesthetics: Essays on Postmodern Culture(ed. Hal Foster), 1983, 125p.
*45)“환상을 횡단하기”라는 라캉의 테제가 자본주의에 대해 실행될 수 있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자체의 주어진 것- 소여의 재생산 기제들이 완전히 파괴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재생산 기제란 상품, 화폐, 노동이라 볼 수 있을 텐데, 실제 역사속에서 이것이 파괴되고 균일한 것으로 여겨졌던 체제의 균열이 드러나는 순간은 ‘공황’이다. 실로 모든 소여의 예측과 수식, 경제적 이론, 이데올로기들로부터 자유로운, 라캉적 의미에서의 “실재”, 바디우적 의미에서 “사건”인 세계의 민낯, 그 이전까지의 충만함과 작동들이 환상이었던 것으로 규명되는 찰나의 무無의 공간은 모든 화폐가치가 폭락하고, 상품이 폐기처분되고, 노동자와 자본가가 실업자가 되는- 공황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러한 공황은 자본주의 자체의 항상적인 조건으로 여겨질 만큼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것이고, 그 때마다 자본주의는 다시금 그 텅빈 공허의 상태를 새로운 형식의 동일한 원리로 재구성해왔다는 것이다. 요컨대 마이클하트의 지적대로, 2008년 이후로 좌파들이 깨닫게 된 것은 객관적 위기와 주체적 위기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해왔다는 진실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은, 과연 실재와 사건이 도래한 순간을 기다리며 이미 발생했던 그것들을 사후적으로 식별하는 것만으로 인간의 역할이 규정되어도 충분하겠냐는 것이다. 라캉의 실재, 바디우의 사건은 실상 은총과도 같은 찰나의 것이고, 그것을 마주하는 일은 해체의 방법론에 기대고 있지만, 현실은 사실 그 자체로 다가오는 일 없이- 언제나 이데올로기를 통해 매개되어 현상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외려 대항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것, 해체에 이은 “사건”이후의, 혹은 실재의 도래 이전의 가능한 실천들을 지탱할 구축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견지에선, 실증주의적 경향이 있는 정치경제학의 제문제들 또한 기술적 합리성으로 간단히 치부할 수 없으며, 실재-사건-진리의 항과 이데올로기의 항을 동시에 사고해야만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는 한편으로 물신주의 비판의 마르크스와 정치경제학의 마르크스 양자를 동시에 사고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6)샹탈무페, “급진적 민주주의”; 앤드류로스 외, <포스트모던의 문화.정치>, 배병인 외 역, 민글, 1993, 275, 278p.
*47)이에 관해선 다음을 참고하라. 니꼴라 부리요, <포스트 프로덕션>, 정연심/손부경 역, 그레파이트 온 핑크, 2016. 여기서 부리오는 오늘날의 예술이 생산되는 과정이 점차 “공유”의 형상을 띠고 있다고 말한다: “19세기 초반부터, 점차 많은 예술 작품들이 이미 존재하는 작품들에 기반 하여 제작되어왔다. 예술가들은 점점 더 번역하고, 재생산하고, 재전시하며, 혹은 다른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들이나 이용가능한 문화적 생산물들을 이용한다…그들 자신의 작업을 다른 이들의 그것에 끼워 넣는 이 예술가들은 생산과 소비, 창작과 모방, 공산품readymade과 원본 작품사이의 전통적인 구분을 제거하는데 기여한다. 그들이 조정하는 물질적인 것들은 더 이상 사적이지 않다.” 허나 이러한 진단은 과도한 낙관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중요한 오해를 담지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정보와 지식, 문화적 생산물들이 사회적으로, 공통적이고 집단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유사이래 모든 종류의 생산에 내재된 진실이었다. 하지만 사적소유-자본축적에 필수적인 노동력의 자유로운 운용을 위해 형성된 이데올로기(예컨대 우리는 부르주아 사회의 발생과 조응하는 근대의 여명기를 규정했던 ‘사회계약론자’들의 재산권에 대한 논의, 막스 베버적 견지에서 본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 신수설 등을 통해 이를 확인 할 수 있다)-는 여전히 재산권과 상속권 등을 통해 형식화 된다. 곧 자본주의에 내재한 적대를 제거 하기 이전까지 공유의 징후를 읽어낸다는 것은 곧 넌센스다. 한편 부리오의 <포스트 프로덕션>에서 제기되는 핵심적인 논의는 일찍이 <제국>에서부터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 등이 주장해온 “공통적인 것”에 관한 논의를 단지 예술작품의 생산에 대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첨언 하자면, 포스트 프로덕션은 혼성모방 또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존재하는 문화적 대상들을 절개하고 채집하여 재구성하는 [부리오의](재)생산공정은 일찍이 역사적 양식들의 재현법과 규범들을 뒤섞는- 그리하여 작품과 작품해석으로부터 “깊이”를 제거하고 역사감각의 부재를 증언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48)서동진, <변증법의 낮잠>, 꾸리에, 2014, 84p.
*49)모순의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한에서 차이의 정치의 소급점은 작년 말 문화예술계를 둘러싼 성폭력논란에서 보여지듯, 정치에서는 성토, 고백, 폭로라는 천편일률적으로 원자화된, 철저히 계약화된 관계를 지향하는 비운동적 전체주의로, 예술에서는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구성된 타자를 재현하거나 혼성모방으로 역사를 지우고 순수한 표면의 차이에 집중하는 양상으로 귀결된다. 예컨대 누구나 여성이라는 타자의 형상을, 약자이자 비인간이며, 비 세계에 갖힌 여성의 형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허나 여성이 그러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순간, 그러한 여성상은 정확히 강자로서의 여성, 인간으로서의 여성, 세계일반에 사는 여성이라는 형상을 부정하고 배제한다. 이는 정체성의 정치가 근거하는 정치의 모델에 항상적으로 내재하는 위험요인으로서, 지배에 의해 구성된 임시적인 자리로 배치된 소수자가 아닌, 선험적인 약자로서의 타자의 형상을 강박적으로 호출한다. 이러한 반 정치적인 시도들은 약자와 피해자를 구제하는 도덕-(반)윤리적인 기치를 가지고 그 기준치에 미달하는 이들을 심판하고 그 자신의 반 윤리를 설파하며, 모자이크 처리되고 음성변조된 육성으로 자신이 입은 피해사실을 폭로하는 이들을 향해 연민을 표하고, 잠재적 가해자들로부터 결격사유를 뒤지고, 라캉적 의미에서 팔루스phallus-남근의 호명을 통해 ‘약자’로 나타나 부과된 힘의 차이를 승인하고 그에 기생하는-남근적인 여성들과 남성들을 향한 비판을 봉쇄함으로써 지배를 공고히 만든다. 폭로와 고백은 여성들의 주체적인 힘을 통해 수행되는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여성의 생물학적 결여, 미달을 기정사실로서 인정하는 몸짓을 취한다는 점에서 이미 남근에 매개된 방법론이다.
*50)니콜라 부리오, “불확실한 해석들: 자크 랑시에르의 미술과 정치에 대한 답변”, podopodo net 역, 2010.
*51)홍성민, “관계의 미학과 퍼포머티비티”; 김성원/김종길 외, <한권의 책, 여덟가지 시선> 경기문화재단 경기도 미술관, 2012, 17p.
*52)Jean-Francois Lyotard, , Minneapolis: Univ. of Minnesota Press, 1984, 81-82p.
*53)이러한 착상은 다음의 에세이에서 인용된 아도르노에 관한 문단에 기대고 있다. 서동진, “을질하는 자들의 이데올로기적인 미망(迷妄): 문화비평의 윤리를 생각하며”, 말과활, 2015. 서동진은 한명의 구체적인 개인에게 가해지는 도덕적인 명사비판이 지닌 한계를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경유하며 지적하고, 그 보론으로 아도르노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쓴다. “아도르노의 접근은 한마디로 주체는 객체라는 것이다. 내가 어떤 윤리적, 미학적인 태도를 통해 세계를 비난하려고 할 때 그것은 주체와 객체의 분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를 온전하게 수락하고 승인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러한 조건을 인정하면서 비롯된 비판은 언제나 불완전한 비판일 뿐 아니라 그릇된 비판이라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주체란 언제나 객관적인 사회관계에 의해 매개되어 있다는 것을 유념하도록 경고한다”.
*54)자크 랑시에르, <불화: 정치와 철학>, 진태원 역, 길, 2015. 30p, 43p, 103-104p. 한편 랑시에르의 모델이 가진 한계에 대한 가장 생산적인 비판은, 철저한 정치의 자율성을 주장함으로써 적대가 발생하는 원인으로서의 생산관계와, 정치의 대상으로서의 사회적인 것의 표상을 사고할 공간이 부재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작업으로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서동진, “달아나는 사회, 그리고 사회-주의 이후의 정치”, 말과 활 2호, 2013/ “반(anti)-비(in)-미학(aesthetics): 랑시에르의 미학주의적 기획의 한계”, 2017). 그리고 랑시에르의 자율적인 감성학(미학)에 대한 비판 역시 마찬가지로 이뤄질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그의 모델을 따를 경우, 제도와 사회가 작품에 부여하는 효과와 규정성을 사고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랑시에르의 방법론적 한계에 대한 포괄적인 개론으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진태원, “정치적 주체화란 무엇인가?”, 진보평론 63호, 2015.
*55)알랭바디우, <사랑 예찬>, 조재룡 역, 길, 2010. 70p, 88-89p.
*56)부리오의 관계미학으로부터 적대의 누락을 발견하고 산티아고 시에라와 허쉬혼 등의 작업에서 감지되는 “관계적 적대”를 재조명하는 비평적 작업으로서는 다음의 클레어 비숍의 에세이를 참고하라. Claire Bishop, “Antagonism and Relational Aesthetics”, October Magazine, 2004. 51-79p. 비숍은 이 비평문에서 관계미학과 “경험경제”와의 공모 가능성을 조심스레 언급하는데, 사실 관계미학에 대한 밀도 있는 그녀의 비판 보다 흥미로운 것은 다음의 문장들이다. “누군간 이러한 맥락에서, 과정적 작업에 기반한 프로젝트와 레지던스의 예술가들은 상품과 서비스를 설계되고 무대화된 개인적 경험들로 대체하려는 마케팅 전략으로서의 “경험경제”와 조응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52p) 혹은 “관계의 미학은 상품경제에서 서비스 기반 경제로의 변동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으로 보인다.”(54p)
*57)조정환, <예술인간의 탄생>, 갈무리, 2015. 13p.
*58)포스트 모더니즘의 맥락에서,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테제는 혼성모방과 장르간의 혼합, 역사적 형식들의 (가벼운)재사용으로 나타났으며, 예술을 공산품으로 취급하는 실천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역사적인 이데올로기에 조소어린 비판을 보내기보다는 외려 제도를 희구하며, 60년대의 팝아트에서 이미 감지되는바, 키치로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테제와 실천들은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테제와도, 뒤샹식의 실천과도 구분되는 것임을 지적 할 필요가 있다.
*59)자크 랑시에르, “미학혁명과 그 결과”, 2009. 492p.
*60)에티엔 발리바르,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 평등과 자유의 근대적 변증법”, 도미니크 르쿠르 외, <맑스주의의 역사>, 윤소영 역, 민맥, 1992.
*61)G.헤겔, <미학강의- 베를린, 1820/21년>, 서정혁 역, 지만지, 2013.
*62)백상현, “라캉과 바디우, 참아야하는 정체성의 가벼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