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산_예술가들이여, 미적 형식에 대한 물신을 거부하라- ‘좀비-모던’ 담론을 비판하며

순수한 형식이라는 환상

알다시피 약 18세기 이전까지 정태적인 것으로서 과거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해왔던 미학과 예술은, 자본주의적 삶의 양태의 확산에 이은 자본의 필연적 전화로서의 제국주의 전쟁 1차 대전 전후로 그 존재론을 새로이 구성하게 되고, 단편화라는 기치 아래 아름다움 일반으로부터 탈주하여 단절과 불편함, 충격 등을 그 기반으로 삼았다. 미래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상황주의, 플럭서스 등으로 이어지는 아방가르드의 흐름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각 사조의 문제설정은 각기 차이가 있는 것이었지만, 지독하리만치 생생하게 다가온 세계의 모순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며, 그것을 비판하고, 변화하는 세계와 연계된 당대성의 발굴을 위해 과거의 예술을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기꺼이 규정하길 마다하지 않는 동시에, 타협할 수 없는 세계관이 각축하는 장으로 예술을 호명하려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들이 모두 동일한 시간적 공간을 공유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들은 그 자신의 작업을 정치적 실천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으며, 구체적인 지양의 대상을 지닌 채 당파적이고도 집단적으로 자신들을 주체화 시켰다.

20세기 초반부터 1960년대 중후반에 이르는 그 시기는 예술가들의 선언문이 난무하고 미적당파성이라고 할 법한 것이 부흥한 기간인 동시에, ‘전위’로서의 아방가르드의 시대였으며1) 예술의 범주에 한정시켜보자면 오늘날 우리가 ‘모더니즘’이라 일컫는 시간축의 핵심을 이루는 시기였다.2) 예술, 특히 미술에서의 모더니티는 바로 이와 같은 이념적 지향으로부터 규정되는 것인데, 미학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미적형식의 발굴현장으로 그 의미를 전환한 것 또한, 위와 같은 당파성과 정치적 의미를 배제하고서는 논할 수가 없다. 예컨대 그들은 인간에게 새로운 자유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계의 웅장함, 전쟁이 만들어낸 참상, 자본주의의 경제적 합리성과 제도 미술이 가진 위계, 인간을 원자화 시키고 파편화 시키는 스펙터클로서의 이미지 등에 예술가로서 정치적으로 개입하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형식적 새로움에 대한 미학의 강박은 정치적 투쟁의 산물이자 이념적 지향의 결과였다. 한편 이는 거대한 미술사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이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작업의 구성이나 해석에 관해서는 정치적일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포스트 모더니즘적 상대주의의 경향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미적실천으로서 작업의 형식과 비평의 형식의 측면에서는 강박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는, 전도된 믿음을 통해 드러난다.

이러한 믿음은, ‘정치적 당파성’은 과거 모더니즘 예술이 지녔던- 지금은 시효가 지난 유물이지만, 미적 형식의 갱신은 여전히 미술의 중심적인 주제라 가정하는, 분리 불가능한 것을 분리하여 보는 도착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 도착적 사고란 달리말해 정치적인 것(당파성; 내용)과 미적인 것(형식)이 분리되어, 내용에 앞서는 형식이 예술일반을 규정하게 된 상황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관념이다. 이것은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의 시효가 끝났다고 의기양양하게 주장하는 몇몇 평론가들의 삼류 미래학적인 점괘를 비웃듯 여전히 미술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3), 과거의 세계를 거부하기 위해 새로움을 추구했던 아방가르드 예술의 맥락과는 무관하게, 말 그대로 작가의 창의성과 재치를 뽐내는 장, 즉 내용 없는 순수한 형식으로 환원된 미술의 현주소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둘 중 어느 경우이든 그 함의는 동일하다. 작금의 상황에서 새로운 형식의 발굴로서의 미학을 고집하는 것은 일종의 텅 빈 기표에 대한 집착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 함의다. 나는 이를 형식에 대한 물신이라고 규정하고 싶은데, 이 ‘형식물신’은 현실 속에서 으레 심미주의적 경향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며, 대단히 실패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좀비-모던’의 가정, 2008년의 의미

필자는 여기서 임근준의 사례를 심미주의적 경향의 대표적 경우로서 조명하고자 한다. 그는 최근 좀비-모던이라는 개념을 개진하며 2008년 이후로 우리가 그 전과는 다른 시공간적 지평으로 이동해왔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북미를 중심으로 생산되는 한 회화적 양식을 들어, 그것을 인터넷과 결합한 정보통신기술의 보급으로 ‘오늘’의 개념이 쪼그라든 시대아닌 시대의 시각성을 구현한 좀비-모던의 추상회화, ‘포스트-레트로 회화’라 명명하고, 해당 작업이 그가 평소에 주장하던 좀비모던의 맥락아래 있는 새로운 작업적 경향이라는 주장을 한다. 즉 모던과 단절된 좀비-모던이라 할법한 시대에 우리가 진입했고, 그에 따라 이른바 ‘기대감소’를 징후적으로 체현한 새로운 미적조류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며 그 근거는 2008년의 금융위기라는 것이다.

“…좀비-모던의 시각성은 디자인 업계의 존재 조건 변화와는 다소 다른 차원의 이야기지만, 결국 같은 시대 변화를 다른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다고, 일단 두루뭉술하게 말해볼 수 있겠네요. 좀비-모던의 시대는 새로워 뵈지 않지만 완전히 새로운 시대입니다. 비평 담론 차원에서만 보자면, 1970년대 중후반에 대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의식이 유지해온 당대성(comtemporaneity)의 시대가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를 전후로 막을 내렸으니, 그 이후의 시대를 호명하고 분석하려는 시도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4) (강조는 인용자)
“…20세기의 핵심이 “새로운 것의 충격”에 있었다면, 21세기의 특징은 “오래된 것의 충격”에 있다. 지속적으로 20세기에 이뤄졌던 성취를 재발견하고 재구성하고 그 힘에 놀라는 일이 반복되고 있고, 이는 2010년대 특유의 ‘무시간성’을 야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오늘’의 동적 공간은 유래 없이 좁아지고 있다. 이제 대다수의 사람에게 허락된 ‘오늘’은 소비 활동을 위한 시공-많은 경우 레디메이드 경험을 입력시켜 놓은 정크스페이스에서 구현되는-에 불과하다…(중략)…더 흥미로운 ‘그럴듯한 것’은, 2D를 입체로 인지하고 3D를 다시 이미지로 인식하게 되는 오늘의 시각 인지적 림보에 화답하는 회화적 입체나 입체적 회화의 경향이다.“5) (중략, 강조는 인용자)

필자는 그것을 보며 불편한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까닭인즉 미적 갱신은 결코 그러한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내용에 앞선 형식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그가 짐짓 모른 채 하며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고,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미적갱신을 방해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며, 그가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아포리아를 그대로 직시하지 않은 채 마치 그것이 투명하게 보이는 것 마냥 호도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그에게서 일종의 비평적 기회주의를 감지했다(물론 이는 임근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형식에 대한 집착이 빚어낸 미술계 내부의 광범한 현상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2008년 이후로 자본주의가 달라졌음을 주장하지만, 실상 자본주의는 어떤 의미에서든 달라지지 않았으며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금융화 된 자본주의의 변화는 2008년이 아닌 20~30년 전부터 진행된 자본축적방식의 전환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고, 세계적으로는 70년대를 거치며 발생한 자유주의의 역습의 연장에서 이뤄진 것이다. 즉 2008년은 새로운 단절의 징후라기보다는 과거의 집약된 모순들이 분출되고 봉합되는 계기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우리가 새삼스럽게 확인한 것은 파산한 은행과 모기지 회사에 대한 미 행정부의 천문학적인 액수의 구제금융이었고, 자본운동의 필연적 위기는 인민이 만들어 낸 주체적 위기와 동의어가 아니며, 위기는 변화가 아니라 반동의 형식으로 전화할 수도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국가의 힘을 빌어 재활훈련에 나서게 된 자본주의를 지켜보며 우리가 얻게 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국가’ 대 ‘시장’이라는 이분법적 대결구도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반동을 진단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과, 세계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통제 불가능한 ‘금융적 커넥션’이라는 물적 토대를 무시 한 채 케인즈주의적 경제로 회귀할 수도 없다는 점 외에는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객관적 위기와 사회적 변화사이의 괴리는 일찍이 유럽의 1848년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후 맑스Karl Marx로 하여금 <자본Das Kapital>을 쓰도록 추동한 계기가 되었을 정도로, 체제 분석에 관한 담론의 장에서 익숙한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단절도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 2008년의 미국 발 세계 금융위기를 단절의 지점으로 상정하고, 우리가 그 전과는 다른 시공간에 처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제 우리는 세계의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좌절과 비관에 침잠해야 한다는 진단의 의미에서의 단절인가? 혹은 IMF로부터의 구제금융과 병행된 신자유주의적 제도재편에 따른 ‘삶의 불안정성과 자본의 공세’가 내면화되기 시작한 97년 체제의 망령-기대감소-의 지속이란 의미에서의 단절인가? 실상 ‘자본주의의 지속’이라 불리어야 할 2008년을 애써 ‘자본주의의 단절’이라 해석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술시장이 2008년 이후로 일정부분 하향세를 탄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미술시장의 경매 총액은 2010년 이후로 외려 반등세에 접어들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미술시장은 2008년의 여파가 무색할 정도로 그 크기가 비대해지고 있으며, 전체적인 시장의 거래양태는 고가의 작품유통에서 중저가 작품들의 유통으로 대체되는 과정에 있다.6) 2008년 이후 붕괴되었다고 가정된 미술시장은 외려 전략을 바꿔 다시금 효과적인 상품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와 역동성이 자본주의의 가장 큰 덕목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면 이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임근준의 가정과 달리 2008년은 그 어떤 단절도 없었던 때이며, 미술시장을 망하게 한 계기 또한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미술에 있어 2008년이 갖는 의미는 그 이전까지 고조되어왔던 거품의 일시적인 붕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7) 시장에서의 교환을 통한 상품 가치의 실현 여부를 그 누구도 짐작 할 수 없는-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자본주의 체제의 내적 모순은, 일찍이 엥겔스Friedrich Engels에 의해 ‘공장에서의 계획성과 시장에서의 무정부성간의 모순’으로 설명된 바 있으며, 산업혁명 이후 수차례 발생한 주기적인 공황을 통해 증명되었다. 덧붙여 미술시장의 침체된 경기가 전위적인 예술적 실험; 갱신에 악영향을 끼치는지에 관한 여부는 아직 증명된 적이 없는 문제이나, 적어도 미술시장과 미학의 갱신 사이에는 실상 큰 연결점이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미술시장에서 이름을 떨쳐 천문학적인 액수로 그 자신의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작가들은 언제나 소수에 불과하며, 호황기 미술시장의 수혜를 받는 것과 유의미한 예술적 실천을 선도하는 것 사이에는 하등의 인과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좀비-모던’의 테제-‘1970년부터 시작된 컨템포러리(contemporary art)의 시대는,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미술시장이 주저앉은 2008년부터 끝났다’는-의 정합성을 비판적으로 재고할 필요는 수어 번 강조되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2008년 이후 새롭게 조직된 시공간’이 세계적으로는 70년대부터, 한국의 경우 97년부터 어떤 변화도 없는 연속성 속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면 더더욱 말이다,

피케티 효과’라는 허구

덧붙여 피케티Thomas Piketty를 앞세워 ‘좀비-모던’에 대한 모종의 알리바이를 구성하려한 시도 또한 비판적으로 해체할 필요가 있다. ‘좀비모던의 시대’라는 개념이 미술사적 혹은 사회적 변화를 기술하기 위해 고안된 틀이며, 부분적으로 21세기 자본의 저자;피케티를 비롯한 몇몇 경제학자들의 작업에 빚지고 있는 것이라면, 그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과연 현 시기를 분석하기에 적절한 것인지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대감소시대라는 개념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라는 맑스의 이론을 온건하게 채색한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기에 말소하고, 그가 인용한 피케티의 작업에 집중하여 논의를 진행하도록 한다.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우리 인류는 드디어 길고긴 하강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전에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역사의 첫 페이지에 우리가 서있는 셈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낸 사람 가운데 한 명이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입니다. 그는 “기대 감소의 시대”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비슷한 진단을 내렸던 이로 “포스트-어메리칸 월드”라는 수사를 앞세웠던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가 있습니다. 이들보다 좀 더 업데이트된 이론을 낸 사람이, 저서 <21세기 자본론(Le Capital au XXIe siecle)>을 통해 국제적 논쟁을 촉발한 파리경제대학 교수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겠죠. 그는 자유 시장의 자본주의가 부를 평범한 사람들에게 분배하고 그를 통해 자유를 증진시킨다는 기존의 믿음이 이제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세습 자본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을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기정사실화했습니다. 구체적 대책으로 누진세 제도와 국제적 부유세 도입을 주장한 것도 더 큰 논란을 일으킨 요소였고요. 아무튼, 우리가 과거와 다른 새로운 자본주의를 맞게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8) (강조는 인용자)

18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세계 주요 국가들의 광범한 경제적 지표들을 토대로 r>g라는 등식을 수립한 뒤, 경제성장률보다 자본수익률이 압도적으로 높아 왔음을 역설하고, 자본주의는 그 본질상 불평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체제라는 주장과 동시에 그 해결 방안으로 소득세의 누진성 강화, 국제적 차원에서의 글로벌 자본세 부과 등을 개진하는 피케티의 작업은 데이터의 양적축적을 전략적으로 이용한 나름의 장점과 시사점이 있을 것이고, 세계적으로 ‘피케티 효과’라 할법한 성과를 거둬냈다.9) 하지만 ‘21세기 자본’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역설적으로 피케티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얘기한 바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그의 작업이 결국 ‘노동과 자본’이라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틀을 유지하되, 온건하게 세금 따위를 걷어 모순을 봉합하겠다는 식의 수정주의적 접근을 취하고 있어서 뿐만은 아니다(국가가 부의 재분배를 특정한 방향으로 강제할 수 있을 때, 소득세의 누진성을 강화하는 것은 꽤나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외려 자본주의가 불평등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식상하고 고답적인 레토릭에 불과한 것이며, 실상 ‘불평등’이라는 범주는 노예제나 봉건제에도 포괄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로부터 연원한다. 인류역사를 구성해온 모든 생산양식은 재화의 분배에 관해 단 한 번도 평등한 적이 없었고, 이는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불평등과 빈곤의 심화는 분명히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갖는 큰 특징이지만, 상수이자 불변항은 아니다.10) 생산양식의 각 단계가 모두 불평등했다면, 불평등에 관해 논하는 것은 자본주의체제의 동학을 타격할 수 없다. 즉 일정한 시공간을 구성하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체제를 가리키는 이름이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한 규정과 분석 또한 생산과 소비가 완전히 분리 된 채 사물이 ‘상품형식’을 빌어 나타나는 자본주의 체제의 특수성에 맞춰 전개되어야지, 불평등이라는 광범한 개념에 소실점을 맞춘 연구방식은 다소 논쟁적인 포퓰리즘을 유발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피케티의 강점과 한계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달리말해 ‘대단한 발견’으로 여겨진 피케티의 작업은 경험적인 사실에 대한 새삼스런 지적이었고, Money-Commodity-Money’ 로 이어지는 자본의 순환에 대한 구조적인 분석이라기보다는 불평등한 부의 분배에 대한 각종 도표와 자료의 나열이었다.11) 12)

이렇게 피케티의 작업이 자본주의적 체제의 특수성을 정합적으로 그려내기엔 지나치게 허약한 것이라면, 피케티를 비롯한 일군의 경제학자들에게 기대고 있는 좀비-모던의 시간성은 그 토대에서부터 허물어진다.

호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행동주의의 즉자성과 주체적 선언의 대자성

또한 임근준이 ‘좀비-모던’에 연동된 ‘신추상회화’의 주역으로 호명하는 작가들은 징후적으로 특정한 회화적 기법을 공유하고 있을 뿐(혹은 2014년 12월 MoMA의 한 큐레이터에 의해 ‘무시간성atemporality’이라는 주제 하에 일시적으로 호명 당했을 뿐), 세계에 대한 주체적 인식을 통한 지양의 대상 상정은 하지 못한 채 흩어져있다. 이는 그들이 집단적으로 스스로를 주체화시킨 적이 없으며(여전히 일군의 민중미술 작가집단으로부터 종종 볼 수 있는 그 흔한 선언문조차 없다), 과거의 ~주의자들처럼 함께 모여 그룹전을 조직한 적도 없고, 자신들이 어떤 지향을 지니고 작업을 구성하는지에 관한 정치적 함의도 발굴한 적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실제로 좀비-모던의 특성에 조응하는 회화적 경향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미래를 잃고 과거에 잠식당하는 지금’ 그것은 새로운 미학적 흐름과 운동을 형성하기보다는, 주체에 기입된 사건의 범위 안에서 무미건조하게 행위 하는 행동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주장대로, 좀비-모던이라는 시간성 내부에 그에 공명하는 회화적 경향이 생겼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새로운 미적경향’이라고 평가해줘야 할까. 그리고 그 경향을 취득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것을 ‘도태’ 혹은 ‘정체’로 파악해야 할까. 어쩌면 상황은 정반대로, 형식에 대한 물신을 통해 지금의 미술이 ‘정체’ 상태에 빠진 것을 가리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정체상태’는 임근준이 말하는 ‘신추상회화’가 자양분으로 삼는 물적 환경에 대한 분석을 통해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2008년 이후 북미를 중심으로, 새로운 추상미술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오래전부터 새로운 추상을 작업으로 탐구해오다가, 2008년 이후에야 비로소 주목을 받게 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작가의 수가 무척 많아서 목록의 형태로 일별하기 어려울 정도죠. 경향은 다종다양합니다만, 과거의 추상미술이 다뤘던 주제-물(subject matter)의 어떤 차원을 오늘의 시점에서 재방문해 새로이 재구성한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그 과정에서 2D 이미지를 3D로 다루고, 3D를 이미지로 다룸으로써, 회화와 조각을 다시 하나로 결합하려는 충동을 드러내는 것도, 새로운 추상미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벌써 크고 작은 개괄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그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추상미술의 경향을 갈무리한 것은 평론가/큐레이터 밥 니카스(Bob Nickas)였습니다…(중략)…(비평가 월터 로빈슨은 같은 종류의 신추상 작업들을 “좀비-형식주의(Zombie Formalism)”라고 부릅니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에서죠.) 제리 살츠는 현장 평론가로서 오래도록 잘 버텨온 인물이지만, 구세대라서 좀비-모던 시대의 시각성을 감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에요. 스마트 기기로 연결되는 인터넷 세계와 그를 통해 재매개된 실재계 모두를 아우르는 이른바 ‘전지적 스마트폰 시점’의 시선으로 20세기 추상의 역사를 재구성하며 가상적 물신성을 포착하려는 충동을 이해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가봅니다. 오늘의 추상미술이 포집해내는 허공의 숭고, 가상적 숭고, 그것이 2010년대의 핵심입니다. 싫다고 거부하거나 평가 절하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에요.“13)(중략, 강조는 인용자.)

예컨대 인터넷과 결합된 통신기기의 연결망이 광범하게 보급된 상황에서 SNS를 비롯한 가상의 정보를 통해 초납작해진 시대, 즉 2D화면을 통해 실재라 할법한 것이 구성되고 역으로 3D는 이미지가 되어버린 시대, 말하자면 현실과 가상의 전통적인 구분이 무너져 내린 시대-에 부합하는 시각성이 대표적으로 회화에서 새롭게 가시화되고 있고, 이는 회화(가상)를 오브제(실재)로 취급하는 형식적 접근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신추상을 지탱하는 알리바이의 핵심일 텐데, 놀랍게도 이 같은 회화적 경향은 외국의 비평가와 큐레이터가 무슨 말로 수식을 했든- 형식의 측면에서 ‘재현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사물이 되고자’ 했던 1960년대 미니멀리즘미술의 이상을 복권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추상’이 기대고 있는 공간 즉 새로운 매체와 기술의 발생으로 인해 나타난 ‘무한히 협소하고 파편화된 시공간’을 언급할 때 사용된 임근준의 ‘쪼그라든 오늘’이라는 테제는 어떤가? 이는 일찍이 포스트 모더니즘 이론가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가 ‘포스트모던의 조건(1979)’에서 ‘모든 것을 총체화하는 메타서사는 배격되고 그것을 대체하는 설화적 공간이 범람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총체성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기 위한 근거로 언급한,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을 동어 반복으로 펼쳐 놓은 것에 불과하다.14) 신추상의 작가들이 2D와 3D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을 시각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회화와 조각을 다시 하나로 결합하려는 충동’을 드러내고 있다고 언급하는 대목도, 정확히는 소비자본주의에 연동된 경제;사회;문화적 변화를- ‘시뮬라크르(기호)가 현실을 구성하고 현실이 시뮬라크르가 되는 시뮬라시옹 사회’로 파악한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15)의 주장을 미술의 장에 재맥락화 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종합하자면 그는 리오타르와 보드리야르식의 시대인식에 미니멀리즘의 미적형식을 도입하여 ‘신추상회화’를 호명하는 일군의 해외큐레이터들의 논의에 편승하고 있는 셈이다. 허나 그러한 시대인식은 이미 주어진 현상에 대한 기술적 설명에 그친다는 인상을 주며, 가상과 실재에 대한 집착은 미적형식의 갱신을 논하기엔 지난할 정도로 소박한 수사학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덧붙여 사회적, 역사적 총체성이 부재하는 현실을 긍정하고 그로부터 일련의 작업들에 관한 호명을 도출시킨다는 점에서 그의 논의는 역설적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적 경향으로부터 한 치도 갱신되지 못한 모습을 그리지 않는가?

‘형식의 측면에서 새롭지 못하다’라며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처럼 새로운 것을 찾고, 조증환자와도 같이 너스레를 떨며 ‘과거의 형식을 답습하고 있다’고 평하는 식의 예술평론이 도처에서 우후죽순으로 남발되는 지금, 새로운 미적형식을 발굴하는 일은 어느새 우리시대 예술의 정언명령이 된 것 같다. 임근준의 사례 또한 그 무의식적 명령의 구성적 관성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허나 앞서 지적했듯 당파성 없는 형식은 사실상 텅 빈 기표와 다르지 않으며, 우리는 대상의 재구축(미적형식의 갱신)은 그 대상의 본질을 재정의함으로써 대상의 기원 혹은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는 형식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결여된 소박한 주제주의에 빠지자는 주장이 아니라, 내용 없는 형식만을 재생산하는데 열중하는 ‘죽은 미학’을 타파하고 예술의 본질을 정의하려는 시도를 집단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다시금 내용과 형식을 합일시키자는 제안이다.

물론 주체들 간의 전방위적인 연대와 총체성이라 할 법한 것이 부재한 상황에서, 집단적 차원에서의 정치적 조직화의 물적 토대 또한 희박한 상태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파편화된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개인성을 부정하고, 넘실대는 다원주의와 다양성, 취향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조직되고자 하는 이들만이 새로운 미적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내게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구체적이고 다양한 낯을 하고 있으니, 실상 차이에 대해서 논하겠다는 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는 한 철학자의 지적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에 대한 부연은 글의 말미에서 진행하도록 한다.

동시대 미술의 망령- 관계미학의 함의와 그 한계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시대 미술의 지배적 경향으로서의 형식에 대한 물신- 이는 지리멸렬하도록 소박한 관계미학의 범주에서 생산되는 예술적 실천의 변화를 갈망하는 내밀한 욕망의 충동으로부터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좀비-모던’ 담론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일련의 호명(임근준의 표현을 빌자면 ‘포스트-레트로’회화라는)역시 어떤 측면에서는 관계미학에 대한 비판의 연장에서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이제 수도권의 몇몇 미대에서는 교조화된 하나의 방법론을 구성하는 예술적 실천으로서 의미 없는 공회전을 반복하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그 레퍼런스는 닳고 닳은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아직까지 현대미술의 장에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의 망령’이라 할법한 것이 잔존한 상황에서, 이 다음 조직되고 호명될 미적 형식의 이름은 관계의 미학을 뛰어넘을 역량이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16)(한편 이런 상황은 온갖 과장법과 이론적 기회주의의 조건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때의 역량이란 예술적 실천의 목적성과 지향, 작가들 사이에서 감지되는 형식의 공통성이 지닌 설득력이기 이전에, 세계에 대한 규정, 즉 세계의 모순과 부정합에 대한 규정이다. 세계에 대한 규정에 정합성이 있다면, 그것은 세계에 관한 하나의 거대한 사유체계를 형성하고 그와 동시에 그것에 연동된 지양의 대상과 지향의 방향을 만들어 낸다.

거칠게나마 관계미학의 내적 함의를 개관해보자. 60년대 말부터 서구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된 자본주의와 그 공간들을 분석하여, 소비문화와 결합된 이미지가 범람하는 사회를 ‘스펙터클의 사회’로 규정하고, 그 스펙터클이 인간들의 관계를 파편화 시켜 결국 삶의 기반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암울한 진단을 내린 기드보르Guy Debord와, 상품과 화폐의 순환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조직적인 체계가 침투할 수 없는 균질함 속의 균열(예컨대 공동체와 증여적 관계)로서의 ‘사회적 틈’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 맑스의 작업- 양자를 각각 참조17)하여 니콜라 부리오는 9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한 일군의 작가들을 호명하고 예술의 사명을 ‘가능한 유토피아적 관계의 일시적 발명’으로 제시한다(덧붙여 그는 이 규정을 가타리의 철학에 위치시키려 하지만 그것은 여기서 자세히 다룰 문제가 아니다).18) 19) 여기서 그는 언제나 이미지; 상품의 코드 내에서만 발생하는 물화된 인간관계와, 매체와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된 과잉; 과소 관계라 할 법한 ‘커뮤니케이션-슈퍼하이웨이’를 후기자본주의의 삶의 양태로 규정하고 이러한 조건 속에서의 반정립을 경유하여,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양자로부터 구별되는 예술의 존재론을 도출 시킨 셈이다.

이렇듯 큰 맥락에서 상황주의와 맑스주의의 개념을 차용하여 그가 얻어낸 것은 자본주의, 즉 세계 일반에 관한 나름의 규정이었다. 이와 같이 명증하고 당파적인 규정을 거쳐 제시된 예술의 존재론은 지리멸렬하고 무분별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헤게모니로부터 탈출하고자 했던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하나의 탈출구를 제시하고, 그들을 견인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로부터 모더니즘을 거쳐 아방가르드로 이어지는 비판적 미술의 전통을 계승하려 분투했던 흔적을 마땅히 찾아낼 수 있고,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미학의 한계는 그 내부에 존재하는데, 거칠게 말하자면 그것은 자본이 부과한 개인성에 반하는 집단성을 간취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야심차게 기획된 포부와는 달리 관계미학의 범주에서 구성된 작업적 실천들은 현실에서 우스꽝스럽게 실패하며, 관계미학이 본질적으로 지향하는 예술의 존재론이 지극히 소박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정 지역의 인물 군상에 대한 범위를 상정하고 그들을 인터뷰하여 해당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거나, 거주자들 간의 소통이 부재하는 아파트의 지하에 책꽂이를 설치한 후 주민들에게 책을 서로 빌려 읽게 하여 그들이 스스로 커뮤니티를 구축하게 하거나, 전시를 보러온 관람자들에게 수프를 끓여주고 그들과 파티를 벌이는 등의 일이 미술계 내부에서 담론적 우세종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거리를 두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이벤트로 전락한 예술’과, ‘파티플래너로 전락한 예술가’라는 비루한 현실이다.

물론 동시대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토록 소통과 교류에 주목하는 이유는, 현대의 소비자본주의가 야기한 물화된 관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회복하길 바라는 의지로부터 연원할 것이다. 허나 물화된 관계의 대척점에 구체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놓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타당하나, 현실적으로는 틀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주관과 객관이 동시에 발생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달리말해 자본주의는 객관적인 사회적 관계이지만 그와 동시에 특수한 주관성의 형식이다.20) 상품에 매개된 채로 감각되는 물화된 관계는- 생생한 기억과 경험이 제거된 무차별적인 것으로 드러나지만, 우리가 그것을 ‘악’으로 규정하고 제거해버리는 순간 우리의 삶 또한 함께 제거된다. 객관적인 것을 없애는 순간 주관적인 것이 동시에 사라지는 셈인데, 부리오의 관계미학은 이 점을 간과하고 ‘관계’라는 개념을 지양 가능한 ‘객관적인 것’으로 상정했다는 점에서 ‘관계’를 물신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물화된 관계는 우리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체제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주관적인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논의의 축은 그러한 주관과 객관이 동시에 발생하도록 하는 조건과 모순을 파악하고 그것을 재조직하는 일이 되어야지,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 중 하나만을 취사 선별하여 지양의 대상으로 삼는 일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파편화되고 원자화된 인간들의 피폐한 삶과 세계는 관계미학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일시적인 소통과 교류를 통해 변화 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관계미학의 사각은, 자본이란 언제나 모든 개별적인 대항적 시도들의 위에서 그들을 보편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구축한 소통의 장치를 통해 조성된, 작지만 아름다운 관계들을 보라, 이 얼마나 찬란한가, 여기에 우리의 갈 곳이 있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관객들의 관계를 매개하는 예술가의 작업은- 우리가 바로 그 옆에 즐비하게 늘어선 대형마트와, 프랜차이즈 편의점과, 패스트푸드 체인점, 초국적 기업의 유명 의류 브랜드 매장을 목격하는 순간 뒤틀리고 무색해진다(그렇게 연대와 공감,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연희적 관계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미 모든 장소가 자본주의적 경제를 작동시키는 요소들로 인해 균질한 포화상태에 있기에 장소는 관광지 내지는 상점으로 변질 되었고, 인간관계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판매자와 구매자, 고용주와 피고용인, 노동자와 자본가’와 같이)로 대체되었음을 감안할 때, 일시적인 소통을 경유한 새로운 관계의 구축은 불가능성의 영역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관계에 관한 주목은 공허한 제스처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없다.21)

덧붙여 알다시피, 예술가들이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공간과,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는 언제나 암암리에 ‘문화특구’로 지정되어, 마치 유사상품처럼 (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양상을 빌어)지역재개발 사업과 관광사업에 동원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수년 전의 카페 마리와 두리반 사태에서 최근 테이크아웃 드로잉과 관련된 분쟁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을 돌이켜 보지 않더라도, 공동체를 조직할 공간적 토대일반이 잠식된 시점에서 ‘관계’를 부르짖는 작업의 지향은 언제나 자본에 포섭되는 모양을 연출해 왔음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제 아무리 자본의 보편적 질서로부터 달아나려 해도 ‘관계의 구축과 소통을 통한 유토피아’라는 화두에 세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더욱이 그런 방식으로 집단성을 취하려는 ‘관계미학’의 형식은 자본에 반하는 시도라기보다는, 외려 자본이 권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기업의 경영에서도 ‘소통과 참여’라는 개념은 사훈(社訓)으로 제시될 정도로 흔한 것이며, 오늘날의 주류 학문에서는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과 융합’을 부르짖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연 예술가들이 강조하는 장소, 관계, 소통, 참여 등의 키워드가 세계 도처에서 남발되고 있는 그 용어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과감히 그것을 재고하고, ‘작은 유토피아로서의 일시적 공동체-되기’를 자처하며 물화된 관계의 반대급부로서의 급진성을 간취하려는 몸짓을 가장한 관계미학의 기저에 실은 무력한 패배주의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헌데 커뮤니티의 발굴이 예술가들의 사명이자 미학의 소명이 아니라면, 예술가들은 대관절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전체와 부분의 변증법과- 세계에 관한 규정

여기서 결국 우리는 예술가들이 새로운 미학의 이름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허나 그것은 관계미학이 비판적 미술로서의 작업적 실천들을 약 20년 가까이 견인해왔던 동력에서 확인 할 수 있듯, 인간이 특정한 방식으로 생활세계를 감각 하도록 유도하고 직조하는 체계로서의 세계에 대한 규정을 통해서 가능하다. 새로운 미적 형식의 호명은 대충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규정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작업은 예술가가 전체로서의 체제 혹은 세계 속에 있음을, 그리고 예술이 언제나 세계 속에 있음을, 세계의 뚜렷한 단절 이전까지는 그 어떤 미적 갱신도 없을 것임을 숙고하는 것이다. 다소 원론적으로 들릴 법한 이 주장은 에르네스트 만델Ernest Mandel과 프레드릭 제임슨Fredrjc Jameson의 사유를 참조하면 한결명료해 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에르네스트 만델은 일찍이 그 자신의 저서 ‘후기 자본주의’에서 과학이 그 자체의 논리와 힘에 의해 갱신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도약에 맞물려 갱신되어온 것임을 지적한다. 그 논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848년 이래로 증기모터의 기계생산, 1890년대 이후로 전기와 연소모터의 기계생산, 1940년대 이후의 전자와 원자력기구의 기계생산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이 드러내듯- 과학기술의 도약은 시장자본주의, 독점자본주의, 다국적 자본주의로 이어지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결과였다는 것이다.22) 그의 분석은 과학의 자본 의존성과 과학과 체제 사이의 관계를 해명했다는 점에서 결코 기각할 수 없는 설득력을 지닌다.

미국의 맑스주의 문학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은 이러한 만델의 준거를 이어받아 예술의 역사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음을 주장하며 사실주의,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거대한 예술사적 단절이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단절(국민적 경쟁자본주의, 제국주의시대의 독점자본주의, 다국적자본주의)과 맞물려 있다고 역설한다.23) 24) 따라서 그에게 미적형식의 갱신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며, 모든 예술작품(심지어 모든 언어와 행위, 사건들 마저도)은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서 형성된 이데올로기와 모순에 의해 억눌린 ‘정치적 무의식’에 의해 규정된 채 구성되고 있는 무엇이다.25) 그렇다면 이때 작품의 해석자는 마치 환자에게 접근하는 정신분석학자과도 같은 자세로 작품과 역사의 관계를 분석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같은 만델과 제임슨의 주장에서 우리가 전유할 수 있는 것은 전체와 외따로 떨어진 채 구성된 부분들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항상 부분은 전체로부터 매개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도식(부분과 전체)을 ‘예술’과 ‘세계’의 항으로 소급시켜보자. 작업에 행위가 개입되고, 미술의 흐름이 점차 비물질적인 영역마저도 그 자신의 내부로 범주화시킨 이후 이미 미적 형식이 그 자체로 갱신될 수 있을만한 여지는 없다. 이는 곧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혹은 관계미학이 오늘날 시효를 다했다고 새로운 예술적 실천이 자연히 요청되는 것은 아니며, 예술적 실천(혹은 미학)의 갱신은 세계에 대한 규정과 그에 따른 당파적 개입으로서의 미적 형식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것인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는다. 가능한 접근 방향은, 예술사적 전개과정을 되짚어 본 뒤 그로부터 아직 도출되지 않은 새로운 형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정밀하게 해부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결코 그 자체의 논리를 통해 갱신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세계의 변화 이후에 사후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이다. 제임슨이 지적하듯, 예술가들이 이미 주어진 역사와 세계의 모순을 마주한 채, 그것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여 도출된 결과가 예술작품이라면- 예술이라는 것은 언제나 구성된 세계 이후에 재구성되는 부산물과도 같다.26) 이는 예술이 단일한 사회적 실재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세계에 속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관계의 미학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미적형식의 발굴은 세계를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작업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그리고 규정은 필연적으로 특정한 종류의 부정을 동반한다. 예컨대 우리는 혁명 이전의 모든 예술사조들을 착취적 사회관계의 산물로 규정하고, 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의 문화를 실험적으로 발굴해나가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 간주했던 (거칠지만 그만큼 급진적이었던)프롤레트쿨트와, ‘순수’와 ‘응용’간의 전통적 구분을 허물고 모더니즘미술의 자폐적 순수성을 넘어 삶의 변화를 위한 무기로서 예술의 위상을 설정했던 구축주의로 대표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 또한 1917년의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새롭게 구성된 정치;사회;문화적 토대에서 자라날 수 있었음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실천에 예술적 실천을 동기화 시키고 구시대의 미술이 지닌 유미주의적 전통에 반기를 들었던 일련의 역사적 아방가르드 역시 마찬가지로 총체적 규정(혹은 단절)을 경유하여 그 자신들의 예술적 실천을 정립했다는 사실은 굳이 복기할 필요도 없을 테다.

이렇게 예술가들은 규정을 통한 부정에서 도출된 부단한 ‘지양의 상태’로부터 구성의 자양분을 얻는다. 지양의 대상이 없는 규정은 내용 없는 형식이 그러하듯 ‘텅 빈 기표’에 머무를 뿐 아니라, 몇몇 평론가들의 무미건조한 언급을 통해 행동주의적 임상사례로서 제시될 뿐이다. 미술사적 레퍼런스 내부에서 미적 형식의 갱신을 논하는 것은 나약하고 비변증법적인 심미주의적 관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규정을 경유한 지양의 대상을 선정하고 파악하는 것은 결국, 세계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현상하는가, 전체로서의 체제는 어떻게 세계의 다양한 사건과 계기들에 영향을 미치는가, 또 그 역관계는 무엇인가 따위의, 고루하리만치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는 일일 것이다. 이때 규정은 필연적으로 예술의 정치성을 긍정하는 선에서, 물리적이고도 집단적인 정치적 개입의 형태로 시도될 것이다(규정이란 행위 자체가 지극히 정치적인 일이고 정치란 근본적으로 집단적인 차원에서 수행되는 일이다). 80년대 후반에 한국의 좌파들 사이에서 발생했던 ‘사회구성체 논쟁’의 예술적 버전이라 할 법한 것을 벌려보는 것은 어떤가? 당시의 논쟁은 국가의 성격과 사회의 주요 모순에 대한 규정을 통해 지양의 대상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로부터 (운동의)내용과 형식이 결정되어, 지금까지도 한국의 운동을 이끌어 오고 있다.27) 그만한 수준의 분기점이 부재하는 현 시점에서 새로운 시대적 구분을 제시하거나 미적 형식의 갱신을 논하는 일은 일시적인 유행으로 소비될 ‘유사-미학’ 이상의 비전을 내놓기 힘들 것임을 쉬이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니 예술가들이여, 차분히 세계를 관찰하며 예술의 존재론을 내맡길 수 있을 만큼 적절한 규정을 모색하자. 규정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인 충분한 사유 없이, 빈번하고도 열정적으로 이어지는 행위는 어쩌면 대상의 심급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은폐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미술계 내부의 이런저런 팩트와 그 외부의 경험적인 사실들을 미친 듯이 따라가면서 쾌감을 느끼는 듯한 젊은 예술가들과 일군의 평론가들을 필자가 못미덥게 보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예술적 실천과 그것을 지탱하는 미학의 갱신의 진정한 변화를 위하여,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멈추고 생각해 볼 때다. 지금,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드러나는가? 대관절 당신들은,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사유하고 있는가?

 


1)러시아 혁명 이후 세계 변혁운동의 전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맑스-레닌주의’의 표어였던, 대중을 선도하는 ‘전위당’이라는 혁명적인 개념이 힘을 잃게 된 시기가 1960~70년대 언저리에서 아방가르드의 전투적 ‘전위’가 몰락한 시기와 일치하는 것은 제법 의미심장하다. 말하자면 여기서 우리는 정치적 상황과 예술적 실천이 맺는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2)알다시피 모더니즘의 정의와 구분은 기준에 따라 조금씩 결이 다르다. 크게 보아 17,18세기 서구부르주아지사회의 발흥과 더불어 발생한 고대 그리스; 로마문화의 반대항으로서의 모더니즘, 19세기 중반 이후 심화되는 자본주의적 모순의 자장 속에서 공명한 보들레르에서부터 인상주의, 상징주의, 유미주의를 관통하는 모더니즘 등이 있지만, 본 글에서 모더니즘은 1914년의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나타난 문화예술적 흐름을 가리키는 모더니티의 최종국면을 일컫는다. 정정호.강내희 편, <포스트 모더니즘의 쟁점>, 문화과학사, 1989-18p 참고
3)미국에서는 50~60년대, 유럽에서는 대략 70년대부터 발생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한국적 수용은 80년대 말쯤으로, 당시 강성했던 민중문예계열 작가들의 아성으로 인해 꽤나 더디게 진행되었다. 즉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을 비롯한 몇몇 미술관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결산 전시를 했던 사실과는 무관하게, 한국에 포스트 모더니즘이 정착한 경과는 약 20년 정도로, 미국과 유럽의 그것에 비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서구에서 결산이 끝났다는 이유로 ‘포스트 모더니즘이 망했다’는 진단을 한국 미술계에 적용시킨다면, 조잡한 파열음이 발생할 것이다. 또한 내용 없는 형식에 대한 강박은 일찍이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이 지적했듯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요한 특징이었으므로, 순수한 형식의 향연을 ‘미적인 것’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지배적인 한국 예술계의 상황을 떠올려본다면 실상 포스트 모더니즘의 자장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4)디자인 정글 인터뷰 2015, 4월 9일/디자인정글 – 매거진 오래된 것의 충격(shock of the old)http://magazine.jungle.co.kr/cat_magazine_…/detail_view.asp…
5)임근준, <새로운 추상 ‘포스트-레트로’회화>, 아트인 컬쳐 5월, 2015
6)이점에 대해서는 아트인컬쳐 김수영 기자의 기사-‘미술시장의 Up & Down’를 참고하라. http://www.artinculture.kr/content/view/780/27
7)실물경제성장 이상의 규모로 비대해진 자산상태를 가리키는 ‘거품’은, ‘불평등’과 달리 자본주의의 상수이자 핵심이다. 이는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장에서 공황의 필연성에 대한 분석의 준거로 제시된다.
8)http://magazine.jungle.co.kr/cat_magazine_…/detail_view.asp… 인터뷰
9)피케티의 방한에 맞춰 이정우 교수와 김홍중 교수는 그의 저서와 관련된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고, 주류경제학의 나팔수인 영국 파이넨셜타임스는 피케티의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주장하며 그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알러지를 드러내기도 했으며, 맑스주의 정치경제학 강사 김공회는 일군의 학자들과 함께 피케티의 논점을 맑스주의적 시각에서 비판하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21세기 자본에 부쳐 수많은 강연과 토론회가 개최되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10)예컨대 우리는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재건과정에서 발생한 이른바 자본주의의 황금기- 케인즈주의적 자본주의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물론 이때에도 생산수단은 여전히 사적차원에서 전유되고 있었으므로 유토피아와도 같은 절대적 평등은 불가능했다고 볼 수 있으나 적어도 일국적 차원에선 완전고용과 상대적 고임금으로 대표되는 케인즈주의적 정책 기조로 인해 소득수준의 부분에서는 전례 없이 격차가 좁혀졌고, 최고소득세율의 강화로 부의 사회적 재분배가 비교적 잘 이뤄졌다. 이는 ‘불평등’이란 자본주의 체제의 요소이지, 중핵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례다.
11)재화 일반을 ‘자본’으로 규정하여, 사적 차원에서 전유되는 소유뿐만 아니라, 일체의 개인적 소유를 연구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 또한 데이비드 하비가 지적한 피케티의 주요한 오류다. 이점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하라. http://blog.daum.net/nanomat/758
12)그래프와 통계의 인용에 ‘r>g’라는 결론에 맞춘 자의적 기준을 대입하여 개별 항목들의 정확성에 이의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피케티의 한계가 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김공회 외 5인, <왜 우리는 더 불평등해지는가 -피케티가 말하지 않았거나 말하지 못한 것들>, 바다출판사, 2014
13)http://chungwoo.egloos.com/4064403 임근준 블로그.
14)리오타르, <포스트모던의 조건>, 조프 베닝턴의 영역판, 미네소타대학 출판부, 1984), 서문 26p 참고
15)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하태환 역, 민음사, 2001- 참고. 알다시피 이는 프랑스에서 1981년에 발표된 저작이다.
16)니콜라 부리오, <관계의 미학>, 현지연 역, 미진사, 2011- 13p, 25p 참고
17)같은 책, 153p 참고
18)클레어 비숍Claire Bishop과 루돌프 프리링Rudolf Frieling을 비롯한 일부 주석가들은 이와 관련하여 90년대 후반에 개진된 관계미학을 60년대 이래의 참여예술의 계보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향후 관계미학이 이론적으로 상대해야 할 미학은 참여예술과 관련된 담론일지도 모른다. 김기수, <부리오의 ‘관계미학’의 의의와 문제>, 한국미학예술학회 34집, 2011-307.p 참고
19)물론 부리오는 예술은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새롭게 구성되는 일종의 게임이라며 영리한 접근을 취하지만, 그것은 맥락상 1964년 뉴욕서 전시된 앤디워홀의 ‘브릴로 박스’ 이후 공산품과 작품 사이의 전통적인 구분이 허물어진다고 판단하고 ‘예술의 종말’을 주장했던 아서 단토Arthur C. Danto에 대한 지적 대응으로 해석되어야지, 예술적 실천일반을 ‘게임’으로 규정한 것으로 오독해선 안 될 것이다.
20)서동진, 2015년 말과 활 기획 강연, ‘물신주의와 그 이후’ 강의록 참고
21)본 지면에서 다루지는 않았으나 김홍석의 작업 ‘POST 1945’(2008)와 산티아고 시에라Santiago Sierra의 ‘250CM LINE TATTOOED ON 6 PAID PEOPLE’(1999)을 비롯한 일련의 작업들이 시사하듯, 참여, 소통, 관계 등으로 이어지는 관계미학의 요소들은 결국 상품, 화폐가 갖는 내밀한 폭력의 보편성을 간과했다는 추궁, 혹은 근본적인 지점에서 ‘미학을 가장한 폭력적 동원’이라는 추궁을 피하기 힘든 것으로 여겨진다.
22)에르네스트 만델, <후기자본주의>, 이범구 역, 한마당, 1985. -184p 참고/ 독일어 원제는 ‘Der Spatkapitalismus’ 1972. 영문판은 ‘Late Capitalism’ 1975
23)프레드릭 제임슨,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포스트 모더니즘론>> 정정호/강내희 편, 도서출판 터, 1990)
24)몇몇 비평가들은 이와 같은 제임슨의 논의에 대해 다양한 부분들의 상호작용과 차이를 간과한 ‘헤겔리언 맑시스트’라는 딱지를 붙였지만, 세계의 변화와, 부분(문화)과 전체(자본주의)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규정할 논의의 준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마땅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25)Fredic Jameson, Political Unconscious: Narrative as a Socially Symbolic Act, Methuen, 1981- 19-20p 참고
26)비슷한 맥락에서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은 철학이 언제나 해가 진 다음에야 눈을 뜨고 활동하는 올빼미와도 같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철학이 회색으로만 세상을 그리게 되면 하나의 삶의 방식이 낡은 것이 되며, 회색으로만 그리는 것으로는 다시 젊음을 되찾을 수 없고 오로지 인식될 수 있을 뿐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해질녘이 되어서야 날기 시작한다.”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법철학>, 임석진 역, 한길사, 2008.- 104p
27)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박현채. 조희연 저, <한국사회구성체논쟁 1>, 죽산,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