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민_6분 25초에 시작되는 당신의

2013.06.10 발행

아버지, 아버지의 감상에 방해되지 않으시도록, 언어는 가능한 한 짧게 하겠습니다. 아래는 첨언입니다. 이 곡만으로도 아래의 말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일단 들어보세요.

1. 안정? – 
음악 시작. 잠시 각자의 짐을 내려 놓고, 5분 동안 쉬시지요. 단조롭고 아름다운 선율입니다. 단, 그저 편안한 아름다운 선율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듯한, 특이한 점이 하나 있어요. 왼손이 제시해주는 박자는 ‘단딴딴, 단딴딴’ 마치 왈츠 같은 3/4박자죠. 그런데, 멜로디를 연주하는 오른손은 왈츠 느낌은 커녕, 3/4 박자에 딱히 연연해하지 않은 채,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endlessly 흘러갑니다. 왼손의 8분 음표 6개에 한 번씩 박자는 맞춰준다 느낌일 뿐이에요. 어쩌면 오른손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 높은 단계로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일 겁니다. 이 곡의 초반을 듣고 계신 지금 당신의 마음이 어쩌면 그러한 것처럼요. (물론, 그 바람, 그 높은 단계에 대한 희망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3분께에는 오보에와 플롯도 등장하고, 그 희망은 실현되는 듯 보입니다. 단, 제 생각엔, 한 가지 해결은 해야겠단 생각입니다. 왈츠 왼손과의 화해. 

아, 말 안한다 해놓고 말이 길어진 듯한데, 어쨌건 사실 이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포인트는, 아름답다입니다. 그리고 첫 5분까지는 아름다운 선율임에 큰 이견은 없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2. 긴장 – 
5분이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살짝 달라지고, 6분이 넘어가면서, 불협화음의 긴장이 시작됩니다. 왼손과의 박자 역시 악보 상 맞추고는 있으나, 왼손아 네 갈 길 가라, 난 내 갈 길 간다 느낌입니다. 6분 10초가 넘어가면서 불협화음의 긴장은 절정을 향합니다.

3. 그리고 내려놓음 – 
6분 20초에 오른손은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자신의 멜로디는 오보에에게 넘겨주고, 왼손의 왈츠 박자와 관현악의 멜로디로 스며드는 스케일 주법으로 돌변?합니다. 왼손의 왈츠 박자 체계에서도 벗어난 듯 그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낮은 곳에서 덜 낮은 곳으로 또로록 또로록, 때론 넘실 넘실 흐릅니다., 우뚝 돌출되었던 자신의 일생을 잔잔한 수면에 내려놓고, 이제 바람이 왈츠를 출 수 있게 되었군요.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을 느끼신다면, 오른손의 내려놓음을 느끼셨기 때문일 겁니다.

아버지, 이 9분짜리의 곡에서 당신은 6분께를 살고 계십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나머지 인생이 이렇기를 희망합니다. 아름다움은 비아름다움과 싸워 이겨내는 것도, 성취하는 것도 아닐 겁니다. 오히려 아름다움은 ‘추함’ 앞에서 ‘내’가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 즉 자신의 빔.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전해져 느끼지는 것일 것이라 믿습니다.
훗날, 곡이 끝나는 9분의 장소들에서, 아버지! 아버지들이 지금 몸담고 계신 정치와 예술과 교육이 조화를 이루며 만나기를 바랍니다.

이 곡은 Ravel의 Piano Concerto (2), Adagio Assai입니다. 유투브에 다른 연주 버전이 이것 저것 있으니 찾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NRTWLQ4nI6Q 이 버전이 듣기에는 좋다고 생각하나, 개인적으론 필요 이상으로 감성적, 오글인것도 같아요-