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_임근준 비평가의 1%를 위한 ‘2000점’ 생산라인에 대한 반론

2016.05.22  발행


  • 1%를 위한 ‘2000점’ 생산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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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3일 오전 6:10 ·
    데뷔 초기엔, 작업 범주, 계열, 양 모두 과감하게 확장해야 한다. 데뷔 초기의 몸피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자가-차단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양이 중요하다.
    작업량의 중요성을 미술학교에선 가르치지 않는다. 교수들은 전업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다시피 했던) 789의 정신과 시간의 방이 여타 콜렉티브/공간보다 훌륭했던 점은, 2주라는 기한을 정해놓고 지속적으로 노동했다는 사실에 있기도 하다.
    작가가 사후에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면, 회화의 경우, 소품을 제외한 본격적 작업으로만 2,000점 이상이 현전해야 한다.
    그래야, 대표작은 미술관에 소장-전시되고, 일부는 재단에 소장된 상태로 주요 전시에 대여되고, 또 일부 주요작은 소장자들에게 속했다가 가끔 시장에 매물로 나와 신기록을 세우는 등, 다차원적 생태계가 유지된다. (동역학이 사라지면 망각된다.)
    서른 살부터 제대로 된 작업을 그려내기 시작해, 단절 없이 일흔 살까지 창작한다고 치면, 40년의 기간. 즉, 매해 50점을 그려내야 한다. 당연히 나이 들면 기력이 딸리니, 젊어선 더 그려내야 마땅하다. 매달 최소 넉 점 이상을 완성해야 한다는 뜻.
    2,000점이라는 기준이 제시된 것은, 모네의 사례 때문. 대니얼 윌덴스틴(Daniel Wildenstein, 1917-2001)이 전작집에 목록으로 정리해놓은 모네의 페인팅이 총 2,050점.
    반면, 세잔은 작업량이 무척 적다. 하지만, 당신은 세잔이 아니다.
    미술사학자 존 리월드(John Rewald, 1912-1994)에 따르면, 세잔의 캔버스 작업은 모두 954점.
    그래도 한 달에 적어도 두세 점은 완성했다는 뜻.
    추신) ‘즐기면서 작업하고 싶다고, 작업이 즐거워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질문(을 가장한 반론)을 제시한 이가 있다. 전업 작가는 매일 9-to-5로 작업하면서 즐거움을 찾아야 함. 즐거울 때만 작업하는 건, 아마추어의 특권. 아무도 님에게 전업 작가로 살라고 강요하지 않았어요. 그냥 아마추어 하세요. 말리는 사람 없습니다. – 임근준 비평가 타임라인에서-

    전업작가를 위한 매뉴얼에 대한 소명적인 오지라퍼의 랩(rap)

    예술가라는 불투명한 진로를 두고 막막하기만 한 젊음에게 베푸는 비평가 임근준식 매뉴얼은 학생들과 젊은 작가들에게 단비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누적된 현장경험과 정보적인 자료를 통한 메시지 중에는 참고할 만한 것도 있지만 동시에 예술계 관행과 기존의 틀을 반복 재생산할 가능성도 있어 평소에 나는 반겨 권하지 않는다. 젊은 날‘왜’라고 질문을 던져야 할 자리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켜야 할 예술계에서의 처세나 규범이 버티고 있다면 예술장은 기대할 것 없는 예술잡가들의 소굴일텐데, 설령 미술계의 현주소가 그렇다 해도 온전히 미술계를 떠나지 않고 발가락이라도 담그고 있는 입장이라면 꼰대스럽게 보일지언정 원론적인 입장을 발화할 수밖에 없다.

    와중에 너무 친절한 미술전문가의 줄을 잇는 매뉴얼이 공허하게 들리는 근원적인 이유는 예술의 입장 차이에 있겠지만, 정확도를 의식한 듯 결정적으로‘2000’이라고 제시한 작품 양 수치가 나의 무딘 신경증을 자극하였는지 과민하게는 임근준의 전업작가를 위한 매뉴얼은 마치 예(술제도) 순(응자 )양(산소) 오리엔테이션에서 접할 수 있는 것처럼 들려와 안타깝다. 내 경험을 비추어보면, 공적인 위치와 자리에서 방법론적인 처세를 설파하는 멘토는 영원한 멘토가 될 수 없었다. 한편 젊은 예술가들 중에는 임근준식 매뉴얼에 대한 패러디로 화답할 듯도 한데, 의외로 눈에 띄지 않는 걸 보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청년작가들은 임근준 스타일의 랩(rap)에 무감각해질 정도로 익숙해 흘려듣거나 혹은 임근준 식 랩(rap)속의 매뉴얼을 무시할 수 없는 미술계 현실 논리로 달게 습득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먼 치에서 대학시절 커밍아웃한 진보적이고 자유로우며 용기있는 미술인의 행보에 대한 나의 기대에 비해 그의 기성 미술인으로서 청년작가에게 베푸는 시혜는 국현 청년관을 포함해서 종종 그 깊이에 대해 의문을 가져오던 중 ‘2000점’이라는 수치 앞에서 유독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무위(無爲)예술가의 자격지심만은 아니??다. 평소같으면‘다른 별에 사는 작가들을 위한 지침서’라며 그냥 지나칠 것을 행여나 ‘2000점’에 가위눌려 미술을 포기할 재능있는 젊은이가 있을 것 같아 자판기 앞에 앉는 순간 나는 직업적이기 보다 소명적인 오지라퍼가 된다.                                            

‘2000점’생산라인의 허구성

임근준식 전업작가‘2000점’생산라인이 설령 정확한 정보일지라도 결정적으로 설득력을 상실한 것은‘2000점’이라는 수치의 기준이 회화의 불변하는 본질에 근거한다 해도 젊은이들에게 21세기 비젼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1세기 전 유럽의 인상주의 시대에 머물고 있다는 황당함이다. 그것도“소품을 제외한 본격적인 작업으로만‘2000점’이상이 현전해야 사후에 잊혀지지 않는 작가가 된다”는 식의 주장은, 예술생산 양식에서 전통적인 미술 메카니즘을 고수하는 방식이 작가를 잊혀지지 않게 하는 예술노동이라는 명분으로 21세기 전업작가들에게 150년 전의 예술노동과 유통을 포함한 생산패턴을 요구하며 본의든 아니든 기존의 제도를 공고히 다지거나 역행할 소지가 있기에 반론을 전개한다.

만약‘2000점’생산라인이 21세기 미술현장의 조사에 근거했다 해도 임근준이 비평가라면 문제제기 해야 할 사안이 아닐까. 동시대에도 여전히 건재한 회화라는 매체 역시, 21세기의 예술생산과 노동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건 비평가 관점의 시각이기보다 예술가의 동역학을 구제도권과 특히 시장중심에 고정시킨 시각이라는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2000점’생산라인의 허구성은 인상주의 이후 후기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인지노동이 예술의 제작/생산과 유통과정에 영향을 끼친 경향이‘2000점’ 생산라인에는 누락되어 있다는 데 있다. 이와 관련해 안토니오 네그리의 흥미로운 분석을 참고하면, 근/현대예술사를 크게 세단계로 나누어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과 예술양식의 진화과정과 상관관계”를 예술진화론의 흐름에서 고찰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술을 삶과 그 주체성의 항구적인 생산과 재생산의 과정 속에서 사유”하는 것에 있다. 네그리가 1871년 사실주의 시대부터 1968년 이후까지 예술노동의 생산양식들의 변화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한 내용 중에 68문화혁명 이후의 예술노동의 주된 변화와 관련해서, “대중노동자의 해체와 더불어 사회적 노동자가 구성되는 시기”의 특징이 “노동의 비물질화와 인지화”에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을 감안한다면, 회화라는 매체 역시 그 영향권에서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것이 나의 이론적 비판 지점이다. 구체적으로 여기에 대해서는 회화에서의 다작 주장을 국내사례와 관련해 관심있는 작가나 학자들의 심도있는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

‘2000점’ 생산라인의 잔혹성

따라서 임근준이 제시한 전업작가의 존재감을 보장하는‘2000점’생산라인이라는 전투적이고 치열한 생산방식에 뛰어든다면 그 각오는 비장하나 소모적일 수 있는데,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상주의 시대에 상상할 수 없었던 예술 홍보매체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예술가와 예술작품을 알리는 방식이 기존 미술관 전시와 미술잡지외 이미 오래 전에 등장한 복제기술의 발전과 디지털 매체의 대중적인 보급으로 작가와 예술작품을 소개하고 기억하는 방식도 다양해졌음을 친절한 비평가는 간과했거나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구체적으로 임근준식‘2000점’ 생산라인에서 작가가 9to 5로 매일 출근하듯 평생 열심히 작업한다는 전제에는 최근 얄궃게 논란이 되고 있는 조수의 대작이나 인공지능이 ‘2000점’을 뽑아내는 생산유형을 포함해서 미니멀 아트나 개념미술의 작업유형과는 구별짓는 전통적인 회화의 작업방식으로 한정시킨 제작론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인상주의 시대의 제작유형을 사례로 들어‘2000점’이상이라고 제시하는 수치는 컨템포러리 아트와는 달리 화가가 1세기 전의 예술노동의 패턴을 반복하는 장인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것이고 오늘날 그 시대의 그림 생산량을 강조하는 것은 영혼없이 기계적이고 결과론적인 생산물의 수치에 집착하는 것이다. 물론 임근준이 산출한 작가의 근무시간은 예술노동의 변화와 회화의 물질성과 동시에 작품성을 위한 시간도 포함되었다고 이해하고 싶으나 결정적으로‘2000점’이상이라는 목표수치로 인해 전업작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급박하는 소리로 들릴 소지가 있다. 여기에서 자유로울 천재적인 소수예술론이 아니라면, 평생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있는 금수저 계급이나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제도에 충실한 대가로 하늘이 탄복하여 천복을 내린 예술가가 아니라면‘2000점’생산라인의 일반화는 곧 신자유주의 시대에 희망고문으로 작동하는데, 다작 생산방식에서 특히 유감스런 것은 제도변혁의 의지가 없는 발상이라는 점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오늘날‘2000점’이상이라는 수치를 전업작가의 목표량으로 일반화 시킬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 예술제작 과정의 맹목적인 착취구조에서나 가능한 작품량으로 치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고 더욱이 역사가 오래 된 쟝르의 작업에서 작품 양보다 질을 고민하는 시간은 많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2000점’생산라인에 허무맹랑함이 맴돈다. 무엇보다 지금 여기는 인상주의 시대의 프랑스가 아니라 21세기 동아시아의 한국이라는 시공간의 격차가 암시하듯, 작가로서 많은 예술 노동시간은 작품의 양을 결정하는 물질성에 할애하기 보다 동시대 미술로서 작품 질을 결정하는 작품 내용과 기법에 대한 고민에 이어 삶 미학으로서 가치와 관련해 보내는 시간이 증가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나의 관점이다. 뿐만 아니라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근력노동과 비물질 노동외 먹고사니즘을 위한 노동을 포함해서 고된 노동일수록 휴지(休止)하거나 멍 때리는 시간도 비례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화가는 작업을 지속하기 힘든 환자가 되거나 ‘멈춤’을 망각하며 작업을 지속하는 노예가 된다.

과거지향 성향의 일반화가 낳는 사악함

오늘날 예술가의 문제 이전에 청년세대들에게는 3포, 5포 그리고 꿈과 희망까지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인 8포세대의 헬조선에서 금융자본주의의 보장된 채무자로 태어난 흙수저 계급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인생착취망에 걸려든 것인데 하물며 불안정한 알바를 전전하며 좋은 작품에 대한 욕망이나 강박으로 전업작가들의 몫이 더 가혹해진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출현한‘2000점’생산라인은 의도치 않게 회화의 종말을 너머 ‘흙수저 작가의 멸종’을 유도할 수 있다. 순수하게 작업하는 것 자체가 좋아 선택한 작가들이라 해도 이와같이 불안정한 시대의 신분인 프레카리아트 예술가에게 누구나 안고있는 삶의 무게외 생계 문제 그리고 생물학적 조건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2000점’생산라인은 또 하나의 직업적인 부채(負債)조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임근준이 예술가에게 인간적으로 연민을 느껴 예술을 포기시키는 의도가 아니라면‘2000점’생산라인은 흙수저 예술가를 소외시키는 매뉴얼이라는 오해까지 받을 수 있으니 비평가라는 전문가로서 부디 자본주의 시스템의 1%를 위한 희망고문을 매뉴얼로 제시하는 잔혹성이 멈추어지길 기다린다. 새삼스럽게 상기하자면, 21세기 한국의 청년작가들은 감각적으로나 예술노동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나 세잔느가 아닐뿐 아니라 모네도 아니다.

이어서 반론적인 어느 청년작가의 질문에 “즐거울 때만 작업하는 작가는 아마추어 작가” 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임근준의 이분법적인 추가언급은 극단적이고 경솔한‘2000점’생산라인의 완성도를 높인다. 굳이 자본주의 구조에 포섭되지 않고 인간의 본성에 의해 예술활동을 할 것을 권하는 마르크스의 예술론이 이 시대에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들릴지라도 실제로 작가들 중에는 비열한 현실에서 유일하게 작품만은 당당하고 자유롭게 지켜내고 싶다는 바램으로 자율적으로 좋은 작업을 하는 멋진 전업작가들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반면 임근준의 아마추어리즘은 위험하게도‘2000점’이라는 수치와 함께 단번에 그 존재감을 묵살하는데 기여해버린다.

추가하자면 청년작가들에게 무조건 10년만 열심히 노력하라고 조언하는 예술계 멘토들이 많은데, 상대가 작가라면 이런 구조 속에서 왜, 어떤 노력(NO力)을 열심히 해야 하는 지 먼저 사유하거나 고찰하는 걸 권하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 제도가 공정하거나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전업작가의 길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심한 격차와 함께 부조리한 조건의 연장선에서 제작한 작품이 미술관이든 미술시장이든 수요와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불안정에서 오는 불안을 1%를 제외한 예술가들이 평생 안고 살고 있음은 누구나 알만한 현실이다. 이로 인해 작가의 인정욕구의 결핍과 불안정한 작품 유통과정이 주는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해 시도되는 다양한 방식에 관심을 갖는 것은‘2000점’생산라인에 뛰어드는 것보다 고무적이며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미술장의 풍향은‘그림보다 액자가 좋다’가 아니라 ‘작품보다 유통과정이 중요하다’며 미술제도권이나 카르텔 영향권의 비좁은 양지에 연연하기 보다 탈영토화 하고자 하는 노력이‘2000점’생산라인 보다 중요해 보인다. 드물게는 뒤틀리기까지 한 제도에 염증을 느끼고 떠나기보다 예술가 특유의 날선 시선으로 문제 제기하고 내부 고발하며, 체념하기 보다 고쳐 나가려는 강한 의지를 실천적인 작업으로 옮기는 젊은 작가들의 활동이 눈에 띄는 것은 목하(目下) 예술에서 앙가쥬망보다 르상티망의 목소리에 비중이 실릴수 밖에 없는 이유다. 와중에 기성미술인들은‘전업작가의 다작 강박의 완성’이라고 할‘2000점’ 생산라인으로 청년작가들를 몰아넣지 말아야 한다. 설령 전업작가가‘2000점’의 작품을 제작할 경우, 미술관이나 컬렉터의 거래수요가 원활하지 못한 기간을 작가가 평생동안 제작비와 작업실 임대료외에 작품을 보관하기 적합한 조건의 창고까지 유지해야 하니‘2000점’이라는 다작은 곧‘돈 없으면 작품하지 말라’는 현실적인 조언이 아니라 악담으로 까지 번역된다. 이것이 작가마다 철학과 형편이 다르므로 작가들에게 ‘2000점’이라는 다작을 일반화하는 주문은 구태적인 근거는 있되 위험하고 사악하게 까지 들리는 이유다. 

지금은 ‘전업작가를 위한 매뉴얼’에 반격할 때

따라서 임근준이 염두에 둔 전업작가는 인상주의 시대의 회화영역을 너머 결과적으로 1%도 안되는 극소수 작가층에만 해당되는 셈인데, 설령 야심찬 젊은 작가들의 관심사가 성공한 작가라 해도 중견 비평가로서 비판적 관점을 상실한 듯한 전업작가를 위한‘2000점’이상 생산이라는 주문의 의도와 실체는 추가적인 의혹을 낳기에 충분하다. 오늘날 평생 회화라는 영역만을 고수하는 작가의 비율을 차치하더라도, 사후(死後)라는 인지도가 아니어도 박이소 작가가 다작(多作)작가여서 생전에 기억될까?, 혹은 중년 이후부터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가는 윤석남 작가나 주재환 작가처럼 60대가 되어서 30년만에 개인전을 처음 열었다면 전업작가가 아니고 구지 취미작가로 분류했어야 할까?

결론적으로 젊은 작가들은 1%만 승자독식하는 기존의 제도에 의존하지 말고 그들의 방식으로 작업과 활동을 새롭게 구축해나가는 것이 예술계 구태의 사슬에서 해방되는 길이며 예술생태계 측면에서도‘2000점’보다 오히려 더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전망한다. 단도직입(單刀直入)적으로, 만약‘2000점’ 생산라인에 뛰어든다면 확률적으로도 1%를 위한 둘러리가 될 확률이 99%이므로 중도에 포기하든가 본의 아니게 ‘2000점’을 해체하는 전업작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의 만남과 관계가 빈번해진 시대에, 작품과 작가의 홍보를 전시장에 전적으로 의지하기 보다 작가의 홈페이지와 블로그 그리고 유튜브와 SNS등을 통해서도 예술가는 기억되는 시대니 굳이2000점’이상의 작품으로 기억될 필요는 없다.

주지하다시피 작품은 양보다 질이며 화가는 단순히 그림 그리는 기계가 아닐 뿐 아니라 작품의 양적 생산에서 질적 향상에 집중해야 할 만큼 미술의 역사는 회화의 종말뿐 아니라 예술종말론과 진화론의 우여곡절을 거쳐 수많은 담론을 생산했고 그 과정에서 현대미술은 예술노동으로 삶을 전유한 비물질노동의 폭과 깊이를 만드는 사유와 감각적 경험이 더 확장되고 풍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도 전업작가의‘2000점’해체 작업은 이미 선행되고 있다고 보며 그보다 먼저 신자유주의 시대에 심상치 않은 예술가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과 함께 그러한 상황을 틈타 문화권력이 어떻게 예술가를 소모시키는지 분석하는 것이‘2000점’목표달성보다 더 시급해 보인다.

역설적으로 전업작가의 생계문제와 환경문제를 고려해서라도 가능한 다작이 아닌 소작으로 기억되는 전업작가가 많이 나오길 나는 희망한다. 전업작가‘2000점’다작요구설과 관련해 상기하자면, 7년 전 일민미술관에서 당시 활발하게 활동중인 비평가들의 전시가 있었는데 작가로서 흥미롭고 의미심장하게 관람했다. 물론 임근준 비평가도 참여했었는데 그때 참여 비평가들은‘작가들이 얼마나 힘든지 경험하게 되었다’는 평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오늘날 비평가의 역할에도 어려움이 있음을 알지만 임근준 비평가가 그 전시경험을 몸 속에 기억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번 계기로 스스로를 평생‘2000점’이상의 작품과 전시회라는 형식을 통해 기억되는 작가라는 상상을 해본다면‘2000점’이상이라는 다작요구가 작가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이고 사악하게 까지 들리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윤석남의 금지구역 (1995)
다작에 대한 3대 망언 

이에 대한 나의 문제제기는 비단 비평가 임근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젊은 날 모더니스트나 아방가디스트로 기억되는 원로작가가‘작가와의 대화’에서 다작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모습을 볼 때, 생계문제와 노욕(老慾)이 아니라면‘한국현대미술은 가짜일 수밖에 없는가’라는 안타까운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 미술계에서 마르셀 듀샹의 짝퉁이 커밍아웃 한 것은 아직 못 본 듯하여 아쉽다.

다작에 대한 또 하나의 망언은 예술대학 실기 박사과정이 유행처럼 우후죽순 생겨나던 초기에 실기박사에 대한 경험이 없던 어느 미대들에서 작품량으로 박사과정을 채울 것을 강요하던 무지막지한 공장장 교수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대미술의 아카데미즘이 아직 포드주의에 머물러있음에 탄식한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작품의 질을 고민하는 실기박사 과정의 전문가코스나 청년 혹은 전업작가들에게 작품양은 제도나 비제도를 가리지 않고 작업 내부에서 혹은 유통과정의 흐름을 포착한 작가의 종합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예민한 사안이지 무조건 다작이거나‘2000점’이상이라는 고압적인 설정으로 타자가 강요할 사안이 아니다. 간혹 계약조건으로 맺어진 악덕화상이 ‘2000점’을 요구할 수 있으나 그 화상은 잠재적인 매물로서 ‘2000점’을 확보하기 전에 작가의 공항장애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심지어 학부생의 경우에도 작품의 양을 강요하기 보다 최적(!)의 상태에서 최상의 작업 가능성을 발견할 때가 많다. 모델링 작업조차 연습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할 만큼 한 개인에게 표현력의 능력이 발휘되는 방식은 예측불허며 개인차가 크다. 그 점에서 임근준식‘2000점’생산라인은 인간 본성에 따라 작업하는 작가를 간편하게 아마추어로 분류함으로써 본의든 아니든 직간접적으로 전업작가의 작업방식을 압박하는 형태를 띈다. 그의 어법은‘21세기는 아마추어리즘이 대세’라는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논의와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듯하니 여기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자.

‘2000점’생산라인과 관련해 재차 강조할 수 밖에 없는 주요한 비판적 관점은 작품이나 작가 개인의 인지도와 판매망을 너머 예술생태계 전체의 동역학으로 관망할 때, 작품양이 작가를 기억하게 한다는 조건이‘예술가의 주요 동력인 창의적인 시도와 전복적인 시선을 가리고 다작의 노동력에 갖혀 제도가 시키는 대로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제작기계’로 전락시킬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와 관련해 극단적으로는 음모론으로까지 해석 가능한 시절이라는 것이 오늘날 예술생태계의 온도다. 그러므로‘2000점’목표달성을 위한 다작기계는 철학이 아니라 처세가 난무하는 예술계의 고착된 관행에서 제도권의 문제에 침묵하고 편승하며 영혼없이 제작하는 작가가 아닌 잡가를 대량양산할 소지가 크다. 설령 많은 젊은 작가들의 현실감이 그렇다 해도 기성비평가로서 그들의 욕망을 읽되 쫓아가는 건 예술영역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우려스럽다. 그 결과 한국 미술계가 해외작품 짝퉁 생산지나 시각적 테러인 강남스타일 조형물 같은 한류의 조수로 잠식되는 건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요약하자면,‘2000점’을 제작할 시간에 전제되어야 하는 예술가의 인지노동은 회화를 하는 화가라 하더라도 평생‘2000점’을 해야 사후에 작가로서 기억될 인상주의 시대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품의 질을 위해 비물질적인 작업으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홍보매체가 다양해지고 대중화된 오늘날에 작가를 기억하는 방식으로‘2000점’이상 생산라인은 자칫 예술장내의 예술가 착취의 슬로건 문구로 악용될 소지가 있어 경계한다. 이는 동시에‘노오력(NO力)’해도 안 된다는 헬조선의 계급적 금수저론의 압축판인 예술장에서 살아남을 소수의 생존게임에 대한 희망고문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술계 일선에서 젊은 작가들에게 영향력있는 비평가 임근준의 다각적인 활동력을 감안할 때,‘2000점’이상의 다작 강조설은 청년작가나 전업작가들에게 무시되거나 혹은 심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한 비평가의 다작설 주장의 단어 (‘2000점’) 하나가 무위(無爲)하는 내게 긴 글을 쓰는 낭비/생산적인 영감을 준 것은 비판이자 위로이자 미끼가 되었다. 동시에 이 글속의 빨간색 ‘2000점’은 독자이자 청년작가와 회화작가를 포함한 전업작가들 그리고 임근준식‘2000점’ 생산라인이 부지불식간에 소외시킨 비전업작가의 미끼이기도 하다. 행여 전업작가 지망생에게‘2000점’생산라인이 진중하고 신성하게 다가온다면,‘2000점’이라는 “낡은 사용을 비활성화하고 무위로 만드”려는 이 유희스런 글쓰기를 아감벤의 인용에 이어 환속화 이론으로 패러디하자면, “자본주의가 예술적(종교적) 분리를 경제적 방식으로 지속하는 것”에 기우(杞憂)스런 무위예술가의“권력의 비활성화”라는 대응으로 받아주시길 바란다.

그러니 ‘전업작가를 위한‘2000점’ 이상 생산라인’은 까마귀에게 줘버리고 ‘무위예술가를 위한‘2000점’생산라인’이나 완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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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00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