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영_나는 왜 잉여로워야 하나

2014.10.15 발행

나는 왜 잉여로워야 하나

어느 날 부턴가 문득 나는, 나는 왜 잉여로운가 그리고 나는 왜 잉여로울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이 들기 시작했다. 쓰잘데기 없는 질문들이 마음속을 어지럽혔는데 이러한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몇 가지 실패한 상황을 맞닥뜨린 후 마음이 동요된 것도 이유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이러한 잔상이 주기적으로 찾아 들었던 게 사실이다. 참 한가한 소리하고 있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난 이러한 나의 잉여로움이 왜 그런 것이지 궁금해졌고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내가 깨달게 된 사실은 이러한 잉여로움을 잘 극복하거나 소멸시켜야겠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고통스럽게도 지금보다 더 혹독하게 잉여로워져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잉여…잉여..생각해보면 나는 어쩌면 미술이란 것을 전공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이 사회와 멀어져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어쩌면 태어난 직후부터 잉여 인간으로 키워졌을 수 있다. 대학 진학 후 이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에 대해 점점 수긍하지 못하는 인간상으로 변해가더니 심지어는 미술이라는 참으로 답이 안 나오는 분야를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한 이후부터는 더 철저하게 의도적인 잉여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동안은 나도 사람답게 한번 잘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임용고시를 준비해야겠다는 다짐도 잠깐 했었지만 그 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대학 4년간 지식으로 습득한 미술교사라는 자리는 졸업 후 고시 티오가 나질 않아 절절매는 선배 및 동료의 참담함으로 다가왔고 도무지 몇 년을 그렇게 살 자신이 없어 이내 포기해 버렸다. 사실 진짜 이유는 매일을 동일한 패턴으로 성실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것에 있다. 괜찮은 대우를 받고 안정적인 급여를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실로 엄청난 대가와 부담을 치르게 되는 일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잉여로움을 선택했다. 최근 들어 선택한 도피처가 대학원이었고 2년간 미술에 대한 얄팍한 지식들을 습득하면서 작업이란 것도 하고 논문도 썼다. 공부를 더 해보겠다고 박사과정에 진학하였지만 공부는커녕 잉여로움만 날로 무르익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가능해지고 약간의 상황 판단 능력이 생기면서 환경에 대한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한 수준 높은 이해가 가능해졌다. 말하자면 현실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현실파악이라는 것이 스스로를 아주 참혹하게 만들기도 하며 무기력증으로 빠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하는데 때로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생각지 못한 잉여로움이 폭발하기도 하고 이것이 작업으로 이어져 알 수 없는 삶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본론으로 돌아가 나는 내가 왜 잉여로워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그냥 자기변명일 수 있다. 먼저 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잉여로움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잉여로움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데 원천적으로 잉여는 인간의 정신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어떠한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경쟁사회에 무슨 그런 말을 하나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무지막지한 경쟁 속에서도 잉여는 필요하다.

사회에서 무언가를 획득하고자 할 때 잉여는 걸림돌이고 방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남들과 차별화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값진 경쟁력이고 무시할 수 없는 힘이기 때문이다. 남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가치와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따라서 남들과 차별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굉장히 근사한 일일 수 있다. 잉여란 본디 그런 것이다. 바보 같은 것. 병 맛 같은 것. 이것을 물질로 환산하여 연봉이 어떻고 부동산 값이 어쩌고 하면 곤란한데 모두 그런 것을 배제했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물론 재수가 좋아 잉여로움을 만끽하면서도 돈에 구애받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누군가의 경제적 도움 없이 그렇게 살기란 아주 희박한 일일 것이다. 돈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 갈 수는 없어 참 힘든 일이긴 하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렇다.

가장 바람직한 잉여로움은 잉여가 업으로 연결되어 충분한 잉여짓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삶이 아닐까. 보통 우리는 이러한 집단을 일컫어 예술가라 칭하기도 하고 예술계통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부른다. 대부분이 이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라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로 헐떡이는 삶을 사는 게 부지기수지만 나는 절박한 만큼의 치열한 잉여 짓이 있다면 자기 목숨 하나 정도는 부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는 내가 아직까지 현실파악을 못하여 내뱉는 무개념한 소리일 수 있지만 나는 내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한들, 설사 내가 미술과 정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잉여 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다시 또 본론으로 돌아가 나는 왜 잉여로워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 볼 것이다. 앞서 포부를 밝혔지만 논지가 산으로 가는 바람에 그만 딴 소리를 하고 말았다. 사실 내가 잉여로워야 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감당해야 하는 고통과 삶의 병 맛을 매몰차게 외면하지 않고서도 잘 살아가기 위함이다. 정신적 권태를 이겨내서라도 늘 꿈꾸고 싶기 때문이라는 동화 같은 소리를 하고 싶다. 현실이 너무 지옥 같더라도 현실을 완전히 저버리거나 도망가고 싶지는 않은데 그런 의미에서 잉여는 삶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그 무엇이 아닐까. 잉여는 일종의 안전장치이다. 안전장치가 있으면 고삐가 풀려도 떨어질 확률이 줄어드는데 잉여는 일종의 안전장치가 아닐까. 늘 가지고 다녀야 하는 칫솔 치약 같은. 뭐 그런.

물론 잉여 짓이라는 것도 어중간해선 안 되고 잘 해야 승산이 있을 터. 지금부터 필요한 것은 이러한 잉여로움을 내 스스로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구체적으로 이는 망가지는 삶의 에너지가 아닌 삶을 보다 나아가도록 하는 에너지와도 직결된다. 잉여..잉여..나는 잉여가 앞으로의 나의 삶에 있어 긍정적이고 유쾌한 에너지로 작용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