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_나는 왜 너희를 사랑하는가

2013.03.28 발행

나는 왜 너희를 사랑하는가

프랑스의 이론가 피에르 부르디외는『구별짓기:취미의 판단에 대한 사회학적 비판』(1979)에서 사회학적 분석과 설문지를 이용해 취미의 작용을 검토하고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취미는 계층을 구분하고구분한 자를 구분시킨다.

 
부르디외의 이 한마디는 필자에게 일어난 얼마 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정말 오랜만의 설렘이었다필자는 번개와도 같은 짝사랑에 빠졌고 그 짝사랑에 도취된 자족의 나날을 잠시나마 보내고 있었다불행히도그 기쁨은 잠시였고 그로부터 무언의 가혹한 퇴짜를 당했다상대는 키가 크고 웃는 모습이 선한서울 소재 명문 대학에 진학중인 한 정직하고 똑똑하며평범한 남자였다평범한 그였으나 촌철살인의 유머와 함께 사안에 대한 그의 예리한 시각은 필자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불행한 사랑의 시작은 당혹스럽게도, ‘취미의 차이였던 것 같다그는 필자의 취미를 물었다필자는 몇 가지 취미에 관해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주었다예컨대 필자는 이런 사람이다날씨가 좋으면 삭막하디 삭막한 서울이라지만 풀밭이라도 있는 것이 어디냐며 와인 한 병 사들고서 친구와 함께 한강 둔치에서 작은 한조각의 풍류를 즐기고 싶다그리고 시간이 여유로운 오후나 주말에는 보들레르가 말한 바 있던거리 산보자처럼 거리를 산보하든갤러리를 방문하든생동하는 바깥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각설하면그에게 필자는 ‘와인을 마시고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갤러리에서 미술까지 감상하는’ 여자가 되고 만 것이다. ‘취미는 계층을 구분하고구분한 자를 구분시킨다.’… 필자는 ‘고급취향을 나열하며 계층이라는 인류 만고불변의 폭력적 이미지를 연상시켰고그와 구분되었으며그렇게 그와 비자발적 멀어짐을택한’ 것이다그리고 필자를 고급 취향 향유자로 분류한 그 또한 그 나름대로 ‘구분되기를 ‘하였다그것이 각자의 택함이었는지아니면 취향의 나열 그 자체가 이미 강력한 단절의 효과를 내포하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취미는 무엇이고 취향은 또 무엇이관대 개인으로 하여금 이토록 단호한 태도를 가지게 하는가피크닉과 갤러리 방문이 결코 고상한 취미가 아닐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순수미술을 감상할 줄 아는 것은 자신을 부각시키는 수단이며감상자가 어떤 사회적 계급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는 일이 된다.그런데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고급취향으로 빈번히 언급되는 예술의 향유그 중에서도 미술 감상에 있어 작품 제작자(작가)와 수용자그 외 영역에 위치한 사람들(무관심한 사람들간에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예술이라는 용어는 실은 18세기부터 근대적인 의미즉 천재적인 개인의 독창적 산물이라는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이 창작물은 기본적으로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져 있으며 기본적으로 미적 아름다움을 지닌 물체다우리에겐 ‘타고난’ 천재 아티스트에 의해 생산된 예술품이 예술품이고,그들이 형성한 영역이 곧 예술인 것이다대학에서 미술관련 교양과목을 듣고한국에 상륙한 해외 순방 미술전을 감상하고혹은 교양서를 읽고 유명 작품과 작가 이름을 줄줄 외고유럽 여행을 가 피렌체에 가서 삽화로 본 유명 작품을 재확인하는 것이 우리에겐 미술의 감상이요예술의 향유인 것이다.

 
이러한 미술 감상과 향유에 필자는 어떠한 가치 평가도 할 수는 없다고 본다하지만 안타까운 것은관람객들이 이해하는 예술 내지 미술의 감상 태도가 현대 작가들이 의도한 방향과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작가들의 진정성은 전해지지 않고갤러리와 외로운 작품 한 점과 관람객의 이상한 동거가 이루어지는 현대의 예술상이 슬프다.

이러한 슬픔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우리에게 친근한 피카소부터 가보자피카소가 선보인 콜라주는 서구 회화의 전통에 중대한 전환점을 가져 왔는데이로 인해 순수회화의 성역은 파괴되었다자율적이고 심미화된 회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고창의성에 대한 미술가의 자율적이고 절대적인 관계에 모순이 드러나게 한 것이다브라크도 피카소와 마찬가지로 대량생산된 요소들을 사용함으로써 미술가와 창작물들 사이의 전통적 관계 일부를 포기했다그리하여 창조를 하는 미술가들의 능력이란 그들 밖의 것 ? 즉 미술가들 문화의 부호와 언어에 의존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이것은 미술이 아니다』현실문화, 2011)

우리에게 ‘변기로 잘 알려진 ‘의 작가 뒤샹도 미술가의 문화에의 의존을 시인했다. 1913년의 뒤샹은 자신의 첫 레디메이드(readymade), <자전거 바퀴>를 만들었고바퀴와 의자라는 대량생산된 두 오브제를 결합함으로써 피카소와 브라크와 같이 무엇인가를 창작하는 것은 자신 외부에 존재하는 것들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20세기 초의 이들은 추상미술이 현대의 궁극적 대안이 아니라는 것순수미술에 대한 전통적 생각들은 더더욱 그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현대사회에 진정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미술을 일상생활에 통합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우리가 인식하며 재현하는 것은 자체적인 생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며역사적 맥락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그 연장선에서혹은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현대의 작가들의 작업은 미켈란젤로의 것을 닮았기 보다는 피카소브라크뒤샹의 것을 닮았다.

필자가 아는 몇몇의 미술가들에 국한된 이야기일 수 있으나 그들은 68혁명의 젊은피들 부럽지 않게 회화와 조각을 제작하고 잡지와 책을 출판하고전시회를 열고영화와 사진을 찍고 새로운 종류의 건축과 상품글씨체그래픽의상을 디자인하고 선언문을 쓰고 일기를 쓰고 조선 문인화의 형태를 닮은 자서전적 ‘문인질을 한다놀라울 정도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그러나 반드시 정치적 어젠다를 전제하고 있지는 않다),철학에 대한 관심이론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법학을 전공하는 입장에 있는 소위 ‘공부인생을 걷는 필자의 입장에서 이는 실로 충격적인 목격이 아닐 수 없다웬만한 인문학도들보다도 사회인문역사철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니고 진지하게 독학을 하는 미술가들이라니! ‘공부쟁이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위에서 언급한 이 몇몇의 미술가들의 행위는 비미술가들에게 기존 인식의 균열을 불러일으킬 것임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세간의 인식과 달리 현대 미술가들은 다빈치나 미켈란젤로혹은 후대의 수많은 위대한 근대미술가들이 작품을 제작했던 의도와는 다른 의도와 희망을 가지고 있다그들은 작품의 제작작품의 비평의 과정이 모두 사회와 문화를 떠나서는 진정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성찰 속에 사회 참여적 면모를 보인다그러나 그들의 사회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이그 참여라는 것이 반드시 정치행위를 통해서 표출된다거나 발언이나 시위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이는 그들의 의도도 아니며 그것이 작용하는 국면 또한 되지 못한다그 작용의 국면은 여타의 학문이나 분야와는 달리 다소 비폭력적인 방식으로간접적인 방식으로아래에서 위를 향한 방향으로 진행된다사회에 대한 성찰과 인식참여에의 욕구는 그들의 화폭에,조각에음악에글에 반영되며 그들은 작업실이라는 특수한 공간 속에서 사회에의 진입을 준비한다.
    

유희와 자연스러움과 참여적 지식 습득에의 욕구의 공기가 만연한 작업실을 보고 있노라면, 현대인들의 몸으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인간사를 논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작업실은 하나의 폴리스가 되고 이곳에서 미술가들은 작품을 제작하고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는 수많은 모의실험을 거친다. 자연스러움과 진솔함이 깃든 이 매력적인 작업실에서 말이다. 어쩌면 현대 대학이라는 제도, 적어도 우리 나라의 대학 가운데 동료로부터 ‘서로 배우는’ 과정을 지닌 유일한 곳은 미대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작업실이라는 공간에서 미술과 사회가 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반대로 비미술의 영역에 위치한 사람들도 그러한 미술과 사회의 벤다이어그램의 교집합 속에서 얼마든지 유영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는 철저한 미술인도, 철저한 비미술인도 없기 때문이다. 

본연의 ‘숙명인 미술가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사회의 구성원임을 용기내어 소리치는 미술인들이 현대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있어 다행이다숙명이란 것이 있다면문화와 사회와 미술은 서로 필연적으로 교류해 나가는 변증법적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업이라는 숙명은 없다.

나는 왜 미술을 사랑하는가.

나는 왜 미술의 주위를 맴도는가.

나는 왜 너희를 사랑하는가.

 
어느새 아련해진 짧았던 짝사랑의 그에게 충분한 답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