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청년관SAVETHEMUSEUM [미술관의 탄생]에 대한 반쪽짜리 단상

2015.04.02 발행

임근준은 교역소에서 열렸던 좌담회와 홍익대학교 강연회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하 국현 서울관)에 청년작가들이 연쇄 개인전을 열기 위한 적당한 크기의 프로젝트 공간과 이와 연계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의 근간은 대안공간과 상업화랑의 능력상실로 인하여 미술관이 순기능을 행하지 않으면 미술장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대론에 입각한 이 제안은 후에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으로 수렴되었다. 그런데 임근준의 제안으로 시작된 청년관 담론이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으로 수렴되는 과정에서 모종의 분화가 일어났던 것 같다. 우선, 임근준의 호명을 통해서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명시된 반지하, 교역소, 케이크갤러리, 시청각, 커먼센터 같은 플랫폼은 현재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관에 대한 논의가 뜨겁던 초반에 대중매체와 미술전문매체에 청년관에 대한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피력하던 안대웅도 현재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과 어떠한 접점을 공유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임근준으로부터 세대교체의 주체로 호명되었던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이 제안하는 내용은 임근준이 제시했던 제안과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에서 활동 중인 맥주는 크리틱-칼에 게시한 <공공성과 청년성에 대해 미술로 생각하다: 청년관SAVETHEMUSEUM>에서 국현 서울관에 청년관을 짓자는 주장은 하나의 정거장으로 기능하되,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많은 함의들이 조명받고 논의되고 토론의 장으로 올라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맥주의 이와 같은 말은 여전히 모호하지만 청년관에 대한 기존의 논의보다 좀 더 확장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나는 맥주의 글을 보고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에 함의된 가능성이 청년관이라는 상징적인 그릇을 통해서 보다 많은 가능성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청년관이라는 그릇을 조금이라도 더듬어 보고 싶은 마음에 오늘 국현 서울관 일대에서 열린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의 게릴라 전시 [미술관의 탄생]을 보러 갔다.

 

그런데 나는 27개의 풍선 공을 국현 서울관 일대에서 굴리는 서섬 작가의 <둥근요구>와 양반김 팀의 <두꺼비집>을 기점으로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나는 [미술관의 탄생]의 모든 퍼포먼스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 단상은 반쪽짜리 단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약의 가능성을 각오하고 이 단상을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우선 내가 [미술관의 탄생]에 포함된 모든 퍼포먼스를 보지 않고 자리를 떠난 이유부터 적어보겠다. 내가 [미술관의 탄생]의 모든 퍼포먼스를 보지 않은 것은 [미술관의 탄생]이 법과 제도권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착하고 귀여운 프로젝트로 봉합되었다는 인상 때문이었다. 물론,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이 이러한 방식을 취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미술관의 탄생]이 착하고 귀여운 방식으로 국현 서울관에 나타난 것은 필요 이상의 비장함을 지양하고 청년들의 재기발랄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미술관의 탄생]에서 내가 봤던 퍼포먼스 몇 가지를 간단하게 언급해 보겠다. 사행성 팀의 <제9전시실> 텐트는 남루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가 바람 휩쓸려 구르기도 했다. 장영주 작가가 과거에 진행된 청년관 라운드테이블과 관련하여 진행한 낭독은 국현 서울관 주변의 자동차 소음과 겹쳐서 잘 들리지 않았다. 아윤아 작가는 상의 탈의를 하고 자신의 작품과 함께 잔디밭에 엎드려 있었다. 양반김은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 참여자에게 둘러싸여 잔디밭 위에서 소박하게 두꺼비집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예슬 작가의 <규방 철학-규방 공예>는 행사장 가운데에서 가끔 바람에 조용히 흔들렸다. 서섬 작가의 <둥근요구>는 참여자들과 단체로 공굴리기 하는 것을 의도한 것이지만 정작 참여자들은 행사장의 반경 20m를 벗어나지 않았고 각자 어색하게 머뭇거리며 제자리에서 공을 굴리거나 튕기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미술관의 탄생] 현장을 떠난 것은 결정적으로 서섬 작가의 <둥근요구>가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의 테두리 안에서 소극적으로 고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모습을 보고 [미술관의 탄생]이 법과 제도권이 허락한 경계선에 맞닿는 지점까지 다가서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상 가장 많은 운동성과 유희성을 내포한 서섬 작가의 <둥근요구>가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 의 테두리 안에 고여 버렸을 때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온 국현 서울관 관계자들은 처음과 다르게 다소 안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이 반쪽짜리 단상과는 다른 맥락의 이야기지만, 국현 서울관에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온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이 법과 제도권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때문에 몰살당했던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생각나게 했다.― 애초에 [미술관의 탄생]은 게릴라 전시라고 명명되었다. 법과 제도권의 경계어서 유효한 균열을 만드는 게릴라 방식은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에게 분명 유효한 방법론이다. 그러나 내가 확인할 수 있었던 [미술관의 탄생]의 게릴라 활동은 국현 서울관 내부 벽에 ‘청년관 Gallery0′ 이정표를 붙여 놓은 것뿐이었다.

내가 봤던 [미술관의 탄생] 퍼포먼스들은 국현 서울관의 통제범위 안에서 얌전하게 맴돌았고 무난하게 예고되고 예견되는 것들이었다. 게릴라성을 표방한 [미술관의 탄생]이 게릴라성을 보여주지 못했을 때 그동안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의 예리함은 뭉툭해졌다. 나는 <둥근요구>가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 요구를 관철해야 할 대상 앞에서 뭉툭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고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이 과연 SAVETHEMUSEUM을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었다. 과연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이 [미술관의 탄생]을 통해서 제시한 의미는 국현 서울관에게 온전하게 전해졌을까. 나의 주관적인 생각에 의하면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의 첫 번째 공식 행보인 [미술관의 탄생]은 차후를 기약할 가능성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의 첫 행보가 임근준이 호명했던 ‘청년’들과 0.5세대 이상 차이를 갖는 이들이 미술장의 제도적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얌전하게 주장한다는 수준에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의 이러한 상황을 내부비판 없이 자기 위안으로 넘겨버릴 경우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의 차후 행보는 더욱 복잡한 미로에 갇혀 버릴 것이다.

김정현이 컨템포러리아트저널 20호에 기고한 <‘우리들’의 공동체, 독립과 고립의 경계에서>의 내용처럼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은 체제의 왜곡을 세대의 억압으로 (의도치 않게) 가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의 행보는 자신들에게 내포된 다양한 함의를 청년관이라는 상징적인 그릇을 통해서 드러내려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런데 [미술관의 탄생]은 이 청년관이라는 상징적인 그릇을 만들기 위한 첫 시도였다. 미술장에서 청년관에 대한 논의가 갖은 기대와 우려의 한 가운데 있다는 점에서 [미술관의 탄생]의 착하고 귀여운 행보는 이들이 만들고자 하는 청년관이라는 그릇을 남루한 종이컵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

어쨌든 [미술관의 탄생]은 일단락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은 어떻게 앞으로 나가야 할 것인가.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의 앞으로의 행보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나는 왜 미술을 하는가’ 같은 자문과 함께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자문은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뿐만 아니라 미술장에 있는 모든 주체가 해봐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문 속에서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의 요구는 여전히 청년관이 될 수도 있고 청년관이 아닌 더 거대한 무엇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이 앞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함에 있어서 [미술관의 탄생] 때처럼 착하고 귀여운 방식을 취하기보다는 애초에 자신들이 의도했던 것처럼 게릴라적 방식을 취하는 것이 법과 제도권의 경계에서 유효한 균열과 숨구멍을 만들 수 있는 방법론이 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보다 전투적으로 법과 제도권에 전면전을 벌이는 방식도 효과적일 수 있다. 함민복 시인의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처럼 어쩌면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의 주장도 법과 제도권이 허락한 안전지대가 아닌 위험하고 불안한 경계선까지 닿을 수 있을 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