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종_프레임에 대한 단상

2013.06.27 발행

1.
최근의 NLL 사건을 보면(이전에도 진작부터 그랬지만) 같은 내용인데 좌우 진영의 말이 서로 다르다는걸 알 수 있다. 정치권은 당연시 그럴것이고, 언론들도 당연히 그렇겠지만, 재미있는것은 댓글을 통한 ‘여론’들의 반응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같은 내용을 두고 누군가는 NLL 포기발언은 없었으며 실리적 외교를 추구하려 했다고 하고, 누군가는 포기발언이 있었다, 내지는 굴욕적인 외교로 망신이다 라는 식으로 보고 있다. 재미있는 지점은 이런 양분된 의견이 같은 내용을(그러니까 대화록 전문을)보고도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일단은 이 이야기의 주 목적이 NLL문제가 아니라 그저 예시를 들기 위해 언급했을 뿐이므로 여기서는 언급을 피하고자 한다. (주1) 이런 경우는 우리의 일상과 소규모 정치의 영역과 거시정치, 가정, 연애, 온라인 게임등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현상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해석이 천양지차라 좁힐수 가 없는 경우가 많다. 창세기 바벨탑 신화의 재림인가. 이렇게 바벨신화를 현세에 실현시켜주는 것이 바로 ‘프레임’ 이다.

2.
프레임(Frame)은 말 그대로 틀이다. 우리가 어떤 사건이나, 사회의 일각, 내지는 전체를 바라 볼때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닌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 틀을 적용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것을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이라고 한다. 이런 프레임이 구성되는 것은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와 환경, 교육제도, 개인가정의 교육환경, 생활한 경험이 기반이 되어 결정된다. 그리고 이 틀에 의해 세상을 해석하고, 그 결과에 맞추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이 틀의 차이는 사건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된다. 인간의 자율과 국제기구와 제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자유주의 정치학자들은 UN에 대해서 앞으로 보완해야 할, 하지만 종국적으로는 이상적인 정치 체제로 생각하는 반면에 힘의 논리로 생각하는 현실주의 정치학자들은 UN과 같은 국제기구란 단지 명분일 뿐이라고 부정한다. 프레임의 차이가 곧 세상을 해석해 내는 결과물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자칫하면 이 틀(안경)이 세상을 편협하게 바라보게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만은 볼 수 없다. 이 틀이란것 자체가 없으면 세상에 대해 해석 자체가 불가능해 진다. 자가 없으면 길이를 알 수 없고, 체중계가 없으면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지, 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 판단의 틀이라는 건 우리가 애초에 살아가면서부터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없기도 하다. 아무튼 이 틀은 판단의 기준이 되어 우리가 판단 후에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 행동의 차이를 결정하는 것이 프레임의 차이일 것이다.

물론 프레임 때문에 쉽게 빠지는 함정도 분명히 있다. 프레임은 사람들 머리속에서 일종의 관습코드와도 같기 때문에 프레임을 이용하여 사람의 생각을 매체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 이걸 프레이밍이라고 하던가. 수사나, 말, 특정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단어들로 사람들의 생각을 한쪽으로 유도하고 틀을 형성하게 만든다. 조선일보가 이를 잘하는데, 조선일보는 지속적인 반복학습을 통하여 사람들의 프레임을 강제형성 시켜 버린다 조선일보를 보다보면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도 프레이밍의 일환이다. 물론 언론사들의 프레이밍은 이데올로그 전향의 목적보다는 그 언론을 구독하는 독자들의 프레임을 강화시켜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다. 아무튼 프레임은 사회의 각종 정보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 정보가 왜곡되어 있거나 한다면 왜곡된 사고에 갇혀버리기 쉽다. 따라서 정보를 균형있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온갖 똥덩어리 정보가 넘쳐나는 이놈의 시대가 그걸 안 되게 만들지……

3.
문제는 틀이 아니라, 그 틀을 가지고 있는 태도이다. 상당수가 프레임 자체에 너무 매몰되어 해석하기 위해 프레임을 가지는게 아니라, 프레임을 자체를 유지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 프레임 자체에 시각이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는 왼쪽날개 오른쪽날개를 가리지 않고 자주 등장하는 현상이다. 자신이 가진 틀은 절대적이지 않다. 틀이 너무 좁을 수도 있고, 틀이 어긋나 있을수도 있으며, 왁구가 잘 안 맞아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이 틀을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프레임의 보완을 거치지 않고 프레임을 유지하는 것 자체에 집착해 버리면,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이나 논의가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정보(검증되지 않은)가 넘쳐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래서 프레임을 키우기도 전에 강화하는 것부터 가능한 요즘의 네트워크 세상에서는, 재질은 메탈인데 크기는 증명사진만한 프레임을 가진 네트워크 자폐증 환자들만 양산된다.

프레임에 함몰되어 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은 ‘즉각적 반응’(뭔가 나보다 10만배 똑똑한 사람이 용어를 정의했을 것 같지만 내가 무지하여 알지 못하니 용어를 만들겠다.)이다. 파블로프의 개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거다. 한 주체가 가진 틀이 너무 완고하다 보니 자기 프레임에 대한 반성이 없다. 따라서 사람이 무척이나 단순해진다. 프레임이 틀리지 않으니 매뉴얼대로의 행동을 취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군대의 제식훈련도 군대적 사고와 판단의 틀(프레임)을 자꾸 집어넣는 것이다. 군대에만 있는 악습이라던지, 불문율도 그런 맥락이다.이런 것들은 군대라는 조직의 프레임을 절대적으로 깰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의심과 고민의 여지를 제거해주며, 매뉴얼대로 일하는 사람을 만든다.

비슷하지만 약간 맥락이 다른 경우라면 사회적인 ‘코드’에 즉각 반응을 보이는 예도 들 수 있다. 사회에서 오랫동안 금기시 되던 것, 너무 관습적이고 당연한 것들에서 이런 견고한 프레임의 모습이 보인다. 예를 들면 빨간색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 이라던지.(요새는 노란색이라더라)… 대개 이런 완고한 틀은 사회 통념이나 관습에 많이 위치해 있고, 금기시 되어 있는 것들에서 많이 보인다.(작가들이 거기에 침투해서 개발살…까진 아니고 건드리지.) 글쎄 아직도 ‘여자 담배’ 라는 문제에서도 일종의 알러직한 반응들이 나오는걸 보면 뭐……

프레임 함몰의 두 번째 문제라면 바로 비 소통성일 것이다. 사실 사람의 관점, 논점은 끊임없이 고찰과 수정을 거치며 성장하고 견고해 진다. 틀이 박살나면 다시 만들고 또 박살나면 다시 만들고 하면서 프레임은 점차적으로 넓어지고 견고해진다. 그렇지만 프레임 자체에함몰 되어 버리면 그 프레임을 절대 박살내지 않으려고 한다. 틀이 견고하기는 하겠지만 틀이 더 커질수도 없다. 비유하자면 이런 꼴이다. 모래폭풍에 눈이 다치고 있는데 안경알 긁힌다고 안경 벗어서 품속에 싸매고 있는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틀을 1밀리도 확장시킬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프레임의 편협함은 필연적으로 불통을 낳게 되어버린다. (“말을 해도 알아먹을 것 같지 않으니 이길 자신이 없다.” 진중권) 아니 뭐 그거 아니라고 이런저런 증거를 다 대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봐야 “아니 나는 그런거 모르겠고.” 로 시작하여 정신승리로 끝나는 그 과정을 겪고 나면 내가 지금까지 뭐했나 싶지……

사실 대부분의 프레임 함몰의 경우에는 자신의 프레임의 빈약함을 감추려는 방어적 행태들 또한 많다. 거기에 요새는 그 빈약한 프레임마저 튼튼하게 해 줄수 있는 정보들이 넘쳐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프레임의 크기를 키울 생각을 안하고 틀만 튼튼하게 만들고 앉아 있다. 중요한건 프레임의 넓이인데 말이지……

4.
같은 사건을 모두가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로가 살아온 환경이 다른 이상 세상을 보는 틀 또한 다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틀의 크기이지 틀의 강도가 아니다. 학습은 자신의 틀을 깨고 더 크게 구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그 틀의 강도 자체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며 도리어 틀이 파괴와 재구축을 거치며 도리어 견고하고 넓어질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프레임이 작살나면서 배우는게 아니겠는가. 도리어 틀의 크기에 비해 강도가 너무 강하다면 소통미숙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설렁탕을 사왔는데도 먹지를 못하겠지…..

무조건적인 상대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도 안되고. 하지만 다른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배격하기 전에 상대의 시각에 대해 고찰해 보는 것은 필요하다. 불편한 프레임일 지라도 그 불편함에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요즘 들어 너무 자폐적인 사람들을 네트워크 공간 안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커다란 가치인양 꽁꽁안고 부서지지 않도록 하려고 한다.(“염려마시오 빼앗아 가지 않소.” ‘피천득’. 은전한닢 중)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국에는 자신을 스스로 고립상태로 빠트릴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 고립감을 이기지 못해 자신과 비슷한 프레임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열등감을 공격성으로 표출하는 변태들이 된다. (일베나 아고라나…..)

이것은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마찬가지의 문제이다. 트위터나 아고라에서도, 진보적 이데올로그를 가진 사람들이 프레임에 매몰되어 자기 진영의 프레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비판하면 울프팩(주2)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오른쪽도 마찬가지였다. 진보진영에서 상처 받은 사람이 보수적인 이데올로그로 무장하고, 그런 보수이데올로그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진보 진영의 전위부대가 되는 반복재생산의 훈훈한 꼬라지는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 아주아주 잘 연출되고 있다. 껄껄……

자신만의 주관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독선일지, 나아가 자폐일지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는 태도가 필요한 시기 같다. 그렇지 않으면 자폐와 독선으로 다른 사람을 찌르고 후비고도 별 감각이 없는 괴물이 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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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NLL문제 언급이 이야기의 주는 아니고 예시일 뿐이니 이 자리에서 크게 언급하지 않겠다. 그냥 주석으로만 언급하겠음. 민감한 문제고 이 얘기만으로도 장문의 글이 나올 것 같은데다가 요새는 난독병신들이 많아서 정치 얘기하기가 너무 꺼려진다. 벽이랑 얘기하면 자기 수양이라도 될텐데 이건 내가 물질계에 존재하는 것들이랑 얘기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인풋하던 아웃풋은 종북 좌빨 홍어 민주화다. 일관성에는 박수를 치고 싶더라. (ㅇㅂ병신 호구 찌질이 자폐증새끼들……) 요약하자면 병신들이 자신의 통장과 허세를 보존하기 위해 공개해서 좋을 게 없는 것을 공개해 놓고 지랄중이다. 거기에 호구새끼들은 댓글 란에서 핀트가 어긋난 논쟁을 벌이고 있으면서 다 지가 옳다고 자위하고 있다. 차라리 야동을 보는게 건강에 유익할 듯. 펜과 카메라로 사람 죽이는 미친놈들은 불난데 석유 부으면서 이 캠프파이어가 오래 가길 바라고 있고. 정작 중요한 아젠다들 ‘정당한 기밀 공개였는가?’, 와 ‘적절한 외교적 접근법이었는가? 그 결과는 어땠는가?’ 따위는 아무도 논의하지 않는다.

사실 여기에서도 우리가 북을 바라보는데 주입받은 견고한 프레임 2가지가 작용한다. ‘주적’과, ‘한민족’. 이 두 가지 프레임이 우리에게 너무 강력하게 박혀 있어서 북의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들이 일종의 알러지를 일으키며 개거품을 문다……북에 대해 주입받은 프레임이 너무 견고 한데다가 북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하면 나 역시도 주적이 된다는 강박이 같이 작용한 결과 발생하는 현상. 이렇기에 북에 대해 주고받는 ‘딜’의 개념으로 접근하려 하면 굴복이란 소리 듣고, 강한 압박 하면 ‘민족탄압’ 등의 소리를 듣는게 현실이다.(내지는 잘한다고 하거나.) 어쩌라고….

사실 나는 북에 대해서는 외교, 실리적으로 접근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통일이전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본다. 도발->맞도발->대화단절->통미봉남+중국중재->북은 실제적 이득, 중국은 외교적 이득, 미국은 문제 해결.-> 우리는 얻은거 없이 호구. 이런 그림부터 깨야 한다고 본다. 미사일 몇발로 북은 욕좀먹고 뭔가를 얻어 가지만 우리는 얻어 가는 것도 없이 손가락 빨고 있다….. 실리적인 외교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면 외교 거래라는 개념으로 딜과, 압박을 조화해 줘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놈의 여론이 딜도, 압박도 허용치를 않는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록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내가 보기엔 그건 북과 다양한 딜을 시도하고 저로의 제안을 교환하며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려 했던 외교전이다. 김정일이 한미동맹의 약화 및 민족공조를 던졌고, 노무현은 그걸 적당히 받아치고서는 방남과 핵포기를 언급한다. 내가 보기엔 서로 이래저래 기분좋은 말을 하면서 탐색전을 하는거다. 과연 이놈의 의중이 무엇인가. 사실 대화록을 보면 둘 다 말만 언급하고 딱히 확정지은 건 하나도 없다. 서로의 의중을 일단 파악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의중을 떠보는 과정에서는 당연히 자신을 낮춰서 상대를 안심시키거나, 또는 강하게 말해 상대를 발끈하게 하여 의중을 떠보는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문제제기 전에는 노무현대통령의 이런 외교가 어떤 성과가 있었나. 그리고 ‘이것이 적절한 것이었나’ 에 대한 고찰이 있었어야 할 것이다.. 사실은 많은 고민과 연구와 토론이 필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전 정권께서 남북 ‘관계’ 를 아예 작살내 버렸으니 저런 대화가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겠어. ㅋㅋㅋㅋㅋㅋ 성과를 논하기도 전에 성과의 싹이 사라진 격. 하지만 북에 대한 우리와 우리 스스로와 언론과 정치권의 프레이밍이 워낙에 강하다보니 이런 인식을 가지기 힘들다. 전체적인 여론이 바라는 게 “우리집 애 때린 옆집애 가서 한 대 때려주고 오는 아버지.” 이니….. 요새 이런 짓 했다가는 씨알도 못 건지고 아동폭행으로 빼도 박도 못하고 실형이다.

물론 나 자신도 나의 프레임에서만 바라볼 뿐이다. 모든 것을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사람들이 자신의 프레임을 적용하기 전에 자신의 프레임이 절대적인지 의심을 해보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나는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아 장문될뻔 했다. 여기서 그만.

(주2) 늑대떼, 원래는 2차대전 독일의 잠수함 함대의 전술을 이르는 말, 3,4대가 몰려다니며 대열에서 낙오된 적함을 일거에 격침하고 도망치는 식으로 싸워서 울프팩이라고 한다더라. 금융권에서 헤지펀드나 헤드헌터들 같이 달려들어 뜯어먹고 가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