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최원준 개인전 InFormation 리뷰: 현재의 지평 위에서 역사적 기억을 재편하기

2016.02.14 발행

최원준은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분단근대화군사독재가 남긴 상흔을 주로 다큐멘터리 방식의 사진과 영화를 통해서 탐구해오고 있다그런 그가 올해 SINAP(Sindoh Artist Support Program)에 선정되어 신도문화공간에서 개인전 《InFormation》을 열었다InFormation》은 최원준이 10년간 진행한 대부분의 연작이 소단위로 출품되어서 소규모 회고전을 방불케 했다때문에 최원준의 연작들이 여백을 충분히 유지하며 전시장에 배치되었음에도 각 작품의 내용이 높은 밀도로 응축된 탓에 마치 공간이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다최원준의 전시를 관람하고 그의 작품들을 며칠간 곱씹던 중에 퍼블릭아트 편집부를 통해서 허대찬의 InFormation In Formation을 접할 수 있었다허대찬의 글은 《InFormation》 전체를 항공사진처럼 조망하면서도 그 안에서 주목해야 할 점들을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 고심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다만 허대찬의 글에서 아쉬웠던 것은 한정된 지면 안에서 최원준의 방대한 연작을 최대한 담아내려다 보니 개괄적인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점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아쉬움은 허대찬의 글이 가닿지 못한 지점을 다른 글이 보충할 수 있다면 더 넓은 해석의 장이 마련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그래서 이 글은 「InFormation In Formation」에서 다뤄지지 않았거나 보충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점들이 간략히 정리한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허대찬의 글 외에 최원준의 블로그에 정리된 다른 평론가의 글을 필요에 따라 참고하기도 했다.1)

허대찬은 최원준의 작품이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문제로 오늘날에는 격리되었거나 버려지고 잊혀 우리 시선 밖에 놓인 장면들을 포착했다”2)고 평했다옛 미군 주둔지의 황량한 풍경을 담은 <타운하우스>나 <미완의 프로젝트_>, <언더쿨드>의 벙커, <KCIA>의 구 중앙정보부 같은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본다면 충분히 공감 가능한 평이다실제로 단일 민족국가라는 숙제를 풀지 못한 한국사회에 불어 닥친 민주화와 시장주의의 가속화는 자연스럽게 냉전시대의 공간들을 폐허이자 잉여로 만들었다따라서 허대찬이 이전과는 다른 논리로 개방되어 무감각해진 사건이고 장소들”3)이라고 말한 것은 1960~70년대의 민족주의근대화국가안보의 논리가 1987년 이후 민주화와 시장주의라는 논리로 대체된 상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한국은 냉전시대의 부산물을 민주화와 시장주의라는 거름망으로 대부분 걸러냈지만냉전시대의 부산물이 걸러지는 것이 좋은 미래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다사회의 모든 영역이 극단적인 경제적 가치의 확장이라는 가치에 휩쓸린 상황에서 한국사회는 기회만 닿으면 언제든지 안전사회를 위한 그물망조차 해체하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이런 상황에서 다수의 국민은 적자생존의 장이된 사회 안에서 경제동물이 되어 고립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그래서 우리는 균형을 잃고 겉만 화려해진 폐허 위에서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이 화려한 폐허는 최원준이 거름막에서 긁어모은 냉전시대의 부산물과 공명하며 묵시록적 현재로 거듭난다예들 들어최원준이 드러내는 묵시록적 현재는 <언더쿨드연작에서 전쟁용 인공장애물과 아파트 단지가 고요하게 소실점을 향해 나란히 뻗어있는 사진이나 뉴타운 개발현장 한편에 황망하게 방치된 벙커 사진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최원준의 사진을 관통하는 이러한 무거운 어둠은 그가 담아낸 작품들이 주로 이념갈등폭력의 근원인 인간을 도려낸 텅 빈 공간을 다루기 때문일까확실히 인간이 소거된 사진은 공간의 객관화에 일조한다하지만 최원준의 사진이 수용자의 어떤 감각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창작과정의 객관화가 작가의 해석이나 감정이 공간과 사진에 덧씌워지는 현상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최원준이 주목하는 텅 빈 공간을 두고 허대찬은 “차갑게 비어있으며 공간을 구성하는 시각적 요소들은 균형 있게 정돈되어 … 주장이 아닌 자료로 우리에게 제시되는 듯하며”4)라고 말했고 문영민은 최원준의 사진이 “정치적 역사적 성격을 지닌 비워진 공간들의 분류학을 상상케 한다.”5)고 언급했다. 또한, 강수정도 최원준이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무겁고 강한 주제를 건조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잘 담아내 왔다”6)고 말한 바 있다. 앞선 의견들을 참고해 보자면 최원준의 작품은 작가의 계도적인 주장이 아닌 객관화된 자료로써 우리의 시선에서 빗겨나간 역사적 기억을 호출하고 나아가 분할된 현재를 재편할 단초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객관화된 자료로써 제시된 최원준의 작품이 어떻게 역사적 기억을 호출하고 분할된 현재를 재구성할 여지를 가질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최원준이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에서 머무른 것이 아니라 조형성과 결부된 감각적 차원까지도 고려했기 때문이다. 조형성과 결부된 감각은 정보전달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은유로 작용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흩어진 역사적 기억의 파편들을 끌어올려 일순간 현재와 포개지게 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런데 사진매체를 통해서 특정 공간을 재현할 때 공간에 켜켜이 쌓인 고유한 역사와 질감 때문에 조형성이 변주되는 갈래는 한정되기 마련이다. 마치 현장에 투신하는 사진가들의 사진이 미시적 조형성을 논할 때야 각각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반이정이 최원준의 사진을 두고 “작가가 새롭게 조명한 이 개보수 현장을 다큐멘터리적 진지함으로 읽어내야 할까 혹은 하나의 유형적 이미지의 답습으로 수용해야할까. 문제적 공간을 조형적 구도 속에 반복해서 붙잡을 때, 보는 이는 이런 고민에 부딪히곤 한다.”7)고 평한 지점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최원준의 사진은 특정한 시간에서 떼어진 문제적 공간이 작가의 손길을 거쳐서 평면 위에 고정된 것이기 때문에 공간이 내포한 역사와 질감이 단편적으로 압축된 결과물이다. 사진 한 점이 사회적 특수성이 강한 공간을 객관성과 감각을 토대로 다뤘다고 할지라도 다양한 입장을 가진 수용자에게 새로운 사유의 단초를 제공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이러한 지점은 사진을 연작으로 다룸으로써 일부 보완될 수 있겠지만, 사진연작도 결국 서로 다른 시간이 한 다발로 묶여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단편적으로 압축된 결과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또한, 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사진이 범람하는 상황도 단편적으로 압축된 사진이 수용자에게 재편된 현실로 다가갈 단초를 제공할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최원준이 사진에서 조형성과 결부된 감각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사진작품이 단독으로 수용자와 역사적 기억에 대해서 충만하게 교감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물레>처럼 허구적 서사가 맞물린 영상은 사진이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InFormation In Formation」에서 허대찬도 <물레>가 한국의 근대가 가졌던 관점들이 문래동의 가시적, 비가시적 역사와 뒤섞이며 충돌을 일으켰다고 평하며 주목했다. 허대찬이 언급한 문래동의 역사는 6관구 벙커가 박정희 소장의 5.16 군사정변이 시작된 곳이라는 점과 1980년대까지 철강제조업단지로 설정되어 산업적 호황을 누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의 근대가 가졌던 관점에 대해서는 박정희로 대표되는 발전의 논리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점을 꼽았다. 실제로 유신독재 시대의 경제성장은 그것이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 것이었음에도 민주정권 이후로 심화된 경제적 위기를 발판삼아 꾸준히 신화화되어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박정희 향수가 현신한 것이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이었다. 근래의 문래동은 산업구조의 재편으로 1980년대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그 빈자리를 예술가들이 채움으로써 공업과 예술이 공존하는 지역성을 띄게 되었다. 그래서 <물레>는 철공기술자와 작가의 인터뷰가 뒤섞여있다. <물레>에서 기술자와의 인터뷰는 허구가 아니지만 조각가와 감독의 이야기는 최원준에 의해서 연출된 것이다. 이 조각가는 감독의 도움으로 문래동의 한 철공소에서 박정희 흉상을 녹여 권총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참고로 조각가와 감독은 이 흉상이 박정희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흉상은 미남형 남성을 묘사했을 뿐 박정희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 흉상이 박정희임을 알 수 있는 것은 흉상에 조국근대화라는 박정희의 휘호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흉상을 권총으로 만든 조각가는 방치된 군사시설이 있는 산에서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격발시험을 하다가 권총이 폭발하여 쓰러져버린다. 권총사고 이후로 감독은 조각가의 작업실에서 녹아서 권총이 되었던 박정희 흉상이 되돌아온 것을 확인한다. 박정희 동상의 회귀는 문래공원에 위치한 박정희 흉상과 벙커 그리고 ‘휘날리는 태극기’를 평화롭게 연주하는 두 명의 할아버지와 교차하면서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현재에도 유령처럼 한국사회를 떠돌고 있음을 은유한다. 문래동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실제와 허구가 뒤섞인 최원준의 <물레>는 여전히 중립성을 중시하지만 허구적 서사가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작가의 주관이 많이 개입된 작품이다. <물레>의 허구적 서사는 현실을 왜곡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방치되거나 외면해온 역사적 기억을 현재에 재배치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허구적 서사가 없는 다큐멘터리 영상이라고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재현의 결과물일 뿐이지 기록하는 대상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때문에 <북극의 나누크>감독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가 이누이트 족의 삶을 더 효과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허구를 사용한 것처럼 <물레>도 현실을 효과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 허구적 서사를 사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허구성은 사진연작, 연출된 수집물과 공명하며 수용자가 현재의 지평 위에서 역사적 기억을 재편할 가능성을 높인다.

박정희의 유신독재는 반공이념으로 민주주의 파괴와 국가폭력을 정당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공업 중심의 효율적 경제개발을 달성하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박정희에 대한 상이한 평가가 충돌하는 가운데 유신독재의 명암은 냉전시대를 지나온 현재에도 우리에게 규정되지 못한 후유증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후유증에서 《InFormation》은 예외일 수 있었을까.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신도리코는 작품내용 때문에 전시홍보를 하기 곤란하다는 듯한 입장을 모호하게 내비쳤다고 한다. 실제로 신도문화공간 홈페이지에는 SINAP 선정작가 3인 중 최원준의 《InFormation》에 대한 게시물만 누락되어 있다. 게다가 내가 신도문화공간 방문한 날은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의 아카이벌 영상이 아예 꺼져있었는데 다른 날에도 이 영상은 꺼져있었던 것 같다.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는 남과 북의 독재체제를 떠받치는 정치적 방법론과 문화가 집단주의와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동질성은 전시장 중앙에 남과 북의 이념적 선전물이 세로로 길게 놓인 책상 위에서 서서히 뒤섞이게 배치된 것과도 연결된다.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는 김일성과 박정희가 이념으로 대립했지만 그럼에도 이념을 제외한 측면은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역설한다. 박정희와 김일성이 동일한 맥락 위에서 포개지는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는 객관성을 담보한 것일지라도 유신독재의 명암이 규정되지 못한 후유증으로 남아 있는 오늘날 충분히 불온한 것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 게다가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가 새마을훈장을 받으며 박정희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던 신도리코 같은 기업8)에서 상영된다면 사측에선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유신독재 후유증을 서서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허대찬의 말대로 “당대의 환경과 역사적 기억을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기회”9)가 필요하다. 그리고 《InFormation》은 적어도 신도리코 임직원들에게 이러한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각하의 딸이라는 극단적인 감상주의와 민주정권 이후로 지속된 경제실패로 인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시대에 유신독재는 규정되지 못한 후유증을 넘어서 독한 질병이 되었다. 역사적 기억을 재편하며 현재와 마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InFormation》 진행을 두고 벌어진 신도리코와 최원준의 미묘한 갈등은 이러한 어려움을 거듭 증명했다. 인간은 스스로 견뎌낸 삶의 무게만큼 성장할 수 있다. 이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최원준 같은 작가의 작품이 온전하게 통용될 수 없다면 그 사회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가능성을 포기하고 질병을 계속 악화시켜 나갈 뿐이다.

* 『퍼블릭아트』 2016년 2월 호 meta criticism코너에 게재한 글입니다.


1) 최원준의 작품을 다룬 평론가의 글이 실린 자료를 실물로 구하지 못했기에 인용에 대한 정확한 각주를 달지 못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싶다.
2) 허대찬, 「InFormation In Formation」, 『퍼블릭 아트』 1월호, 2016, p.124
3) 앞의 책, p. 124
4) 앞의 책, p. 124
5) 문영민, ‘소멸의 지리학-군사화된 모더니티의 폐허에서’, <FORBIDDEN LINE>, 2010.3.15, http://blog.daum.net/cheonejoon/12649217
6) 강수정, ‘불빛, 세상을 태우는 차가운’, <FORBIDDEN LINE>, 2011.5.25, http://blog.daum.net/cheonejoon/12649254
7) 반이정, ‘미아리를 배회하던 불량 청년, 4호선 동대문역에 하차하다’, <반이정 미술평론 블로그>, 2015.2.15, http://blog.naver.com/dogstylist?Redirect=Log&logNo=40021991700
8) ‘SINDOH 50년사_대한민국 사무기기의 역사를 만나다 – 60~70년대’, <Sindoh 블로그>, 2013, 02. 19, http://www.sindohblog.com/m/post/207
9) 허대찬, 「InFormation In Formation」, 『퍼블릭 아트』 1월호, 2016, 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