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_도마뱀

2015.09.11 발행

도마뱀

방이 어두웠다. A가 일어나며 형광등을 켜고, 선풍기를 틀었다. 이미 오래전에 생산이 중단된 구형 텔레비전도 켰다. 화면 가득 아날로그시계가 떠오르고 초침이 세 번 움직였다. 정오를 알리는 소리였다. A는 점심을 차리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으나 덩그러니 놓인 김치 통 뿐이었다. A는 뚜껑을 열고 맨손으로 이파리를 찢어 입에 넣었다. 올 초에 담근 김치가 물렁해져 상한 생고기의 식감이 났다. 전화벨이 울린 건 A가 더 큰 이파리를 손으로 집어 입에 가져다 댈 때였다. 일주일 전 면접을 본 회사에서의 연락일 터였다. A는 손에 든 김치를 어쩌지도 못한 채 전화를 받았다.

“이 애미 좀 데려가라. 키워준 은혜는 갚아야지.”

엄마였다. 걸걸한 목소리 뒤로 남자의 욕지기가 들렸다. A는 김치를 입에 우겨넣었다. 입술 사이로 벌건 김칫국이 새어나와  이불 위에 번졌다. A는 통화 중인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선풍기 팬 돌아가는 소리와 형광등이 깜빡이는 소리, 그리고 빈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에 엄마의 목소리가 묻혔다.

A는 빨래 건조대에 걸린 수건을 걷어 물에 적신 뒤 이불에 누워 얼굴 위에 덮었다. 코와 입 부근이 오르내렸다. 더욱 빠르게 깜빡이는 형광등이 방 안을 어지럽게 비추었다. 누군가 방문을 세게 두드렸다. 간간히 월세, 미친년, 석 달이라는 단어가 들렸으나 잡음에 묻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A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럴수록 수건은 더욱 입 안으로 밀착했다. 팅, 소리가 나며 형광등이 나갔다. A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볼록한 TV에서 앵커의 목소리가 흘렀다.

“사막이 아름다운 까닭은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오아시스는,”

소리가 뭉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