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공허한 제국》 책임자 김홍희 관장과 홍경한 총감독의 예술 검열

2015.10.25 발행

최근 연극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의 검열로 인해 심한 진통을 앓고 있다. 도대체 문예위는 연극계에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 박근형 연출가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문예위가 진행하는 ‘창작산실-우수공연 작품제작지원(연극)’ 사업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문예위 직원은 박근형에게 지원금을 포기하지 않으면 다른 작품도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결국 박근형은 지원금을 포기했다. 연극계 관계자들은 문예위 직원이 박근형을 협박한 이유가 2년 전에 그가 박정희와 박근혜를 풍자한 <개구리>를 연출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문예위의 검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도종환 국회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문예위 직원이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심사위원에게 특정 작가를 거론하며 “선정 리스트를 줄여 달라”, “심사 결과를 조정해 달라” 한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결국 창작기금 심사에 대한 문예위의 개입으로 이미 선정된 102건의 작품 중에 32건이 제외되었다.1) 문예위의 개입으로 제외된 건 중에는 희곡 분야 심사에서 100점을 받은 이윤택의 <꽃을 바치는 시간>도 포함되었다. 이에 대한 연극계의 반발에 문예위는 이윤택이 최근 2년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산하단체에서 15억 원 가량의 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예위의 해명은 마치 개인이 지원금을 모두 사용한 것처럼 읽힐 여지가 높다는 점에서 악의적이다. 최근 이윤택이 작품 연출, 대본료로 받은 금액은 총 7천6백만 원2)이다. 그런데 문예위는 이윤택의 연출, 대본료에 제작비까지 포함해 마치 개인에게 15억 원이 지원된 것처럼 부풀렸다.3) 문예위가 주관하는 ‘다원예술창작지원사업’에서 1차 심사를 통과한 윤한솔 연출가의 <안산순례길>도 검열 논란에 휩싸였다.4) 유기홍 국회의원이 말에 따르면 한 심의위원이 문예위 직원으로부터 윤한솔의 작품들이 위에서 정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산순례길>이 세월호와 연관돼서 곤란하니 빼줬으면 좋겠다는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5) 이처럼 문예위가 심사가 끝난 사업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은 청와대로 추정되는 윗선과 문예위의 자의에 의해서 심의 결과가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잇따른 문예위의 검열 의혹에 관하여 연극단체들은 ‘예술 검열에 반대하는 연극 단체들의 연대’를 결성했다. 이들은 예술 심의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외압도 단호히 반대하는 연극인 1000여명의 서명이 담긴 성명서를 박주선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현재 연극계는 김종덕 문체부 장관과 박명진 문예위위원장의 즉각 사퇴와 문예위 검열 사태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 청문회 개최, 현 10인의 문예위 예술위원들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박명진 문예위위원장과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예술에 대한 검열과 배제를 공공연하게 자인하고 옹호했기에 이들에 대한 사퇴요구는 결코 과하다 할 수 없다.6)

그중 하나는 홍성담 작가의 작품을 둘러싸고 발생했다. 리퍼트 주한 미 대사 피습 사건을 다룬 홍성담 작가의 <김기종의 칼질>은 전시 기간에 외부 민원과 왜곡된 언론보도로 인해 곤욕을 겪었다. <김기종의 칼질>에 대한 논란이 미술관 밖에서 격화되자 서울시립미술관과 홍경한은 <김기종의 칼질>을 전시에서 빼버렸다. 참고로 홍성담 작가가 작품이 철수되는 수모를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출품된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은 박근혜 대통령을 울고 있는 허수아비로 풍자한 부분 때문에 큰 논란이 되었다. <세월오월>이 논란이 되자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이자 광주시장인 윤장현은 창작의 자유는 존중하지만 시 예산이 들어간 비엔날레 특별전에 정치적 성격의 그림이 걸리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광주시도 국비를 받아 기획한 행사일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인 시립미술관에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을 걸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세월오월>을 철수하지 않으면 광주비엔날레 교부금을 회수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홍성담은 언론을 통해서 테러는 옹호할 수 없으며 생명, 평화, 환경을 중시하고 인권을 중요시하는 게 예술의 기본 맥락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연히 <김기종의 칼질>에 써진 홍성담의 글10)에도 종편이나 보수단체가 떠드는 것처럼 김기종의 테러를 옹호하거나 의사(義士)화한 내용이 있었을 리 없다. 이 때문에 <김기종의 칼질> 사태와 관련하여 먼저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김홍희 관장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입장은 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공공미술관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건 가급적 안하는 게 좋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갑질 하는 식으론 안 했다. 알아서 내려주길 바랬던 거지.”11)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김홍희 관장의 답변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김홍희의 말은 앞서 언급했던 박명진 문예위 위원장과 김종덕 문체부 장관의 태도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미술관의 공공성이 이데올로기적 논란에 대한 배타성을 의미하는 것일까. 김홍희가 생각하는 미술관의 공공성이 이렇게 배타적인 것이라면 김홍희는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자이스트가이스트-시대정신》에서 임옥상 작가의 <하나됨을 위하여>와 이강우 작가의 <생각의 기록>이 청와대 직원에게 검열당한 수치스러운 사태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미술관의 공공성은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공간이 될 때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 자유롭게 소통가능한 공간이 될 때 발현된다. 따라서 미술관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논란을 우회하는 곳이 아니라 그러한 논란에 대해서 열린 토론과 교육이 이뤄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김홍희는 논란에 대한 열린 토론이 아니라 보수단체와 정부, 언론의 눈치나 보면서 책임을 회피하기만 했다. 아무리 국내 국공립 미술관이 시청이나 도청 문화 관련 부서의 사업소로 운영되어 예산 및 조직상의 자율성이 낮다지만12)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다고 할지라도 김홍희의 대처는 시립미술관 관장으로서 매우 부적합했다.

《공허한 제국》 총감독 홍경한도 <김기종의 칼질> 논란과 관련하여 큰 책임이 있다. 홍경한은 “홍성담 작가의 작품 한 점이 본 전시의 본질과 다르게 정치적 이슈화가 되고 본 전시가 추구하고자 했던 예술가의 자생성 문제라든가 시대정신의 재고찰 문제가 이데올로기화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서둘러 차단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언론을 통해 말했다.13) 홍경한 총감독이 말하는 시대정신의 재고찰은 그의 서문에 따르면 예술이 사회를 제대로 반영하는 질문이자 진지한 고찰이며 사회 이면에 켜켜이 쌓여 교차되고 있는 권력관계와 불합리한 구조, 역사의 모순들을 들춰내는 일이다. 시대정신의 재고찰을 지향하는 전시에 출품된 작품이 이데올로기화에 노출되는 것은 결코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나는 홍성담 작가의 <김기종의 칼질>이 홍경한의 해명처럼 이데올로기화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김기종의 칼질>이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해석 속에서 발생했을 뿐이다. 홍경한이 <김기종의 칼질>이 이데올로기화되었다고 이해하고 그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는 자신이 무슨 서문을 썼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것일 뿐 아니라 작품에 대한 이해력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다.

홍성담 작가의 말에 따르면 홍경한 감독은 <김기종의 칼질>이 전시 목표와 방향에 맞으니 출품해도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홍경한은 홍성담 작가와 충분한 상의도 없이 <김기종의 칼질>을 전시장에서 떼버리는 결정을 내렸다. 작품에 때어졌다는 소식을 통보받은 홍성담 작가는 노컷뉴스 유연석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전체 화가의 입장은 중요하고 제 입장은 안 중요하다는 건가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모르겠네요.”라고 이야기했다.14) 홍경한이 《공허한 제국》을 통해서 시대정신과 전위적인 예술의 공론장 조성을 표방했음에도 이데올로기적인 논란과 비판이 일어나자 대응도 해보지도 않고 다른 작가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핑계를 대며 총감독의 책임으로부터 도망간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게다가 홍경한의 이러한 무책임함은 결코 홍성담 한 명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홍경한의 이러한 무책임함은 《공허한 제국》에 출품된 다른 작품들도 <김기종의 칼질>처럼 이데올로기적 논란과 비판이 일어날 시에 언제든지 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성담 작가의 작품에 떼어질 때 《공허한 제국》에 참여한 작가들은 이 사태를 수수방관할 것이 아니라 연극인들처럼 연대하여 극렬하게 저항했어야 했다. 만약 예술가가 검열 앞에서 저항도 하지 못하다면 그런 예술가는 전위보다는 굴종에 익숙해진 것이다. 생각해보면 홍경한의 이러한 무책임한 처사는 작년에도 있었다. 홍경한은 CJ E&M이 기획하고 서울시립미술관과 가나아트가 협찬한 아트스타코리아에(이하 아스코) 심사위원으로 출연했었다. 당시 아스코 측은 작가에게 출연료를 책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작가가 아스코에서 제작한 작품의 저작권을 박탈 및 독점했다. 아스코 참여했던 차지량 작가가 이 문제를 폭로했으나 정작 아스코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홍경한은 이에 대해서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 평소 홍경한은 SNS를 통해서 소신 발언을 자주 하는 편이다. 그러나 홍경한의 그러한 소신은 정작 중대한 문제가 터졌을 때는 발휘되지 않는다.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이런 심각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홍경한은 그간의 무책임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문을 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홍경한은 <김기종의 칼질> 사태 이후 한동안 SNS를 하지 않다가 최근 <김기종의 칼질> 사태에 대해서 한 마디도 없이 예전처럼 태연하게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과연 홍경한은 자신이 어떤 과오를 저질렀는지 알고 있을까.

우리는 올해 연극계와 미술계에 닥친 검열사태를 통해서 여전히 예술계에 일제강점기나 군사독재 시절에 있었을 검열과 외압이 잔존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예술가는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이러한 부조리함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실력을 항상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번 문예위의 검열에 대한 연극계의 연대와 저항은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낼 역량이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현재 미술계는 연극계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을까. 작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달콤한 이슬》에 참여한 작가 17명 중 11명은 홍성담의 <세월오월>을 걸지 않으면 작품을 철수하겠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발표하며 광주시의 적나라한 검열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정작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공식적으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작년 광주비엔날레 사태를 지켜보며 미술계가 불합리한 검열과 외압 앞에서 대항할 저항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나의 이러한 우려는 이번 <김기종의 칼질> 사태 앞에서 《공허한 제국》에 참여한 작가들이 공식적으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더욱 강해졌다. 앞으로 미술계가 검열과 외압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라도 잘못을 저지른 책임자들은 명확히 책임을 지고 같은 일이 재발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책임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미술계에 검열과 외압에 대한 저항력이 자라날 건강한 토대가 마련될 수 있겠는가. 올해도 미술계는 비루하다.


1) 김미경, ‘정부, 심사개입…대통령 풍자 박근형·이윤택 작품 제외’, <이데일리>, 2015.09.11.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I51&newsid=01945046609499136&DCD=A405&OutLnkChk=Y
2) 이윤택 작가가 만든 6개 작품은 국립국악원에서 제작한 음악극 <공무도하-님아, 저 물을 건너지 마오>(5억1100만원), 명동예술극장에서 제작한 <길 떠나는 가족>(2억3200만 원), <피의 결혼>(4800만 원), <어머니>(1억800만 원), 국립극단에서 제작한 <혜경궁 홍씨>(3억400만 원), <문제적 인간 연산>(3억1700만 원)으로 총 제작비는 15억2000만원이다. 이 15억 원은 문체부와 산하 예술위가 이윤택 작가를 지원한 것이 아니라, 국립국악원·명동예술극장·국립극단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든 모든 비용의 합계다.
3) 손준현, ‘김종덕 문체부 장관 “이윤택 15억 지원” 거짓 해명 논란’, 한겨레, 2015.09.15.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09079.html
4) 이에 대해서 김종덕은 국정감사에서 정치적인 압력은 없었으며 <안산순례길>이 다원예술창작 지원 사업에 지원한 것인데 중복지원 된 부분이 있어서 탈락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 박명진은 문예위 직원의 돌출행동과 관련하여 아는 바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5) 손가영, ‘예술창작 지원사업에 ’세월호 작품‘은 안 되는 이유’, <미디어 오늘>, 2015.09.18.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147
6) 김종덕은 정치적 이슈에 골몰하는 이들이 문제라고 주장했고 문예위는 사회적 논란 예방을 위한 일반적 유의사항을 지적한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내서 검열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7) 곽아람, ‘세금 적고 임차료 싸고… ‘미술 特區’ 상하이로 간다’, <조선닷컴>, 2013.12.23.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2/2013122202507.html?Dep0=twitter&d=2013122202507
8) 김경갑, ‘한국미술 홍콩시장 ‘대공략’’, <한국경제>, 2008.04.27.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42747571
9) 다른 하나는 《공허한 제국》에 대한 화랑협회의 반발이다. 화랑협회가 반발한 이유는 미술관이 작품을 판매를 주선하는 것은 미술관 진흥법에도 저촉될 뿐 아니라 화랑의 시장을 침해할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화랑협회는 시립미술관 측의 공식적인 사과, 재발방지 약속, 작품의 판매를 중단을 요구했다. 화랑협회의 반발에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화랑협회를 방문해 아트페어라는 말을 경솔하게 써서 화랑계에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서 유감을 전했다. 박현주, ‘[단독 인터뷰]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 “아트페어란 타이틀 때문에 죽 쒔다”’, <뉴시스>, 2015.09.25.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925_0010312468&cID=10701&pID=10700

10) <김기종의 칼질> 전문: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이는 2015년 3월 모일 모시에 민화협 주최 조찬강연회에서 주한미국대사 리퍼트에게 칼질을 했다. 얼굴과 팔에 칼질을 당한 리퍼트는 붉은 피를 질질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가고 김기종은 <한미연합 전쟁훈련을 중단하라>고 고래고래 외치면서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는 일년 전에도 주일대사에게 시멘트조각 두 개를 던졌다. 그가 던졌던 시멘트 쪼가리 두 개는 독도를 의미한다고 했다. 독도문제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이다. 독도문제든, 위안부문제든, 남북문제든……요것들의 문제를 한 발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우리민족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 속에는 태평양전쟁 종전의 결과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들에 있다. 당시 전쟁의 승자인 미국이 자신들의 동아시아 군사적 전략을 위해서 일본의 전쟁범죄를 대강 덮어놓은 것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의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는 친일파의 문제도 결국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이미 절망한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 절망감에 대해서 나는 입을 다물었고 김기종은 비록 과도이긴 하지만 칼로써 표현한 것이다. 김기종은 지금 종북으로 몰리는 대신에, 리퍼트가 입원 중인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는 한국국민들에 의해서 그의 만수무강을 비는 제단이 만들어 졌고 발레와 노래와 부채춤으로 그가 쾌유하기를 기원하는 향연이 벌어졌다. 또한 리퍼트 대사의 건강회복을 위한 큰절하기 이벤트가 줄을 이었다. 누군가는 So Sorry를 외치며 무기한 석고대죄를 하고 있다. 어떤 시민은 그의 빠른 회복을 위해서 미역국과 개고기를 선물로 바쳤다. 조선침략의 괴수인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죽인 안중근 의사도 역시 우리민족에 대한 절망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토는 저격범 안중근에 관한 부하의 보고를 받고 숨을 거두기 직전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철없는 놈!” 당시에 안중근을 독립투사로 불렀던 사람이 우리 민족 중에서 몇이나 되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조선에게 형님의 나라인 일본의 훌륭한 정치인을 죽인 깡패도적쯤으로 폄하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안중근의 저격사건이 조선을 더욱 고립시키고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을 가속화 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천황 히로히토, 쇼와 부자를 폭탄으로 저격하려고 했으나 실패한 이봉창의사도 대부분의 한민족들에게 욕을 얻어먹었을 것이다. 당시 한민족 대부분은 이봉창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무사한 천황 히로히토를 위해서 광화문에 모여 땅바닥에 엎드려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천황의 만수무강을 비는 행사를 수일간 열었다고 했다.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본군 장교들을 폭사시켰던 윤봉길의사도 당시 한민족 대부분은 그를 불령선인으로 몰아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댔을 것이다. 가령 이런 욕을 했을 것이다. “저런 놈들 때문에 조선인이 엽전이라고 욕 얻어먹는다. 우리 조선을 위해 머나먼 이국땅에서 싸우고 있는 일본장교들을 죽이다니… 철딱서니 없는 나쁜 새끼!” 독립투사 수원거부 이회영은 모든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사용했다. 1931년에 흑색공포단을 조직하여 일본과 일본관련 시설의 파괴, 암살을 지휘하였으나 1932년 11월 상하이항구에서 한인교포들의 밀고로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당대의 대부분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흉을 보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맥락을 살펴보면 당시 한민족 대부분은 일제 식민지 36년 동안 자기네들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일본천황을 위해서 전쟁터에 나가라며 이 땅의 젊은이들을 독려했던 이광수, 황국신민으로써 천황의 은혜를 갚기 위해 정신대 모집을 강요했던 모윤숙 등등의 목소리는 당시에 많은 한민족에게 박수갈채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1945년 8월 15일 일본천황 히로히토의 항복 선언 직후에 많은 한민족들이 조선총독부 앞에 몰려가서 머리를 풀고 땅에 엎드려서 일본의 패전에 대해서 서럽게 울었던 반면에 일본의 패전과 한반도의 해방을 기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눈에 띠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당일 오후에 겨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서 어찌할 줄 모르고 서로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일본순사와 한국순사들이 와서 해산을 명령하자 단 한마디의 군소리도 없이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미국에게 전시작전권을 바치고 서울 한복판에 외국군대의 병영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일제강점기 때나 지금이지 달라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민족 대다수에겐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가 아니었듯이 지금 우리는 미국의 식민지가 결단코 아니다. 절대 아니다. 암튼, 김기종이가 간질을 앓았던, 수전증이 있던, 과대망상증이던… 나이 56세에 병 없는 사람이 있을까만… 그는 칼질로써 자신의 절망감을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그를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민족주의자’라고 넌지시 욕을 했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창고 깊숙이 숨겨놓은 여러 종류의 칼 여덟 자루를 꺼내고, 실물을 꼭 닮은 MAGNUM357 모의권총도 찾았다. 칼날 위를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보니 여전히 날카롭게 빛난다. 제법 묵직한 매그넘 모의권총을 손에 쥐고 길게 뻗어 어딘가를 겨누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매그넘의 가늠쇠 위에 올려본다. 나는 이것들을 다시 꼭꼭 싸서 더 안전하고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나서 혼잣말을 했다. “이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 정말 이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을까? 내가 겁쟁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김기종이가 리퍼트 대사에게 칼질하다. 2015. 3. 성담
11) 박현주, ‘[단독 인터뷰]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 “아트페어란 타이틀 때문에 죽 쒔다”’, <뉴시스>, 2015.09.25.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925_0010312468&cID=10701&pID=10700
12) 조선령, 「변화하는 문화환경과 미술관의 공공성 문제」, 『현대미술사연구』, 2007, P.208
13) 유연석, ‘서울시립미술관 <김기종의 칼질> 결국 내리기로’, <노컷뉴스>, 2015.09.08. http://m.nocutnews.co.kr/news/4470267
14) 유연석, ‘[단독] 홍성담 “‘김기종의 칼질’ 테러 옹호 作 아니다”’, <노컷뉴스>, 2015.09.08. http://m.nocutnews.co.kr/news/4470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