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무위 예술가)_김창겸 작가 대담회에 대한 소회

2014.12.13 발행

오랫동안 미술 제도권과 거리를 두고 살다가 2014 미디어시티 프리 비엔날레에 관심 있는 주제의 강연회가 있어 갔었다. 그런데 그날 토론시간에 국공립 미술관에 초대되는 작가들에게 아직 법적으로 아티스트 피(fee)에 대한 조항이 없다는 걸 진행자였던 전시감독의 추가설명을 듣고 적잖이 의아스러웠다.‘이제까지 국공립미술관에 초대된 작가들이 연구대상입니다.’라는 소감을 남기고 집에 오는 길에 오래전에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봤다. 부산시립미술관의 기획전에 참여했을 때 아티스트 피(Fee)라기 보다는 작품 운송료 정도가 희미하게 떠올랐고 그것이 법적인 근거이기보다 큐레이터의 정중한 태도, 미술관의 예산부족 문제이거니 했다. 그리고 서울의 한 국제행사에 참여했을 때 얼마의 참여비가 있었으나 당시 지방에 거주하는 작가임에도 행사지역인 서울작가와 같은 참여비를 받은 것을 알고 초대된 지방작가에게 차비를 추가해서 지불할 것을 총감독에게 요구해서 받은 것도 생각난다.

그 후로 나는 제도권과는 거리가 있는 무위예술가로 활동을 해왔기에 구체적으로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체감하지 못하다 2014 미디어 시티 프리비엔날레가 계기가 되고 2년 전 세계일보의 김창겸 작가에 대한 기사가 참고되어 작가에게 인터뷰를 신청했다. 오늘날 활발하게 국공립 미술관의 전시 초대를 받으며 활동하는 현대미술작가들이 겪는 제도의 문제점에 이름과 얼굴을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밝히며 홀로 저항하는 중견작가는 한국미술계에서 귀하다.

 김창겸 작가의 프레젠테이션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경험과 자료가 풍부했고 젊은 작가들이 참고해야 할 다양한 사례가 있었다. 아티스트 피(fee)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의 개인으로서 작가가 감당하기 힘든 사례와 원치 않는 정치적인 행사에 미사여구(美辭麗句)의 기획서로 작가가 동원되고 재능기부라는 명분으로 예술가들이 착취되는 경우 등 다양했다. 심지어 도로변 대형 조형물에 관련 공무원과 시행업체 직원들 그리고 은행직원 명단까지 돌에 새겨져 있으나 정작 작가 이름만 빠진 경우도 있었다. 처음엔 기사를 쓸 입장으로 작가와 인터뷰를 했지만, 그동안 동시대 미술작가로서 김창겸 작가가 현장에서 홀로 바위에 계란치기 했던 저항들을 한 장의 기사로 담아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식을 고려하다 얼마 전 갤러리 <두들>을 운영하는 최라윤 작가의 동의를 받아 지난 12월 8일 대담회를 함께 진행했다.

예술가의 근무시간

현대미술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하는 장을 판매망으로 구분한다면, 상업화랑 역할을 하는 갤러리와 비영리 공간인 대안공간으로 나뉜다. 이 두 공간은 작품의 판매망뿐 아니라 매체와도 관련이 있다. 갤러리에서 주로 전통적인 매체를 전시한다면 대안공간에서는 실험적인 매체를 원하는 작가들이 주로 찾는 공간이다. 실상 갤러리에 소속되어 전시하는 작가 중에도 작품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도 극소수지만 더구나 대안공간을 찾는 작가 중 작품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동시대 미술작가들은 알바로 투잡, 쓰리잡을 하며 생계유지 외에 작품 재료값과 작업실이나 작품보관 창고 대여비를 지불한다. 한편 그들이 실제로 작품에 드는 직접적인 노동외에 작품 구상과 창의력에 영향을 받기 위해 보내는 시간과 작품의 기술적인 면을 습득하는 비용을 모두 고려하면 일반 직장인의 근무시간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자면서 꿈에서 영감을 얻는 작가의 경우를 참고하면, 퇴근 시간이 없이 거의 종일 작품과 관련된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오디션 현장이 아닌 초대로서 국공립 미술관 전시

국공립 미술관에서는 갤러리와 대안공간에서 활동하는 작가 모두를 아울러 기획의 성격과 작품성을 고려해서 작가를 섭외하고 작품을 초대한다. 따라서 아직 작가에게 지불해야 할 비용이 법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시에 초대된 작가에게 노동에 해당하는 인건비와 재료비(신작일 경우) 그리고 예술가의 창의력 효과에 대한 사례비가 적절히 안배되고 지불되었는지의 여부는 참여 작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예민한 전시 절차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공립 미술관 초대전이 작가를 선발하는 오디션 현장이 아님에도 여태 공식적으로 아티스트 피(fee)에 대한 법적인 제도가 제대로 장치되어 있지 않은 것은 해당 공무원보다 이런 절차를 확인하고 문제를 삼지 않은 초대된 작가들에게 피해 당사자로서 1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겠다. 왜냐하면, 그들의 절박한 입장과 요구에 따라 유동 가능한 조항에 대한 권한을 편의에 따라 쉽게 포기하는 것은 권력에 대한 만연한 패배주의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작가와 제도권 담당자와의 얽힌 학연과 지연의 연고주의로 인해 겪을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몸을 사리며 전시 경력이라는 성과 위주의 작품발표에만 치중함으로서 작가의 공적 역할을 포기하는 수순을 밟기 때문이다.

김창겸 작가의 경우는 세계일보와 jtbc보도를 통해 광주 비엔날레와 대구 사진비엔날레의 사례가 많이 알려졌는데 중요한 것은 작가가 부당한 처우에 전시를 거부하면서 저항한 사례도 있고 민원과 메일로 담당자에게 연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다는 점이다. 이에 피해 작가가 주체가 되어 당면한 불합리한 구조에 사적으로 보이콧하고 대응해 온 김창겸 작가와의 대담회 시간은 의미 있다고 본다.

예술이 시장과 국가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식

지난달 시청에서 있었던 국제 심포지움 <노동하는 예술가, 예술환경의 조건>에서 안소현 큐레이터(백남준 아트센터)는 예술의 시장과 국가로부터 자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정부기관의 정당한 예술가 사례비를 요구할 것을 이론적으로 제시했기에 여기에 인용한다. – 참고로 사례비란 작품 재료비와 인건비를 제외한 예술가의 창조력이 미술관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지불이다.-

‘자본주의에서 양적 획일화가 폐단을 일으키는 경우는 대부분 균등함이 아니라‘일방적인 비례’에서 비롯된다. 즉 모든 가치를 교환가치나 시장의 수요에‘비례’하는 것으로 방임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불균등을 향해 가는 경우가 많다. 균등한 작가사례비를 지급하는 것은 예술가를 자본주의에서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고전 자본주의 특유의 시장논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술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다’고 주장한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800)의 관점이 시장이 조절능력에 대한 불신으로 정부의 강한 개입을 주장했던 케인즈(John M. Keynes, 1883~1946)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예술인 복지나 정부기관의 정당한 사례비 자급은 경제적 가치와 직결되지만, 자본주의의 시장논리와는 명확히 구분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기본소득의 원리와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작가들이 당당하게 사례비를 요구하는 것은 예술의 가치를 자본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시장논리에서 독립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국공립기관의 아티스트 피(fee)에 대한 법적인 정착이 필요하다. 현재 이러한 논의는 제도권 내부에서도 관심사로 부각되어 특정 작가뿐 아니라 큐레이터, 연구원, 비평가같은 각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국공립 미술관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의 인식과 태도야말로 가장 전면적인 역할임은 재차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예술가의 생존문제이자 동시에 자존감을 지키는 일

‘12년간 국가 전시회에 참여했더니 빚과 한숨뿐’이라는 세계일보의 자극적인 카피 라이터는 과장이 아니고 동시대 현대미술작가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이다. 특히 제도의 문제점에 혐오감을 품은 작가들이 극단적으로 활동을 접거나 제도권을 떠나는 경우에 비해 김창겸 작가는 제도권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부당한 처사와 싸워온 이력에 주목하는 후배 세대 작가들이 있다. 물론 국공립 미술관의 아티스트 피(fee)가 해결된다고 가난한 작가의 먹고사니즘이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어서 예술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까지 예술가 복지보다 보편적 복지에 관심을 더 가졌었다. 어느 한 가지 제도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국공립 미술관의 아티스트 피(fee) 문제는 자본주의가 동시대 예술가를 소외시키는 현장이며 인건비로 따지자면, 미술관 용역업체 노동자보다 못한 예술가의 착취 현장이자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가의 자존감을 찾는 문제이기도 하다. 두 시간이 넘는 <두들>에서의 대담회 시간동안 김창겸 작가가 피력하듯 ‘그간의 치열했던 문제 제기들은 김창겸 작가에게 보낸 답변에서 어느 기획자가 지적했던 공명심이 아니라 ’작가의 생존을 위한’ 일종의 사적투쟁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날 대담회가 남긴 결론은 다음과 같다.

* 아티스트 피(fee)의 무법지대인 국공립 미술관에 초대된 작가들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소외시키는 예술가의 사각지대다.
* 신자유시대에 존립이 불리한 미술작가로서 개인의 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정부기관의 예술가 사례비는 법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모더니스트든 아방가디스트든 예술가가 유독 제도에 순응적인 이유야말로 동시대 작가의 허구성을 반영한다.
* 작가들은 작품뿐 아니라 사기성 기획을 감별할 줄 알아야 한다.
*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 당사자인 예술가, 특히 국공립미술관에 초대받 은 작가들이 주체가 되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모색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