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희_전환기술과 전환교육 [전교조, 무엇을 해야하나 -제2부 (2/2)-]

2015.02.25  발행

일본에서 몇 달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방송으로도 수차례 소개되고 영화로까지 제작된 기적의 사과라는 책이 있다자연은 완결된 시스템이라는 믿음 하에비료도 농약도 쓰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사과를 길러낸 농부 기무라씨의 이야기이다기무라씨는 자연농법을 시행한지 6년 동안 단한개의 과실도 얻지 못한 처절한 실패 끝에 자살까지 결심한다주위의 비웃음과 가족의 만류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바위처럼 꿋꿋이 버텼던 그임에도 도저히 견디지 못할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자살하기 위해 목을 맬 나무를 찾던 중 그는 돈오점수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그가 발견한 것은 그의 밭에서도 멀리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 도토리 나무였다그 나무는 주변의 무성한 잡초들과 해충들 속에 파묻혀 있었음에도 우람하게 자라 많은 도토리 열매가 열려있었던 것이다이 도토리나무가 그의 사과나무보다 더 유리한 조건에 있다고 볼 수 없는 환경인데 도대체 왜 이 나무는 이렇게 잘 자랐을까이 산속의 도토리나무와 그의 밭에 있는 사과나무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었을까이 질문에 대한 강한 호기심은 그를 죽음의 경계에서 다시 삶의 영역으로 불러들였다그리고 마침내 그는 답을 찾아낸다그의 사과나무들이 엄청난 병해충에 시달리며 단 한 개의 사과도 맺지 못했던 이유는 그의 정성이 부족했다거나 그의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문제는 자생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토양에 있었다그가 농지로 쓰는 곳의 토양은 수십년간 농축된 비료와 농약으로 절어 있었던 것이다사과나무의 종자자체가 이런 인위적 조건에 맞추어 수천년간 개량되어 자연물이라기보다는 석유화학 제품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사과나무는 인간이 주는 비료에 익숙해져 뿌리를 더 깊숙이 뻗는 진취적 생명력을 잃어버렸다또 본래 가지고 있었던 자가 치유력도 잊어버려인간이 농약을 통해 병해충을 제거해주지 않으면 쉽게 죽어버릴 만큼 나약해져 버렸다.” (기적의 사과,이시키와 다쿠지)

이에 반해 도토리나무가 심겨있던 그 산은 무위에 가까운 자연이었다기무라씨는 사과나무의 적이라 여겼던 잡초와 곤충 등의 잡다한 생태계가 도리어 자연농법의 필수적 요소였다는 것을 깨닫는다이런 잡다한 것들이야말로 토양을 본래의 건강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 역할을 할 것이고건강해진 토양은 자연스레 거기에 심긴 사과나무를 건강하게 만들 것이었다이제 그는 눈에 보이는 사과나무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토양을 바꾸는 작업에 착수한다우선 볏단을 밭에 넓게 깔아 잡초와 곤충미생물들이 그 밑에서 번창하게끔 했다그 후 촘촘히 콩을 심어 뿌리혹박테리아가 토양 속의 질소의 양을 조절하게끔 하였다마지막으로 클로버를 심어 잡초의 수를 줄이고 식초수를 뿌려 병해충을 예방해나갔다다시 3년 후 자연농을 시도한지 만10년만에 그는 첫 사과를 수확하게 된다태초의 놀라운 맛을 가지고 있으며 상온에 놔둬도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의 탄생이다이후 기적의 사과는 그 놀라운 맛을 본 사람들에 의해 입소문이 퍼져나갔고기무라씨는 전국방송에도 여러차례 출연하며 일약 셀럽농부가 된다.

1. ‘기적의 사과와 교육불가능

나는 기적의 사과를 읽으면서 교육불가능성’ 담론을 떠올렸다학교의 아이들도 기무라씨의 사과나무처럼 본래 가지고 있던 진취적 생명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진보적 교사들이 아무리 헌신하더라도 진보적 교육이라는 과실을 따기는 난망하다그 이유는 그 기본토양 자체가 완전히 썩어있기 때문이다그러기에 기무라씨가 자연농법의 시행과 동시에 엄청난 병충해에 시달렸던 것처럼학생인권을 존중하는 교사가 도리어 교실붕괴를 겪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교사가 교실에서 강력한 왕이 되지 않으면학생 간의 약육강식적 서열이 강화되는 구조로 흘러가기 때문이다경쟁적인 위계서열이라는 인공적인 토양’ 내에서 농약과 비료에 해당되는 것은 교사의 상(칭찬)과 벌점이다이러한 당근과 채찍이 없으면 교실은 쉽게 엉망이 되고 만다그러나 채찍은 그렇다 치더라도 상(칭찬)은 왜 잘못된 것일까목수정은 당근의 폐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그리고 보니 올해 파리의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은 유치원부터 지금까지 그 어떤 상도 받아온 적이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상이란 것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우등상은 물론개근상글짓기상도…그 무엇에도 결과에 따라 주어지는 상은 없다당연히 아이들 간에 서열도 경쟁도 없다아이들 입에서는 공부 못하는 아이‘, ‘잘 하는 아이라는 표현도 나온 적이 없다아이들은 서로가 가진 성격적 특성으로 이해되고 파악될 뿐이다.

우린 채찍을 없애는 일에는 일찌감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지만당근을 없애는 일에는 무심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싹을 틔운다채찍이 야만적이라면 당근은 비겁하다고 할 수 있다끊임없이 눈앞에 드리워지는 당근은 아이들을 움직이게는 할 수 있으나아이들이 배우는 즐거움이라는 진정한 목적에 다가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당근으로 길들여진 아이들은 결국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성찰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고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목마른 사람으로 길들여지기 쉽다.” (교육희망, ‘우리에게 상이라는 당근은 필요한가?’)

채찍은 물론 당근마저 쓸 수 없다면우린 어떻게 해야 유기농 사과를 얻을 수 있을까저번 글에서 나는 학생의 해방이 선행조건이라고 했다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권력 지형에서 학교운영 전반에 대해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는 정당한 몫의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또 이와 같은 권력재분배를 위한 전투에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동참해야 한다고 호소했다하지만이는 교육현장을 둘러싼 정치적인 해결책으로서, “우리는 지금 어떤 교육(이라 쓰고 수업으로 읽는다.)을 해야 합니까?”에 대한 속 시원한 답변이 되진 못했을 것이다.

이 답을 위해선 패러다임의 전환새로운 페다고지가 필요하다.
나는 새로운 전환점에 대한 힌트를 2014년 완주에서 발견했다.

2. 적정기술 청년캠프

석유지옥을 벗어나 불편하지만 즐거운 생태천국으로.” 서울에서 완주로 삶터로 옮긴 친구의 소개로 작년 822일부터 23일간의 적정기술 청년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22일 금요일 저녁 짙게 깔린 어둠을 뚫고 약속 장소인 완주군청 뒤편 운동장에 들어섰다라이트 하나에 의지해 길을 헤매다 여기가 그 장소가 맞는지 의문마저 들었을 때쯤 반가운 실루엣이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친구의 뒤를 따라 캠프 장소인 전환기술연구소 건물로 들어섰다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캠프였기에촛불과 모깃불만이 점점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실내에는 흙과 바람을 닮은 청년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잠시 정적이 흘렀지만모여 있는 사람들의 설레임이 느껴지는 낭만적인 정적이었다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우리는 공동체 놀이를 했다고양이술래잡기매듭풀기,꼬리 만들기 등 몸을 움직이고살을 부대끼며 웃고 떠들면서 우리는 금세 녹아들었다놀이를 통해서 모둠도 결정했다이틀간의 식사 당번을 위한 모둠이었다모둠별로 둥글게 모여 앉아 술자리를 이어갔다완주에 막 귀촌한 청년들민들레학교 같은 대안학교 쌤들경남 남해에서 농사짓고 있는 건장한 청년농부, ‘별에별꼴이라는 청년자립공동체의 음악활동을 맡고 있는 청년 등 하는 일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지만모두 오래된 미래를 꿈꾸는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23(아침부터는 모둠별로 담당된 순번에 맞춰 식사를 준비하였다조리기구는 화목난로벽돌스토브깡통스토브 등을 사용하였기에불을 대피기 위한 장작을 패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다음은 화목난로에 불을 지피는 작업이었는데막대기로 뒤집기도 하고 훅훅 불기도 하며 재를 흠뻑 들이켰을 때 쯤에야 안정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닭구이된장찌개카레밥 등을 로컬에서 생산한 야채들과 먹었는데 아주 꿀맛이었다.설거지는 3개의 대야에 받아놓은 물을 통과시키는 시스템이었는데물을 절약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요리를 하는 과정은 전자렌지와 전기렌지냉장고전기밥솥 등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이었지만 힘든 일로 느껴지진 않았다힘껏 장작을 팰 때는 놀이 같기도 했고모둠원들이 둥그러니 둘러앉아 화목난로에 불을 붙이려고 애쓸 때는 신성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기분이었다.

식사 후에는 전환기술 사회적 협동조합의 박용범씨(전 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로부터 적정기술 강의를 들었다강의를 한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적정기술은 나에게 적당한 기술이다.”란 내용이었다오후에는 김영주쌤의 LETS 강의가 있었다. LETS는 ‘Local Energy Trading System’의 약자인데영주쌤은 이를 배움에 관한 의미로 전유해서 설명하였다, Local(서로 속한 영역 또는 다른 영역의 사람과 만남) Energy(사람이 곧 에너지) Trading(배움의 교환나눔감정의 공유) System(유지 또는 변화 새로운 창작)이 LETS라는 것이다. ‘학교없는 사회에서 이반 일리치가 학교의 대안으로 제시했던 자발적인 공부네트워크’ 1)가 떠올랐다이는 학생들이 공립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치는 주어진 교육과정을 수동적으로 배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과목들을 직접 개설하고지역사회의 재원을 이용하거나 학생이 직접 장인을 찾아가서 도제식으로 배우기도 하는 등의 프로젝트식 배움체제이다.   

1) 이반 일리치는 새로운 정규 교육과정으로 4가지 네트워크를 제시한다. 1.교육목적을 위한 레퍼런스 서비스 2. 기능교환 3.동료연결 4.넓은 의미의 교육자를 위한 레퍼런스 서비스 (학교없는 사회, 박홍규 옮김, p155~157)

꽤나 거창해 보이는 이런 이야기와 달리 사실, LETS의 방법은 간단하다우리는 각자 6장의 포스트잇을 나눠가졌고 거기에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과 가르쳐 줄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적었다그리고 이를 각각 두 개의 작은 게시판에 나눠서 붙였다참가자들은 양쪽의 게시판을 살펴보면서 서로가 배우고 가르쳐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다그리고 호응이 높은 배움거리를 중심으로 강사와 학생이 모여 반을 개설했다그렇게 순식간에 30분짜리 강좌가 15개나 만들어졌다그리고 이를 화이트보드에 옮겨적어 30분 수업, 3교시, 6개의 분반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시간표를 만들었고 각자 관심이 있는 수업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나갔다벽돌스토브 만들기깡통스토브 만들기대나무 만년필 만들기나무 배틀 만들기패트병으로 커주(kazoo) 만들기나무의자 만들기화덕 만들기 등의 수업이 있었고 나는 허리통증 클리닉이라는 반을 개설해서 요가도인체조필라테스 등의 동작을 응용한 나만의 요통완화 비법을 전수하였다.

저녁 프로그램은 모둠별 장기자랑인 작은 음악회로 시작을 하였다우리 모둠은 우쿠렐라와 기타커주도마와 나무상자까지 동원한 난타 공연을 펼쳤다연습시간이 짧아서 음악성은 높지 않았지만모두가 흥겨웠던 즉흥잼이었다그후 미로처럼 생긴 주변 건물들을 둘씩 짝을 이뤄 탐방하는 담력훈련관심있는 주제별로 모여 이야기하는 난상토론춤과 놀이가 어우러진 술자리모닥불 피어놓고 잔잔히 이어간 취중토크까지 우리의 마지막 밤은 끝날 줄 모르고 이어졌다.

24(). 슬프게도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오전에는 냉장고를 재활용해서 만든 태양광건조기기화열 원리를 이용하여 비닐하우스 전체의 온도를 낮춰주는 냉풍기 등 완주 적정기술센터 내에 갖추고 있는 여러 시설들을 둘러보았다점심식사 후에는 모둠별로 자신만의 생활 노하우(적당기술)들을 나누고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며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집에 와서 돌이켜보니옹졸한 마음그릇으로 바쁘게 살던 내게 이번 캠프는 옆구리를 간질이는 봄바람이었다.마치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것 마냥 겪는 시차적응과 이른 그리움에 어지러워 페북에 다음과 같이 끄적이고는 잠들었다.

이 사람들과 살고 싶다그렇게 흙과 바람을 닮은 청춘들과 겸허한 마음으로 일하고 밥해먹고 놀며 살면 천국이 따로 없겠지도시는 화려한 지옥이다사람을 교만하고 각박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의 지옥소박하게 사는 삶이 더 좋다심지어 더 짜릿하다!”

3. ‘전환교육’은 무엇인가?

1) 전환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전환기술’ 2)은 간디의 스와데시운동으로부터 시작됐고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통해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하지만 나는 간디가 애초에 품고 있던 정신(대량생산mass production기술이 아니라 대량에 의한 생산production by the masses)은 슈마허보다 이반 일리치의 저작들이 더 잘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따라서 일리치의 저작들을 인용해 전환기술에 대해 설명하겠다먼저 전환기술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근대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가 중에 한명인 이반 일리치는 현대인들이 새로운 종류의 무력감과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 현대화된 가난은 과도한 시장 의존이 어느 한계점을 지니는 순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이 가난은 산업 생산성이 가져다 준 풍요에 기대어 살면서 삶의 능력이 잘려나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풍요 속의 절망이다이 가난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창조적으로 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데 필요한 자유와 능력을 빼앗긴다그리고 플러그처럼 시장에 꽂혀 평생을 생존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게 된다. 현대의 이 새로운 무력함은 너무나도 깊이 경험되는 것이라 겉으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이반 일리치, 6)

2) 슈마허는 간디의 스와데시’(swadeshi)운동의 영향을 받아 제3세계를 위한 맞춤형 기술즉 중간기술’(Inermediate Tchnology)이라는 개념을 도출해낸다그러던 중에 중간기술이라는 이름이 첨단기술과 대비되는 저급기술 같은 뉘앙스를 준다는 비난에 직면해 새롭게 명명한 것이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다. ‘적정기술에서 ‘Appropriate’은 한글로 직역하자면 적절한적당한이라는 의미의 단어이다그래서 적당기술이라고 부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굳이 슈마허가 명명한 용어를 교조적으로 따를 필요가 없다면나는 간디의 정신을 더 잘 담아내는 전환기술이라는 용어가 적확하다고 생각한다따라서 앞으로 이 글에서도 전환기술이라는 용어로 적정기술을 대신하겠다. ‘전환기술의 전개에 대한 자세한 논의와 슈마허그리고 한국에서 적정기술을 받아들이는 방식(“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기술”)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분량의 문제로 다음 기회에 다루겠다.

이반 일리치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자연스러운 삶으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한다그리고 이렇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자본주의 사회가 지향하는 주체화의 효과 때문이다즉 자본주의는 시민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자족적인 생산능력을 빼앗고 대신 소비자로서의 위치로 그 역할을 한정짓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경제발전이란 언제나 민중이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그 대신에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시장을 초월하는 사용가치(use values)가 상품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었다또한 경제발전은 조만간에 사람들이 반드시’ 상품을 산다는 것을 뜻했다왜냐하면 상품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자연적사회적문화적 환경으로부터 소멸되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환경이 더 이상 이용될 수 없는 것으로 되었다.” (그림자노동이반 일리히, 13)

이와 같이 교환가치가 블랙홀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세상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만인의 가치관이 된지 오래인 먹고사니즘이 바로 그런 대중들의 상황을 말해준다그리고 그것이 바로 경쟁교육의 본질이다자신의 생존에 관련된 기초적인 필요부터 시작해서 유희의 즐거움까지 모든 필요(needs)를 소비를 통해서 해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오직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이에 이반 일리치는 근본적인 전환을 통해 소비노예의 삶에서 탈출하라고 촉구한다.

지금은 전문가의 관리가 아니라 대중의 결단과 정치 행동이 필요할 때다현대 사회에서는 부유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서로 다른 두 개의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첫째는 좀 더 안전하고 좀 더 값싸고 좀 더 쉽게 공급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는 길이다그래서 그 상품에 더 의존하는 길이다또 다른 길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필요와 만족 사이의 관계에 접근하는 것이다다시 말해 이 선택은 생산물의 외양만 바꿔서 시장 의존 경제를 그대로 가져갈 것인가아니면 상품에 대한 의존 그 자체를 낮출 것인가이다두 번째 길로 간다면 개인과 공동체 모두 현대에 적합한 도구를 새로 만들기 위해 사회 구조를 다시 상상하고 설계하는 모험이 뒤따를 것이다그 대신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를 직접 만족시키는 비율은 더 늘어날 것이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이반 일리치, 40)

이반 일리치가 말한 전환의 길은 기술에 대한 가치척도를 개인이 다시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가치척도의 주관화즉 나에게 적당한우리 공동체와 가족의 규모에 적정한 삶의 방식으로 전환하기를 제안하는 것이다이는 돈이 되지 않으면 똥이 되고부끄러운 일도 돈이 되면 의미 있는 행위가 되는 이런 자본주의적 가치척도에 대한 투쟁을 필요로 한다.

이와 같은 이반 일리치의 생각들을 경유해 나는 전환기술을 다음과 같이 정의내리려 한다.

태초에 개별 인간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산능력을 소비노예를 양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부터 탈취하는 것.즉 나와 공동체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기술.’

밤섬해적단 ‘존나 쓸데없다의 노래가

지나가다 똥쌌는데 /
존나귀한 금똥이다 /
존나 쓸데있다 ! //좆빠지게 일했는데 /
돈안주는 일이었다 /
존나 쓸데없다 ! //
엄마아빠 이거봐요 /
돈벌어왔어요 /
참 잘했다! //

똥꼬속에 엄지넣고 /
춤췄더니 돈을준다 /
존나 쓸데있다 ! //
인생이란 무엇인가 /
생각하다 해고됐다 /
존나 쓸데없다 ! //

엄마아빠 이거봐요 /
돈벌어왔어요 /
참 잘했다 ! //

신자유주의 시대에 모든 가치는 화폐적 생산성과 연결된다밤섬해적단의 노래가사처럼 똥을 싸든 무엇을 하든 돈을 산출해내면 가치 있는 일이 되지만내면적으로 가치 있는 일도 돈이 안 되면 존나 쓸데없는 일들로 전락한다.

2) 소비자를 생산자로 바꾸는 교육

최근에 함께 비고츠키를 공부하는 나무라는 벗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그 벗은 6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데아이가 최초로 자기 손으로 밥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한 것이었다햇살이 나른하게 들어오던 어느 날나무는 노곤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낮잠이 들었다그런데 아이가 배가 고프다며 엄마를 깨웠다나무는 잠결에 너가 한번 밥을 해보렴.”하고 대답을 했다그러고는 쌀을 씻고 밥솥을 사용하는 방법의 대강을 일러주었다한참 지나 나무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밥솥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이 잘 앉혀져 있었고한 귀퉁이에 벌레가 잎을 파먹은 듯 듬성듬성 먹은 흔적이 남아있더라는 것이다그걸 발견하고 나무는 깜짝 놀랐다아이가 혼자 밥을 해먹을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이런 우연한 경우가 아니었다면 아이를 계속 엄마에게 의존하게 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 놀랐다오늘날 어린이들은 공식적인 생산자(취업)가 되기 이전까지 일상의 생산활동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다예전에 농사짓던 시골에서 공부하지 말고 농사일이나 도와라.”라고 했던 부모들은 이제 넌 이런 건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외친다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아이들은 의식주와 관련해 전혀 손발을 놀리지 않고도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는 것(소비자주체화)에 익숙하다우리는 그동안 효율성과 생산성에 눌려 정작 삶에서 필요한 기술들을 얼마나 천시하고 부수적인 것으로 치부해 왔는가.전환교육은 가장 먼저 이런 부분에 있어서의 전환을 요구한다.

2) 도래할 재난사회 혹은 제로 성장시대를 대비하는 교육

경제학자사회학자환경학자 등 전공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전망에 대해서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지구환경의 파괴와 지하자원의 고갈로 인류 앞에 어떤 큰 재난이 닥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지금까지와 같은 문명의 성장과 발전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일단 석유와 전기가 중단된다고 가정해보자인간이 만든 각종 화학전기제품은 모조리 크고 작은 쓰레기로 돌변해 버릴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태양열과 같은 원초적 자원과 단순한 도구를 이용하여 화학전기제품들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은 생존능력과도 직결될 것이다꼭 이런 암울한 미래를 전망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의식주의 일상적 필요를 자신의 손발을 놀려 해결하는 전환기술의 가치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전기를 사용하는 거대기술은 결국 다른 생명과 사회약자(밀양)를 착취하고 파괴하기 때문이다.

3) 우주적 시간에 삶의 속도를 맞추는 교육

부부교사인 나의 지인은 최근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두 부부는 퇴근 후에 두 아이의 양육에 대학원 공부까지 병행하느라 집안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그래서 청소설거지 등 집안일을 도와주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고용했다도우미 아주머니의 시급은 3만원인데, 2시간 정도 일해주면 온 집안이 깨끗해졌다한번 이런 맛(?)을 경험하자 주말마다 부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그리고 이렇게 새롭게 생긴 지출을 지불하기 위해 부부가 방과후 수업교육청 영재수업 등 부수적 수입을 얻기 위해 주말에도 일하게 되었다이렇게 두 부부가 정신없이 바쁘게 살던 어느날 생각해보니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사는지 모르겠더란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빠른 시간에 익숙해있다엘리베이터는 우리가 높은 곳에 올라가는 시간을 단축시킨다.드라이어기는 머리를 말릴 시간을 단축시켜준다전기밥솥은 불을 때고 끊임없이 그 앞을 지켜야 하는 시간을 생략시켜준다각종 전자기구들과 거대 장치들은 우리의 시간을 단축시켜주고 생략시켜주어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게 돕는다그리고 그렇게 효율적으로 절약된 시간들은 돈을 버는 활동과 돈을 쓰는 활동에 투입되게 된다.그런데 그러한 효율성이야말로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자기 집에서 어디로 가는 것이성인이 일어나 있는 시간의 5% 이상을 차지하는 미개사회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전형적으로 미개인은 시속 4.5 km로 이동했다이에 반해 근대 이후 모든 사회에서는 일어나 있는 시간의22% 이상이 수송에 소비되었다그것은 집에서 차고에 가는 시간차 속의 대기시간교통사고로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음주운전의 결과 경법원에 출두하는 시간차구입대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시간세금을 내기 위해 일하는 시간 등을 포함한다시간당 수송거리는 현대사회가 미개사회보다 뛰어나나미개인의 5% 수송시간보다 4배 이상인 22%라는 시간에 5% 정도 빨리 간다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학교없는 사회 283쪽 )

전환교육은 우주의 본래 시간을 느끼며그 흐름에 몸을 내맡기게 하는 교육이다사랑은 천천히 걸을 때 찾아온다다른 생명의 숨소리를 듣고그의 심장박동에 나의 리듬을 맞추기 위해서는 천천히 걸어야 한다세계화를 통한 국제적 하청과 산업화를 통한 대량생산 시스템은 지구의 시간을 왜곡시켜 버렸다우주의 속도에 다시 우리 삶의 속도를 맞춰야 타자와 나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결론

사실 이 글은 약 5개월 전에 쓴  2호 글 3)과 연속된다. 2호 글을 통해  교육의 근본적 불가능성(“학교에서 교육이란 것은 불가능하다!”)을 드러내고자 했다면, 이 글은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그럼에도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답을 찾고 했다. 물론 한 편의 글로써, 완결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이 글을 통해 함께 새로운 미래, 혹은 ‘오래된 미래’를 향해 고민할 동지들이 모였으면 좋겠다. 아래는 미래교육에 대하여 내가 앞으로 품고 가고자 하는 ‘방향키’들이다.



1) 생태교육에서 전환교육으로!
미래교육에 대한 논의가  ‘생태’보다는 전환에 더 방점이 찍혔으면 좋겠다. 그것은 학교의 설립 근거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근대적 사유 전반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을 뜻한다이는 생태적 실천뿐만 아니라 우리 삶을 둘러싼 가치척도 전반을 뒤엎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실행(轉換한 바퀴 굴러 위와 아래를 바꾸다.)을 요구하는 것이다.

2) 시시한 삶을 지향하는 교육학
교육 불가능이라는 암담한 현실을 어떤 실천으로 바꿔나갈 것일가두 가지 차원의 실천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그것은 청소년의 민주적 시민권 확대를 위한 권력투쟁에 운동가로서 동참하는 것이다두 번째는 교과각론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수업 컨텐츠를 축적하는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알량한 지식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시시한 삶에 대한 응원으로서의 각론이었으면 좋겠다풍운아 채현국은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6년을 교육받습니다그것도 경쟁적으로 잠도 안 자고 오만 짓을 다하면서 교육 받습니다제발 그 독을 어떻게 하면 빼느냐를 생각하십시오.” 경쟁에서 이기고 갑이 되기 위한 훈련으로서의 영교육과정학교에서의 16년은 자기계발의 의지’(서동진)만을 다지는 시간이다이 거짓 정신에 길들여진 학생들에게 시시한 삶만이 행복한 삶의 대전제라는 진리를 죽비처럼 깨쳐줄 스승은 없는 것일까? “잘난 사람 되지 말기쓸모없는 일 하기누구의 앞에 서지 말기누구의 뒤에 서지 말기게으르게 지내기경쟁하지 말기” (오늘의 교육 21김서린 187)라는 가치를 어떻게 전달할 지 고민하는 교육학이 우리에게 나왔으면 참말로 좋겠다.

3) 미래세대의 전망에 대한 관심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화두는 미래세대의 입장에서 고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현재보다 미래가 더 암울할 것이라는 시대전망 앞에서 작금의 기성세대는 미래세대에게 조금 이라도 부채의식을 느낄 필요가 있다지구의 환경이 지속가능성의 역치를 넘어섰는지 따지는 것도 시급한 일이지만 청년들이 맞닿드린 정치경제적 상황은 이미 파국적이다우리는 장래희망란에 정규직이라고 적는 청()년의 암담한 상황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는가이를테면 학교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학교 이후의 삶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아마도 예비사회인으로서의 그들의 절규를 그들의 목소리로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일베와 IS, 그리고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미래세대가 처한 극악한 경쟁상황과 그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 무대응이 그들을 괴물로 만들고 있다는 증례이다그것은 우리가 교단 위에서 행한 교육이란 것의 결과물이 무엇인지 추적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들의 호소는 자신들의 고통에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기에 나타난 절규나 다름없다아무도 이십대들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이들도 아무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게 돼버린 셈이다자신을 아무도 역지사지해주지 않는데자신이 어찌 역지사지의 입장을 가질 이유가 있겠는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오찬호 p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