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_김보용의 미디어 퍼포먼스 <텔레워크>-멀리, 분리된 자연 보기

2014.02.05 발행

김보용의 <텔레워크>, 멀리, 분리된 자연 보기

텔레-워크(Tele-Work), 멀리 걸어가는 ‘빛’을 바라본다. 주변의 모든 불빛을 소등하고 암흑의 능선을 바라보며 무엇을 보는가. 저기 불빛을 바라보는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 보고 있는 저 불빛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김보용의 작업에서 자연은 ‘Wild nature’, 문명화된 사물, 관습화된 언어가 지나가 오염된 자연이다. 그리고 오래전 분리되어 체험한, 그럼에도 체험한 적 없다고 믿는 하나의 불빛이다.

‘분리’하기
약속된 장소에서 관람자를 태운 버스는 목적지를 밝히지 않은 채 출발한다. 영상 속에서 사람들은 버스에 올라 저마다의 자리에 앉는다. 이윽고 버스가 출발하면 무전기를 통해 누군가와 교신하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곳’의 상황을 전하는 행위자의 보고는 무선기의 분절과 통신음의 특징들로 인해 어쩌면 실제 상황보다 좀더 멀게 느껴지고, 모두의 귀는 그가 어딘가를 오르고 있으며, 밤의 어둠으로 인해 자신의 행보가 또렷하지 않음을 전달받는다. 30여 분 동안 모두는 알 수 없는 교신 속에서 그것이 이후 전개될 무엇과 관련 있음을 안다. 목소리와 상황. 모두는 이미 ‘연루’된다. 이 상황에서 감상자는 일상과의 분리를 용인한 적극적인 행위자이며, 먼 곳에서 들려오는 교신, 목소리를 함께 들으며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대 안, 공간에 있다. 이 시간, 이 장소에서 모두는 안전하게 분리를 결심한 ‘퍼포머(performer)’가 된다.

그저 ‘보기’
이어지는 영상은 넓은 벌판이다. 주변의 불을 소등하여 정면으로 보이는 능선만이 어둠의 굴곡으로 분별되는 상황. 관람자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고 멀리 보이는 능선을 바라보게 될 즈음 천천히 김보용의 (이미 시작했으나) 여전히 이어지는 또 하나의 작업이 시작된다. 능선의 양 끄트머리에서 랜턴 두 개, 불빛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산의 굴곡을 따라서 불빛은 희미해지거나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결코 꺼지는 법 없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양편에서 시작한 불빛은 20여 분이 지날 즈음 드디어 어딘가에서 ‘만난다.’ 그 만남에서 나는 익숙한 습관처럼 어떠한 서사를 기대했으나, 김보용의 작업에서 서사는 없었다. 두 개의 불빛은 만났으나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연속에 있었고, 각자의 불빛은 다시금 묵묵히 길을 떠나고 있었다. 그의 작업에서 프레임, 장치는 있었으나 필연, 혹은 서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감상자에게 그저 보기를 권하고 있었다. 원격에 의한 보기의 연속. 작가는 서사에 연연하지 않는다.

멀리 ‘보기’
그러나 그저 보는 것은 상황이 전제되어 있었다. 멀리 보기. 그가 바라보라는 지점은 내가 보는 시야에서 좀더 먼 어느 지점이었고, 그곳은 자연에 가까웠으나 자연은 아닌 ‘공간’이었다. 그곳은 어디일까. ‘본다’라는 공간이다. 우리가 작품을 보았을 때 길들여진 원근법적인 시야에서 벗어나 산이라는 추상, 그 밤을 가만히 보는 것이다. 가만히 보는 행위. 익숙지 않은 습(習)이다. 무언가를 가만히 보는 것에 우리는 익숙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이전, 유년기부터 나의 습에 분명 있었음에 말이다. 어린 나는 먼저 가만히 ‘나’(세계가 되어 바라보는 나, 나와 구분되지 않는 자연)를 들여다보았을지 모른다. 이후 나는 타인과 세계 속에 편입되면서 분리되었고, 느림의 속도를 잃어갔을지 모른다. 문명과 언어에 길들여지기 이전 누군가는 가만히 들여다보았고,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떤 공간이 만들어짐을 체험했다. 우리는 이미 그곳을 다녀간 적이 있었다. 물론 누군가는 지금도 여전히,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 공간은 구분이 모호하고 낯선 어느 곳이다. 물리적이고 형체가 있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안과 바깥 사이. ‘틈’과 같을지 모른다. 그 지점을 바라보는 것은 처음에는 편안한 듯하다가 이내 두렵거나 불안해질지 모르며, 불안을 뚫고 들어가다 보면 낯선 인상을 받다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지 모른다. 작가가 제공한 시간은 30여 분. 그 시간 동안 동참한다면, 의지가 허락한다면 적어도 그 시간 동안은 멀-리, 볼 수 있다.

이 작업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멀리 보기를 권하는 작업. 권하지 않으면 쉬이 보지 않게 되는 멀리 보기.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혹은 멀리 보기에는 어둠에 비해 밝음이 너무 밝은 탓이다. 우리 모두는 너무 밝게 살고 있다. 빠르게 살고 있으며, 가까운 곳만 바라보며 살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버스를 대절하고 양해를 구하여 불빛을 거세한 뒤, 인위적이고 불편한 모종의 수고스러움을 거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여명을 경험하고 먼 곳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있게 된다. 지금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정말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질 새 없이 나의 분주함은 빛과 어둠과 느림을 거세한 채 밝음과 빠름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작가 소개

김보용 voyonk@gmail.com
목원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과 중퇴. 계원예술대학교 백남준연구 졸업. 2011 대전시 중구 문화동 거주. 2011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 주거. 2011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거주. 2012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 주거. 2012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거주. 2013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 주거. 2013 서울시 강서구 공항동 거주. 활발한 이사/거주 활동을 하고 있으며 평생 프로젝트로 진행 중. 스크린 매체 관련 하위문화 잡지 ‘삐끗’ 기획 중

글쓴 이
이정화 junghwa-11@hanmail.net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미학을 공부하고 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라캉의 이론을 배경으로 제발트 문학을 사유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 김보용 작가는 필자가 지난해 경기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젊은 비평가 포럼’에 참여해서 선택한 세 작가 중 한 분으로, 본 글은 별별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현실화된 김보용 작가의 미디어 퍼포먼스인 <텔레워크>에 대해 재단에 쓴 비평글을 수정하여 크리틱칼 독자분들에게 소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