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성_배를 째고 헤집어 심장을 내어준 2015 위안부 문제 협상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전체주의라는 대국적 결단에 의해 2,000만 개인의 모든 고통은 무위로 돌아가고 6억 달러의 차관이 돌아왔다. 지폐는 위정자들과 국가에 녹아들었고 빛나는 산업화의 시대는 몸을 데워주지 못하는 빛으로서만 남으며 수십년간 인간은 국가를 데우는 땔감으로 갈려나가고 태워졌다. 그렇게 50년이 흘러 오늘이 왔다. 그리고 도둑같이 우리에게 찾아온 15분은 요행수 같이 가져왔던 일말의 기대감을 박살내는 것도 모자라 외교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개념까지 파괴해버렸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같은 아니 그에도 미치지 못하는 망종 덩어리가 빚어져 우리들에게 던져진 것이다.

외교는 실리와 명분을 빛어내 만드는 예술품이다. 어느 한 덩어리만으로 만들 수 없고 만약 만들었다면 그 외교는 필히 무너지게 되어있다. 명분을 못 챙기면 실리라도 챙겨야 하고 실리마저 못 챙기면 명분이라도 세워야 하는 것이 외교다. 이 세상에서 가장 허례허식이 많으면서도 그 허례허식 한 글귀 한 동작 안에 담기는 나라와 나라의 정신적 물질적 파워 게임은 백년 아니 천년의 미래를 좌우한다. 그런 예술품을 빚어내야 할 때에 이 나라, 실리는 배를 갈라 장을 흩어 어그러트리고 맥동치는 명분의 심장을 뜯어내 일본에게 넘겼다.

총액 15억엔으로 설립한다는 [한국 위안부 기금]은 2001년 설립되어 2007년 해산된 [아시아 여성 기금]의 열화된 한국어판에 지나지 않는다. 이마저도 일본 정부가 기금 설립부터 해산까지 모든 것을 관장해 왔지만 [한국 위안부 기금]은 한국 정부의 재단 설립과 한국 정부의 물질적 참여가 선행된다. [아시아 여성 기금]에 사용된 일본 국민과 정부의 보상액 합만 10억 8,000만엔. 2000년대 초반의 11억엔과 2010년대 중반의 15억엔. 요식행위에도 격이 있을텐데 우리는 최악의 요식행위를 받아 누리게 되었다. 이 요식행위의 댓가로 우리는 한국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을 내어주었다. 1931년 첫 위안소 설치 이후 84년만에, 채 100년도 되지 않아 14년간 20만여명이 무저갱으로 빠트려진 인류사의 비극은 야구선수 1명의 FA 계약금으로 완전히 매듭 지어졌다. 그 어떤 국제사회에서 이후로 위안부로 목소리를 내는 것 조차 금하기로 한 채. 주한일본대사관의 안녕과 위험의 유지 우려가 되어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한다는 것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위안부 자료가 등재되지 않기로 한 것은 사소한 일임에 다름아니다.

그 무엇보다도 위안부 문제 합의문은 선대 일본의 양심담화를 부정하고 전체주의 담화를 포용한 채 ‘사죄’한다 일컬고 있다. 코노 요헤이의 위안부 강제모집 인정과 사과,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전쟁범죄 사죄와 평화국가 개조의지, 칸 나오토의 식민지배 인정과 사과가 거세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아베 신조의 주어없음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은 사죄한다 했지만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아어의 발음 하나에 요동치는 외교문서에서 저러한 격이 나누어 진 것에 어떤 의미인가. 상호자위로 해결될 수 없는 외교전의 패배 아니 들어바침은 합의문 전문에 오롯이 새겨져있다.

키시다 후미오 외무대신의 자국 언론 인터뷰에서 묻어나는 호쾌함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위안부 소녀상은)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배상은 아니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치유하기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이다. 일한 간의 재산 청구권에 대한 법적 입장(배상 문제는 최종종결됐다는 것)은 과거와 아무런 변함이 없다. 이번 합의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했다.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역사적이고 획기적인 성과다. 일한관계는 미래지향의 새 시대로 발전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합의에 의해 일한, 일미한의 안보 협력도 진행될 것으로 생각한다. 동북아 지역 안보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 나라의 국익에도 이바지 할 뿐 아니라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한국이 군위안부 관련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에 무슨 현실이 있나? 여기에 어떤 국익이 있나? 내년 3월 아베 신조와 박근혜가 미국으로 가 버락 오바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올해의 합의를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식순을 치룬 뒤 미일한 삼각안보동맹을 구축해 대중국상대 꼭지점으로 한국을 이용한다는 이야기가 일본에서는 파다하고 동아시아 협상무대에 다시 오르게 된 것이 국익이요 현실이라 일컬는 자들이 있다. 2012년 알아서 대중국 외교노선 ‘만을 고집해 전통의 우방과 헐거운 쌍방을 버리고 아양을 떨어왔던’ 정부가 어떤 정부인지 잊어버렸나? 그리고 그 국제무대 등원을 위해 다른 모든 경우의 수를 스스로 배제하고 위안부 문제를 꺼내든다? 안보부문에서 남중국해 문제에서 한국의 지리적 이점을 어필할 수 있고 경제부문에서 TPP 가입 시 한국만이 미국에 제시할 수 있는 카드를 보일 수 있고 외교부문에서 대중국-대미국의 가교 역할을 하는 회담국으로서의 가치를 보일수도 있는, 그야말로 머리를 짜내면 무엇이든 다른 외교적 능동성을 부릴 수 있는 상황에서 근대 한국 형성사 최악의 인권유린을 카드로 쓴다니. 왜곡된 역사라 할 지라도 자국의 역사를 위해 저런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피해국을 방어하는 일본의 국민총화 외교를 보고도 현실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이미 그 ‘현실’대로 미국과 세계의 모든 언론은 일본의 외교력을 격찬하고 한국이 그것을 잘 받아주었다고 등을 두드리는 기사와 방송을 쏟아내고 있는데 과연 어느나라가 현실을 쟁취한 것일까. 뉴욕타임스 “이번 역사적인 합의가 양국 관계에 있어 가장 다루기 어려운 걸림돌을 제거할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일본과 한국이 수십 년간 이어진 군위안부 분쟁에서 돌파구를 마련했다” 디플로매트 “1965년의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모든 전시 악행 문제가 해결됐다는 일본의 입장을 유지하도록 하면서 한국이 체면을 세울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블룸버그 “미국의 두 동맹국 사이에서 가장 큰 긴장 요인이었던 군위안부 문제가 타결되면서 각국에서 총선을 앞둔 두 나라 지도자들이 정치적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독일 슈피겔 “60년 이상이 지나서야 일본 정부가 (전시) 강제매춘에 대해 사죄했다” 독일 제1공영 ARD 방송 “군위안부 기금 조성과 일본 정부의 사죄로 수십년간 해묵은 분쟁이 해결됐다” 프랑스 르몽드 “일본 정부가 전시 성노예 피해에 관해 보상하는 데 동의했다. 한일정부가 역사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대중을 멍청하다 조롱하는 식자층들의 오만과 저열함이 이 나라의 토대를 쌓는데 큰 공헌을 한 것을 내가 안다.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철저하게 받아들이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댓글들이 베스트 댓글로 선정되고 있다는 것은 대중을 그리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라는 현실을 낱낱히 보여준다. [일본이 얻은 것 : 1. 국제 사회의 압박에서 벗어남-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까지 한 발짝 남음, 2. 미일동맹 강화-TPP로 미국의 최전선 우방으로 재승격, 3. 중국 견제 강화, 4. 향후 한국은 위안부 문제로 태클 못검 5. 유네스코 기록유산 위안부 등재 막음. / 한국이 얻은 것: 1. 총체적 정신 승리, 2. 지난 3년간의 대중국외교 무위로 돌림-한국과 같이 위안부 자료 유네스코 등재시키려던 중국 극대노, 3. 일본제국 시절 함께 점령당했던 옛 제국 식민지 국가들의 분노, 4. 한일간 극한대립이 해소된 것이 국제표준 상식이 됨, 5. TPP 연합전선의 안보적 경제적 최전선 총알받이가 됨-언제든지 버리고 갈아끼울 수 있는 뱃머리 끝 장식용 용두] 이런 와중에 온 각계각층에서 쏟아지는 셀럽들의 비판을 굳이 인용해 무엇하랴.

박근혜는 “일본의 잘못된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는, 한일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이번 합의에 대해 피해자 분들과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이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고 천명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 38선 남북분단으로 희생하고 4.3으로 희생하고 국민방위군으로 희생하고 보도연맹으로 희생하고 5.16으로 희생하고 민청학련으로 희생하고 인민혁명당으로 희생하고 12.12로 희생하고 5.18로 희생하고 부림으로 희생하고 학림으로 희생하고 삼청교육대로 희생하고 총충으로 희생하고. 무얼 더 바쳐야 하는걸까. 국가의 이름 아래 어떠한 보상도 사과도 없이 희생되어야 하는 국민이 존재하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나치 독일로 일본 제국으로 이탈리아 파시스트 왕국도 국가라면 모르겠지만.

박근혜는, 이 정부는, 이 외교부는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져 땅에 묻으려면 땅이 거부하고 하늘로 쏘려면 하늘이 거부하고 바다에 떠내려 보내려면 바다가 거부하는 몸이 되었고 될 것이다. 외교는 굴종으로 땅에 떨어졌고 그들만의 프레임은 어느새 확장되어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고 있다. 이미 벌어진 일 응원을 하라면 집어치우라 하겠다. 4대강도 NLL도 대선조작도 세월호도 국정교과서도 모두 그렇게 이미 벌어진 일 다음에는 잘 하겠지 하고 넘어갔으니까.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허브를 꿈꾸던 한국은 죽었다. 그 허브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앞으로 몇년의 시간과 몇배의 인력이 희생되어야 할 지 모를 일이다. 2007년 끊기기 시작한 허브는 8년만에 완전히 삭아문드러지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과거를 팔아 미래의 제일 말석에 앉는 일 뿐이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차고 버리고 더 나쁜 것을 택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터.

우리는 오늘 또 한번, 너무나도 거대한 기회를 스스로 걷어 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