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민_‘국뽕’, 민족주의라는 금지된 쾌락, 그리고 패륜아 일베의 기획

2014.05.24 발행

 kia.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주소~~

자본에게 국뽕은, 민족주의는, 자신 없이 연대하려는 불온한 기획이며, 그들이 뭉치면 자신의 처지가 위태로와 진다고. 그들이 자라나 자신을 죽일 수가 있다고. 더 큰 연대를 이루기 전에 연대를 해쳐야 한다고. 국뽕은 안 된다고. 그래서 우리 시대의 흑인, 가난하고 배고프고 불온한 패륜아 일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게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이자 판타지는 2010년 낸시랭과 런던에서 UK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비로소 생긴 것 같다. 코스모폴리탄으로 자랐던 X세대인 내가 국가(state)와 민족(nation)을 진지하게 사유하기 시작한 첫 번째 계기였다.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영국 땅은 모두 영국 여왕 소유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고, 민주주의가 아닌 체제에서도 국민들이 별 무리 없이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린 여왕의 생일 퍼레이드에 난입하여 땅 한 평을 기부해달라고 발칙한(?) 제안을 했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주의 덕분에 당신네 나라는 귀족노동자도 나오고, 당신도 왕위를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빚을 받으러 온 사람들처럼 당당하게 요구했다.

기부를 받는 데는 실패했지만, 귀국 후 “어떤 나라는 왕을 죽이고, 어떤 나라는 왕이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지속됐다. 물론 그전에도 ‘내셔널 플래그’(2005)란 작품에서 태극기를 소재로 쓰긴 했다. 그러나 나는 그 해가 광복 60주년인지도 몰랐고, 태극기의 유래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단지 태극기의 이미지가 후져서 나만의 태극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할까. 아무튼, 나는 그때부터 ‘국뽕 제조’에 관심이 생긴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곳을 벗어나 봐야 그곳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국가와 민족에 대해 생각하려면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남의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곳을 벗어나 봐야 그곳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려면 반드시 타자를 비추어 생각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다른 나라나 타인이 될 필요는 없다. 이미 우리 안에는 여러 나라와 타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진짜 나란 있는 것일까, 있다면 누구일까?”라는 의문에서부터 출발할 수도 있겠다. 이 최초의 질문이 신채호가 말한 ‘민족사관’(民族史觀)이나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의 맹아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오타쿠 소비자로서 세상을 아는 것에는 한계가 없을지 몰라도 타자와 부딪히는 그 생생한 느낌/육감을 원했다. 맞다. 그것은 피로와 고통을 수반한다. 남을 알고 나를 아는 데는 대가가 필요하다. 대가를 치룬만큼 고통이 있지만 동시에 쾌락이 밀려온다. 이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좌충우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 만난 낯선 타자의 얘기를 하고 싶다. 일베. 청년 수구꼴통 집단이라 불리는 일베(일간베스트)도 아마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작년에 <박정희와 팝아트투어>를 진행하며 일베의 공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몹시 불쾌했지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급기야 일베와 싸우며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그들의 힘은 일베라는 공동체, 일베라는 이름의 민족주의였다. 그들은 일베라는 이름 아래 하나였으며 평등했다. 이건 공산주의 아닌가? 나는 이들이 어떤 경로로 그러한 과정을 겪었을지 상상해 보게 됐다. 혹시 나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을지도. 일베는 혹시 자본주의 소비의 쾌락시스템에서 염증을 느낀 조숙하고 찌질한 청년들이 만든 ‘국뽕의 공동체’가 아닐는지. 일베의 만행에 나도 고통을 겪고, 많은 사람이 놀랐지만, 그들이 세월호 참사를 유발한 집단보다 더 패륜적일까? 진짜 패륜은 끔찍한 참사를 반복하는 한국식 자본주의 시스템 아닌가.

수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이뤄낸 그 ‘잘난’ 자유민주주의가 진짜로 수호하는 건 결국 ‘돈’ 으로 귀결 되는, ‘기승전먹’, 만사 먹고사니즘의 천국이 아닌가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일베의 악명 높은 민주화 버튼(게시물에 대한 비호감을 나타내는)은 ‘정상 민주주의’를 원하는 그들의 의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공격하는 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라 가짜 민주주의가 아닐까. 물론 일베의 방법론에는 문제가 많다. 그러나 겉으론 아무 문제가 없는 듯 행동하면서 속으론 썩은, 한국의 위선적인 민주주의에 위악으로 맞서는 일종의 미학적 방법론일 수도 있다.

이들은 어리지만 어린 만큼 잠재력이 있고 또한 위험하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도외시할 게 아니라 만나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느꼈다. 내 세대인 이른바 X세대가 코스모폴리탄으로 자랐다는 것은 범지구적인 자본주의체제의 소비자로 자랐다는 것에 불과하다. 이 체제가 칸트적 의미의 상호호혜적 ‘세계공화국’(Weltrepublik)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것의 다른 이름은 자본주의의 ‘세계노예’다. ‘세계노예’에 대항하는 정치적 주체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일베를 포함한 모든 민족주의자가 시도하는 작금의 기획이 아닐는지. 그러기 위해 민족주의라는 ‘국뽕’을 제조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닌지. 국뽕이 위험하다고? 히틀러를 만들 수 있다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애초, 유럽의 변방이었던 독일의 민족성을 고취한 이는 다름 아닌 바그너라는 예술가였다. 정치가 예술을 그런 식으로 전유한 것이 나쁜 것이지, 바그너가 이룩한 국뽕이 나쁜 건 아니었다. 일베를 전유하려는 국정원이나 변희재가 나쁜 것이지, 일베라는 청년들의 하위주체가 자본주의가 일으키는 파편화 된 개인주의에 맞서 만들어내는 미학이 나쁜 것은 아니란 얘기다. 그것은 나쁘다기보다 처연하고 우습고 유치하다. 그들이 바그너는 아니니까. 그러나 바그너의 시작도 그러했다. 아니 모든 예술가의 시작은 발언권이 없어 소외당하는 마이너리티와 하위주체(subaltern)에서 비롯된다.

그들에게 국뽕은 자신을 위무하는 마취제이자 발언권을 가지려는 몸부림, 즉 세련된 주류 대중 소비문화에 대한 딴지와 저항정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흑인들이 아프리카를 강제로 떠나 세계의 노예가 됐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발견하기 이르렀고, 흑인영가, 블루스, 재즈, 락앤롤, 힙합, 심지어 K-Pop으로까지 진화하며 결국 세계의 모든 대중음악을 지배하게 된다. 노예가 주인이 된다는 역설. 이것이야말로 헤겔이 말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역전 상황이 아닌가. 박해받은 민족이 잊지 않고 발전시켜 온 상상의 공동체를 지탱했던 미학, 그들의 무기는 블랙뮤직이라는 ‘국뽕’이었다.

‘민족주의는 자신의 프레임을 끊임없이 허물고 더 큰 인류 공동체를 상상하며 진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나는 타자의 침입에 대항해 발전시켜 온 ‘민족주의’라는 그 절절하고 구체적인 고통의 자각 없이는 ‘국뽕’을 생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느낌의 공동체’를 얘기했을 때, 그것이 혹시 ‘국뽕의 공동체’는 아닐까 생각했었다. 극심한 쾌락은 고통을 수반하고, 고통은 곧 쾌락의 조건이다.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금지된 쾌락이다.”라는 이택광의 말은 한 민족이 이 정도 고통을 받았다면 금지된 쾌락을 누릴 자격이 있지 않은가, 라는 반문을 이끌어 낸다. 물론 ‘아리랑’에서 ‘인터내셔널가’까지, 민족주의는 자신의 프레임을 끊임없이 허물고 더 큰 인류 공동체를 상상하며 진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민족주의를 지구촌으로 확장해나가는 것, 그것이 칸트가 말한 세계공화국, 세계평화를 위한 인류의 노력이다. 그러나 이것은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이 좋은 것을 금지하는 이는 누굴까. 다름 아닌 고통 없는 코스모폴리탄적 소비의 쾌락을 무기로 유혹하는 자본이라는 아버지다. 고통은 필요 없다. 이미 세상은 네 것이다. 그저 즐겨라. 단, 내 말을 잘 들어라! 그는 자식의 목소리를 빌려 모 CF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이택광은 이 말의 본심을 분석하며, “딱 자본이라는 아버지의 말씀만큼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명제를 폭로한다. 자본에게 국뽕은, 민족주의는, 자신 없이 연대하려는 불온한 기획이며, 그들이 뭉치면 자신의 처지가 위태로와 진다고. 그들이 자라나 자신을 죽일 수가 있다고. 더 큰 연대를 이루기 전에 연대를 해쳐야 한다고. 국뽕은 안된다고. 그래서 우리 시대의 흑인, 가난하고 배고프고 불온한 패륜아 일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kia.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주소~~”글 / 강영민 강영민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적 활동을 해 온 팝아티스트이다. 2013년 가진 개인전, <국가와 혁명과 너>에서 팝아트 풍으로 변형시킨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화 시리즈를 선보였다. 그 해 팝아트조합을 결성해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는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해왔다. 첫 번째 투어인 <박정희와 팝아트투어>가 논란을 일으키며 보수층의 공분을 샀고 일베와 처음 만나는 계기가 된다.그 후 일베를 교화시켜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겨 ‘일청교육대’(일베+삼청교육대)를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