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모자_헬로우, 미스터 킴? : 신학철과 김홍석에 대하여

2014.09.20  발행

맥주, 쥬나 리 (언니모자)

기존의 에서도 나름 당한 일들(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젊은날의 기억)이 많지만 을 비트는 미스터킴 –?이싸람이?-_- 마초들은 여성혐오로 묶이는가 싶은 미술노동자들이 전시를 보고 이메일로 대담을 나누었습니다.   
자기애로의 영원회귀와 낭만에 대하여‘ (ft.최백호)

한국근대사-종합, 캔버스에 유채, 1983,

신학철로 시작해 보자.
  80년대신학철은 정부에서 제시하려던 현실의 상과 국민이 겪고 있었던 현실의 상이 분명히 다름을 인식하고 그러한 모순을 치밀하게 연구하는 것으로한국 근대사’ 시리즈를 만들어냈다김재원1은 신학철과 오윤의 작업을 비교하면서 오윤이 추상적으로 민족이라는 개념을 현실화하려는 데 비해 신학철이 한국의 구체적인 근대사를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보여지는 대중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인식하고 그것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사실신학철이 이미지를 다루는 태도는 성완경2의 관찰로 조금 더 잘 설명할 수 있겠다. “그의 조형어법이 매우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는 점… 일종의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랄 수 있는데 그 핵심에 기계야수그리고 남근적 에로티즘이 포괄되어 있다.”

 여성을 계속하여 타자화하는 그의 태도는 민중과 여성을 다른 범주 안에서 개념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신학철은 국가 공권력 VS 노동자 민중의 구도로 현실을 바라보았으며이 때 성 차별은 문제화되지 못한다오히려 화면의 구성에 있어여성 신체에 대한 대상화는 노골적이며 다채롭게 드러난다왜곡된 현실을 반영하는 화면에서적어도 성에 대해서만큼은 깊은 성찰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작가의 위치는 나르시시즘적으로 도드라진다.

김홍석의 <post 1945>에서그의 위치는 나르시시즘 쩐다.” <post 1945>가 전시되었던 《밖으로 들어가기》에서는 오브제와 텍스트가 함께 제공되었고관객은 필사적으로 정보를 취합하고 판단을 내리려 애쓴다이 과정에서 작가는 일정 부분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예를 들어토끼 오브제 속에 정말로 누군가 시간당 푼돈을 받고 인형 속에 들어가 일하고 있다면 작가는 고용주로서 열악한 노동 조건을 제공한 당사자이다하지만 <post 1945>에서 그는 충분히 투명한 창이 되지 못한다그는 성매매 노동자라는 말 대신 창녀라는 말을 쉽게 가져온다그리고 창녀라는 단어를 아무런 성찰 없이 내뱉을 수 있는중심적이고 권력적인 자신의 위치를 어떤 식으로든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김홍석, MOP-131014 걸레질-131014, 2013, urethane paint on wood, 121x121cm

김홍석의 <post 1945>를 비롯한 일련의 작업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신학철을 짚어보는 것은 중요하다김홍석을 포스트 민중미술이라는 둔탁하고 희미한 카테고리로 묶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을 지 몰라도그의 작업들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타자화된 계급의 사회, 정치적 현실에 약간의 관심을 환기하며 관람자의 윤리적 기제를 건드리는모종의 비틀린 사회 참여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그는 정치적 미술을 수행했던 일군의 예술가들과 막연하게나마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 보이며자본주의의 생산구조의 밑바닥을 차지하는 일용직 노동자외국인 노동자계급사회의 변두리에 자리하며 사실상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룸펜 프롤레타리아?성매매 노동자그의 용어로는 창녀?를 작업의 표면 위로 떠올리는 등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이해하는 데 있어 동시대 한국의 좌파 액티비즘3의 관점을 빌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기실이러한 설명이 구차하게 여겨질 정도로그는 작업 설명에서 종종 대놓고 좌파적 관점을 이용하고 있음을 드러냈다이처럼 그의 작업에 운동권적’ 잔여가 맴돌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좀처럼 상업 갤러리 전시에 관심을 갖지 않는 서울의 액티비스트들이 피켓을 들고 하필 그의 전시장 앞에 나타난 것은해괴한 일처럼 여겨질 지도 모른다김홍석과 신학철의 작업은 형식적으로는 판이하지만, ‘소외당하고 억압받는 무명씨들을 민중이 되었든 창녀가 되었든 노동자가 되었든 덩어리 추상 명사로 소환하면서 작가와 관객은 당연히 그 계급이 아님을 전제하고 어떤 어조로든 윤리적 각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이 때그들을 호명하고 범주화한 발화자는 똑같이 대상을 타자화하고 소외시키는 범행을 피해갈 수 없다그 명사에 내포된 정치적 함의가 결코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소외된 타자를 호명할 때 벌어지는 타자화란 아리송해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민중이 자기 보고 민중이라고 하는 것 봤나그 누구도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지 않는다이러한 모순적 지점을 김홍석이 몰랐던 것 같지는 않다어쩌면 그의 정치적 작업들은 모두 관용적 함의가 용태적 모순을 일으키는 상황을 빚게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외국인 노동자(로 취급되는 어떤 사람)를 매스 미디어에서 주요 명사를 다루듯 인터뷰한 <이야기 (2004)>도 그렇고불법 체류 노동자가 인형옷을 입고 전시장에 누워있다고 거짓말한다든지마사지 업소에서 진짜 성매매 종사자를 초대했다고 주장하는 등우의적인 방식으로 노동자나 창녀라는 붕 뜬 관념을 개인화하고 탈신비화하려는 노력 아닌 노력도 엿보였다고 해야할까그러나 이러한 작업들은 그의 전시에서 일종의 제스처로 기능하며 작가의 정치적 색깔을 의뭉스럽게 치장할 따름이지그 어떤 실질적 내용도 전달하지 않고 그저 끊임없이 관객의 시선만을 문제삼으며 도돌이표를 그린다한편 앞서 말했다시피 정치적 주역으로 부상해야 마땅할 억눌린 계급의 정체성을 집단화하고 덩어리짓고 신비화했던 작업의 종결자는 신학철이었다언뜻 상반되어 보일지 몰라도이러한 김홍석과 신학철의 차이는 대상에 대한 미적 태도의 차이에서 기인할 뿐 사실 그 원천은 같다.
 
한국의 역사와 미술사작가의 위치

형식적인 민주주의조차 기능하지 못했던 87년 이전과 이후가 다르듯물론 신학철과 김홍석은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신학철은 89년 작품 모내기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이라는 혐의로 3개월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으며 작품은 압수당했다국가적 명분 앞에서 작업이 쉽게 처분될 수 있었던 시절오히려 신학철이 바랬던 것은 작가와 관객의 동질성에 호소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세상이 가능하다.” 당시 그가 보여준 유토피아는 시대적 맥락 안에서 시각적인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우리라는 범주를 너무 빠르고 쉽게 구체화했다. ”우리가 순백의 정치적 주체라는 환상은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시커멓기 그지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이고 일시적으로서만 가능했다동질하다고 생각했던 우리들 사이의 권력적 차이 또한 메울 수 없이 뚜렷하게 드러났다여성 신체에 대한 모욕적인 시각적 묘사는 고통받는 민중을 표상했다기보다정부라는 거대 남성에게 산산조각난 자신의 남성성을 통합하기 위한 희생양을 찾았던 것에 가까웠다신학철은 그의 판단을 명확하게 드러냈고이것에 동의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을 관객에게 넘겼다김홍석은 [밖으로 들어가기]에서 작가가 제공한 배경과 맥락에 대해서도 성찰해보라 권했으며되도록 텍스트를 오브제와 일치하지 않도록 작성하여 간격을 둠으로서 그렇게 했다왜 <post 1945>에서만은오브제와 텍스트를 분리하고 그 간격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오브제와 텍스트가 합치되도록 두었을까여성은 관객뿐만 아니라 작가에게도 타자이며 이방인이다작가는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호명하여조명이 내리비추는 데 끌고 온다그는 주로 그 주인공들을 무대에 세워 놓는 것으로 임무를 마친다하지만 <post 1945>에서 그는 퇴장하지 않았다. <post 1945>에는 후속 작업이 있는데퍼포먼스에 등장했던 여성은 배우이며 작가와 사랑하는 사이라는 내용을 적은 이미지텍스트이다자신의 위치를 로맨티시즘으로 승화시키려는 그의 감각은 신학철과 매우 유사하다.

그렇다면 신학철을 비롯한 이전 시대 정치적 미술의 뜨겁고 텁텁한 에고이즘 대신김홍석의 차갑고 이기적인 시니시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단지 신학철이 경북 김천 출신의 44년생이고김홍석이 서울 출신 64년생의 서구권 유학파이기 때문일까?4 이 문제를 생산적으로 구체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의 예술적 태도그 미학적 배경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신학철이 표방하는 예술가상은 개인적 영달을 희생하며 정치적 선구자를 자처하는 민중의 지팡이 형과 사생 실력으로 승부하는 전통적 예술가상이 결합된 데에 근대적 작가주의가 첨가된 형국이다이는 후기 식민지 특유의 미술 개념의 병렬적 발전을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그 의고적인 성격 때문에 신학철의 작업은 미술 전반의 형식적 발전을 불러올 아방가르드적 씨앗을 갖고 있지 못했고기실 그는 거기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김홍석은 전지구적’ 미술 지형에서 모종의 예술적 쇄신에 대한 지속적인 욕심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밖으로 들어가기>에서 그는 1980년대 미국 미술에 뿌리를 둔 일종의 차용미술가였다여기에 약간의 정치적 관심과 비아냥을 첨가하면 김홍석은 말끔하게 유형화된다김홍석은 내용적 측면에서나 형식적 측면에서나주류 헤게모니를 완전히 수용하면서도 약간의 냉소적 거리를 두는 이중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그의 <개같은 형태 (2009)>는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준작으로천문학적인 판매가를 기록한 제프 쿤스의 조각을 패러디하여 쭈글쭈글하고 커다란 검은 봉다리들이 강아지 모양을 띠고 있는 모습을 브론즈로 캐스팅한 작품이다표면적 사실을 기술함과 동시에 욕설로도 읽힐 수 있는 작품의 제목 역시, ‘주류를 따라가되 그것을 숭앙할 정도로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았다는 태도를 표시하는 그의 종래의 입장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문제의 <post 1945>가 포함되어 있었던 《밖으로 들어가기》는 차용미술에 대한 김홍석의 양가적 태도와 정치적 관심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시였다.여성운동가들의 반발에 김홍석도 적잖이 놀랐는지아니면 그간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좋은 노동 나쁜 미술》에 전시된 그의 신작에서는 정치적 의제에 대한 표면적 관심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인력센터에서 사람을 불러 걸레질을 시키는 것으로 작품을 완성했다고 기술한 회화 <걸레질-121107 (2012)>만이 노동 문제에 대한 관심을 흐릿하게 드러내며작가와 생산자의 모호한 관계로 예술적 주체성에 대해 반문하는 양비론적 태도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좋은 노동 나쁜 미술》에서 그의 관심사는 명확히 이행했다전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과거 작업들을 제외하면여러 매체가 뒤섞여 다양한 관심을 보여주었던 《밖으로 들어가기》와 달리그는 허접한 재료로 어설피 만든 원형을 값비싸고 내구성이 강한 재료들로 사실적으로 본떠 제작하는 조각적 작업을 많이 선보였다이전 작업들 중에서는 작가가 제시하는 스크립트를 다른 퍼포머가 수행하거나 하는 식으로 기획자와 수행자가 분리되는 작업들을 많이 전시했는데작가가 원형을 제작하고 최종 작품은 다른 기술자가 완성하는 일련의 조각 작업들과도 맥을 같이하며 그의 관심사를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이미 당연시되고 있는 예술 작업에서의 협업과 분업용역의 문제를 신랄하게 뒤틀 수 있을 만큼의 신선한 문제 제기 방식은 보이지 않고안전한 형식의 울타리 안에 머물고 있다.

   《밖으로 들어가기》가 얼마나 좋은 전시였는지 아닌지를 떠나서이번 《좋은 노동 나쁜 미술》에서 그는 정치적으로도예술적으로도 몇보 후퇴한 것이 분명하다미온적인 발전의 단초들을 조금씩은 내포하고 있을 지 몰라도세련된 모호함이라기보단 우유부단함과 무책임으로 자신이 제기하는 문제 의식들을 다시 얼버무려놓는 모습이 역력하다이번 신작들에서 그의 일관성은 단 한 가지로견고한 예술적’ 재료로 작품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미스터 킴(2012)>같은 인체 조각들을 전시 기간 내내 퍼포머를 쓸 돈이 없어 조각으로 만들었다고 부연하는 것은 미술 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는 형식을 합리화하는 어줍잖은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오래된 미래

당시 제조업건설업 등 2차 산업에 힘을 쏟고 있던 정부는 농촌과 농민들을 게으름나태무능과 동일시하여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도시화가 진행되었으며 도시적인 것들이 시각적 담론의 장을 이루었다. “민중으로 호명된 타자들에 대한 언어는 거의 유통되지 않았고민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들은 희생을 무릅써야 했다그러한 가운데서 신학 철은 언어 없는 자들을 재현하는 동시에 이들이 시각적으로 장엄하게 보이길 원했다. “민중에게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그가 찾아낸 방식은 여성을 다시언어없는 자들로 만드는– 대상화하는 것이었다.

   김홍석은 타자를 다루는 언어의 과도함에 대해 문제 의식을 드러낸다언어는 항상 말하는 대상을 빗겨나간다는 것그래서 자신은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식으로상황들만을 구성해놓고 그 자리를 빠져나간다. ‘말해진 것은 그대로 일어난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브제와 언어가 붙어 있으면서도 엇갈리는 일치와 불일치의 상황이 김홍석의 작업에서 매우 핵심적인 부분이다하지만 그는 <post 1945>에서 스스로 창녀를 호명했고후속 작업에서는 그녀와 사랑하는 사이라고 부연했다낭만을 부각시키며 자신의 권력적인 위치를 지워버리는 이 방식낯익다.

   《좋은 노동 나쁜 미술》에서 그는 언어의 비중을 의도적으로 줄인 듯 하다후줄근한 각목이 얼기설기 짜맞춰진 것으로 보이는 오브제는 스테인레스 스틸이고박스 몇 개를 쌓아올린 것으로 보이는 오브제는 레진으로 만들어졌다. 2010년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의 <시징맨 프로젝트>까지만 해도 그의 전략은 단지 박스에 불과한 것에 대해 언어들을 갖다 붙여 관객들이 그 서사성 안에서 유희하도록 이끄는 것이었다이제 미술계에 자리잡은 그는 쓰레기봉투(의 형태)를 청동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노동과 미술의 이분법에 문제를 제기하는 ’ 한다이전에는 작품에서 드러났던 그의 상황극이이제는 전시 자체의 허구성으로 관객을 피곤하게 한다그러나 이 변화는 여성을 낮은 곳에 임하게 함으로써 거대한 남 자아를 확립하려 했던 지난날의 행보에서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할 것이다오래된 미래

1) [한국현대미술 197080] (한국현대미술사연구회 지음, 학연문화사 펴냄) 중 ‘1970년대 한국의 사회비판적 미술 현상-「현실동인」에서
「현실과 발언」형성까지’ 김재원. 125쪽.
2) [신학철_우리가 만든 거대한 像] 전시평론, 출처: www.neolook.com
3) 액티비즘이라고 소리내어 읽고 마음 속으로는 운동권이라고 또박또박 읽는다
4) 김홍석은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 후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