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윤진_불명예의 수사학과 안전한 개인들

2015.07.01 발행

어떻게 “현대적” 국가의 전염병 관리가서로에게서 분리된 “안전한” 개인을 만드는가?

2011년 구제역 행 당시 (의) 돼지 수십만 마리가 살아 있는 채로 구덩이에 던져졌을 때, 현대적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동물의 고통보다 우선시 되었다. 인간으로 구분되지 않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소보다 값싸고 개체수가 많다는 이유로 돼지는 산 채로살처분 됐다. ‘처분’이라는 말은 어떤 사물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을 때 그것을 처리하는 것을 일컫는다. 즉, ‘살처분’은 생물을 죽임으로써 그것을 사물로 만들어 폐기한다는 것 만이 아니라, 폐기되는 생물이 이미 그 전에 사물로서 대해진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살처분에 대한 한국정부의 표면적 이유는 가축농가의 생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는데, 사실 육류를 거의 수출하지 않는 한국의 무역현실을 고려하면 구제역 안전등급의 보호는 의심스러운 목표다. 때문에, 가축농가의 생계보다는, 국가의 ‘체면’과 직결되는 국제기구(OIE)의 안전도 인증이 더 중요하게 취급됐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빠른 경제성장을 통해 국제원조 수혜국에서 원조국으로 거듭난 것을 국가적 자랑으로 삼던 한국은, IMF를 거치며 민족적 자존감에 상처가 되는 단계적 경제신용등급하락을 경험했다. 이 수치스러웠던 과정은 다시 한번 경제성장을 위한 국민적 노력 (새마을 운동)을 되살리자는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극적으로 새롭게 쓰여졌다. 국제기구의 경제 ‘안전도’ 등급평가는 곧 국력, 국격의 등급평가와 직결되었으며, 그 것의 회복 역시 단순히 경제적인 관점이 아닌 민족적 협력과 자존감의 회복으로 표현됐다. 이같은 맥락에서, 구제역 “청정국” 등급의 회복은 실제적으로 효용이 없는 것일지라도 지켜야하는 것으로서, 곧 실추된 국가 명예의 회복으로 이해되었다.  

 구제역 유행을 둘러싼 불명예의 수사학은 비단 이 개별적 유행만이 아니라 대형 전염병 유행때 마다 반복된다.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유행을 장식하는 언어는 이 병이 가축만이 아닌 사람에게 전염되는 병이라는 점에서 더 극대화됐다. 병원 감염이 주 전염 통로로 밝혀짐에 따라 “후진적 병실문화”가 도마 위에 오르고, 감염된 의료진의 서사는 국가를 위한 개인의 비극과 희생으로 점철됐다.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감염자들이 비난의 화살을 맞는 동안, 그 결과로 추락하는 한국과 한국 의료계의 현대적 이미지, 국제적 위상에 대한 위협이 거론되었다. 이제까지 한국보다 발전되지 않았다고 여겨졌던 중동이 비교대상이라는 점에서 MERS 유행의 관리는 국가간 명예 겨루기의 양상까지 띠게된다. 여기서 프리쉴라 월드(Priscilla Wald, 2007)가 정의한 전염병유행서사 (the outbreak narrative)는 한국이 열망하는 초기 선진국의 국제적 위상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Wald는 유행병이 다뤄지는 전형적인 서사에서 항상 전염병이 “미개한 후진국”에서부터 번져나와 “발전된 선진국”을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에 주목한 바 있다 (p.45). 여기서 전염병은 ‘나’의 동질성과 우월성을 위협하는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극단적으로 뒤틀린 형태로 나타난다이런 전형적 서사를 따르며일부 언론은 낙타와 친밀한 접촉을 하고 낙타 고기와 젖을 먹는 중동의 “후진적” 문화와 한국을 분리하고, 중동 내의 감염률과 한국 내의 감염률을 연일 비교하는 한편, 국가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점 퍼져 나가는 바이러스 때문에 한국이 국제사회 내에서 어떻게 비칠지를 끊임없이 걱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주변화된 비서구외국인 (노동자)들이 바이러스와 동일시되고 차별받는 현상은, 슬프게도 놀랍지 않다.

 자신을 평가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통해 스스로를 끝없이 타자화하는 이런 식의 관점은 한국이 근대화 과정에서 뿌리 깊게 내면화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것이 경제적인 것이건, (경제적 이득으로 연결되는생물학적인 것이건국제기구가 심사하는안전 등급은 곧 강대국이 인정하는 한국의 선진도 등급으로 이해된다현대서양의학을 받아들여 높은 수준의 의료체계를 구축했다는 자신감은 연이어 나타나는 병원종사자 감염에 따라 점차 흔들렸지만, 병원 전파의 원인이 현대서양의학 자체나 사회구조의 문제(비정규직 문제, 의료진 초과노동, 자본의 흐름에 따라 활발해진 국가 간 인구 이동 등)이 아니라 후진적 개인 (또는 개별 병원)의 무책임한 일탈이라면, 이 위기는 예외적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 무책임한 개인들은 국가 전체의 위상에 해를 입히는 반국가적 개인이다결국, 전염병 유행은 한국이 선진화로 가는 매끄러운 사다리에서 미끄러지게 만드는 복병이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적 개인들은 한국이 왜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는 가에 대한 예외적 이유로서 작동한다. 이렇게 일탈하는 개인들이 발목을 잡지 않는다면, 또는 그런 개인들을 예외로 규정해서 제외한다면, 한국은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이끄는 것은 역시나 “최전선에서 방호복으로 무장한 의료진”의 눈물나는 개인적 희생과 민족적 “전쟁”인 것이다. 이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90)가 말했던, 각 개인의 몸과 인구의 생명, 인종적 생존의 관리자로서의 현대국가가 행사하는 생명정치의 한 모습에 다름 아니다 (p.137).

 여기서, 후진적이라고 회자되는 관습, 감정, 행동, 문화는 현대서양의학이 내놓는 전염병에 대한 “전투” 방법인 격리와 정반대되는 대척점에 서있다. 그것들은 언제나 너무 끈적거리고, 뜨거우며, 질척하다. 선진성과 후진성이 대립할때, 한국인의 긍정적 전통으로 불리는 정(情)과 예(禮)는 종종 후진성의 대표적 감정과 관습으로 여겨진다. MERS 사태를 “후진적 병실문화” 탓으로 돌리는 주요 일간지 특집기사에서, “면회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지만 다리를 다쳐 입원한 손자를 어떻게 안 보고 가냐”는 어느 할아버지는 “정에 이끌리거나 매정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친척과 지인의 병문안을 가는 한국적인 문화”의 표본으로 쓰였다. ‘정’으로 대표되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친밀한 감정과 교류는 일반적인 전염병유행서사에서 무책임한 보균자가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속성이다. 일반적 상황이었다면 사회성의 표현으로서 여겨졌을 친밀한 접촉은 보균자의 반사회성의 근거로 작동한다. 이 때의 친밀함은 비합리적인 관습의 산물로서, 근대 이후로 억제됐다고 믿어진 전근대적인 과거의 유물로서 취급된다. 아직도 정에 “이끌려” 병문안을 가고, 병실에서 필요 이상으로 지체하며, 환자와 오래 교류 또는 접촉을 하며 격리의 규칙을 어기는 개인들은 한국의 부끄러운 후진적 과거를 상기시킨다. 그들은 한국이 떠나왔다고 여긴 과거를 여전히 체화하고 있는 개인들이며, 그러므로 현재와 미래를 체현하는 현대서양의료진을 죽음으로 미끄러지게 한다. 여기서 전근대적(후진적) 과거는 곧 죽음이며, 완전히 현대화(선진국화)한 미래는 생명으로 간주된다. 다시 말하자면, 현대서양의학의 격리는 곧 어지러운 현재에서 생명(미래)를 죽음(과거)로부터 격리해내는 원칙으로 여겨지며, 이런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위생적이었을 병원이라는 현대적 공간은 과거로부터 온 개인들에 의해 “뚫리고”, “침범”당하며, “오염”된다.

 이런 관점은 의료진이 확진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그들의 오염된 몸의 일부에 노출되는지에 대한 수사학을 형성한다. 환자의 체액과의 접촉이 감염을 발생시킴에 따라, 환자의 몸와 체액은 극도로 위험한 것만이 아닌 “오염”시키는 것, 즉 더러운 것으로 묘사된다. 의료진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고군분투하며 치르는 동안, “바이러스를 뿜어내는” 환자의 체액에 오염된 방호복이나 손에 몸을 순간적으로 스쳐 순식간에 감염되는 이야기들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위험을 안고 “최전선에서 싸우”는지를 강조한다. 여기서 환자의 체액이 발생하는 몸과 그 체액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는 의료진의 몸은 바이러스 감염대상이라는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같지만 수사학적 관점으로는 명백히 다르다. 흰 “방호복으로 무장한” 의료진의 몸은 오염된 환자의 몸을 어쩔수 없이 만지지만 노출되기 전까지는 깨끗하게 분리된 몸이다. 환자의 몸은 오염되었기 때문에 격리됐지만, 의료진의 몸은 분리되었기 때문에 깨끗하며, 의학적으로 분리된 접촉을 통해 오염에 대한 방어와 전투력을 유지한다. 이 전쟁에서 사실상 적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이러스에 “오염”된 몸과 그것과의 접촉이다. 감염된 몸은 병원균을 내뿜는, 그래서 병원균 자체보다 더 더럽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된다. 얼마나 이 더러운 (또는 더러워질 가능성이 있는) 몸을 잘 격리하고 봉쇄하느냐에 따라 이 “전쟁”의 성패는 달라진다. 몸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체액은 후진적 문화처럼 끈적거리고, 달라붙으며, 필요 이상으로 머무르고, 타인의 사적공간을 침범하며 오염시킨다. 같은 이유로, 몸은 과거의 것으로서 과학이 완전히 정복하고 억제하지 못한 위험한 영역으로 묘사된다. 아무리 잘 봉쇄해도, 몸은 잘게 부순 체액 방울이 되어 방호복을 적시고 마스크의 틈새와 장갑의 구멍을 파고든다. 잠깐의 “무의식적” 실수로 되돌아온 과거의 망령에 현대화의 성역은 “뚫리고,” 연약한 맨 몸만이 남아 과거의 몸을 마주한다. 그렇게 오염된 몸에 너무 가까이 닿은 의료진의 몸은 격리되어 과거(죽음 또는 그에 가까운 위험)의 영역으로 건너간다.

 이러한 격리의 “전쟁”에서 추구되는, 사회적으로 적절한 인간이란, 개인으로서는 철저히 분리되었으나 집단으로서는 일사불란하게 규율을 따르도록 훈육된, 그래서 타인과 국가에게 ‘안전한’ 개인들이다. 그러나 이 ‘안전함’은 나를 타인으로부터 분리하고, 우리 사회에 내재한 문제를 외부로부터의 위협으로 치부함으로써 얻어지는 환상일 뿐이다.


참고문헌

권순완. “한국 메르스, 감염위험 낮은 수준…시간은 걸리겠지만 끝낼 수 있어,” 조선일보, 2015년 6월 19일

김성모.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합니까’…몸 던지는 응급실 의료진들,” 조선일보, 2015년 6월 18일

김철중, 정철환. “메르스 最前線, 방호복으로 무장한 의료진도 뚫렸다,” 조선일보, 2015 6 16

김충령 외. “후진적 病室문화 바꾸자” 특집기사 시리즈조선일보, 2015 6 16-18

선명수20 육류 수출 위해 1조원 규모 살처분소탐대실!,” 프레시안, 2011 1 16

오동현김예지“’우리는 바이러스가 아닙니다’…메르스에 눈총받는 중동인,” 뉴시스, 2015 6 18일  

Foucault, Michel. The History of Sexuality, Volume 1: An Introduction, Translated by Robert Hurley, New York: Vintage Books, 1990.

Wald, Priscilla. Contagious,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