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시각예술분야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에 대한 소회와 정리

2015.01.23 발행

제4회 공장미술제

나는 2014년 1월 14일 크리틱-칼 웹진에 <제4회 공장미술제의 심각한 문제점에 대하여>라는 글을 기고했다. 나의 문제의식은 4회 공장미술제에 참여한 90여 명의 작가에게 운송, 장비대여, 일부의 신작지원비만을 지원했을 뿐 작품 재생산 비용과 작가 초대비를 지급하지 않은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서진석 씨(이하 서 씨)와 자문위원들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4회 공장미술제에 신작지원비가 있었다면, 이는 극히 일부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었을 것이다. 4회 공장미술제 도록에 실린 작품들의 제작연도를 살펴보면 2014년에 작품을 제작한 작가는 한국작가 2명, 태국작가 4명이다. 주최 측이 신작을 만든 모든 작가에게 신작지원비를 제공했다면, 90여 명이 참여한 4회 공장미술제에서 신작지원비를 받은 것은 6명뿐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창작지원은 캐나다의 사설 예술인협회 CARFAC의 요금체계 맥락을 참고한 것이다. 이 맥락을 참고하면, 주최 측이 작가에게 제공해야 할 창작지원은 운송비, 장비대여비, 신작지원비만이 아니라 작가가 구작을 다시 재생산, 재연하는 것에 대한 비용까지 포함할 수 있다. 당시에 나는 이 같은 맥락을 창작지원비라고 말했으나 좀 더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면 전시비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좋다. 즉, 전시비는 전시예산, 전시형태, 참가인원 등을 기준으로 창작자에게 지급되는 비용에 대한 것이다. 당시 나는 4회 공장미술제 같은 전시행정 기획에 참여하는 청년작가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를 환기하기 위해서 글 말미에 “회화 작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그 자리에 뒤집어서 놓아버리고, 비디오 작품을 출품한 작가들은 자신의 비디오 전원을 꺼버리자.”라고 제안했다. 당시 내가 썼던 글은 미술장 안에서 많은 파장을 불러왔기 때문에 4회 공장미술제에 참여한 상당수의 청년작가들도 나의 글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공장미술제 전시장을 다시 방문했을 때 나의 제안에 동의한 청년작가는 찾아 볼 수 없었다. 2014년 2월에 나는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제안으로 미디어스에 4회 공장미술제에 대한 추가 의견을 기고했다. 서 씨는 내가 미디어스에 글을 기고하자 미디어스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신고했다. 내 생각에 서 씨의 언론중재위 신고는 명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 씨가 나의 글을 언론중재위에 신고한 것은 나름대로 언론중재위 신고가 나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공공기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알려진 루프에게 미디어스 같은 언론기관에 비판적인 기사가 실린 것은 치명적이기 때문에 이를 진화하기 위해서 루프가 언론중재위원회라는 대책을 사용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서 씨의 대응에 움츠러들지 않았고 서 씨에 대한 여론은 언론중재위원회 신고 이후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서 씨는 언론중재위원회 신고를 철회하고 2014년 3월 16일 대안공간 루프에서 ‘한국 미술계와 작가의 권익-공장미술제 사례와 함께’라는 이름의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과거에 서 씨는 4회 공장미술제가 선펼침 후담론 형성을 지향한다고 말한 바 있다. 내가 당시 썼었던 비판 글이 크리틱-칼 게시되었을 때 4회 공장미술제는 전시 기간이었다. 당시 내가 썼던 비판 글은 공장미술제 안에서 후담론으로 충분히 다뤄질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서 씨는 자신이 밝힌 지향점과 다르게 이 문제를 후담론의 장으로 가져가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글을 실은 미디어스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신고했다. 서 씨가 4회 공장미술제와 관련된 논쟁이 공공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가지고 올 필요성을 느꼈다면, 미디어스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신고할 것이 아니라 공장미술제 전시 기간에 공개 토론회를 열었어야 했다. 당시 공개토론회의 토의자는 서진석, 김노암, 임근준, 권혁빈, 홍태림이었다. 서 씨의 언론중재위 신고철회와 공개토론회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이 공개토론회는 그동안 미술장 안에서 표면화되지 못하고 은폐되었던 예술과 노동의 문제가 공론화된 자리였다. 따라서 이번 공개토론회는 미술장 안에서 활동하는 많은 이들의 기대를 짊어지고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루프에서 열린 공개토론회는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던 기대치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성과만을 보여줬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이에 대해서 2014년 4월 5일에 크리틱-칼에 기고한 <이준희 『월간미술』 편집인과 유진상 교수의 논평 그리고 표준계약서 문제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 이유라 하면 사건 자체에 대한 주제와 방향성을 외부에 잘 부각시키지 못해 많은 비판들이 나왔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은 당일 그 자리에서 약간이나마 해답이 나올 것을 바라셨던 듯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촉발한 크리틱-칼이라는 대안비평지 그리고 그를 주도한 홍태림이라는 인물이 그 대안을 가지고 있으니 이런 소란을 피웠을 것이라고 생각하신 듯하다. 죄송스럽게도 필자는 해당 사건의 윤리적/실리적 문제와 그 해법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대안들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토론회를 준비했다는 점을 밝힌다. 이는 필자가 대안을 찾아보고 힘을 모아보자에 열중한 나머지 그 대안을 찾을 주체를 강력히 명기하지 않아 생긴 문제이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곯아버린 사건들은 모두 켜켜이 쌓인 역사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한 집단이나 개인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은 물론 대안을 제시하기조차 어렵다. 이 ‘어려움’에 대한 함의가 그 날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있으리라 생각했다. 모가 되었든 도가 되었든 그 방향성과 주제에 대한 입장을 더욱 구체화하지 못한 것은 필자의 잘못이다. 더불어 이번 공개토론회는 그동안 우리가 외면해온 기형적인 미술계의 작동방식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한 시작점에 불과하다. 오랜 시간 표면화되지 못하고 곪아있던 문제를 논쟁의 장으로 던지는 사람이 꼭 그에 합당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 필요는 없다. 반드시 공론화해야 할 사건에 존재한다면 그 사건을 공론의 장으로 던지는 것은 능력의 여부를 떠나서 그 누구라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2014년 3월 16일 루프에서 개최된 공개 토론회 ‘한국 미술계와 작가의 권익-공장미술제 사례와 함께’ 광경_사진 하장호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의 필요성

미술장의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문제를 제기 했으면 그에 대한 대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공론의 장을 만들어 함께 고민해보고자 문제를 제기 했던 나로서 이러한 소비자적인 반응들은 섭섭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또한, 내가 미술장 안에서의 경험이 적다 보니 이러한 적폐를 해결한 만한 대안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어쨌든 나는 문제제기를 한 입장에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래서 <이준희 『월간미술』 편집인과 유진상 교수의 논평 그리고 표준계약서 문제에 대하여>라는 글 말미에 미술장에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나는 대안을 내놓은 단계에는 진입했지만, 이것을 어떻게 실현해야 할지는 여전히 막막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근거는 2012년에 시행된 예술인 복지법에 있었다. 예술인 복지법의 제5조 1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는 예술인 복지 증진을 위하여 「문화예술진흥법」 제2조 제1항 1호에 따른 문화예술 분야 중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하는 문화예술 영역에 관하여 계약서 표준양식을 개발하고 이를 보급하여야 한다.”

이 내용에 따르면 미술장에서 표준계약서 제정에 대한 요구가 있으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2014년 4월 11일에 예술인소셜유니온과 배재정 국회의원, 문화연대가 공동주최한 ‘예술인복지정책의 평가 및 개선방안 국회토론회’에 참석했다. 여기서 나는 질의응답 시간에 문광부 예술정책과 과장에게 미술 분야에 아직 표준계약서가 개발되어있지 않으니 표준계약서 연구 및 개발을 진행해달라고 발언했다. 당시 나의 요청에 문광부 예술정책과 과장은 “시각예술 분야의 불공정사례를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표준계약서를 제정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후 2014년 6월 중에 표준계약서 연구용역 착수보고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문광부로부터의 연락은 2014년 7월까지 없었다. 다시 문광부에 문의를 해보니 2014년 7월 중에 착수보고회가 열릴 예정이며 연구용역을 상명대 양현미 교수가 진행할 예정이라는 답변이 왔다. 그러나 2014년 8월 중순이 넘어가도록 착수보고회가 개최된다는 문광부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에 나는 2014년 8월 20일에 문광부에 다시 문의메일을 보냈다. 이에 문광부는 양현미 교수가 문화체육정책관으로 임명되어서 연구 진행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현재 다른 연구자를 찾고 있으며 연구계획서 조율과 계약까지 가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고 답변했다. 당시 나는 문광부의 답변을 받고 표준계약서 진행이 많이 지체될 것이라는 우려에 빠졌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2014년 9월 18일에 문광부로부터 표준계약서 연구 및 개발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수행할 것이며 10월 중에 착수보고회를 시작할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의 예상 밖으로 문광부의 표준계약서 연구 및 개발 재개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내 생각에 이러한 빠른 진행이 가능했던 것은 문광부에서 2014년 9월 24일에 발표한 ‘2014-2018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이하 중장기 계획)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문광부의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은 무엇인가

이번 중장기 계획은 미술 분야 발전방안 강구라는 2014년 2월 13일 자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사항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2007년에 6천억 원대까지 급격히 성장한 미술시장의 규모가 현재 3천억 원 규모로 감소한 것으로부터 발현된 것으로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미술 분야에 몇몇 단편적인 보조사업들이 있으나 미술시장 전체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음.
 ○ 현장 예술가들이 반복해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도록 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인 정책과 대안을 개발할 것“

대통령 지시사항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번 중장기 계획의 두 가지 핵심은 미술시장을 창작, 향유, 유통이라는 관점으로 육성하는 것과 예술가의 권리 신장이다. 여기서 미술시장의 육성은 아무래도 유통에 관련된 문제에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해외시장 진출 활성화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세계 5대 메이저 아트페어에 국내미술관이 다수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고 아시아 지역의 아트페어에 참여하는 관련업계도 간접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국내 사립미술관의 해외시장 진출 지원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중장기 계획에서 국공립 미술관에 대한 운영개선안은 명분이 있으나 사립미술관의 해외 진출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겠다는 발상은 적절한 방안인지 의문이다. 게다가 사립미술관의 해외시장 진출을 세금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은 국내 작가의 스펙트럼을 시장가치에 따라서 더욱 단순화할 여지가 있다. 이러한 점은 이번 중장기 계획이 미술장의 발전이 아니라 미술시장 발전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중장기 계획이 발표되고 나서 주식시장은 이옥경(전 가나아트갤러리 사장)과 이학준이 대표로 있는 서울옥션이―서울옥션의 시장점유율은 약 53%, K옥션은 약 28%― 최대 수혜주가 될 것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2014년 12월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면 서울옥션의 상반기 경매총액은 3월에 41억 원, 6월에 47억 원이었지만 하반기인 9월에는 83억 원, 12월에는 73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서울옥션의 이러한 매출상승은 눈에 잘 띄는 은행예금 대신 세금을 피할 수 있는 자산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미술품 거래량이 늘어난 것과 미술 중장기 계획의 발표로 국내 미술품 시장이 고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 한국의 단색화 화가들의 작품들이 미술 시장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같은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이 군사정부 당시 엄혹한 통제 속에서 저항성, 부정성이 스며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미술 시장의 흐름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나는 이우환은 그렇다 쳐도 박서보처럼 박정희 정권의 민족기록화 사업에 일부 동참했던 단색화 화가들이 군사정부에 저항했다는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이 외에도 일반 국민의 미술품 거래가격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미술품 거래정보 온라인 제공시스템’도 작품가격을 국가가 일괄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전시 활성화 지원 항목에서 ‘민간 차원의 남북 미술 교류 지원’은 자세한 내용이 없지만 다음부터 어떻게 진행이 될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이번 중장기 계획의 초점이 미술시장 확대에 맞춰져 있다 보니 미술시장에 관련된 사안을 조금 길게 살펴본 것 같다. 이제 다음 논점으로 넘어가 보자. 이번 중장기 계획은 두 번째 주요 주제는 예술가의 권리 신장이다. 사실 난 이번 중장기 계획에서 예술가의 권리신장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이번 중장기 계획에 따르면 2015년에 국공립미술관을 대상으로 아티스트 피(작가보수제도)와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가 시행될 것이라고 명시되어있다.

표준계약서 착수보고회

앞서 나는 문광부로부터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이하 한광연) 표준계약서 개발 및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2014년 10월 중에 표준계약서 착수보고회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실제로 착수보고회가 열린 날은 2014년 11월 12일이다. 이날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착수보고회 참석자는 한광연 연구진 5명과 문광부 사무관 2명, 나를 포함한 자문위원 6인(강홍구, 김노암, 김찬동, 박천남, 황성준, 홍태림), 참관인 5인(미술생산자모임 2인 외 3명)이었다. 이날 표준계약서 착수보고회에서는 창작자의 불이익과 저작권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논의되었다. 특히 추급권(권리의 목적물이 여러 번 옮겨져 누구에게 가 있더라도 이것을 추급하여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논의가 많이 오고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추급권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미술시장 전체의 투명화, 양도소득세 부과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20년이 넘게 미뤄진 미술작품 양도소득세는 2013년 1월부터 6,000만 원 이상의 작고 작가의 작품을 팔거나 구입할 경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양도차익의 20%를 기타소득으로 물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시행되었다. 최근 이우환, 박서보 같은 단색화 작가의 작품이 미술 시장에서 열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이들이 생존 작가이기 때문에 6,000만 원 이상으로 거래가가 형성되어도 양도소득세를 납부할 필요가 없는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추급권 행사를 위한 양도소득세 문제는 나름대로 해결이 되어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미술시장 전체의 투명화는 아직 해결된 바가 없다. 아마도 정부가 이번 중장기 계획에서 명시한 ‘미술품 거래정보 온라인 제공시스템’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적절한 정책인지는 의문이다. 표준계약서 제정이 있어서 추급권과 관련된 문제는 분명 중요한 문제이지만 솔직히 작품판매로 경제적 가치를 획득하기 어려운 청년작가들에게 추급권과 관련한 문제는 피부로 직접 닿을만한 문제는 아니다.

착수보고회 말미에 나는 연구원 측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아트스타코리아에서 CJ E&M이 작가들과 체결한 일방적인 계약서를 예로 들면서 표준계약서가 어느 범위까지 작가들의 안전망 역할을 해줄 수 있는지 질의했고 이에 대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CJ E&M이 제시한 계약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트스타코리아에 출연한 작가에게 별도의 출연료가 지급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CJ E&M이 작가의 모든 저작권을 박탈 및 독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출연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의제기를 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시에는 법적인 처벌을 감내해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이어서 나는 착수보고회에서 표준계약서의 강제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사실 표준계약서가 시행되어도 국공립미술관에는 적용할 수 있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는 이를 강제할만한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표준계약서의 근거가 되는 예술인 복지법이 강제성을 가진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예술인 복지법에는 예술인과 계약을 체결하는 주체가 예술가의 권익을 저해하는 금지행위를 하거나 문광부가 정책 수립을 위해서 국공립기관, 개인, 법인 또는 단체에 관련 자료의 제출을 요구했을 때 이를 특별한 사유 없이 거부할 경우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항이 존재한다. 이처럼 표준계약서는 당장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국공립기관에만 적용이 가능할 뿐이다. 당시에 나는 표준계약서 제도를 통해서 미술장의 적폐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일종의 만능론에 빠져서 ‘예술인 복지법’자체를 개정하여 미술장의 모든 분야에서 일괄적용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시에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광연 측의 자료에서 ‘시각예술 분야 특수성을 고려한 예술인복지법 등의 관련 규정 개정여부 검토’가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착수보고회가 끝나고 표준계약서가 미술장의 모든 적폐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며 미술장에서 표준계약서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처음부터 광범위한 범주에 적용하려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표준계약서는 우선 국공립 미술관에서 우선 시행되는 것이 현실적이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를 상의 드리기 위해서 만났던 류병학 평론가도 이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내가 착수보고회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받고자 한 내용은 표준계약서에 아티스트 피에 관련된 조항이 포함되는지 여부였다. 착수보고회 내내 저작권에 대한 내용이 주로 다뤄졌기 때문에 아티스트 피에 대한 내용은 명확하게 다뤄지지 않았었다. 이에 대해서 한광연 연구원은 아티스트 피를 표준계약서에 포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한광연 연구원은 2015년 4~5월에 1차 표준계약서 모델이 나오기 전까지 아티스트 피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가 완료되기 어려워서 아티스트 피에 대한 연구를 한광연의 다른 팀에서 따로 진행하고 다음에 이 연구내용을 표준계약서에 포괄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작품판매로 경제적 가치를 획득하기 어려운 청년작가들에게 아티스트 피 문제는 크든 작든 간에 당장 피부로 와 닿는 문제다. 또한, 4회 공장미술제처럼 엉터리 기획에 청년작가들이 자신의 삶을 소모하는 일도 상당히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티스트 피 착수보고회

앞서 이야기된 것처럼 문광부는 표준계약서뿐만 아니라 아티스트 피 연구 및 개발도 한광연에 의뢰했다. 그리고 2014년 12월에 22일에 아티스트 피 연구 및 개발을 위한 착수보고회<미술인 보수지급제도(아티스트 피) 개선방안 연구>가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렸다. 아티스트 피 착수보고회는 문광부와 한광연 관계자와 자문위원 4인 (김기라, 김노암, 임근혜, 캐슬린 킴)과, 나와 미술생산자모임 외 2인이 참관인으로 참석했다. 아티스트 피 문제는 내가 4회 공장미술제에 대한 비판 글을 쓸 때도 그 필요성을 주장했다. 루프에서 열렸던 공개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임근준씨는 아티스트피가 해외에 선례가 없다고 언급했었다. 그러나 공개토론회 이후 해외에서 아티스트 피를 적용한 선례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설령 아티스트 피에 대한 선례가 해외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런 이유 때문에 국내에서 필요한 제도를 만들지 않는 것은 문제다. 따라서 국내에 필요한 제도수립에 있어서 해외선례가 없다고 제도개발을 추진하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문광부에서 3년 주기로 실시하는 ‘문화예술인 실태조사’ 2012년 판에 따르면 창작활동으로 월평균 100만 원 이하로 버는 예술인이 66.5%, 아예 수입이 없는 경우가 26.2%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관련 기관이나 정책수행기관이 예술가에게 기본적이며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사회적 합의와 인식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 예술관련 기관에 비해서 예술가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아서인지 예술관련 기관과 예술가는 동등한 협력자의 관계가 아니라 갑과 을의 관계로 정립될 때가 대부분이다. 앞서 내가 언급한 4회 공장미술제의 경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열정 페이’와 유사한 맥락이 있다. 한국의 청년들이 사회에 입문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인턴이나 비정규직 또는 자원봉사 수준인 경우가 많다. 열정 페이는 청년들은 열정이 있으니 쥐꼬리 급여쯤은 감수하라는 식의 태도를 비꼬는 말이다. 임근준씨의 증언에 따르면 수익을 추구하는 상법인인 ‘사무소’는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서 고용한 인턴에게 3개월간 30만 원이라는 참가비를 받았다. 이러한 예는 미술장의 씁쓸한 창조경제가 아닐 수 없다. 열악한 미술장의 현실과 관련하여 세계일보와 JTBC를 통해서 소개된 적 있는 미디어아티스트 김창겸은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 전시공간을 확인하기 위해서 주최 측에 최소한의 경비 7만 원을 요구했다가 예술감독에게 불쾌하다는 말을 듣고 전시에서 하차한 적도 있다. 또한, 김창겸 작가가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신호탄>전에 작가로 참여했을 때 국립현대미술관이 지원금을 지급한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참여 작가들에게 지원을 거부했다. 이에 작가들 몇 명이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에 항의했고, 결국 50만 원의 지원금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예술가들이 예술관련 기관과 관계를 맺으며 겪는 상식 이하의 상황은 많이 있다. 다른 생활세계의 영역들에 비해서 미술장의 계약관계는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예술가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장 안에서 아티스트 피를 어떠한 기준을 통해서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제도와 미학적인 차원에서 많은 논란이 있을 것이다. 아티스트 피 착수보고회에서 제공된 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이와 관련한 국외 사례들을 비교분석한 내용이 있다. 현재 미술장은 미술인 관련 창작과정지원비용과 전시참여비용, 기획료를 뒤섞어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창작자가 고유활동으로 참여한 행위에 대한 적절한 비용지급과 그에 따른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표준계약서나 아티스트 피 같은 제도는 미술장 안에서 창작자와 예술관련 기관이 투명하고 명확하게 소통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현재 한광연은 아티스트 피를 연구하면서 해외에서 적용되고 있는 제도들을 교차 조사하고 이를 국내 특수성에 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 한광연이 이번 아티스트 피 착수보고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광연은 이번 착수보고회에서 캐나다, 영국, 호주의 아티스트 피 제도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캐나다, 영국, 호주의 경우 미술인의 경력단계와 활동유형에 따라 시간당 세부 보수기준을 마련, 시행 중이다. 각국의 제도는 크게 작가비와 전시비를 묶어서 볼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과 지급기준을 연봉, 시급, 일급으로 할 것인지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작가비는 창작자가 전시 준비를 위해 전시장 밖에서 행하는 모든 과정과 강연, 교육, 컨설팅과 같은 활동을 의미한다. 전시비는 예술관련 기관이 전시예산, 전시형태, 참가인원 등을 기준으로 작가에게 지급하는 비용이다. 캐나다와 호주의 경우 작가비와 전시비를 구분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작가비와 전시비를 묶어낸 제도를 사용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경력연차에 따른 최저임금을 책정하고 10년 이상의 경력 작가들의 지급 요율은 외부요인의 의해 결정하고 있다.

영국의 사설기관 a-n The Artists Information Company는 ‘예술가 사례비 툴키트’(artists fees toolkit)를 설계해서 운영 중이다. 영국의 툴키트는 작가가 웹사이트에 제시된 카테고리별로 구체적인 연간 간접비를 채워 넣고, 플랫폼 상의 계산기를 사용하여 총합을 계산하여 견적 및 예산을 산출할 수 있는 곳이다. 예를 들어, 예술가는 대학 졸업 후 활동기간이 일 년씩 늘어날 때마다 추가적인 경력과 그에 따른 예술적 지위를 고려한 합계액으로 매년 1,100파운드를 추가할 수 있다.(10년 이상의 경력 작가에게 적용될 수 있는 요율은 작가가 예술계에 남긴 실적과 시장여건 등을 참고한다.) 캐나다의 사설 예술인협회CARFAC(Canadian Artists Representation/Le Front Des Artistes Canadiens)경우 작가비는 업무종류에 따라서 일급으로 지급된다. 전시비는 미술관의 예산규모, 전시종류, 전시기간, 참여 작가의 수에 따라서 책정된다. 호주의 문화위원회 소속 기관 NAVA(The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Visual Arts)는 작가비를 견습-기준-전문의 경력단계로 분류하고 계약형태를 정규직-비정규직-자가고용으로 분류하여 시급으로 계산한다. 그리고 연방정부가 예술가에게 연간 보장하는 금액(3,000,000$)과 전시 당 권장되는 아티스트 피 최소금액이(2,665$) 정해져 있다. 회의에서는 앞서 언급된 정책들 중에서 영국의 ‘예술가 사례비 툴키트’가 주목을 받았다. 한광연은 앞서 언급된 국가 외에도 노르웨이와 스웨덴, 폴란드의 시각예술 정책도 소개했다. 김노암 씨는 이 중에서 폴란드의 정책이 국내에도 참고할 만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폴란드는 예술가의 전시와 관련된 최소한의 비용을 폴란드 평균 월 급여를 기준으로 당사자와 협상해서 지불한다. 이 비용은 면제 또는 인하될 수 없고 협상을 통해 인상만 될 수 있다.

아티스트 피 착수보고회 자문위였던 국제갤러리 전속작가 김기라 씨는(이하 김 작가) 회의 내내 많은 발언을 했다. 김 작가는 회의 중에 홍태림 씨가 문제를 제기한 공장미술제 사태에 대해서 굉장히 아쉽고 선배 작가로써 가슴이 아팠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김 작가가 먼저 언급한 것은 표준계약서나 아티스트 피 같은 제도가 오히려 예술가의 목을 옥죄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김 작가의 주장대로 표준계약서 와 아티스트 피 제도는 어떠한 방향으로 귀결되느냐에 따라서 예술가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과하게 정형화된 제도가 예술가의 자율성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학적으로도 예술작품과 예술 활동을 교환가치로써 어떠한 기준으로 수치화할 것이냐는 문제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예술작품은 시장에서 교환가치로 변환되어 거래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소위 잘 팔리는 작가순위도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나는 표준계약서나 아티스트 피 문제에서 예술의 교환가치화를 우려하고 회피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관련 기관과 예술가의 관계가 원시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미술장에서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라는 도깨비방망이는 약과 독이 될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는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를 약으로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가 독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기피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어서 김 작가는 국공립미술관과 사립미술관은 제도적으로 분리되어야 하며 당장에 표준계약서를 통해서 아티스트 피 제도를 국공립미술관뿐만 아니라 사립미술관에까지 시행하게 되면 미술장이 굉장히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작가는 작가들이 자신이 어떤 화랑에 얼마치의 작품을 팔아줬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하며 작가가 사립미술관을 통해서 작품을 판매해도 작품판매비가 미술관의 전체 운영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상업화랑에 작가가 아티스트 피 같은 권리주장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갤러리 같은 상업미술관을 예로 들면서 이 같은 기관의 운영비가 2억 원 정도 든다면 작가가 4억 원에 작품을 팔아야 수지가 맞는데 현재 한국에서 4억 원에 작품을 팔 수 있는 작가는 없다고 말했다. 아마도 김 작가는 내가 주장하는 표준계약서나 아티스트 피가 국공립미술관뿐만 아니라 상업미술관까지 영향을 미치리라 판단하고 우려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앞서 말했듯이 표준계약서나 아티스트 피 같은 제도를 처음부터 미술장 전체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아티스트 피 착수보고회 자체가 우선 국공립기관에서 이 제도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김기라 작가에게 이 자리에서 논의할 맥락이 아니니 회의의 논점을 분산시키지 말아 달라고 답했다. 그런데 국공립기관에서 표준계약서나 아티스트 피 제도가 정상적으로 정착된다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상업미술관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표준계약서 착수보고회 때와 마찬가지로 회의 말미에 문광부 사무관에게 답변이 필요한 지점에 대해서 질문했다. 나의 첫 번째 질문은 2015년 4월~5월에 1차 모델이 나올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 제도를 앞으로 관리-보급-갱신할 주무기관이 어딘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담당 사무관은 문광부의 시각예술디자인과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답했다. 내가 이 질문을 했던 이유는 두 번의 착수보고회에서 예술인복지재단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담당 사무관의 말에 따르면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의 관리-보급-갱신에 예술인복지재단의 역할은 없는 것 같다. 두 번째 질문은 아티스트 피 제도를 국공립 기관에서 시행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예산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담당 사무관은 아티스트 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2015년 6월에 마련하여 국공립 미술관에서 이를 2016년도 예산에 반영하도록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작년에 발표된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에 따라 2015년도 예산은 73억 원이다.) 또한 2015년 하반기에 국공립 미술관 전부를 대상으로 아티스트 피를 시범 시행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나의 마지막 질문은 미술 진흥 중장기계획에 포함된 미술발전위원회 운영에 대한 것이다. 중장기 계획에 따르면 미술발전위원회는 2014년부터 운영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현재 미술발전위원회의 구성원이 누구이며 무슨 기준으로 이들이 뽑혔는가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 담당 사무관은 2014년 12월부터 미술전문가 간담회를 몇 회 실시하였으며, 2015년 초에 미술전문가 간담회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미술계 전문가를 어떻게 참여시키는 것이 미술진흥에 바람직할 것인지에 대해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이 말은 미술발전위원회는 아직 조직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중장기 계획에 따르면 미술발전위원회는 분야별 정책 및 제도개선 사항을 수시로 발굴하고 수렴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술발전위원회가 중장기 계획과 관련하여 실권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위원회가 미술장에 대한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도 구성되는지 아니면 각 분야의 사적인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사람들도 구성되는지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문제다. 이와 비슷한 문제로 아티스트 피 착수보고회 말미에 미술생산자모임은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 착수보고회에 참여하는 자문위원들이 과연 대표성이 있는 사람들인지에 대해서 많은 우려를 내비쳤다.

마치며

원래 이글은 아티스트 피 착수보고회가 끝난 12월 말에 썼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2014년 연말에 기륭전자-스타케미칼-쌍용차-C&M처럼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부당한 고통을 받는 노동장의 문제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이 글을 바로 쓸 심적인 여유가 없었다. 이 글은 미술장의 정상화가 노동장을 비롯한 생활장 전반의 정상화에 작게라도 기여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과 함께 써진 것이다. 각자의 앞에 주어진 문제들이 하나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는 지금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9월에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이 발표됨에 따라서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작년 가을부터 미술시장은 갖은 기대심리로 분주해지고 있다. 미술시장의 양적 팽창에만 주목한 이 정책이 예술장의 선순환을 야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미술장의 외형적 팽창보다는 기반제도의 확충과 왜곡된 관행의 정상화가 우선 이루어져야 미술시장의 건강한 성장도 가능할 수 있다. 정부가 근시안적으로 미술시장의 팽창만을 추구한다면 2007년에 정점을 찍은 미술시장의 버블과 투기는 언제든지 반복될 것이다. 혹시라도 현 정부가 이번 중장기 계획으로 원하는 것이 미술장의 버블과 투기성행이라면 큰 문제다. 그런 것은 아니길 빌 뿐이다. 그러나 이번 중장기 계획에서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처럼 미술장의 내실을 다지기 위한 내용도 존재한다.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 제도는 앞으로 4회 공장미술제처럼 엉터리 기획에 작가가 허무하게 소모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신의 권익의 존재유무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지에 다다른 예술인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제도다. 나는 현재의 미술장이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로 인하여 일종의 시험에 들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는 미술장에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는 미술장의 악습을 정상화할 약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문광부와의 사업내용이 있을 때마다 SNS로 내용을 공유하거나 이러한 글을 쓰는 이유도 이 문제가 우리가 다 함께 지혜를 모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광부도 이러한 정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술장의 여러 가지 의견을 원활하게 수렴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2014년 9월 문광부에 표준계약서 연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진행 상황을 수시로 살펴볼 수 있는 온라인 창구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담당 사무관은 진행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간보고와 결과 등을 올려놓고 온라인 상으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보겠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이 요청이 실행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한광연의 표준계약서, 아티스트 피 자문회의는 회의 진행의 무리가 따른다는 이유로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의 1차 모델이 2015년 4~5월에 나올 예정인데 불과 3~4개월 안에 한광연이 아티스트 피와 표준계약서에 미술장의 제도적, 미학적 논의를 충분히 수렴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한광연이 아티스트 피와 표준계약서를 형식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실효성이 있는 제도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의지가 있다면, 소규모의 자문회의도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와서 참관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위한 논의를 공개하는 것을 기관의 관행대로 몇 차례 되지도 않는 심포지엄이나 토론회에 국한한다면 과연 한광연의 연구 결과가 미술장의 의견을 밀도 있게 수렴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2015년은 한국 미술장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이것으로 내가 그동안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 진행 상황에 대해서 경험하고 알고 있던 내용은 대부분 언급한 것 같다. 나는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에 관심 있는 다양한 이들과 조금이라도 정보를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써 내려갔다. 이후의 한국 미술장이 어떠한 방향으로 갈 것인가는 미술장의 다양한 주체들의 역량에 달렸다.

ps. 정형민(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씨는 2014년 10월 학예연구사 부당채용 파문과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직위해제 조치를 받았다. 감사원의 감사를 따르면 정형민 전 관장은 지인 2명의 점수를 조작해서 학예사로 부당채용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자리는 공석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개방형 직위인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모집을 공고하고 2014년 2월 9일까지 원서를 접수한다. 개방형 직위 중앙선발시험위원회는 분야별 민간전문가 5인 이상으로 구성된다. 홍경한 씨의 말대로 현재 공석인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직에 누가 선발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이번 인사심사를 진행하는 위원회가 누구인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공석인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자리가 수습되는 과정도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 진행 상황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