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06 발행
연예인이 화가로 변신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또한, 연예인이 화가가 되는 것은 도덕적으로 흉이 될 일도 아니다. 오히려 대중이 연예인 화가를 통해서 단편적으로나마 미술에 관심을 기울일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연예인 화가에게 덧씌워지는 과장이나 불필요한 가십들을 볼 때마다 매번 낯이 뜨거워진다. 각종 과장과 가십으로 결여된 자리를 메운 연예인 화가들의 작품은 질소로 가득 찬 과자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필자는 연예인 화가를 둘러싼 과장과 가십들을 부정적으로 본다. 그런데 왜 이러한 과장이나 가십들이 연예인 화가들을 둘러싸고 번번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렇게 추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연예인이 화가가 되는 것은 자발적인 경우도 있겠고 특정 단체에 의해서 기획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기획사나 화랑이 연예인에게 화업을 전략적으로 권한 경우라면 아무래도 작품의 가치를 과장하는 경향이 더 적나라해질 것이다. 그래야 작품의 미적 가치가 헐겁더라도 연예인 화가라는 상징가치를 지렛대 삼아 재빨리 시장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연예계의 생태를 잘 모르는 필자의 추측일 뿐이지만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도대체 왜 연예인 출신 화가들에게 각종 과장과 가십들이 들러붙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러한 의문의 연장선에서 필자가 최근 관람한 연예인 출신 화가의 개인전 두 가지를 간단히 짚어 보도록 하겠다.
서울옥션으로 유명한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뒤편에 있는 언타이틀드 웨어하우스(Untitled Warehouse)는 최근 연달아 연예인 화가의 개인전을 열었다. 가수 솔비는 이곳에서 9월 10일부터 4일 동안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는 솔비와 피터팬 컴플렉스의 드러머 김경인이 팀을 이룬 아트 퍼모먼스 팀 비비스(vivis)의 쇼케이스 및 기자간담회를 겸해 마련된 전시이기도 하다. 솔비는 이번 전시에서 비비스의 앨범 수록곡인 <공상> 뮤직비디오와 그림 20여 점을 선보였다. 그런데 솔비는 언론을 통해서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자신의 그림들이 팝 추상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런데 도대체 솔비가 이 두 가지를 어떻게 다뤘기에 자신의 작품을 팝 추상이라고 규정한 것일까.

솔비 전시를 기획했던 이정권 전 서울옥션 프린트 베이커리 마케팅총괄은 미술계 관계자들이 솔비의 작품을 두고 새로운 시도라고 평했다고 언론을 통해 말했다.(링크) 앞선 미술관계자들은 음악에 맞춰서 바닥에 깔린 대형 캔버스 위에서 솔비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새롭다고 보는 것인가. 그러나 이번 전시에 출품된 솔비의 작품들은 솔비에겐 새로운 것일지도 모르나 시각예술이 그려온 궤적 위에서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붓 대신 신체와 음악을 결합한 예는 이미 이브 클랭의 1960년대 작품 <Blue Women Art>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솔비가 붓이 아닌 신체로 그림을 그린 점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붓을 속옷 하의에 부착하고 백지 위에 쪼그려 앉아서 붉은색 획들을 그었던 구보타 시게코의 1960년대 작품 <Vagina Painting> 앞에선 명함도 내밀기 어렵다.
연예인 화가에 대한 과장이나 가십은 어쩌면 웃고 넘길 일일 수도 있다. 또한, 그런 상황을 소비하는 이들도 나름의 이해관계가 있어서 그런 것일 테니 뭐라 탓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초심자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못한 연예인 화가들에게 한국의 프리다 칼로, 팝 추상같은 과장이나 쓸데없는 가십을 갖다 붙이는 것은 연예인이라는 과자봉지에 질소만 채우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만약 연예인 화가가 과장과 가십들로 부풀려진 가치들을 내면화하여 도취한다면 그것은 생산적인 욕망도 아니고 단지 허위의식에 불과할 뿐이다. 생산적 욕망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산적인 욕망은 적어도 자신의 내면과 의식이 서로 채널을 맞추려고 한다. 그러나 허위의식은 내면과 의식이 서로 채널조차 맞추지 못하는 상태다. 그다지 특별한 점도 없는데 각종 과장과 가십으로 가득 찬 작품들을 자신의 내면으로 착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과연 좋은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