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첫 단추부터 잘 못 끼운 한국의 교육

2014.02.20 발행

필자와 ‘조형관505호’는 백석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폐과 사태와 관련 된 연재를 진행하면서 이 사태에 대한 미미한 반향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자와 ‘조형관505호’가 논의한 결과,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추론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항의 운동의 주축이었던 4학년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운동을 지속할 힘을 보존할 수 없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반 년 넘게 항의 운동을 전개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학생들의 절망과 고립감이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위의 두 가지 이유가 이번 사태의 지속성을 잃어버리게 한 가장 큰 원이라고 파악된다. 이제 3월 2일이고 내일이면 대부분 대학에서 새로운 학기가 시작 된다. 따라서 ‘조형관505호’는 개강을 맞이하여 학교에 모여든 재학생들의 여론을 살펴본 다음에,  필자와 함께 이 사태를 어떻게 정리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예정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힘을 보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은 필자가 2013년에 폐과 조치가 내려진 백석대학교 조형회화과 관계자분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쓰는 글이다. 필자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그들이 느꼈을 암담함과 고립감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음이 너무나도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한국 사회에서 부실대학교 선고를 받은 대학교들이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 아래에서 행하는 통폐합, 폐과 같은 구조조정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정부와 대학들이 구조조정을 진행하기에 앞서서 무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이 일어나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교육과 관련하여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가에 대해서 되짚어볼 필요도 느꼈다. 그래야만 우리 앞에 당면한 이 문제들을 지금이라도 제대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에서는 먼저 근래에 정부와 대학들이 구조조정을 해오게 된 이유를 살펴본 다음, 교육정책의 변천에 따른 대학의 성장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사례를 통해서 대학구조조정에 앞서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지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해보도록 하겠다.

한국은 남북전쟁 이후 출산율의 증가로 인구가 지속적해서 증가해 왔다. 휴전 이후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교육은 지긋지긋한 가난을 탈출할 유일한 수단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래서 이 당시 부모님들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논밭을 팔고, 소를 팔아서 자식을 대학으로 보냈다. 휴전 직후에는 일반적으로 집안에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자식 한 명만이 대학에 진학했지만, 후에 남한의 경제가 안정되면서 집안의 모든 자식이 대학을 가는 것이 필수가 되는 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휴전 이후의 한국은 이러한 요건들에 따라서 학령인구의 지속적인 증가를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은 과거와는 사정이 달라졌다. 왜냐하면, 어려워진 경제상황 속에서 자녀를 낳지 않거나, 결혼하지 않는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과거에 비해서 비대해진 대학 입학정원을 채워줄 학령인구도 함께 줄어들고 있다. 그러므로 근래의 대학들이 구조조정을 행하는 큰 이유는 학령인구의 지속적인 감소에 있다.

 물론 근래의 대학 문제를 단순히 학령인구의 감소로 환원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역대 정부들의 근시안적인 교육정책도 오늘날의 대학 문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989년 노태우 정부는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를 내린다. 이전에는 문교부가 경제기획원과 협의해 인상률을 조율하면, 이 인상률을 토대로 각 대학이 등록금을 정했었다. 그러나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가 내려지면서 각 대학은 너나 할 것 없이 등록금을 올리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김영삼 정부가 ‘5·31 교육개혁’을 시행하여 대학을 설립하기 위한 문턱을 낮춘다. 이후부터 자본가들은 대학을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으로―한국의 기형적인 교육열을 때문에―인식하였고, 이후부터 대학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2013년까지 대학교는 33곳이 늘어났고, 대학생은 약 100만 명이 늘어났다.

신자유주의 바람이 극에 달했던 2002년 당시 김대중 정부는 ‘국립대 등록금 자율화’를 결정한다. 그에 따라서 국립대 역시 2~3년 간격으로 등록금을 약 100만 원씩 올리기 시작한다. 이후에도 등록금은 계속 올랐고, 그 등록금을 감당할 대학 입학생들도 제법 유지가 되어왔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의 학령인구가 감소 추세에 접어들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정부와 대학들은 공황에 빠지게 된다. 기형적인 교육열을 이용한 대학의 등록금 잔치가 철 지난 사업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부와 대학에서 부르짖는 대학의 경쟁력 강화와 구조조정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작된 것이다. 물론 전술된 문제들도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다. 그러나 이들은 수치화 가능한 표면적인 문제에만 집착한 나머지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 ‘교육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무엇이라고 규정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오늘날 정부와 대학이 시장경제원리를 앞세워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칼날을 대는 곳이 대표적으로 인문학, 예술학관련 전공이다. 돈이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사회 속에서 우리 인간의 존재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과 탐구를 해나가는 학문들은 시장경제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 즉 돈이 안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멸해가고 있다. 그렇다고 사람들 면전 앞에서 돈이 안 되는 학문들이 정말로 이 세상에 필요 없는 것이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자신감 있게 대답하는 이들도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경제적인 합리성을 내세운 사회적 흐름이 돈이 안 되는 학문을 고사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며, 개인들은 그 흐름에 휩쓸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면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흐름 속에 몸을 내맡긴 개인들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대학의 도서관을 가보면,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생들, 외국어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들로 가득하다. 더 이상 대학에 내가 좋아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없고, 내가 원하지 않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남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취업준비생들로 가득하다. 이처럼 기형적인 세태에 순응하는 개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당면한 기형적인 사회적 흐름을 바꿔낼 힘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어쨌든 이 시대의 개인들이 주어진 흐름을 바꿔 나가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있어서 교육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규정해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합의해 나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그다음에야 그에 알맞은 제도적인 보완들이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눈에 보이는 제도적인 해결에만 목을 매고 있다. 이래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에 대한 미봉책의 연속일 뿐이다. 우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대충 얼버무리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 안에서 단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하나로 인문학과나 예술학과가 사라지는 사태들을 막을 수가 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상황들이 나에게 직접 닥친 일이 아니라고 해서 방치해 나간다면, 우리의 삶은 돈이라는 허상에 마취되어 결국에는 자신이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이 피투성이로 짓밟히며 고통 받고 있어도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신경체계가 모두 차단되는 ‘마취사회’는 위험이 우리의 턱 밑까지 다가와서 우리의 목을 갉아 먹어도 그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따라서 근래의 대학 구조조정으로 인한 인문학, 예술학의 폐과는 단순히 그 일부 집단의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함께 주어진 문제이며, 동시에 우리의 턱밑까지 다가온 위험에 대한 상징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고통을 함께 느끼고 나누며 조금씩 움직여 나가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미 날려 보낸 부메랑들이 더 큰 재앙으로 자라서 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