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영_[전시_ 내가 부른 노래가 고래가 되고, 파도가 되어.]

2015.06.25 발행

내가 부른 노래가 고래가 되고, 파도가 되어.


참여작가 /  송숙임, 남명우, 남해경, 남윤경, 최다경, 김미련,
정진석, 권세진, 서성훈, 배윤정, 최은혜, 노아영
전시기획 / 노아영

전시장소 : 아카이브 봄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화문로 80-1 나락실빌딩 4)
전시일정: 2015. 6.24 (수 ) – 7.5 (일)

관람시간: 오전 11시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무종종 운영시간 이후로도 열려있습니다.)
문의:  roh2374@naver.com

내가 부른 노래가, 고래가 되고, 파도가 되어.

글·노아영

전시는 우리 삶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보통의 존재들이 도대체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함축한다. 아무것도 아닌 가벼운 행위에서, 평범하게 오가는 말들 속에서, 무엇엔가 열중하는 기록들 속에서,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다. 가령 정년퇴임 후 마땅한 취미활동이나 소일거리를 찾지 못해 헤매는 중년 남성,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폐지를 줍는 할머니, 학력은 높으나 자신의 재능을 마땅히 펼쳐 보일 수 없는, 그리하여 전전긍긍하는 청년의 이야기는 특수한 것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보편적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이와 같은 내용들을 그들이 표현한 각종 기록들을 통해 슬그머니 꺼내 놓을 예정이다. 이를 통하여 누군가는 현재 어느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울고 웃을 수 있다. 전시는 은둔하는 자아, 희망하는 자아, 다투길 원하는 자아들이 함께 각축을 벌이는 신기한 광장으로 활용될 것이다.

각각의 A는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 하겠다. 각각의 A는 시류의 풍파에 휩쓸려 격동기를 살아낸 안타깝고 아름다운 사람들로, 내가 나의 목을 올려다 볼 수 없는 그런 구조적 결함을 하나씩 다 가지고 있다. A는 모두 다르다. 무척 당연한 말이겠지만 A는 모두 다르다. A는 자신의 이야기를 언제부턴가 남들에게 털어 놓길 부끄럽고 껄끄러워 했던 인물들로, 그만큼 내가, 내가 아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 질까 하는 두려움을 하나씩 다 안고 있다. 어느 한낮 동산에 올라 둥근 바위에 앉는 꿈, 내가 부른 노래를 다 같이 듣는 꿈, 그러다 모두 흐느끼는 꿈, 내가 부른 노래가 고래가 되고, 파도가 되어 봉긋 솟아오르는 꿈. A는 현재에도, 그런 꿈 하나씩을 다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A는 생활의 각박함에 시달려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돌보지 못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A는 누구보다 그런 자신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객관적이지만 비로소 이것을 외면했을 때 자유로워 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A는 너와 나의 다름이 본질적인 차이에서 비롯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A는 그 차이가 모두 헛된 꿈이고 다 허황된 거짓말임을 잘 안다. A는 하나의 소수가 또 다른 소수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사실임을, 그 또한 잘 알고 있다.

A는 순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길 희망하지는 않으나 가끔 그것을 생각하곤 하는데, 어렸을 적, 어슴푸레 해 질 무렵까지 뛰어놀던 동네 한 어귀의 놀이터 풍경을 지금도 생각하곤 한다. 처음 맛 본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아찔했던 그 기억, 달콤했던 그 기억을 지금도 가끔씩 떠 올린다. A는 평범한 일상이 지치고 싫어 저 먼 동산으로의, 저 먼 우주로의 탈출을 시도한 적이 몇 번 있다. 물론 다 실패의 경험으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그 때 내려다 본 환락의 하늘은 지금 생각해도 참 아찔하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다. 올려다봄과 내려다봄의 차이. A는 이상하리만치 분명한 이 차이가 공상이 아닌 현실에서조차 존재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A는 십 수 년 전 구름 낀 하늘을 유난히 사랑했던 한 여인을 아주 먼 곳으로까지 떠나보내야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A는 이제 더 이상 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그 때의 참혹했던 기억은 착한 사람에 대한 동정, 작은 배려 심, 이기심 같은 것을 모두 잊게 만들었다. A는 나무처럼 넓고 안락한 사람이 되길 원한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경험과 고난을 짧은 시간 그것도 한꺼번에 경험해야 했던 그녀는, 현재, 인생에 있어 재밌어 질 그 순간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A는 비록 자기 자신이 어느 순간 다 타버리고 없을 재가 되더라도 어떤 순간으로부터 좋은 엄마이자 아내, 친구, 이웃이 되길 원한다. A는 삶의 이유가 목적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이제 누구보다 잘 안다. A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오래되도록 허망하고 허망한 붓질이 아주 쓸모없으며 버러지 같은 행위라 생각되었다. 낭비되는 나무와 물감. 그리고 오래된 책상과 의자. 허물어져 가는 낡은 벽과 아주 구닥다리 좁은 냉장고. 썩은 나무에 물감을 뿌려 곱게 색칠을 하고선 근사하다고 웃음 짓는 현기증 나는 시간. A는 그 일상들을 한참이나 관통하고 난 후에야 이것이 참으로 부질없고 구차한 행위이자 자기변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A는 움츠려들려 할수록 펴지고 펴지려 할수록 움츠려 드는 삶을 살았다. A는 늙고 병든 아들을 위해 자신의 양식을 기꺼이 내어주려 했지만 아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물지 않는 인생. 받아들이기 힘든 시간. 바다는 아들을 위해 그 흔한 양식을 내어주려 했지만 그것 역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적지 않은 시간동안 자신만의 긴 싸움이 이어졌다. 소금에 대항하는 자세. 덕분에 A의 아들은 아주 길고 긴 터널을 지치지 않고 걸어가는 법을 홀로 터득할 수 있었다.

A는 지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왈칵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지난 청춘의 일기장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먼 이국땅에서 대륙을 횡단하던 그 때, 너무도 가난했지만 반짝반짝 빛나던 그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때로 돌아갈 수 없음이 분명했지만 지난날을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져 왔다. 그것은 무사히 걸어온 지난 날에 대한 감사함이기도 했고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그 시간에 대한 서운함이기도 했다.A는 타인이 보기에도 정말이지 힘겨운 시간을 관통해왔다. 그것은 물리적, 육체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어떤 것이었지만 A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A는 그것이 때때로 너무 힘겹고 고통스러워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결코 내려앉지 않았다. 그리고 자책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냥 이게 내 삶이라고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 스스로 싸워나가는 법을 홀로 조금씩 터득해 나갔다. A는 전쟁 같은 치열한 삶을 떠나 먼 섬으로의 긴 휴가를 꿈꾼 적이 있다. 어느 날엔가 문득 지친 몸을 이끌고 아침 지하철에 올랐을 때 한강대교 위를 가로지르는 파랑새가 자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한 적이 있다. 새내기가 되어 서울의 설레임을 만끽했던 그 때로 돌아가,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희망. A는 성장한 자신이 자랑스럽지만 때로는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게 된 지금의 자신이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A는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간혹 너무도 멀게 느껴졌던 순간이 있다. 하늘 위로 항공기가 떠오르는 그 익숙한 풍경이 하루는 너무도 낯설게 느껴져 한참을 올려다 본 경험이 있다. 슈-웅하고 날아오는 그 찰나의 순간이 일 억 만년처럼 느껴져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잠시 멈춘 듯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A는 하늘 위를 가로지르는 저 굉음이 내 오늘 하루를 온전히 반납할 만큼의 까마득한 시간으로 다가왔다. 그렇다. A는 모두 다르다. 무척 당연한 말이겠지만 A는 모두 다르다. 각각의 A는 이제 자신의 희망에, 자신의 절망에, 자신의 근심에 작은 창문을 내어 그것을 조금씩 꺼내보려 한다. 더 큰 희망이 되어 날아오를지, 더 큰 절망이 되어 추락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자신의 목을 올려다보기 위한 눈물겨운 연습이 시작되었다. 이제 그 시간들을 함께 나누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