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지언_ 아무도 나에게 언니가 어디로 갔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2013.03.28 발행

아무도 나에게 언니가 어디로 갔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선생님도 엄마도 모두 언니가 없었던 것처럼 말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있었던 사람을 무참하게 지워버리는 것도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언니를 만나야 했다. 왜 내게 말도 안하고 사라졌는지 그 이유를 직접 들어야 했다.

 유난히 긴 여름이었다. 무더위와 강제자율학습에 지쳐 하나 둘씩 나가 떨어져갔던 우리와 달리 매미들의 악다구니는 지칠 줄을 몰랐다. 등굣길 양옆에 심어진 나무들의 그림자만 점점 교실 가득 드리워졌다. 입시 열기가 타오르는 만큼 교실은 더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때 언니가 우리 반으로 전학 왔다. 언니는 우리보다 한 살 더 많은 복학생이었다. 한 살 많은 복학생이라니. 순간 볼썽사납게 교복을 줄여 입고, 닌자거북이 등껍질마냥 가방을 등에 올려붙여 맨 채 부평역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여자애들을 떠올렸지만, 언니는 내 상상과는 전혀 다른 평범한 모습이었다. 아, 우리와 한 가지 다른 점은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는 것. 나는 언니의 기다랗고 새까만 머리가 좋았다. 귀 밑 3센티를 유지해야하는 유치한 몽실이 단발과는 차원이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미쳐있던 아무로 나미에나 이효리 같았다. 노처녀담임이 언니와 나를 맨 뒤에 앉혔을 땐 마음속으로 중전간택 받은 것 마냥 기뻤다. 물론 겉으로는 무심하게 굴었지만.

 언니는 수업시간에는 다른 생각을 하거나 엎드려 잠을 잤고 자율학습시간에는 집에 가버리곤 했다. 언니는 말이 없었다. 가끔 언니에게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씩 웃기만 했다. 나는 웃는 언니가 좋았다. 언니가 짓는 눈웃음. 웃을 때마다 음흉한 반달눈이 되는 그 눈웃음에 흠뻑 빠졌다. 그래서인지 우린 금방 친해졌다. 점심시간에는 단둘이 밥을 먹었고, 수업시간에는 선생님들 눈을 피해 끊임없이 필담을 나눴다. 내 노트에는 수업내용보다 언니와의 비밀이 가득 채워져갔다. 야자시간 내내 우리는 교과서 대신 CD플레이어를 붙들었다. 이어폰을 사이좋게 나눠 낀 채 듀스만 들었다. 그러다 함께 담을 넘어 학교를 빠져나와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이런 해방감은 처음이었다. 언니는 내 단짝 희진이나 선생님은 물론 엄마도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평역에서 함께 산 만 오천 원짜리 가스 고데기의 사용법을 알려준 것도 언니였다. 덕분에 저녁이 되면 제멋대로 뻗쳐오르는 단발 끄트머리를 안쪽으로 능수능란하게 말아 넣을 수 있게 됐다. 언니가 교복 조끼 안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고데기 끝에 능숙하게 붙을 붙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서 하루빨리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다. 언니처럼 긴 생머리를 할 거라 다짐하곤 했다.

 일요일이면 한창 바쁜 엄마대신, 가까운 거리는 내가 배달을 다녔다. 그 날도 양 손에 과일이며 채소가 가득 담긴 봉지를 들고 시장 초입에 새로 생긴 단란주점으로 향했다. 너를 보내면 안 되는 건데. 아빠도 배달 갔고 내가 자리를 비울 수가 있어야 말이지. 암튼 조심히 다녀오라. 는 엄마의 걱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술집을 가본다니. 이건 교복치마를 있는 대로 줄여 입고 교문을 통과하는 일보다 훨씬 스릴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장 골목길을 지나 단란주점이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딴 세상처럼 단란주점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둑하고 고요했다. 한발 한발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 보니 명도가 낮은 빨간 조명이 온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 술집 끝에 염라대왕이라도 서 있는 거 같아서 기분이 나빠졌다. 엄마가 시킨 대로 주방에다가 물건을 두고 재빨리 왔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때였다. 탁. 하고 라이터 켜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니 웬 여자가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언니의 엄마였다. 아줌마는 언니 집에 놀러갔을 때 봤던 모습보다 훨씬 야위어 있었다. 아..안녕하세요. 쭈뼛쭈뼛 거리는 나완 다르게 아줌마는 시원스럽게도 인사를 받아주셨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수경이 아니니. 순간, 아줌마 손에 들린 라이터불이 꺼졌다. 조명을 등지고 앉은 아줌마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까매졌다. 염라대왕 앞으로 나를 끌고 갈 저승사자로 보였다. 과일 좀 깎아 줄 테니 먹고 가라는 아줌마의 손을 뿌리치고 서둘러 술집을 빠져나왔다.

 주말이 지나고 학교에 돌아오자 언니가 이상해졌다.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도 않고,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말을 걸어도 대답도 안했다. 점심시간에 사라져서는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핸드폰으로 아무리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불안했다. 언니가 왜 그럴까. 학원을 며칠 씩 빠지고 언니의 집 앞을 서성여도 언니를 만날 수 없었다. 안되겠다 싶었다. 밤새도록 구구절절 편지를 썼다. 다음 날에도 수업시간 내내 편지를 고치고 또 고쳤다. 마침내, 야자 시간이 되었다. 편지를 손에 들고 교실을 박차고 나와 단란주점으로 향했다. 귀를 때리는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웬 중학생 여자애가 가게에 들어서니 가게 주인이 막아섰다. 진주엄마를 만나러 왔어요. 주인이 서있는 카운터를 향해 소리쳤다. 누구? 진주엄마요! 누구라고? 진주엄마라고요! 다시 고래고래 악을 썼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바로 옆방서 아줌마가 나왔다. 수경이구나. 언제 악다구니를 썼냐는 듯이 언니를 꼭 닮은 음흉한 반달눈을 향해 조신하게 편지를 내밀었다. 내가 창피하다더라. 편지를 받아든 아줌마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입에 가져갔다. 길게 내뱉은 흰 연기가 내 얼굴에 어른거렸다. 아줌마와 내가 술집에서 만났다는 사실. 그게 바로 언니가 나를 피한 이유였다. 서운했다. 그게 뭐 어떻다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혹시 학교에 소문이라도 낼까 싶었나? 왜 나를 믿지 못하는 걸까? 흰 연기 때문인지 눈앞이 뿌옇게 번졌다.

 며칠 후 언니는 학교에서 아예 사라졌다. 노처녀 담임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번을 불러 책상을 빼라 일렀다. 반평균을 갉아먹던 골칫덩이가 없어지니 내심 기쁜 듯 했다. 언니가 사라지고 난 빈자리를 온갖 소문들이 대신 채웠다. 부천역 지하상가에서 옷을 훔치다 걸렸다느니, PC통신에서 아저씨와 원조교제를 해서 이전퇴학을 당했다느니. 소문은 이스트를 넣은 빵처럼 부풀어 올라 온 학교를 두둥실 떠다녔다. 나는 급식비를 걷은 봉투를 들고 교무실로 가 담임선생님께 물었다. 언니 왜 학교에 안 나오느냐고. 어디 아픈 거냐고. 옆 반 체육선생님과 빵을 먹고 있던 선생님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 동안 맨 뒤에 앉아서 수고했고 내일부터는 원래 자리에 앉아. 괜히 허튼 데다 신경 쓰다 성적 떨어지면 너희 어머님 큰일 나신다. 나는 말없이 선생님의 책상 위에 급식비 봉투를 올려놨다. 그 때 언니의 이름과 함께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 라는 담임의 글씨가 적힌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

 교실로 돌아와 가방을 챙겨들고 학교를 나섰다. 수학수업이 막 시작했지만 상관없었다.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지만 무시했다. 이차함수 못 푼다고 맨날 나 무시했는데 뭐. 계단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꼈다.

 대낮에 교복 입은 채로 길거리를 배회하는 나를, 어른들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마치 부평역을 어슬렁거리던 여자애들을 바라보던 어느 날의 나처럼. 나는 지지 않고 그런 어른들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이제야 그 아이들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언니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곧장 역으로 향했다. 남부역 버스 터미널로 가 안양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가자리에 앉자마자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어두컴컴한 조명에 묻혀버렸던 아줌마의 새빨간 립스틱 색깔만큼이나 언니가 보고 싶었다. 한 잠 자고 일어나면 언니를 만날 수 있겠지. 계속해서 울려대는 핸드폰의 전원을 끄고 나는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