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한 명이 인간, 한 명의 어른으로서의 고승덕

2014.06.17 발행

2014년 6월 5일 유튜브에 게시된 <고승덕 애비메탈>(2014) 은 The HOOT(Jooyong Lee)이 고승덕 전 서울시 교육감 후보의(이하 고승덕)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미안하다.”라고 절규한 동영상을 소스로 제작한 것이다. 이 패러디 곡은 인터넷상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필자도 이 패러디 곡의 마력에 빠져서 수차례 반복재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필자는 이 패러디 곡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일상생활 중에도 “둔 둔 따레 둔 둔 따레 미안하다아~앜!!.” 이라는 가사가 귓전에서 맴도는 후유증까지 겪어야 했다. 필자는 이러한 후유증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본문을 통해서 고승덕의 절규가 어떠한 지점에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하나씩 되짚어 볼 필요성을 느꼈다. 고승덕은 왜 그렇게 절규해야 했으며 우리는 왜 그의 절규를 조롱하고 패러디하는 것일까. 우선 고승덕의 절규가 나오기까지 어떠한 사건들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극적인 드라마는 지지율 1위를 기록하던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의 몰락이었다. 고승덕의 몰락은 2014년 5월 31일에 그의 친딸 고희경이(캔디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고승덕은 자신의 자식조차 정신적, 경제적 차원에서 전혀 관여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한 도시의 교육감이라는 직책을 맡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선거 막바지에 터진 이슈가 후보자의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SNS 사용자들이 고희경의 글을 활발하게 공유하면서 그녀의 글은 급속도로 퍼졌고 언론사들도 이에 맞춰서 관련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지방선거에서 비인기 종목이었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서울시장 선거만큼 유권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게 된다. 고승덕은 고희경의 폭로에 굴하지 않고 바로 다음 날인 6월 1일에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승덕은 기자회견장에서 아버지로서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피력하는 동시에 자신의 장인인 고 박태준 포스코 회장의 아들인 박성빈과 문용린 후보가 자신의 딸이 올린 글과 관련해 통화했다는 내용을 근거로 내세우면서 이번 사건이 정치적 야합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여기서 고승덕이 기자회견에서 고희경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고희경의 폭로가 정치적 야합의 산물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유권자들은 고승덕의 이러한 모습에서 큰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고승덕이 친딸의 주장이 정치적 야합의 산물이라고 반박한 것은 자신의 위기상황을 긍정적으로 타개할 최소한의 가능성조차 스스로 차버린 꼴이나 다름없다.

고승덕은 기자회견 이후로도 여전히 여론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2014년 5월 28일에 고희경과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아이들이 미국으로 떠난 이후 몇 년에 한 번 한국에 들어올 때 만나면서 가끔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으며 딸과 아무런 교류가 없었던 듯 알려진 부분에 대해 바로잡고 싶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희경은 5월 31일에 고승덕이 보낸 “전화번호가 바뀌었나 봐” 라는 카카오톡 메시지 부분을 지적하며 자신은 2001년 이후 처음 휴대전화기를 갖게 된 이후로 전화번호가 바뀐 적도 없는데, 친딸의 전화번호가 맞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는 증거라고 반박하는 동시에 고승덕이 자신에게 연락한 것은 지난겨울에 딱 한 번뿐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자신은 고승덕의 재혼 사실마저 인터넷으로 알았다고 밝혔다. 고희경의 반론에 거듭 궁지에 몰린 고승덕은 이에 대해서 더 이상의 공식적인 반박을 포기하고 사죄를 통해서 유권자들의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전략으로 선회한다. 결국, 고승덕은 마지막 선거운동 일인 6월 3일 오후 서울 강남역 사거리 유세에서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아~앜!!”이라고 절규를 하기에 이른다. 이 시점에서 고승덕이 감정호소 전략으로 돌아선 것은 정해진 유세기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더는 고희경의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내세울 만한 여지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승덕은 얼마 남지 않은 선거운동기간에 불리한 형세를 반전시키기 위해서 유권자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러한 감정호소 전략은 정치인들이 군중을 사로잡는 방법론으로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은 자신의 저서 『군중심리』에서 이성의 기능, 다시 말해 논증의 방법으로는 군중을 사로잡을 수 없으며 부수적 설명이 생략된 선정적이고 응축된 소통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부수적 설명이 생략된 선정적이고 응축된 소통방식의 중에 하나가 감정호소 전략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감정호소 전략은 고승덕뿐만 아니라 정몽준 전 서울시장 후보도 사용했다. 정몽준은 지난 6월 1일 오후에 서울 송파구 신천역 앞 선거유세에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강남에서 박원순 후보가 정몽준 후보를 크게 이기고 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 기분이 어떠세요? 기가 막히세요? 저는 가슴에서 피가 납니다. 그렇게 안 되게 해주실 거죠?”라고 말했다. 정몽준 후보의 “가슴에서 피가 납니다.” 발언은 맥락상 격한 감정을 담아서 말했어야 하는 문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어눌한 여운만을 남기는 데 그쳤다. 한 마디로 정몽준은 자신에 내뱉는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연동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 외에도 이번 지방선거 유세 과정에서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드릴 때가 됐다.” “박 대통령을 투표로 지켜 달라.”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이 위기에 빠진 박근혜 정부를 구해내는 길.”이라는 상투적인 호소에서도 문장과 사람 간의 감정연동이 빗나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비해서 고승덕은 자신이 사용하는 문장에 내포된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연동하는 데 성공했다. “미안하다아~앜!!”에서 말미에 삐져나온 “~앜”이라는 삑사리는 언뜻 조롱거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고승덕의 절실한 마음이 문장과 혼연일치되었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고승덕 후보가 자신이 사용한 문장과 혼연일치된 절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참패했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는 고승덕이 발신한 절규가 엉뚱한 곳으로 수신되었기 때문이다. 고승덕의 절실한 절규는 응당 그의 딸인 고경희에게 온전하게 수신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고승덕의 절규는 자신에게 투표할 유권자들에게 향해 있었다. 고승덕이 기자회견에서 고경희의 SNS 폭로가 정치적 야합이라고 반박한 것을 보아도 처음부터 그가 고경희의 아픔보다는 자신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사과의 수신처도 전혀 엉뚱한 곳으로 설정되는 것이다.

고승덕의 절규가 엉뚱한 곳으로 수신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그의 절규를 동영상으로 살펴볼 때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고승덕은 강남역 사거리 유세에서 고개를 숙이고 한 팔을 힘차게 뻗으며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아~앜!!”라고 외치고 나서 약 2초 동안 움직이지 않고 자세를 유지한다. 여기서 2초 동안 고승덕이 자신이 딸에게 사죄하는 모습을 스스로 전시한 것은 기자들의 포토타임을 의식한 것이다. 따라서 고승덕의 절규는 동영상이 아니라 정지된 이미지인 사진을 주로 염두 한 것이다. 만약 고승덕이 동영상으로 보도될 기사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포토타임을 의식한 어색한 절규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고승덕은 마지막 유세현장에 나가기 전에 자신이 절규하는 장면이 실린 신문기사를 상상하며 미안하다 퍼포먼스를 준비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고승덕의 절규가 자신의 딸을 호명하며 발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신자는 엉뚱하게도 유세현장에 있었던 유권자들과 기자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고승덕의 절규를 수신받은 유권자도 그의 절규가 거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권자도 고승덕의 절규가 엉뚱한 곳으로 수신되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고희경은 고승덕의 엇나간 절규를 바라보며 얼마나 아연했을까. 그녀는 그의 아버지가 절규하는 SNS 게시물에서 “오마이”라는 짧은 댓글만을 남겼다.

그러나 고승덕의 절규가 부정적인 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승덕의 절규는 자신이 내뱉은 문장과 자아를 성공적으로 연동시켜냈다. 적어도 정몽준의 진심 없는 “가슴에서 피가 납니다.” 같은 말이나 새누리당 선대위의 박근혜 눈물 마케팅 구호에 비하면 충분히 진정성이 있었다. 만약 고승덕 후보의 절규가 엉뚱한 곳이 아니라 응당 닿아야 할 곳으로 정확하게 수신되었다면 우리는 선거의 결과를 떠나서 고시 삼관왕 고승덕이 아닌 인간 고승덕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가들은 아직도 정치가 진정한 인간적인 바탕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고 말로만 하고 마는 것으로 생각한다. 정치가들의 이러한 유아적인 태도는 한국이라는 커다란 공동체를 공회전 시키면서 갉아먹는 큰 요인 중에 하나이다. 필자는 고승덕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절규에서 그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고 일하는 한 명의 어른으로서 거듭날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나 고승덕은 개표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번 선거는 끝나지 않았으며 1년 반 이후에 다시 선거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은 고 후보의 발언이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조희연 당선자와 문용린 후보와의 고소·고발전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 통해서 미루어 보건대 고승덕이 한 명이 인간, 한 명의 어른으로서 거듭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고승덕이 보여준 절규에서 나타난 가능성이 언젠가는 싹틀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