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연-홍태림 대담

2016.06.07 발행

 

2016.4.1 – 4. 16

플레이스막, 막사
서울특별시 마포구 연남동 227-9

기획 이지혜
후원 서울시립미술관

서주연 – 홍태림
두 번째 개인전에 대한 대담

홍태림작년 시월 공간사일삼(사일삼)에서 《산속의 늙은 노인》(2015)전을 열고 약 반년 만에 플레이스막에서 개인전을 열었다두 전시는 짧은 간격을 두고 열렸음에도 각 전시의 중심축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서주연작년 시월에 했던 첫 개인전에서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대상들의 대명사를 어머니소녀노인남자로 한정하고 그들의 관계 맺기 방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내가 속한 사회의 구조를 설명해 보려고 했다나는 이 구조를 특정 장소에서 가져온 화려하고 반복된 패턴의 소파에 비유하여 내부에 가려져있던 허술한 구조를 드러내거나이를 해체 또는 재조합하여 위태로운 균형감각을 가진 기댈 수 없는 새로운 사물로 만들었다이번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재난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집단,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외부자 집단으로 사람들을 그룹화하고비극 속에 놓인 피해자를 바라보는 가해자의 시선과 재난과 관련 없는 세계의 외부자 입장에서 그들 모두를 목도하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이를 위해 광고의 속성을 가진 플래카드 구조들과가벼운 웹상의 보도사진반짝이는 소재들의 리플렉션 등을 이용하여 공간을 연출했다조금 다른 주제 같기는 하지만 결국 이 두 전시가 모두 타인과의 직/간접적인 관계 맺음과 그들이 속한 구조에 대해 다룬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다만 두 번째 전시가 좀 더 확장된 그룹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려고 했고두 전시에 놓인 작품들 간의 스케일 차이나 전시를 담는 장소의 성격 등 외형적인 부분들의 온도차가 커지게 되면서 두 전시가 매우 다른 주제를 가진 전시로 보여 지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

홍태림만약 두 전시의 중심축이 서로 완전히 포개지는 것이 아니라면두 중심축의 사이 공간은 차후에 어떤 방식으로 다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서주연작업이나 전시가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없고혹은 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상황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이번 전시는 확실히 첫 번째 전시보다 좀 더 확장된 이야기를 하려고 했기 때문에 주제가 어긋나 보이기도 하는 것 같기도 한데, 나는 그 간극을 메운다 혹은 연결사를 만든다 라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사실은 지금 내 삶 자체가 아주 생뚱맞게 흐르고 있다나는 오랫동안 회사를 다니는 보통의 직장인이었는데, 예기치 않게 다시 공부를 하게 되면서 언젠가부터 작가의 삶이 시작 되었고근래에는 급작스럽게 이란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렸다와 같이 예상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게다가 나를 둘러싼 세상의 사건들도 파편적으로 터지는 느낌이 드는데전반적으로 지금의 삶이 갑작스러운 재난을 보도하는 뉴스처럼 산발적이고 예측 불가능 하다는 느낌이다이런 상황이런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내가 아주 일관성 있는 진술을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 같다그러므로 때때로 만들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만들고, 만든 작업들이 하나의 주제 안에 묶이겠다고 판단되면 전시를 하고그렇게 될 것 같다나는 작가가 작업을 지속할수록 하나의 주제로 다가간다기 보다는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 한다다만 작업을 오랜 시간 지속한다고 가정해 보면 한 사람이 가지는 관심 분야가 매번 완전히 다르겠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고, 결국 작업이든 전시든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커다랗게 묶이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게 된다때문에 작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강박적으로 하나의 주제를 계속 가져가야 한다는 의무감은 갖고 있지 않다전시의 축이 포개진다는 것을 전시가 연속성을 가진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작업을 하면서 하던 걸 계속 한다는 느낌이어야 할 텐데 나는 그게 어떤 감각인지 잘 모른다이 분야에서 지속해온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일단은 작업을 계속 해 보아야 답 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홍태림이번 플레이스 막 개인전에서도 개인적인 경험과 조형적 탐구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과 이 교차하며 드러내는 재난과 2014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장면을 다룬 작품들이 드러내는 재난은 서로 비스듬하게 포개질 것 같지만이내 서로 미끄러지며 분리되는 것 같기도 하다어떻게 보면 꽤 상이한 이 두 가지 주제를 이번 전시에서 함께 구성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서주연나는 매우 아날로그적인 사람이고 또래에 비해 유독 새로운 테크놀러지를 두려워 한다는 느낌도 든다작품의 재료나 매체를 선택 하는 부분에서도 레트로한 성향이 보여지고, 이런 점이 설치 작품을 만들 때의 내 조형감각에서도 드러난다고 생각한다반면 이번 전시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그런 나의 기본적인 성향과는 별개로 시의성이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빚 연작의 경우 2미터가 채 안 되는 사이즈의 플래카드 형식을 가진 설치작업으로, 이미지가 앞뒤로 교차하며 쌍으로 된 하나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플래카드라는 것이 이미 광고의 속성을 가진다고 가정할 때 이 플래카드 연작들은 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내부에서 외부로크고 반복적으로 광고한다그러나 그것은 애초에 특정한 대상을 향하지 않으므로 유효한 도움으로 이어질리 없다나는 ‘빚’이라는 글자를 쓰면서 반복되는 재난들 간에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명목 하에 글자 위에 이미지를 덧붙이거나 이를 입체로 전환하는 등 엉뚱한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생산했다그러나 어느 순간 이미지들은 나의 강조를 위한 반복적인 노동과는 상관없이 점차 분명한 의미를 잃는 듯 보였고대신 거대한 괄호처럼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해결되지 않는 어떤 뒤죽박죽의 상태를 보여 주는 것 같았다나는 사람들이바깥의 구조가 아닌 내부의 반복적인 상황에 집중할수록 결국 방관자 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고, 쉽게 무기력해져버린다고 생각한다이런 상태를 서문에서는 일상적 재난이라고 표현했는데나는 이것을 내가 한 번도 합의한 적 없는 구조에서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예견되어져 있던 ‘주어진 재난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팔레스타인의 폭격씬을 다룬 드로잉의 경우재난을 다룬 수많은 보도 사진 중 에서도 내가 가자지구의 이미지를 선택한 한 것은 그 지역의 폭격장면이 다른 곳과 차별되는 어떤 상징성을 가지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으로부터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폭격 장면을 영화 보듯 관람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웹상에 빠른 속도로 퍼진 일이 있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이유로 이 장면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기자의 말에 따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언덕을 스데롯 극장이라 불렀고, 그들은 망가진 소파나 플라스틱 선배드 위에서 폭격이 터질 때마다 큰 소리로 환호를 보냈다고 한다그것은 어쩌면 전쟁에 따라오는 부차적인 이미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피가 낭자하는 처참한 사진들보다도 하드코어했다한데 이 충격적인 이미지는 내게 먼 나라의 인상적인 사건으로만 머물지 않았고,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퍼포먼스를 벌인 사람들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던 보도사진과 오버랩 되며 묘한 기시감을 일으켰다그러니까 타인의 고통에 환호를 보내는 기이한 집단의 형성은 더 이상 특정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나 지역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었고, 그들은 오직 구경거리에만 순수하게 집중하는 새로운 형태의 결집력을 가지고 (그것이 재난이든 혹은 다른 무엇이든 간에 하나의 이슈를 중심으로윤리적인 판단을 보류한 채 가상에서 시작해 실제의 세계에서도 쉽게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가자지구의 폭격 장면과 빚 플래카드 연작을 전시에 함께 두었을 때, 그 사이에 분명한 연결지점이 없다고 생각 하면서도그렇게 맥락이 단절되어있는 비논리적인 상황 속에 놓여있다는 감각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거리감이 내가 재구성하고자 하는 엉뚱한 현재를 잘 반영해 준다고 생각했다나는 지금 내가 겪고 있거나 외부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그들이 각기 다른 대상을 향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휘발되기 전에 함께 놓고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참혹한 이미지들이 짤막한 뉴스와 함께 실시간으로 전달될 때 그 이야기는 내게 늘 멀었고자신에게 닥친 일상의 재난조차 핸들링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타인의 비극은 타인의 운명이지 내가 뭘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조금의 여유도 없는데다가세상에 재난은 너무 많이 일어나고 그걸 다 어쩔 도리는 없다그런데 그렇게 남의 일이라고 여기면서 잊어버리고 살다가 또 어떤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보도되는 것을 보고나면, 방관을 당연시했던 자신이 문득 인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방관이 죄처럼 느껴져서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그런 느낌이었다얼마 전 배우 정우성이 레바논 베이루트에 다녀와서 방송을 통해 시리아 난민의 문제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는 것을 보았다나는 최초에 이 전시를 위해 재난을 하나의 소재로 가져올 때부터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윤리는 지루한가재난은 그 세계에 속한 사람이어야만정치인이어야만최소 연예인이라는 공인의 위치를 가져야만 언급할 수 있나? 나는 윤리가, 자신의 안위에만 천착하게 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서 당신의 정면을 마주보게 하는 아프고 도발적인 질문임을, 또한 그것을 언급하는 것이 결코 자격의 문제로 여겨져선 안 된다는 생각을 말하고 싶었다아마 두 개의 재난이 포개질듯하면서도 미끄러지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포개지지 않는 두 가지의 재난을 소재로 한 작업들을 한 공간에 배치하면서, 나는 개별 작품들을 감상의 대상이라기보다 기능적인 요소를 가진 하나의 역할로 두고 공간을 구성하려고 했고이미지와 설치를 교차시키며 공간을 분할하는 것으로 관객을 외부자이자 내부자라는 혼란스러운 지점에 두고자 했다관객이 처음 맞닥뜨리는 전시장 윈도우 위에 폭격 장면을 기호화한 은경시트를 붙이고이 은경시트의 리플렉션을 통해 내부와 외부가 혼재된 경계를 만들어 내는 것을 최초의 공간 분할로 가정했다전시장 내부에서는 빚 연작의 큰 플래카드 덩어리들이 구조를 가지고 파티션처럼 공간을 나누면서, 하나의 작업을 통과해야 다음 작업을 관람할 수 있게 되는 장면을 생각했다이렇게 분할된 공간을 통과할 때 관객이 벽면 위에 가볍게 띄워진 드로잉을 마주치며 잠깐 포즈 하게 되면전시장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 내부의 관람자를 바라 볼 수 있게 되는 구조를 상상했다이어지는 막사의 공간에서는 폭격 이미지를 빛이라고 쓰여 있는 플래카드와 동일한 형식과 사이즈로 만들어 관객이 밖에서 안으로 진입할 때 연극 무대나 영화의 씬에 개입하는 것 같은 감각을 주고자 했다.

홍태림문래동에 위치한 사일삼보다는 연남동에 위치한 플레이스막이 유동인구가 훨씬 많다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플레이스막의 이러한 특성을 염두에 두었나.

서주연전시 주제에 들어가 있는 재난타인시선과 같은 단어를 떠올려 보았을 때 관객이 많은 편이 주제를 전달하기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플레이스막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이 트렌디한 장소를 찾아다니며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여러 매체를 통해 공유하는 20-30대의 유입이 많은 공간이라는 점이었고이 부분이 이번 전시가 목표하는 세대에 잘 부합하는 느낌이었다플레이스막과 막사가 위치한 골목이 모두 주말이면 사람들로 붐볐다두 공간 모두 1층 윈도우 갤러리였으므로 그 장소를 선택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관객을 발명해 낼 필요가 없는있는 관객을 발견하기만 하면 되는 장소라는 느낌이었다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작업을 시작하면서 온라인상의 친구들이 빠른 속도로 미술인들로 꾸려졌는데 언젠가부터 이게 좀 답답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예술가들은 예술가들만의 전형성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특히 서로가 서로를 아카이빙 하는 것으로 자신을 어딘가에 포지셔닝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나도 그런 것을 하고 있는데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쩐지 조금 피로했다무엇을 먹고 어디를 갔는지 과시하기 위한 일반의 용도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피로했는데, 차라리 알 수 없는 익명의 사람들로 부터 전시에 대한 피드백을 받게 되면 어떨까 상상하게 됐다그것이 작가 이전의 친구들과 작가 이후의 친구들이 모호하게 섞인 가상의 세계를 벗어나는 일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런 점들이 확실히 양날의 검이었다는 생각을 한다전시를 철수하는데 캔버스가 지지대에서 떨어져 나와 아무데나 자유롭게 기대어 있고 입체 작품들도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데, 개별 작품들의 꽉 짜여 있던 밀도가 확 떨어지면서 이렇게 전시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착각일지 모르지만 그게 소위 더 힙한 현대미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처음부터 그 공간에서 전시를 하기로 했을 때에는 그 트래픽을 의식하면서 작품이 헐렁하게 연출 되는 것에 대한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목표가 있었으므로 그냥 직진한 느낌이 든다막사 앞의 동진시장은 마켓처럼 일정한 스케쥴 외에도 예정에 없던 전시나 행사가 급작스럽게 열리기도 해서 전시의 집중도가 흐려지기도 했고그럴 때 마다 좌절감을 느꼈다그래서 전시가 끝난 이 시점에서는 굉장히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그러한 특성의 공간을 선택한 것도또 그렇게 전시를 한 것도잘 한 것 같기도 한데아닌 것 같기도 하다전시의 의미라는게 워낙 가변적이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는데 전시를 보는 내내 그 말을 생각했다전시가 끝난 이 시점에선 작품 자체로 어떤 힘이 있었기를, 그게 목표로 했던 발견된 관객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되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홍태림최근 두 개의 개인전을 되뇌어보면 개인적 경험의 조형적 탐구를 출발점으로 삼은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그러나 개인적 경험이 예술을 통해서 보편적 의미를 지향할 수 없다면 조형적 탐구는 그저 예술 안에서 이뤄지는 평온하고 지루한 폭발이나 유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개인적 경험에 기반을 둔 작품활동이 사회를 가로지르는 보편적 의미를 조금이라도 지향할 수 있다고 믿는가.

서주연개인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안이 크든 작든 사회의 큰 흐름 혹은 현상 속에 있게 되거나 그것을 바라보는 입장에 처해 지는데, 그런 영향들이 작업에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개인적인 이야기라도 어떠한 작은 보편성의 실마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좀 더 보편성을 지향하고 소설 같이 구체적인 문장을 쓰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시각예술이 워낙 시 같은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공감 하길 원하거나 모두와 투명하게 소통하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어느 쪽이 더 가치 있고 중요한가에 대한 기준도 모호한 편이다지난 첫 번째 전시의 경우 보편성을 논하기에 앞서 전시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그렇다고 해서 나는 이 전시를 단지 개인적인 조형적 탐구에 머문평온하고 지루한 폭팔이나 유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어쩌면 서로간의 오해에서 비롯될 지언정그것은 그것대로오직 그것만이 줄 수 있는말로 하는 깨끗한 커뮤니케이션 보다 더한 감정의 진폭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고그것이 시각예술이 할 일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에서는 보편적인 감각에 다가가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던 것 같다작가라는 직업을 의식할수록 내가 정치인처럼 유효한 발언이나 정책으로 사회를 가로지를 수는 없다고 느꼈으므로나는 이번 전시에서 최소한의 직업적 의무감을 관객을 발견하는 지점에 두었고누가 강제하지도 않은 의무감을 가지고 하는 선택들은 어쨌든 다른 쪽의 포기들을 수반하여 그게 다소 괴롭다고 느껴지기도 했다그러나 그런 괴로운 감정을 자처했다는 사실 때문에라도작가가 자신의 지난 전시에 대해 사회적 의미나 보편성의 여부에 대해 생각해 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한다단지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전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지켜보는 일 뿐이었다사람들은 설치물 앞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거나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거나이미지들을 발화해보려고 시도 하였고비슷한 패턴의 반응이 반복적으로 보여 질 때 전시와 관객만이 가지는 어떤 뜻밖의 주고받음이 있겠거니 생각했다과녁을 빗나간 것처럼 보이는 화살이 날아가 결국 꽂히는 지점이 있다는 느낌, 과녁의 중심이 어디에 있든 명중을 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거라고 생각 했다전시장에 놓인 서문 첫 문단에 ‘의연하게 작품 속으로 걸어가시길 바란다’ 라고 쓰여 있는데별로 좋지도 않은 말이 커다랗게 쓰여 있는 공간에 내가 알지도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개의치 않고 걸어 들어갔다작품을 만들 땐 그런 장면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그래서 나는 생각보다 다양했던 사람들의 반응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홍태림이번 전시는 4월 16일을 폐막일로 잡았다올해도 세월호 참사일인 4월 16일을 전후로 다양한 전시가 열렸다올해의 경우 경기도 미술관의 《사월의 동행》, 416 기억저장소의 《두 해스무네 달》공간 해방의 《이불 한 장 프로젝트》시민청 갤러리의 《끝나지 않는 노래》아트포럼 리의 《지극히 가벼운 추모전》 등을 예로들 수 있을 것이다각 전시들이 4월 16일을 전후로 전시를 개막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입장을 더욱 선명히 발언하기 위함일 것이다이번에 플레이스 막에 출품한 작품들이 재난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전시를 4월 16일에 맞춰서 폐막한 이유가 세월호 참사라는 재난을 어떤 방향으로든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만약 세월호 참사를 염두에 두고 전시 종료일을 정했다면 이번 전시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내용이 작품을 통해서 드러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서주연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타인재난에 처한 약자를 대하는 특정 집단의 태도를 보며 세월호 사건을 염두에 둔 지점이 있었고 아마 최근에 가장 날카롭게 내 머리에 들어와 있는 비극적 사건 역시 세월호 사건이 아닌가 한다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재난 자체를 말하려고 했다기보다 재난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주제로 두었기 때문에세월호 사건이 전면에 드러나게 되는 순간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의 단어가 더욱 뚜렷하게 전시의 인상을 지배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또한 지역 특수성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우리가 스데롯 언덕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면서 바로 비윤리성을 떠올릴 수 있는 반면세월호 사건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너무 직접적이고 선명하여 그 이후에 벌어진 폭식 퍼포먼스와 같은 현상을 독자적으로 떼어놓고 바라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그것은 비윤리적인 시선을 던지는 대상이 주는 충격 이전에, 현재의 우리에겐 추모의 감정이 더욱 지배적인 사건이다게다가 이미지를 구현 혹은 재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무엇이 폭파하는 장면과 같은 가시적인 씬을 만들어내지 않고 비가시적이며 인과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건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의 거대한 폭파장면을 드로잉으로 전환하면서 세월호 사건을 이와 쌍을 이루는 형태로 다루려고 한다면 그것은 드로잉이 아닌 다른 방식이어야 하고보다 독자적인 카테고리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하지만 그것은 재난과 타자의 비극이라는 단어들을 떠올렸을 때부터 이미 머릿속에 들어가 있었던 사건이었다세월호 사건이 없었다면 작업이나 전시도 이런 형태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4월 16일을 전시 기간에 포함 한 것은 또한 올해 초 급작스럽게 전시장의 재계약이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고 전시 기간을 최대한 늘리기로 하면서 결정된 것이기도 한데그날을 선택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은 포스터를 인쇄를 컨펌하는 마지막 날까지도 했던 것 같다전시 마지막 날 비가 많이 왔고 그날은 유독 전시장에 온 사람들이 적었다그날 이 전시를 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어쩌면 이기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어떤 의무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 계기이기도 했다.

홍태림미대를 졸업하고 바로 작품활동을 이어나가는 대신 직장생활을 꽤 오랫동안 한 것으로 알고 있다직장을 나와서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지 몇 년 안 된 셈인데작품활동을 재개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서주연직장생활을 8년 정도 했는데 일단 일이 내겐 너무 힘들어서 직장을 그만둘 즈음엔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하던 일을 계속했으면 계속 힘들어 했을 것 같고아마 미술을 하지 않았어도 그때와 다른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다시 작업을 하게 된 건, 어떤 기회들로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면서 졸업을 할 무렵 작업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자기 확신 같은 것이 조금 생긴 상태였다일을 할 때 나는 유능한 편이었다오래 해서 잘하기도 했겠지만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보통 겹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잘하는 일’ 이었을 것이다그래서 잘하는 것은 억지로 오래 해봤으니까 이제 이런 저런 기회들이 마련되었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게 한시적일지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한 번쯤은 해보자 라는 생각을 했다무지가 용기를 부른다고 아트씬에 대한 이해도 없었고좀 나이브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홍태림작품을 제작할 때 기성품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들도 가능하면 손수 제작한다는 점에서 수공예에 많은 애착이 있어 보인다수공예에 대한 관심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투여되는 작가의 노동과 연결되는 것 같다수공업에 기반을 둔 작품활동을 통해서 본인의 노동을 거듭 재발견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예를 들어작품활동에 투여되는 노동이 대부분 작가의 의지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사용자 곁에서 노동할 때 발생하는 착취소외모욕예속 등에서 꽤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해방된 노동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또한오랜 직장생활 과정에서 경험한 노동과 작품활동 과정에서 경험하는 노동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서주연나는 오랫동안 제품을 수입하는 일을 했는데제품을 손에 쥐고 몸을 움직여서 물건을 매장에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니라 오더 할 품목을 정해 외국 본사에 오더를 넣으면 나의 신체가 개입되지 않은 상태로마치 자동인 것처럼 느껴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물건이 한국 매장에 도착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그러니까 매번 뭔가 손에 잡히지 않는 가상의 노동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내가 하는 일은 각 매장의 매출 플로우를 분석하고그 특성에 맞게 주력상품을 구성하여 오더를 보내고신상품의 매출을 예측하는 데이터를 만드는 작업이었고이것은 대게 숫자로 시작하여 숫자를 결정하는 일로 마무리 되었다그러므로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업무에 비해 훨씬 실재성이 떨어지는 일이기도 했다그렇게 신체에 오랫동안 손에 잡히는 형태의 노동이 부재하면서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고 완성의 과정을 목격하는 것에 대한 욕구가 점점 커졌을 거란 생각을 한다기계가 인간의 많은 노동을 대체하고 있고, 알파고와의 대결과 같은 상징적인 장면을 바라 보면서가속도의 가속도가 가속도를 만들어내어 따라가기 벅찬 미래가 빠르게 가까워지는 기분이다그럴수록 예술을 할 때의 인간의 노동에 대해 내가 점점 더 본질적인 시각과 자세로 돌아간다는 생각도 든다.

수공예에 대한 애착은 이런 자세로부터 이어진 것으로 추측되는데그것이 장인의 태도나 성실함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면 선호로 그치고 마는 수준이라는 생각도 든다나의 수공에 대한 애호는 근육의 움직임에 대한 측면보다도 하이엔드 브랜드의 제품을 다뤘던 감각의 연장선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많은 단서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나의 조각 중에는 대량 생산되거나 오더 메이드 되어 이미 상품의 마감을 가진 재료들을 해체하고 가공하여 꼴라주 하는 반(?) 수공 방식을 사용한 것들이 꽤 있는데일하면서 그간 내가 보아오던 것들이 있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 때 너무 취약한 물성의 재료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작품을 구성할 때 표면과 마감에 대한 생각을 먼저 했고, 기성품을 재료로 했을 때 그것이 가진 퀄리티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하지만 재료들을 해체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마감에 필연적으로 균열이 생기고 결과물이 공산품의 외형에 미치지 못 할 거라는이미 어느 정도 실패가 예측되는 순간들이 있었다돈을 주고 전문가를 쓸 수 있는 입장이 아니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톤이 비슷한 재료들을 선택하고 재료 간의 마감을 최대한 맞추는 것 뿐 이었다이번 전시에 쓰인 플래카드 연작의 경우는 그것이 레트로한 외형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캔버스부터 지지대까지 모두 기성품에서 벗어나는 사이즈로 제작하게 되었는데마감에서 톤을 맞추려다 보니 수공이 더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제작한 구조들에 산업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연결부위를 강화할 부품들을 찾아 다녔지만 기성부품들의 사이즈가 딱 떨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였고미묘한 온도차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부품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고안전하고 편리하게 나와 있는 간단한 부품들은 다시 여러 부품을 거쳐 우회하는 방식으로 의도적으로 공산품이 주는 정제된 세련미를 떨어뜨리려고 했다이렇게 작품 안에서 모든 요소들이 비슷한 온도를 유지하려다 보면 디테일에 집착하게 되는데 이것이 아마 수공에 대한 애착으로 보여 지게 되는 것 같다내가 가진 것이 테크닉이 아니라 잉여력뿐인데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부분들에 쓸데없이 하이 퀄리티가 보여지면 좋았다이미 있는 것들을 근소한 차이 때문에 포기하고 새로 만들 때는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언가 계속 하고는 있지만 대가 또한 부재할 것이라는 확신을 할 때 우울해지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럴 때 마다 쓸데없는 노동이란 얼마나 풍족한가 생각했고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안정감을 찾으려고 했다.

이어진 노동 간의 차이점이나 공통점에 대해서는질문에서 언급한 대로 갑과 을이 자신이 되는 형태의 노동은 해방감을 주기도 하지만 내겐 누군가의 컨펌을 받지 않고 일을 진행한 다는 것이 여전히 익숙지 않고매번 자신의 의도와 결과물이 얼마나 상이한가를 혼자 의심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을 쏟게 된다나는 짧은 기간을 두고 가지고 있는 작업들을 빠르게 다 전시해 버렸는데, 내 선택의 패쓰들을 더듬어 보면서 전시는 누구도 아닌 온전히 나라는 개인이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동시에 보여주는 새로운 경험이라고 느꼈다결정을 개인의 선택에만 의존하든혹은 여러 사람과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되든이들이 모두 노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묶인다는 생각이 들었고그 노동의 공간이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간에 매우 정치적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지만예술노동과 기업에서의 노동의 공통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는 생각이다첫 개인전을 할 때 나는 이미 수요 없음을 전제로 노동을 시작했고이건 소비자를 염두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노동과는 애초에 전혀 다른 게임이다나를 고용한 고용인도생산물에 대한 수요도 없는 상황에서 자의로 무엇을 지속적으로 생산한다면그 노동에 대한 대가를 물어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석사 논문을 쓸 당시엔 세스 시글럽의 아티스트 컨트렉트와 같은 예를 언급하며 예술이 노동임을 주장했는데, 지금 논의 되고 있는 아티스트피나 표준계약서도 그 룰이 적용 될 만한 곳이 있고 그렇지 않거나 그럴 수 없는 곳이 있지 않은가전시의 소비자와 공급자가 거기서 거기로 거의 일치하고실은 공급자가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예술 노동의 구조에 대해 더 혼란스러워 지는 느낌이다지금은 입장을 확실히 하기 어렵고 단지 이런 종류의 노동을 지속하는 동력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그 동력이 대가이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작가는 창작에 대한 욕망이 크거나지적 허영과 영광을 지향하는 타입일수록 일을 지속하기 쉬울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나는 그런 욕망들이 내 내부에 각기 얼마만큼의 포션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관찰하게 된다그 동력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 어떤 것 하나가 사라지게 된다면마치 일을 그만두었을 때처럼 작업도 그만두게 될까혹은 반대로 능력 없는 피고용인이 해고 당하는 경우처럼이 비 가시적이며 대가가 부재한 노동의 장 안에서도 공모나 수상을 갱신하며 내 능력을 검증하지 못하면 작가는 상징적으로 해고 될 수 있는 구조인가그렇다면 그걸 해방된 노동이라든가 자유로운 창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누군가 개인전을 자비로 한다며 자비 미술가라는 단어를 말했는데 그 말이 입에 너무 썼던 기억이 있다무엇을 말하기 위해어떤 질문을 던지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홍태림과거 작품들을 보면 그림이 꽤 많다그런데 근작들은 입체작품들이 주를 이룬다물론, <simulation of exotic atmosphere>(2009)연작에 등장하는 야자나무와 《산속의 늙은 노인》에 출품된 <엄마와 인조 종려나무>(2015) 경우를 예로 보자면 소재 측면에서 연결성이 있다뿐만 아니라 조형적 탐구에 대한 관심 역시 그림과 입체작품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다그렇지만 직장생활을 했던 긴 휴지기를 기점으로 주된 방법론을 그림에서 입체작품으로 바꾼 것은 한편으로 급작스러운 변화로 느껴진다게다가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입체작품이 물심양면으로 작가에게 부담이 많은 방향이기도 하다그런데도 오랜 휴지기 끝에 재개한 작품활동의 방향이 그림이 아닌 입체작품이 된 것이 궁금하다혹시 나중에 다시 그림을 그릴 의향도 있는가?

서주연그림을 그리는건 대부분 앉아서 이루어지는 작업들인데 근래엔 정적인 노동에 거의 흥미가 없다팔을 크게 벌려 설치물의 크기를 가늠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의 소재들을 다뤄보고 하는 것이 내겐 보다 현실성이 있다게다가 나는 매우 즉물적인 인간이어서 어떤 볼륨을 다룰 때 오는 만족감이 큰 것 같다그래서 작품을 만드는 것부터 보관이나 판매까지 고려했을 때 설치 작업이 여러모로 상황을 더 어렵게함에도 불구하고부피가 주는 소유의 감각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그런데 첫 번째 전시도 그렇고 두 번째 전시에서도 다 걸지는 못했지만 모두 많은 양의 드로잉이 있었다나름대로는 적절히 몸을 나누어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본격적인 페인팅을 말하는 것이라면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앉아있을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기본적으로 회화 작업들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매체를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기회들이 있지 않을까 한다.

홍태림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다른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을 밝히는 것에 곤란함을 느낄 수도 있다그렇다면 본인은 자신의 창작활동이 다른 작가와 견주어지는 것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만약 본인이 다른 작가와 견주어지는 것에 개의치 않는 입장이라면 작품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참조했던 작가나 작품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서주연물론 여러 작가들의 영향을 받고 그게 영감이 되어 작업을 하게 되기도 한다하지만 스스로 작가라고 인식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그런 참조점이 드러나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머릿속에서 두 작품을 함께 놓고 바라 볼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나는 박이소 작가나 필리다바로우 작가의 작업을 좋아하고, 이번에 전시했던 플래카드 연작의 경우 2004년 부산비엔날레에서 보았던 박이소의 우리는 행복해요’ 작업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도 있겠다하지만 이것을 오마주라고 스스로 확정지어 말하기엔 조금 어려운 지점들도 있다박이소의 이 작품을 웹에서 찾아서 보면 지금은 왠지 서글픈 느낌이 드는데눈앞에서 그 작품을 바라 볼 때는 별로 슬픈 감정도 들지 않았다쓰여진 단어들이 그저 조금 웃겼고작가의 죽음이 비현실적일 뿐이었다작품을 제작할 당시에도 박이소의 작품을 떠올렸다기 보다는 빚이 많은데 그게 늘 아무렇지도 않아서, 그냥 크고 번쩍번쩍 빛나게 그 글자를 한 번 써서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나는 파주에 평생 살았고어릴 때 임진각에 자주 갔었고길치인 엄마와 주말에 목욕탕에 갔다가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어느새 북한이 너무 가까이에 와 있었다한 동네에 사는 이모는 네 살 때 들었던 총소리의 굉음을 아직도 꿈에서 듣는다고 했다그런데도 북한전쟁과 같은 단어들은 늘 남 얘기 같았다.

플래카드라는 형식적 측면에서 보자면 박이소의 작업보다는 살고 있는 곳과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북한의 지역적인 감각이 더 작용 한 것 같고작품을 만들면서도 북한에서 플래카드를 근접 촬영한 사진들을 참고하면서 형식적으로 비슷하게 작업하려고 했다때문에 박이소의 작업이 보다 공산품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다면 내 작업은 좀 더 아날로그 적인 느낌을 많이 가지고 있다작업을 하면서 내가 지금 무슨 말인가 하고 싶다면 빚이라는 약간 천박한 단어를 쓰는 것이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문장은 대상을 향하는 느낌을 받는데나는 문장을 쓰는 것보다 허공을 향하듯 하나의 단어를 쓰는 것이 더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했다이것을 성인 남자 키 만한 사이즈로 만들어서 굳이 작은 실내에 쑤셔 넣은 것도박이소 작가가 거대 플래카드를 드넓은 광장에 전시(구상)했던 십몇 년 전의 삶과 지금의 삶이 매우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지금의 우리는 어디에서든 모바일을 손바닥에 붙이고 있는 것만으로도 더 확장된 삶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박이소를 오마주한 것인가라는 스스로의 의문 속에서그게 맞다면나는 그런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홍태림최근 두 개의 개인전을 치르면서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

서주연시각적으로 빈틈을 가진 제스처들이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비슷한 톤과 마감의 작품들이 전시에 들어가면서 두 전시가 모두 꽉 짜여 있다는 느낌을 주었고 그게 약간 답답하다는 인상이 있었다그리고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공간을 선택했다는 부분에 있어서도 사일삼은 사일삼대로플레이스막과 막사는 또 그 공간대로 그들이 가지는 트래픽이 좋았으면서도 그들이 극단적으로 달라서 생기는 나름의 아쉬움이 있었다공간과 관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홍태림이번 플레이스 막 개인전 이후로 계획하고 있는 작업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서주연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단지 앞서 말한 대로 시각적, 물질적 완성도에 대한 강박없이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이란에 살면서 중동의 분위기나 아트씬에 전혀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게 어떻게 작업이 되어 나올런지는 모르겠다지금 이란에 있으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작가 자아를 내세워 상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정도인데, 이방인이라는 타이틀도 어떤 면에서 자유를 주는 것 같다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고맥락이 소거되어있고예측 불가능의 존재이다그렇다면 나는 어떤 동정도 받지 않고 당당하게 서정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그런 착각을 요즘 하고 있다나는 내가 일관성이 없는 것이 때론 두려운데 그게 뭐 두려운 일인가 싶기도 해서일단 가지고 있는 다양한 고민을 풀어내며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