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균_북한남자 part 1

2013.12.03  발행

간지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다.

간지가 폭발하고 있다. 왕년의 웹툰 <패션왕>얘기가 아니다. 한국 영화 속 남파공작원 얘기다.
본시리즈의 등장 이후 할리우드와 유럽, 한국의 액션영화에는 새로운 흐름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비단 본시리즈가 기원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더그 라이만 감독으로부터 시작된 본격 첩보 액션영화 <본 아이덴티티>의 하드보일드한 스타일은 이후 제작된 첩보액션의 형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제작된 소위 ‘하드보일드 첩보 액션물’들은 비평에 있어서나 관객들의 기시감에 있어서나 항시 본시리즈의 범주에 놓여야 했다.  알량한 신무기에의존하여 시시껄렁한 -그러나 부피는 큰- 임무나 시시껄렁하게 수행하던 댄디한 신사이미지를 저버리고,  몸으로 부딪히고 온갖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며, 엘리트첩보원이라기엔 어딘가 우아함이 부족해보이는-그러나 보면볼수록 고급스럽고 우아하다- 근육질의 실전형 요원을 채용한 007시리즈는 본시리즈로부터 단단히 탄력을 받았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다.

달릴때는 정말 무서워보인다. 그러나 볼수록 우아하다.

첩보액션, 혹은 액션에서의 하드보일드한 형식의 적용 및 구현은 어느새부턴가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유효한 방식이 되었다.

또한 연출자에게 있어서 풀어가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한 몰입과 재미를 배가시키는 훌륭한 장치가 되었다.

이는 1970, 80년대에 왕성히 제작되었던 중국, 홍콩의 무술영화의 부흥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들 영화가 지녔던 기이함, 기묘함을 현재 제작되는 하드보일드한 액션영화들이 지니고 있지는 않다. 일종의 형식화와 부흥의 측면에 있어서 연상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미쟝센보다는 한결 세련되고 매끄럽다.

이러한 형식의 영향으로부터 한국영화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가까운 예로 이정범 감독의 2010년작 <아저씨>에서 이러한 영화적 형식의 구현을 맘껏 감상할 수 있다.
전당포하는 아저씨 하나를 잘못건드렸다가 조직이 궤멸당한다. 그 아저씨는 한국의 최정예특수요원 출신으로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최적화된, 그리고 최강의 격투실력과 상황돌파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국방력이 추구하는 최고의 인재 중에서도 최고를 볼썽사나운 쌈마이 장기밀매-아동착취-마약거래 조직이 건드렸던 것이다.
이 영화는 소위 ‘본시리즈 스타일’ 액션의 향연이다. 많이들 보았지만, 많이도 재밌다.
게다가 본은 맷 데이먼이다. 아저씨는 원빈이다. 원빈이 싸우는데 간지나게 싸우는 것이다.
영화 막판에는 조직 측의 용병 람로완이 이 아저씨에게 홀려서 제압할 수 있는 기회조차 날려버린채 불나방이 불속에 뛰어들듯이 자신을 연소시키기까지 한다. 보고 있자면 홀려버릴 정도로 멋있었던 것이다. 적이고 뭐고 없다.

원빈이 맷 데이먼처럼 액션을 구사하면, ‘매료된다’

이러한 스타일이 한국형 액션영화에도 봉숭아 물들듯 하염없이 물들고 있는 상태에서, 잇따라 남파공작원 소재의 영화들이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남파공작원과 남북분단과 대치, 한국전쟁이라는 한국만의 정세에 기인한 스토리텔링은 이미 한국영화가 꾸준히 모색하고 추구해왔던 풍부한 콘텐츠의 요람이었다. 일제치하 및 해방, 그리고 남북전쟁과 분단의 상황 속에 문학가들이 시대를 심도있게 반영한 작품들을 써내려갔던 것처럼 -고스란히 보고 있노라면 잠이 쏟아지는 한토막들만 삼치토막처럼 선별되어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한국영화에서도 한국의 역사적 사실들은 다양한 이야기로 화면 위에 구현되었다. 다만 여기에 덧붙여 상업성과 흥행성에 대한 모색과 고심이 추가되어 영화로서 구현된 이 한국적인 소재는 ‘재미’ 또한 있다. 절박하고 절망적인 시대 상에 대한 고찰과 구현을 넘어 몰입하여 보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에까지 도달했던 것이다.

이렇듯 한국영화에 있어 남북분단-대치 상황에 기인한 소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적 성격을 지니며, 무수한 변주와 창의의 여지를 지니고 있다.  이는 오락적으로든 시사적으로든 다양하게 서사할 수 있으며, 그 틀이 반복된다하여도 그 안에서 어떤 전개와 요소를 구사, 배합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상업적-영화적 성과를 노려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소재풀(pool)에는 ‘극적’인 것으로 변환할 수 있는 원재료들이 많다.  남북분단-대치의 상황은 극적인 것을 만들기에 적합한 소재장치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한국상업영화사에 있어서, 혹은 영화사에 있어서, 상업적-영화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영화들을 열거해보더라도 위의 상황을 소재로한 영화들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최근에는 장훈 감독의 <의형제>, <고지전>과 장철수 감독의 <은밀하게 위대하게>,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까지 한국의 상황을 소재로한 영화가 상업적-영화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보인 경우가 많다. 이렇듯 위의 소재는 제작자, 연출자, 작가에게 유효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이러한 특징적 소재와 본시리즈의 영화적 형식이 결합하여 최근 몇년간 뚜렷이 그 전승이 엿보이는 영화들이 제작되고, 또한 상업적-영화적으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본시리즈가 실현했던 살풍경한 액션과 인간이 가진 물리적 기질을 극대화한 최정예요원의 임기응변에 대한 묘사가 주는 재미와 이를 십분활용한 장치들이 한국영화 속 남북분단이라는 소재와 맞물려 흥미로운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물들은 단지 본시리즈가 구축했던 장치와 요소들을 넘어 한국의 문화적, 서사적 특징까지 다양하게 뒤섞여 근저가 되었던 원본과 구분을 이루고 있다. 그러한 구분은 곧 기존에 제작되었언 남북소재 영화들과 최근의 영화들 간의 차이이기도 하며, 이 소재의 영화들 중 일부가 이루는 일종의 흐름이기도 하다.

-part 1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